개 회 사 동북아역사재단과 동아시아사연구포럼 이 주최하는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 회, 국가, 세계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주신 국내외 여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 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귀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빈들과 방청객 여러분 께도 감사드립니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동아시아 각국은 그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이는 거의 숙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 아 각국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볼 때, 평화적인 교류와 협력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에 못지않은 숱한 갈등과 분쟁도 있었습니다. 특히, 근대 이후 동아시아 각국 사이는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갈라지면서 일정한 갈등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갈등의 여파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 는 역사서술 문제에서 매우 첨예하게 드러나는데, 근자에 들어 쉽사리 각국 국민 간의 감 정적 대립으로까지 비화되곤 했습니다. 이런 역사 문제 는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국 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역사를 서술하고 있음에 기인합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이후 동아시아 각국의 경제적 성취는 동아시아가 모처럼 세계사에 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호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가 相 生 번영으 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협조라는 선결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역사서 술 문제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우리는 장기적으로 역사 인식의 공유를 통해 화해와 반성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이번 국제학술회 의가 평화를 화두로 동아시아의 역사서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국내정세는 급격하게 상호의존의 방향 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동아시아는 장차 정치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평화적이 고 우호적이며 협조적인 지역 공동체의 형성을 전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학술회의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와 국가, 세계 안에서 동아시아가 역사서 술을 통하여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 민지와 전쟁에 대한 역사기억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였는가를 면밀하게 고찰해야 할 것 3
입니다. 그리고 갈등에서 화해로 나아가며 평화롭게 相 生 번영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사연구포럼과 동북아역사재단이 함께 마련한 국제학술회의는 어느새 4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매년 개최되는 이 학술회의가 동아시아사연구자들의 교류와 신뢰에 기 여하고 학문공동체의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발표와 토론을 통한 논 의 속에서 서로에 대해 우정을 쌓으며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어,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공 동의 역사인식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늘 자리를 함께 해주신 발표자와 토론자, 사회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애를 쓰신 여러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 니다. 2010년 11월 5일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정재정 4
Opening Address I would like to express my sincerest thanks to all the scholars from home and abroad, participating in this international conference, The Historiography and Peace of East Asia: Society, Nation, and the World, hosted by the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and the Forum for the Study of East Asian History. My sincerest thanks also go out to all the guests and the members of the audience who have taken time out of their busy schedule to be here. From the ancient time till now, East Asian countries have been closely interacting one another, culturally, politically, and economically, owing to their geographical proximity. Our interwoven past and present cannot but be said to be fate. Looking back on the historical interactions among East Asian nations, our relations have not always been peaceful and cooperative: we have had conflicts and disputes as much as peaceful exchange and cooperation. In particular, the modern era witnessed the emergence of a structure of conflict as the nations of East Asia were split into imperialist and colonized or semicolonized states. This structure of conflict still continues to affect us, threatening the peace and coexistence of East Asian nations. When it comes to historiography, the conflict is manifested even more acutely and stridently these days, sometimes igniting emotional confrontation among the citizenries of the involved countries. This problem of history stems fundamentally from the nationalistic historiography of individual East Asian nations. Since the late 20th century, however, the economic success of East Asian nations is offering East Asia a golden opportunity to occupy a more distinctive position in the world s history. The region s presence in the world is growing in every area, from politics, economy, society, to culture. In order to materialize this golden opportunity to build mutual prosperity that benefits all, peace and cooperation among East Asian nations must come first. To this end, if historiography interferes the peace and prosperity of East Asia, then for the long run, we must seek to retrospect and reconcile through building shared historical 5
consciousness. In this regard, this international conference has particular significance in that it offers an occasion to critically examine the historiography of East Asia with peace as its central theme. Drastic changes in the domestic and international environment of East Asian nations these days steer us toward a more interdependent orientation. And this allows us to project the formation of a regional community in East Asia, peaceful, harmonious, and cooperative in every regard including politics. As the title of this conference suggests, the purpose of this event is to find ways to establish peace in society, nation, and the world through consensusbuilding in the historiography of East Asia. To fulfill this purpose, we have to thoroughly inspect how our historical memories about colonization and war have been constructed and how they operate. From then on, we can move forward, from conflict to reconciliation and to mutual prosperity. This international conference hosted by the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and the Forum for the Study of East Asian History marks its 4th anniversary this year. I strongly believe that the conference will enhance cooperation and trust among the scholars of East Asian history and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formation of a scholarly community of East Asian historians. I hope, in addition, that it will serve as an occasion for us to strengthen friendship and foster continuous dialogues for the future as we share ideas and opinions through presentations and discussions. Ultimately, I hope that this function will lay a foundation to build a collective historical consciousness shared by all East Asian nations. Once again I would like to thank all the presenters, discussants, and moderators who participate in this international event despite their busy schedule. I also extend my gratitude to those who have worked hard to make this conference possible. Thank you. November 5, 2010 6 CHUNG Jae jeong President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환 영 사 동아시아사연구포럼이 발족한지 벌써 3년이 되었습니다. 2008년의 동아시아의 지식교 류와 역사기억, 2009년의 역사적 관점에서 본 동아시아 세계 의 아이덴티티와 다양성 에 이어 이번에는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사회, 국가, 세계 란 주제로 여러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타이완,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의 여러 도시로부터 오신 여러분을 포럼 운영 위원장으로서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번 회의는, 나카무라 마사노리 선생의 戰 後 史 중의 안보 체제 란 제목의 기조강연에 이어, 동아시아 지역질서와 평화의 가능성, 갈등에서 화해로의 길,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의 길, 동아시아의 전쟁과 화해, 동아시아의 상호이해와 평화, 동아시아의 평화구상과 사상적 모색 등 6개의 패널로 구성되었습니다. 어느 것이나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염 원하는 소원을 담고 있습니다. 20세기는 근대화란 시대과제 아래 우열 비교의 역사관의 시 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제국주의의 힘겨루기 의식으로부터 역사학도 지배, 피지배의 처지를 막론하고 영향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반면에 21세기에 접어들어 우리의 화두는 평화로 바뀌었습니다. 세기가 바뀌면서 한 중 일 3국의 경제뿐만 아니라 생활의 기술적 수단이 새로운 차원으로 발달하여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에도 근본적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데 따른 변화가 아닌가 합니다. 국가 간의 무역도 다변화하여 독점이익이란 것이 존재하기 어렵게 된 구조 속에 공존관계의 필수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라고 믿어집니다. 우리 역사학자들은 이 새로운 조류가 속히 큰 힘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 록 동아시아의 경험을 반추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작업에서는 국경을 넘어서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 포럼의 가치가 새삼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발표문과 토론문 작성을 위해 기울이신 여러분의 노고에 대해 운영 위원장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학문적으로 노력하 시는 여러분의 충정을 진실로 존경합니다. 올해, 한일 양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에 의한 한국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 가지 큰일 을 해내었습니다. 병합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공동 성명이 지난 7월 28일에 일본 측 520여 명, 한국 측 580여 명의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특히 일본 측 서명자의 수가 500명을 넘었 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역사학자로서 참가한 수가 260여 명이나 되었 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역사의 진실을 존중한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7
쾌거였습니다. 저는 이 서명 운동의 한국 측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일본 측의 동향을 지켜 보면서 무한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진실을 존중하고, 역사가 나아가야할 바 람직한 방향에 대한 학자적 신념이 유감없이 발휘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지식인의 노력은 한일 양국을 넘어 한ㆍ중ㆍ일 3국, 아니 아시아를 넘어 인류 전체의 미래를 끄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동아시아사연구포럼이 목표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정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노고가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하는 힘이라는 자부 심으로 이틀간의 회의에 임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 회의 준비를 위해 수고하신 관계자 여러분에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11월 5일 동아시아사연구포럼 운영위원장 이태진 8
Welcome Speech It has been three years since the Forum for the Study of East Asian History was founded. The Forum first hosted an international conference in 2008 on the theme of Intellectual Exchanges and Historical Memories in East Asia, inviting scholars from home and abroad, and held another conference in 2009 on Identity and Diversity of the World of East Asia, from a Historical Perspective. At this year s conference, we will be exploring the theme of The Historiography and Peace of East Asia: Society, Nation, and the World. As Chairperson of the Forum, I would like to express my sincere welcome to all the participants and guests from Taiwan, Japan, China and Korea. This year s conference begins with Dr. Nakamura Masanori s keynote speech on The Security System in the Postwar History, followed by six panels of presentation and discussion on the topics such as: the Regional Order and Possibility of Peace in East Asia; the Road from Conflict to Reconciliation; the Historiography of East Asia and the Path to Peace; War and Reconciliation in East Asia; Mutual Understanding and Peace building in East Asia; and Peacebuilding and Thought System. All these panel topics reflect our wishes for the peace of East Asia. It is not too far fetched to say that the historiography of the 20 th century, an era of modernization, was predominated by historical narratives based on chauvinistic ideas of supremacy and inferiority. The imperialistic idea of power struggle seems to have permeated the psyche of the historians of that time, regardless whether they were oppressors or oppressed. The start of the 21 st century, however, has introduced a new central theme to historical narratives, namely, peace. With the turn of the new century, three countries, Korea, China and Japan have seen a new dimension of development not only in economy but also in daily technology. It seems that this newly gained affluence and technological advance has fundamentally changed our perception on international relations, thus inducing a new trend in 9
historiography. International trades have become diversified, and this new geoeconomic structure makes it difficult for monopoly to persist and increases awareness for the necessity of coexistence. For this new trend to firmly take root in the world in the near future, we historians must not cease in our efforts to provide a new vision, as ruminating the experiences of East Asia. Such efforts should be made trans nationally, and in that regard, I feel, lies the significance of this Forum. As Chairperson of the Forum, I would like to thank all the presenters and discussants for their preparation for this conference. My deepest respect and appreciation go out to all the scholars here for your earnest academic endeavors to establish true peace in East Asia. This year, we have achieved a great milestone in the wake of the 100 th anniversary of Japan s forced annexation of Korea. On July 28, more than 520 intellectuals from Japan and more than 580 from Korea issued a joint statement pronouncing the illegality of the annexation. Particularly surprising is that the number of the Japanese signers was over 500, of whom 260 were historians. This is a great feat of achievement that shows Japanese historians respect for historical truth. As one of the Korean initiators of the statement, I was profoundly moved by the response from the Japanese participants. It is an event where scholars conviction for historical truth and for desirable historical direction has triumphed. I strongly believe that this kind of efforts from intellectuals can be a driving force to lead all humankind to a better future, transcending the scope of Korea Japan or Korea Japan China, or even Asia. This very sprit, I believe, is what our Forum for the Study of East Asian History pursues as a goal. I hope everybody here to participate in two days of conference with pride and conviction that your efforts will illuminate the future of humankind. Finally, I would like to extend my sincere gratitude to those who have worked hard to make this event possible. Thank you. 10 November 5, 2010 YI Taejin Chairperson Forum for the Study of East Asian History
The Historiography and Peace of East Asia: Society, Nation and the World International Conference : 사회, 국가, 세계 Date: November 5(Fri) ~ 6(Sat), 2010 Venue: Hotel GrandHilton Seoul 2010. 11. 5(Fri) November 5, 2010 09:00~09:30 Registration 09:30~10:00 Opening Ceremony Grand Ballroom 2F Presider 琴 京 淑 (KEUM Kyungsook, 東 北 亞 歷 史 財 團 ) Opening Address 鄭 在 貞 (CHUNG Jae-jeong, 東 北 亞 歷 史 財 團 理 事 長 ) Welcome Speech 李 泰 鎭 (YI Taejin, 東 아시아 史 硏 究 포럼 運 營 委 員 長 ) Introduction of the Participants 10:00~10:30 Plenary Session Grand Ballroom 2F Keynote Speech 中 村 政 則 (Nakamura Masanori, 一 橋 大 学 ) : 戦 後 史 の 中 の 安 保 体 制 ー 日 米 中 のトライアングル (전후사 속의 안보체제-일 미 중의 트라이앵글) Photo Session 11
10:30~13:30 Session I Panel 1-1(Swan Room) 東 아시아 地 域 秩 序 와 平 和 의 可 能 性 Moderator 金 容 德 ( 光 州 科 學 技 術 院 ) Panelist-1 安 田 佳 代 ( 東 京 大 学 ) : 極 東 衛 生 事 業 の 展 開 と 日 本 対 国 際 機 関 外 交 - 国 際 連 盟 から 国 際 連 合 へ - (극동위생사업의 전개와 일본의 국제기구외교 - 국제연맹에서 국제연합으로 -) Panelist-2 斎 川 貴 嗣 (Heidelberg University) : 1937 年 知 的 協 力 国 内 委 員 会 総 会 における 日 本 と 中 國 - 国 民 文 化 地 域 国 際 的 文 脈 - (1937년 지적협력 국내위원회 총회에 있어서의 일본과 중국 - 국민문화, 지역, 국제적 문맥 -) Panelist-3 徐 榮 姬 ( 韓 国 産 業 技 術 大 学 教 養 学 科 ) : 日 本 의 韓 国 併 合 을 둘러싼 国 際 環 境 과 大 韓 帝 国 外 交 의 좌절 Discussant 辛 圭 煥 ( 延 世 大 ) 金 旼 奎 ( 東 北 亞 歷 史 財 團 ) 12
10:30~13:30 Session I Panel 1-2(White Heron Room) 葛藤에서 和解로의 길 Moderator 裵京漢 (新羅大) Panelist-1 陳紅民 (浙江大学) : 现实政治与历史研究 - 中国大陆地区的蒋介石研究 1949~2000 - (현실정치와 역사연구 -중국 대륙에서의 장제스연구(1949~2000)-) Panelist-2 芝崎厚士 (駒澤大学 グローバルㆍメディアㆍスタディーズ学部) : 国際文化と世界共和国 - 朝永三十郎と田中耕太郎 (국제문화와 세계공화국 - 도모나가 산주로(朝永三十郎)와 다나카 고타로(田中耕太郎) -) Panelist-3 李向平 (華東師範大学) : 协调型信仰模式的历史构成 - 以中国信仰的实践逻辑为例 - (조화형 신앙모델의 역사적 구성 - 중국 신앙의 실천논리를 중심으로 -) Discussant Daqing YANG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朴晉雨 (淑明女大 13
15:00~18:30 Session II Panel 2-1(Swan Room) 東아시아의 歷史敍述과 平和의 길 Moderator 荒井信一 (茨城大) Panelist-1 张连红 (南京师范大学) : 南京大屠杀的历史记忆与东亚和平 - 以医治战争创伤为中心的讨论 - (남경대학살의 역사기억과 동아시아평화 - 전쟁 상처 치유를 중심으로- ) Panelist-2 周永生 (中國外交学院) : 东北亚的历史结构 外交 国际关系理念与未来前途 (동아시아의 역사구성, 외교, 국제관계 이념과 미래전망) Panelist-3 川島真 (東京大学 大学院総合文化研究科) : 日中歷史認識問題の淵源 -1910-40年代の敎科書問題(일ㆍ중 역사인식문제의 심원 - 1910~40년대의 교과서문제 -) Panelist-4 林相先 (東北亞歷史財團) : 東아시아 歴史에서의 相互認識 - 신라 崔致遠과 송 徐兢의 견문기를 중심으로 - Discussant 李銀子 (全北大) 吳炳守 (成均館大) 14
15:00~18:30 Session II Panel 2-2(White Heron Room) 東 아시아의 戰 爭 과 和 解 Moderator 吳 密 察 ( 臺 灣 成 功 大 ) Panelist-1 袁 成 毅 ( 杭 州 師 範 大 學 ) : 日 本 的 戰 爭 責 任 與 戰 后 賠 償 責 任 (일본의 전쟁책임과 전후배상책임) Panelist-2 姜 義 華 ( 上 海 複 旦 大 ) : 朝 鮮 戰 爭 爆 發 的 不 同 曆 史 記 述 與 東 亞 國 際 格 局 的 變 遷 (한국전쟁 발발에 대한 다른 역사기술과 동아시아 국제정세 변화) Panelist-3 楊 典 錕 ( 國 立 臺 灣 大 學 歷 史 學 系 ) : 日 韓 中 關 係 與 日 華 關 係 的 連 動 - 韓 國 併 合 前 的 顧 問 政 治 對 日 華 二 十 一 條 的 影 響 (일 한관계와 일 중관계의 연동 - 한국 합병 전 고문정치 가 대중국 21조에 미친 영향) Panelist-4 朴 泰 均 (서울 大 ) : 韓 国 戦 争 베트남 戦 争 의 記 憶 과 参 戦 의 悪 循 環 Discussant 柳 鏞 泰 (서울 大 ) 朴 敬 石 ( 仁 川 大 ) 15
2010. 11. 6(Sat) 10:30~13:00 Session III Panel 3-1(Swan Room) 東아시아 相互理解와 平和 Moderator 步平 (中国社会科学院 近代史硏究所) Panelist-1 家永真幸 (東京大学大学院) : 日中友好とパンダ神話 (일 중 우호와 팬더신화) Panelist-2 李长莉 (中国社会科学院 近代史研究所) : 甲午战争前日本考察者的 中国叙述 - 中华文教衰亡与东亚秩序的转折 (갑오전쟁(청일전쟁)이전 일본 관찰자의 중국서술 - 중국 문화, 교육의 쇠락과 동아시아질서의 전환 -) Panelist-3 裵城浚 (東北亞歷史財團) : 東아시아 民衆史의 可能性 - 한ㆍ일 민중사의 遭遇 - Discussant 咸東珠 (梨花女大) 裵亢燮 (高麗大) 16
10:30~13:00 Session III Panel 3-2(White Heron Room) 東 아시아의 平 和 構 想 과 思 想 的 摸 索 Moderator 金 度 亨 ( 延 世 大 ) Panelist-1 王 新 生 ( 北 京 大 ) : 椭 圆 平 衡 和 平 合 作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타원 균형 평화 협력 - 오히라 마사요시( 大 平 正 芳 )의 종합안전보 장 전략 -) Panelist-2 徐 志 民 ( 中 國 社 會 科 學 院 近 代 史 研 究 所 ) : 中 國 人 眼 中 的 日 本 和 平 運 動 - 以 人 民 一 報 的 報 道 爲 中 心 - (중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평화운동 - 인민일보 의 보도를 중심으로-) Panelist-3 辛 珠 柏 ( 延 世 大 ) : 韓 國 近 現 代 平 和 運 動 論 探 索 - 民 族 運 動 과 民 主 化 運 動 을 中 心 으로 - Discussant 金 喜 坤 ( 安 東 大 ) 朴 淳 遠 ( 成 均 館 大 ) 14:00~18:00 Session IV 14:00~16:30 (Swan Room, White Heron Room) Round Table Discussion Moderator 步 平 ( 中 国 社 会 科 学 院 近 代 史 硏 究 所 ), 白 永 瑞 ( 延 世 大 ) 16:30~18:00 Discussion and Closing Moderator 白 永 瑞 ( 延 世 大 ) 17
목 차 Session Ⅲ Panel 3-1 日 中 友 好 とパンダ 神 話 / 家 永 真 幸 19 甲 午 战 争 前 日 本 考 察 者 的 中 国 叙 述 : 中 华 文 教 衰 亡 与 东 亚 秩 序 的 转 折 / 李 长 莉 51 동아시아 民 衆 史 의 가능성: 한ㆍ일 민중사의 조우 / 裵 城 浚 93 Panel 3-2 椭 圆 平 衡 和 平 合 作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 王 新 生 129 中 国 人 眼 中 的 日 本 和 平 运 动 - 以 人 民 日 报 的 报 道 为 中 心 / 徐 志 民 179 한국 근현대 평화운동론 탐색 -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 辛 珠 柏 231 18
日 中 友 好 とパンダ 神 話 家 永 真 幸 ( 東 京 大 学 大 学 院 )
日 中 友 好 とパンダ 神 話 日 中 友 好 とパンダ 神 話 家 永 真 幸 ( 東 京 大 学 大 学 院 ) はじめに 1. 戦 時 日 本 とパンダ 2. 戦 後 日 本 とパンダ 3. 天 皇 訪 欧 とパンダ 4. 日 中 復 交 とパンダ おわりに 参 考 資 料 < 目 次 > はじめに 韓 国 の 方 々には 理 解 し 難 いかもしれないが パンダという 動 物 は 日 本 において 特 別 な 人 気 を 誇 っている 日 本 に 初 めてパンダが 来 たのは1972 年 9 月 29 日 日 中 国 交 正 常 化 に 際 して 田 中 角 栄 首 相 が 中 国 政 府 から カンカン と ランラン の2 頭 の 贈 呈 を 受 けたときである この 2 頭 は 東 京 の 上 野 動 物 園 に 迎 えられ 当 時 幼 少 期 で 現 在 40~50 才 くらいの 日 本 人 には 克 明 に 記 憶 されているであろう 空 前 のパンダ ブームを 巻 き 起 こした パンダの 入 園 を 境 に 上 野 動 物 園 の 開 園 日 1 日 あたりの 入 園 者 数 は 約 1 万 人 から2 万 人 に 倍 増 している( 東 京 都 編 1982: 99 頁 ) そのため 日 本 社 会 にとってパンダとは 一 般 に 日 中 友 好 の 象 徴 であった( 朝 日 新 聞 1980 年 8 月 30 日 ) 2011 年 春 には 新 しいパンダが 上 野 動 物 園 に 来 ることが 先 ご ろ 決 定 されたが これも 元 をたどれば2008 年 5 月 毒 餃 子 事 件 や チベット 問 題 をめぐり 日 本 社 会 において 中 国 批 判 が 噴 出 する 中 で 中 国 の 胡 錦 濤 国 家 主 席 が 訪 日 を 果 た した 際 日 中 両 国 国 民 の 友 好 的 感 情 を 増 進 するため に 提 供 することが 発 表 されたも のである 1) ( 日 本 国 外 務 省 2008) 2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しかし パンダとはそもそも 日 中 戦 争 期 の1941 年 11 月 中 国 国 民 党 による 国 際 宣 伝 戦 略 の 一 環 としてアメリカに 贈 呈 されたことを 契 機 に 中 国 のシンボル となった 動 物 である ( 家 永 2009) 抗 日 戦 争 に 功 績 のあった 動 物 がなぜ その30 年 後 には 日 中 友 好 の 象 徴 として 日 本 社 会 に 受 け 入 れられることになったのだろうか この 問 いは 東 アジア における 歴 史 叙 述 と 平 和 の 関 係 を 考 える 上 での ひとつの 事 例 となりうると 考 え る そこで 本 稿 は 文 献 資 料 および 一 部 インタビューに 基 づき 日 本 社 会 がパンダという 動 物 を 認 知 していく 歴 史 的 経 緯 を 明 らかにすることを 通 じて なぜ1972 年 にパンダの 抗 日 戦 争 の 象 徴 としての 側 面 が 注 目 されなかったのかを 分 析 する その 上 で パンダ を 贈 る という 行 為 が 今 日 に 至 る 日 中 関 係 にとっていかなる 重 要 性 を 持 っているのかについ ても 若 干 の 考 察 を 加 えたい 1. 戦 時 日 本 とパンダ 今 でこそ 日 本 でパンダという 動 物 を 知 らない 者 はほとんどいないと 思 われるが 1972 年 にパンダ ブームが 起 こる 以 前 は 日 本 においてパンダは 動 物 学 者 などのごく 一 部 の 特 殊 な 背 景 を 持 った 人 々にしか 知 られていなかった 1972 年 以 前 からパンダのことを 知 っていた 代 表 的 な 人 物 は テレビ タレントの 黒 柳 徹 子 である 黒 柳 は 熱 狂 的 なパンダ ファンであることをテレビなどでたびたび 公 言 してい る 現 在 は 中 国 の 臥 龍 中 国 パンダ 保 護 研 究 センター の 事 業 を 支 援 するために 設 けら れた 窓 口 機 関 である 日 本 パンダ 保 護 協 会 の 名 誉 会 長 として 日 本 の 民 間 に 援 助 を 呼 びかけるシンボルとしての 役 割 も 担 っている 黒 柳 がこれほどまでパンダに 献 身 的 になったきっかけは 古 く 戦 前 の 経 験 に 遡 る パン ダは 中 国 内 陸 部 のごく 限 られた 地 域 にしか 生 息 しない 珍 獣 であるが 1936 年 に 生 きたパ ンダ スーリン がアメリカに 渡 ったのが 発 端 となり 1930 年 代 後 半 の 英 米 では 世 界 史 上 初 のパンダ ブームが 起 こっていた このブームのさなか 当 時 小 学 校 低 学 年 であった 黒 柳 は カメラマンであった 叔 父 がアメリカから 買 って 帰 ったパンダのぬいぐるみを 受 け 取 り 以 来 その 魅 力 の 虜 となった( 黒 柳 岩 合 2007: 48 49 頁 ) 1) 中 国 政 府 はワシントン 条 約 (CITES)に 従 い1980 年 代 以 降 パンダの 国 外 贈 呈 を 行 っておら ず このパンダは 学 術 研 究 の 名 目 で 貸 与 されるものである 22
日 中 友 好 とパンダ 神 話 当 時 日 本 の 新 聞 メディアにおいてパンダが 取 り 上 げられるのは 非 常 に 希 であった データベースを 利 用 して 検 索 した 限 りでは 1937 年 8 月 8 日 付 朝 日 新 聞 夕 刊 1938 年 5 月 1 日 付 読 売 新 聞 1940 年 6 月 30 日 付 読 売 新 聞 にパンダ 関 連 記 事 が 見 られるが いずれもパンダを 可 愛 らしい 動 物 として 紹 介 している しかし この 後 1941 年 11 月 9 日 に 宋 美 齢 がニューヨークの 動 物 園 にパンダのつがいを 贈 呈 した 際 には 同 年 11 月 12 日 付 読 売 新 聞 および11 月 26 日 付 朝 日 新 聞 はともに 珍 獣 による アメリカ 人 のご 機 嫌 取 り という 批 判 的 なトーンでこれを 報 じている このように パンダが 中 国 の 抗 日 戦 争 における 国 際 宣 伝 に 利 用 されたことは 日 本 の 新 聞 メディアにおいて 認 識 されていなかったわけではなかった しかし 後 にテレビや 著 作 を 通 じてパンダの 可 愛 さを 宣 伝 することになる 黒 柳 徹 子 が 抗 日 宣 伝 に 使 われる 以 前 から この 動 物 のファンになっていたという 歴 史 の 偶 然 も 手 伝 い 戦 後 の 日 本 においてパンダの 反 日 的 側 面 が 注 目 されることはなかった 2. 戦 後 日 本 とパンダ 戦 後 日 本 において 初 めてパンダを 大 きく 取 り 上 げたのは 東 映 が 製 作 した 日 本 初 のカ ラー 長 編 アニメ 映 画 白 蛇 伝 であると 考 えられる この 映 画 には 主 人 公 の 友 人 としてパ ンダのキャラクターが 登 場 する 東 映 アニメーション 株 式 会 社 顧 問 (2009 年 9 月 インタ ビュー 時 )の 吉 岡 修 の 記 憶 によれば このパンダは 当 時 子 どもたちの 間 でかなり 評 判 と なったという 2) そのことを 裏 付 けるように インターネット 上 ではこの 映 画 に 登 場 するパンダ に 言 及 した 映 画 ファンの 回 想 が 散 見 される この 映 画 の 主 題 となっている 白 蛇 伝 とは 古 くから 中 国 各 地 で 芝 居 小 説 の 題 材 として 人 気 を 博 してきた 物 語 である 基 本 となるストーリーは 蛇 が 変 身 して 美 女 となり 若 い 男 と 恋 に 落 ちる というもので 舞 台 は 美 観 で 知 られる 杭 州 の 西 湖 および 蘇 州 である ( 南 條 2000: 16 29 頁 ) 両 地 はいずれも 長 江 下 流 域 の 上 海 や 南 京 に 近 い 都 市 であ り パンダが 発 見 されていた 四 川 省 の 奥 地 とはだいぶ 離 れた 土 地 である つまり もともと のストーリーはパンダと 特 に 関 係 はない では なぜこの 映 画 は 日 本 でほとんど 知 られていなかったパンダをわざわざ 映 画 の 主 要 キャラクターとして 抜 擢 したのか この 映 画 は 当 初 製 作 費 を 香 港 の 映 画 会 社 と 折 半 す 2) 2009 年 9 月 1 日 に 東 映 アニメーション 大 泉 スタジオにて 行 ったインタビューによる 2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る 計 画 であった そのため 東 映 本 社 はシンガポールや 香 港 などアジアの 市 場 を 意 識 する よう 製 作 現 場 に 指 示 を 出 していた また この 映 画 の 美 術 を 担 当 した 漫 画 家 の 岡 部 一 彦 は 日 本 で 最 初 に 作 るものだけに サルまねだけはしたくない という 意 識 から から みの 動 物 も 東 洋 独 特 のものにしようと 決 心 していた という( 杉 山 1978: 31 頁 ) 誰 の アイデアであるかまでは 特 定 できていないものの 以 上 の 背 景 からパンダの 起 用 が 決 まっ たものと 考 えられる なお このとき 新 人 の 動 画 スタッフであった 大 塚 康 生 は 個 人 的 な 事 情 から 偶 然 パン ダという 動 物 の 存 在 を 知 っていた 大 塚 は 後 に ルパン 三 世 :カリオストロの 城 の 作 画 監 督 をはじめ 数 々の 作 品 を 手 がけることになる 著 名 なアニメーターであるが 1956 年 に この 職 業 に 就 く 以 前 は 厚 生 省 の 麻 薬 取 締 官 事 務 所 に 勤 務 していた この 職 場 では 朝 鮮 語 か 韓 国 語 の 習 得 を 求 められていたため 大 塚 は 天 津 から 来 た 中 華 料 理 店 主 から 中 国 語 を 習 っていたのだが その 際 にパンダという 動 物 の 話 を 聞 いたことがあったというのであ る 3) 中 国 では1955 年 より 首 都 の 北 京 動 物 園 においてパンダの 飼 育 展 示 が 始 まってお り この 時 期 はちょうど 中 国 でパンダへの 認 知 度 が 高 まりつつあった 時 期 にあたる 映 画 白 蛇 伝 のパンダは 確 かに 人 気 を 集 めたものの パンダ ブーム と 呼 べ るような 現 象 はまだ 日 本 では 起 こっていなかった 白 蛇 伝 に 続 いて 日 本 人 のパンダに 対 する 関 心 を かきたてる ことになったのは ロンドン 動 物 園 野 のパンダ チチ とモスク ワ 動 物 園 のパンダ アンアン の 間 で1966 年 から1969 年 にかけて 行 われた 繁 殖 のた めの 一 連 の お 見 合 い 報 道 であった 当 時 竹 のカーテン と 呼 ばれたように 社 会 主 義 国 家 である 中 華 人 民 共 和 国 の 情 報 は 日 本 に 入 って 来 づらかったため 日 本 人 の 耳 目 に 触 れやすいパンダは 大 陸 中 国 のパンダではなく むしろ 距 離 的 には 遠 いロンドンやモ スクワのパンダだったのである 黒 柳 徹 子 がパンダを 初 めて 目 にしたのも 1967 年 にロン ドン 動 物 園 を 訪 問 したときである 黒 柳 岩 合 2007: 58 頁 ここで パンダの 話 題 性 に 敏 感 にも 反 応 したメディアがあった 女 性 ファッション 誌 an an である an an は 新 しいスタイルの 豪 華 なおしゃれ 雑 誌 として 平 凡 社 ( 今 日 のマガジンハウス 社 )から1970 年 に 創 刊 された 対 抗 馬 として 翌 1971 年 に 創 刊 された non no とともに その 記 事 に 影 響 された 若 い 女 性 が 旅 行 に 出 かけるという い わゆる アンノン 族 と 呼 ばれる 社 会 現 象 を 起 こすなど 当 時 大 変 な 影 響 力 を 持 ったこと で 知 られている an an の 創 刊 準 備 号 として 発 行 された 平 凡 パンチ 臨 時 増 刊 女 性 版 1970 年 2 3) 2009 年 9 月 1 日 に 東 映 アニメーション 大 泉 スタジオにて 行 ったインタビューによる 24
日 中 友 好 とパンダ 神 話 月 20 日 号 によると an an という 誌 名 は 一 般 公 募 の 中 からスタッフによって 選 ばれたも のである ところが この 新 女 性 誌 の 創 刊 スタッフであった 赤 木 洋 一 が 後 に 暴 露 したところ によれば この 誌 名 公 募 は 出 来 レース である 真 相 は 何 年 も 前 から ファッショナ ブルで 革 新 的 な 女 性 誌 の 開 発 に 情 熱 を 傾 けてきた 当 時 平 凡 出 版 社 専 務 の 清 水 達 夫 が ペアリング 報 道 で 話 題 となっていた パンダのアンアン をタイトルとマスコット キャ ラクターに 使 用 すると 決 めていたというのである( 赤 木 2007: 27 頁 ) このように 日 本 でパンダ ブームが 起 こる 前 である1970 年 の 段 階 で パンダは ファッション という 観 点 から 新 創 刊 の 女 性 誌 によって 着 目 され 日 本 社 会 に 広 く 紹 介 されることになった 3. 天 皇 訪 欧 とパンダ 以 上 のように 日 本 において 徐 々にパンダに 対 する 関 心 が 高 まりつつある 中 日 本 におい て パンダ ブーム を 引 き 起 こす 決 定 打 となったのは1971 年 の 昭 和 天 皇 訪 欧 であっ た 1971 年 9 月 27 日 から 同 年 10 月 14 日 にかけ 昭 和 天 皇 はベルギー イギリス 西 ドイ ツへの 公 式 訪 問 に 加 え 非 公 式 訪 問 としてデンマーク オランダ 休 養 先 としてフラン ス スイス 給 油 地 としてアメリカのアンカレジを 回 る 欧 州 訪 問 の 旅 に 赴 いた これは 在 位 中 の 天 皇 による 史 上 初 めての 海 外 渡 航 でもあった この2 週 間 強 の 旅 程 の 中 で ロンドン に 滞 在 中 の1971 年 10 月 7 日 天 皇 はロンドン 動 物 園 に 立 ち 寄 った 昭 和 天 皇 の 侍 従 長 であった 入 江 相 政 の 記 録 によると この 日 の 動 物 園 での 滞 在 時 間 は 当 初 の 予 定 を20 分 も オーバーした 当 時 の 新 聞 報 道 を 見 る 限 り この 延 長 の 原 因 はパンダである 朝 日 新 聞 (1971 年 10 月 8 日 )によれば 天 皇 は 東 京 をお 出 になる 前 からこの 動 物 に 大 変 興 味 をお 持 ちになり 資 料 を 集 めて 下 調 べをなさっていた という そして パ ンダの チチ を 飼 育 するロンドン 動 物 園 は 来 園 した 天 皇 への 配 慮 として 絶 食 させた り オリの 中 に 水 をまいて チチが 外 に 出 るようしむけた とされ パンダをよく 見 ることがで きた 天 皇 は 大 変 満 足 し 熱 心 な 学 者 ぶり を 発 揮 されていた と 報 じられている ( 読 売 新 聞 1971 年 10 月 8 日 ) この 天 皇 とパンダとの 対 面 は アメリカの シカゴ トリビューン 紙 (Chicago Tribune)によって Hirohito Smiles と 題 して 取 り 上 げられている 同 記 事 は まず 冒 頭 で 海 外 を 訪 問 する 初 めての 日 本 の 天 皇 として9 月 26 日 に 彼 が 東 京 を 発 って 以 来 写 真 に 写 る 天 皇 はきまって 笑 っておらず 謹 厳 な 顔 つきで 生 真 面 目 に 公 務 を 遂 行 していた 2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Sinece(Since) he left Tokyo Sept. 26 to become the first Japanese reigning monarch to journey abroad, the usual picture has shown an unsmiling, sober faced emperor solemnly going about his official duties. と 指 摘 した そして 末 尾 において もしかすると 天 皇 は 私 たちとそう 変 わらないのか もしれない 私 たちはみな パンダのこっけいさには 笑 ってしまう パンダは 共 産 中 国 のも のなので もしかすると 北 京 はニクソン 訪 中 を 盛 り 上 げるために 何 頭 か 演 出 するかもしれな い Perhaps an emperor is not so different from the rest of us. All of us have smiled at the antics of pandas. Since the come from Red China, maybe Peking will produce a few of them to liven things up during Mr. Nixon s visit. と 結 んでいる(Chicago Tribune, October 11, 1971: 16) こ の 記 事 は1971 年 10 月 13 日 付 読 売 新 聞 の 世 界 の 論 調 欄 にも 一 部 転 載 された この1971 年 の 天 皇 訪 欧 は かつて 日 本 軍 の 捕 虜 となった 人 々をはじめとする 各 国 の 戦 争 被 害 者 からの 反 発 が 懸 念 される 中 で 行 われたものであった 実 際 に 日 本 国 内 でも 学 生 による 反 対 運 動 があったほか 訪 問 先 のイギリスやオランダでも 抗 議 行 動 が 起 こってい る そのような 状 況 下 この 訪 問 の 準 備 にあたっては 外 務 省 を 中 心 として ありのままの 天 皇 陛 下 を 各 国 に 知 らせるPR という 目 的 が 重 視 された そこで 訪 問 各 国 で 配 布 する 報 道 資 料 では 人 間 天 皇 を 強 調 されたほか 各 国 滞 在 中 の 訪 問 先 には 動 植 物 園 や 図 書 館 が 組 み 込 まれ 生 物 研 究 者 としての 学 者 天 皇 を 演 出 する 計 画 となっていた ( 朝 日 新 聞 1971 年 9 月 16 日 ) ロンドンにおけるパンダとの 面 会 も このような 計 画 の 一 部 として 旅 程 に 組 み 込 まれたものと 考 えられる 筆 者 はかつて 1941 年 11 月 に 宋 美 齢 がアメリカにパンダを 贈 呈 した 目 的 とは 単 に 二 国 間 の 友 好 関 係 を 演 出 するだけでなく パンダを 贈 ることを 通 じて 中 国 が 欧 米 流 の 動 物 保 護 思 想 を 理 解 していることを 表 現 し ひいては 南 京 国 民 政 府 の 文 明 性 を 示 すことにあったと 指 摘 した( 家 永 2009) 換 言 すれば このパンダ 贈 呈 事 業 を 担 当 した 中 国 国 民 党 中 央 宣 伝 部 国 際 宣 伝 処 が 発 見 したのは モノを 贈 ること それ 自 体 の 重 要 性 ではなく 国 際 社 会 において モノに 対 する 視 線 を 共 有 していることを 示 すこと の 重 要 性 であった こ の 議 論 に 照 らすと 1971 年 10 月 の 天 皇 とパンダの 対 面 は パンダに 対 する 視 線 を 国 際 社 会 と 共 有 していること を 通 じて 日 本 の 天 皇 は 国 際 社 会 と 価 値 観 を 共 有 してい る というメッセージを 対 外 的 に 発 信 する 狙 いがあったと 見 る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か いずれにしても この 天 皇 訪 英 報 道 が 引 き 金 となり 日 本 には 町 に 縫 いぐるみがあふれ るような パンダ ブーム がおとずれた( 読 売 新 聞 1972 年 2 月 19 日 ) このよ 26
日 中 友 好 とパンダ 神 話 うに 1971 年 10 月 にはすでにパンダは 反 日 のシンボルとは 認 識 されておらず むし ろ 反 日 を 和 らげるような 目 的 に 利 用 されてさえいたのである 4. 日 中 復 交 とパンダ 1972 年 2 月 のニクソン 訪 中 に 際 し 中 国 政 府 はアメリカにひとつがいのパンダを 贈 呈 し た 1949 年 の 中 華 人 民 共 和 国 成 立 以 降 パンダの 贈 呈 を 受 けたことがあったのはソ 連 と 北 朝 鮮 のみであったため このアメリカへの 贈 呈 は 中 国 の 対 外 戦 略 の 転 換 を 象 徴 するもの であった そのため 同 年 9 月 に 日 本 にパンダが 贈 られるのも これと 同 じ 文 脈 であると 理 解 することは 可 能 である しかし アメリカでは1930 年 代 から 一 貫 してパンダの 人 気 があり 1949 年 以 降 も 各 動 物 園 が 誘 致 を 試 みていた 中 で 1972 年 の 米 中 和 解 によって 約 20 年 ぶりにパンダを 迎 える ことになったのに 対 し 日 本 はそのようなパンダに 関 する 歴 史 的 文 脈 を 有 していない その ため アメリカにとっては かつて1941 年 に 友 好 の 証 として 贈 られたパンダが 不 在 であることは 中 国 との 非 友 好 を 象 徴 しており 1972 年 のパンダ 贈 呈 が 米 中 の 友 好 を 演 出 することは 論 理 的 に 自 然 であったのに 対 し 日 本 にとってパンダが 友 好 の 象 徴 であることは 上 述 のパンダが 一 般 大 衆 に 受 け 入 れられていく 過 程 にも 表 れてい るとおり 必 ずしも 自 明 であったとは 言 えない そこで 以 下 では 日 本 において 最 終 的 にい かにしてパンダは 友 好 の 象 徴 と 見 なされるようになったのかを 考 察 したい パンダへの 関 心 が 浅 かった 日 本 において 具 体 的 にその 誘 致 の 動 きが 見 られるように なるのは1960 年 代 後 半 からのようである 中 国 外 交 部 が 公 開 している 文 書 を 見 ると 上 野 動 物 園 は1954 年 2 月 日 中 および 日 ソ 貿 易 を 行 っていた 東 京 品 川 の 古 鷹 産 業 社 に 仲 介 を 依 頼 し 中 国 に 対 し 動 物 交 換 の 申 し 入 れを 行 っているが このとき 上 野 動 物 園 は 中 国 に 対 しパンダを 要 求 していない( 中 華 人 民 共 和 国 外 交 部 档 案 館 105 00271 02( 1)) もっとも この1954 年 というのはまだ 北 京 動 物 園 すらパンダの 飼 育 を 開 始 していな い 時 期 であり たとえ 上 野 動 物 園 の 動 物 専 門 家 の 中 にパンダに 関 心 のある 者 がいたとして も 中 国 にパンダの 交 換 を 要 求 するのは 現 実 味 のある 選 択 肢 ではなかったとも 考 えられ る しかし それから10 年 ほど 経 った1960 年 代 半 ばになると 日 本 の 動 物 園 は 明 らかにパ ンダ 誘 致 に 積 極 的 な 姿 勢 を 示 すようになる 1966 年 度 より 上 野 動 物 園 の 第 3 代 園 長 に 就 任 した 今 泉 英 一 は 園 長 就 任 の 弁 の 中 で 世 界 でもソ 連 と 中 国 の 動 物 園 にしかいない 2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ジャイアントパンダ(シロクロのまだらグマ)をぜひ 中 国 と 交 渉 して 上 野 に 入 れたい と 抱 負 を 語 っている( 読 売 新 聞 1966 年 4 月 2 日 ) この3 年 後 の1969 年 には 横 浜 の 京 浜 鳥 獣 貿 易 社 の 社 長 である 河 野 通 敬 という 人 物 が パンダを 日 本 に 贈 ってくれるよう 中 国 政 府 と 交 渉 している 河 野 は1969 年 2 月 中 国 における 動 物 の 研 究 と 動 物 園 見 学 という 名 目 で まだ 日 本 と 国 交 のない 中 国 へ の 単 独 渡 航 が 許 可 された 河 野 は 広 州 上 海 南 京 北 京 の 動 物 園 をまわり それぞ れの 動 物 園 でパンダを 見 た 続 いて 河 野 は 当 時 北 京 で 日 中 文 化 交 流 協 会 の 常 任 理 事 であった 西 園 寺 公 一 の 紹 介 で 中 国 外 交 部 の 王 暁 雲 アジア 司 長 に 会 い ぜひ 中 国 のパンダを 日 本 の 子 供 たちに 見 せてやって と 頼 んだ これに 対 し 王 暁 雲 は 現 在 の 佐 藤 政 権 下 ではダメ と 河 野 の 要 請 を 拒 否 したという( 読 売 新 聞 1972 年 11 月 15 日 ) 日 本 におけるパンダの 認 知 が 高 まった 天 皇 訪 欧 直 後 の1971 年 10 月 末 から11 月 上 旬 にかけ 美 濃 部 亮 吉 東 京 都 知 事 が 北 朝 鮮 および 中 国 を 訪 問 している 上 野 動 物 園 の 中 川 志 郎 飼 育 課 長 が1971 年 1 月 11 日 付 読 売 新 聞 の 取 材 に 答 えたところによると この 訪 中 の 際 美 濃 部 はパンダの 譲 渡 を 中 国 側 に 申 し 入 れたのだが 数 が 少 ない と 断 ら れたという このときの 美 濃 部 訪 中 は 佐 藤 栄 作 政 権 の 内 閣 官 房 長 官 であった 自 民 党 の 保 利 茂 が 日 中 国 交 正 常 化 を 打 診 する 書 簡 を 美 濃 部 に 託 した いわゆる 保 利 書 簡 事 件 で 知 られている 周 恩 来 と 会 談 した 美 濃 部 はこのとき 国 交 正 常 化 は 佐 藤 さんじゃだ めだ という 印 象 を 受 けたと 後 に 語 っている( 時 事 通 信 社 政 治 部 編 1972: 77 78 頁 ) この 後 1972 年 1 月 10 日 には 北 京 動 物 園 を 見 学 した 社 会 党 衆 議 院 議 員 の 土 井 たか 子 もパンダを 日 中 友 好 の 使 者 として 日 本 に 譲 ってほしい と 申 し 入 れているが 北 京 動 物 園 側 は 今 後 の 話 の 進 展 しだい と 色 よい 返 事 をしていない( 読 売 新 聞 1971 年 1 月 11 日 ) これらの 経 緯 に 鑑 みると 日 本 のメディアおよび 政 界 において パンダが 日 本 に 来 な いこと は 次 第 に 佐 藤 政 権 下 の 日 本 とは 国 交 正 常 化 に 応 じられないと 中 国 側 が 意 思 表 示 していること の 具 体 的 な 表 れとして 認 識 されていったのではないかと 考 えられる ニ クソン 訪 中 によりアメリカにパンダが 贈 呈 された 直 後 の1972 年 3 月 6 日 付 読 売 新 聞 夕 刊 には パンダ アメリカへ/ 子 供 日 本 には 来 ないの?/ママ 佐 藤 さんがしっかりしな いからダメよ という 読 者 投 稿 のジョークも 掲 載 されている この 段 において 日 本 の 一 般 大 衆 にとっても 佐 藤 政 権 が 中 国 政 府 から 拒 絶 されている という 事 態 が パンダの 不 28
日 中 友 好 とパンダ 神 話 在 という 形 で 象 徴 されるようになっていたのである おわりに 以 上 でみてきたように 1972 年 にパンダが 初 来 日 するまでの 間 日 本 社 会 はその 抗 日 戦 争 の 象 徴 としての 側 面 にまったく 留 意 することなくこの 動 物 を 受 容 してきた すな わち 後 にパンダの 広 告 塔 となるテレビ タレントの 黒 柳 徹 子 は 偶 然 にもパンダが 反 日 宣 伝 に 使 われる 以 前 からのパンダ ファンであった 1958 年 のアニメ 映 画 白 蛇 伝 にパンダが 登 場 したのは アジアの 市 場 で 売 るという 外 貨 獲 得 の 目 的 のためであっ た 1970 年 創 刊 の 女 性 誌 an an がその 誌 名 をモスクワのパンダから 取 ったのは 流 行 という 観 点 からであった そして 日 本 にパンダ ブームをもたらすきっかけと なった1971 年 の 天 皇 訪 英 において パンダはむしろ 反 日 ムードを 和 らげる 役 割 を 期 待 された 天 皇 訪 欧 によって 一 気 に パンダ 待 望 論 が 高 まると 1940 年 代 には 抗 日 戦 争 のシンボルであったという 過 去 とは 無 関 係 に 日 本 社 会 はむしろパンダの 不 在 を 日 中 間 の 非 友 好 の 象 徴 として 受 け 止 めるようになった 不 在 が 非 友 好 を 意 味 するようになった ことの 論 理 的 帰 結 として 1972 年 9 月 に 田 中 角 栄 が 贈 呈 を 受 けたパンダは 日 中 友 好 の 象 徴 として 日 本 社 会 に 迎 えられた これが パンダが 日 中 友 好 の 象 徴 となった 歴 史 的 経 緯 である 最 後 に このようにして 歴 史 的 に 形 成 された 日 中 友 好 の 象 徴 としての パンダを 贈 る という 行 為 が 今 日 に 至 る 日 中 関 係 にとっていかなる 重 要 性 を 有 しているかについ て 今 後 の 検 討 課 題 として2 点 の 仮 説 を 述 べて 本 稿 の 結 びとしたい まずひとつには パンダが 日 中 友 好 の 象 徴 となったことにより 中 国 政 府 は 日 本 社 会 に 向 けて パンダの 在 / 不 在 を 通 じて 日 本 の 政 権 に 対 する 支 持 / 不 支 持 の 意 思 表 示 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と 考 えられる これは 中 国 政 府 にとって 民 意 が 国 政 に 反 映 される 国 家 に 対 する 国 際 宣 伝 としては 非 常 に 利 用 価 値 が 高 いものであるように 思 われる もっとも 1972 年 12 月 の 衆 議 院 総 選 挙 において 日 中 国 交 推 進 議 員 として 活 躍 し パン ダのぬいぐるみを 抱 いて 運 動 した 古 井 喜 実 が 落 選 しているように 日 中 友 好 運 動 は 必 ず しも 国 民 の 投 票 行 動 につながるものではない(ㄴ 2002: 184 185 頁 ) それでも パ ンダは 日 本 の 一 般 大 衆 が 中 国 政 府 の 対 日 評 価 を 知 るためのひとつのバロメーターとして 機 能 しているという 点 は 1970 年 代 初 頭 から2010 年 の 今 日 まで 引 き 継 がれているように 思 われる 2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ふたつめに これは 本 稿 では 十 分 に 議 論 できていないことであるが パンダには 日 中 両 国 政 府 にとって 都 合 の 悪 いニュースを 報 道 させない 効 果 があると 考 えられる パン ダは 大 衆 の 耳 目 を 引 くため マスメディアにおいて 大 きく 取 り 上 げられることが 多 い これは 1930 年 代 のアメリカから 一 貫 していることである そのため 中 国 政 府 や 日 本 政 府 にとっ て 都 合 の 悪 いニュース がある 時 期 にパンダの 贈 呈 が 行 われれば マスメディアがそ の 都 合 の 悪 いニュース に 割 く 紙 幅 や 時 間 は 本 来 よりも 縮 小 することになる 1972 年 に 日 中 国 交 正 常 化 は 日 華 断 交 を 伴 っていたため 日 本 国 内 にも 多 くの 反 対 派 がいたが パンダ ブーム はそれら 日 中 国 交 正 常 化 にともなう 犠 牲 という 側 面 が 報 道 されるのを 結 果 的 に 抑 制 したと 想 像 される これは 当 然 日 中 双 方 の 政 権 担 当 者 とって 有 利 なことであ る 重 要 な 外 交 上 の 政 策 転 換 や 相 手 国 への 譲 歩 に 際 して その 負 の 側 面 が 国 民 に 知 れ 渡 るのを 抑 制 するという パンダ 贈 呈 の 有 するこのような 効 果 も 2010 年 の 今 日 にも 引 き 継 がれていると 考 えられる このようなパンダの 役 割 は 一 面 では 一 般 大 衆 の 目 を 欺 くとい う 性 質 を 持 つ しかし もしこの 性 質 が 二 国 間 の 国 民 感 情 が 過 度 に 対 立 するのを 防 ぐよう に 作 用 しているのであれば それは 平 和 に 寄 与 しているとも 評 価 すべきなのかもしれな い この 問 題 については 容 易 に 結 論 を 出 しかねるので 今 後 の 検 討 課 題 としたい 参 考 資 料 赤 木 洋 一 (2007) アンアン 1970 平 凡 社 ( 平 凡 社 新 書 358) 朝 日 新 聞 社 編 (1991) 入 江 相 政 日 記 第 4 巻 朝 日 新 聞 社 家 永 真 幸 (2009) 南 京 国 民 政 府 期 における 中 国 パンダ 外 交 の 形 成 (1928 1949) アジア 研 究 55 巻 3 号 黒 柳 徹 子 岩 合 光 昭 (2007) パンダ 通 朝 日 新 聞 社 ( 朝 日 新 書 073) 時 事 通 信 社 政 治 部 編 (1972) 日 中 復 交 時 事 通 信 社 杉 山 卓 (1978) 東 映 動 画 長 編 アニメ 大 全 集 上 巻 徳 間 書 店 東 京 都 編 (1982) 上 野 動 物 園 百 年 史 : 資 料 編 東 京 都 発 行 中 嶋 嶺 雄 (2002) 日 中 友 好 という 幻 想 PHP 研 究 所 (PHP 新 書 230) 南 條 竹 則 (2000) 蛇 女 の 伝 説 : 白 蛇 伝 を 追 って 東 へ 西 へ 平 凡 社 ( 平 凡 社 新 書 059) 日 本 国 外 務 省 (2008) 日 中 両 政 府 の 交 流 と 協 力 の 強 化 に 関 する 共 同 プレス 発 表 (2008 年 5 月 7 日 東 京 にて 発 表 ) 2008 年 7 月 4 日 30
日 中 友 好 とパンダ 神 話 http://www.mofa.go.jp/mofaj/area/china/visit/0805_kp.htmlよりダウンロード < 未 公 刊 資 料 > 中 華 人 民 共 和 国 外 交 部 档 案 館 蔵 (105 00271 02(1)) 日 本 東 京 上 野 動 物 園 要 求 与 我 交 換 動 物 事 的 経 過 3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일ㆍ중우호와 팬더신화 이에나가 마사키 (도쿄대학대학원) 머리말 1. 전시 일본과 판다 2. 전후 일본과 판다 3. 천황 유럽방문과 판다 4. 일ㆍ중 국교정상화와 판다 맺음말 참고자료 <목 차> 머리말 한국 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팬더라는 동물은 일본에서 특별한 인기를 자랑 한다. 일본에 최초로 팬더가 들어온 때는 1972년 9월 29일로 중일국교정상화를 기념하여 중 국 정부가 다나카 가쿠에이( 田 中 角 榮 ) 총리에게 캉캉 과 란란 두 마리를 선물하면서이다. 이 두 마리의 팬더는 도쿄의 우에노동물원에 거처를 정하면서 당시 소년시절을 보냈고 현 재 40~50세 정도의 일본인이라면 선명하게 기억할 공전의 팬더 붐을 일으켰다. 팬더가 동 물원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우에노동물원의 개원일 하루 당 입장객 수는 약 만 명에서 2만 명으로 2배나 증가하였다.(도쿄도 편, 1982:99쪽) 그런 연유로 일본사회에서 팬더란 동물은 일반적으로 중일우호의 상징 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사히신문 1980년 8월 30일) 얼마 전 새로운 팬더가 2011년 봄에 우에노동물 원에 들어올 것이라고 결정되었는데 이도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 5월, 농약만두 파동 과 티베트 문제 를 둘러싸고 일본사회에서 대중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국의 후진 타오 국가주석이 방일했을 때 중일 양국 국민의 우호적 감정을 증진하기 위해 제공하겠 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일본국 외무성, 2008) 1) 하지만 팬더는 본래 중일전쟁기인 1941년 11월, 중국국민당이 국제 선전 전략의 일환으 32
일ㆍ중우호와 팬더신화 로 미국에 선물로 보내면서 중국의 상징 인 된 동물이다.(이에나가, 2009) 항일전쟁에서 공적을 올린 동물이 어찌하여 30년 후에는 중일우호의 상징 으로 일본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되었을까. 이러한 물음은 동아시아의 역사서술 과 평화 의 관계를 고찰하는 데 하나의 사 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고는 문헌자료 및 일부 인터뷰를 바탕으로 일본사회가 팬더라는 동물을 인지해 가는 역사적 경위를 밝힘으로써 어찌하여 1972년에는 팬더가 내포하고 있던 항일전쟁의 상징 으로서의 측면이 부각되지 않았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에 더해 팬더 기증 이라는 행위가 오늘날에 이르는 중일관계에 어떠한 중요성을 갖는지에 대해서도 다소나마 고찰을 덧붙이고자 한다. 1. 전시 일본과 팬더 지금이야말로 일본에서 팬더라는 동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으나 1972년에 팬더 붐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일본에서 팬더는 동물학자 등처럼 극히 일부의 특수한 배경을 가 진 사람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었다. TV 탤런트인 구로야나기 데쓰코( 黒 柳 徹 子 )는 1972년 이전부터 팬더라는 동물을 알고 있던 대표적 인물이다. 구로야나기는 종종 열광적인 팬더 팬이라는 사실을 TV 등에서 공 공연히 얘기했었다. 현재는 중국의 워룽팬더보호연구센터 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창구기관인 일본팬더보호협회 의 명예회장으로 일본 민간에 원조를 촉구하는 상징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구로야나기가 이렇게 열렬히 팬더에 헌신하게 된 계기는 오래 전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경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팬더는 중국 내륙부의 극히 한정된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진기 한 동물인데 1936년 당시, 살아 있는 팬더 수린 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 발단이 되어 1930년대 후반의 영국과 미국에서는 세계 역사상 최초의 팬더 붐이 일었다. 붐이 한창이던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구로야나기는 사진작가였던 숙부가 미국에서 구입한 팬더인형 을 선물 받고 그 이후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구로냐아기 이와고, 2007: 48-49쪽) 당시 일본의 신문지면에 팬더가 등장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 여 검색해 본 바에 따르면 1937년 8월 8일자 아사히신문 석간, 1938년 5월 1일자 요 1) 중국 정부는 워싱턴조약(CITES)에 따라 1980년대 이후 팬더의 국외 기증을 중단했으며 이 팬 더는 학술연구의 명목으로 대여된 것이다. 3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미우리신문, 1940년 6월 30일자 요미우리신문 에서 팬더 관련 기사를 볼 수 있는데 어느 기사건 팬더를 귀여운 동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 후 1941년 11월 9일에 쑹메 이링( 宋 美 領 )이 뉴욕의 동물원에 한 쌍의 팬더를 선물하자 같은 해 11월 12일자 요미우 리신문 및 11월 26일자 아사히신문 은 공통적으로 진기한 동물을 이용해 미국에 아 부하고 있다 라는 비판적인 어조로 이를 전하였다. 이처럼 일본의 신문언론이 중국이 항일전쟁에서 팬더를 국제선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 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훗날 TV와 저서를 통해 팬더의 귀여움 을 홍보하게 되는 구로야나기 데쓰코가 항일선전에 이용되기 이전부터 이 동물의 팬이었다 는 역사적 우연도 이바지한 덕분에 전후 일본에서 팬더의 반일 적 측면은 부각되지 않았다. 2. 전후 일본과 팬더 전후 일본에서 최초로 팬더를 대대적으로 다룬 것은 도에이( 東 映 ) 영화사가 제작한 일 본 최초의 컬러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사전( 白 蛇 傳 ) 이라 보인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주 인공의 친구로 팬더 캐릭터가 등장한다. 주식회사 도에이 애니메이션의 吉 岡 修 고문(2009 년 9월 인터뷰 당시)에 의하면 이 팬더는 당시 아이들 사이에 꽤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2) 이 말을 증명하듯이 인터넷 상에서는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팬더를 언급한 영화 팬의 회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타이틀인 백사전 은 예로부터 중국 각지에서 연극, 소설의 소재로 인기를 모았던 이야기이다. 기본 스토리는 뱀이 미녀로 둔갑하여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 으로 무대는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항저우( 杭 州 )의 시후호( 西 湖 ) 및 쑤저우( 蘇 州 )이다. (난죠, 2000: 16-29쪽) 두 지역은 모두 창장( 長 江 ) 하류지역의 상하이와 난징에 가까운 도시로 팬더가 발견되곤 하던 쓰촨성( 四 川 省 )의 내지와는 꽤 떨어진 지역이다. 즉 원조 스 토리는 팬더와 특별한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왜 이 영화는 일본에서 상당히 낯선 팬더를 일부러 영화의 주요 캐릭터로 발 탁했을까. 영화는 당초 제작비를 홍콩의 영화회사와 반씩 충당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도에 이 본사는 싱가포르와 홍콩 등의 아시아 시장을 겨냥하도록 제작현장에 지시를 내렸다. 그 리고 이 영화의 미술을 담당한 만화가 오카베 가즈히코( 岡 部 一 彦 )는 일본에서 최초로 제 작하는 만큼 어설프게 모방하고 싶지 않다 는 생각에 등장 동물도 동양의 독특한 동물을 2) 2009년 9월 1일에 도에이애니메이션 오이즈미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 따름. 34
일ㆍ중우호와 팬더신화 설정하자고 결심했다 라고 한다.(스기야마, 1978:31쪽)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이상의 배경에서 팬더의 기용이 결정되었다고 보인다. 또한 당시 신인 애니메이터였던 오쓰카 야스오( 大 塚 康 生 )는 개인적으로 우연히도 팬더 라는 동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오쓰카는 훗날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의 작화 감독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제작한 저명한 애니메이터인데 1956년에 이 일에 취업하기 이전에는 후생성의 마약단속관사무소 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 직장에서는 조선어인지 한국 어를 습득해야 해서 오쓰카는 텐진에서 온 중화요리점 주인에게서 중국어를 배웠다. 그 때 팬더라는 동물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3) 중국은 1955년부터 수도의 베이징동물원에서 팬더의 사육과 전시를 시작했으며 이 시기는 마침 중국에서 팬더의 인지도가 점차 높아지 던 때와 겹친다. 영화 백사전 의 팬더는 분명 인기를 모았으나 일본에 팬더 붐 이라 불릴 정도의 현 상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백사전 에 이어 팬더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에 불을 지핀 것 은 런던동물원의 팬더 치치 와 모스크바동물원의 팬더 앙앙 사이에 1966년에서 1969년에 걸쳐 실시된 번식을 위한 일련의 맞선 보도였다. 당시 죽의 장막 이라는 말처럼 사회주의 국가였던 중국의 정보는 일본에 전해지기 어려웠던 탓에 일본인의 이목을 자극한 팬더는 대륙 중국의 팬더가 아닌 오히려 거리적으로 먼 런던이나 모스크바의 팬더였다. 구로야나 기 테쓰코가 팬더를 처음 본 때도 1967년에 런던동물원을 방문했을 때이다.(구라야나기 이와고, 2007: 58쪽) 이 때 팬더의 화제성에 민감하게 반응한 언론이 있었는데 바로 여성패션잡지 an-an 이다. an-an 은 새로운 스타일의 화려하며 세련된 잡지 를 표방하며 헤이본샤( 平 凡 社, 현 매거진하우스사)가 1970년에 창간한 잡지로 대항마인 이듬해 1971년에 창간된 non-no 와 함께 이들 잡지 기사의 영향을 받은 젊은 여성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른바 annon족 이라는 불리는 사회적 현상을 일으키는 등 당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 으로 유명하다. an-an 의 창간준비호로 발행된 헤이본 펀치임시증간 여성판( 平 凡 パンチ 臨 時 増 刊 女 性 版 ) 1970년 2월 20일호에 따르면 an-an 이라는 잡지 이름은 일반 공모 중에서 스태프들이 선정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신 여성잡지의 창간멤버였던 아카기 요이치( 赤 木 洋 一 )가 훗날 폭로한 발언에 의하면 이 잡지이름 공모는 이미 짜인 각본 이었 다. 실은 수년 전부터 유행의 첨단을 걷고 혁신적인 여성지 를 개발하기 위해 정열을 쏟고 있던 당시 헤이본샤 출판사의 시미즈 다쓰오( 清 水 達 夫 ) 전무는 짝짓기로 화제가 되고 있던 3) 2009년 9월 1일에 도에이애니메이션 오이즈미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 따름. 3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팬더의 앙앙 을 타이틀과 마스코트 캐릭터로 사용하기로 이미 결정한 상태였다고 한다.(아 카기, 2007:27쪽) 이와 같이 일본에서 팬더 붐이 일어나기 전인 1970년에 팬더는 패션 이 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창간되는 여성지의 눈에 띠어 일본사회에 널리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3. 천황의 유럽순방과 팬더 이상과 같이 일본에서 서서히 팬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 팬 더 붐 을 일으킨 결정타는 1971년에 이루어진 쇼와천황의 유럽순방이었다. 1971년 9월 27일부터 같은 해 10월 14일에 걸쳐 쇼와천황은 벨기에, 영국, 서독을 공 식 방문하고 이어서 비공식적으로 덴마크, 네덜란드를 그리고 휴양을 위해 프랑스, 스위스 를, 급유지로 미국의 앵커리지를 도는 유럽순방길에 올랐다. 이 순방은 재위 중인 천황에 의한 사상 최초의 해외도항이기도 했다. 이 2주에 걸친 외유 중 런던에 체재 중이던 1971 년 10월 7일, 천황은 런던동물원을 방문하였다. 쇼와천황의 시종장이었던 이리에 스케마사 ( 入 江 相 政 )의 기록에 따르면 이 날 동물원에서 체류했던 시간은 당초 예정되었던 시간을 20분이나 초과하였다. 당시의 신문보도를 보는 한 이 연장의 원인은 팬더였다. 아사히신문 (1971년 10월 8일)에 따르면 천황은 도쿄를 떠나시기 전부터 이 동물 에 대단히 흥미를 가지고 계셨으며 자료를 모으고 직접 조사하셨다 라고 한다. 그리고 팬 더 치치 를 사육하는 런던동물원이 방문하신 천황에 배려하여 단식을 시키거나 우리 안에 물을 뿌려 치치가 밖으로 나오도록 만든 덕분에 팬더를 마음껏 관람하신 천황은 대단히 흡족해 하시며 근면한 학자다운 모습 을 발휘하셨다 라고 보도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1971년 10월 8일) 미국의 시카고트리뷴 지(Chicago Tribune)는 이 천황과 팬더의 대면을 Hirohito Smiles 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하였다. 기사는 우선 모두에서 해외를 순방하는 최초의 일본 천황으로 9월 26일에 그는 도쿄를 출발한 이래 사진을 찍을 때도 어김없이 웃지 않은 채 근엄한 표정으로 착실하게 공무를 수행하였다[Since he left Tokyo Sept. 26 to become the first Japanese reigning monarch to journey abroad, the usual picture has shown an unsmiling, sober-faced emperor solemnly going about his official duties.] 라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어쩌면 천황은 우리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 겠다. 우리들은 모두 팬더의 익살에 웃고 만다. 팬더는 공산국가 중국의 것이므로 어쩌면 베이징은 닉슨의 중국 방문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몇 마리를 연출할 지도 모르겠다 [Perhaps an emperor is not so different from the rest of us. All of us have 36
일ㆍ중우호와 팬더신화 smiled at the antics of pandas. Since the come from Red China, maybe Peking will produce a few of them to liven things up during Mr. Nixon s visit.] 라고 끝 을 맺고 있다(Chicago Tribune, October 11, 1971: 16). 본 기사는 1971년 10월 13일자 요미우리신문 의 세계 논조 란에 일부 게재되었다. 1971년의 천황의 유럽순방은 과거 일본군 포로였던 사람들을 비롯한 각국의 전쟁피해 자들의 반발이 우려되는 가운데 이루어졌던 것이다. 실제로 일본 국내에서도 학생들의 반 대운동이 벌어졌으며 그 밖에 방문국인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도 항의시위가 일어나고 있었 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 순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외무성을 중심으로 있는 그대로의 천황 폐하를 각국에 알리는 PR 이라는 목적이 중시되었다. 이에 방문 각국에 배포된 보도 자료에서는 인간 천황 을 강조하였으며 그 밖에 각국 체재 중에 방문할 곳으로 동식물원이 나 도서관을 끼어 넣어 생물연구자로서의 학자 천황 을 연출할 계획을 세웠다.( 아사히신 문, 1971년 9월 16일) 런던에서의 팬더와의 회동도 이러한 계획의 일부로 여행에 첨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과거 1941년 11월에 쑹메이링이 미국에 팬더를 선물한 목적은 비단 양국 간의 우호관계를 연출하는 것이 아닌 팬더의 기증을 통해 중국이 구미식의 동물보호사상을 이해 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난징국민정부의 문명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이에나가, 2008) 바꾸어 말하자면 이 팬더의 기증 사업을 담당한 중국 국민당중앙선 전부 국제선전처는 물건을 선물하는 행위 자체의 중요성이 아닌 국제사회에서 물건에 대 한 시선을 공유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 의 중요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논의에 비추어보 건대 1971년 10월에 이루어진 천황과 팬더의 대면은 팬더에 대한 시선을 국제사회와 공유 함 으로써 일본의 천황은 국제사회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는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발 신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여하튼 이 천황의 영국 방문에 대한 보도가 도화선이 되어 일본에서는 거리마다 인형이 넘칠 정도로 팬더 붐 이 일어났다.( 요미우리신문, 1972년 2월 19일) 이와 같이 1971 년 10월에 팬더는 이미 반일 의 상징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었으며 오히려 반일 을 완화시 키는 목적으로까지 이용되고 있었다. 4. 일ㆍ중 국교정상화와 팬더 1972년 2월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정부는 미국에 한 쌍의 팬더를 선물하였 다. 1949년에 중국이 탄생한 이후 팬더를 선물 받은 나라는 소련과 북한뿐이었던 탓에 미 3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국에 대한 선물은 중국의 대외전략의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같은 해 9월 일본 에 팬더를 선물한 행위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팬더가 인기를 끌고 있었으며 1949년 이 후도 각 동물원이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1972년의 미중화해를 계기로 약 20년 만에 팬더를 맞이하게 되었던데 반해 일본은 그러한 팬더에 대한 역사적 문맥을 가지고 있 지 않다. 그로 인해 미국의 입장에서는 과거 1941년에 우호의 증거 로 선물 받은 팬더의 부재 는 중국과의 비우호 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1972년의 팬더 기증이 미중의 우호 를 연출한다는 점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웠는데 반해 일본의 입장에서 팬더가 우호의 상징 이 라는 점은 위에서 서술한 팬더가 일반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도 드러나듯이 반드 시 자명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에 아래에서는 일본에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팬더가 우호 의 상징 으로 여겨지게 되었는지를 고찰해 보겠다. 팬더에 대한 관심이 낮았던 일본에서 구체적으로 유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60년대 후반부터인 듯하다.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문서를 검토해 보면 우에노동물원은 1954년 2월, 중일 및 일소 무역을 담당하던 도쿄 시나가와의 후루타카산업( 古 鷹 産 業 ) 에 중개를 의뢰하여 중국에 동물 교환을 요청했으나 당시 우에노동물원이 중국에 요구한 동물 은 팬더가 아니었다.(중국 외교부 공문서관, 105-00271-02(1)) 하지만 1954년이라는 시기 는 베이징동물원조차 아직 팬더의 사육을 시작하지 않았던 때로 설령 우에노동물원의 동물 전문가 중에 팬더에 관심을 가진 자가 있었다 치더라도 중국에 팬더의 교환을 요구하는 것 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일본의 동물원은 명백히 팬더 유치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1966년, 우에노동물원의 3대 원장에 취임한 今 泉 英 一 는 원장 취임사에서 세계에서도 소련과 중국의 동물원만 보유 중인 자이언트팬더 (흑백얼룩곰)를 반드시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우에노로 데려오고 싶다 라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1966년 4월 2일) 그로부터 3년 후인 1969년에는 요코하마의 게이힌조수무역( 京 浜 鳥 獣 貿 易 ) 河 野 通 敬 사장이라는 인물이 팬더를 일본에 선물해 주도록 중국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河 野 사장은 1969년 2월, 중국의 동물 연구와 동물원 견학 이라는 명목 아래 일본과 아직 국교 가 없던 중국에 홀로 도항허가를 받아낸다. 河 野 사장은 광저우( 廣 州 ), 난징, 베이징의 동 물원을 돌면서 각 동물원에서 팬더를 보았다. 이어서 河 野 사장은 당시 베이징에서 중일문 화교류협회 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던 사이온지 긴카즈( 西 園 寺 公 一 )의 소개로 중국 외교부 의 왕샤오윈( 王 暁 雲 ) 국장을 만나 일본의 아이들에게도 부디 중국의 팬더를 볼 수 있는 38
일ㆍ중우호와 팬더신화 기회를 달라 고 청하였다. 이에 대해 왕샤오윈 국장은 현재의 사토 정권 하에서는 무리 다 며 河 野 의 요청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요미우리신문, 1972년 11월 15일) 일본에서 팬더의 인지도를 상승시킨 천황의 유럽 순방 직후인 1971년 10월 말부터 11 월 상순에 걸쳐 미노베 료키치( 美 濃 部 亮 吉 ) 도쿄 도지사는 북한 및 중국을 방문하였다. 우 에노동물원의 나카가와 시로( 中 川 志 郎 ) 사육과장이 1971년 1월 11일자 요미우리신문 의 취재에 답한 바에 따르면 이 방중 때 미노베 도지사는 팬더의 양도를 중국 측에 요청했 으나 개체수가 적다 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당시의 미노베 도지사의 중국 방문은 사토 에이사쿠 정권의 내각관방장관이었던 자민당의 호리 시게루( 保 利 茂 ) 의원이 중일국교 정상화를 타진하기 위한 서한을 미노베 도지사에게 부탁한 이른바 호리서한 사건으로 밝 혀졌다. 저우언라이( 周 恩 來 )와 회담을 가진 미노베 도지사는 당시 국교정상화는 사토 총리 로는 무리다 는 인상을 받았다고 훗날 회상하고 있다.(지지통신사 정치부편, 1972: 77-78 쪽) 그 후 1972년 1월 10일에는 베이징동물원을 견학한 사회당의 도이 다카코( 土 井 多 賀 子 ) 중의원도 팬더를 중일우호의 사절로 일본에 양도해 달라 고 요청했으나 베이징동물원 측은 앞으로 이야기의 진전에 따라 다르다 라며 바라던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요미우 리신문, 1971년 1월 11일) 이러한 경위를 고려해 볼 때 일본의 언론 및 정계는 팬더 유치의 실패 를 점차 사토 정권 하의 일본과는 국교정상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중국 측의 의사 표명 을 드러내는 구체 적인 증거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닉슨의 방중으로 미국에 팬더가 기증 된 직후인 1972년 3월 6일자 요미우리신문 석간에는 팬더, 미국에/ 어린이- 일본에는 오지 않는 거야?/ 엄마- 사토 총리가 시원치 않아서 그렇단다 는 독자투고란의 만평도 실 렸다. 당시 중국정부가 사토정권을 거절하고 있다 는 사태는 일본의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도 팬더의 부재 라는 모습으로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던 셈이다.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팬더가 1972년에 최초로 일본에 들어오기까지 일본사회는 항일전쟁의 상징 이라는 측면을 전혀 주목하지 않은 채 팬더를 받아들여 왔다. 다시 말해 훗날 팬더의 광고탑 역할을 하는 TV 탤런트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우연히도 팬더가 반 일 선전에 이용되기 이전부터 팬더의 팬이었다. 1958년의 애니메이션 백사전 에 팬더 가 등장한 이유는 아시아 시장에 팔기 위한 외화 획득이라는 목적 때문이었다. 1970년에 3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창간한 여성지 an-an 이 잡지이름을 모스크바의 팬더에서 따 온 이유는 유행 이라는 관점에서였다. 그리고 일본에 팬더 붐을 일으킨 계기가 된 1971년의 천황영국방문에서 팬 더는 오히려 반일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기대되었다. 천황의 유럽순 방으로 갑자기 팬더 대망론 이 부상하자 1940년대에는 항일전쟁의 상징이었던 과거와는 무관하게 일본사회는 오히려 팬더의 부재를 중일 간 비우호 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 다. 부재가 비우호를 뜻하게 된 논리적 귀결로 1972년 9월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선물 받은 팬더는 중일우호의 상징 으로 일본사회에서 환영 받았다. 이것이 실로 팬더가 중일우 호의 상징 이 된 역사적 경위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역사적으로 형성된 중일우호의 상징 으로서의 팬더의 기증 이라는 행위가 오늘날에 이르는 중일관계에 어떠한 중요성을 갖는지에 대하여 향후의 검토과제로 2가지의 가설을 제시하면서 본고를 마치겠다. 우선 첫째, 팬더가 중일우호의 상징 으로 자리 잡으면서 중국정부는 일본사회를 향해 팬더의 존재/부재 를 통해 일본 정권에 대한 지지/비지지 의 의사 표명을 할 수 있게 되 었다고 보인다. 이는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민의가 국정에 반영되는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국제선전으로 굉장히 이용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972년 12월의 중의원 총선거에서 중일국교추진의원으로 활약하며 팬더인형을 안고 운동한 후루이 요시미( 古 井 喜 実 )가 낙선한 바처럼 중일우호운동이 어김없이 국민의 투표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 다.(나카지마 미네오, 2002: 184-185쪽)그럼에도 팬더가 일본의 일반 대중들이 중국정부 의 대일평가를 가늠하는 하나의 잣대로 기능한다는 사실은 1970년대 초엽에서 2010년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둘째, 본고에서는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던 점이나 팬더는 중일 양국 정부에 이익이 되 지 않는 뉴스는 보도를 억제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들은 대중의 이목 을 끌기 위해 팬더를 대대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이는 1930년대의 미국 이후 일관되 게 드러난 경향이다. 그로 인해 중국정부나 일본정부에 이익이 되지 않는 뉴스 가 있을 때 팬더가 기증되면 언론들은 그러한 이익이 되지 않는 뉴스 에 할애하는 지면이나 시간을 본 래보다 축소한다. 1972년의 중일국교정상화는 타이완과의 단교를 수반했기 때문에 일본국 내에서도 많은 반대파들이 있었으나 팬더 붐 은 그러한 중일국교정상화에 수반한 희생이라 는 측면의 보도를 결과적으로 억제시켰다고 쉬이 상상할 수 있다. 이는 당연 중일 쌍방의 정권담당자에게도 유리하다. 중요한 외교상의 정책을 전환할 때나 상대국에 양보를 할 때 국민들 사이에 부정적인 측면이 널리 퍼지는 것을 억제하는 팬더 기증이 가지는 이러한 효 과는 2010년의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팬더의 역할은 한편 일반 대중의 눈을 속이 40
일ㆍ중우호와 팬더신화 는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만약 이 성격이 양국 간 국민감정의 과도한 대립을 방지하도록 작용한다면 그것은 평화 에 기여한다고도 평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서는 쉽게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향후의 검토과제로 삼고자 한다. 참고자료 아카기 요이치(2007) 앙앙 1970( アンアン 1970) 헤이본샤(헤이본샤 신서 358). 아사히신문사 편(1991) 이리에 스케마사 일기( 入 江 相 政 日 記 ) 제4권, 아사히신문사. 이에나가 마사키(2009) 난징국민정부기의 중국 팬더외교 의 형성(1928-1949) 南 京 国 民 政 府 期 における 中 国 パンダ 外 交 の 形 成 (1928-1949) 아시아연구アジア 研 究 55권 3호. 구로야나기 데쓰코 아이고 미쓰아키(2007) 팬더통 パンダ 通 아사히신문사(아사이신서 073). 지지통신사정치부 편(1972) 중일복교 日 中 復 交 지지통신사. 스기야마 다쿠(1978) 도에이동화장편애니메이션대전집 東 映 動 画 長 編 アニメ 大 全 集 상 권, 도쿠마서점. 도쿄도 편(1982) 우에노동물원백년사 : 자료편 도쿄도 발행. 나카지마 미네오(2002) 중일우호 라는 환상 PHP연구소(PHP신서230) 난조 다케노리(2000) 사녀의 전설: 백사전 을 좇아 동에서 서로 蛇 女 の 伝 説 : 白 蛇 伝 を 追 って 東 へ 西 へ 헤이본샤(헤이본샤 신서 059) 일본국 외무성(2008) 중일 양 정부의 교류와 협력 강화에 관한 공동 프레스 발표 日 中 両 政 府 の 交 流 と 協 力 の 強 化 に 関 する 共 同 プレス 発 表 (2008년 5월 7일 도쿄에서 발표), 2008년 7월 4일 http://www.mofa.go.jp/mofaj/area/china/visit/0805_kp.html에서 다운 로드(미간행 자료)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공문서 소장(105-00271-02(1)) 日 本 東 京 上 野 動 物 園 要 求 与 我 交 換 動 物 事 的 経 過. 4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日 中 友 好 与 熊 猫 神 话 家 永 真 幸 ( 東 京 大 学 大 学 院 ) 前 言 一 战 时 日 本 与 熊 猫 二 战 后 日 本 与 熊 猫 三 天 皇 访 欧 与 熊 猫 四 日 中 复 交 与 熊 猫 结 语 参 考 资 料 < 目 次 > 前 言 虽 然 韩 国 人 也 许 难 以 理 解, 但 所 谓 熊 猫 之 动 物 在 日 本 是 以 特 别 的 人 气 而 自 豪 的 熊 猫 初 次 来 到 日 本 是 1972 年 9 月 29 日, 即 在 日 中 邦 交 正 常 化 之 际, 田 中 角 荣 首 相 从 中 国 接 受 康 康 和 兰 兰 两 头 赠 品 之 时 这 两 只 熊 猫 被 迎 入 上 野 动 物 园, 当 时 尚 为 青 少 年 如 今 已 经 四 五 十 岁 的 日 本 人 大 概 还 记 忆 犹 新, 空 前 的 熊 猫 热 席 卷 日 本 列 岛 以 熊 猫 入 园 为 契 机, 上 野 动 物 园 日 均 入 园 人 数 增 加 约 1 万 人 至 2 万 人 ( 东 京 都 编,1982:99 页 ) 惟 其 如 此, 对 于 日 本 社 会 而 言, 熊 猫 一 般 而 言 是 日 中 友 好 的 象 征 ( 朝 日 新 闻, 1980 年 8 月 30 日 ) 根 据 先 前 的 决 定,2011 年 春, 新 的 熊 猫 将 来 到 上 野 动 物 园, 追 踪 其 根 源 则 是 :2008 年 5 月, 围 绕 着 毒 饺 子 事 件 和 西 藏 问 题, 日 本 社 会 喷 出 对 中 国 的 批 判 声, 此 时 在 中 国 国 家 主 席 胡 锦 涛 实 现 访 日 之 际, 发 表 了 为 了 增 进 日 中 两 国 人 民 的 友 好 感 情 而 提 供 新 的 熊 猫 1) 的 消 息 ( 日 本 国 外 务 省,2008 尽 管 如 此, 所 谓 熊 猫 究 根 索 蒂 是, 以 日 中 战 争 期 间 的 1941 年 11 月, 中 国 国 民 党 作 为 国 际 宣 传 战 略 的 一 环 而 赠 送 美 国 为 契 机, 从 而 成 为 中 国 的 象 征 的 动 物 ( 家 永,2009) 在 抗 日 战 争 中 有 功 的 动 物, 为 什 么 在 30 年 后 作 为 日 中 友 好 的 象 征 而 为 日 本 社 会 所 接 受 1) 中 国 政 府 根 据 华 盛 顿 条 约 (CITES), 自 1980 年 代 以 降 不 再 向 外 国 陪 送 熊 猫, 此 次 熊 猫 是 以 学 术 研 究 的 名 义 出 租 的 42
日 中 友 好 与 熊 猫 神 话 呢? 我 认 为, 这 个 问 题 是 思 考 东 亚 的 历 史 叙 述 与 和 平 之 关 系 的 一 个 事 例 因 此, 本 文 首 先 根 据 文 献 资 料 以 及 一 部 分 访 谈 记 录, 阐 明 日 本 社 会 逐 渐 认 知 所 谓 熊 猫 之 动 物 的 历 史 经 纬, 分 析 为 什 么 在 1972 年 熊 猫 之 作 为 抗 日 战 争 的 象 征 的 侧 面 没 有 受 到 注 意 ; 接 着 针 对 所 谓 赠 送 熊 猫 之 行 为 对 于 时 至 今 日 的 日 中 关 系 具 有 何 种 重 要 性 加 以 若 干 考 察 一 战 时 日 本 与 熊 猫 虽 然 如 今 在 日 本 不 知 道 所 谓 熊 猫 之 动 物 的 人 几 乎 没 有, 但 是 在 1972 年 熊 猫 热 兴 起 之 前, 在 日 本, 熊 猫 只 为 动 物 学 者 等 极 少 数 具 有 特 殊 背 景 的 人 所 知 道 从 1972 年 以 前 开 始 知 道 熊 猫 的 代 表 性 人 物 是 电 视 精 英 黑 柳 彻 子 黑 柳 在 电 视 等 媒 体 三 番 五 次 地 公 开 声 称 是 狂 热 的 熊 猫 迷 她 现 在 作 为 支 援 中 国 的 卧 龙 中 国 熊 猫 保 护 研 究 中 心 的 事 业 而 设 立 的 窗 口 机 构 日 本 熊 猫 保 护 协 会 的 名 誉 会 长, 担 负 着 呼 吁 日 本 民 间 援 助 之 象 征 的 角 色 黑 柳 如 此 地 献 身 于 熊 猫 的 契 机, 最 早 可 以 追 溯 到 战 前 的 经 验 熊 猫 是 生 息 于 中 国 内 陆 极 其 有 限 的 地 域 的 珍 稀 动 物, 以 1936 年 熊 猫 素 林 渡 美 为 发 端, 在 1930 年 代 后 半 期 的 英 美 兴 起 世 界 史 上 最 早 的 熊 猫 热 在 这 次 熊 猫 热 的 最 高 潮 中, 当 时 小 学 低 年 级 学 生 黑 柳 收 到 照 相 师 叔 叔 从 美 国 买 回 的 熊 猫 玩 偶, 从 此 成 为 熊 猫 魅 力 的 俘 虏 ( 黑 柳 岩 仓,2007:48 49 页 ) 当 时, 在 日 本 的 新 闻 媒 体 中 关 于 熊 猫 的 报 道 非 常 罕 见 仅 限 于 利 用 数 据 库 进 行 检 索, 在 1937 年 的 朝 日 新 闻 晚 刊 1938 年 5 月 1 日 的 读 卖 新 闻 1940 年 6 月 30 日 的 读 卖 新 闻 出 现 熊 猫 关 联 报 道, 这 些 报 道 都 将 熊 猫 作 为 可 爱 的 动 物 介 绍 尽 管 如 此, 其 后 在 1941 年 11 月 9 日 宋 美 龄 向 纽 约 动 物 园 赠 送 熊 猫 之 际, 同 年 11 月 12 日 的 读 卖 新 闻 以 及 11 月 26 日 的 朝 日 新 闻 都 以 所 谓 以 珍 兽 取 悦 美 国 人 之 批 判 性 语 调 报 道 其 事 由 此 可 见, 熊 猫 在 中 国 的 抗 日 战 争 中 被 利 用 于 国 际 宣 传, 这 在 日 本 的 新 闻 媒 介 中 并 不 是 没 有 得 到 认 识 尽 管 如 此, 由 于 后 来 通 过 电 视 和 著 作 宣 传 熊 猫 之 可 爱 的 黑 柳 彻 子 从 被 用 于 抗 日 宣 传 以 前 开 始 成 为 这 种 动 物 迷 的 历 史 偶 然 性 帮 助, 在 战 后 的 日 本, 熊 猫 之 反 日 的 侧 面 不 再 受 到 关 注 二 战 后 日 本 与 熊 猫 一 般 认 为, 在 战 后 日 本 第 一 次 大 规 模 地 报 道 熊 猫, 是 东 映 制 作 之 日 本 最 早 的 彩 色 长 篇 4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动 漫 电 影 白 蛇 传 在 这 部 电 影 中, 熊 猫 作 为 主 人 公 的 朋 友 登 场 根 据 东 映 动 漫 株 式 会 社 顾 问 (2009 年 9 月 访 谈 时 ) 吉 冈 修 的 记 忆, 这 个 熊 猫 在 当 时 的 青 少 年 中 颇 受 欢 迎 2) 可 资 佐 证 的 是, 如 今 在 网 络 上 依 然 散 见 动 漫 迷 的 回 忆 言 及 在 这 部 电 影 中 登 场 的 熊 猫 构 成 为 这 部 电 影 主 题 的 白 蛇 传 自 古 以 来 在 中 国 各 地 作 为 戏 剧 小 说 的 题 材, 是 广 受 欢 迎 的 故 事 故 事 的 基 本 情 节 是 蛇 变 身 为 美 女, 陷 入 与 青 年 男 子 的 恋 情, 其 舞 台 是 因 美 景 而 闻 名 的 杭 州 西 湖 和 苏 州 ( 南 条,2000:16 29 页 ) 两 地 都 是 邻 近 长 江 下 游 的 上 海 和 南 京 的 都 市, 与 发 现 熊 猫 的 四 川 省 内 陆 相 距 遥 远 换 言 之, 原 来 的 故 事 与 熊 猫 殊 无 关 系 既 然 如 此, 这 部 电 影 为 什 么 特 意 选 拔 在 日 本 几 乎 不 为 人 所 知 的 熊 猫 作 为 电 影 的 主 要 角 色 呢? 这 部 电 影 最 初 是 计 划 与 香 港 的 电 影 公 司 对 半 承 担 制 作 费 因 此, 东 映 总 公 司 向 制 作 现 场 发 出 指 示, 要 求 考 虑 到 新 加 坡 和 香 港 等 亚 洲 市 场 再 者, 负 责 这 部 电 影 美 术 的 漫 画 家 冈 部 一 彦 从 所 谓 在 日 本 只 是 初 次 创 作, 不 想 照 葫 芦 画 瓢 之 意 识 出 发, 决 心 将 动 物 也 制 作 成 东 洋 独 特 的 东 西 ( 杉 山,1978:31 页 ) 究 竟 是 谁 的 主 意 不 得 而 知, 但 以 上 的 背 景 决 定 了 熊 猫 的 起 用 再 者, 此 时 的 动 漫 制 作 新 人 大 塚 康 生 从 其 个 人 经 历 偶 然 知 道 所 谓 熊 猫 之 动 物 的 存 在 大 塚 后 来 出 任 鲁 潘 三 世 : 卡 里 奥 斯 特 罗 城 堡 的 美 术 监 督, 新 手 创 作 许 多 作 品, 成 为 著 名 的 动 漫 家, 而 在 1956 年 从 事 这 项 职 业 之 前 是 在 厚 生 省 的 麻 药 取 缔 官 事 务 所 上 班 由 于 在 这 个 职 场 要 求 掌 握 朝 鲜 语 或 韩 国 语, 因 此 大 塚 向 从 天 津 来 的 中 华 料 理 店 主 学 习 中 国 语, 在 此 之 际 听 说 了 所 谓 熊 猫 之 动 物 的 故 事 3) 在 中 国, 从 1955 年 开 始 在 首 都 的 北 京 动 物 园 饲 养 和 展 示 熊 猫, 该 时 期 相 适 值 熊 猫 的 认 知 度 在 中 国 持 续 高 涨 的 时 期 电 影 白 蛇 传 确 实 凝 聚 了 人 气, 但 是 称 之 熊 猫 热 的 现 象 尚 未 在 日 本 兴 起 继 白 蛇 传 之 后 促 使 日 本 人 对 熊 猫 产 生 关 心 的 是, 关 于 伦 敦 动 物 园 的 熊 猫 集 集 与 莫 斯 科 动 物 园 的 熊 猫 安 安 之 间 在 1966 年 至 1969 年 进 行 交 配 繁 殖 的 一 系 列 相 亲 报 道 诚 如 当 时 称 为 竹 幕 所 示, 社 会 主 义 国 家 中 华 人 民 共 和 国 的 消 息 难 以 传 入 日 本, 因 此 日 本 人 的 耳 目 易 于 接 触 到 的 熊 猫 不 是 中 国 大 陆 的 熊 猫, 而 是 距 离 遥 远 的 伦 敦 和 莫 斯 科 的 熊 猫 黑 柳 彻 子 初 次 亲 眼 目 睹 熊 猫, 是 1967 年 访 问 伦 敦 的 时 候 ( 黑 柳 岩 仓,2007:58 页 ) 此 时 媒 体 也 对 熊 猫 的 话 题 性 敏 锐 地 做 出 反 应, 这 就 是 女 性 时 尚 杂 志 an an an an 作 为 新 型 的 豪 华 时 尚 杂 志, 由 平 凡 社 ( 今 日 之 magazine house 社 ) 于 1970 年 创 刊 作 为 其 竞 争 对 手, 是 翌 年 1971 年 创 刊 的 no no 受 an an 和 no no 报 道 影 响 的 青 年 女 性 外 出 旅 行, 所 谓 an an 族 的 社 会 现 象 应 运 而 生, 这 些 杂 志 当 时 所 具 有 的 巨 大 影 2) 根 据 2009 年 9 月 1 日 在 东 映 动 漫 大 泉 制 作 室 进 行 的 访 谈 3) 根 据 2009 年 9 月 1 日 在 东 映 动 漫 大 泉 制 作 室 进 行 的 访 谈 44
日 中 友 好 与 熊 猫 神 话 响 力 由 此 可 见 根 据 作 为 an an 的 创 刊 准 备 号 而 发 行 的 平 凡 PUNCH 临 时 增 刊 女 性 版 1970 年 2 月 20 日 号, 所 谓 an an 之 杂 志 名 是 编 辑 从 公 开 征 集 的 名 称 中 选 取 的 但 是, 根 据 这 份 新 女 性 杂 志 的 创 刊 编 辑 赤 木 洋 子 后 来 所 披 露, 这 个 杂 志 名 称 征 集 是 竞 赛 产 生 的 真 相 是, 从 几 年 前 开 始 倾 情 于 开 发 时 尚 革 新 的 女 性 杂 志 当 时 担 任 平 凡 出 版 社 专 务 的 清 水 达 夫 决 定 使 用 当 时 成 为 系 列 报 道 话 题 的 熊 猫 安 安 作 为 杂 志 名 称 和 吉 祥 动 物 ( 赤 木,200 7:27 页 ) 于 是, 在 日 本 熊 猫 热 兴 起 之 前 的 1970 年, 熊 猫 已 经 为 从 所 谓 时 尚 之 观 点 出 发 新 创 刊 的 杂 志 所 瞩 目, 被 广 泛 地 介 绍 给 日 本 社 会 三 天 皇 访 欧 与 熊 猫 如 上 所 述, 在 日 本 对 熊 猫 的 关 心 逐 渐 高 涨 的 过 程 中, 在 日 本 对 引 起 熊 猫 热 产 生 决 定 性 作 用 的 是 1971 年 昭 和 天 皇 访 欧 从 1971 年 9 月 27 日 至 同 年 10 月 14 日, 昭 和 天 皇 展 开 访 问 欧 洲 之 旅, 除 正 式 访 问 比 利 时 英 国 西 德 外, 还 非 正 式 访 问 丹 麦 荷 兰, 并 且 为 了 休 养 停 留 法 国 瑞 士, 为 了 给 飞 机 加 油 停 机 美 国 的 安 科 雷 奇 这 是 日 本 在 位 天 皇 在 历 史 上 首 次 出 国 在 为 期 两 周 的 旅 程 中, 天 皇 在 滞 留 伦 敦 期 间 的 1971 年 10 月 7 日 参 观 伦 敦 动 物 园 根 据 昭 和 天 皇 侍 从 长 入 江 相 政 的 记 录, 当 日 在 动 物 园 的 停 留 时 间 比 最 初 预 定 的 超 过 20 分 钟 从 当 时 的 新 闻 报 道 可 知, 延 长 时 间 的 原 因 是 熊 猫 根 据 朝 日 新 闻 (1971 年 10 月 8 日 ) 报 道, 天 皇 从 东 京 出 发 以 前 已 经 对 这 个 动 物 兴 趣 盎 然, 并 且 先 行 收 集 资 料 进 行 调 查 据 报 道, 饲 养 熊 猫 集 集 的 伦 敦 动 物 园 特 别 关 照 来 园 参 观 的 天 皇, 特 意 安 排 熊 猫 集 集 又 是 断 食, 又 是 在 圈 里 戏 水, 而 且 还 来 到 外 面, 天 皇 得 以 很 好 地 观 看 熊 猫, 非 常 满 足, 发 挥 了 热 心 的 学 者 风 范 ( 读 卖 新 闻,1971 年 10 月 8 日 ) 对 于 这 次 天 皇 与 熊 猫 的 会 面, 美 国 的 芝 加 哥 论 坛 报 (Chicago Tribune) 以 裕 仁 的 微 笑 (Hirohito Smiles) 为 题 进 行 了 报 道 该 报 道 开 头 写 道 : 自 从 他 9 月 26 日 离 开 东 京 成 为 第 一 个 日 本 在 位 天 皇 出 国 旅 行, 一 般 的 照 片 显 示 一 个 面 无 笑 容 满 脸 严 肃 的 天 皇 正 在 执 行 公 务 而 报 道 的 最 后 写 道 : 也 许 天 皇 与 我 们 这 些 人 并 没 有 那 么 不 同 我 们 所 有 人 都 对 熊 猫 的 憨 态 微 笑 由 于 熊 猫 来 自 红 色 中 国, 也 许 在 尼 克 松 先 生 访 问 中 国 期 间, 北 京 会 展 示 几 头 熊 猫 以 活 跃 气 氛 (Chicago Tribune, October 11, 1971: 16) 该 报 道 的 一 部 分 被 1971 年 10 月 13 日 的 读 卖 新 闻 的 世 界 舆 论 栏 目 所 转 载 1971 年 的 天 皇 访 欧, 是 在 对 以 曾 经 沦 为 日 军 俘 虏 的 人 为 首 的 各 国 战 争 被 害 者 之 反 弹 忧 4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心 忡 忡 中 进 行 的 实 际 上, 除 了 日 本 国 内 学 生 进 行 的 反 对 运 动 之 外, 在 访 问 目 的 地 英 国 和 荷 兰 也 发 生 抗 议 行 动 惟 其 如 此, 在 准 备 这 次 访 问 的 过 程 中, 以 外 务 省 为 中 心 高 度 重 视 所 谓 让 各 国 认 知 名 副 其 实 的 天 皇 之 PR( 公 关 工 作 ) 之 目 的 在 访 问 目 的 地 各 国 散 发 的 报 道 资 料 除 强 调 人 间 天 皇 之 外, 还 计 划 演 出 在 各 国 停 留 期 间 参 观 访 问 目 的 地 的 动 植 物 园 和 图 书 馆 作 为 生 物 研 究 者 之 学 者 天 皇 ( 朝 日 新 闻,1971 年 9 月 16 日 ) 在 伦 敦 与 熊 猫 会 面 也 是 作 为 这 种 计 划 的 一 部 分 而 编 入 旅 程 的 笔 者 曾 经 指 出,1941 年 宋 美 龄 向 美 国 赠 送 熊 猫 的 目 的 不 单 纯 是 表 现 两 国 之 间 的 友 好 关 系, 而 是 通 过 赠 送 熊 猫, 表 现 中 国 理 解 欧 美 式 的 动 物 保 护 思 想, 进 而 展 示 南 京 国 民 政 府 的 文 明 性 ( 家 永,2009) 换 言 之, 负 责 熊 猫 赠 送 事 业 的 中 国 国 民 党 中 央 宣 传 部 国 际 宣 传 处 所 发 现 的 不 是 赠 送 东 西 本 身 的 重 要 性, 而 是 在 国 际 社 会 显 示 对 于 某 种 事 务 具 有 共 通 的 视 线 的 重 要 性 以 这 个 观 点 为 参 照 也 许 可 以 发 现,1971 年 10 月 之 天 皇 与 熊 猫 的 会 面, 其 目 的 是 通 过 对 于 熊 猫 具 有 与 国 际 社 会 共 通 的 视 线, 向 外 界 发 布 所 谓 日 本 的 天 皇 具 有 与 国 际 社 会 共 通 的 价 值 观 之 信 息 无 论 如 何, 以 这 次 天 皇 访 英 报 道 为 诱 因, 毛 绒 熊 猫 玩 偶 充 斥 日 本 大 街 小 巷, 熊 猫 热 随 之 而 来 ( 读 卖 新 闻,1972 年 2 月 29 日 ) 于 是, 在 1971 年 10 月 熊 猫 已 经 不 被 视 为 反 日 的 象 征, 而 是 被 利 用 于 缓 和 反 日 的 目 的 四 日 中 复 交 与 熊 猫 1972 年 2 月 尼 克 松 访 问 中 国 之 际, 中 国 政 府 赠 送 美 国 一 对 熊 猫 自 1949 年 中 华 人 民 共 和 国 成 立 以 降, 中 国 只 向 苏 联 和 北 朝 鲜 赠 送 熊 猫, 因 此, 向 美 国 赠 送 熊 猫 象 征 着 中 国 对 外 战 略 的 转 变 惟 其 如 此, 同 年 9 月 日 本 受 赠 熊 猫, 也 可 以 理 解 为 与 出 自 此 相 同 的 逻 辑 但 是, 在 美 国, 自 1930 年 代 开 始 熊 猫 始 终 备 受 欢 迎,1949 年 以 降 各 动 物 园 也 尝 试 招 徕 熊 猫, 在 此 过 程 中 因 1972 年 美 中 关 系 和 解 而 在 相 隔 约 20 年 后 迎 来 了 熊 猫, 相 比 之 下, 日 本 缺 乏 这 种 关 于 熊 猫 的 历 史 关 系 惟 其 如 此, 对 于 美 国 而 言, 曾 经 在 1941 年 作 为 友 好 的 象 征 赠 送 的 熊 猫 不 在 了 象 征 着 与 中 国 的 不 友 好, 而 1972 年 之 赠 送 熊 猫 则 表 现 了 美 中 之 间 的 友 好 这 在 逻 辑 上 是 自 然 而 然, 相 比 之 下, 对 于 日 本 而 言, 所 谓 熊 猫 是 友 好 的 象 征 恰 如 上 述 之 熊 猫 为 一 般 大 众 逐 渐 接 受 的 过 程 所 体 现 的, 也 是 不 言 自 明 的 以 下 接 着 考 察 在 日 本 最 终 是 如 何 看 待 熊 猫 是 友 好 的 象 征 的 在 不 怎 么 关 心 熊 猫 的 日 本, 具 体 地 出 现 招 徕 熊 猫 的 动 向 似 乎 是 从 1960 年 代 后 半 期 开 始 的 从 中 国 外 交 部 公 开 的 文 书 来 看, 上 野 动 物 园 于 1954 年 2 月 委 托 东 京 品 川 从 事 日 中 贸 易 和 日 苏 贸 易 的 古 鹰 产 业 社 居 间 介 绍, 要 求 与 中 国 交 换 动 物, 但 是 此 时 上 野 动 物 园 没 有 46
日 中 友 好 与 熊 猫 神 话 对 中 国 要 求 交 换 熊 猫 ( 中 华 人 民 共 和 国 外 交 部 档 案 馆,105 00271 02(1)) 尽 管 如 此, 但 1954 年 是 连 北 京 动 物 园 也 尚 未 开 始 饲 养 熊 猫 的 时 期, 纵 使 上 野 动 物 园 的 动 物 专 家 中 有 对 熊 猫 感 兴 趣 的 人, 向 中 国 要 求 交 换 熊 猫 也 不 是 具 有 现 实 可 能 性 的 选 项 尽 管 如 此, 到 经 过 约 10 年 的 1960 年 代 后 半 期, 日 本 的 动 物 园 对 于 招 徕 熊 猫 明 确 地 展 现 积 极 的 姿 态 自 1966 年 度 就 任 上 野 动 物 园 第 三 届 园 长 的 今 泉 英 一, 在 其 园 长 就 职 讲 词 中 阐 述 其 抱 负 称 : 我 一 定 与 中 国 交 涉, 将 在 世 界 上 只 有 苏 联 和 中 国 才 有 的 熊 猫 迎 进 上 野 动 物 园 ( 读 卖 新 闻,1966 年 4 月 2 日 ) 3 年 后 的 1969 年, 横 滨 的 京 滨 鸟 兽 贸 易 社 社 长 河 野 通 敬 为 促 成 中 国 向 日 本 赠 送 熊 猫 而 与 中 国 政 府 进 行 交 涉 河 野 在 1969 年 2 月 以 所 谓 参 观 学 习 中 国 的 动 物 研 究 和 动 物 园 之 名 义, 获 准 单 独 出 国 前 往 与 日 本 尚 无 邦 交 关 系 的 中 国 河 野 先 后 参 观 了 广 州 上 海 南 京 北 京 的 动 物 园, 在 各 个 动 物 园 都 看 到 熊 猫 接 着, 河 野 通 过 日 中 文 化 交 流 协 会 常 务 理 事 西 园 寺 公 望 的 介 绍, 当 时 在 北 京 会 见 中 国 外 交 部 亚 洲 司 司 长 王 晓 云, 恳 求 一 定 要 让 日 本 的 孩 子 们 看 到 中 国 的 熊 猫 对 此, 王 晓 云 表 示 在 现 在 的 佐 藤 政 权 下 是 不 可 能 的, 拒 绝 河 野 的 请 求 ( 读 卖 新 闻,1972 年 11 月 15 日 ) 在 天 皇 访 欧 后 日 本 对 熊 猫 的 认 知 高 涨 的 1971 年 10 月 底 至 11 月 上 旬, 东 京 都 知 事 美 浓 部 亮 吉 访 问 北 朝 鲜 和 中 国 根 据 上 野 动 物 园 饲 养 课 长 中 川 志 郎 回 答 1971 年 1 月 11 日 读 卖 新 闻 的 采 访, 在 这 次 访 问 中 国 之 际, 美 浓 部 判 断, 即 使 向 中 国 方 面 提 出 转 让 熊 猫, 成 功 率 也 很 小 在 这 次 美 浓 部 访 问 中 国 时, 佐 藤 荣 作 政 权 的 内 阁 官 房 长 官 自 民 党 干 事 长 保 利 茂 委 托 美 浓 部 转 交 试 探 日 中 邦 交 正 常 化 的 书 简, 此 即 所 谓 保 利 书 简 事 件 当 时 与 周 恩 来 举 行 会 谈 的 美 浓 部 后 来 说, 他 当 时 获 得 邦 交 正 常 化 佐 藤 不 行 之 印 象 ( 时 事 通 信 社 政 治 部 编,1972:77 78 页 ) 其 后,1972 年 1 月 10 日 参 观 北 京 动 物 园 的 社 会 党 众 议 院 议 员 土 井 多 贺 提 出 希 望 将 熊 猫 作 为 日 中 友 好 的 使 者 转 让 给 日 本, 但 是 北 京 动 物 园 表 示 这 要 看 今 后 的 发 展, 并 没 有 做 出 令 人 满 意 的 答 复 ( 读 卖 新 闻,1972 年 1 月 11 日 ) 根 据 这 些 经 过 判 断, 日 本 的 媒 体 和 政 界 逐 渐 认 识 到 熊 猫 之 所 以 不 来 日 本, 是 中 国 方 面 之 无 法 接 受 与 佐 藤 政 权 下 的 日 本 实 现 邦 交 正 常 化 的 意 思 的 具 体 表 现 在 因 尼 克 松 访 华 而 中 国 向 美 国 赠 送 熊 猫 之 后 不 久,1972 年 3 月 6 日 的 读 卖 新 闻 晚 刊 登 载 了 读 者 投 稿 之 笑 话 : 熊 猫 去 美 国 了 / 孩 子 : 为 什 么 熊 猫 不 来 日 本?/ 妈 妈 : 因 为 佐 藤 不 可 靠, 所 以 不 行 由 此 可 见, 对 于 日 本 一 般 大 众 而 言, 所 谓 佐 藤 政 权 被 中 国 政 府 所 拒 绝 之 事 态 是 以 所 谓 熊 猫 不 在 之 形 式 表 现 的 4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结 语 如 上 所 述, 直 至 1972 年 熊 猫 第 一 次 来 日, 日 本 社 会 完 全 没 有 留 意 熊 猫 作 为 抗 日 战 争 的 象 征 之 侧 面, 逐 渐 接 受 了 这 种 动 物 亦 即, 后 来 成 为 熊 猫 之 广 告 塔 的 电 视 精 英 黑 柳 彻 子, 偶 然 地 从 熊 猫 之 被 用 于 反 日 宣 传 之 前 开 始 成 为 熊 猫 迷 1958 年 熊 猫 在 动 漫 电 影 白 蛇 传 中 登 场, 是 为 了 在 亚 洲 市 场 销 售 以 获 得 外 汇 1970 年 创 刊 的 女 性 杂 志 an a n 根 据 莫 斯 科 的 熊 猫 取 杂 志 名, 是 从 所 谓 流 行 之 观 点 出 发 的 作 为 接 着, 在 成 为 在 日 本 引 起 熊 猫 热 之 契 机 的 1971 年 天 皇 访 英 过 程 中, 熊 猫 毋 宁 说 是 被 期 待 发 挥 缓 解 反 日 情 绪 的 作 用 由 于 天 皇 访 欧, 熊 猫 期 待 论 迅 速 高 涨,1940 年 代 曾 经 是 抗 日 战 争 的 象 征 的 过 去 已 经 无 关 紧 要, 日 本 社 会 毋 宁 说 是 将 熊 猫 的 不 在 理 解 为 日 中 之 间 不 友 好 的 象 征 作 为 熊 猫 之 不 在 意 味 着 不 友 好 之 逻 辑 的 归 结,1972 年 9 月 田 中 角 荣 获 赠 的 熊 猫 被 作 为 日 中 友 好 的 象 征 而 受 到 日 本 社 会 的 欢 迎 这 就 是 熊 猫 成 为 日 中 友 好 的 象 征 的 经 纬 最 后, 作 为 如 此 在 历 史 过 程 中 形 成 的 日 中 友 好 的 象 征 之 赠 送 熊 猫 之 行 为, 对 于 延 至 今 日 的 日 中 关 系 具 有 何 种 重 要 性 呢? 对 于 这 个 问 题, 本 文 最 后 拟 阐 述 两 个 假 说 作 为 今 日 探 讨 的 课 题 第 一 个 课 题 是, 由 于 熊 猫 成 为 了 日 中 友 好 的 象 征, 中 国 政 府 可 以 通 过 熊 猫 之 在 / 不 在, 向 日 本 社 会 表 示 对 日 本 政 权 的 支 持 / 不 支 持 对 于 中 国 而 言, 这 作 为 针 对 国 政 反 映 民 意 的 国 家 进 行 的 国 际 宣 传, 具 有 非 常 高 的 利 用 价 值 话 虽 如 此, 诚 如 在 1972 年 12 月 的 众 议 院 选 举 中, 作 为 日 中 国 交 推 进 议 员 而 活 跃 怀 抱 毛 绒 熊 猫 做 运 动 的 古 井 喜 实 落 选 所 示, 日 中 友 好 运 动 未 必 与 国 民 的 投 票 行 为 相 关 系 ( 中 岛 岭 雄,2002:184 185 页 ) 尽 管 如 此, 熊 猫 作 为 日 本 一 般 大 众 瞭 解 中 国 政 府 对 日 评 价 的 一 个 晴 雨 表 而 发 挥 其 机 能, 这 从 1970 年 代 初 期 延 续 到 了 2010 年 的 今 日 第 二 个 课 题 是, 虽 然 本 文 没 有 充 分 探 讨, 但 是 熊 猫 对 于 日 中 两 国 政 府 具 有 不 让 报 道 不 方 便 的 新 闻 的 效 果 为 了 吸 引 大 众 的 耳 目, 大 众 传 媒 大 肆 报 道 熊 猫 的 情 况 很 多 从 1930 年 以 来 的 美 国 一 贯 如 此 惟 其 如 此, 对 于 中 国 政 府 和 日 本 政 府 而 言, 在 不 方 便 的 新 闻 出 现 时 期 举 行 赠 送 熊 猫 的 活 动, 大 众 传 媒 将 比 本 来 缩 小 分 给 不 方 便 的 新 闻 的 篇 幅 和 时 间 1972 年 日 中 ( 中 华 人 民 共 和 国 ) 邦 交 正 常 化 伴 随 着 日 华 ( 中 华 民 国 ) 断 交, 日 本 国 内 也 有 许 多 反 对 派, 而 熊 猫 热 在 结 果 上 抵 制 了 针 对 这 些 伴 随 着 日 中 邦 交 正 常 化 而 来 的 所 谓 牺 牲 之 侧 面 的 报 道, 这 是 可 以 想 象 的 这 当 然 对 日 中 双 方 的 当 权 者 而 言 是 有 利 的 在 重 要 的 外 交 政 策 转 变 以 及 向 对 手 国 让 步 之 际, 赠 送 熊 猫 可 以 抵 制 国 民 广 泛 瞭 解 其 负 的 侧 面, 这 种 效 果 也 一 直 传 承 到 2010 年 的 今 日 另 方 面, 熊 猫 的 这 种 作 用 具 有 欺 骗 一 般 大 众 的 耳 目 的 性 质 尽 管 如 此, 假 如 这 种 性 质 发 挥 防 止 两 国 之 间 国 民 感 情 过 度 对 立 的 作 用, 48
日 中 友 好 与 熊 猫 神 话 那 么 也 许 应 该 评 价 其 有 助 于 和 平 关 于 这 个 问 题 是 不 容 易 得 出 结 论 的, 只 能 将 其 作 为 今 后 探 讨 的 课 题 参 考 资 料 : 赤 木 洋 一 (2007) アンアン 1970 平 凡 社 ( 平 凡 社 新 書 358) 朝 日 新 聞 社 編 (1991) 入 江 相 政 日 記 第 4 巻 朝 日 新 聞 社 家 永 真 幸 (2009) 南 京 国 民 政 府 期 における 中 国 パンダ 外 交 の 形 成 (1928 1949) アジア 研 究 55 巻 3 号 黒 柳 徹 子 岩 合 光 昭 (2007) パンダ 通 朝 日 新 聞 社 ( 朝 日 新 書 073) 時 事 通 信 社 政 治 部 編 (1972) 日 中 復 交 時 事 通 信 社 杉 山 卓 (1978) 東 映 動 画 長 編 アニメ 大 全 集 上 巻 徳 間 書 店 東 京 都 編 (1982) 上 野 動 物 園 百 年 史 : 資 料 編 東 京 都 発 行 中 嶋 嶺 雄 (2002) 日 中 友 好 という 幻 想 PHP 研 究 所 (PHP 新 書 230) 南 條 竹 則 (2000) 蛇 女 の 伝 説 : 白 蛇 伝 を 追 って 東 へ 西 へ 平 凡 社 ( 平 凡 社 新 書 059) 日 本 国 外 務 省 (2008) 日 中 両 政 府 の 交 流 と 協 力 の 強 化 に 関 する 共 同 プレス 発 表 (2008 年 5 月 7 日 東 京 にて 発 表 ) 2008 年 7 月 4 日 http://www.mofa.go.jp/mofaj/area/china/visit/0805_kp.htmlよりダウンロード < 未 公 刊 資 料 > 中 華 人 民 共 和 国 外 交 部 档 案 館 蔵 (105 00271 02(1)) 日 本 東 京 上 野 動 物 園 要 求 与 我 交 換 動 物 事 的 経 過 49
甲 午 战 争 前 日 本 考 察 者 的 中 国 叙 述 : 中 华 文 教 衰 亡 与 东 亚 秩 序 的 转 折 李 长 莉 ( 中 国 社 会 科 学 院 近 代 史 研 究 所 )
甲 午 战 争 前 日 本 考 察 者 的 中 国 叙 述 : 中 华 文 教 衰 亡 与 东 亚 秩 序 的 转 折 甲 午 战 争 前 日 本 考 察 者 的 中 国 叙 述 : 中 华 文 教 衰 亡 与 东 亚 秩 序 的 转 折 李 长 莉 ( 中 国 社 会 科 学 院 近 代 史 研 究 所 ) < 目 次 > 引 言 一. 考 察 者 的 心 理 落 差 : 从 书 本 中 国 到 现 实 中 国 二. 文 教 之 衰 败 废 弛 三. 文 人 之 迂 腐 固 陋 四. 官 员 之 迂 阔 顽 劣 结 语 引 言 中 国 日 本 和 朝 鲜 半 岛 在 东 亚 比 邻 而 处, 有 深 远 的 历 史 文 化 联 系, 在 一 些 历 史 转 折 时 期, 外 部 环 境 及 各 国 内 部 的 变 化, 往 往 会 引 起 相 互 关 系 的 变 动, 导 致 东 亚 秩 序 的 重 构, 从 而 将 东 亚 引 向 一 个 新 的 方 向 或 是 和 平, 或 是 战 争 ; 或 是 友 好 相 处, 或 是 敌 对 相 抗 当 今, 由 于 东 亚 内 部 及 世 界 格 局 的 急 剧 变 动, 又 处 于 这 样 一 个 历 史 转 折 点 东 亚 秩 序 将 发 生 怎 样 的 变 动 与 重 构? 会 形 成 怎 样 的 新 格 局? 对 此 我 们 不 能 不 要 慎 重 而 理 性 地 对 待, 作 为 其 中 重 要 一 环, 就 是 要 反 省 历 史, 向 历 史 学 习 经 验 与 智 慧, 这 是 东 亚 历 史 学 者 应 当 承 担 的 责 任 回 顾 历 史, 近 代 东 亚 秩 序 的 转 折 点, 开 启 近 代 东 亚 战 争 序 幕 的 标 志, 是 距 今 115 年 前 的 中 日 甲 午 战 争 东 邻 小 国 日 本 大 败 天 朝 上 国 中 国, 从 此 改 变 了 千 百 年 来 日 本 尊 崇 中 国 以 中 华 文 明 为 中 心 的 华 夷 秩 序, 而 由 日 本 主 导 建 立 了 弱 肉 强 食 的 强 权 秩 序, 从 此 使 东 亚 内 部 陷 入 了 战 争 与 殖 民 的 长 期 灾 难 之 中 甲 午 之 战 虽 然 是 日 本 在 东 亚 确 立 强 权 秩 序 的 标 志, 但 日 本 的 这 一 国 策 理 念, 却 是 在 此 前 一 二 十 年 就 已 经 形 成 了, 而 作 为 这 一 秩 序 原 理 的 核 心 和 基 石, 就 是 日 本 人 对 中 国 的 认 识 和 评 价 发 生 了 根 本 性 的 转 变 在 明 治 维 新 后 至 甲 午 战 争 前 的 短 短 二 十 几 年 间, 当 中 国 朝 野 仍 然 沉 迷 于 自 我 中 心 视 日 本 为 倭 5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国 岛 夷 的 华 夷 秩 序 迷 梦 的 时 候, 在 日 本 人 心 目 中, 中 国 已 然 从 以 往 尊 崇 师 学 的 文 明 教 化 之 国, 一 变 而 为 腐 朽 没 落 的 野 蛮 落 后 之 国, 并 被 作 为 侵 略 扩 张 的 首 要 目 标 甲 午 之 战, 正 是 日 本 人 这 一 中 国 观 转 变 的 检 证, 是 中 日 格 局 转 折 的 结 果, 只 是 中 国 朝 野 人 士 对 此 浑 然 不 知 而 已 那 么, 日 本 人 的 中 国 观 何 以 在 这 短 短 二 十 余 年 间, 就 发 生 了 如 此 根 本 性 的 大 转 变 呢? 以 往 人 们 大 多 归 之 于 明 治 维 新 后 日 本 人 的 文 明 价 值 观 发 生 了 改 变, 他 们 认 同 西 方 近 代 文 明 为 先 进, 而 视 中 国 传 统 文 明 为 野 蛮 和 落 后, 并 自 视 为 学 习 西 方 的 优 等 生, 以 东 亚 先 进 文 明 国 自 居, 因 而 欲 取 代 中 国 而 成 为 东 亚 新 文 明 的 先 导 和 中 心, 甚 至 欲 吞 并 邻 国 而 主 宰 东 亚 这 种 说 法 是 从 东 亚 文 明 的 外 部 着 眼 所 观 察 到 的 结 果, 还 难 以 说 明 日 本 是 如 何 从 内 部 否 定 东 亚 文 明 传 统 这 一 母 体 的 因 为 毕 竟 日 本 与 中 国 和 朝 鲜 半 岛 是 有 着 文 化 血 脉 连 结 的 文 明 共 同 体, 自 公 元 6 世 纪 中 国 佛 教 经 朝 鲜 半 岛 传 入 日 本, 到 7 世 纪 日 本 派 遣 唐 使 和 留 学 生 来 华, 学 习 仿 效 中 国 的 文 化 制 度, 直 至 德 川 幕 府 时 期 尊 崇 汉 学, 长 达 十 几 世 纪 以 来, 中 华 文 明 一 直 是 日 本 的 一 支 重 要 文 化 根 基 和 文 明 源 泉, 中 国 可 以 说 是 日 本 的 文 化 母 国 而 刚 刚 从 幕 府 时 代 转 入 明 治 初 期 的 日 本 文 化 人, 大 多 受 到 过 中 华 文 化 的 薰 陶 和 濡 染, 连 着 中 华 文 明 的 脐 带 所 以, 这 一 时 期 的 日 本 人 对 中 国 认 识 和 评 价 的 改 变, 决 非 单 纯 从 外 部 利 害 关 系 或 逻 辑 推 理 即 可 决 断, 还 必 须 要 跨 越 对 中 华 文 明 也 是 日 本 自 身 文 明 之 源 的 重 新 审 视 和 感 性 体 认 这 一 关, 才 可 能 达 成 换 句 话 说, 即 日 本 人 对 中 国 的 否 定 和 鄙 视, 必 须 不 仅 从 理 性 上, 还 要 从 文 化 感 情 上 割 断 中 华 文 明 这 一 血 脉, 才 可 能 从 文 化 心 理 上 接 受 与 认 可 那 么, 在 明 治 维 新 初 期 短 短 二 十 余 年 间, 这 一 割 断 中 华 文 明 血 脉 的 程 序 是 怎 样 完 成 的 呢? 我 们 回 顾 这 一 时 期 日 本 人 对 中 国 的 认 识, 翻 检 这 一 时 期 日 本 人 留 下 的 中 国 叙 述, 发 现 当 时 日 本 人 所 看 到 的 中 国 图 像, 已 经 与 明 治 以 前 迥 然 不 同 以 前 日 本 人 主 要 是 凭 借 汉 籍 所 看 到 的 书 本 中 国 的 形 象, 那 是 一 个 礼 义 教 化 文 章 诗 赋 的 儒 学 中 国 形 象 而 明 治 以 后 一 二 十 年 里, 日 本 社 会 上 又 涌 现 了 一 批 与 传 统 汉 籍 完 全 不 同 的 新 的 中 国 叙 述 文 本, 即 数 十 上 百 部 记 述 现 实 中 国 状 况 的 中 国 地 志 游 记 书 籍, 在 坊 间 纷 纷 出 版, 在 社 会 各 界 流 传 1) 这 些 由 亲 履 华 土 的 考 察 游 历 者 撰 写, 以 亲 身 见 闻 为 基 础 的 新 文 本 所 展 现 的 中 国 社 会 及 中 华 文 明 的 图 像, 充 满 直 观 感 性 和 风 土 民 情 气 息, 是 现 实 的 具 体 的 活 生 生 的 中 国 的 人 和 事, 因 而 使 日 本 人 感 到 更 真 实 可 信, 也 成 为 日 本 人 重 新 认 识 中 国 和 中 华 文 明 的 重 要 根 据, 是 日 本 政 府 制 定 对 华 战 略 形 成 东 亚 新 秩 序 观 的 知 识 基 础 我 们 如 果 探 明 了 这 些 新 中 国 叙 述 与 以 往 书 本 中 国 的 差 异 之 处, 会 有 助 于 揭 示 这 一 时 期 日 本 人 对 中 国 认 识 发 生 大 转 变 的 奥 秘 所 在, 有 助 于 理 解 这 一 时 期 日 本 人 是 如 何 割 断 中 华 文 明 血 1) 仅 就 笔 者 有 限 的 收 集, 已 得 甲 午 战 争 前 日 本 出 版 的 中 国 考 察 地 志 纪 行 书 籍 30 余 种 54
甲 午 战 争 前 日 本 考 察 者 的 中 国 叙 述 : 中 华 文 教 衰 亡 与 东 亚 秩 序 的 转 折 脉 的 可 惜 以 往 中 日 史 学 界 从 这 一 角 度 研 究 中 国 地 志 游 记 的 成 果 甚 少, 故 本 文 在 此 作 一 初 步 探 索 一. 考 察 者 的 心 理 落 差 : 从 书 本 中 国 到 现 实 中 国 日 本 德 川 幕 府 时 代 与 清 朝 时 期, 由 于 双 方 长 期 实 行 闭 关 锁 国 政 策, 没 有 官 方 正 式 交 往 直 至 幕 末 开 港 以 后, 特 别 是 明 治 维 新 以 后, 日 本 政 府 开 始 大 量 派 遣 和 鼓 励 官 商 民 人 来 中 国 考 察 与 发 展, 也 才 开 始 有 了 亲 履 中 土 的 实 地 考 察 者 重 新 撰 写 中 国 叙 述 本 文 即 选 取 1875 年 至 1884 年 十 年 间, 亦 即 日 本 人 刚 开 始 走 进 中 国 的 初 期, 也 是 日 本 人 中 国 观 转 变 的 起 始 和 关 键 时 期, 出 版 的 三 本 来 华 考 察 者 撰 写 的 中 国 地 志 纪 行 书 作 为 样 本, 考 察 一 下 这 些 初 履 中 土 的 基 层 政 治 知 识 精 英, 对 于 中 华 文 教 情 况 的 见 闻 记 述 与 观 感 评 论, 从 中 看 一 看 在 他 们 眼 中 中 华 文 教 是 怎 样 的 状 况, 他 们 对 此 又 是 怎 样 认 识 与 评 判 的 这 三 本 书 是 : 1. 神 奈 垣 鲁 文 编 纂 : 现 今 支 那 事 情, 樱 枫 舍 明 治 八 年 (1875 年 ) 版 2. 金 子 弥 兵 卫 编 纂 : 支 那 总 说, 东 京 中 近 堂 明 治 十 四 年 (1881 年 ) 版 3.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东 京 自 由 灯 出 版 局 明 治 十 七 年 (1884 年 ) 版 三 本 书 的 作 者 都 是 日 本 政 府 派 遣 来 华 的 年 轻 下 层 人 员 神 奈 垣 为 1874 年 前 后 在 日 本 派 驻 北 京 机 构 任 职 的 人 员 2) 金 子 为 1879 年 前 后 在 北 京 日 本 公 使 馆 留 学 三 年 的 留 学 生 3) 小 室 为 1884 年 8 月, 奉 日 本 政 府 派 遣 来 华 考 察 中 法 战 争 情 况 的 人 员 4), 在 华 两 个 月 这 三 个 作 者 都 是 生 在 旧 幕 府 时 代 而 成 长 于 明 治 维 新 时 期 的 年 轻 人, 经 历 过 新 旧 时 代 的 转 换, 受 过 明 治 维 新 的 洗 礼, 又 都 有 较 好 的 汉 学 素 养 他 们 在 来 中 国 之 前, 头 脑 和 知 识 中 已 经 继 承 着 由 汉 籍 书 本 所 塑 造 的 中 国 想 象, 那 是 一 个 礼 乐 教 化 人 文 昌 达 的 文 明 上 国 形 象 他 们 就 是 带 着 这 种 旧 想 象 和 新 眼 光, 踏 上 了 既 熟 悉 又 陌 生 的 中 国 土 地 然 而, 他 们 所 到 之 处 的 所 见 所 闻, 却 与 他 们 的 旧 想 象 和 新 眼 光 发 生 了 激 烈 冲 突, 现 实 的 中 国 与 他 们 想 象 的 中 国 形 成 了 巨 大 落 差 甚 至 反 差 小 室 虽 然 只 在 中 国 考 察 了 短 短 两 个 月, 却 强 烈 地 感 受 到 这 种 落 差 所 造 成 的 心 理 震 撼 他 说 : 从 清 国 地 理 人 情 风 俗 兵 备 等 事, 到 支 那 人 民 百 般 之 事, 大 率 无 不 皆 在 意 想 之 外 古 语 云 : 百 闻 不 如 一 见 虽 然, 其 见 闻 之 差 莫 有 如 2) 作 者 在 绪 言 中 说 : 该 编 为 休 业 日 曜 日 或 夜 间 灯 下, 由 诸 图 说 中 抄 录 者, 以 积 稿 渐 多, 漫 生 刊 行 之 念, 遂 添 附 愚 说, 使 流 布 于 世 书 中 多 记 北 京 见 闻, 并 多 有 中 国 政 治 战 事 内 容 据 此 作 者 应 为 1874 年 前 后 在 北 京 日 本 公 使 馆 等 机 构 任 职 的 一 般 职 员 3) 该 书 重 野 安 绎 所 作 序 中 称 其 龄 才 逾 弱 冠, 游 支 那, 留 学 三 年, 通 其 语 文 书 中 多 记 北 京 见 闻 及 日 本 公 使 馆 活 动 4) 小 室 信 介 在 第 一 游 清 记 第 34 页 自 称 为 一 介 寒 素 书 生, 年 纪 应 不 大 5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支 那 之 甚 者 他 因 而 感 叹 : 予 辈 自 幼 学 习 汉 籍 者, 故 迷 于 支 那 人 之 文 章, 大 多 误 其 实 地 据 此 次 之 支 那 行, 始 破 平 生 之 迷 雾 所 以 他 说 : 在 支 那 内 地 旅 行 十 里, 胜 于 读 汉 籍 十 年 5) 在 其 他 两 人 的 记 述 中, 也 时 时 可 见 他 们 对 于 中 国 的 想 象 与 现 实 之 间 书 本 与 实 际 之 间 制 度 与 生 活 之 间 名 与 实 之 间 有 巨 大 落 差 的 感 受 同 时, 在 他 们 的 记 述 中, 也 往 往 既 有 依 据 中 国 书 籍 对 中 国 文 教 制 度 的 记 述, 也 有 对 现 实 状 况 的 观 察 所 得, 而 且 往 往 二 者 差 异 很 大 如 此 种 种, 都 反 映 了 他 们 原 来 头 脑 中 的 书 本 中 国 与 亲 见 的 现 实 中 国 之 间 的 巨 大 落 差 那 么, 这 种 落 差 具 体 表 现 在 哪 里 呢? 二. 文 教 之 衰 败 废 弛 中 华 文 明 的 基 础 是 文 教 制 度 这 三 位 熟 读 汉 籍 的 日 本 考 察 者, 自 然 了 解 中 国 古 来 有 注 重 教 育 的 传 统 金 子 在 书 中 介 绍 中 国 的 教 育 状 况 道 : 凡 人 家 无 论 贫 富 贵 贱, 必 让 其 子 弟 读 书, 故 乡 有 义 学, 国 有 官 学, 又 有 训 蒙 之 师, 自 立 学 塾 以 为 人 家 子 弟 授 业 虽 贫 家 之 子, 必 先 读 书 二 三 年, 然 后 始 习 职 业 以 识 字 为 荣 而 以 不 识 字 为 辱, 或 有 不 识 字 者 则 群 指 而 笑 之 6) 这 是 一 般 汉 籍 记 载 中 常 见 的 介 绍 中 国 教 育 的 文 字, 金 子 显 然 是 从 书 本 上 抄 录 的 然 而 这 只 是 存 在 于 书 本 上 的 儒 家 理 想 的 教 育 制 度, 在 现 实 中, 这 种 无 论 贫 富 贵 贱, 必 让 其 子 弟 读 书, 虽 贫 家 之 子, 必 先 读 书 二 三 年, 然 后 始 习 职 业 的 情 形, 只 是 如 江 浙 一 带 富 裕 城 镇 才 会 有 的 情 况, 一 般 贫 穷 乡 村 地 区, 则 只 能 是 中 人 以 上 之 家 才 有 此 余 力, 至 于 为 数 甚 多 的 贫 寒 之 家, 儿 童 自 少 即 需 帮 家 务, 更 无 余 力 供 其 读 书 因 而 上 述 金 子 来 自 书 本 上 的 教 育 记 述, 与 现 实 有 着 很 大 差 距 而 神 奈 垣 根 据 自 己 的 亲 身 体 察, 对 中 国 教 育 的 现 实 情 况 印 象 是 教 育 不 振, 文 盲 甚 多, 他 在 书 中 记 述 道 : 教 育 之 不 行 殊 甚 推 察 之, 田 舍 之 人 二 十 人 之 内 也 不 一 定 有 一 人 能 记 写 其 姓 名 及 村 名 7) 这 才 是 中 国 大 部 分 地 区 的 真 实 教 育 情 况 中 国 自 汉 唐 以 来 尊 奉 孔 子 儒 学, 读 书 人 自 幼 熟 读 儒 经, 自 称 孔 门 弟 子, 明 清 时 代 朝 廷 对 孔 子 待 以 至 高 礼 遇, 封 王 称 圣, 各 地 敕 建 孔 庙, 春 秋 两 祭, 对 孔 子 可 谓 尊 崇 备 至 5)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1 4 6 页 6) 金 子 弥 兵 卫 编 纂 : 支 那 总 说 卷 六, 第 13 页 7) 神 奈 垣 鲁 文 编 纂 : 现 今 支 那 事 情 卷 上, 第 33 页 56
甲 午 战 争 前 日 本 考 察 者 的 中 国 叙 述 : 中 华 文 教 衰 亡 与 东 亚 秩 序 的 转 折 对 此 熟 读 汉 籍 的 日 本 文 人 自 然 了 解, 他 们 对 于 开 创 儒 学 的 孔 子 也 倍 加 尊 敬, 在 他 们 的 想 象 中, 孔 子 在 中 国 必 然 受 到 像 神 灵 一 样 的 崇 奉 因 此, 日 本 文 人 来 到 孔 圣 故 国 后, 参 诣 孔 庙 拜 谒 孔 子, 自 然 是 向 往 之 事 然 而, 当 1884 年 小 室 在 北 京 短 暂 停 留 之 中, 专 程 前 往 北 京 成 贤 街 去 参 诣 孔 庙 时, 所 见 所 遇 却 大 出 意 外, 他 记 述 道 : 文 庙 为 上 自 天 子 下 至 庶 人 所 崇 敬 之 所, 可 称 古 来 当 国 之 脑 部 者 然 及 诣 见, 则 惊 于 意 想 之 外 到 其 门 则 见 如 乞 丐 模 样 之 丑 陋 男 子 守 其 门, 求 钱, 得 三 四 十 钱 而 后 开 小 门 始 得 入 内 建 筑 固 宏 大, 可 称 先 代 之 规 模 现 今 所 目 击 者, 门 内 草 茫 茫 没 人 之 胫, 人 粪 犬 矢 周 边 狼 藉, 屋 漏 无 葺, 草 埋 不 扫 入 于 殿 内, 见 孔 孟 十 哲 之 灵 牌 皆 没 于 尘 埃 之 中, 或 倒 或 倾, 任 儿 童 之 玩 弄 而 毫 无 顾 者 对 于 举 国 崇 奉 的 孔 圣, 皇 帝 亲 诣 祭 拜 的 京 城 孔 庙, 却 如 此 疏 于 管 理, 任 其 荒 芜, 并 任 门 丁 乞 钱 而 使 人 入 观, 这 种 对 孔 子 不 敬 礼 教 荒 废 的 情 况, 使 他 颇 为 震 惊, 大 感 意 外, 他 不 由 得 与 日 本 崇 奉 神 社 的 制 度 相 比 较 : 如 日 本 之 神 祠, 在 祢 宜 神 主 之 祠 内, 有 仕 丁 为 之 管 理, 日 日 扫 除 然 在 此 地 则 不 见 有 此 类 管 理 之 人, 唯 任 于 一 个 乞 丐 样 之 门 丁, 此 甚 不 可 解 8) 孔 子 是 儒 教 圣 人, 是 中 华 文 教 制 度 的 象 征, 眼 见 孔 庙 如 此 荒 芜 颓 败 的 景 象, 这 位 日 本 人 不 仅 大 感 失 落, 而 且 也 由 此 深 感 中 国 文 教 之 衰 败 制 度 之 废 弛 重 义 轻 利 是 儒 学 提 倡 的 处 事 准 则, 也 为 日 本 武 士 文 人 所 崇 尚 金 子 记 述 中 国 民 间 受 儒 学 教 化 交 际 重 义 的 情 形 道 : 凡 与 朋 友 交 多 尚 义, 趋 利 亦 必 以 义 行 之, 虽 商 贾 亦 然 或 遇 朋 友 来 借 贷, 必 慨 诺 而 无 吝 容, 若 有 吝 者 则 为 众 不 齿 俗 尚 义, 故 有 所 谓 公 忿 者 凡 有 尚 义 者 不 平 之 事, 则 必 群 起 而 攻 之, 必 使 其 合 于 理 而 后 快 9) 这 当 是 他 据 书 籍 所 载 及 听 闻 中 所 得, 对 中 国 人 崇 尚 重 义 轻 利 礼 教 传 统 的 记 述 而 小 室 则 由 自 己 的 见 闻 与 观 察 认 为, 今 日 的 中 国 人 在 现 实 生 活 中 多 贪 利 而 不 顾 义, 所 谓 礼 义 教 化 已 经 名 存 实 亡 了 他 说 : 支 那 人 虽 可 说 也 有 一 二 忧 国 之 人 与 忠 君 之 民, 然 概 而 言 之, 可 说 只 是 贪 欲 爱 钱 之 小 人, 不 知 廉 耻, 无 有 忠 义, 只 谋 私 利, 营 营 汲 汲, 俛 焉 不 他 顾 至 于 孔 孟 之 教, 仁 义 道 德 之 说, 礼 义 廉 耻 之 教, 只 是 其 古 昔 之 事, 今 已 不 行 即 使 在 往 昔, 以 其 教 高 尚, 或 不 行 于 中 人 以 下 见 今 日 之 支 那 人, 即 孔 孟 之 门 生 亦 不 能 行 之 他 由 此 感 叹 道 : 谓 支 那 国 为 有 孔 孟 礼 教 之 国, 实 不 可 信 对 于 我 汉 学 者, 不 外 云 可 惜 亦 实 可 轻 蔑 之 国 情 10) 他 以 其 亲 身 见 闻 认 为 : 支 那 人 见 利 不 知 耻 而 忘 义 11) 他 曾 对 另 一 个 日 本 人 说 : 支 那 国 8)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29 30 页 9) 金 子 弥 兵 卫 编 纂 : 支 那 总 说 卷 六, 第 22 23 页 10)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28 29 页 11)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30 页 5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之 风 俗 可 谓 颓 废 实 甚, 绝 不 似 书 籍 上 所 闻 者, 三 代 之 世 决 不 会 如 此 12), 反 映 了 他 对 中 国 文 明 教 化 从 想 象 到 现 实 的 巨 大 失 落 他 所 见 中 国 人 一 味 贪 利 不 顾 廉 耻 的 行 径, 感 到 可 悯 可 笑, 亦 复 可 惜, 由 此 更 生 出 中 国 已 不 是 孔 孟 礼 教 之 国, 认 为 中 国 实 可 轻 蔑 的 鄙 视 感 受, 不 非 无 因 可 见 教 化 废 弛 与 国 势 衰 败 实 乃 相 辅 相 承 三. 文 人 之 迂 腐 固 陋 文 人 士 绅 是 中 国 的 社 会 精 英 和 文 化 精 英, 他 们 的 素 质 和 能 力 是 中 国 人 素 质 的 集 中 代 表 这 几 位 考 察 者 熟 读 汉 籍 诗 文, 对 中 国 文 士 充 满 敬 仰 他 们 来 到 中 国 后, 也 乐 于 结 交 文 士, 注 意 了 解 文 人 但 他 们 所 真 实 接 触 和 了 解 的 中 国 文 人, 却 和 以 往 的 书 本 想 象 相 去 甚 远 他 们 在 书 中 记 下 了 对 文 人 的 印 象 与 观 感 金 子 长 住 北 京, 这 里 是 文 人 学 士 汇 聚 之 地, 他 与 中 国 文 人 也 有 交 游, 可 以 说 对 中 国 文 人 有 了 相 当 真 切 的 了 解 他 在 书 中 记 述 了 中 国 的 养 士 制 度 : 支 那 之 俗, 士 为 四 民 之 首, 最 受 社 会 推 重 他 也 了 解, 从 儒 经 到 一 般 书 籍, 对 士 人 的 学 养 道 德 都 有 许 多 期 许 然 而, 现 实 中 的 士 人 又 是 什 么 样 子 呢? 金 子 谈 到 他 在 北 京 街 头 初 见 中 国 士 人 的 模 样 : 予 尝 于 街 衢 市 肆 之 间, 看 到 戴 眼 镜 携 长 杆 烟 袋, 行 步 摇 摆, 见 人 辄 拱 其 手, 称 人 则 曰 老 兄, 与 人 接 谈 则 必 引 古 人 用 古 语, 谓 孔 子 曰 如 何, 孟 子 曰 如 何, 或 云 诗, 或 云 书 礼 如 此, 易 如 彼 其 言 或 习 焉 不 察, 或 似 是 而 非, 且 以 文 理 之 字 与 俗 人 论, 俗 人 茫 乎 不 解 其 意, 徒 陪 笑 点 头 而 已, 乃 更 以 为 自 得, 抑 扬 其 声 以 示 斯 文 之 状, 滔 滔 不 绝, 可 厌 至 极 予 问 之 于 人 曰 : 此 何 等 人? 或 指 人 告 予 云 : 某 乃 黉 门 之 秀 才, 某 为 某 榜 之 孝 廉 ( 谓 举 人 ), 文 言 谓 之 为 读 书 之 士, 俗 话 谓 之 为 念 书 之 人 予 笑 而 默 然 13) 这 段 略 带 调 侃 嘲 讽 的 话, 生 动 形 象 地 描 绘 了 读 书 人 只 会 卖 弄 孔 孟 言 论 诗 书 文 理, 故 示 斯 文 而 实 则 迂 腐, 令 人 感 到 可 厌 至 极 的 形 象 除 了 这 类 迂 腐 之 士 外, 金 子 还 列 举 了 其 他 几 类 士 人 : 如 武 断 乡 曲 挑 唆 词 讼 欺 诈 乡 愚 助 强 凌 弱 的 讼 棍 和 劣 绅 ; 假 以 诗 文, 讥 评 时 事, 恃 贫 贱 以 傲 公 卿 的 狂 士 ; 固 执 成 性, 不 达 时 务, 不 谅 人 情, 意 见 偏 僻 的 拘 泥 之 士 ; 矫 为 廉 洁, 不 尽 人 情, 骛 为 高 明, 实 违 世 道 的 隐 士 ; 卑 鄙 丑 劣, 丧 尽 廉 耻, 不 自 尊 重, 败 坏 儒 林, 紊 乱 12)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6 页 13) 金 子 弥 兵 卫 编 纂 : 支 那 总 说 卷 四, 第 3 5 页 58
甲 午 战 争 前 日 本 考 察 者 的 中 国 叙 述 : 中 华 文 教 衰 亡 与 东 亚 秩 序 的 转 折 世 风 的 卑 鄙 之 士 ; 家 无 恒 产, 不 得 不 藉 笔 墨 为 生 涯 者 的 寒 素 之 士 等, 金 子 谓 : 由 此 观 之, 概 可 知 支 那 方 今 士 人 之 风 习 业 事 14) 这 类 迂 腐 恶 劣 拘 泥 无 用 狂 傲 卑 鄙 寒 微 等 种 种 士 像 士 风, 是 士 风 衰 颓 的 腐 败 景 象 这 是 金 子 得 自 见 闻 对 中 国 民 间 士 人 群 像 的 总 体 描 绘, 也 附 有 他 亲 历 印 证 的 真 切 观 感, 这 是 与 他 以 往 由 书 本 上 想 象 的 中 国 士 人 高 雅 形 象 截 然 不 同 的 卑 而 劣 的 形 象 士 人 以 学 问 立 于 世, 金 子 看 到, 中 国 士 人 只 务 空 疏 无 用 之 学, 而 不 讲 经 国 济 世 实 用 之 学 他 说 : 读 书 者 多 以 文 章 诗 赋 相 标 榜, 以 书 画 清 谈 为 高 超, 未 登 仕 版 者, 于 经 济 之 学 问 一 途 多 不 讲 究 15) 金 子 在 北 京 也 结 交 了 几 位 有 学 问 的 高 雅 之 士, 他 记 述 道 : 予 时 与 其 士 人 交 游 接 谈, 阅 其 所 作 之 诗 赋 文 章, 概 皆 学 问 淹 通, 才 华 典 雅, 多 有 可 佩 服 者 这 是 出 于 日 本 汉 学 者 从 学 问 层 面 的 心 悦 诚 服 但 他 随 后 笔 锋 一 转, 指 出 他 们 的 缺 陷 : 惟 所 憾 者, 其 学 未 切 时 要, 故 经 济 之 道 只 可 施 于 域 中 而 不 可 展 于 疆 外, 斯 此 为 欠 16) 他 由 此 看 到, 中 国 士 风 如 此 衰 敝, 知 识 精 英 不 通 时 务, 是 导 致 中 国 衰 弱 的 症 结 所 在 他 指 出 : 盖 士 所 关 家 国 之 兴 败, 惟 善 变 士 风 者, 庶 几 得 乎 兴 国 之 道 17) 士 风 不 变, 则 国 不 会 兴 这 是 这 位 清 醒 的 旁 观 者 对 中 国 社 会 的 一 种 洞 悉 之 见 为 考 察 中 法 战 争 而 短 期 来 华 的 小 室, 在 阅 读 中 文 报 刊 书 籍 的 过 程 中, 对 于 中 国 文 人 作 文 著 述 虚 夸 不 实 的 习 气 有 真 切 感 受 他 参 阅 中 西 文 报 刊 对 于 中 法 战 争 报 道 的 虚 实 比 较, 看 到 中 国 报 纸 的 言 论 多 有 夸 张 不 实 之 处 他 说 : 试 看 今 日 上 海 发 行 之 申 报 沪 报, 支 那 人 所 作 为 木 铎 和 耳 目 者 其 所 记 载 文 字 中, 尊 中 贱 外, 自 夸 自 大, 不 欲 广 通 海 外 之 情 事, 顽 陋 自 安 由 此 可 见 支 那 人 文 章 家 之 弊 习 如 近 来 清 法 事 件 之 报 道, 即 其 一 例 他 说, 有 的 报 道 甚 至 有 夸 大 溢 美 殆 至 令 人 作 呕 者 他 由 此 推 想 以 往 为 日 本 人 所 推 重 的 汉 籍, 不 觉 全 生 疑 问 他 说 : 如 此 之 申 报 沪 报 记 今 日 之 事, 其 记 事 对 照 事 实 而 见 其 悉 为 吹 牛 大 话, 若 至 前 代 之 历 史, 予 辈 亦 不 得 不 费 思 虑 于 判 定 其 真 伪 他 由 中 国 文 章 言 语 习 惯 夸 大 而 推 论 道 : 支 那 人 古 来 之 文 章 言 语, 皆 华 丽 浮 靡 夸 大 倨 傲 支 那 人 之 书 籍 所 记, 四 书 六 经, 乃 至 历 代 史 类, 以 迄 诗 文 之 末, 其 所 说 所 记, 不 得 不 以 十 分 之 一 或 二 十 分 之 一 的 比 例 来 推 量 其 虚 实 他 由 此 感 叹 道 : 予 辈 自 幼 学 习 汉 籍 者, 故 迷 于 支 那 人 之 文 章, 大 多 误 其 实 地 依 此 次 之 支 那 行, 始 破 平 生 之 迷 雾 世 之 汉 学 者 一 游 彼 地, 必 有 所 茫 然 自 失 18) 他 由 中 国 文 人 文 章 言 论 的 虚 夸 不 实 之 习, 进 而 对 历 来 所 崇 尚 的 所 有 汉 籍 全 生 怀 疑, 可 见 其 对 中 国 文 人 虚 夸 文 风 的 震 惊, 及 对 历 来 所 崇 14) 金 子 弥 兵 卫 编 纂 : 支 那 总 说 卷 四, 第 5 7 页 15) 金 子 弥 兵 卫 编 纂 : 支 那 总 说 卷 四, 第 40 页 16) 金 子 弥 兵 卫 编 纂 : 支 那 总 说 卷 六, 第 23 页 17) 金 子 弥 兵 卫 编 纂 : 支 那 总 说 卷 六, 第 8 页 18)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4 6 页 5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敬 的 中 华 文 教 的 巨 大 失 望 中 国 的 文 化 及 精 英 在 他 们 眼 中 的 价 值 与 分 量 已 经 大 大 降 低 了 四. 官 员 之 迂 阔 顽 劣 北 京 是 清 廷 中 枢 之 地, 聚 集 着 许 多 官 员, 他 们 大 多 由 科 举 入 仕, 是 中 国 的 政 治 精 英, 辅 佐 清 廷 执 政 的 参 谋 与 臂 膀, 特 别 是 总 理 各 国 事 务 衙 门 官 员, 更 是 掌 管 外 交 命 脉 的 枢 要 大 员 这 些 官 员 的 素 质 和 才 能, 决 定 着 清 廷 的 决 策 施 政, 也 决 定 着 中 国 的 命 运 这 几 位 日 本 考 察 者 有 的 与 中 国 官 员 有 交 往, 有 的 目 见 耳 闻, 对 中 国 官 员 有 一 定 的 了 解 在 他 们 看 来, 中 国 的 官 僚 制 度 多 有 弊 端, 官 员 素 质 也 很 低 劣 如 金 子 介 绍 清 朝 官 吏 制 度 时 指 出 : 清 朝 为 君 主 独 裁 之 国, 凡 政 事 万 机 皆 国 帝 所 躬 亲 裁 决, 而 诸 王 大 臣 皆 不 过 赞 议 其 间, 其 举 措 赏 罚 必 尊 先 制, 凡 事 皆 稽 成 宪 以 核 之, 核 定 而 后 行 19) 在 这 种 制 度 下, 为 官 者 率 皆 循 奉 律 例, 不 敢 稍 事 变 更, 20) 官 员 的 治 国 办 事 能 力 自 然 低 下 在 来 华 日 本 人 中, 流 传 着 不 少 有 关 中 国 总 理 衙 门 官 员 种 种 愚 顽 可 笑 言 行 的 笑 话, 从 中 可 以 看 到 这 些 日 本 人 眼 中 中 国 官 员 的 形 象 和 素 质 1884 年 在 中 法 刚 刚 开 战 后, 即 专 为 考 察 中 方 战 时 动 态 而 来 华 的 小 室, 在 短 短 两 个 月 的 游 历 中, 就 目 见 耳 闻 了 不 少 有 关 中 国 官 员 对 于 战 事 反 应 能 力 低 劣 的 事 情 如 他 听 到 一 则 总 理 衙 门 官 吏 迂 阔 之 笑 话 谓 : 当 法 舰 炮 击 基 隆, 试 图 攻 占 台 湾 岛 时, 日 本 公 使 馆 最 早 接 到 情 报, 于 是 公 使 馆 以 邻 邦 之 好, 速 遣 使 报 于 总 理 衙 门 而 衙 门 之 属 吏 则 不 予 接 受 之, 且 曰 : 今 日 乃 中 秋 佳 节, 朝 廷 正 开 中 秋 御 宴, 亲 王 大 臣 及 百 官 正 陪 侍 御 宴, 本 衙 门 无 一 人 出 头 主 持, 因 此 不 能 受 理 使 者 曰 : 此 为 贵 国 至 关 重 要 之 大 事, 争 于 一 日 片 时 者, 宜 受 取 而 交 与 大 臣, 虽 御 宴 仪 式 之 重, 亦 难 拒 绝 之 21) 但 最 终 仍 没 有 接 受 总 理 衙 门 作 为 清 廷 外 交 中 枢 机 构, 在 中 国 与 法 国 正 式 宣 战 且 战 事 方 殷 之 际, 全 体 大 员 去 皇 宫 里 参 加 中 秋 御 宴, 衙 门 之 中 无 人 值 守, 而 其 属 吏 亦 竟 如 此 之 迂 阔, 对 如 此 重 要 的 战 况 情 报 不 予 受 理 中 国 官 吏 这 种 对 国 事 漠 然 置 之 毫 无 责 任 感, 全 然 一 片 与 己 无 关 的 冷 漠 态 度, 实 令 小 室 感 到 意 外 与 震 惊, 他 不 禁 慨 然 而 叹 : 故 予 谓, 法 人 若 大 举, 必 能 攻 入 北 京, 而 将 其 军 旗 飘 于 皇 宫 之 上! 22) 1884 年 中 法 开 衅 后, 清 廷 朝 中 主 政 者 皆 执 主 战 态 度 据 小 室 观 察, 这 也 是 清 朝 官 员 愚 19) 金 子 弥 兵 卫 编 纂 : 支 那 总 说 卷 三, 第 1 页 20) 金 子 弥 兵 卫 编 纂 : 支 那 总 说 卷 四, 第 40 页 21)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14 15 页 22)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18 19 页 60
甲 午 战 争 前 日 本 考 察 者 的 中 国 叙 述 : 中 华 文 教 衰 亡 与 东 亚 秩 序 的 转 折 顽 的 表 现 他 在 北 京 日 本 公 使 馆 曾 亲 眼 目 睹 中 国 军 机 大 臣 与 日 本 公 使 谈 论 战 事, 据 他 观 察, 支 那 政 府 之 所 以 断 乎 执 主 战 之 议 者, 并 非 真 正 果 能 有 一 定 之 见 识, 并 非 有 庙 算 为 之 者, 唯 不 外 乎 由 漠 然 空 想, 妄 信 与 法 战 可 胜 察 其 实 状, 有 可 怜 可 笑, 可 悲 千 万 者 23) 他 据 自 己 的 见 闻 观 察 认 为 : 举 支 那 满 廷 之 百 官, 不 知 彼 此 之 强 弱, 无 通 内 外 之 国 势 者, 故 于 其 胜 败 之 数 茫 乎 无 算 24) 小 室 看 到 中 国 军 机 大 臣 出 于 漠 然 空 想 而 妄 言 主 战, 置 国 家 安 危 于 冥 顽 固 陋 之 下, 因 而 发 出 可 怜 可 笑 可 悲 千 万 的 慨 叹 小 室 了 解 到, 中 国 大 臣 如 此 之 妄 信 空 言, 还 由 于 中 国 官 员 上 下 蒙 混, 下 官 虚 报 战 况 而 上 官 不 审 实 情 他 列 举 一 则 电 信 之 笑 话 谓 : 中 法 战 争 台 湾 淡 水 之 战 后, 军 机 大 臣 来 日 本 公 使 馆 谈 论 战 事, 夸 示 淡 水 之 战 中 国 取 得 大 胜 谓 : 是 役 歼 灭 法 兵 三 百 余 人 他 接 着 记 述 道 : ( 日 本 ) 公 使 闻 之 甚 思 不 审, 问 : 淡 水 之 战 法 人 死 伤 不 过 四 五 十 人, 闻 之 各 国 公 报 皆 大 同 小 异 然 今 卿 之 说 有 三 百 余 人, 不 知 谁 所 报 道? 彼 则 认 真 答 道 : 是 台 湾 ( 巡 抚 ) 刘 铭 传 以 电 报 报 告 于 我 政 府 者, 为 确 切 之 说 25) 由 此 可 见 下 官 的 虚 报 与 上 官 的 妄 信 小 室 还 记 述 一 则 见 闻 说 : 福 州 之 一 举 战 败 之 耗, 朝 廷 久 不 知 其 实, 信 ( 福 州 船 政 大 臣 ) 张 佩 伦 等 虚 妄 之 言, 发 事 实 颠 倒 之 上 谕, 徒 蒙 诸 外 人 之 唾 笑 26) 中 国 正 主 持 战 事 的 内 外 大 臣, 对 于 战 况 竟 如 此 之 上 下 妄 言 妄 信, 无 怪 乎 旁 观 的 日 本 人 要 传 为 笑 谈 了 在 小 室 看 来, 造 成 这 种 状 况 的 原 因, 在 于 中 国 政 府 的 上 下 不 通, 他 说 : 现 今 支 那 政 府 之 情 况, 倾 于 其 衰 运, 上 下 悬 隔, 言 路 壅 塞, 边 海 之 事 无 一 如 实 奏 者 27) 正 是 这 种 上 下 悬 隔 言 路 壅 塞 的 腐 败 制 度, 使 得 中 国 已 倾 于 衰 运 小 室 在 中 国 短 短 两 月 的 考 察 见 闻, 看 到 中 国 满 廷 之 百 官, 不 知 彼 此 之 强 弱, 无 通 内 外 之 国 势 者, 目 睹 中 国 官 员 上 下 欺 瞒 置 国 事 于 漠 然 虚 妄 之 间, 深 感 清 朝 已 至 衰 世, 距 离 覆 亡 与 革 命 已 为 时 不 远 了 他 说 : 自 古 衰 世 为 革 命 之 秋, 当 此 帝 王 幼 冲, 不 辨 东 西, 政 令 成 于 寡 妇 妄 臣 之 手, 大 臣 百 官 日 日 苟 且 偷 安, 国 疆 有 警, 抑 不 上 奏, 徒 粉 饰 太 平, 不 忧 国 势 之 日 蹙 28) 他 总 结 当 时 处 于 内 外 危 局 的 支 那 国 势 : 人 而 政 令 日 弊, 百 官 月 怠, 言 路 壅 塞, 贿 赂 公 行, 人 心 离 叛, 百 姓 积 怨 一 朝 有 事, 匪 徒 所 在 蜂 起, 至 有 政 令 无 所 施 之 势 同 时, 外 部 列 强 环 伺, 支 那 国 之 形 势, 目 下 恰 如 俎 上 之 肉, 饿 虎 咆 哮 于 其 四 周 他 预 感 清 朝 覆 灭 亡 国 已 是 指 日 可 待 了 他 更 警 告 日 本 人 : 当 是 时, 日 本 人 当 如 何 处 之? 盖 未 可 明 言, 英 雄 豪 杰 之 士 始 知 其 方 策 29) 23)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13 页 24)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19 页 25)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15 页 26)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14 页 27)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14 页 28)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13 14 页 29) 小 室 信 介 : 第 一 游 清 记, 第 28 29 页 6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在 甲 午 战 争 之 前 十 年 的 中 法 战 争 之 时, 小 室 以 日 本 一 介 寒 素 书 生, 凭 借 在 中 国 的 两 月 见 闻, 即 说 出 了 如 此 一 番 对 清 朝 中 国 痛 彻 骨 髓 的 判 语, 所 言 清 朝 岌 岌 可 危 之 情 势, 所 述 中 国 目 下 恰 如 俎 上 之 肉 饿 虎 咆 哮 于 其 四 周 之 险 恶 处 境, 乃 至 警 示 日 本 人 当 如 何 处 之 的 深 意, 无 不 至 深 至 切! 结 语 如 今 距 离 这 三 个 日 本 考 察 者 来 华 活 动 已 经 过 去 120 多 年 了, 回 顾 当 年 在 近 代 中 日 刚 开 始 交 往 之 时, 他 们 是 较 早 一 批 奉 派 来 中 国 的 考 察 者, 又 是 据 亲 身 见 闻 向 日 本 人 介 绍 真 实 中 国 的 有 心 人, 阅 读 他 们 当 时 的 中 国 叙 述, 梳 理 他 们 的 观 感 与 思 考, 联 想 此 后 不 久 即 爆 发 的 中 日 甲 午 之 战, 以 及 战 争 给 两 国 及 东 亚 造 成 的 延 续 至 今 的 深 刻 创 痛, 其 中 不 乏 仍 有 值 得 我 们 深 思 反 省 的 启 示 首 先, 日 本 考 察 者 在 现 实 中 国 亲 身 感 受 的 对 中 华 文 教 的 失 望 与 失 落, 使 他 们 割 断 了 文 化 心 理 上 与 中 华 文 明 的 血 脉 联 系, 因 而 对 中 国 由 尊 崇 转 为 鄙 视 他 们 向 日 本 国 人 传 达 的 这 一 讯 息, 也 成 为 日 本 人 对 中 国 认 识 的 转 变, 以 及 酝 酿 侵 略 中 国 发 动 甲 午 战 争 的 知 识 资 源, 成 为 日 本 人 以 强 权 秩 序 取 代 华 夷 秩 序 的 文 化 基 础 由 此 可 见, 东 亚 作 为 文 明 共 同 体, 各 国 文 教 制 度 的 兴 衰 文 明 是 否 具 有 生 命 力, 关 系 着 东 亚 国 际 关 系 的 变 化, 决 定 着 东 亚 秩 序 的 转 折 特 别 是 在 外 部 生 存 环 境 发 生 变 化 时, 原 有 文 明 系 统 和 文 教 制 度 如 果 没 有 自 我 更 新 以 有 效 应 变 的 能 力, 就 会 失 去 凝 聚 力 和 吸 引 力, 不 仅 会 使 一 国 内 部 人 心 离 叛, 还 会 引 起 东 亚 国 际 关 系 的 恶 变, 甚 至 导 致 战 争 灾 难 其 次, 日 本 人 中 国 观 的 变 化 及 走 向 侵 略 中 国 的 过 程 表 明, 在 外 部 世 界 发 生 变 动 时, 东 亚 人 如 果 无 视 内 部 的 文 明 联 系, 完 全 抛 弃 共 有 的 文 明 资 源 而 盲 从 于 外 部 强 加 的 秩 序 理 念, 也 会 造 成 恶 果, 给 东 亚 带 来 灾 难 由 这 些 历 史 的 启 示, 来 反 省 当 今 的 东 亚 特 别 是 中 日 关 系, 以 及 东 亚 秩 序 转 折 的 挑 战, 当 今 世 界 正 处 于 由 竞 争 对 抗 的 强 权 秩 序, 向 着 和 平 发 展 的 共 生 秩 序 转 变 如 果 东 亚 诸 国 仍 然 用 以 往 的 强 权 秩 序 来 相 处, 既 不 合 世 界 大 势, 也 会 使 东 亚 陷 于 纷 争 不 已, 甚 至 可 能 引 发 战 争 东 亚 共 有 的 儒 学 和 佛 教 有 一 个 核 心 理 念 是 和 的 精 神, 这 一 精 神 与 和 平 发 展 的 共 生 秩 序 理 念 是 相 通 的, 可 以 作 为 建 构 东 亚 新 秩 序 的 核 心 理 念, 这 应 当 是 将 东 亚 引 向 和 平, 使 东 亚 各 国 和 平 相 处 共 生 发 展 的 正 确 选 择 而 如 今 在 东 亚 固 守 以 往 强 权 秩 序 的 阴 魂 未 散, 甲 午 战 争 的 悲 剧 应 当 是 我 们 的 警 钟 62
갑오전쟁(청일전쟁) 이전 일본 관찰자의 중국 서술 : 중국 문화 교육의 쇠락과 동아시아 질서의 전환 갑오전쟁(청일전쟁) 이전 일본 관찰자의 중국 서술 : 중국 문화 교육의 쇠락과 동아시아 질서의 전환 리창리 (중국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목 차> 머리말 Ⅰ. 현장 역사가의 심리 격차, 책 속의 중국 에서 현실의 중국 까지 Ⅱ. 문화 교육의 쇠락과 문란 Ⅲ. 문인의 고지식함 Ⅳ. 물정 모르는 완고한 관리 맺음말 머리말 중국, 일본, 한반도는 동아시아 이웃국가로서 유구한 역사 문화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일부 역사 전환기에 외부 환경과 각국의 내부적 변화로 상호 관계가 바뀌거나 동아시아 질 서가 재조정되면서 동아시아는 새로운 방향, 즉 평화나 전쟁 또는 우호 관계나 적대 관계 로 변하기도 했다. 지금 동아시아 내부와 세계 정세의 급속한 변화로 또 다시 이와 같은 역사의 전환점에 서있다. 동아시아 질서는 어떻게 변화하며 재구축될 것인가? 어떠한 새로 운 구도를 형성할 것인가? 이에 우리는 신중하고 이성적으로 다가가야 하며, 그 일환으로 서 역사를 반성하고 역사 속에서 경험과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이것이 동아시아 역사학자의 책임이다. 역사를 되돌아 보면 근대 동아시아 질서의 전환점이자 근대 동아시아 전쟁 서막을 알린 상징적 사건은 바로 115년 전에 일어난 청일전쟁이다. 동쪽의 작은 나라 일본이 천조상국 ( 天 朝 上 國 ) 중국을 대파하면서 천백 년 동안 일본이 중국을 숭상했던, 중화문명을 중심으 로 한 화이질서( 華 夷 秩 序 ) 가 흔들리게 되었다. 그 후 일본 주도로 약육강식의 강권질서 ( 强 權 秩 序 ) 가 구축되면서 동아시아 내부는 전쟁과 식민의 기나긴 고통에 빠져들었다. 청일 6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전쟁은 일본이 동아시아에 강권질서 를 확립한 상징이었지만, 일본의 이러한 국책은 그 10~20년 전에 이미 형성되었다. 이 질서의 핵심 원리이자 기반으로서, 중국에 대한 일본 인의 인식과 평가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청일전쟁 이전의 겨 우 20여 년만에, 중국이 여전히 일본을 왜국 섬나라 오랑캐 로 보는 자기 중심적인 화이 질서 의 미망에 빠져있을 때, 일본인들 마음 속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일본인들 마음 속에 서 중국은 배우고 숭상하는 문명 교화의 나라 에서 순식간에 부패 몰락한 야만 낙후의 나 라 로 전락하고, 침략 확장의 우선 목표가 되었다. 단지 중국만 깨닫지 못했을 뿐, 청일전쟁 은 일본인의 바뀐 중국관에 대한 검증이자 중일 정세 전환의 결과물이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짧은 20여 년 만에 일본인의 중국관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 이유는 무 엇일까? 과거 사람들은 대부분 메이지 유신 후 일본인의 문명 가치관이 변했다는 것을 그 이유로 꼽았다. 일본이 서양 근대 문명을 선진 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중국 전통 문명을 야만 과 낙후 로 여겼으며 또한 스스로를 서양 학습의 우등생 이자 동아시아 선진 문명국 으로 자처하여 중국을 대신해 동아시아 새 문명의 중심이 되고 나아가 이웃 국가를 삼켜 동아시아를 장악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아시아 문명 밖의 타자의 입장에서 바 라본 것으로 일본 내부에서 어떻게 동아시아 문명이라는 모체를 부정했는지는 설명하기 어 렵다. 일본과 중국, 한반도는 문화의 맥으로 연결된 문명 공동체 이기 때문이다. 6세기에 중국 불교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파되었고 7세기에 이르러 일본은 사신과 유학생을 당나라로 보내 중국 문화 제도를 배웠으며 도쿠가와( 德 川 ) 막부 때까지 한학을 숭배하였 다. 십여 세기에 걸쳐 중화 문명은 일본의 문화 뿌리이자 문명의 원천이었다. 따라서 중국 은 일본 문화의 모국이라 할 수 있다. 막부시대에서 메이지 초기로 접어들 때 일본 지식인 들은 중화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중화 문명이라는 탯줄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므 로 당시 중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과 평가의 변화는 결코 외부 이해 관계나 논리적 사고 에 따른 결단이 아니며, 중화 문명 즉 일본 자신의 문명 원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감성 적 체득이라는 관문을 뛰어넘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중국에 대한 일본인의 부 정과 경시는 이성뿐 아니라 문화 정서적으로 중화 문명이라는 혈맥을 끊어야 가능했던 것 으로, 이러할 때 비로소 문화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메이지 유신 초기 20여 년 만에 어떻게 중화 문명 혈맥 끊기 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이 당시 일본인의 중국 인식을 뒤돌아 보기 위해 일본인이 남긴 중국 서술 을 조사했다. 이를 통해 당시 일본인이 본 중국 이미지 는 메이지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는 사 실을 발견했다. 과거 일본인이 한나라 서적을 통해 본 책 속의 중국 이미지는 예의와 교 화 그리고 문장과 시부( 詩 賦 )의 유교 중국이었다. 하지만 메이지 이후 10~20년 간 일본 64
갑오전쟁(청일전쟁) 이전 일본 관찰자의 중국 서술 : 중국 문화 교육의 쇠락과 동아시아 질서의 전환 사회에는 한나라 서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중국 서술 문헌이 대거 등장했다. 즉, 중국 현실을 기술하는 중국 수많은 중국 지리 기행 서적이 출간돼 사회 각층에 퍼졌다. 1) 이렇게 중국 땅을 직접 밟고 돌아다니며 살피고 기록한, 견문 체험에 기반한 새로운 텍스트가 보 여주는 중국 사회와 중화 문명의 이미지에는 직관적 감성과 풍토 민속의 분위기가 가득했 으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면서 살아 있는 중국인과 사건들이었기에 일본인에게 더욱 신뢰 할 만한 진실 로 다가갔고, 일본인이 중국과 중화 문명을 재인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 다. 이는 일본 정부가 대중국 전략을 수립하고 동아시아 신질서관을 형성한 지적 기반이기 도 했다. 이런 새로운 중국 서술 과 과거 책 속의 중국 의 차이점을 밝혀낸다면, 당시 중국 인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이 크게 바뀔 수 있었던 비밀을 파헤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당시 일본인이 어떻게 중화 문명 혈맥을 끊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과거 중일 사학계에서 이런 관점에서 중국 지리 기행문을 연구한 성과가 미비하여, 본고는 여기서 1차적 탐색 정도를 시도하고자 한다. Ⅰ. 현장 역사가의 심리 격차, 책 속의 중국 에서 현실의 중국 까지 도쿠가와 막부와 청나라는 장기간 쇄국 정책을 고수했기 때문에 정부 간 정식 교류가 없었다. 막부 말기 개항 이후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중국 고찰과 사업을 목 적으로 관영 상인과 민간인을 대규모 파견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땅을 직접 밟은 실제 관 찰자들이 새로 쓴 중국 서술 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고는 1875년부터 1884년까지 10년 간 즉 일본인이 중국 땅을 밟은 초기 다시 말해 일본인의 중국관이 바뀌기 시작한 초기에 출판된 중국 지리 기행서 세 권을 샘플로, 중국 땅을 처음 밟은 기층 정치 지식 엘리트가 중국 문화 교육 상황에 대해 쓴 견문 기록과 감상 및 평가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그들 눈에 비친 중국 문화 교육과 이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평가를 알 수 있었다. 세 권의 책은 다음과 같다. 1. 가나가키 로분( 神 奈 垣 魯 文 ): 현금 지나 사정, 오후샤( 櫻 楓 舍 ) 메이지 8년(1875년) 2. 가네코 야헤에( 金 子 彌 兵 衛 ): 지나총설 도쿄 주킨도( 中 近 堂 ) 메이지14년(1881년) 3. 고무로 신스케( 小 室 信 介 ): 제일 청유람기 도쿄 지유토( 自 由 燈 ) 출판국 메이지 17년(1884년) 1) 필자 단독으로 청일 전쟁 전 일본에서 출판한 중국 고찰 지리 기행 서적 30여 종을 수집할 수 있었다. 6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이 책들의 저자는 일본 정부가 중국으로 파견한 젊은 하급 관리였다. 가나가키는 1874 년 전후 베이징 주재 일본 기관에 재직했다. 2) 가네코는 1879년 전후 베이징 일본 공사관 에서 3년간 유학한 유학생이었다. 3) 고무로는 1884년 8월 일본 정부가 청불전쟁 상황을 살 피기 위해 중국에 파견한 지식인으로 두 달간 중국에 머물렀다. 4) 이 세 명은 구 막부 시 대에 태어나 메이지 유신 시대를 겪은 젊은이들로 신구 시대의 전환과 메이지 유신 시대의 시련을 겪으며 한학 소양을 쌓았다. 중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한나라 서적을 통해 그들의 머리 속에는 이미 중국의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예악으로 교화하고 인문을 창 달하하는 문명상국 의 이미지였다. 그들은 이렇게 구시대적 상상력과 새로운 관점으로 친숙하지만 낯선 중국 땅을 밟았지 만 가는 곳마다 보고 듣는 현실은 그들의 구시대적 상상력과 새로운 관점과 거세게 충동했 다. 현실의 중국과 그들이 생각했던 중국은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고스케는 중국에서 고작 2개월간 지냈지만 이런 격차로 인해 큰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 그는 청나라 지리, 풍속, 군비 등부터 중국인들의 온갖 일까지 모두 상상 밖이었다.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 지만 그 차이가 청나라만큼 심한 곳은 없다. 면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한나라 서적을 공 부해 중국인의 문장에 매료되었으나 실제는 이와 달랐다. 이번 청나라 행으로 평생의 미혹 을 벗었다 라고 탄식하며 중국 국내를 10리 여행하는 것이 한나라 책을 10년 읽는 것보 다 낫다. 라고 하였다. 5) 다른 두 사람의 기술 곳곳에서도 중국에 대한 이미지와 현실, 책 과 실제, 제도와 삶, 명분과 실질 사이의 엄청난 격차를 느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의 기록에는 중국 서적에 근거하여 중국 문화 교육 제도에 관해 쓴 부분도 있고 현실 상황에 대한 관찰 소회를 적은 부분도 있는데, 양자의 차이가 대부분 컸다. 이런 것들은 그 들 관념 속의 책 속의 중국 과 직접 본 현실의 중국 의 엄청난 격차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런 격차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가? 2) 작가는 서언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은 휴일이나 밤에 등불 아래서 많은 책에서 배껴 기록한 것으로. 원고가 쌓일수록 간행하고 싶은 생각이 점차 간절해졌다. 드디어 못난 글을 덧 붙여 세상에 내놓는다. 책에는 베이징 견문이 대부분이며 중국 정치와 전쟁 내용이 주를 이룬 다. 이로 짐작해 보건대 작가는 1874년 전후 베이징 주재 일본 공사관 등 기관에 재직한 일반 직원일 것이다. 3) 시게노 야스쓰구( 重 野 安 繹 )는 이 책의 서( 序 ) 에서 그를 갓 약관을 넘은 나이 로 중국을 유람하며 3년간 유학했으며 어문에 능통하다. 고 묘사하였다. 책에는 베이징 견문과 일본 공사 관 활동이 대부분이다. 4) 고무로 신스케는 제일 청유람기 34페이지에서 일개 청빈한 서생 이라 자칭하였으니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5)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 1, 4, 6페이지 66
갑오전쟁(청일전쟁) 이전 일본 관찰자의 중국 서술 : 중국 문화 교육의 쇠락과 동아시아 질서의 전환 Ⅱ. 문화 교육의 쇠락과 문란 중화 문명의 기반은 문화 교육 제도이다. 세 사람은 오랫동안 한나라 서적을 읽고 공부 한 학자이기 때문에 고대부터 교육을 중시해 온 중국의 전통을 이해하고 있었다. 가네코는 책에 중국의 교육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후학들에게 글을 가르쳐야 한다. 고로 마을에 는 의학( 義 學 )이 나라에는 관학( 官 學 )이 있고, 또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있어 스스로 학 술을 세워 남들의 자제를 교육한다. 가난한 집 아이라도 먼저 2,3년 글을 배우고 나서 비 로소 직업을 익힌다. 글을 아는 것을 광영으로 알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글을 모르 면 군중의 조롱거리가 된다. 6) 이는 일반 한나라 서적 내용 중 중국 교육을 소개할 때 자주 볼 수 있는 글로, 가네코 가 책에 베껴 기록한 내용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단지 책 속의 유교의 이상적인 교육 제도일 뿐 현실 속에서 이렇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후학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가난한 집 아이라도 먼저 2,3년 글을 배우고 나서 비로소 직업을 익히는 것은 장쑤성( 江 蘇 省 )과 저장성( 浙 江 省 ) 일대의 부유한 도시에서나 가능했고, 가난한 농촌에서는 중인 이상의 가문 에서나 이런 여력이 있었다. 수 많은 가난한 집안의 아이는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도와야 했으므로 공부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가네코가 쓴 이상적 교육 관련 기술은 현실과는 완전히 달랐다. 가나가키는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바탕으로 중국 교육의 현실 상황에 대 해 교육이 부진하고 문맹이 많은 듯이 보였다면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짐작해 보건대, 농가의 20명 중 자신의 이름과 마을 이름을 쓸 줄 아는 이는 한 사람도 없 을 것 7) 이라고 적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 대부분 지역의 실제 교육 모습이었다. 중국은 한 당 이후 공자 유학을 받들어, 지식인은 어렸을 때부터 유교 경전을 읽고 공 자의 제자 라 자칭했다. 명청 시대 조정은 공자에게 최고 예우를 갖추었으며 성인으로 추앙 했으며, 각지에 공자묘를 세워 봄과 가을에 제를 올렸다. 한나라 서적을 많이 접한 일본 문 인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유학을 창설한 공자에 깊은 존경심을 가졌다. 그들 상상 속의 공자는 중국에서 신령처럼 숭배받는 존재였기 때문에 일본 문인은 공자의 조국을 방문하면 공자묘를 찾아 참배하고자 늘 꿈꿔왔다. 하지만 1884년 고무로는 베이징에 잠시 머물던 때 베이징 청셴가( 成 賢 街 ) 공자묘에 참배하러 갔다가 뜻밖의 일을 목격하게 된다. 그를 다음 과 같이 기록했다. 6) 가네코 야헤에: 지나총설 6권, 13페이지 7) 가나가키 로분 편찬: 현금 지나 사정 상권, 33페이지 6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공자묘는 천자부터 서민까지 숭배하는 장소로 예로부터 나라의 두뇌라 불렀다. 하 지만 막상 가서 보니 예상과 전혀 달랐다. 문에 다다르면 거지같이 남루한 남자가 문을 지 키면서 방문객에게 돈을 구걸하며 30~40전을 받고서야 열어준다. 건물은 견고하고 웅장하 여 선대의 규모를 자랑하지만 문 안으로 들어서면 인적 없이 우거진 풀, 구석마다 사람과 개의 오물, 빗물이 새는 지붕,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풀섶에 묻힌 벽뿐이다. 전각으로 들어가면 공자 문하의 십철( 十 哲 ) 영패가 먼지로 뒤덮여 넘어지거나 기울어져, 아이들이 가지고 놀게 내버려두고 관리하는 이 하나 없었다. 온 나라가 받들던 공자, 황제가 친히 참배하던 수도의 공자묘가 관리에 소홀하여 잡초 가 무성하도록 내버려두고 문지기가 돈을 구걸하는 이런 행위는 공자를 무시하고 예교를 등한시하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고무로는 자신도 모르게 일본의 신 사 참배 제도와 비교하였다. 만약 일본의 신사라면 사정( 仕 丁 )이 위패를 모시는 곳을 관 리하며 매일 청소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런 관리인을 보지 못했으며 오직 거지 같은 문지기만 있으니 이해하기 힘들다. 8) 공자는 유교 성인이자 중화 문화 교육 제도의 상징인 데, 공자묘에 잡초가 우거지고 관리가 허술한 것을 직접 보고 이 일본인은 실망을 감출 길 이 없으며, 중국 문화 교육의 쇠락과 제도의 문란을 절감하였다. 중의경리( 重 義 輕 利 ; 의는 중요하고 이는 가볍다)'는 유교의 핵심 사상으로 일본 무사 와 문인들의 숭앙을 받았다. 가네코는 유교 교화와 의( 義 )를 중시하는 중국 민간의 기풍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무릇 친구와의 교우에는 의를 중시하며 이익을 좇을 때도 반드시 의 로서 행한다. 상인도 마찬가지며, 친구가 돈을 빌리고자 할 때 쾌히 승낙하며 쩨쩨하게 굴 지 말아야 한다. 인색하게 군다면 많은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다. 예로부터 의를 중시하니 소위 공분이 있다. 의를 중시하는 자에게 불공평한 일이 있으면 군중이 일어나 이를 공격 하니, 필연적으로 이치에 합당하게 되어 결국 통쾌하게 마무리된다. 9) 이는 그의 서적에 기재되어 있는 견문 감상이자 중국인이 중의경리 하는 예교 전통에 대한 기술이다. 그러나 고무로는 자신의 견문과 관찰을 통해 오늘날 중국인은 현실 속에서 이익을 탐하고 의를 홀 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위 예교문화는 허울뿐인 존재로 전락했다. 그는 중국인 가 운데 나라를 걱정하고 군왕에 충성하는 백성이 한 두 명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돈만 밝히 는 소인일 뿐 염치도 모르고 충의도 없다. 단지 사리를 탐하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할 뿐이 다. 공자의 가르침에 대해서 인의 도덕이라 말하며 예의 염치를 가르치지만 과거의 일일 뿐 더 이상 행하지 않는다. 실상 과거에 이를 고상하다고 가르쳤어도, 중인 이하에 행하지 8)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 29~30페이지 9) 가네코 야헤에: 지나총설 6권, 22~23페이지 68
갑오전쟁(청일전쟁) 이전 일본 관찰자의 중국 서술 : 중국 문화 교육의 쇠락과 동아시아 질서의 전환 않은 경우가 많았다. 지금의 중국인을 보면 공자 문하생조차 이를 행하지 못한다. 라고 하 였다. 그는 이렇게 탄식하였다. 중국을 공자 예교의 나라라고 말하는데 실은 믿을 수 없 다. 한학자로서 애석할 뿐 아니라 실로 경멸한 말한 실정이로다. 10) 그는 자신의 견문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중국인은 이익만 알고 염치는 모르며 의리를 져버렸다. 11) 그는 또 다른 일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풍속은 퇴폐한 풍속으로 책에서 본 것과는 천지 차이이다. 삼대의 세상이라도 이럴 수는 없다. 12) 이는 중국 문명 교화에 대한 그의 상상 과 현실의 괴리가 아주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본 중국인은 모두 이익을 탐하고 염치 를 몰랐다. 가여우면서도 우습고, 한편으로는 애석 하기도 했다. 이렇게 중국은 더 이상 공자 예교의 나라 가 아니었고 이 때문에 중국을 멸시하는 경멸감이 생겼다. 이는 교화의 문란과 국력의 쇠락 간의 불가분의 관계를 보여준다. Ⅲ. 문인의 고지식함 문인 명사는 중국 사회의 지식인이자 문화 지식인으로 그들의 소양과 능력은 중국인 소 양을 대표한다. 위에서 언급한 학자들은 한나라 서적 시문에 능하고 중국 문인을 흠모했었 기에 중국에 온 뒤 문인들과 사귀며 문인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과 교 류하며 알게 된 중국 문인은 과거 책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의 책에는 문인에 대한 인상과 느낌이 기록되어 있다. 가네코는 베이징에 오래 머물렀는데, 문인 학사들이 모이는 곳으었으므로 그 역시 중국 문인들과 교분을 가지며 중국 문인에 대해 상당히 진실된 이해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책에서 중국의 양사( 養 士, 선비 기르기) 제도를 언급하였다. 중국의 풍습에는 선비가 사민( 四 民 )의 우두머리이며 사회에서 가장 존중 받는다. 그는 또한 유학 경전부터 일반 서 적까지 문인의 학문 수양과 도덕에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 속의 문인은 어 떤 모습이었을까? 가네코는 베이징 길거리에서 만난 중국 문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종종 시내 상점에 간다. 안경을 쓰고 긴 담뱃대를 문 사람이 어슬렁거리며 걸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을 만나면 악수를 청하며 형님이라고 부른다. 이야기할 때는 현인 을 들먹이고 고어를 사용한다. 공자왈 맹자왈 떠들어 대거나 시( 詩 ), 서( 書 ), 예( 禮 ), 역 ( 易 ) 등을 읊어댄다. 하도 익숙하여 들춰보지 않아 그럴싸하게 들리나 맞지 않다. 또한 문 10)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 28~29페이지 11)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 30페이지 12)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 6페이지 6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리나 세속을 논하지만 사람들은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맞장구 치며 웃을 뿐 이다. 그러면 득의양양하여 목소리를 높여 쉴 새 없이 떠드니 혐오스럽기 그지 없다. 이에 어떤 이에게 물어보길, 뭐 하는 사람입니까? 혹자는 그를 가리키며 답하길, 누구는 서당의 수재고 누구는 효렴(거인,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니, 문어로는 독서인이고 세간에서는 책읽 는 이라 합니다.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다. 13) 이 단락은 공자왈 맹자왈 시와 서를 으스댈 뿐 점잖은 척하지만 실제로는 고지식하여 사람들에게 극도의 혐오감 을 주는 독서인의 이미지를 풍자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이런 세상 물정 모르는 선비 외에도 가네코는 또 다른 선비들을 예로 들었는데, 권세를 믿고 제멋대로 날뛰는, 꼬드겨서 소송하는, 농촌 백성들을 상대로 사기 치는 사기꾼, 강 자에게 빌붙고 약자를 멸시하는 악덕인사, 시문을 빌려 세상사를 비꼬며 가난과 비천으로 공경( 公 卿 )을 무시하는 미친 선비, 고집 세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며 인정 없고 꽉 막힌 책상물림, 청렴 결백한 척하고 인정이 없으며 홀로 고명한 척하지만 세상 법도를 거스르는 은사, 비열하고 추하며 염치 없는, 스스로 존중하지 않고 유림에 먹칠하며 사회 를 어지럽히는 비열한 선비, 가산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글을 팔아 살아가는 청빈한 선 비 등, 가네코는 이를 통해 중국 작금의 선비의 풍습과 업사( 業 事 )를 대충 알 수 있다. 14) 라고 하였다. 이런 고지식하고 악랄하며, 융통성 없고 쓸모 없으며, 오만하고 비열하 며 비천한 선비의 모습은 쇠락과 부패의 상징이었다. 이는 가네코가 견문을 바탕으로 중국 선비 군상을 전반적으로 묘사한 적나라한 소감으로, 그가 과거에 책에서 본 고아한 중국 선비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비열한 이미지였다. 가네코가 보았듯이, 선비는 학문으로 세상에 서지만 중국 선비들은 쓸모 없는 공허한 학문에 힘쓸 뿐 나라를 다스려 세상을 구하는 실용 학문은 하지 않았다. 그는 지식인은 문장과 시부( 詩 賦 )로 잘난체하고 서화( 書 畵 )와 청담( 淸 淡 )을 최고로 여긴다. 벼슬하지 못 한 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학문에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 15) 라고 했다. 가네코는 베이징 에서 학식 있는 고아한 선비를 몇 명 사귀고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때로 그 선 비들과 교우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지은 시부와 글을 읽으면 학식에 정통하고 재 주가 뛰어나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일본 한학자가 학문적 측면에서 본, 마음 속으로 나온 찬탄이다. 하지만 그는 그 뒤에 붓을 바로 잡고 그들의 단점을 꼬집었다. 아쉬운 점 13) 가나가카 로분 편찬: 지나총설 4권 3~5페이지 14) 가나가카 로분 편찬: 지나총설 4권, 5~7페이지 15) 가나가카 로분 편찬: 지나총설 4권, 40페이지 70
갑오전쟁(청일전쟁) 이전 일본 관찰자의 중국 서술 : 중국 문화 교육의 쇠락과 동아시아 질서의 전환 은 그 학문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으니 나라를 구하는 방법이 역내에서만 펼쳐질 뿐 역 외에는 미칠 수 없다. 이것이 부족하다. 16) 그는 중국 선비의 기풍이 피폐하고 지식층이 세상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이 쇠약해졌다 여겼다. 그는 국가의 흥망성쇠는 오 로지 선비의 기풍 진작에 달려있다. 어쩌면 이는 국가를 진흥시키는 길일지도 모른다. 17) 고 지적하였다. 선비의 기풍이 변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흥할 수 없다는 말은, 제3자의 입장 에서 중국 사회를 냉철하게 통찰한 견해였다. 청불 전쟁을 살피기 위해 잠시 중국에 머물렀던 고무로는 중국어 간행물을 읽던 중 중 국 문인 저서에 실제와 동떨어진 과장된 표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중국어와 서양어 간행물을 참고하여 청불 전쟁 보도의 허와 실을 비교하여, 중국 신문에서 사실을 부풀려 쓴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상하이에서 발행한 신보( 申 報 ) 와 호보( 滬 報 ) 를 살펴보면, 중국인의 글은 교화와 이목을 중시하는 내용 위주 이다. 그들이 쓴 글은 중국을 높이고 외국은 천하다며 스스로 잘난 척한다. 해외의 사정에 는 관심 없고 식견이 우물 안 개구리다. 이에 중국인 문장가의 폐습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청불 사건 보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어떤 보도는 심지어 혐오스러울만큼 부풀려서 쓴 글 도 있다. 라고 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는 과거 일본인이 추종한 한나라 서적에 대해 저절로 의문이 생겨났다. 그는 <신보( 申 報 )>, <호보( 滬 報 )>는 현재의 사건을 적는데 그 기사를 사실과 대조하면 허풍과 과장이 심하니, 전대의 역사의 경우 우리 세대가 그 진위를 파악 하려면 심사숙고해야 한다. 라고 했다. 그는 과장된 중국 문장을 통해 다음과 같이 추론했 다. 예로부터 중국인의 문장은 모두 화려하고 과장되었으며 오만했다. 사서육경부터 역 사서나 시문까지 중국인의 서적 기록을 살펴보면 10분의 1, 20분의 1의 비율로 허실을 가 려야 한다.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 세대는 어려서부터 한나라 서적을 읽어와 중국인 의 문장에 매료되었으나, 대부분 잘못 알고 있었다. 이번 청나라 행으로 평생의 미혹을 비 로소 벗어났다. 세상의 한학자들이 이 곳을 다녀가면 분명 망연자실할 것이다. 18) 그는 중국 문인의 과장된 글 습관을 통해 줄곧 숭상했던 모든 한나라 서적에까지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중국 문인의 과장된 글에 얼마나 놀랐는지 줄곧 존경해 온 중화 문화 교육에 얼마 나 실망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들 눈에 비친 중국의 문화와 지식인들의 가치는 이미 크게 실추되었다. 16) 가나가카 로분 편찬: 지나총설 6권, 23페이지 17) 가나가카 로분 편찬: 지나총설 6권, 8페이지 18)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4~6페이지 7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Ⅳ. 물정 모르는 완고한 관리 베이징은 청나라 조정의 심장으로 많은 관리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대부분 과거를 통 해 벼슬에 오른 이들로 중국 정치 엘리트이자 청나라 조정을 보좌하는 참모 겸 조력자였 다. 특히 총리각국사무아문의 관리는 외교 명맥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고관이다. 이런 관리 의 소양과 자질은 청나라 조정의 정책 결정과 시정을 결정하며 중국의 운명을 결정한다. 위에서 언급한 일본 관찰자 가운데 일부는 중국 관리와 교류하였고, 일부는 직접 견문을 쌓아 중국 관리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있다. 그들이 보기에 중국 관료 제도는 폐단이 많고 관리의 수준도 아주 낮았다. 가네코는 청나라의 관리 제도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청나라는 군주 독재의 나라 이 다. 모든 정사는 황제가 몸소 결정하고 모든 대신은 그 의견에 찬성할 뿐이다. 조치와 상 벌은 선대의 제도를 따라야 하고 모든 일은 기존의 법률과 제도를 살려 결정한 뒤에 행한 다. 19) 이런 제도 하에 관료들은 법률 판례를 따르고 조금도 수정하지 않는다. 20) 그러 므로 관원의 일 처리 능력은 자연히 저하되었다. 중국으로 간 일본인들 사이에는 중국 관 리들의 우매하고 완고한 언행을 비웃는 농담 이 퍼졌다. 이를 통해 일본인들 눈에 비친 중 국 관원의 이미지와 소양을 엿볼 수 있다. 1884년 청불전쟁이 발발했을 때, 고무로는 청나라의 전시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중국으 로 갔다. 짧은 두 달 동안 중국 관원들의 전쟁 대응 능력이 매우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알 게 됐다. 일례로 그는 자신이 들은 총리아문 관리의 귀를 막은 이야기 를 이렇게 적었다. 프랑스 군함이 지룽( 基 隆 )을 포격하여 타이완을 함락시키려 할 때 일본 공사관이 제일 먼 저 정보를 받았다. 일본 공사관은 이웃 나라의 우호로서 신속히 사람을 보내 총리아문에 알렸다. 관리는 정보를 받기는커녕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중추절 연휴라 조정에서 한창 연회가 열리고 있소. 친왕, 대신, 모든 관리가 연회에 참석해 본 관아에는 책임자가 없으니 받을 수 없소. 사자는 이에 이는 귀국의 국가지대사로 화급을 다투는 중대사이니, 대신에 게 전해주시오. 연회가 한창이라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21) 하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총리아문은 청나라 조정의 외교 중추 기관이지만 중국과 프랑스가 정 식 선전포고하고 전쟁을 하는 데에도 모든 관리가 황궁에서 중추절 연회에 참석해 관아에 19) 가나가카 로분 편찬: 지나총설 3권, 1페이지 20) 가나가카 로분 편찬: 지나총설 4권, 40페이지 21)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14~15페이지 72
갑오전쟁(청일전쟁) 이전 일본 관찰자의 중국 서술 : 중국 문화 교육의 쇠락과 동아시아 질서의 전환 는 아무도 없었다. 관리는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제때 활용하지 않았다. 국사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중국 관리의 냉담한 태도는 고무로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개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인이 공격에 나서면 베이 징을 함락해 청나라 황궁에 프랑스 국기를 꽂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22) 1884년 청불 전쟁이 일어나자 청나라 조정의 관리들은 모두 전쟁을 주장했다. 고무로의 관점에서는 이 또한 청나라 관리의 우매한 행동이었다. 그는 베이징 일본 공사관에서 중국 군기대신과 일본 공사의 논의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청나라 정부에서 전쟁을 주장하는 자들은 전쟁 경험이 있어서도 묘안이 있어서도 아니었으며, 그저 헛된 공 상 즉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맹신할 뿐이었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가련하고 우 습고 슬프기 짝이 없다. 23) 그는 자신의 견문을 바탕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중국 관리 들은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모른다. 자국과 외국의 국력도 몰라 승패를 가늠할 수 없 다. 24) 고무로는 헛된 공상 에 사로잡혀 전쟁을 고집하여 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중국 군기대신의 우매함에 가련하고 우습고 슬프기 짝이 없다. 며 탄식했다. 고무로는 중국 대신이 이토록 맹신하고 큰소리치는 이유는 중국 관리들이 서로 속고 속이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하급 관리가 전황을 허위 보고하여 상급 관리는 실정을 알 지 못했다. 그는 전보 이야기 라는 우스개소리를 예로 들었다. 청불 전쟁 당시 타이완 단수 이( 淡 水 ) 전투 이후 군기대신이 일본 공사관을 찾아와 전투에서 중국이 대승을 거뒀다며 자랑했다. 우리 군이 프랑스 병사를 300여 명이나 섬멸했다오. 그는 이어 이렇게 적고 있다. (일본) 공사는 잘 이해되지 않아 물었다. 단수이 전투에서 프랑스인 사상자는 40~50명에 불과하다고, 각국 공보가 다 비슷하게 실었더군요. 그런데 지금 경께서 삼백여 명이라니, 어디서 보도했습니까? 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타이완의 (순무) 류밍( 劉 銘 )이 전보로 우리 정부에 보고한 것이니, 확실하오. 25) 이를 통해 하급 관리의 허위 보고와 상 급 관리의 맹신을 엿볼 수 있다. 고무로는 또 다른 견문을 적었다. 조정은 아직도 푸저우 ( 福 州 )의 패전으로 인한 실제 피해 상황을 모른다. [푸저우 선정( 船 政 ) 대신] 장페이룬( 張 佩 倫 ) 등의 허위 보고만 믿고 사실과 전혀 다른 칙서를 내려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하니 외 부의 비웃음을 산다. 26) 전쟁을 맡고 있는 내외 대신이 상하를 막론하고 전황에 대해 망언 과 맹신을 일삼아 제3자인 일본인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고무로는 이렇게 된 원인은 중 22)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18~19페이지 23)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13페이지 24)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19페이지 25)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15페이지 26)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14페이지 7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국 정부에 상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중국 정부는 운이 쇠하고 있다. 상하 사이에 벽이 있으며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경의 일을 사실대로 고하는 이가 없다. 27) 이렇게 상하가 격리되고 언로가 막힌 부패 한 제도 때문에 중국은 쇠락하였다. 고무로는 중국에서 머물렀던 짧은 2달 동안 조정의 모든 관리는 누가 강하고 누가 약 한지 모르고 서로의 국력을 모른다. 는 사실을 보고 들었다. 중국 관리가 서로 속이고 국사 를 등한시하는 사이에 청나라 쇠락하고 멸망과 혁명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고로 쇠락은 곧 혁명의 때이다. 제왕이 어리고 분별력이 없어 정치와 법령은 부 녀와 신하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문무 백관은 매일 눈앞의 안일만 탐하며 변경에 위급한 일이 생겨도 아뢰지 않는다. 현실을 속이고 짐짓 태평한 체하며 국력이 약해져도 근심하지 않는다. 28) 그는 당시 내우외환에 처한 청나라 정세 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렸다. 법령은 날로 폐단이 극심해지고 모든 관리는 태만하다. 의사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고 공공연하게 뇌물을 주고 받는다. 민심은 멀어지고 백성들의 원망만 쌓인다. 언젠가 일이 터지면 비적들 이 봉기하여 법령이 유명무실하기에 이를 것이다. 또한 외부 열강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 었다. 지금 중국 형세가 도마 위의 고기와 같으니 배고픈 호랑이가 사방에서 포효한다. 그는 청나라의 멸망이 시간 문제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는 일본인에게 재차 경고했다. 그 때가 되면 일본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영웅호걸이라면 그 방책을 알고 있다. 29)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10년 전 청불 전쟁이 일어났을 때, 고무로는 일개 가난한 서생 으 로 중국에서 머문 두 달 동안의 견문을 바탕으로 청나라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위태로운 정세를 언급하였다. 그는 중국을 배고픈 호랑이가 사방에 포효하는 가운데 도마 위에 오른 고기 라며 위태로운 상황을 기술하고, 나아가 일본인에게 어떻게 해야 하 는가 라며 성찰이 필요한 절실한 질문을 던졌다. 맺음말 세 명의 일본 학자가 중국을 다녀간 지도 이미 120여 년이 되었다. 근대 중국과 일본이 교류를 막 시작할 무렵을 되돌아 보면, 이들은 중국을 살피고 연구한 경험자로서 직접 보 27)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14페이지 28)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13~14페이지 29) 고무로 신스케: 제일 청유람기,28~29페이지 74
갑오전쟁(청일전쟁) 이전 일본 관찰자의 중국 서술 : 중국 문화 교육의 쇠락과 동아시아 질서의 전환 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일본인에게 진짜 중국 을 알린 선구자였다. 당시의 중국 서술 을 읽고 그들의 느낌과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이후 발생한 청일전쟁이 연상되고 또한 전쟁으 로 인해 양국과 동아시아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뼈저린 아픔이 생각나며, 이 가운데 우리가 깊이 성찰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먼저, 일본 학자들이 중국 현실에서 느낀 것은 중국 문화 교육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를 통해 그들은 문화 심리적으로 중화 문명과의 혈맥 관계를 끊었고 이에 따라 중국에 대한 존중은 멸시로 바뀌었다. 그들은 일본 국민에게 정보를 전달했고, 이는 일본인의 중국 인식 을 바꾸고 결국 중국을 침략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지적 자산이 되었으며, 또한 일본인이 강권질서 로 화이 질서 를 대체하는 문화적 기반이 되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는 문명 공동체로서, 각국 문화 교육 제도의 흥망성쇠와 문명의 생명력이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동아시아 질서의 전환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외부 생존 환경이 변화할 때 기존 문명 체계와 문화 교육 제도가 스스로 혁 신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단결력과 흡인력은 사라지게 되어, 국내적으로 민심 을 잃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 관계를 악화시키거나 심지어 전쟁이라는 재난까지 초래 하게 된다. 둘째, 일본인의 중국 인식 변화 및 중국 침략 과정을 살펴 보면, 외부 세계가 변화할 때 동아시아인이 내부 문명 관계를 무시하고 공유하는 문명 자원을 외면한 채 외부에서 강 제된 질서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면, 역시 나쁜 결과를 초래해 동아시아에 재난을 가져올 수 도 있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현재의 동아시아, 특히 중일 관계와 동아시아 질서 전환 의 도전을 성찰해야 한다. 현재 세계는 치열한 경쟁의 강권질서 에서 평화 발전하는 공생 질서 로 전환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가 과거의 강권질서 를 고수한다면 세계 흐름에 발맞 추지 못할 뿐 아니라 분쟁이나 전쟁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동아시아가 공유하는 유교와 불교의 핵심 이념은 화합 정신이다. 이 정신은 평화 발전의 공생질서 와 일맥상통한다. 이 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으로, 동아시아를 평화로 이끌어 동아시아 각국이 평화 공존하고 공생 발전하는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해 줄 것이다. 지금 과거 강권 질서 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청일전쟁의 비극은 경종이 되 어야 할 것이다. 7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甲 午 戦 争 前 の 日 本 人 考 察 者 による 中 国 叙 述 中 華 文 教 の 衰 亡 と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李 長 莉 ( 中 国 社 会 科 学 院 近 代 史 研 究 所 ) < 目 次 > 序 言 一 観 察 者 の 心 理 的 落 差 : 書 物 の 中 の 中 国 から 現 実 の 中 国 へ 二 文 教 の 衰 微 と 弛 緩 三 文 人 の 頑 迷 固 陋 四 官 吏 の 愚 かさと 頑 迷 結 語 序 言 中 国 日 本 と 朝 鮮 半 島 は 東 アジアに 隣 り 合 って 存 在 しており 歴 史 や 文 化 に 非 常 に 深 い 繋 がりを 持 っている いくつかの 歴 史 の 転 換 期 において 各 国 を 取 り 巻 く 外 的 環 境 及 び 各 国 内 部 の 変 化 は 往 々にして 相 互 関 係 の 変 化 を 引 き 起 こし 東 アジア 秩 序 の 再 構 築 を 導 き これによって 東 アジアを 新 たな 方 向 へと 引 き 入 れることになった 平 和 或 いは 戦 争 へ 友 好 関 係 或 いは 敵 対 関 係 へと 現 在 東 アジア 内 部 及 び 世 界 情 勢 の 急 激 な 変 動 に よって 東 アジアは 再 びこのような 歴 史 の 転 換 期 に 差 し 掛 かっている 東 アジア 秩 序 はどの ような 変 化 と 再 構 築 を 起 こし どのような 新 しい 枠 組 みを 作 り 上 げることになるのだろうか?こ れに 対 して 我 々は 慎 重 かつ 理 性 的 に 対 応 せねばならない その 中 の 重 要 な 一 端 を 担 う 立 場 にある 者 として 歴 史 を 顧 み 歴 史 から 経 験 と 知 恵 を 学 ばなければならない これこ そが 東 アジアの 歴 史 学 者 が 担 うべき 責 任 なのである 歴 史 を 振 り 返 ってみれば 近 代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期 とは 近 代 東 アジア 戦 争 のプロ ローグを 飾 った 今 から115 年 前 の 日 中 甲 午 戦 争 である 東 隣 の 小 国 である 日 本 は 天 朝 上 国 ( 天 朝 上 国 ともに 中 国 の 外 国 に 対 する 自 称 以 下 ポイント 下 げは 全 て 訳 者 76
甲 午 戦 争 前 の 日 本 人 考 察 者 による 中 国 叙 述 中 華 文 教 の 衰 亡 と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注 ) たる 中 国 を 大 いに 破 った これより 千 百 年 来 の 日 本 の 中 国 に 対 する 尊 崇 と 中 華 文 明 を 中 心 に 据 えた 華 夷 秩 序 は 改 まり 日 本 主 導 で 弱 肉 強 食 の 強 権 的 秩 序 が 打 ち 立 てられ 東 アジア 内 部 を 戦 争 と 植 民 地 化 の 長 期 にわたる 災 禍 の 中 に 陥 れることになった のである 甲 午 戦 争 は 日 本 が 東 アジアに 強 権 的 秩 序 を 確 立 したことに 証 であった が しかし 日 本 のこの 国 策 理 念 はそれより 十 ~ 二 十 年 前 にすでに 形 成 されていた そして この 秩 序 の 核 心 と 基 礎 は 日 本 人 の 中 国 に 対 する 認 識 と 評 価 に 根 本 的 な 変 化 が 起 こった ことにある 明 治 維 新 後 から 甲 午 戦 争 前 のわずか 二 十 数 年 の 間 中 国 の 政 府 及 び 人 々 が 依 然 として 自 己 を 世 界 の 中 心 とし 日 本 を 倭 国 島 夷 とみなす 華 夷 秩 序 の 妄 想 のうちに 深 く 沈 んでいる 時 期 に 日 本 人 にとって 中 国 はすでに 過 去 の 敬 い 師 とすべき 文 明 教 化 の 国 から 腐 りきって 没 落 した 野 蛮 な 後 進 国 へと 一 変 していただけでなく 侵 略 と 国 土 拡 張 の 主 要 な 目 標 とされていたのである 甲 午 戦 争 は まさしく 日 本 人 のこの 中 国 観 の 変 化 の 現 れであり 日 中 の 関 係 性 の 枠 組 みが 転 換 した 結 果 であって ただ 中 国 の 人 々のみが 全 くこれを 知 らなかった では 日 本 人 の 中 国 観 はなぜこんなわずか 二 十 数 年 の 間 に かくのごとき 根 本 的 な 大 転 換 を 生 じることになったのだろうか これまでの 人 々は 多 くその 原 因 を 明 治 維 新 後 の 日 本 人 の 文 明 価 値 観 が 変 化 したことに 帰 してきた 日 本 人 は 西 洋 の 近 代 文 明 を 先 進 と 認 識 し 中 国 の 伝 統 文 明 を 野 蛮 で 後 進 的 であると 見 なした また 自 らを 西 洋 を 学 ぶ 優 等 生 ととらえ 東 アジアの 先 進 文 明 国 の 地 位 に 自 らを 置 いた その 結 果 中 国 に 取 って 代 わって 東 アジアの 新 文 明 のリーダーとなり 最 終 的 には 近 隣 諸 国 を 併 呑 し て 東 アジアを 支 配 しようと 欲 したのだ と このような 見 解 は 東 アジア 文 明 の 外 部 から 着 目 し 観 察 した 結 果 であり また 日 本 がいかに 内 部 から 東 アジア 文 明 の 伝 統 という 母 体 を 否 定 するに 到 ったのかを 説 明 することは 困 難 である しかし 結 局 のところ 日 本 は 中 国 及 び 朝 鮮 半 島 は 文 化 的 血 脈 を 通 じた 文 明 共 同 体 である 六 世 紀 に 中 国 仏 教 が 朝 鮮 半 島 を 経 て 日 本 に 伝 わってから 七 世 紀 には 日 本 の 遣 唐 使 と 留 学 生 が 中 国 を 訪 れて 中 国 の 文 化 や 制 度 を 学 び 模 倣 し その 後 徳 川 幕 府 時 代 における 漢 学 の 尊 崇 に 到 るまでの 実 に 十 数 世 紀 の 長 きにわたって 中 華 文 明 は 日 本 の 重 要 な 文 化 基 盤 であり 文 明 の 源 泉 であっ た その 意 味 で 中 国 は 日 本 文 化 の 母 国 といってもよい 幕 府 の 時 代 から 明 治 の 時 代 へ と 移 り 変 わったばかりの 頃 の 日 本 文 化 人 は そのほとんどが 中 華 文 明 の 薫 陶 をうけており 中 華 文 明 と 紐 帯 を 繋 げていた そのため この 時 期 の 日 本 人 の 中 国 に 対 する 認 識 と 評 価 の 転 換 は 決 して 単 純 に 外 部 からの 利 害 関 係 や 論 理 から 推 断 できるようなものではない 中 華 文 明 日 本 自 身 の 文 明 の 源 でもある に 対 する 再 観 察 と 主 観 的 理 解 を 超 えてこ 7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そ 初 めて 成 し 遂 げられる 言 い 換 えれば 日 本 人 の 中 国 に 対 する 否 定 と 蔑 視 は 理 性 の 上 だけでなく 文 化 的 感 情 の 上 でも 中 華 文 明 というこの 血 脈 を 断 ち 切 って ようやく 心 理 的 に 受 け 入 れ 認 めることができるものなのである では 明 治 維 新 初 期 のわずか 二 十 年 あま りの 間 で 中 華 文 明 の 血 脈 との 断 絶 のプロセスはどのように 完 成 されたのだろうか? この 時 期 の 日 本 人 の 中 国 に 対 する 認 識 をふりかえり 当 時 の 日 本 人 が 残 した 中 国 に 関 わる 叙 述 ( 以 下 中 国 叙 述 ) を 点 検 し 直 すと 彼 らが 見 た 中 国 像 がすでに 明 治 以 前 とかけ 離 れてしまっていることに 気 づく それ 以 前 の 日 本 人 が 主 に 漢 籍 を 通 して 見 ていた 書 物 の 中 の 中 国 は 礼 儀 によって 教 化 され 文 章 詩 賦 の 盛 んな 儒 学 の 国 で あった しかし 明 治 以 後 の 十 ~ 二 十 年 の 間 に 日 本 社 会 には 伝 統 的 な 漢 籍 とは 全 く 異 なった 新 たな 中 国 叙 述 書 物 が 大 量 に 出 現 した すなわち 数 十 ~ 百 冊 あまりの 現 在 の 中 国 の 状 況 を 記 述 した 中 国 地 方 誌 紀 行 文 などで それが 民 間 で 続 々と 出 版 され 社 会 の 各 階 層 に 流 布 した 1) これらは 実 際 に 中 国 に 行 って 観 察 し 旅 した 人 々によって 書 かれ たもので 彼 ら 自 身 の 見 聞 を 基 礎 にした 新 たな 書 物 が 描 いた 中 国 社 会 と 中 華 文 明 の 姿 は 生 々しい 感 性 と 風 土 や 民 間 の 雰 囲 気 に 満 ちており 現 実 的 かつ 具 体 的 で 生 き 生 きとし た 中 国 の 人 々や 事 象 であった それゆえに 日 本 人 はそれが 信 じるべき 真 実 であると 感 じさせられ 同 時 に 日 本 人 の 新 たな 中 国 と 中 華 文 明 に 対 する 認 識 の 重 要 な 根 拠 となっ た そしてさらには 日 本 政 府 が 対 中 戦 略 を 制 定 し 東 アジアの 新 たな 秩 序 を 形 成 するた めの 知 識 の 基 礎 とも 成 ったのである もしこれらの 新 しい 中 国 叙 述 と 過 去 の 書 物 の 中 の 中 国 の 違 いを 明 らかすることができれば この 時 期 の 日 本 人 の 中 国 に 対 する 認 識 が 大 転 換 を 起 こした 原 因 の 所 在 を 示 すための 一 助 となるであろう また 当 時 の 日 本 人 が いかに 中 華 文 明 の 血 脈 と 断 絶 したのかを 理 解 する 助 けともなるはずである 残 念 なこと に これまでの 日 中 両 国 の 歴 史 学 界 にはこの 方 面 から 中 国 地 誌 や 紀 行 文 を 研 究 した 成 果 が 甚 だ 少 ない そこで 本 稿 においてはこれに 対 する 初 歩 的 な 考 察 を 行 う 一 観 察 者 の 心 理 的 落 差 : 書 物 の 中 の 中 国 から 現 実 の 中 国 へ 日 本 の 徳 川 幕 府 時 代 と 中 国 の 清 朝 期 は 双 方 の 長 期 にわたる 鎖 国 政 策 の 実 行 によっ て 政 府 による 正 式 な 国 交 はなかった 幕 末 の 開 港 後 特 に 明 治 維 新 以 後 になって 日 1) 現 在 筆 者 の 集 め 得 たものだけで 甲 午 戦 争 前 に 日 本 で 出 版 された 中 国 を 観 察 した 地 誌 や 紀 行 文 の 書 籍 は すでに 三 十 余 りにのぼる 78
甲 午 戦 争 前 の 日 本 人 考 察 者 による 中 国 叙 述 中 華 文 教 の 衰 亡 と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本 政 府 は 大 量 の 官 民 を 中 国 に 派 遣 して 観 察 し 発 展 することを 奨 励 しはじめ ここにおいてよ うやく 実 際 に 中 国 の 土 を 踏 んだ 観 察 者 によって 新 たな 中 国 叙 述 が 書 かれ 始 めた 本 稿 では1875 年 から1884 年 までの 十 年 間 日 本 人 がようやく 中 国 にやってきだした 頃 であり 同 時 に 日 本 人 の 中 国 観 が 変 化 し 始 めた 重 要 な 時 期 でもある に 出 版 された 来 華 観 察 者 によって 書 かれた 三 冊 の 中 国 地 誌 紀 行 文 を 取 り 上 げる 初 めて 中 国 に 足 を 踏 み 入 れた 日 本 の 政 治 組 織 の 末 端 に 位 置 するエリート 達 による 中 国 の 文 教 状 況 に 対 す る 見 聞 や 記 述 印 象 や 論 説 から 彼 らの 目 に 映 った 中 華 文 教 がどのような 状 況 にあったの か また 彼 らはそれに 対 してどのように 認 識 し 判 断 したのかを 考 察 する その 三 冊 とは 1 神 奈 垣 魯 文 編 纂 : 現 今 支 那 事 情 桜 楓 舎 明 治 八 年 (1875 年 ) 版 2 金 子 弥 兵 衛 編 纂 : 支 那 総 説 東 京 中 近 堂 明 治 十 四 年 (1881 年 ) 版 3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東 京 自 由 灯 出 版 局 明 治 十 七 年 (1884 年 ) 版 これら 三 冊 の 著 者 はいずれも 日 本 政 府 が 中 国 に 派 遣 した 若 手 の 下 級 官 吏 である 神 奈 垣 は1874 年 前 後 に 北 京 の 官 庁 で 駐 在 員 の 任 にあった 2) 金 子 は1879 年 前 後 に 北 京 公 使 館 で 三 年 間 留 学 した 留 学 生 であった 3) 小 室 は1884 年 8 月 日 本 政 府 によって 中 仏 戦 争 の 状 況 を 観 察 するために 派 遣 された 人 物 で 中 国 で 二 ヶ 月 を 過 ごした 4) 彼 ら 三 人 は みな 旧 幕 府 時 代 に 生 まれ 明 治 維 新 の 時 期 に 成 長 した 若 者 で 新 旧 の 時 代 の 転 換 期 を 経 験 し 明 治 維 新 の 洗 礼 を 受 け 等 しく 比 較 的 優 れた 漢 学 の 素 養 を 持 っていた 彼 らは 中 国 に 来 る 前 知 識 として 頭 に 漢 籍 などの 書 物 を 通 して 形 作 られた 中 国 像 すなわち 礼 楽 によって 教 化 された 文 明 上 国 のイメージを 持 っていた 彼 らはこの 古 いイメージと 新 しい 見 識 をもって 熟 知 しているようで 見 知 らぬようでもある 中 国 の 地 に 足 を 踏 み 入 れた しかし 彼 らが 訪 れた 地 で 目 にしたもの 耳 にしたものは 却 って 彼 らの 古 いイメージと 新 しい 見 識 と 激 烈 な 衝 突 を 起 こすことになる 現 実 の 中 国 と 彼 らが 想 像 していた 中 国 の 間 には 非 常 に 大 きな 落 差 があり 甚 だしきに 至 っては 正 反 対 です 2) 著 者 は 緒 言 の 中 で 次 のように 述 べている: この 原 稿 は 休 日 或 いは 夜 間 の 灯 の 下 で 書 い たものである 諸 図 説 中 から 抄 録 したものがどんどん 貯 まってきたので 刊 行 したいと 思 うようにな り 遂 に 愚 説 を 附 して 世 に 流 布 せしめることにした 北 京 での 見 聞 が 多 く 記 されるほか 中 国 の 政 治 軍 事 に 関 わる 内 容 にも 富 む それらの 記 事 から 著 者 は 恐 らく1874 年 前 度 に 北 京 公 使 館 などの 官 庁 で 働 いていた 一 般 職 員 であると 推 測 される 3) 重 野 安 繹 によって 書 かれた 当 該 書 の 序 には 彼 を 齢 弱 冠 をこえたばかりにして 支 那 に 遊 び 留 学 すること 三 年 その 言 葉 に 通 じていた と 称 している 著 書 中 には 北 京 における 見 聞 と 日 本 公 使 館 の 活 動 についての 記 事 が 多 い 4) 小 室 信 介 は 第 一 遊 清 記 第 34 頁 において 一 介 の 貧 しい 書 生 と 自 称 している 当 時 ま だ 若 かったに 違 いない 7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らあった 小 室 は 中 国 でわずかに 二 ヶ 月 間 観 察 したのみであったが それだけに 却 ってこ の 落 差 による 心 理 的 衝 撃 を 強 く 受 けることになった 彼 は 言 う 清 国 の 地 理 人 情 風 俗 兵 備 等 のことから 支 那 人 民 に 関 わる 全 てのことに 至 るまで ほとんど 意 外 でなかった ことはないと 言 ってもよいくらいである 古 い 格 言 に 百 聞 は 一 見 にしかず というが その 見 と 聞 の 差 が 支 那 ほど 甚 だしいものはあるまい そして 彼 は そのことによって 感 嘆 する 私 たちのように 幼 い 頃 から 漢 籍 を 学 んだ 人 間 は 支 那 人 の 文 章 を 愛 する 余 り その 実 態 を 大 いに 誤 解 している この 度 の 支 那 行 きによって はじめて 支 那 を 覆 ってい たベールがはがされることになった ゆえに 彼 は 支 那 の 内 地 を 十 里 旅 行 することは 漢 籍 を 十 年 読 むのに 勝 る と 述 べる 5) 残 りの 二 人 の 記 述 中 にも しばしば 彼 らの 中 国 のイメージと 現 実 の 間 書 物 と 実 際 の 間 制 度 と 生 活 の 間 名 と 実 の 間 にある 巨 大 な 落 差 に 対 する 感 慨 を 見 いだすことができる 同 時 に 彼 らの 記 述 には 往 々にして 中 国 書 籍 に 基 づいた 中 国 文 教 制 度 に 関 する 記 述 があるのみならず 現 実 の 状 況 に 対 する 観 察 によって 得 られた 記 述 もあり なおかつその 両 者 の 差 異 は 極 めて 大 きい 場 合 が 多 い これらの 現 象 はすべて 彼 らが 元 来 頭 の 中 に 持 っていた 書 物 の 中 の 中 国 と その 目 で 見 た 現 実 の 中 国 の 間 の 巨 大 な 落 差 を 反 映 している では このような 落 差 は 具 体 的 にどこに 表 れているのだろうか? 二 文 教 の 衰 微 と 弛 緩 中 華 文 明 の 基 礎 は 文 教 制 度 である この 三 名 の 漢 籍 に 通 じた 日 本 人 観 察 者 たちは おのずと 中 国 古 来 の 教 育 を 重 んじる 伝 統 を 理 解 していた 金 子 は 著 書 の 中 で 中 国 の 教 育 状 況 について 次 のように 述 べている およそ 人 々は 貧 富 貴 賎 を 問 わず その 師 弟 に 必 ず 教 育 を 受 けさせる 故 に 地 方 には 義 塾 があり 国 には 国 立 の 学 校 がある また 教 師 が 自 分 で 私 学 を 開 き 子 供 達 に 学 業 を 教 えることもある 貧 乏 人 の 子 供 であっても 必 ずまず 二 三 年 の 教 育 を 受 けてか ら 初 めて 職 業 に 就 く 文 字 を 知 っていることは 栄 誉 であり 知 らないことは 恥 なのであ る もし 文 字 を 知 らぬ 者 がいれば みなその 人 を 指 さして 笑 う 6) 5) 小 室 信 介 第 一 遊 清 記 第 1 4 6 頁 6) 金 子 弥 兵 衛 編 纂 : 支 那 総 説 巻 六 第 13 頁 80
甲 午 戦 争 前 の 日 本 人 考 察 者 による 中 国 叙 述 中 華 文 教 の 衰 亡 と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これは 一 般 の 漢 籍 中 にしばしば 見 られる 中 国 の 教 育 を 紹 介 する 文 章 で 金 子 のこの 文 章 は 明 らかにそういった 書 物 から 抄 録 である しかし これはただ 書 物 中 にのみ 存 在 す る 儒 学 が 目 指 した 理 想 的 な 教 育 制 度 であって 現 実 にはこのような 貧 富 貴 賎 を 問 わ ず 必 ずその 師 弟 に 教 育 を 受 けさせ 貧 乏 人 の 子 供 であっても 必 ずまず 二 三 年 の 教 育 を 受 けてから 初 めて 職 業 に 就 く という 状 況 は わずかに 江 浙 一 帯 の 富 裕 な 都 市 部 に おいてのみ 見 られ 普 通 の 貧 しい 農 村 部 では 中 流 以 上 であってはじめて 教 育 のための 余 力 を 持 った 数 のうえでは 大 多 数 の 貧 家 に 至 っては 子 供 は 幼 いときから 家 の 仕 事 を 手 伝 わねばならず 勉 強 に 費 やすべき 余 力 など 持 たなかったのである よって 上 述 の 金 子 の 書 物 から 得 た 教 育 に 関 する 記 述 は 現 実 と 極 めて 大 きな 隔 たりがある それに 対 して 神 奈 垣 は 自 分 自 身 の 体 験 と 観 察 に 基 づき 中 国 における 教 育 は 現 実 的 には 不 振 の 状 況 に あり 文 盲 が 非 常 に 多 いことについて 著 書 のなかで 次 のように 言 う 教 育 が 行 われざ ること 殊 更 に 甚 だしい 推 察 するに 田 舎 の 人 でその 姓 名 と 村 名 を 書 くこと 出 来 る 者 は 二 十 人 中 一 人 いるかいないかだ 7) これこそが 中 国 の 大 部 分 における 教 育 の 実 態 で あった 中 国 は 漢 唐 以 来 孔 子 がひらいた 儒 学 を 尊 崇 してきた 知 識 人 は 幼 いときから 儒 教 の 経 典 に 親 しみ 孔 子 門 下 の 弟 子 と 自 称 した 明 清 の 朝 廷 は 孔 子 を 至 高 の 存 在 として 礼 遇 し 王 に 封 じ 聖 人 と 称 して 各 地 に 孔 子 廟 を 勅 命 によって 建 立 させ 春 秋 二 度 にわたっ て 祭 祀 を 執 り 行 うなど 孔 子 に 対 して 周 到 きわまる 敬 意 を 払 った このことに 対 して 漢 籍 に 通 じた 日 本 の 文 人 は 中 国 人 は 儒 学 の 祖 である 孔 子 に 対 する 尊 敬 も 深 めているのだと 認 識 し 孔 子 は 中 国 では 神 と 同 じような 信 仰 を 受 けているに 違 いないと 考 えていた そのため 孔 子 の 故 郷 である 中 国 に 来 れば 孔 子 廟 に 参 詣 し 孔 子 像 に 拝 謁 にするのは 彼 らにとって 当 然 の 流 れであった しかし 1884 年 の 北 京 短 期 滞 在 中 成 賢 街 を 通 って 孔 子 廟 に 参 詣 し た 小 室 が 眼 にしたのは ひどく 意 外 な 光 景 であった 彼 は 以 下 のように 記 している 文 廟 は 上 は 天 子 から 下 は 庶 民 にいたるまで あまねく 人 々の 尊 敬 する 場 所 であり 古 来 よりこの 国 の 根 幹 と 呼 ぶべき 重 要 な 場 所 であった しかるに 実 際 に 参 詣 して みると 予 想 外 の 事 を 目 にして 驚 いた その 門 に 着 くと 乞 食 のような 醜 い 男 が 門 番 をし ており 彼 は 金 を 要 求 してきた 三 四 十 銭 を 与 えたところではじめて 小 さな 門 を 開 いてく れ やっと 中 に 入 ることができた 文 廟 の 建 物 はもともと 大 きく 立 派 で 孔 子 を 祀 るにふ さわしい 規 模 を 持 っていた ところが 現 在 では 境 内 には 雑 草 が 人 のすねを 隠 すほど 7) 神 奈 垣 魯 文 編 纂 : 現 今 支 那 事 情 巻 上 第 33 頁 8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の 高 さまで 生 い 茂 り 人 糞 や 犬 の 糞 がそこかしこに 散 らばり 建 物 はぼろぼろなのに 修 理 もされず 草 に 埋 もれたままで 掃 除 もされていない 中 に 入 ると 孔 孟 十 哲 の 像 はみ な 埃 にまみれ なかには 傾 いたり 倒 れたりしているものさえあったが 子 供 たちが 好 き 勝 手 に 遊 んでいても 顧 みる 者 は 誰 もいないのである 国 を 挙 げて 尊 ばれているはずの 孔 子 と 孟 子 皇 帝 が 自 ら 参 詣 することもあるであろう 都 の 孔 廟 が かくのごときいい 加 減 な 管 理 をされ 荒 れ 放 題 そのうえ 門 番 は 参 詣 者 から 金 を 取 っている このような 孔 子 に 対 する 不 敬 と 礼 教 の 荒 廃 という 状 況 は 彼 をひどく 驚 か せ 意 外 な 思 いを 抱 かせた 彼 は 日 本 における 神 社 信 仰 と 比 較 せずにはいられなかっ た 日 本 の 神 社 は 禰 宜 や 神 主 が 中 におり 小 間 使 いによって 管 理 され 日 々 掃 除 さ れている ところがこの 地 ではそのような 管 理 する 人 々の 姿 はなく たった 一 人 の 乞 食 のよう な 門 番 に 任 されている まこと 不 可 解 である 8) 孔 子 は 儒 教 における 聖 人 であり 中 華 文 教 制 度 のシンボルである 孔 廟 のかくまでに 荒 廃 した 様 子 を 見 て この 日 本 人 は 大 いに 失 望 したのみならず 中 国 における 文 教 の 衰 退 と 制 度 の 弛 緩 を 痛 感 した 義 を 重 んじ 利 を 軽 んず とは 儒 教 が 提 唱 する 行 動 理 念 であり 日 本 の 武 士 や 文 人 も 尊 ぶところのものであった 金 子 は 中 国 の 人 々の 儒 学 による 教 化 と 交 際 においては 義 を 重 んずる 状 況 について 次 のように 記 述 する およそ 友 人 同 士 の 交 友 においては 義 を 尊 び 利 益 追 求 もまた 必 ず 義 をもって 行 われる 商 人 であってもそれは 変 わらない 友 人 が 借 金 に 来 れば 必 ず 快 諾 して 出 し 惜 しみしない 仮 に 出 し 惜 しみするような 者 がいれば その 人 は 周 りから 馬 鹿 にされるのである 民 間 がこのように 義 を 尊 ぶために 所 謂 公 憤 ものがある 義 を 尊 ぶ 者 に 不 公 平 な 事 が 起 これば 民 衆 はこぞってそれを 攻 撃 し 道 理 に 合 うようにせずにはおかない 9) これはまさしく 彼 が 書 籍 の 記 載 及 び 伝 聞 によって 得 た 中 国 人 の 重 義 軽 利 を 尊 ぶ 礼 教 的 伝 統 についての 記 述 である しかし 小 室 は 自 己 の 見 聞 と 観 察 によって こんにちの 中 国 人 は 現 実 生 活 に 於 いては 利 をむさぼり 義 を 顧 みない 所 謂 礼 儀 教 化 は 有 名 無 実 のものとなっている と 認 識 した 彼 は 言 う 支 那 人 には 確 かに 一 二 の 憂 国 の 人 と 忠 君 の 民 はいる しかし 全 体 を 見 れば 貪 欲 で 拝 金 主 義 の 小 人 が 大 多 数 を 占 めている 彼 らは 恥 を 知 らず 忠 義 を 知 らず ただ 私 利 を 図 り 齷 齪 と して 他 を 顧 みない 孔 孟 の 教 え すなわち 仁 義 道 徳 や 礼 儀 廉 恥 の 教 えにいたっては すでに 過 去 のものとなってしまい 今 は 行 われていない よしんば 過 去 であったとしても そ 8)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29 30 頁 9) 金 子 弥 兵 衛 編 纂 : 支 那 総 説 巻 六 第 22 23 頁 82
甲 午 戦 争 前 の 日 本 人 考 察 者 による 中 国 叙 述 中 華 文 教 の 衰 亡 と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の 教 えは 非 常 に 高 尚 であるから 中 流 以 下 の 人 々の 間 には 行 われていなかったのかもしれ ぬ 今 日 の 支 那 人 を 見 ると 孔 孟 の 門 下 に 学 ぶ 人 々でさえその 教 えを 実 行 できておら ぬ 彼 はこの 事 実 に 嘆 息 して さらに 次 のように 述 べる 支 那 国 をもって 孔 孟 礼 教 の 国 と 称 するのは まことに 信 ずべからざることである 私 のような 漢 学 者 にとって 残 念 では あるが また 非 常 に 軽 蔑 すべき 国 情 と 言 わざるを 得 ない 10) 彼 は 自 らの 見 聞 に 基 づい て 支 那 人 は 利 を 見 れば 恥 を 忘 れ 義 を 忘 れる 11) との 見 解 を 持 った 彼 はかつて 別 の 日 本 人 に 向 かって 支 那 国 の 風 俗 は 退 廃 まことに 甚 だしい 書 物 から 知 っていたものと は 似 ても 似 つかない 三 代 の 後 も 決 して 書 物 に 書 かれているような 状 況 になることはないだ ろう 12) と 語 っている この 言 葉 には 彼 が 中 国 文 明 教 化 の 現 実 を 知 った 時 に 感 じた 巨 大 な 失 望 感 が 反 映 されている 彼 が 目 にした 中 国 人 のひたすら 利 を 貪 り 廉 恥 心 のかけらもな い 行 動 は 彼 に 気 の 毒 であり 可 笑 しくもあり また 同 時 に 残 念 である とも 思 わせ た 中 国 は 孔 孟 礼 教 の 国 ではなく 誠 に 軽 蔑 すべき 国 であるとの 蔑 視 の 感 情 が 生 まれたのは 理 由 のないことではなかったのである 教 化 の 弛 緩 と 国 勢 の 衰 退 は 実 は 相 互 に 助 長 し 合 って 進 行 するということが ここから 見 て 取 れるだろう 三 文 人 の 頑 迷 固 陋 文 人 名 士 は 中 国 の 社 会 的 精 鋭 であるだけでなく 文 化 的 精 鋭 でもある 彼 らの 素 養 と 能 力 は 中 国 人 全 てのそれを 代 表 している 彼 ら 三 人 の 観 察 者 は 元 来 漢 籍 詩 文 を 熟 読 し 中 国 人 文 士 に 対 する 敬 愛 の 情 を 抱 いており 中 国 に 来 てからも 文 士 たちとの 交 流 を 楽 しみ 彼 らを 理 解 しようと 努 めた ところが 彼 らが 実 際 に 交 流 を 持 ち 理 解 した 中 国 の 文 人 たちは 過 去 に 書 物 から 想 像 していた 姿 と 遙 かに 隔 たったものであった 彼 らは 著 書 の 中 で 文 人 たちに 対 する 印 象 と 感 想 を 記 している 金 子 は 北 京 に 長 期 間 滞 在 した 北 京 は 文 人 学 士 の 集 まる 場 所 であったから 彼 は 中 国 文 人 とも 交 友 があり 中 国 文 人 に 対 してかなり 正 確 に 理 解 していたといってよいだろう 著 書 において 彼 は 中 国 の 文 士 育 成 制 度 について 支 那 では 士 人 を 以 て 四 民 の 第 一 番 目 とし 社 会 で 最 も 重 んじられている と 記 す また 彼 は 儒 教 経 典 から 一 般 の 書 籍 まで 全 ての 書 物 が 士 人 の 道 徳 や 学 問 の 修 養 に 役 立 つはずである と 考 えていた とこ 10)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28 29 頁 11)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30 頁 12)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6 頁 8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ろが 現 実 の 士 人 はどうであったのか? 北 京 の 街 角 ではじめて 見 た 中 国 士 人 の 様 子 を 金 子 は 次 のように 語 る 私 はかつて 街 の 商 店 で 眼 鏡 をかけ 長 い 吸 い 口 のキセルを 携 えて ふらふらと 揺 れながら 歩 く 人 々を 見 た 彼 らは 人 を 見 ればその 手 を 組 み 合 わせて 会 釈 し 人 を 老 兄 と 呼 び 人 と 話 すときには 必 ず 古 人 や 古 典 の 言 葉 を 引 き 合 いに 出 して 孔 子 曰 く 云 々 孟 子 曰 く 云 々 或 いは 詩 經 尚 書 禮 記 には 云 々 易 經 に は 云 々といった 具 合 であった その 言 葉 は ある 時 は 口 するのに 慣 れすぎてその 中 の 誤 りに 気 づいていないようで またある 時 は 正 しいようで 正 しくない そのうえ 専 門 的 な 用 語 や 論 理 を 使 って 一 般 の 人 と 議 論 するので 相 手 をしているその 人 たちは 意 味 も 分 からぬままに ただ 愛 想 笑 いしてうなずいているだけである そうすると 彼 らは 益 々 得 意 げに その 声 をひそめたり 張 り 上 げたりしながら 新 しい 文 学 の 状 況 を 披 露 し 滔 々と 話 し 続 ける まったく 煩 わしいこときわまりない 周 りに 彼 らは 誰 なのです? と 尋 ねる と ある 人 が 一 人 一 人 を 指 さしながら 誰 某 は 学 校 の 秀 才 で 誰 某 はいついつの 孝 廉 ( 挙 人 を 謂 う)だ 文 言 では 彼 らを 読 書 の 士 というが 今 の 言 葉 では 念 書 の 人 というのだ と 教 えてくれた 私 は 笑 って 黙 り 込 んでしまった 13) この 一 段 はやや 嘲 笑 と 風 刺 を 帯 びた 話 ではあるが ただ 孔 孟 の 言 論 や 詩 書 の 文 理 を ひけらかすことしかできず ことさらに 学 問 のあることを 示 しながら 実 は 頑 迷 なだけであり 人 に 煩 わしいこときわまりない と 感 じさせるような 読 書 人 の 姿 を 生 き 生 きと 描 写 してい る このような 頑 迷 な 人 々の 他 に 金 子 はさらに 数 種 の 士 人 を 列 挙 している 例 えば 武 断 郷 曲 ( 権 勢 をかさに 勝 手 に 是 非 を 判 断 する) 挑 唆 詞 訟 ( 訴 訟 するよう 唆 す) 欺 詐 郷 愚 ( 愚 かな 田 舎 の 人 々をだます) 助 強 凌 弱 ( 強 きを 助 け 弱 きを 虐 げる) なご ろつきや 品 性 下 劣 な 地 方 人 士 詩 文 を 借 りて 時 事 を 譏 り 自 分 の 貧 しさに 恃 んで 高 官 を 見 下 す 狂 士 筋 金 入 りの 頑 固 者 で 時 勢 に 関 わらず 人 情 を 解 さず へそ 曲 がり な 頑 迷 者 清 廉 潔 白 であることにこだわって 人 情 を 尽 くさず 公 明 正 大 で あることを 求 めて 実 は 人 の 道 を 違 えている 隠 士 卑 劣 で 醜 く 恥 知 らず 日 和 見 主 義 で 儒 教 の 教 えに 従 わず 風 俗 をかき 乱 す ような 卑 劣 の 士 財 産 が 無 く 文 筆 業 によって 生 活 せざるを 得 ない 貧 寒 の 士 などである 金 子 は 言 う ここから 13) 金 子 弥 兵 衛 編 纂 : 支 那 総 説 巻 四 第 3 5 頁 84
甲 午 戦 争 前 の 日 本 人 考 察 者 による 中 国 叙 述 中 華 文 教 の 衰 亡 と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支 那 の 現 今 の 人 士 達 の 風 習 や 事 情 をおおよそ 知 ることができる 14) こういった 頑 迷 で 悪 劣 で 役 立 たずで 傲 慢 で 卑 しくて 貧 しいといった 種 々の 士 人 像 は 士 風 の 衰 退 と 腐 敗 のあり さまであった 同 時 に 金 子 が 見 聞 によって 得 た 中 国 民 間 士 人 の 群 像 に 対 する 全 面 的 な 描 写 であり 自 らの 体 験 に 裏 付 けられた 痛 切 な 感 想 も 加 えられている 彼 が 見 たのは か つて 書 物 から 想 像 した 中 国 士 人 の 高 雅 な 姿 とは 似 ても 似 つかない 卑 しくも 劣 った 姿 だった のだ 士 人 とは 学 問 を 以 て 身 を 立 てる 者 である 金 子 は 中 国 の 士 人 が 空 疎 な 役 に 立 たない 学 問 を 事 とするだけで 経 国 済 世 のための 実 学 を 重 んじないのを 目 にした 彼 は 次 のよう に 述 べる 知 識 人 の 多 くは 文 章 詩 賦 を 以 て 標 榜 し 書 画 清 談 を 以 て 高 尚 であるとし 出 世 しない 限 り 経 済 の 学 というこの 一 事 に 携 わることをしない 15) 金 子 は 北 京 におい て 数 名 の 学 問 のある 高 雅 の 士 とも 交 遊 を 持 った 彼 らについては 私 は 時 にその 士 人 達 と 交 流 し 語 り 合 った 彼 らが 作 った 詩 賦 や 文 章 を 見 ると 多 くが 学 問 に 精 通 して おり 才 能 は 優 雅 で 感 服 すべき 作 品 であった と 記 述 する これは 日 本 漢 学 者 による 学 問 的 な 側 面 からの 心 服 である しかし 彼 のこの 後 の 文 章 は 一 転 し 彼 らの 欠 陥 を 指 摘 する 遺 憾 なのは その 学 問 は 時 代 の 重 要 な 問 題 と 無 関 係 であることだ ゆえに 経 世 済 民 の 道 はただ 中 国 国 内 においてのみ 通 用 するに 止 まり 国 外 に 対 応 することはできな い これだけが 欠 点 である 16) 彼 はこのことから 中 国 の 士 風 のかくまでに 衰 退 し エ リート 達 が 時 勢 に 通 じないことが 中 国 自 体 の 衰 弱 を 招 いていた 病 源 であることを 見 抜 い た 彼 はさらに 指 摘 する おもうに 士 人 が 国 家 の 興 廃 を 左 右 する 存 在 であるから 士 風 を 時 代 の 必 要 に 応 じて 変 えることこそが 興 国 の 道 である と 17) 士 風 が 変 わらなけれ ば 国 は 振 興 しない これが この 冷 静 な 傍 観 者 による 中 国 社 会 に 対 する 洞 察 であっ た 中 仏 戦 争 を 観 察 するために 短 期 間 中 国 を 訪 れた 小 室 は 中 国 語 の 新 聞 や 書 籍 を 読 む 中 で 中 国 文 人 の 文 章 著 述 に 見 られる 大 げさで 事 実 と 符 合 しないという 悪 習 に 対 して 深 刻 な 印 象 を 持 った 彼 は 中 国 と 西 洋 双 方 の 新 聞 を 読 み 中 仏 戦 争 に 関 する 報 道 の 虚 実 を 比 較 して 中 国 側 の 言 論 には 誇 張 や 嘘 が 多 いことに 気 づいた 彼 は 今 試 みに 上 海 で 発 行 されている 申 報 滬 報 を 見 てみよう これらは 支 那 人 が 重 視 し 情 報 源 とする 14) 金 子 弥 兵 衛 編 纂 : 支 那 総 説 巻 四 第 5 7 頁 15) 金 子 弥 兵 衛 編 纂 : 支 那 総 説 巻 四 第 40 頁 16) 金 子 弥 兵 衛 編 纂 : 支 那 総 説 巻 六 第 23 頁 17) 金 子 弥 兵 衛 編 纂 : 支 那 総 説 巻 六 第 8 頁 8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新 聞 である その 記 事 は 中 国 を 持 ち 上 げて 外 国 を 貶 め むやみに 自 らを 誇 って 広 く 海 外 の 事 情 を 知 ることを 欲 さず 頑 陋 さに 安 住 している これによって 支 那 人 の 文 章 家 の 悪 弊 を 知 ることができる 近 頃 の 中 仏 戦 争 の 報 道 は その 一 例 である と 述 べ 甚 だしき に 至 っては 誇 大 で 過 剰 な 賛 美 が 吐 き 気 を 覚 えさせる ような 報 道 すらあるという このこと から 彼 は 過 去 に 日 本 人 が 重 んじてきた 漢 籍 を 連 想 し その 全 てに 疑 問 を 生 じた 言 うこと には 申 報 滬 報 が 記 す 時 事 はかくのごときであり 事 実 に 照 らすとことごとく 大 ぼらである とすれば 前 代 の 歴 史 についても 我 々はまた 真 偽 の 判 定 を 考 え 直 さざるを 得 ない さらに 中 国 の 文 章 における 言 説 は 誇 大 になりがちであることから 支 那 人 の 古 の 文 章 言 語 は みな 華 麗 であるだけで 内 容 に 乏 しく 誇 張 されて 傲 慢 であり 支 那 人 の 書 物 に 記 されていることは 四 書 六 経 であろうと 歴 代 の 史 書 であろうと 詩 文 の 集 であろうと その 中 に 記 されている 事 実 は 十 分 の 一 或 いは 二 十 分 の 一 ほどであると 考 え ざるを 得 ない と 推 論 する そして 私 たちのような 幼 い 頃 から 漢 籍 を 学 んだ 人 間 は 支 那 人 の 文 章 を 愛 する 余 り その 実 態 を 大 いに 誤 解 している この 度 の 支 那 行 きによって はじ めて 支 那 を 覆 っていたベールがはがされることになった 世 の 中 の 漢 学 者 は 一 度 かの 地 に 行 けば 必 ずや 茫 然 自 失 することであろう と 嘆 息 したのである 18) 彼 は 中 国 人 の 文 章 における 言 論 が 大 げさで 虚 妄 であるという 悪 弊 から 従 来 尊 ばれてきたあらゆる 漢 籍 に 対 して 疑 いを 抱 くことになってしまった その 中 国 文 人 の 誇 大 に 傾 く 文 章 の 風 潮 に 対 す る 驚 きと 尊 敬 してきた 中 華 文 教 に 対 する 深 い 失 望 感 が 窺 える 彼 らの 中 で 中 国 の 文 化 とエリートはその 価 値 と 重 みを すでに 大 いに 失 ってしまっていたのである 四 官 吏 の 愚 かさと 頑 迷 北 京 は 清 朝 における 中 枢 であり 非 常 に 多 くの 官 吏 が 集 まっていた 彼 らの 多 くは 科 挙 によって 官 界 に 入 った いわば 中 国 の 政 治 エリートであり 清 朝 の 政 治 の 舵 取 りを 輔 佐 する 役 割 を 持 っていた 特 に 諸 外 国 とのやりとり 全 体 を 統 括 する 役 所 の 官 吏 は 外 交 の 重 要 部 分 を 握 る 肝 心 要 の 高 官 であった これら 官 吏 の 素 質 と 才 能 が 清 朝 の 政 策 の 立 案 と 施 行 を 決 定 しており 同 時 に 中 国 という 国 の 命 運 も 決 定 していたのである 日 本 人 観 察 者 の 多 く は 中 国 の 官 吏 とも 交 友 があり 彼 らに 対 してある 程 度 の 理 解 を 持 っていた そして 観 察 者 達 の 目 には 中 国 の 官 僚 制 度 には 多 くの 弊 害 があり 官 吏 自 身 の 能 力 も 極 めて 低 劣 で 18)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4 6 頁 86
甲 午 戦 争 前 の 日 本 人 考 察 者 による 中 国 叙 述 中 華 文 教 の 衰 亡 と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ある と 映 った たとえば 金 子 は 慎 重 の 官 吏 制 度 を 紹 介 して 次 のような 指 摘 をする 清 朝 は 君 主 独 裁 の 国 であり およそ 政 事 に 関 わることはすべて 皇 帝 が 自 ら 裁 決 を 下 し 諸 王 や 大 臣 はそれに 賛 同 するだけの 存 在 に 過 ぎない その 賞 罰 の 実 行 においては 必 ず 代 々 伝 わる 制 度 が 尊 重 され あらゆる 事 がみなすでに 法 律 に 適 っているどうかが 大 事 であり それが 確 かめられてようやく 実 行 されるのである 19) このような 制 度 の 下 では 官 吏 となる 者 はみな 法 律 を 遵 奉 し 些 細 な 変 更 さえしようとしない 20) ので 官 吏 の 治 国 事 務 能 力 も 自 然 と 低 下 してしまう 来 華 日 本 人 の 中 には 中 国 内 閣 府 ( 原 文 総 理 衙 門 以 下 同 じ)の 官 吏 の 様 々な 愚 鈍 でおかしな 言 行 に 関 する 笑 い 話 が 少 なからず 伝 わってい た その 中 からは 日 本 人 の 目 に 映 った 中 国 官 吏 の 有 様 と 能 力 を 見 て 取 ることができる 1884 年 中 仏 戦 争 開 始 直 後 中 国 方 の 動 態 を 観 察 するためだけに 中 国 を 訪 れた 小 室 は わずか 二 ヶ 月 の 遊 歴 中 に 中 国 官 吏 の 戦 争 への 対 応 能 力 の 乏 しさを 少 なからず 見 聞 することになった たとえば 彼 は 内 閣 府 官 吏 の 愚 かな 笑 い 話 を 聞 いた それは フ ランス 戦 艦 の 大 砲 が 基 隆 を 攻 撃 して 台 湾 を 占 領 しようとしたとき 日 本 公 使 館 はいち 早 くそ の 情 報 を 得 て 公 使 館 は 隣 国 の 好 を 以 て すぐに 使 者 を 内 閣 府 に 遣 って 知 らせた とこ ろが 役 所 の 下 役 はその 知 らせを 受 け 取 ることを 拒 否 したのである しかも 言 うことには 今 日 は 中 秋 節 で 朝 廷 では 中 秋 の 宴 が 開 かれている 親 王 や 大 臣 及 び 百 官 はみな その 御 宴 に 参 加 されており この 役 所 には 一 人 として 出 勤 されていない だから 受 け 取 るこ とができないのだ 使 者 は これは 貴 国 にとって 極 めて 重 要 な 大 事 件 である 一 日 どころか 僅 かな 時 間 をも 争 うのだ 受 け 取 って 大 臣 に 渡 すべきだ 御 宴 や 儀 式 がい かに 大 切 であっても これを 拒 絶 すべきではない と 言 った 21) だが 遂 にこの 知 らせ は 受 け 取 られなかった 内 閣 府 は 清 朝 の 外 交 の 中 枢 を 担 う 機 関 である 中 国 とフランスが 正 式 に 宣 戦 布 告 し なおかつ 戦 争 のまっただ 中 にある 時 に 全 ての 高 官 が 皇 宮 に 行 って 中 秋 の 御 宴 に 参 加 し 役 所 に 当 番 勤 務 の 人 間 すらいない しかもその 下 役 はかくのごとく 愚 かで これほど 重 要 な 戦 況 に 関 わる 情 報 を 受 け 取 ることを 拒 否 した 中 国 官 吏 のこのよ うな 国 事 に 対 する 無 関 心 と 責 任 感 のなさは 小 室 に 意 外 さと 驚 きを 感 じさせることになった 彼 は 感 慨 を 禁 じ 得 ず 嘆 息 する 故 に 私 は 思 う フランス 人 が 大 挙 すれば 必 ずや 北 京 に 攻 め 入 り 皇 宮 の 上 にその 軍 旗 を 翻 らせ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と 22) 19) 金 子 弥 兵 衛 編 纂 : 支 那 総 説 巻 三 第 1 頁 20) 金 子 弥 兵 衛 編 纂 : 支 那 総 説 巻 四 第 40 頁 21)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14 15 頁 8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1884 年 中 仏 開 戦 後 清 朝 の 政 治 家 達 はみな 主 戦 の 態 度 をとった 小 室 の 観 察 による と これは 清 朝 官 吏 の 愚 かさの 現 れである 彼 は 北 京 の 日 本 公 使 館 で かつて 中 国 軍 機 大 臣 と 日 本 公 使 が 戦 争 のことについて 話 し 合 っているのをその 目 で 見 た 支 那 政 府 が 断 固 として 主 戦 論 を 取 るのは まったく 何 らかの 見 識 によるものでもなければ 戦 略 によっ てなせるものでもない ただ 漠 然 とフランスとの 戦 いには 勝 てると 妄 信 しているだけである その 実 情 を 見 れば 憐 れむべきところ 可 笑 しいところ 悲 しくなるところがたくさんあ る 23) そして 彼 は 自 分 の 見 聞 と 観 察 に 基 づき 次 のように 認 識 した 支 那 中 全 ての 官 吏 が 両 国 どちらが 強 いのかを 分 かっていない 内 外 の 国 勢 に 通 じた 者 がいないの だ 故 にその 勝 敗 の 確 率 もほとんど 考 えられてはいない 24) 小 室 は 中 国 の 軍 機 大 臣 が 漠 然 とした 空 想 から 妄 りに 主 戦 を 唱 えており 国 家 の 安 危 が 頑 迷 固 陋 な 発 想 の 下 に 置 かれているのを 見 て 憐 れむべきところ 可 笑 しいところ 悲 しくなるところがたくさんあ る という 慨 嘆 を 発 したのである 小 室 は 中 国 の 大 臣 がかくも 妄 信 による 空 言 を 発 し 官 吏 も 高 官 から 下 官 までみな 無 能 で 下 官 は 戦 況 を 偽 って 報 告 し 上 官 はその 実 情 を 調 べようともしない ということを 知 っ た 彼 はさらに 電 話 の 笑 い 話 を 挙 げている 中 仏 戦 争 の 台 湾 淡 水 の 戦 いの 後 軍 機 大 臣 が 日 本 公 使 館 にやってきて 戦 争 について 話 し 淡 水 の 戦 いにおける 中 国 側 の 大 勝 利 を 大 げさに 述 べ 立 て この 戦 いでフランス 兵 三 百 人 あまりを 滅 ぼした と 言 った 小 室 は これに 続 けて 次 のように 述 べている ( 日 本 ) 公 使 はこれを 聞 いて 不 思 議 に 思 い 淡 水 の 戦 いでのフランス 人 死 傷 者 は 四 五 十 人 で どの 国 の 報 道 も 大 同 小 異 の 数 を 上 げています ところが 今 あなたは 三 百 人 あまりとおっしゃる それはどこからの 情 報 でしょう か? と 尋 ねた すると 彼 は 大 真 面 目 に 台 湾 総 督 の 劉 銘 が 電 話 で 私 の 役 所 に 知 らせて きたので 間 違 い 有 りません と 答 えた 25) ここから 下 官 の 嘘 の 知 らせを 上 官 が 妄 信 していることが 分 かる さらに 小 室 は 彼 が 見 聞 したことをもう 一 つ 記 している 福 州 での 戦 いが 負 けたことを 朝 廷 は 長 い 間 知 らなかった 福 州 の 海 運 大 臣 張 佩 倫 らの 嘘 を 信 じ 事 実 顛 倒 の 詔 勅 を 発 して 諸 外 国 人 の 嘲 笑 を 蒙 ることになったのである 26) 中 国 の 戦 争 を 掌 る 内 外 の 大 臣 が 戦 況 に 対 してかくも 下 は 妄 言 し 上 は 妄 信 するのでは 傍 観 してい る 日 本 人 がそれを 笑 い 話 として 伝 えるのも 当 然 であろう 小 室 が 見 るに このような 状 況 を 22)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18 19 頁 23)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13 頁 24)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19 頁 25)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15 頁 26)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14 頁 88
甲 午 戦 争 前 の 日 本 人 考 察 者 による 中 国 叙 述 中 華 文 教 の 衰 亡 と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作 り 上 げた 原 因 は 中 国 政 府 内 の 上 下 関 係 がきちんと 繋 がっていないことにある 彼 は 言 う 現 今 の 支 那 政 府 の 状 況 は 衰 運 に 傾 いている 政 府 の 上 層 部 と 下 層 部 は 連 携 でき ておらず 進 言 の 道 は 塞 がれている 辺 境 や 海 の 状 況 にいたっては 本 当 のことを 報 告 する 者 など 一 人 もいないのである 27) まさしく このような 官 吏 の 上 層 部 と 下 層 部 の 乖 離 は 甚 だしく 進 言 の 道 はふさがれている という 制 度 の 腐 敗 が 中 国 をすでに 衰 運 に 傾 かせていたのである 小 室 はわずか 二 ヶ 月 間 の 中 国 における 観 察 と 見 聞 を 通 して 中 国 の 支 那 中 全 ての 官 吏 が 両 国 どちらが 強 いのかを 分 かっていない 内 外 の 国 勢 に 通 じた 者 がいない という ことを 知 り 中 国 官 吏 が 互 いに 欺 き 合 って 国 の 大 事 を 漠 然 とした 嘘 偽 りの 中 に 置 いている のを 見 て 清 朝 がすでに 衰 退 の 時 期 にあり 滅 亡 と 革 命 の 時 はもう 遠 くないことを 深 く 感 じ た 彼 は 古 より 衰 退 の 世 は 革 命 の 時 である 皇 帝 がまだ 幼 く 物 事 の 善 悪 を 判 別 できな い 場 合 政 事 は 皇 太 后 と 奸 臣 の 手 に 委 ねられる 大 臣 をはじめとする 官 吏 はみな 安 寧 を 貪 り 国 境 に 有 事 があっても 上 奏 させず 太 平 であると 偽 って 国 勢 が 日 々 衰 えていくことを 憂 えない 28) と 述 べる そして 当 時 の 内 外 ともに 危 険 な 状 況 にあった 支 那 の 国 勢 を 法 令 の 弊 害 は 日 々 悪 くなり 官 吏 たちは 怠 け 進 言 の 道 は 塞 がれて 賄 賂 が 公 然 と 行 われ 人 心 は 離 反 し 人 々は 怨 みを 募 らせている いったん 何 か 事 件 が 起 これば 反 逆 の 徒 が 各 地 で 一 斉 に 蜂 起 し 法 律 など 実 施 できなくなってしまうことだろう と 総 括 し 同 時 に 外 部 の 列 強 が 中 国 を 取 り 囲 んで 隙 を 狙 っているのを 支 那 国 の 状 況 は あ たかもまな 板 の 上 の 肉 のようであって 飢 えた 虎 がその 周 りで 吠 えているようだ と 表 現 す る 彼 は 清 朝 の 滅 亡 がすでに 目 前 に 迫 っているのを 予 感 していた 小 室 はさらに 日 本 人 に 向 けて 警 告 している この 時 にあたって 日 本 人 はいかに 対 応 すべきだろうか 明 言 す る 必 要 はないが 英 雄 豪 傑 の 士 であってはじめてどうすべきかを 知 っているのだろう 29) 甲 午 戦 争 十 年 前 の 中 仏 戦 争 の 時 小 室 は 日 本 の 一 介 の 貧 乏 書 生 として 中 国 に 滞 在 した 二 ヶ 月 間 の 見 聞 に 基 づいて このような 清 朝 中 国 に 対 する 痛 烈 な 批 判 を 行 った 彼 が 清 朝 のかなり 危 険 な 情 勢 について あたかもまな 板 の 上 の 肉 のようであって 飢 え た 虎 がその 周 りで 吠 えているよう な 険 悪 な 立 場 にあると 述 べ 日 本 人 に 向 かって どのよ うに 対 応 すべきだろうか と 警 告 した 意 味 は 極 めて 深 く 切 実 である 27)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14 頁 28)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13 14 頁 29) 小 室 信 介 : 第 一 遊 清 記 第 28 29 頁 8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結 語 三 人 の 日 本 人 観 察 者 が 中 国 に 来 て 活 動 していた 時 代 からすでに120 年 あまりが 過 ぎ た 顧 みるに 当 時 は 近 代 中 国 と 日 本 が 国 交 を 始 めたばかりで 彼 らは 比 較 的 早 い 時 期 に 中 国 に 派 遣 された 観 察 者 であると 同 時 に 自 らの 見 聞 に 基 づいて 日 本 人 に 真 実 の 中 国 を 紹 介 した 志 ある 人 々であった 彼 らによる 中 国 叙 述 を 読 み その 感 想 と 思 考 を 解 きほぐし そこからその 後 まもなく 勃 発 した 甲 午 戦 争 と 現 在 まで 続 いている 戦 争 による 両 国 と 東 アジアの 深 刻 な 傷 に 思 いを 馳 せれば その 中 には 少 なからぬ 我 々 自 身 が 深 く 反 省 するに 値 する 啓 示 が 含 まれているだろう まず 日 本 人 観 察 者 が 現 実 の 中 国 で 感 じた 中 華 文 教 に 対 する 失 望 と 喪 失 感 は 彼 ら に 文 化 心 理 上 の 中 華 文 明 との 血 脈 関 係 を 断 ち 切 らせ これによって 中 国 に 対 する 感 情 は 尊 崇 から 蔑 視 へと 転 じることになった また 彼 らが 日 本 国 民 に 知 らせたこの 情 報 は 日 本 人 全 体 の 中 国 認 識 の 転 換 をもたらし 中 国 侵 略 と 甲 午 戦 争 を 引 き 起 こすための 知 的 資 源 を 作 り 上 げた さらにそれが 日 本 人 が 強 権 秩 序 をもって 華 夷 秩 序 に 取 って 替 える 文 化 的 基 礎 ともなったのである ここからわかるのは 東 アジアは 文 明 共 同 体 として 各 国 の 文 教 制 度 の 興 廃 及 び 文 明 の 生 命 力 の 有 無 がその 国 際 関 係 の 変 化 と 関 わってお り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を 決 定 づける 要 素 ともなる ということである 特 に 東 アジア 外 部 の 生 存 環 境 に 変 化 が 起 きたとき 固 有 の 文 明 システムと 文 教 制 度 が 自 己 を 革 新 してそ れに 適 応 させる 能 力 を 持 たなければ それは 結 集 力 と 吸 引 力 を 失 い 一 国 内 の 人 心 の 離 反 をもたらすのみならず 東 アジアの 国 際 関 係 の 悪 化 を 引 き 起 こし 最 悪 には 戦 争 と いう 災 厄 を 招 くことになるのである 次 に 日 本 人 の 中 国 観 の 変 化 及 び 中 国 侵 略 への 過 程 が 示 しているのは 外 部 世 界 に 変 動 が 生 じたとき 東 アジアの 人 々がもし 内 部 の 文 明 的 な 繋 がりを 無 視 して 共 有 の 文 明 資 源 を 完 全 に 放 擲 し 外 部 から 無 理 矢 理 与 えられた 秩 序 や 理 念 に 盲 従 すれば やはり 悪 い 結 果 を 招 き 東 アジアに 災 難 をもたらすことになる これら 歴 史 の 啓 示 から 現 今 の 東 アジア 特 に 日 中 関 係 及 び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へ の 挑 戦 を 反 省 するに 今 の 世 界 はまさに 競 争 と 対 抗 の 強 権 的 秩 序 から 平 和 と 発 展 の 共 生 秩 序 に 向 かっていこうとしている もし 東 アジア 諸 国 が 依 然 として 過 去 の 強 権 的 秩 序 に 基 づいた 関 係 を 続 ければ 世 界 の 大 勢 に 合 わないばかりか 東 アジアを 紛 争 の 中 に 陥 れるだけでは 済 まず 最 悪 の 場 合 には 戦 争 すら 引 き 起 こすことになるだろう 東 ア ジアが 共 有 する 儒 学 と 仏 教 の 中 心 理 念 の 一 つは 和 の 精 神 である この 精 神 と 共 生 秩 序 の 理 念 とは 相 通 じている これを 東 アジアの 新 しい 秩 序 をうちたてる 核 心 理 念 と 90
甲 午 戦 争 前 の 日 本 人 考 察 者 による 中 国 叙 述 中 華 文 教 の 衰 亡 と 東 アジア 秩 序 の 転 換 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か これこそが 東 アジアを 平 和 へと 向 かわせ 各 国 が 平 和 的 に 関 係 を 結 んで 共 生 発 展 していく 正 しい 選 択 であるに 違 いない しかし 現 在 の 東 ア ジアには 過 去 の 強 権 的 秩 序 を 固 守 せんとする 亡 霊 がまだ 存 在 する 甲 午 戦 争 の 悲 劇 を 我 々に 対 する 警 鐘 とせねばならない 91
동아시아 民 衆 史 의 가능성: 한ㆍ일 민중사의 조우 裵 城 浚 ( 東 北 亞 歷 史 財 團 )
동아시아 民 衆 史 의 가능성: 한ㆍ일 민중사의 조우 동아시아 民 衆 史 의 가능성: 한 일 민중사의 조우 裵 城 浚 (동북아역사재단) <목 차> 1. 民 族 史 (/ 國 民 史 )와 民 衆 史 2. 한 일 민중사의 역사 (1) 한국 민중사학 의 궤적 (2) 일본 민중사상사 의 궤적 3. 한 일 민중사의 조우와 동아시아 민중사 (1) 민중사학 / 민중사상사 이후의 민중사 모색 (2) 동아시아 민중사의 제기 1. 民 族 史 (/ 國 民 史 )와 民 衆 史 1990년대 이후 냉전체제의 해체로 지역단위의 결집과 대립이 강화되고 근대와 발전에 대한 믿음이 혼란에 빠지는 가운데 동북아시아 삼국에서는 역사문제, 영토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었다. 독도문제, 교과서문제를 둘러싼 한 일간의 갈등, 동북공정을 둘 러싼 한 중간의 갈등, 센카쿠열도( 釣 魚 島 ), 교과서문제를 둘러싼 중 일간의 갈등 같은 국가 간의 갈등이 이어졌고, 이러한 갈등이 각국 정부에 의하여 정책적으로 활용되거나 역사인 식을 둘러싼 국가 내부의 갈등과 연결됨으로써 하나의 지역적 갈등구조 를 형성하였다. 지역적 갈등구조의 기반에는 대중의 민족주의적 정서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냉전체제 해체 이후 민족(/국민) 정체성의 재구성이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민족국가 (nation-state)의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에서 가족, 학교는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주요한 장치로서 기능하는데, 현재 논란이 되는 것이 민족사(/국민사) 서술 및 민족사 교육이다. 동아시아 삼국의 근대역사학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민족이라는 단일한 주체가 발전하는 과 정으로 민족의 역사 를 서술하여 왔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이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 한 발전적 주체적 민족사( 內 在 的 發 展 論 )가 성립되어 역사학의 주류적인 흐름이 되었고, 일본에서는 1950년대 이래 황국사관을 청산하기 위한 戰 後 歷 史 學 이 성립되어 주변국에 대한 침략과 가해의 기억을 망각하고 자국 중심의 역사상을 만들어 왔다. 9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한 일 양국의 민중사는 이러한 민족사(/국민사) 서술을 비판하고 민중 의 관점에 서서 민중의 역사를 서술하여 왔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들어 근대화와 독재를 합리화하는 민 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면서 민중사가 제기되었고, 일본에서는 1960년대 들어 근대화 공세 에 무력한 전후역사학을 비판하면서 민중사가 제기되었다. 양국의 민중사는 각기 다른 시 대적 조건 속에서 형성, 확산, 변화, 소멸의 궤적을 밟아 왔으며, 냉전체제 해체 이후 근대 역사학의 위기 속에서 민중사 이후의 모색 또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일 양국 민중사의 조우가 이루어졌고, 민중사 이후의 모색은 민족국가를 넘어 동아시아 라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한일 양국에서 전개되었던 민중사의 역사를 검토함으로써 주류적 역사학에 대한 비판으로 수립되는 민중사의 형성, 변화, 소멸의 과정을 재구성하는 동시에 양국 민중 사의 상이한 조건과 차이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냉전체제 해체 이후 근대역사학의 위 기 속에서 민중사 이후의 민중사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지고 양국 민중사의 교류가 시작되 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검토를 통하여 민족국가를 넘어선 민중사의 교류가 새 로운 역사학 비판을 시작할 수 있는 장을 열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2. 한 일 민중사의 역사 (1) 한국 민중사학 의 궤적 한국의 민중사는 1980년대 民 衆 史 學 1) 이라는 이름으로 출현하였다. 민중사학은 당시 지배이데올로기로 기능하던 민족주의 역사학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하였다. 4 19혁명과 한일 회담 반대투쟁을 통하여 고양된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형성된 민족주의 역사학( 내재적 발 전론 )은 식민주의 역사학을 비판하고 주체적이고 발전적인 관점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재 구성하였다. 그러나 식민사학 극복에만 초점을 맞춘 민족주의 역사학의 문화주의적 근대주 의적 경향은 1970년대 들어 분단체제 독재체제의 강화라는 현실을 외면하고 상아탑에 안주 함으로써 유신체제에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여하는 민족적 주체사관 을 뒷받침하게 되었 다. 2) 민주화운동의 영향 아래 민족주의 역사학의 체제내화에 맞서 역사의 현재성을 강조하 1) 민중사 가 민중사 서술의 방법과 내용을 가리키는 개념이라면 민중사학 은 민중사 서술의 방법 과 내용 뿐만 아니라 민중사 서술의 조건과 형태를 포괄하는 하나의 경향/흐름을 가리키는 개 념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2) 李 世 永, 현대 한국 사학의 동향과 과제, 80년대 한국인문사회과학의 현단계와 전망, 역사비 96
동아시아 民 衆 史 의 가능성: 한ㆍ일 민중사의 조우 고 민중운동에 주목하는 민중적 민족주의 의 흐름이 출현하였고, 1980년대 들어 민중 을 민족사의 주체로 파악하는 민중적 민족사학 이 제기되었으나 개인적인 문제제기 수준에 머 물렀을 뿐 민족주의 역사학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민중적 민족사학의 한계를 넘어 역사학 자체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민중사학 3) 이 출 현할 수 있었던 조건은 맑스주의의 형성이었다. 광주민중항쟁의 경험과 반성을 토대로 구 로동맹파업 과 한국사회성격논쟁 을 경과하면서 한국사회에서 맑스주의가 출현하였으며, 맑 스주의의 영향과 연계 아래 실증사학과 민중적 민족사학을 비판하고 변혁주체인 민중의 입 장에 선 역사를 추구하는 민중사학이 형성되었다. 望 遠 韓 國 史 硏 究 室 (1984.12), 韓 國 近 代 史 硏 究 會 (1985.5), 歷 史 問 題 硏 究 所 (1986.2) 등의 연구단체를 중심으로 결집한 민중사학 의 주체들은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역사학을 비판하고 민중 주체에 입각한 과학적 연구를 표 방하였으며, 연구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과학운동의 주체가 되고자 하였다. 한국민중사 는 초기 민중 개념과 민중사 서술의 모습을 보여준다. 맑스주의 계급론을 바탕으로 역사의 변혁주체로서 민중은 계급연합체로서의 성격 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역사주체인 민중과의 견고한 결합"만이 과학성을 보장한다는 인식 아래 사회구성사와 민중운동사를 결합하여 원 시사회에서 광주민중항쟁에 이르는 민중사 서술을 시도하였다는 점은 선구적인 의미를 가 진다. 4) 맑스주의에 기반한 대중운동의 영향 아래 형성된 민중사학은 맑스주의의 형성, 확산/분 열, 위기로 이어지는 궤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 확산/분열, 소멸되었다. 5) 1987년 민주화투쟁 및 대중운동의 확산 속에서 대학원과 학계에서는 정치의식이 고양되고 학술운동에 기반한 조직과 실천이 모색되었다. 대학원에서는 대학원 조직의 민주적 개편, 강사협의회 및 강사노조 결성 등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제도개선 및 권익옹호 투쟁이 확 산되었으며, 학계에서는 보수적 학문풍토와 학문의 종속성을 비판하면서 학계의 민주화와 진보적 학술연구 를 표방한 진보적 연구단체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였다. 평사, 1988.; 李 潤 甲, 한국 현대 민족사학의 전개와 민중사학, 한국학논집 22, 1995. 3) 민중사학에 대한 통상적인 정의는 역사 발전의 주체는 민중 이라는 선언적 명제에 기초하여 역사를 민중의 주체성이 확대되어가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이를 토대로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 회를 건설하기 위한 변혁의 전망을 모색하는 실천적인 학문 경향 ( 金 聖 甫 )이라는 규정이다. 그 러나 이러한 개념 규정이 민중사학을 역사학 내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방법/경향으로 한정하는 문제점을 고려할 때, 민중사학을 80년대에 출현한 역사학 비판의 이름이자, 민중 주체의 역사 서술과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실천과의 융합 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4) 서설: 바람직한 우리역사 이해를 위하여, 한국민중사 Ι, 풀빛, 1986. 5) 이러한 관점에서 민중사학의 역사에 대한 서술은 裵 城 浚, 1980-90년대 민중사학의 형성과 소 멸, 역사문제연구 23, 2010. 참조. 9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연구단체를 중심으로 학술운동 논의가 확산되면서 학술운동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인식 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지만, 연구자의 역할, 학술운동의 조직론 등을 둘러싸고 학술운 동의 편향이 노정되기도 하였다. 당시 민주화운동진영의 '민족해방파'와 '민중민주파'의 사 상이론적 대립과 조직적 분열은 학술운동의 편향과 맞물리면서 민중사학 주체의 분열과 재 편으로 표출되었다. 망원한국사연구실 내부의 상이한 경향이 역사학계 연구단체의 통합 논 의와 맞물리면서 연구단체의 분열과 재편으로 이어졌다. 망원한국사연구실과 한국근대사연 구회는 민중사학을 표방하고 현장지향 및 민중교육에 중점을 둔 九 老 歷 史 硏 究 所 (1988.9) 와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 을 내걸고 연구자대중의 조직화에 중점을 둔 韓 國 歷 史 硏 究 會 (1988.11)로 재편되었다. 한국역사연구회는 고대사에서 현대사에 이르는 전 시대사를 포 괄하는 분과체제를 바탕으로 200여 명이 넘는 연구자를 포괄하는 대규모 연구회로 발전하 였으며, 구로역사연구소는 정세가 요구하는 연구활동을 수행하는 한편 민중운동단체와의 조직적, 이념적 결합을 추구하였다. 1990년을 전후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맑스주의의 위기 로 발현되었으며,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과 청산의 분위기는 민중사학의 위기를 초래하였고 민중사학의 소멸로 이어졌다. 민중운동 및 사회주의운동 연구의 퇴조와 민중교육활동의 침체 속에서 연구단체들은 자신 들이 비판하였던 기성의 학회나 연구소로 변질되어 갔다. 한국역사연구회는 연구주의가 만 연하고 학계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한 가운데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 이 민중사학을 대체하여 갔으며, 구로역사연구소는 대중역사서와 연구논문집 발간을 모색하는 가운데 역사연구를 강화하기 위하여 연구소 명칭을 歷 史 學 硏 究 所 (1993.8)로 변 경하였다. 또한 역사학계에서 민중사학을 학계 밖으로 추방하려는 시도나 학계 내부로 견 인하려는 시도 속에서 민중사학의 역량은 소멸하였다. (2) 일본 민중사상사 의 궤적 1945년 이후 일본 현대역사학에서 민중사에 포괄될 수 있는 흐름은 60년대에 형성된 人 民 鬪 爭 史 와 民 衆 思 想 史 를 들 수 있다. 우선 역사학의 흐름에서 인민투쟁사와 민중사상 사의 맥락과 위치를 파악하고 민중사의 대상을 정하기 위하여 전후역사학 과 이들 흐름과 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일본 역사학의 주류적 흐름이었던 전후역사학은 맑스주의 역사학과 근대주의 역사학을 양축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황국사관 을 청산하고 일본사회의 변혁을 과제로 삼은 전후역사학은 과학주의를 통하여 봉건유제를 극복하고 서구근대를 지향하고자 하였다. 6) 전후역사학은 50년대 대미종속이라는 민족의 위 기 속에서 민족문제 해결 및 국민적 통합의 주체로서 國 民 을 상정하였으며, 이러한 과정 98
동아시아 民 衆 史 의 가능성: 한ㆍ일 민중사의 조우 을 통하여 과거 일본제국이 수행한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폭력을 망각한 전후 일본의 국 민사 로서 성립하였다. 7) 전후역사학은 국민적 역사학운동 의 청산과 쇼와사( 昭 和 史 )논쟁 의 문제제기를 거치면 서 침체상태에 빠졌으나, 1960년 안보투쟁 및 근대화론 비판을 계기로 활성화/안정화되면 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실증적 연구가 심화되었고 연구의 대상도 메이지유신 연구에서 다이쇼 데모크라시 제국주의 연구로, 기생지주제 연구에서 산업혁명 연구로, 계급투쟁사 연 구에서 인민투쟁 민주주의투쟁사 연구로 이동하였다. 8) 인민투쟁사는 안보투쟁, 베트남 반전 운동 등 대중운동의 고양 속에서 보수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근대화론과 明 治 百 年 祭 )에 대항하는 통일전선의 제기와 더불어 대두되었다. 구조분석에 치중하는 계급투쟁사의 한계 를 극복하기 위하여 제기된 인민투쟁사는 인민 개념을 수용하여 계급 개념의 협소함 및 계급환원론을 극복하고 다양한 계급, 계층의 폭넓은 결합을 통한 반국가 반제국주의 투쟁의 역사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9) 인민투쟁사는 다양한 형태의 농민봉기를 포괄하는 요나오시 상황론 ( 世 直 し 狀 況 論 )과 결합하면서 1970년 전후 전후역사학의 주요한 흐름이 되었다. 10) 인민투쟁사와 유사한 시기에 민중 의 일상과 체험에 주목하는 민중사상사 가 출현하였 다. 민중사상사도 인민투쟁사와 마찬가지로 안보투쟁에 대한 반성과 근대화론에 대한 대항 이라는 배경에서 제기되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전후역사학의 위기 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었다. 일본공산당의 방침 전환, 스탈린 비판과 헝가리사건으로 맑스주의의 영향력은 약화 되었지만 전후역사학은 60년대 들어 제도적 안정 속에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 러한 전성기의 이면에는 전후역사학이 실증적 연구에 침잠하면서 사회 현실과 괴리되고 폐 6) 永 原 慶 二, 20 世 紀 日 本 の 歷 史 學, 吉 川 弘 文 館, 2003, 153-168쪽. 전후역사학의 인식틀은 1이 상사회를 지향하는 목적론적 역사의식 2보편적 발전법칙이 관철되는 역사 3 국민적 유형 을 기초로 한 발전단계론 4사회구성의 기본 개념으로서 계급 과 민족 5내발적 발전을 중시하는 사회구조 인식 으로 요약할 수 있다. 二 宮 宏 之, 戰 後 歷 史 學 と 社 會 史, 戰 後 歷 史 學 再 論, 靑 木 書 店, 2000, 125-126. 7) 여기에서 국민 이란 제국주의와 결탁한 국내세력을 제외한 개념으로 당시의 민족, 인민 등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전쟁책임 문제와 관련하여 안보조약 파기와 대미종속에서의 탈 피에 의한 민족의 독립, 완전한 주권의 회복이야말로 아시아지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제1보이 고 전쟁책임 문제를 생각하는 기반이라고 주장하였다.(특집: 민족적인 것-그 평가를 둘러싸고-, 思 想, 1961) 8) 安 田 常 雄, 方 法 についての 斷 章, 戰 後 歷 史 學 再 論, 靑 木 書 店, 2000, 15쪽. 9) 인민투쟁사 연구의 중심 인물인 이누마루 기이치( 犬 丸 義 一 )는 인민투쟁이란 계급투쟁의 현상형 태 이고, 노동자계급, 농민, 근로시민, 지식인, 중소부르조아지 같은 계급들과 계층들이 아메리카 제국주의와 일본독점자본에 반대하는 투쟁 이라고 규정하였다. 10) 須 田 努, イコンの 崩 壞 まで- 戰 後 歷 史 學 と 運 動 史 硏 究 -, 靑 木 書 店, 2008, 161-176쪽. 9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쇄적인 영역을 구성하고 있었다. 특히 근대화론을 내세운 보수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하여 역사학계에서는 근대화론을 학문적으로 논박하고 이데올로기 공세의 허구성과 기만 성을 폭로하는데 치중하였을 뿐 근대화론의 확산이 경제성장이 변화시킨 대중의 생활과 의 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11) 민중사상사는 전후역사학이 근대화 론의 공세에 무력하다는 위기의식 하에서 민중 에 주목함으로써 근대 비판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전후역사학과의 관계에서 볼 때 인민투쟁사는 전후역사학의 내부에서 사회구성 과 대중운동의 결합을 추구하였다면, 민중사상사는 전후역사학을 비판하면서 근대화론에 맞서 민중의 독자적인 사상 형성을 추구하였다. 12)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민중사학과 유사 한 맥락과 의미를 가지는 일본 민중사의 흐름으로서 민중사상사에 주목하고자 한다. 민중사상사는 1960년대 이로카와 다이키치( 色 川 大 吉 )를 필두로 야스마루 요시오( 安 丸 良 夫 ), 가노 마사나오( 鹿 野 政 直 ), 히로타 마사키( 廣 田 昌 希 ) 등의 민중사 서술을 통하여 하 나의 흐름을 형성하였다. 이미 자유민권운동기에 인민 개념이 등장하는 등 민중(/ 人 民 / 常 民 )에 대한 연구는 일찍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들은 민중의 일상, 체험, 사상 등을 역사서술 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새로운 민중상을 구축하였다. 이로카와는 자유민권운동에 뛰어든 무명 청년들의 사상과 행동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통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가진 민중상을 제시하였다. 야스마루는 일상생활의 규범인 通 俗 道 德 에 주목하여 민중이 근면, 검약, 효행, 절제 같은 통속도덕의 실천 속에서 주체를 형성하였고 이러한 실천이 일본 근대화의 원동 력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가노는 지배계급의 질서의식과 상이한 민중의 민중의 질서의 식 을 규명하고 위로부터의 질서화와 아래로부터의 질서의식의 대립, 갈등을 축으로 일본 근대사를 재구성하였다. 히로타는 근대문명에 대한 민중의 자각,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문명 개화에 대한 민중의식에 주목하고, 민중의 삼층구조(상층민중/하층민중/피차별민중)를 통 하여 민중의 전통과 독자성을 탐구하였다. 이들에게는 공통의 민중 개념도, 민중사상사에 대한 공통의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민중사상 연구의 강조점과 지향점이 각자 달랐기 때문에 공동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안보투쟁의 경험 속에서 계급, 인민과는 11) 도베 히데아키( 戶 邊 秀 明 ), 민중사상사 연구의 출발-야스마루 요시오의 방법적 혁신-, 역 사학의 세기, 휴머니스트, 2009, 이러한 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당사자의 회고로는 야스마루 요시오, 민중사 와 전후 사상, 역사가의 탄생, 돌베개, 2008. 참조. 12) 오카도 마사가쓰( 大 門 正 克 )는 민중사의 양대 흐름으로 민중사상사의 흐름과 日 本 民 衆 の 歷 史 ( 三 省 堂, 1974-76)로 정리되는 인민투쟁사의 흐름을 들고 있다. 그는 양대 흐름의 대표자로 야스마루 요시오와 나카무라 마사노리( 中 村 政 則 )를 비교하면서 나카무라가 역사의 발전법칙을 계승한 전후역사학을 계승한 반면 야스마루는 근대화론 비판이라는 점에서 전후역사학과의 독 자성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大 門 正 克, 해설: 民 衆 世 界 への 問 いかけ, 民 衆 世 界 への 問 いかけ ( 展 望 日 本 歷 史 21), 東 京 堂 出 版, 2001. 100
동아시아 民 衆 史 의 가능성: 한ㆍ일 민중사의 조우 다른 민중의 주체 형성에 주목하고, 전후역사학의 방법론적 경직성에 위화감을 가졌으며, 독자적인 역사서술을 시도하는 등 방법으로서의 민중 을 추구하였다. 13) 민중사상사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전반에 걸쳐 민중사상에 대한 인식 및 방법에서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로카와는 연구자의 역사상과 민중의 역사상의 어긋남을 자각하고 무 명인들의 자기사 ( 自 分 史 )를 축적, 조합, 구성하는 작업을 통하여 역사의 본류를 탐구하는 한편 민속학을 수용하여 민중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야스마루는 生 의 樣 式 에 대 한 내재적인 분석 이라는 시점에서 민중의 의식형태의 내적구조를 탐구하였다. 가노는 역사 에서 무시되어 왔던 주변적인 존재에 주목하여 여성사, 오끼나와사 연구에 집중하였다. 이 러한 전환은 민중사상사가 민중이 만들어나가는 일본의 역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결국은 국민사였다는 자각과 더불어 주변적 존재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차별, 대립, 항쟁 속에 있 는 분열된 민중에 주목하게 되었다. 14) 이러한 민중사상사의 전환은 민중사상사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전후역사학을 비판하면서 민중이라는 관점과 방법을 통하여 국민의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였던 민중사상사의 고유한 역할이 종료되었으며, 15) 민중사상사가 구 성한 민중 개념이 역사학의 필수적인 개념이 되었다는 점에서 민중사상사는 역사학의 주류 적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16) 3. 한 일 민중사의 조우와 동아시아 민중사 (1) 민중사학 / 민중사상사 이후의 민중사 모색 일본에서는 고도경제성장의 결과 신중간대중의 시대 의 도래를 말할 정도로 일본사회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수탈, 계급, 투쟁이라는 개념으로 사회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현실적이 지 않게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과 더불어 사 13) ひろた まさき, パンドラの 箱 - 民 衆 思 想 史 硏 究 の 課 題, ナシヨナル ヒストリーを 學 び 捨 てる, 東 京 大 學 出 版 會, 2006, 4-5쪽.; 安 田 常 雄, 解 說 : 思 想 史 の 發 想 と 方 法, 思 想 史 の 發 想 と 方 法 ( 展 望 日 本 歷 史 24), 東 京 堂 出 版, 2000, 6-7쪽. 14) ひろた まさき, 위의 글, 20-21, 32-33쪽. 15) 야스다 쓰네오( 安 田 常 雄 )는 이러한 전환을 민중사상사의 변질 로서 규정하고 전후역사학의 補 完 的 再 建 이라는 민중사상사 연구가 가진 고유한 역할이 종식되었다고 주장한다. 安 田 常 雄, 위의 글, 7쪽. 16) 민중사상사 연구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나리타 류이치( 成 田 龍 一 )와 캐럴 글룩(Carol Gluck) 의 진술은 座 談 會, ナシヨナル ヒストリーを 學 び 捨 てる, 214-215, 220쪽. 10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회사의 수용으로 진보사관 비판 및 일상세계에의 회귀 등이 제기되면서 전후역사학이 상대 화되었다. 나아가 1990년을 전후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역사발전단계론과 사회주의를 향한 실천에 기반하였던 전후역사학의 붕괴를 가져왔다. 17)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 후 반 이래 B. 앤더슨을 원류로 하는 국민국가론, E. 사이드를 비롯한 포스트식민주의론, 젠더 론 등이 도입되어 전후역사학의 문제틀을 해체하는 한편 담론이론에 기반한 텍스트로서의 사료 분석, 근대적 주체의 상실, 역사의 周 緣 에의 관심 등 새로운 역사학 방법론이 제시되 었다. 특히 니시가와 나가오( 西 川 長 夫 )는 근대국가란 곧 국민국가이고 국민국가의 다양한 시스템에 의하여 국민화의 과정이 진행된다는 점을 제기함으로써 국민사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을 제공하였다. 1990년대 들어 거품경제의 붕괴와 냉전 해체로 인한 혼란 속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제기되고 전쟁책임과 식민지문제가 주요한 과제로 부상하였으며,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보 통국가화 를 지향하는 움직임 속에서 歷 史 修 正 主 義 가 대두하였다. 전후의 역사를 自 虐 史 觀 으로 비판하고 건전한 내셔널리즘의 복권 을 내세우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 임 (1997)은 2001년에서 2002년에 걸쳐 후쇼사판 교과서 채택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역사수정주의의 출현에 대응하여 역사학계에서는 후쇼사판 교과서에 보이는 역사적 사실의 오류나 침략전쟁의 정당화를 비판하였으나 역사수정주의의 역사인식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 을 제기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국민국가론을 수용한 이들이었다. 18) 역사수정주의를 둘 러싼 역사인식 논쟁은 실증주의에 갇힌 전후역사학의 형해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역사학의 방법론과 실천성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19) 민중사상사가 소멸한 이래 국민국가론의 문제제기 및 역사수정주의의 대두는 민중사상 사 이후의 민중사, 즉 민중 개념과 민중사 서술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출범시켰다. 국민국 가론은 맑스주의역사학을 거쳐 민중사상사에 이르는 일본의 근대역사학이 국민의 역사 라 는 점을 인식하게 만들었으며, 마키하라 노리오( 牧 原 憲 夫 ), 쓰루마키 다카오( 鶴 卷 孝 雄 ), 나 리타 류이치( 成 田 龍 一 ) 등 민중사상사의 제2세대가 국민국가의 형성에 의한 민중의 독자성 상실 또는 이단화의 과정으로서 일본근대사를 인식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후 민중 개념 을 이질적인 집단으로서 그 사이에 심연이 존재하고 복잡한 상호관계를 가진 존재 로 상 정하고 이질적인 집단이 자유롭고 대등하게 공존하는 공동체를 추구하거나, 20) 복수성의 시 17) 須 田 努, 위의 책, 284-285쪽. 18)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으로는 小 森 陽 一 高 橋 哲 哉 編, ナシヨナル ヒストリ-を 超 えて, 東 京 大 學 出 版 會, 1998. ; 高 橋 哲 哉 編, 歷 史 認 識 論 爭, 作 品 社, 2002 등이 있다. 19) 小 關 素 明, 岐 路 に 立 つ 戰 後 歷 史 學, 日 本 史 硏 究 537, 2007.5, 42-43쪽. 20) ひろた まさき, 위의 글, 42-43쪽. 102
동아시아 民 衆 史 의 가능성: 한ㆍ일 민중사의 조우 점에 입각한 계급 개념의 새로운 구축을 추구하는 21) 등 민중사의 모색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 일본과 유사한 방법론적 전환이 압축적으로 진행되었 다. 1990년대 전반 민중사학이 소멸되면서 민중사학의 깃발 아래 결집했던 연구자들은 제 도권으로 흡수되면서 실증적 연구를 지향하였다. 이들은 지배정책사 연구나 민중운동의 조 직과 이념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진행하였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서구의 포스트모던 역사 학 22) 을 수용하면서 민족주의 역사학 비판을 이어갔다. 1990년대 이래 포스트모던 역사학 이 소개되면서 민족주의의 탈신화화, 민중/시민 이라는 이름으로 주변화/배제되었던 소수 자문제,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대 비판 수용 등의 관점을 제기하였다. 특히 인도의 서발턴 연 구, 영국의 맑스주의 사회사, 독일의 일상사, 이탈리아 미시사, 미국의 신문화사 등 구체적 인 성과들이 들어오면서 포스트모던 역사학 은 역사학계의 방법론 전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일본에서 국민국가론이 소개되면서 민족사 서술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제 기되었다. 포스트모던 역사학과 국민국가론의 수용을 통한 방법론적 전환이 표면화된 계기는 2001년에서 2002년에 걸친 교과서 파동 이었다. 언론을 통하여 일본의 역사 왜곡을 성토 하는 반일 여론이 비등하였고, 역사학계는 후쇼사판 역사교과서의 사실 왜곡을 성토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고식적인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반면 학계 일각에서는 민족주의 역사서술 을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면서 민족의 역사 로서 양국의 역사교과서가 비판되었고 역사수정 주의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역사교과서가 민족의 이야기 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2004년 親 日 眞 相 糾 明 委 員 會 및 2005년 過 去 事 整 理 委 員 會 설치는 민족주의 역사학 논리 를 강화시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과거사청산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 등 역사학의 방법론과 실천성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를 던져주었다. 교과서 파동 과 과거사청산을 둘러싼 논쟁 은 민족주의 역사학이 방법적 실천적 유효성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민족국가를 넘 어선 역사인식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과서파동과 과거사청산 등 현실의 문제제기는 민중사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추동하였 다. 민중사학을 넘어선 민중사, 민중운동사 이후의 민중사 등의 용어에서 보이는 것처럼 민중사학의 과학적 변혁적 민중론 및 이에 기반한 민중운동사 서술이 비판되었고, 민중을 다성적 주체로 인식하고 그들의 실재를 재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적 시도 가 제기되었 다. 23) 또한 일상사와 구술사의 측면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서술하는 작업들이 시도되었다. 21) 大 門 正 克, 위의 글, 14쪽. 22) 포스트모던 역사학 용어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 ( 金 基 鳳 외, 푸른역사, 2002)에서 유래 하는 것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틀을 수용한 역사학을 가리킨다. 10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최근 민중사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민중사 의 형성을 위하여 1민중의 일상 성에 대한 주목 2민중의 다성성과 중층성의 인식 3자율과 종속이 이중적 맞물림에 대한 고려 4국민국가 단위의 발전론으로 수렴되는 근대주의 패러다임의 극복 등의 과제를 제기 하고 있다. 24) (2) 동아시아 민중사의 제기 한국에서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걸친 민중사학의 형성과 소멸,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근대역사학(민족주의 역사학/전후역사학)의 위기라는 상황은 민중사 이후의 모색이 민족국가 단위를 넘어설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였다. 또한 일본에서 1970년대 후반 이래 소개, 수용되고 있던 사회사에서 국민국가론, 포스트식민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이론과 방법 론이 한국에서는 1990년대 이래 압축적으로 소개, 수용됨으로써 민중사 이후 모색의 양상 도 유사하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 일본군위안부 의 증언과 소송을 계기로 민족국가를 넘어선 역사인식이 모색되기 시작하였으며,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의 출현 이후 교과서문제와 역 사수정주의를 둘러싼 갈등은 민족국가를 넘어서 전개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2004년에 과거사 진상규명을 뒷받침하는 역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비난하면서 실패한 역사 를 성공 한 역사 로 수정하려는 자유주의연대 가 출범으로써 역사수정주의 현상도 민족국가를 넘어 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국가를 넘어선 역사인식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한 일 양국의 시민사회 및 학계의 상호교류가 활성화되었다. 2000년 일국사 적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며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역사인식을 추구하는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 이 결성된 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25) 한 일 양국에서 민중사가 출현한 시기도 다르고 민중사의 궤적도 상이했지만, 근대역사 학이 위기에 처하고 민중사가 소멸한 상황에서 민족국가를 넘어선 모색의 조건이 형성되었 고 양국에서 전개되고 있던 민중사 이후의 모색이 조우하게 되었다. 1991년 일본에서 동 아시아지역에서 민중사의 국제적인 상호연구를 목적 으로 설립된 아시아 民 衆 史 硏 究 會 가 발족함으로써 일국사의 범위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지역 민중사 연구자들의 연대를 모색하였 23) 許 英 蘭, 민중운동사 이후의 민중사-민중사 연구의 현재와 새로운 모색, 역사문제연구 15, 2005. 24) 李 庸 起, 새로운 민중사 의 지향과 현주소, 역사문제연구 23, 2010, 18쪽. 25)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 의 성과는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휴머니스트, 2004), 역사학의 세기 (휴머니스트, 2009)로 간행되었다. 104
동아시아 民 衆 史 의 가능성: 한ㆍ일 민중사의 조우 다. 아시아민중사연구회는 1991년 8월 역사문제연구소와 19세기 한국과 일본의 민중운동 을 주제로 한 합동토론회 개최를 시작으로 중국의 푸단대학, 난징대학, 대만의 대만대학, 중앙연구원, 베트남 하노이대학 등과 학술교류를 행하였다. 26) 아시아민중사연구회는 1994 년에서 2000년까지 한 중 일에서의 근대 이행기 민중의 상태를 아시아 권역에서 비교사적, 관계사적으로 검토하기 위하여 동아시아의 근대 이행과 민중 이라는 주제로 국내외 학술회 의를 개최하였으며, 2001년에서 2008년까지 공간 시간 인간에 관한 의식총체를 세계관 으로 파악하고 이를 통하여 아시아지역에서 민중의 주체형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동아시아에서 민중의 세계관 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아시아민중사연구회와 역사문제연구소는 2005년부터 워킹그룹 을 결성하여 근대이행기 동아시아 민중의 존재양태 비교와 상호관련성 검토를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 를 구축하기 위한 정기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워크숍에서는 양국의 워킹그룹을 중심으로 양국의 민 중사 모색 현황을 검토하고 사학사 및 민중사 서술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을 진행하고 있 다. 근대 국민 형성에 대한 양국의 차이, 민중 개념과 민중사 연구에 대한 양국의 차이 등 에 공감하면서도 민중 개념, 민중의식과 주체성, 소수자와 민중, 민중운동의 이념, 국가-민 중의 관계, 사료와 민중사 인식, 역사서술의 객관성 등 쟁점에 따라 연구자별로 상이한 견 해가 표출되었다. 27) 아직 공동작업도 착수하지 못한 모색기에 불과하지만 양측이 민중사 이후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유하고 소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사를 매개로 민족국 가를 넘어선 모색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아시아 민중사 란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범주로 하는 민중사이거나 동아시아에서 형성 되는 민중사의 공통적이고 정형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민중사 란 민 중사 이후의 모색이 민족국가를 넘어서 전개되고 있는 현실을 가리키는 하나의 이름이며, 동아시아 민중사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민중사 이후의 모색은 신자유주의시대 역사학 비 판으로서 민중사를 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26) 아시아민중사연구회 홈페이지(http//assoc-asia.blogspot.com) 참조 27) 許 洙, 한일국제학술교류, 역사문제연구소회보 49, 2007.; 張 龍 經, 아민연워크숍, 역사문 제연구소회보 52, 2009. 10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東 亞 民 衆 史 的 可 能 性 : 韓 日 民 衆 史 之 遭 遇 裵 城 浚 ( 東 北 亚 歷 史 財 團 ) < 目 次 > 1. 民 族 史 (/ 國 民 史 ) 和 民 衆 史 2. 韓 日 民 衆 史 的 历 史 (1) 韩 国 民 衆 史 學 的 軌 迹 (2) 日 本 民 衆 思 想 史 的 軌 迹 3. 韓 日 民 衆 史 的 遭 遇 和 东 亚 民 衆 史 (1) 民 衆 史 學 / 民 衆 思 想 史 之 後 的 民 衆 史 之 摸 索 (2) 东 亚 民 衆 史 的 提 起 1. 民 族 史 (/ 國 民 史 ) 和 民 衆 史 1990 年 代 之 後, 随 着 冷 战 體 制 的 解 體, 地 域 單 位 的 結 合 与 對 立 得 到 强 化, 在 近 代 化 和 發 展 的 迷 雾 中, 陷 入 混 亂 之 时, 在 東 北 亞 三 國 之 间, 围 绕 着 历 史 和 領 土 问 题, 矛 盾 不 仅 更 加 對 立 而 且 有 激 化 之 势 围 绕 獨 島 和 教 科 书 问 题, 出 现 的 韩 日 之 间 的 矛 盾, 围 绕 東 北 工 程 的 韓 中 間 出 现 的 矛 盾, 围 绕 釣 魚 島 和 教 科 书 问 题, 中 日 之 间 矛 盾 已 经 扩 大 为 国 家 间 的 矛 盾, 这 样 的 矛 盾 或 被 各 國 政 府 政 策 性 地 利 用, 围 绕 历 史 认 识 出 现 和 国 家 內 部 矛 盾 相 联 系 的 问 题, 形 成 地 域 性 的 矛 盾 構 造 在 地 域 性 矛 盾 構 造 的 基 础 中, 大 衆 的 民 族 主 義 情 绪 占 据 了 很 重 要 的 位 置, 其 核 心 为 冷 战 體 制 解 體 之 後, 所 再 次 形 成 的 民 族 (/ 国 民 ) 认 可 问 题 民 族 国 家 (nation-state) 的 理 念 中, 在 国 家 机 器 上 家 族 和 學 校 在 民 族 认 可 形 成 中 做 为 重 要 的 装 置 发 挥 其 作 用, 现 在 的 难 题 是 民 族 史 (/ 国 民 史 ) 敍 述 和 民 族 史 敎 育 东 亚 三 國 的 近 代 史 學 都 是 从 古 代 到 現 代, 将 民 族 视 为 單 一 主 体 發 展 的 過 程, 并 以 民 族 的 历 史 进 行 敍 述 在 韩 国, 从 1960 年 代 以 来, 为 了 克 服 殖 民 史 观, 所 谓 發 展 的 主 体 的 民 族 史 ( 即 內 在 發 展 論 ) 成 为 史 學 主 流 在 日 本 从 1950 年 代 以 來, 为 了 清 算 皇 國 史 观 戰 後 歷 史 學 成 为 主 流, 以 忘 却 对 周 邊 國 家 的 侵 略 和 侵 害 的 記 憶, 来 建 筑 本 国 为 中 心 的 历 史 韓 日 两 国 的 民 衆 史 批 判 了 这 样 的 民 族 史 (/ 国 民 史 ), 从 民 衆 的 觀 點 出 发, 敍 述 了 民 衆 106
東 亞 民 衆 史 的 可 能 性 : 韓 ㆍ 日 民 衆 史 之 遭 遇 历 史 在 韩 国 1980 年 代 一 方 面 批 判 了 美 化 近 代 化 和 獨 裁 的 民 族 主 義 历 史 學, 另 一 方 面 民 衆 史 得 到 重 视, 在 日 本 的 1960 年 代, 一 方 面 批 判 对 近 代 化 攻 勢 呈 现 無 力 状 态 的 戰 後 历 史 學, 另 一 方 面 民 衆 史 也 得 到 重 视 两 国 的 民 衆 史 在 各 自 不 同 的 時 代 條 件 中, 按 形 成 擴 散 變 化 消 滅 留 下 了 发 展 的 軌 迹 冷 战 體 制 解 體 之 後, 在 近 代 史 學 的 危 機 中, 民 衆 史 之 後 的 摸 索 出 现 危 機 在 此 情 况 下, 形 成 了 韓 日 两 国 的 民 衆 史 之 共 同 遭 遇, 民 衆 史 以 後 的 摸 索 将 会 超 越 民 族 国 家, 面 对 东 亚 这 样 一 个 崭 新 的 時 間 和 空 間 概 念 在 本 文 中, 一 方 面 探 讨 了 韓 日 两 国 中 的 民 衆 史 之 历 史, 再 现 了 以 批 判 主 流 史 學 为 已 任 而 发 展 的 民 衆 史 的 形 成 變 化 消 滅 的 过 程, 同 时 将 要 揭 示 两 国 民 衆 史 形 成 的 不 同 條 件 和 差 异, 之 后 将 对 冷 战 體 制 解 體 之 後, 在 近 代 史 學 的 危 機 中, 随 着 对 民 衆 史 的 摸 索 进 一 步 加 深, 其 带 来 的 两 国 民 衆 史 间 的 交 流 启 程 过 程 进 行 考 察 通 过 这 样 的 总 结, 我 们 将 探 讨 民 衆 史 交 流 是 否 可 以 超 越 民 族 和 国 家 的 问 题, 然 后 开 启 批 判 史 學 的 新 篇 章 2. 韓 日 民 衆 史 的 历 史 (1) 韩 国 民 衆 史 學 的 軌 迹 韩 国 民 衆 史 在 1980 年 代 以 民 衆 史 學 1) 这 样 的 名 称 开 始 出 现 民 衆 史 學 从 否 定 形 成 黨 时 统 治 理 念 的 民 族 主 義 史 學 出 发 通 过 4 19 革 命 和 反 对 韓 日 會 談 鬪 爭, 以 高 揚 民 族 主 義 为 基 础 形 成 的 民 族 主 義 史 學 ( 內 在 的 發 展 論 ) 批 判 了 殖 民 主 義 史 学, 从 主 体 的 發 展 的 觀 點 再 现 了 韩 民 族 的 历 史 过 程 但 是 仅 以 克 服 殖 民 史 學 弱 点 为 焦 点 的 民 族 主 義 历 史 學 的 文 化 主 義 近 代 主 義 的 傾 向 明 显, 越 来 越 轻 视 1970 年 代 分 裂 體 制 獨 裁 體 制 强 化 的 局 面, 钻 进 象 牙 塔, 面 对 維 新 體 制, 提 供 了 以 民 族 史 为 基 础 的 所 谓 正 統 性, 民 族 的 主 体 史 观 成 为 主 流 2) 民 主 化 運 動 影 響 之 下, 民 族 主 義 史 學 體 制 内 化 而 强 調 历 史 的 現 实 性, 对 民 衆 運 動 关 注 的 民 衆 性 民 族 主 義 的 潮 流 逐 渐 出 现, 进 入 1980 年 代 以 民 衆 为 民 族 史 之 主 体 的 民 衆 性 民 族 史 學 虽 然 被 提 出, 但 是 仍 处 于 仅 以 個 人 的 角 度 提 出 问 题 的 水 平 中, 对 民 族 主 義 史 學 自 身 的 批 判 没 有 形 成 思 索 的 高 潮 超 越 民 衆 性 民 族 史 學 的 局 限, 对 史 學 自 身 进 行 批 判 为 已 任 的 民 衆 史 學 3) 的 出 現 條 件 是 1) 民 衆 史 是 指 民 衆 史 的 敍 述 方 法 和 內 容 的 槪 念 的 话, 民 衆 史 學 不 仅 是 民 衆 史 敍 述 方 法 和 內 容, 更 是 指 包 括 了 民 衆 史 敍 述 的 條 件 和 形 態 的 一 种 傾 向 / 潮 流 的 槪 念 2) 李 世 永, 現 代 韩 国 史 學 的 動 向 和 課 題, 80 年 代 韩 国 人 文 社 會 科 学 的 現 階 段 和 展 望, 历 史 批 評 社, 1988.; 李 润 甲, 韩 国 現 代 民 族 史 學 的 展 開 和 民 衆 史 學, 韩 国 學 論 集 22, 1995. 3) 对 民 衆 史 學 的 一 般 定 義 规 结 为 历 史 發 展 的 主 体 是 民 衆 这 样 的 宣 言 性 命 題 为 基 礎, 将 历 史 视 10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马 克 思 主 義 的 形 成 经 过 了 以 光 州 民 衆 抗 爭 的 經 驗 和 反 省 为 基 石 的 九 老 同 盟 罷 工 和 韩 国 社 會 性 格 論 爭 后, 韩 国 社 會 中 出 现 了 马 克 思 主 義 思 潮, 在 马 克 思 主 義 的 影 響 之 中, 批 判 了 實 證 史 學 性 的 民 族 史 學, 在 社 会 變 革 主 体 的 民 衆 的 立 場 上 追 求 历 史 叙 述 的 民 衆 史 學 开 始 形 成 望 遠 韓 國 史 硏 究 室 (1984.12), 韓 國 近 代 史 硏 究 會 (1985.5), 歷 史 問 題 硏 究 所 (1986.2) 等 硏 究 团 体 为 中 心, 集 結 的 民 衆 史 學 的 主 体 们 对 统 治 理 念 的 史 學 进 行 了 猛 烈 批 判, 标 榜 着 站 在 民 衆 角 度 入 手 的 科 学 硏 究 态 度, 克 服 硏 究 者 的 局 限 成 为 了 科 学 運 動 的 主 体 韓 国 民 衆 史 演 示 了 初 期 民 衆 槪 念 和 民 衆 史 的 敍 述 原 貌 以 马 克 思 主 義 的 阶 级 理 論 为 基 础, 提 出 了 作 为 历 史 的 變 革 主 体, 民 衆 具 有 作 为 阶 级 聯 合 体 的 性 质 的 主 张, 并 提 出 " 和 历 史 主 体 的 民 衆 坚 实 地 結 合 在 一 起 " 才 有 可 能 有 科 学 性 的 保 障 的 认 识 之 下, 结 合 了 社 會 構 成 史 和 民 衆 運 動 史 内 容, 试 图 从 原 始 社 會 到 光 州 民 衆 抗 爭 的 民 衆 史, 进 行 敍 述 中 具 有 相 当 的 先 驅 性 的 意 义 4) 在 马 克 思 主 義 为 基 础 的 大 衆 運 動 的 影 响 之 下 形 成 的 民 衆 史 學, 在 马 克 思 主 義 的 形 成 擴 散 / 分 裂, 危 機 继 续 的 軌 迹 之 下 接 受 直 接 的 影 響, 形 成 了 自 己 独 有 的 擴 散 / 分 裂 消 滅 过 程 5) 1987 年 民 主 化 鬪 爭 和 大 衆 運 動 的 擴 散 之 中, 在 大 學 院 ( 研 究 生 院 ) 和 學 界 政 治 意 識 抬 头, 以 學 術 運 動 为 基 石 的 組 織 和 實 踐 在 摸 索 中 前 进 在 大 學 院, 大 學 院 組 織 的 民 主 化 改 編, 講 師 協 議 會 和 講 師 勞 組 ( 工 会 ) 的 形 成 等, 大 學 院 学 生 和 時 間 講 師 的 制 度 改 善 和 保 护 權 益 的 鬪 爭 扩 散, 在 學 界 批 判 着 保 守 的 学 问 氛 围 和 從 屬 性 学 问, 以 为 了 學 界 的 民 主 化 和 進 步 的 學 術 硏 究 为 名 標 榜 的 進 步 性 硏 究 团 体 形 成 了 某 种 潮 流 以 硏 究 团 体 为 中 心, 學 術 運 動 議 論 擴 散 的 同 时, 學 術 運 動 的 內 容 和 对 形 式 的 认 识 得 到 了 深 化, 但 是 围 绕 着 研 究 者 的 作 用, 學 術 運 動 的 組 織 論, 學 術 運 動 的 偏 向 也 暴 露 出 来 當 時 民 主 化 運 動 陣 營 的 ' 民 族 解 放 派 ' 和 ' 民 衆 民 主 派 ' 的 思 想 理 論 的 對 立 和 組 織 性 分 裂 和 學 術 運 動 的 偏 向 出 现 后, 民 衆 史 學 主 体 的 分 裂 和 改 编 暴 露 出 来 望 遠 韩 国 史 硏 究 室 內 部 相 异 的 傾 向, 和 历 史 學 界 的 统 一 硏 究 团 体 議 論 相 合, 将 硏 究 团 体 的 分 裂 和 改 編 继 续 了 下 去 望 遠 韩 国 史 硏 究 室 和 韩 国 近 代 史 硏 究 會 标 榜 自 己 是 民 衆 史 学 的 代 表, 将 视 角 指 向 現 場 和 民 衆 敎 育 的 九 老 歷 史 硏 究 所 (1988.9) 和 提 出 科 学 的 實 踐 的 历 史 學, 将 重 点 放 在 大 衆 的 組 織 化 的 硏 究 者 以 韓 國 歷 史 硏 究 會 (1988.11) 为 名 改 编 韩 国 历 史 硏 究 會 从 古 代 史 开 始 到 現 代 史 为 止, 以 包 括 了 全 時 代 史 的 分 科 體 制 为 基 础, 发 展 为 有 相 当 规 模 的 硏 究 會, 包 为 民 衆 的 主 体 性 擴 大 的 程 进 行 解 釋, 以 此 为 基 础, 为 建 设 以 民 衆 为 主 人 的 社 會, 而 进 行 變 革 进 行 摸 索 的 實 踐 的 学 问 傾 向 ( 金 聖 甫 ) 但 是 这 样 的 槪 念 规 定 下, 考 虑 将 民 衆 史 學 视 为 史 學 內 部 存 在 的 某 种 方 法 / 傾 向 时, 出 现 限 制 性 过 窄 问 题 时, 可 以 将 民 衆 史 學 视 为 在 80 年 代 出 現 的 史 學 批 判 的 代 名 词, 是 民 众 主 体 的 历 史 敍 述 和 勞 動 者 運 動 的 政 治 性 實 踐 融 合 4) 序 說 : 为 了 值 得 期 待 的 我 们 的 历 史 理 解, 韓 国 民 衆 史 Ι, 1986. 5) 在 这 样 的 觀 點 中 敍 述 民 衆 史 學 历 史 的 裵 城 浚, 1980-90 年 代 民 衆 史 學 的 形 成 和 消 滅, 历 史 问 题 硏 究 23, 2010. 參 照. 108
東 亞 民 衆 史 的 可 能 性 : 韓 ㆍ 日 民 衆 史 之 遭 遇 摄 了 200 余 名 硏 究 者 而 九 老 历 史 硏 究 所 一 方 面 进 形 勢 要 求 的 硏 究 活 動, 另 一 方 面 追 求 了 民 衆 運 動 团 体 的 組 織 性 和 理 念 性 以 1990 年 为 中 心, 現 實 的 社 會 主 義 的 大 崩 溃 引 发 了 马 克 思 主 義 的 危 機, 对 马 克 思 主 義 的 批 判 和 淸 算 的 氛 围 中, 招 来 了 民 衆 史 學 的 危 機, 民 衆 史 學 陷 入 了 消 滅 的 危 机 中 民 衆 運 動 和 社 會 主 義 運 動 硏 究 的 退 却 和 民 衆 敎 育 活 動 的 沉 默 中, 硏 究 团 体 演 变 为 自 己 曾 经 热 衷 于 批 判 的 原 有 學 會 或 硏 究 所 韩 国 历 史 硏 究 會 在 硏 究 主 義 蔓 延 的 學 界, 在 必 须 确 保 统 治 性 地 位 的 主 张 下, 代 替 了 科 学 的 實 踐 的 史 學 为 名 的 民 衆 史 學, 九 老 历 史 硏 究 所 在 大 衆 历 史 書 籍 和 硏 究 論 文 集 的 發 刊 事 业 中 摸 索 着, 为 了 强 化 历 史 硏 究, 将 硏 究 所 的 名 稱 改 为 歷 史 學 硏 究 所 (1993.8) 同 时 在 历 史 學 界 中, 将 民 衆 史 學 清 出 學 界 和 引 入 學 界 的 两 种 呼 声 并 存 的 状 态 下, 民 衆 史 學 的 力 量 却 在 消 滅 中 渐 行 渐 远 (2) 日 本 民 衆 思 想 史 的 軌 迹 1945 年 之 後, 日 本 現 代 史 學 中 可 以 包 摄 民 衆 史 的 潮 流 与 60 年 代 形 成 的 人 民 鬪 爭 史 和 民 衆 思 想 史 有 密 切 的 关 系 首 先, 在 历 史 學 的 潮 流 中, 让 我 们 对 人 民 鬪 爭 史 和 民 衆 思 想 史 的 脈 絡 和 位 置 进 行 梳 理, 为 了 确 定 民 衆 史 的 對 象, 对 戰 後 历 史 學 和 他 们 的 流 派 的 關 係 进 行 一 番 认 真 的 考 察 从 1950 年 代 到 1970 年 代 为 止, 成 为 日 本 历 史 學 主 流 的 戰 後 历 史 學 以 马 克 思 主 義 历 史 學 和 近 代 主 義 历 史 學 形 成 了 两 大 主 线 他 们 在 清 算 了 皇 國 史 观 后, 以 日 本 社 會 的 變 革 为 課 題 的 戰 後 历 史 學 通 过 科 学 主 義 克 服 了 封 建 残 孽, 向 西 歐 式 近 代 化 迈 开 了 发 展 的 步 伐 6) 戰 後 历 史 學 在 50 年 代 對 美 從 屬 的 民 族 危 機 中, 为 解 決 民 族 问 题 和 也 为 国 民 团 结 为 主 体 的 國 民 着 想, 通 过 这 样 的 過 程, 形 成 了 忘 记 日 本 帝 國 实 施 的 殖 民 地 统 治 和 戰 爭 暴 行 的 戰 後 式 日 本 国 民 史 7) 戰 後 历 史 學 在 国 民 性 历 史 學 運 動 的 淸 算 和 昭 和 史 論 爭 问 题 中 占 有 重 要 地 位 中, 陷 入 了 沉 寂 状 态, 但 是 在 1960 年 批 判 安 保 鬪 爭 和 近 代 化 論 为 机 会, 活 跃 / 安 定 化 中, 迎 来 了 鼎 盛 期 實 證 的 硏 究 得 到 深 化, 硏 究 的 对 象 也 从 明 治 維 新 硏 究 中 向 着 昭 和 时 代 的 民 主 化 帝 國 主 義 硏 究 转 变, 从 寄 生 地 主 制 硏 究 中 向 着 産 業 革 命 硏 究, 从 阶 级 鬪 爭 史 硏 究 向 着 人 民 鬪 爭 民 主 主 義 鬪 爭 史 硏 究 转 向 8) 人 民 鬪 爭 史 在 安 保 鬪 爭, 反 对 越 战 運 動 等 大 衆 運 動 兴 起 6) 永 原 慶 二, 20 世 紀 日 本 の 歷 史 學, 吉 川 弘 文 館, 2003, 153-168 页. 戰 後 历 史 學 的 认 识 是 1 指 向 理 想 社 會 目 的 論 的 历 史 意 識 2 貫 徹 了 普 遍 的 發 展 法 則 的 历 史 3 以 国 民 性 類 型 为 基 礎 的 發 展 階 段 論 4 以 社 會 構 成 的 基 本 槪 念 形 成 的 阶 级 和 民 族 5 可 以 概 括 为 重 视 內 在 的 發 展 的 社 會 構 造 认 识 二 宮 宏 之, 戰 後 歷 史 學 と 社 會 史, 戰 後 歷 史 學 再 論, 靑 木 書 店, 2000, 125-126 页. 7) 特 輯 : 民 族 性 的 - 围 绕 着 那 些 評 價 -, 思 想, 1961) 8) 安 田 常 雄, 方 法 についての 斷 章, 戰 後 歷 史 學 再 論, 靑 木 書 店, 2000, 15 页. 10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时, 在 保 守 势 力 的 理 念 攻 勢 ( 近 代 化 論 和 明 治 百 年 祭 ) 的 對 抗 中, 随 着 統 一 戰 線 的 形 成 一 起 活 跃 为 了 克 服 阶 级 構 成 分 析 带 来 的 阶 级 鬪 爭 史 的 局 限, 而 提 出 的 人 民 鬪 爭 史 已 经 修 正 了 人 民 槪 念, 缩 小 了 阶 级 槪 念 并 克 服 了 阶 级 還 原 論, 通 过 团 结 多 樣 的 阶 级 和 广 泛 的 階 層, 解 释 了 反 国 家 反 帝 國 主 義 鬪 爭 的 历 史 9) 人 民 鬪 爭 史 包 括 了 多 樣 形 態 的 農 民 起 义 和 世 直 し 狀 況 論 結 合, 在 1970 年 前 后, 成 为 戰 後 历 史 學 主 要 潮 流 10) 和 人 民 鬪 爭 史 類 似 的 時 期 中, 注 意 到 民 衆 的 日 常 和 體 驗 的 民 衆 思 想 史 已 经 出 现 民 衆 思 想 史 也 和 人 民 鬪 爭 史 一 样, 是 在 对 安 保 鬪 爭 的 反 省 和 对 近 代 化 論 进 行 对 抗 的 背 景 中 提 出, 但 是 更 多 的 是 从 根 本 上 以 戰 後 历 史 學 的 危 機 为 重 要 认 识 而 形 成 在 日 本 共 産 黨 的 轉 換 方 針 对 斯 大 林 的 批 判 和 匈 牙 利 事 变 中, 马 克 思 主 義 的 影 響 力 大 幅 度 削 弱, 但 是 戰 後 历 史 學 在 60 年 代 在 制 度 性 的 安 定 中 迎 来 了 全 盛 期 但 是 这 样 的 全 盛 期 的 另 一 面 中, 戰 後 历 史 學 的 實 證 性 硏 究 中, 和 沉 寂 中 的 社 會 現 實 相 背 离, 形 成 了 封 閉 的 領 域 尤 其 是 以 近 代 化 論 为 旗 帜 的 保 守 勢 力 的 理 念 攻 勢 的 对 应 该 抗 中, 在 历 史 學 界 对 近 代 化 論 仅 从 学 问 的 角 度 进 行 反 駁, 仅 集 中 暴 露 了 理 念 攻 勢 的 虛 伪 性 和 欺 骗 性, 对 于 随 着 近 代 化 論 擴 散, 經 濟 成 長 的 變 化, 这 种 观 念 已 经 成 为 变 化 了 的 大 衆 生 活 和 意 識 的 基 础, 对 此 认 识 不 足 是 其 致 命 之 处 11) 民 衆 思 想 史 在 戰 後 历 史 學 派 的 近 代 化 論 的 攻 勢 下, 在 無 力 这 样 的 危 機 意 識 中, 把 注 意 力 放 到 了 民 衆 上, 对 近 代 的 批 判, 由 此 开 始 因 此 在 和 戰 後 历 史 學 的 關 係 来 看, 如 果 说 人 民 鬪 爭 史 是 戰 後 历 史 學 內 部 追 求 社 會 構 成 和 大 衆 運 動 的 团 结 中 形 成 的 话, 民 衆 思 想 史 是 在 对 戰 後 历 史 學 进 行 批 判, 对 抗 近 代 化 論 中, 追 求 民 衆 的 獨 立 的 思 想 形 成 的 过 程 中 出 现 的 12) 在 此 点 上, 和 韩 国 的 民 衆 史 學 有 其 類 似 的 发 展 过 程 和 意 义 的 日 本 民 衆 史 的 潮 流 中, 更 多 地 注 意 到 了 民 衆 思 想 史 民 衆 思 想 史 在 1960 年 代 以 色 川 大 吉 为 首, 续 之 以 安 丸 良 夫 鹿 野 政 直 廣 田 昌 希 等 的 民 衆 史 敍 述, 形 成 了 一 种 重 要 的 思 潮, 自 由 民 權 運 動 期 的 人 民 槪 念 登 台 等 硏 究 中, 其 开 始 是 很 早 的, 他 们 对 民 衆 的 日 常 體 驗 思 想 等 的 历 史 敍 述 为 對 象, 开 始 了 其 对 民 衆 形 象 的 崭 新 的 研 究 色 川 大 吉 通 过 将 投 身 于 自 由 民 權 運 動 的 無 名 靑 年 们 的 思 想 和 行 動, 通 过 9) 人 民 鬪 爭 史 硏 究 的 中 心 人 物 犬 丸 義 一 认 为, 人 民 鬪 爭 是 阶 级 鬪 爭 的 現 象 形 態, 勞 動 者 阶 级, 農 民, 小 市 民, 知 識 人, 中 小 资 产 阶 级 这 样 的 阶 级, 反 对 美 帝 国 主 義 式 和 日 本 垄 断 資 本 的 鬪 爭 10) 須 田 努, イコンの 崩 壞 まで- 戰 後 歷 史 學 と 運 動 史 硏 究 -, 靑 木 書 店, 2008, 161-176 页. 11) 户 边 秀 明, 民 衆 思 想 史 硏 究 的 出 發 - 安 丸 良 夫 的 方 法 上 的 革 新 -, 历 史 學 的 世 紀, 2009, 对 此 以 批 判 态 度 考 察 的 當 事 者 的 回 顧 中, 安 丸 良 夫, 民 衆 史 和 戰 後 思 想, 历 史 家 的 誕 生, 石 枕 (돌베개), 2008. 參 照. 12) 大 門 正 克 认 为 民 衆 史 的 兩 大 潮 流 中, 民 衆 思 想 史 的 潮 流 和 日 本 民 衆 の 歷 史 ( 三 省 堂, 1974-76) 整 理 的 人 民 鬪 爭 史 潮 流 是 其 核 心 部 分. 他 认 为 作 为 兩 大 潮 流 的 代 表 者, 大 門 正 克 和 中 村 政 則 相 比, 中 村 政 則 是 继 承 了 强 调 历 史 的 發 展 法 則 的 戰 後 历 史 學, 大 門 正 克 从 批 判 近 代 化 的 出 发 点 中, 认 为 戰 後 历 史 學 有 其 獨 创 性. 大 門 正 克, 解 說 : 民 衆 世 界 への 問 いかけ, 民 衆 世 界 への 問 いかけ ( 展 望 日 本 歷 史 21), 東 京 堂 出 版, 2001. 110
東 亞 民 衆 史 的 可 能 性 : 韓 ㆍ 日 民 衆 史 之 遭 遇 其 形 象 化 的 作 業, 展 示 了 具 有 独 特 思 想 的 民 衆 形 象 安 丸 良 夫 非 常 关 注 日 常 生 活 規 範 中 的 通 俗 道 德, 认 为 民 衆 是 勤 勉 儉 約 孝 行 節 制 这 样 的 通 俗 道 德 的 實 踐 中 形 成 主 体, 是 日 本 近 代 化 成 功 的 動 力 鹿 野 政 直 以 统 治 阶 级 的 秩 序 意 識 和 相 異 的 民 衆 的 秩 序 意 識 为 素 材, 自 上 而 下 的 秩 序 化 和 自 下 而 上 的 秩 序 意 識 的 對 立 和 矛 盾 为 主 轴, 再 现 了 日 本 的 近 代 史 廣 田 昌 希 从 近 代 文 明 中 民 衆 的 自 覺, 抵 抗 的 側 面 对 文 明 開 化 的 民 衆 意 識 进 行 关 注, 通 过 民 衆 的 三 層 構 造 ( 上 層 民 衆 / 下 層 民 衆 / 被 差 別 化 的 民 衆 ) 研 究 了 民 衆 的 傳 統 和 独 特 性 对 他 们 而 言, 共 同 的 民 衆 槪 念, 对 民 衆 思 想 史 的 共 同 方 法 也 并 不 存 在, 对 民 衆 思 想 的 硏 究, 其 强 調 點 和 指 向 性 各 有 不 同, 因 此 没 有 形 成 任 何 共 同 硏 究 话 虽 如 此, 其 在 安 保 鬪 爭 的 經 驗 之 中 对 于 和 阶 级 人 民 不 同 的 民 衆 的 主 体 形 成 加 以 关 注, 在 戰 後 历 史 学 的 方 法 論 的 鯁 直 性 中, 加 入 了 威 严 的 成 分, 通 过 试 行 独 特 的 历 史 敍 述 追 求 了 从 方 法 上 的 民 衆 13) 民 衆 思 想 史 在 70 年 代 后 半 期 到 80 年 代 前 半 期, 在 对 民 衆 思 想 的 认 识 和 方 法 中, 找 到 了 轉 換 的 方 法 色 川 大 吉 自 己 认 识 到 硏 究 者 的 历 史 形 象 和 真 实 的 民 衆 历 史 形 象 有 所 不 同, 通 过 無 名 人 物 的 自 分 史 的 蓄 積 組 合 構 成, 在 探 究 历 史 本 源 的 同 时, 接 受 了 民 俗 學, 开 辟 了 民 衆 史 崭 新 的 領 域 安 丸 良 夫 通 过 对 生 的 樣 式 进 行 內 在 的 分 析 这 样 的 視 點, 对 民 衆 的 意 識 形 態 內 在 構 造 进 行 了 研 究 鹿 野 政 直 对 历 史 上 被 忽 视 的 邊 缘 阶 层 的 存 在 非 常 关 注, 在 女 性 史 和 琉 球 史 硏 究 中, 集 中 了 自 己 的 力 量 这 样 的 轉 換, 在 民 衆 思 想 史 是 由 民 衆 造 成 的 日 本 历 史 广 泛 认 识 中, 最 终 抱 着 他 们 也 是 国 民 史 的 自 覺, 对 边 缘 阶 层 进 行 了 独 特 的 研 究, 并 通 过 被 差 別 對 立 抗 爭 中 分 裂 的 民 衆, 进 行 了 极 大 的 关 注 14) 这 样 的 民 衆 思 想 史 的 轉 換, 其 实 已 经 意 味 着 民 衆 思 想 史 的 消 滅 卽 通 过 批 判 戰 後 历 史 學, 通 过 民 衆 这 个 觀 點 和 方 法, 企 图 敍 述 国 民 的 历 史 的 民 衆 思 想 史 的 固 有 作 用 已 经 划 上 了 终 止 符, 15) 在 民 衆 思 想 史 構 成 的 民 衆 槪 念, 已 经 成 为 历 史 學 必 需 的 槪 念 的 观 点 中, 民 衆 思 想 史 已 经 在 历 史 學 的 主 流 中, 占 据 了 重 要 的 位 置 16) 3. 韓 日 民 衆 史 的 遭 遇 和 东 亚 民 衆 史 (1) 民 衆 史 學 / 民 衆 思 想 史 之 後 的 民 衆 史 之 摸 索 13) ひろた まさき, パンドラの 箱 - 民 衆 思 想 史 硏 究 の 課 題, ナシヨナル ヒストリーを 學 び 捨 てる, 東 京 大 學 出 版 會, 2006, 4-5 页.; 安 田 常 雄, 解 說 : 思 想 史 の 發 想 と 方 法, 思 想 史 の 發 想 と 方 法 ( 展 望 日 本 歷 史 24), 東 京 堂 出 版, 2000, 6-7 页. 14) ひろた まさき, 上 揭 论 文, 20-21, 32-33 页. 15) 安 田 常 雄 认 为 这 样 的 轉 換 是 民 衆 思 想 史 的 變 質, 强 调 了 戰 後 历 史 學 的 補 完 性 再 建 的 民 衆 思 想 史 硏 究 所 有 的 固 有 的 作 用 已 经 終 结 安 田 常 雄, 上 揭 书, 7 页. 16) 对 民 衆 思 想 史 硏 究 的 現 在 性 意 义, 有 成 田 龍 一 和 Carol Gluck 陳 述, 座 談 會, ナシヨナル ヒストリーを 學 び 捨 てる, 214-215, 220 页. 11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在 日 本 伴 随 着 高 度 經 濟 成 長, 結 果 在 日 本 社 會 发 生 了 可 以 说 是 新 中 間 大 衆 的 時 代 到 來 的 巨 大 變 化, 用 收 奪, 阶 级, 鬪 爭 这 样 槪 念, 說 明 社 會 關 係, 不 再 被 认 为 具 有 現 實 性 在 这 样 的 狀 況 下, 从 1970 年 代 後 半 开 始, 后 现 代 主 义 的 影 響 一 起, 接 受 了 社 會 史, 批 判 進 步 史 观 和 回 歸 日 常 世 界 中, 戰 後 历 史 學 也 被 边 缘 化 进 一 步 而 言,1990 年 前 后, 随 着 現 實 社 會 主 義 的 崩 溃, 以 历 史 發 展 段 階 論 和 社 會 主 義 为 其 實 踐 基 础 的 戰 後 历 史 學 不 得 不 退 出 历 史 舞 台 17) 在 这 样 的 狀 況 下,1980 年 代 後 半 以 B. 安 德 森 为 源 流 的 国 民 国 家 論, 導 入 了 包 括 了 E. 塞 义 德 的 后 殖 民 主 義 論, Gender 的 戰 後 历 史 學, 在 解 體 的 过 程 中, 以 談 論 理 論 为 基 石 的 测 试 的 史 料 分 析, 近 代 的 主 体 之 喪 失, 对 历 史 边 緣 加 以 關 心 等 崭 新 的 方 法 論, 被 不 断 提 及 尤 其 是 西 川 長 夫 提 出 的 国 民 国 家 論, 近 代 国 家 即 为 国 民 国 家, 依 靠 国 民 国 家 的 多 樣 的 体 系, 明 确 了 国 民 化 的 過 程, 提 供 了 对 国 民 史 的 根 本 性 批 判 进 入 1990 年 代, 随 着 泡 沫 經 濟 的 破 灭 和 冷 战 的 解 體, 在 这 样 的 混 亂 中 日 本 軍 慰 安 婦 问 题 被 反 复 提 起, 戰 爭 責 任 和 殖 民 地 问 题 做 为 主 要 課 題 浮 出 水 面, 通 过 修 改 和 平 憲 法, 向 普 通 国 家 化 迈 进 的 步 伐 中, 历 史 修 正 主 義 出 现 了 擡 頭 的 趋 势 他 们 批 判 戰 後 的 历 史 为 自 虐 史 观, 树 立 了 以 恢 复 健 全 的 国 家 主 义 的 信 心, 新 历 史 教 科 书 聚 会 (1997) 经 过 2001 年 和 2002 年, 通 过 选 择 扶 桑 社 版 教 科 书 運 動 得 以 展 開 为 了 与 历 史 修 正 主 義 的 出 現 對 應, 历 史 學 界 虽 然 对 扶 桑 社 版 教 科 书 中 可 视 的 历 史 性 事 實 的 誤 謬 和 侵 略 戰 爭 行 为 的 正 當 化, 采 取 了 批 判 态 度 对 历 史 修 正 主 義 的 历 史 认 识 的 批 判, 是 接 受 了 后 现 代 主 义 和 国 民 国 家 論 的 一 派 们 18) 围 绕 历 史 修 正 主 義 的 历 史 认 识 之 論 爭, 是 局 限 于 實 證 主 義 的 戰 後 历 史 學 展 现 其 形 骸 的 同 時, 成 为 摸 索 历 史 學 方 法 論 和 實 踐 性 的 崭 新 的 契 機 19) 在 民 衆 思 想 史 消 滅 以 来, 提 出 国 民 国 家 論 问 题 和 历 史 修 正 主 義 的 擡 頭 是 民 衆 思 想 史 之 後 的 民 衆 史, 卽 民 衆 槪 念 和 对 民 衆 史 敍 述 开 始 的 崭 新 的 摸 索 国 民 国 家 論 是 受 马 克 思 主 義 历 史 學 影 响, 成 为 民 衆 思 想 史 的 重 要 部 分, 也 让 日 本 的 近 代 历 史 學 顿 悟 到 这 是 国 民 的 历 史 这 一 点 牧 原 憲 夫 鶴 卷 孝 雄 成 田 龍 一 等 是 民 衆 思 想 史 的 第 二 代 学 者, 在 国 民 国 家 的 形 成 中, 以 民 衆 的 獨 立 性 之 喪 失, 和 異 端 化 過 程, 打 下 了 能 够 敍 述 日 本 近 代 史 的 重 要 基 础 以 後, 把 民 衆 槪 念 想 定 为 在 此 间 存 在 深 淵 異 質 的 集 團, 和 有 復 雜 的 相 互 關 係 的 存 在, 并 追 求 和 異 質 集 團 形 成 自 由 對 等 地 共 存 的 共 同 體 20) 或 在 另 外 的 視 角 中 入 手 时, 追 求 用 阶 级 槪 念 構 築 新 的 内 容 21) 等, 如 此, 民 衆 史 的 探 索 估 仍 然 繼 續 着 17) 須 田 努, 上 揭 书, 284-285 页. 18) 对 历 史 修 正 主 義 的 代 表 性 批 判 有 小 森 陽 一 高 橋 哲 哉 編, ナシヨナル ヒストリ-を 超 えて, 東 京 大 學 出 版 會, 1998. ; 高 橋 哲 哉 編, 歷 史 認 識 論 爭, 作 品 社, 2002 等. 19) 小 關 素 明, 岐 路 に 立 つ 戰 後 歷 史 學, 日 本 史 硏 究 537, 2007.5, 42-43 页. 20) ひろた まさき, 上 揭 书, 42-43 页. 112
東 亞 民 衆 史 的 可 能 性 : 韓 ㆍ 日 民 衆 史 之 遭 遇 同 时 在 韩 国 1990 年 代 之 後, 也 存 在 着 和 日 本 类 似 的 方 法 論 出 现 轉 換 的 趋 势 壓 縮 进 行 在 1990 年 代 前 半 期 随 着 民 衆 史 學 的 消 滅, 曾 在 民 衆 史 學 旗 帜 下 集 結 的 硏 究 者 们 被 制 度 圈 吸 收, 更 趋 向 于 實 證 民 生 硏 究 他 们 虽 然 对 统 治 政 策 史 硏 究 或 民 衆 運 動 的 組 織 和 理 念, 进 行 了 實 證 性 硏 究, 但 是 一 部 分 硏 究 者 接 受 了 西 歐 的 后 现 代 历 史 學 22) 的 同 时, 批 判 了 民 族 主 義 历 史 學 1990 年 代 以 来 后 现 代 历 史 學 被 介 绍 的 同 时, 摆 脱 民 族 主 義 神 話 化, 以 民 衆 / 市 民 的 名 称, 在 边 缘 化 / 被 排 除 的 少 數 者 问 题 上, 接 受 后 现 代 主 义 的 近 代 式 批 判 等 问 题 上 提 出 了 自 己 的 观 点 尤 其 在 引 入 印 度 的 Subaltern 硏 究, 英 國 的 马 克 思 主 義 社 會 史, 德 国 的 日 常 史, 意 大 利 的 微 视 史, 美 國 的 新 文 化 史 等 具 體 的 成 果 后 后 现 代 历 史 學 形 成 了 历 史 學 界 的 崭 新 的 潮 流 同 时 在 日 本 的 国 民 国 家 論 被 介 绍 进 来 之 后, 对 民 族 史 的 敍 述 出 现 了 根 本 性 的 批 判 研 究 通 过 接 受 后 现 代 历 史 學 和 国 民 国 家 論, 方 法 論 上 的 轉 換 公 开 的 契 機 是 在 2001 年 到 2002 年 的 韓 日 間 出 现 的 教 科 书 波 動 通 过 舆 论 声 讨 日 本 歪 曲 历 史 行 径 达 到 高 潮, 历 史 學 界 声 讨 了 扶 桑 社 版 历 史 教 科 书 对 史 實 的 歪 曲, 始 终 贯 彻 要 求 时 政 答 复 的 對 應 态 度 从 相 反 的 角 度 而 言, 围 绕 民 族 主 義 的 历 史 敍 述 出 现 的 論 爭 展 开 后, 历 史 教 科 书 是 民 族 的 故 事 的 认 识 扩 散, 围 绕 历 史 修 正 主 義 的 論 爭, 向 历 史 學 的 方 法 論 和 實 踐 性, 提 出 了 新 的 问 题 2004 年 親 日 反 民 族 行 爲 眞 相 糾 明 委 員 會, 2005 年 设 立 的 为 了 眞 實 和 解 的 過 去 史 整 理 委 員 會 好 象 强 化 了 民 族 主 義 历 史 學 的 理 論, 围 绕 在 記 憶 周 围 的 政 治 在 历 史 學 的 方 法 論 和 實 踐 性 而 言, 成 为 又 一 个 可 以 提 出 问 题 的 讨 论 场 围 绕 教 科 书 波 動 和 過 去 史 相 关 委 員 會 的 論 爭, 展 示 了 民 族 主 義 历 史 學 在 方 法 論 實 踐 的 有 效 性 方 面 的 喪 失 的 同 时, 对 巨 大 談 論 的 批 判 和 超 越 一 國 史 是 在 历 史 认 识 上 推 動 了 新 的 摸 索 后 现 代 历 史 學 和 接 受 国 民 国 家 論 时, 在 民 族 主 義 历 史 學 的 危 機 中 已 经 开 始 了 对 民 衆 史 學 的 批 判 和 民 衆 史 新 的 摸 索 通 过 超 越 民 衆 史 學 的 民 衆 史, 民 衆 運 動 史 之 後 的 民 衆 史 民 衆 史 學 的 科 学 的 變 革 的 民 衆 論 和 之 后 成 为 基 础 的 民 衆 運 動 史 的 敍 述 成 为 批 判 工 具, 提 出 了 将 民 衆 视 为 多 样 的 主 体 进 行 认 识, 为 了 再 现 他 们 的 原 貌, 以 多 樣 的 方 法 論 进 行 探 索 的 趋 势 23), 同 时 在 日 常 史 和 口 述 史 的 角 度 中, 为 了 对 民 衆 史 进 行 再 构 成, 进 行 了 新 的 摸 索 最 近 对 民 衆 史 的 摸 索 非 常 活 跃, 为 了 崭 新 的 民 衆 史 的 形 成 1 对 民 衆 的 日 常 性 进 行 关 注 2 认 识 到 民 衆 的 多 样 性 和 复 杂 性 3 对 自 律 和 從 屬 的 二 重 性 对 立 的 考 慮 4 在 国 民 国 家 为 單 位 的 發 展 論 树 立 的 中, 提 出 了 克 服 近 代 主 義 结 构 課 題 24) 21) 大 門 正 克, 上 揭 书, 14 页. 22) 后 现 代 历 史 學 的 用 语 在 后 现 代 主 义 和 历 史 學 ( 金 基 鳳 等, 蓝 色 历 史, 2002) 中 出 现, 在 此 指 的 是 使 用 后 现 代 主 义 的 历 史 學 23) 許 英 蘭, 民 衆 運 動 的 民 衆 史 - 民 衆 史 硏 究 的 現 在 和 崭 新 的 摸 索, 历 史 问 题 硏 究 15, 2005. 24) 李 庸 起, 崭 新 的 民 衆 史 的 指 向 和 現 住 所, 历 史 问 题 硏 究 23, 2010, 18 页. 11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2) 东 亚 民 衆 史 的 提 起 在 韓 國 从 1980 年 代 至 1990 年 代, 在 民 衆 史 學 的 形 成 消 滅, 現 實 社 會 主 義 的 崩 溃 之 后, 在 近 代 歷 史 學 ( 民 族 主 義 史 學 / 戰 後 歷 史 學 ) 的 危 機 的 狀 況 中, 民 衆 史 以 後 的 摸 索 形 成 了 可 以 超 越 民 族 國 家 为 單 位 的 條 件 同 时 在 日 本 1970 年 代 後 半 期 以 后 介 紹 接 受 的 社 會 史 中, 國 民 國 家 論 后 时 代 式 民 主 等 多 樣 的 理 論 和 方 法 論, 在 韓 國 从 1990 年 代 之 后 壓 縮 性 地 介 紹 接 受, 其 民 衆 史 以 後 的 摸 索 也 出 现 了 類 似 的 发 展 进 入 1990 年 代, 以 日 本 軍 慰 安 婦 事 件 的 證 言 和 訴 訟 为 契 機, 超 越 了 民 族 國 家 的 歷 史 認 識 之 摸 索 已 经 开 始, 创 作 崭 新 的 歷 史 敎 科 書 的 聚 会 出 現 以 後, 围 绕 敎 科 書 問 題 和 歷 史 修 正 主 義 를 的 矛 盾 超 越 民 族 國 家 后 展 開 尤 其 在 韓 國, 在 2004 年 将 揭 示 過 去 史 的 眞 相 之 基 础 的 歷 史 觀 批 评 为 自 虐 史 觀 将 失 敗 的 歷 史 修 正 为 成 功 的 歷 史 的 自 由 主 義 聯 隊 出 航 为 契 机, 歷 史 修 正 主 義 現 象 也 超 过 了 民 族 國 家 得 以 展 開 这 样 的 狀 況 中, 为 了 摸 索 超 越 民 族 國 家 歷 史 認 識 的 可 能 性, 韓 日 兩 國 的 市 民 社 會 和 學 界 的 相 互 交 流 极 大 活 跃 2000 年, 一 边 批 判 一 國 史 性 的 民 族 主 義 史 學, 超 越 國 民 國 家 的 境 界, 追 求 歷 史 認 識 的 为 了 批 判 和 联 系 的 東 亞 歷 史 探 讨 的 結 成, 仅 是 一 个 事 例 而 已 25) 在 民 衆 史 學 和 民 衆 思 想 史 消 滅 的 情 况 下, 在 两 国 民 衆 槪 念 和 民 衆 史 敍 述 的 有 效 性 被 認 可, 对 民 衆 史 的 摸 索 仍 在 继 续 中 作 为 这 样 的 摸 索 之 一 環, 超 越 了 一 國 史 范 畴 的 民 衆 史 研 究 的 可 能 性 已 经 出 现, 韓 日 两 国 的 交 流 已 经 开 始 在 韓 日 兩 國, 虽 然 民 衆 史 出 现 的 时 机 軌 迹 相 異, 近 代 歷 史 學 处 于 危 機 之 中, 在 民 衆 史 消 滅 的 狀 況 中, 形 成 了 超 越 民 族 國 家 进 行 摸 索 的 條 件, 在 兩 國 展 開 的 民 衆 史 之 後 的 摸 索 遇 到 一 起 1991 年 在 日 本 在 东 亚 地 域 为 了 达 到 民 衆 史 的 國 際 性 相 互 硏 究 的 目 的 为 名 设 立 的 亚 洲 民 衆 史 硏 究 會 成 立, 超 越 了 一 国 史 的 范 畴, 摸 索 形 成 了 东 亚 地 域 民 衆 史 硏 究 者 的 联 系 亞 民 硏 在 1991 年 8 月, 和 历 史 问 题 硏 究 所 一 起 就 19 世 紀 韩 国 和 日 本 的 民 衆 運 動 为 主 題, 主 办 了 合 作 討 論 會, 并 以 之 为 起 点 和 中 國 的 復 旦 大 學, 南 京 大 學, 臺 灣 的 臺 灣 大 學, 中 央 硏 究 院, 越 南 的 河 内 大 学, 进 行 了 學 術 交 流 活 动, 在 亞 民 硏 从 1994 年 到 2000 年 在 日 本 中 國 韩 国, 为 了 对 近 代 变 动 期 的 民 衆 狀 態 在 亚 洲 区 域 内 以 比 較 史 和 關 係 史 的 角 度 进 行 探 讨, 以 东 亚 的 近 代 变 动 的 民 衆 为 主 題 主 办 了 國 內 外 的 学 术 研 讨 会, 而 且 在 2001 年 到 2008 年, 把 空 間 時 間 人 間 总 结 为 包 含 意 識 總 體 的 世 界 觀, 通 过 此 主 题, 为 了 探 讨 亚 洲 地 域 的 民 衆 主 体 之 形 成, 以 在 东 亚 民 衆 的 世 界 觀 为 主 題, 开 展 了 对 东 亚 民 衆 史 的 硏 究 亚 洲 民 衆 史 硏 究 會 和 历 史 问 题 硏 究 所 从 2005 年 开 始 以 工 作 俱 乐 部 为 名 设 立 了 为 了 考 察 东 亚 民 衆 在 近 代 变 动 期 存 在 状 態 的 比 較 和 相 互 關 聯 性 的 國 際 的 关 系 网 召 开 定 期 会 议 25) 为 了 批 判 和 联 系 的 东 亚 历 史 探 讨 的 成 果 在 越 过 國 史 之 神 話 (2004), 歷 史 學 的 世 紀 (2009) 刊 行. 114
東 亞 民 衆 史 的 可 能 性 : 韓 ㆍ 日 民 衆 史 之 遭 遇 在 这 个 工 作 会 中, 以 兩 國 的 工 作 俱 乐 部 为 中 心, 考 察 了 兩 國 的 民 衆 史 的 摸 索 現 況, 对 史 學 史 和 民 衆 史 的 敍 述 进 行 了 主 题 发 表 和 讨 论 对 近 代 國 民 形 成 中 的 兩 國 差 異, 民 衆 槪 念 和 民 衆 史 硏 究 中 的 兩 國 差 異 等, 取 得 了 共 鸣, 但 在 民 衆 槪 念, 民 衆 意 識 和 主 體 性, 少 數 者 和 民 衆, 民 衆 運 動 的 理 念, 國 家 - 民 衆 關 係, 史 料 和 民 衆 史 認 識, 歷 史 敍 述 的 客 觀 性 等 焦 点 中, 不 同 硏 究 者 的 不 同 見 解 也 得 以 展 现 26) 虽 然 目 前 处 于 未 能 着 手 于 共 同 的 作 業 摸 索 期, 但 是 兩 側 已 经 在 民 衆 史 以 後 的 摸 索 是 非 常 必 要 的 这 一 点 上, 取 得 了 共 识, 在 疏 通 的 问 题 上 展 示 了 以 民 衆 史 为 媒 介, 超 越 民 族 國 家 进 行 摸 索 的 可 能 性 東 亞 民 衆 史 并 不 是 追 求 简 单 的 东 亚 这 个 地 域 範 疇 内 的 民 衆 史, 或 在 東 亚 形 成 的 民 衆 史 的 共 同 的 典 型 的 形 態 东 亚 民 衆 史 这 是 指 民 衆 史 以 後 的 摸 索 将 要 超 越 民 族 國 家 展 開 的 現 實 的 代 名 词, 通 过 东 亚 民 衆 史 可 以 看 到 民 衆 史 以 後 的 摸 索, 将 是 掀 开 新 自 由 主 義 時 代 歷 史 學 批 判 的 民 衆 史 大 幕 之 时 26) 許 洙, 韓 日 國 際 學 術 交 流, 历 史 问 题 硏 究 所 會 報 49, 2007; 張 龍 經, 亞 民 硏 工 作 会, 历 史 问 题 硏 究 所 會 報 52, 2009. 11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東 アジア 民 衆 史 の 可 能 性 : 韓 日 民 衆 史 の 遭 遇 裵 城 浚 ( 東 北 亜 歴 史 財 団 ) < 目 次 > 1. 民 族 史 ( 国 民 史 )と 民 衆 史 2. 韓 日 民 衆 史 の 歴 史 (1) 韓 国 民 衆 史 学 の 軌 跡 (2) 日 本 民 衆 思 想 史 の 軌 跡 3. 韓 日 民 衆 史 の 遭 遇 と 東 アジア 民 衆 史 (1) 民 衆 史 学 民 衆 思 想 史 以 降 における 民 衆 史 の 模 索 (2) 東 アジア 民 衆 史 の 提 起 1. 民 族 史 ( 国 民 史 )と 民 衆 史 1990 年 代 以 降 冷 戦 構 造 の 解 体 によって 地 域 単 位 の 結 集 対 立 が 強 まり 近 代 発 展 への 信 頼 が 混 乱 に 陥 るなか 東 北 アジア 三 国 においては 歴 史 や 領 土 の 問 題 をめぐ り 葛 藤 と 対 立 がさらに 激 しくなっている 独 島 ( 竹 島 )の 問 題 教 科 書 問 題 をめぐる 韓 日 の 葛 藤 東 北 工 程 をめぐった 韓 中 の 葛 藤 尖 閣 諸 島 ( 釣 魚 島 ) 教 科 書 問 題 をめぐる 中 日 間 の 葛 藤 など 国 家 間 の 葛 藤 が 絡 み 合 い これらが 各 国 政 府 によって 政 策 的 に 活 用 さ れたり 歴 史 認 識 をめぐる 国 家 内 部 の 葛 藤 と 結 びついたりすることにより 一 つの 地 域 的 葛 藤 構 造 が 形 成 されている 地 域 的 葛 藤 構 造 の 根 底 には 大 衆 の 民 族 主 義 的 情 緒 があり その 核 心 には 冷 戦 構 造 解 体 以 降 の 民 族 ( 国 民 )のアイデンティティの 再 構 成 という 問 題 が 存 在 している 民 族 国 家 (nation state)のイデオロギー 国 家 装 置 において 家 族 や 学 校 は 民 族 アイデンティティ を 形 成 する 主 要 な 装 置 として 機 能 しているが 現 在 議 論 とされているのが 民 族 史 ( 国 民 史 )の 叙 述 と 民 族 史 教 育 である 東 アジア 三 国 において 近 代 歴 史 学 は 古 代 から 現 代 まで 民 族 という 単 一 の 主 体 が 発 展 する 過 程 として 民 族 の 歴 史 を 叙 述 してきた 韓 国 では1960 年 代 以 来 植 民 史 観 を 克 116
東 アジア 民 衆 史 の 可 能 性 : 韓 日 民 衆 史 の 遭 遇 服 するための 発 展 的 主 体 的 民 族 史 ( 内 在 的 発 展 論 )が 成 立 し 歴 史 学 の 主 流 と なったが 日 本 では1950 年 代 以 来 皇 国 史 観 を 清 算 するための 戦 後 歴 史 学 が 成 立 し 周 辺 国 への 侵 略 や 加 害 の 記 憶 を 忘 却 し 自 国 中 心 の 歴 史 像 を 作 ってきた これに 対 し 韓 日 両 国 の 民 衆 史 は こうした 民 族 史 ( 国 民 史 )の 叙 述 を 批 判 して 民 衆 の 視 座 から 民 衆 の 歴 史 を 叙 述 してきた 韓 国 では1980 年 代 に 入 り 近 代 化 と 独 裁 を 合 理 化 する 民 族 主 義 歴 史 学 を 批 判 しながら 民 衆 史 が 提 起 され 日 本 では1960 年 代 に 入 り 近 代 化 の 勢 いに 無 力 な 戦 後 歴 史 学 を 批 判 しつつ 民 衆 史 が 提 起 された 両 国 の 民 衆 史 は それぞれ 異 なる 時 流 の 中 で 形 成 拡 散 変 化 消 滅 の 軌 跡 をたどってきたのであ り 冷 戦 構 造 解 体 以 降 における 近 代 歴 史 学 の 危 機 の 中 で 民 衆 史 以 後 の 模 索 や 危 機 の 状 態 にある このような 状 況 において 韓 日 両 国 民 衆 史 の 遭 遇 がなされ 民 衆 史 以 後 の 模 索 は 民 族 国 家 を 越 え 東 アジアという 新 しい 時 間 と 空 間 に 向 き 合 うことになった 本 稿 では 韓 日 両 国 で 展 開 した 民 衆 史 の 歴 史 を 検 討 し 歴 史 学 の 主 流 に 対 する 批 判 によって 樹 立 される 民 衆 史 の 形 成 変 化 消 滅 の 過 程 を 再 構 成 すると 共 に 両 国 民 衆 史 の 異 なる 条 件 と 差 異 を 明 らかにする また 冷 戦 構 造 の 解 体 後 における 近 代 歴 史 学 の 危 機 の 中 で 民 衆 史 以 降 の 民 衆 史 が 模 索 され 両 国 民 衆 史 の 交 流 が 始 まりについて 述 べると 共 に 民 族 国 家 を 越 えた 民 衆 史 の 交 流 が 新 しい 歴 史 学 批 判 を 始 めることができる 幕 開 けとなるのか その 可 能 性 を 探 ってみたい 2. 韓 日 民 衆 史 の 歴 史 (1) 韓 国 民 衆 史 学 の 軌 跡 韓 国 の 民 衆 史 は1980 年 代 に 入 り 民 衆 史 学 1) の 名 で 出 現 した 民 衆 史 学 は 当 時 支 配 イデオロギーとして 機 能 した 民 族 主 義 歴 史 学 に 対 する 否 定 から 出 発 した 4 19 革 命 と 韓 日 会 談 への 反 対 闘 争 によって 高 まった 民 族 主 義 を 基 盤 として 形 成 された 民 族 主 義 歴 史 学 ( 内 在 的 発 展 論 )は 植 民 主 義 歴 史 学 を 批 判 し 主 体 的 かつ 発 展 的 な 観 点 か ら 韓 民 族 の 歴 史 を 再 構 成 した だが 植 民 史 学 克 服 にのみ 焦 点 をあてた 民 族 主 義 歴 史 学 の 文 化 主 義 的 近 代 主 義 的 傾 向 は 1970 年 代 に 入 って 分 断 体 制 独 裁 体 制 の 強 化 1) 民 衆 史 が 民 衆 史 の 叙 述 方 法 と 内 容 を 指 す 概 念 だとすれば 民 衆 史 学 とは 民 衆 史 叙 述 の 方 法 と 内 容 にとどまらず 民 衆 史 叙 述 の 条 件 と 形 態 を 包 括 する 一 つの 傾 向 / 流 れを 指 す 概 念 と してとらえておきたい 11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という 現 実 から 目 を 背 け 象 牙 の 塔 に 安 住 することで 維 新 体 制 に 民 族 史 的 伝 統 性 を 付 与 する 民 族 的 主 体 史 観 を 支 えることになった 2) 民 主 化 運 動 の 影 響 のもと 民 族 主 義 歴 史 学 の 体 制 内 化 に 対 抗 し 歴 史 の 現 在 性 を 強 調 して 民 衆 運 動 に 注 目 する 民 衆 的 民 族 主 義 が 出 現 し 1980 年 代 には 民 衆 を 民 族 史 の 主 体 として 把 握 する 民 衆 的 民 族 史 学 が 提 起 されたが これは 個 人 的 な 問 題 提 起 のレベルにとどまり 民 族 主 義 歴 史 学 そのものへの 批 判 へと 進 展 しなかった 民 衆 的 民 族 史 学 の 限 界 を 越 え 歴 史 学 そのものへの 批 判 を 提 起 する 民 衆 史 学 3)が 出 現 しえたのは マルクス 主 義 の 形 成 だった 光 州 民 衆 抗 争 の 経 験 と 反 省 をもとに 九 老 同 盟 ストライキ と 韓 国 社 会 性 格 論 争 を 経 て 韓 国 社 会 においてマルクス 主 義 が 出 現 し その 影 響 と 連 係 のもとで 実 証 史 学 と 民 衆 的 民 族 史 学 を 批 判 し 変 革 を 主 体 とする 民 衆 の 立 場 に 立 った 歴 史 を 追 求 する 民 衆 史 学 が 形 成 された 望 遠 韓 国 史 研 究 室 (1984.12) 韓 国 近 代 史 研 究 会 (1985.5) 歴 史 問 題 研 究 所 (1986.2)などの 研 究 団 体 を 中 心 に 結 集 した 民 衆 史 学 の 主 導 者 は 支 配 イデオロギーとしての 歴 史 学 を 批 判 し 民 衆 主 体 に 立 脚 した 科 学 的 研 究 を 掲 げ 研 究 者 の 限 界 を 克 服 し 科 学 運 動 の 主 体 を 目 指 した 韓 国 民 衆 史 には 民 衆 史 学 の 初 期 における 民 衆 の 概 念 と 民 衆 史 の 叙 述 のあり 方 がよくあらわれている マルクス 主 義 階 級 論 にもとづき 歴 史 の 変 革 主 体 と して 民 衆 は 階 級 連 合 体 としての 性 格 を 持 つと 規 定 し 歴 史 主 体 の 民 衆 との 固 い 結 合 だけが 科 学 性 を 保 障 するという 認 識 のもと 社 会 構 成 史 や 民 衆 運 動 史 を 結 合 し 原 始 社 会 から 光 州 民 衆 抗 争 に 至 る 民 衆 史 の 叙 述 を 試 みた 点 は 先 駆 的 な 意 味 を 持 つ 4) マルクス 主 義 に 基 盤 をおく 大 衆 運 動 の 影 響 で 形 成 された 民 衆 史 学 は マルクス 主 義 の 形 成 拡 散 分 裂 危 機 へと 続 く 軌 跡 の 直 接 的 な 影 響 を 受 けつつ 形 成 拡 散 分 裂 消 滅 した 5) 1987 年 の 民 主 化 闘 争 そして 大 衆 運 動 の 拡 大 の 中 で 大 学 院 と 学 界 2) イ セヨン 現 代 韓 国 史 学 の 動 向 と 課 題 80 年 代 韓 国 人 文 社 会 科 学 の 現 段 階 と 展 望 歴 史 批 評 社 1988 イ ユンガプ 韓 国 現 代 民 族 史 学 の 展 開 と 民 衆 史 学 韓 国 学 論 集 22 1995 3) 民 衆 史 学 に 対 する 一 般 的 な 定 義 は 歴 史 発 展 の 主 体 は 民 衆 という 宣 言 的 命 題 に 基 づき 歴 史 を 民 衆 の 主 体 性 が 広 がっていく 過 程 と 解 釈 し これを 土 台 として 民 衆 が 主 となる 社 会 を 建 設 す るための 変 革 の 展 望 を 模 索 する 実 践 的 な 学 問 傾 向 (キム ソンボ)というものである だがこの ような 定 義 が 民 衆 史 学 を 歴 史 学 内 部 に 存 在 する 一 つの 方 法 / 傾 向 へと 限 定 してしまう 点 を 考 慮 し ここでは 民 衆 史 学 を 80 年 代 に 出 現 した 歴 史 学 批 判 の 名 称 であり 民 衆 主 体 の 歴 史 叙 述 と 労 働 者 運 動 の 政 治 的 実 践 との 融 合 と 規 定 しておきたい 4) 序 説 : 望 ましい 私 たちの 歴 史 理 解 のために 韓 国 民 衆 史 Ι プルピッ 1986 5) このような 観 点 から 民 衆 史 学 の 歴 史 に 対 する 叙 述 は 裵 城 浚 1980 90 年 代 民 衆 史 学 の 形 成 と 消 滅 歴 史 問 題 研 究 23 2010を 参 照 118
東 アジア 民 衆 史 の 可 能 性 : 韓 日 民 衆 史 の 遭 遇 においては 政 治 意 識 が 高 まり 学 術 活 動 にもとづいた 組 織 や 実 践 が 模 索 された 大 学 院 では 大 学 院 組 織 の 民 主 的 改 編 講 師 協 議 会 や 講 師 労 組 結 成 など 大 学 院 生 と 非 常 勤 講 師 の 制 度 改 善 や 権 益 擁 護 の 闘 争 が 広 がり 学 界 では 保 守 的 学 問 風 土 と 学 問 の 従 属 性 を 批 判 しつつ 学 界 の 民 主 化 と 進 歩 的 学 術 研 究 を 掲 げた 進 歩 的 研 究 団 体 が 一 つの 流 れを 形 成 した 研 究 団 体 を 中 心 とする 学 術 運 動 の 議 論 が 広 がったことで 学 術 運 動 の 内 容 と 形 式 に 対 する 認 識 が 深 化 する 契 機 となった だが 研 究 者 の 役 割 学 術 運 動 の 組 織 論 などをめぐっ ては 学 術 運 動 の 偏 りが 露 呈 した 当 時 民 主 化 運 動 陣 営 における 民 族 解 放 派 と 民 衆 民 主 派 の 思 想 理 論 的 対 立 と 組 織 的 分 裂 は 学 術 運 動 の 偏 りと 複 雑 に 絡 み 合 いつつ 民 衆 史 学 の 主 体 の 分 裂 再 編 として 表 出 した 望 遠 韓 国 史 研 究 室 内 部 におけ る 方 向 性 の 相 違 は 歴 史 学 界 研 究 団 体 の 統 合 に 関 する 議 論 と 結 びつき 研 究 団 体 の 分 裂 と 再 編 へとつながった 望 遠 韓 国 史 研 究 室 と 韓 国 近 代 史 研 究 会 は 民 衆 史 学 を 標 榜 し 現 場 指 向 民 衆 教 育 重 視 の 九 老 歴 史 研 究 所 (1988.9)と 科 学 的 実 践 的 歴 史 学 を 掲 げ 研 究 者 大 衆 の 組 織 化 を 重 視 した 韓 国 歴 史 研 究 会 (1988.11)として 再 編 された 韓 国 歴 史 研 究 会 は 古 代 史 から 現 代 史 までの 全 時 代 史 を 包 括 する 分 科 体 制 に 基 づき 200 名 を 超 える 研 究 者 を 抱 える 大 規 模 研 究 会 へと 発 展 し 九 老 歴 史 研 究 所 は 情 勢 が 要 求 する 研 究 活 動 を 遂 行 する 一 方 民 衆 運 動 団 体 との 組 織 的 理 念 的 結 合 を 追 求 した 1990 年 前 後 に 起 こった 現 実 の 社 会 主 義 の 崩 壊 は マルクス 主 義 の 危 機 として 発 現 し マルクス 主 義 に 対 する 批 判 と 清 算 の 雰 囲 気 は 民 衆 史 学 の 危 機 を 招 き 民 衆 史 学 の 消 滅 へとつながった 民 衆 運 動 および 社 会 主 義 運 動 研 究 の 退 潮 と 民 衆 教 育 活 動 の 停 滞 という 状 況 下 で 各 研 究 団 体 は 自 分 たちが 批 判 した 既 成 の 学 会 や 研 究 所 へと 変 質 して いった 韓 国 歴 史 研 究 会 においては 研 究 主 義 が 蔓 延 し 学 界 で 支 配 的 な 地 位 を 確 保 す べきだとの 主 張 が 持 ち 上 がり 科 学 的 実 践 的 歴 史 学 が 民 衆 史 学 に 取 って 代 わられ た 九 老 歴 史 研 究 所 は 大 衆 歴 史 書 と 研 究 論 文 集 の 発 刊 を 模 索 しつつ 歴 史 研 究 の 強 化 のため 研 究 所 の 名 称 を 歴 史 学 研 究 所 (1993.8)へと 変 更 した また 歴 史 学 界 に おいて 民 衆 史 学 を 学 界 から 追 放 しようという 試 みや 学 界 内 部 に 取 り 込 もうとする 試 みの 中 で 民 衆 史 学 の 力 量 は 消 滅 した (2) 日 本 民 衆 思 想 史 の 軌 跡 1945 年 以 降 における 日 本 の 現 代 歴 史 学 の 中 で 民 衆 史 に 包 括 される 動 向 として 60 11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年 代 に 形 成 された 人 民 闘 争 史 と 民 衆 思 想 史 がある まず 歴 史 学 の 潮 流 における 人 民 闘 争 史 と 民 衆 思 想 史 のコンテクストと 位 置 を 把 握 し 民 衆 史 の 対 象 を 定 めるため 戦 後 歴 史 学 とこれらの 潮 流 との 関 係 をまとめておく 1950 年 代 ~1970 年 代 にかけ て 日 本 歴 史 学 の 主 流 であった 戦 後 歴 史 学 は マルクス 主 義 歴 史 学 と 近 代 主 義 歴 史 学 を 両 軸 として 形 成 された 皇 国 史 観 を 清 算 して 日 本 社 会 の 変 革 を 課 題 とした 戦 後 歴 史 学 は 科 学 主 義 によって 封 建 の 遺 制 を 克 服 し 西 欧 近 代 を 指 向 した 6) 戦 後 歴 史 学 は 1950 年 代 の 対 米 従 属 という 民 族 的 危 機 の 中 で 民 族 問 題 の 解 決 と 国 民 的 統 合 の 主 体 として 国 民 を 想 定 し この 過 程 において かつての 帝 国 日 本 が 遂 行 した 植 民 地 支 配 と 戦 争 の 暴 力 を 忘 却 した 戦 後 日 本 の 国 民 史 として 成 立 した 7) 戦 後 歴 史 学 は 国 民 的 歴 史 学 運 動 の 清 算 と 昭 和 史 論 争 という 問 題 提 起 を 受 けて 低 迷 していたが 1960 年 の 安 保 闘 争 近 代 化 論 批 判 を 機 に 活 性 化 安 定 化 をみせ 全 盛 期 を 迎 えた 実 証 研 究 が 深 化 し 研 究 対 象 も 明 治 維 新 から 大 正 デモクラシー 帝 国 主 義 の 研 究 へ 寄 生 地 主 制 研 究 から 産 業 革 命 の 研 究 へ 階 級 闘 争 史 から 人 民 闘 争 民 主 主 義 闘 争 史 の 研 究 へと 移 行 した 8) 人 民 闘 争 史 は 安 保 闘 争 ベトナム 反 戦 運 動 と いった 大 衆 運 動 の 高 まりの 中 で 保 守 勢 力 のイデオロギー 攻 勢 ( 近 代 化 論 と 明 治 百 年 祭 )に 対 抗 する 統 一 戦 線 の 提 起 とともに 台 頭 した 構 造 分 析 に 偏 った 階 級 闘 争 史 の 限 界 を 克 服 する 目 的 から 提 起 された 人 民 闘 争 史 は 人 民 の 概 念 を 受 け 入 れ 階 級 概 念 の 狭 さや 階 級 還 元 論 を 克 服 し 様 々な 階 級 階 層 の 幅 広 い 結 合 を 通 じた 反 国 家 反 帝 国 主 義 闘 争 の 歴 史 を 解 明 しようとした 9) 人 民 闘 争 史 は 多 様 な 形 態 の 農 民 蜂 起 を 包 括 する 世 直 し 状 況 論 と 結 びつき 1970 年 前 後 における 戦 後 歴 史 学 の 主 流 となっていっ 6) 永 原 慶 二 20 世 紀 日 本 の 歴 史 学 吉 川 弘 文 館 2003 153 168 頁 戦 後 歴 史 学 の 認 識 の 枠 組 は 1 理 想 社 会 を 指 向 する 目 的 論 的 歴 史 意 識 2 普 遍 的 発 展 法 則 によって 貫 かれた 歴 史 3 国 民 的 類 型 を 基 礎 とする 発 展 段 階 論 4 社 会 構 成 の 基 本 概 念 としての 階 級 と 民 族 5 内 発 的 発 展 を 重 視 する 社 会 構 造 認 識 に 要 約 することができる 二 宮 宏 之 戦 後 歴 史 学 と 社 会 史 戦 後 歴 史 学 再 論 青 木 書 店 2000 125 126 頁 7) ここにおいて 国 民 という 帝 国 主 義 と 結 託 した 国 内 勢 力 を 除 外 した 概 念 として 当 時 の 民 族 人 民 などと 同 様 の 意 味 で 用 いられた また 戦 争 責 任 問 題 との 関 連 から 安 保 条 約 破 棄 と 対 米 従 属 からの 脱 皮 による 民 族 の 独 立 完 全 な 主 権 の 回 復 こそが アジア 地 域 との 関 係 回 復 のための 第 一 歩 であり 戦 争 責 任 問 題 を 考 える 基 盤 だと 主 張 した ( 特 集 ナショナル なもの その 評 価 をめぐって 思 想 444 1961) 8) 安 田 常 雄 方 法 についての 断 章 戦 後 歴 史 学 再 論 青 木 書 店 2000 15 頁 9) 人 民 闘 争 史 研 究 の 中 心 人 物 である 犬 丸 義 一 は 人 民 闘 争 とは 階 級 闘 争 の 現 象 形 態 であ り 労 働 者 階 級 農 民 勤 労 市 民 知 識 人 中 小 ブルジョアジーといった 階 級 と 階 層 が ア メリカ 帝 国 主 義 と 日 本 独 占 資 本 に 反 対 する 闘 争 だとしている 120
東 アジア 民 衆 史 の 可 能 性 : 韓 日 民 衆 史 の 遭 遇 た 10) この 人 民 闘 争 史 とほぼ 同 時 期 に 民 衆 の 日 常 と 体 験 に 注 目 する 民 衆 思 想 史 が 出 現 した 民 衆 思 想 史 も 人 民 闘 争 史 と 同 様 安 保 闘 争 に 対 する 反 省 と 近 代 化 論 への 対 抗 を 背 景 にしつつ 提 起 されたが その 根 底 には 戦 後 歴 史 学 の 危 機 に 対 する 認 識 が 内 在 していた 日 本 共 産 党 の 方 針 転 換 スターリン 批 判 とハンガリー 事 件 によってマルク ス 主 義 の 影 響 力 は 弱 まったが 戦 後 歴 史 学 は60 年 代 に 入 り 制 度 的 安 定 の 中 で 全 盛 期 を 迎 えた しかしこのような 全 盛 期 の 裏 では 戦 後 歴 史 学 が 実 証 研 究 にどっぷりと 浸 かり 社 会 の 現 実 と 乖 離 して 閉 鎖 的 な 領 域 を 構 成 していた 特 に 近 代 化 論 を 前 面 に 掲 げた 保 守 勢 力 のイデオロギー 攻 勢 に 対 し 歴 史 学 界 は 近 代 化 論 を 学 問 的 に 論 駁 し イデオロギー 攻 勢 の 虚 構 と 欺 瞞 の 暴 露 に 力 を 注 いだが 近 代 化 論 の 拡 散 が 経 済 成 長 によって 変 化 した 大 衆 の 生 活 と 意 識 を 基 盤 としている 点 を 認 識 できなかった 11) 民 衆 思 想 史 は 戦 後 歴 史 学 が 近 代 化 論 の 攻 勢 に 無 力 だという 危 機 意 識 のもと 民 衆 に 注 目 することによって 近 代 批 判 を 始 めた 従 って 戦 後 歴 史 学 との 関 係 からみた 場 合 人 民 闘 争 史 は 戦 後 歴 史 学 の 内 部 において 社 会 構 成 と 大 衆 運 動 の 結 合 を 追 求 し 一 方 で 民 衆 思 想 史 は 戦 後 歴 史 学 を 批 判 しなが ら 近 代 化 論 に 対 抗 し 民 衆 の 独 自 の 思 想 形 成 を 追 求 したと 言 えよう 12) このような 点 で 韓 国 の 民 衆 史 学 と 類 似 の 脈 絡 意 味 を 持 つ 日 本 民 衆 史 の 流 れとして 民 衆 思 想 史 に 注 目 してみたい 民 衆 思 想 史 は1960 年 色 川 大 吉 を 筆 頭 に 安 丸 良 夫 鹿 野 政 直 広 田 昌 希 といった 民 衆 史 の 叙 述 を 通 じ 一 つの 潮 流 を 形 成 した 既 に 自 由 民 権 運 動 期 に 人 民 の 概 念 が 登 場 するなど 民 衆 ( 人 民 常 民 )に 対 する 研 究 は 早 くから 始 まっていたが これらは 民 衆 の 日 常 体 験 思 想 などを 歴 史 叙 述 の 対 象 にすることで 新 たな 民 衆 像 を 構 築 した 色 川 は 自 由 民 権 運 動 に 身 を 投 じた 無 名 の 青 年 らの 思 想 と 行 動 を 形 づける 作 業 によ 10) 須 田 努 イコンの 崩 壊 まで 戦 後 歴 史 学 と 運 動 史 研 究 青 木 書 店 2008 161 176 頁 11) 戸 邉 秀 明 民 衆 思 想 史 研 究 の 出 発 安 丸 良 夫 の 方 法 的 革 新 歴 史 学 の 世 紀 ヒューマニスト 2009 このような 点 を 批 判 的 に 省 察 した 当 事 者 の 回 顧 としては 安 丸 良 夫 民 衆 史 と 戦 後 思 想 歴 史 家 の 誕 生 トルペゲ 2008を 参 照 12) 大 門 正 克 は 民 衆 史 の 二 大 潮 流 として 民 衆 思 想 史 と 日 本 民 衆 の 歴 史 ( 三 省 堂 1974 76)においてまとめられた 人 民 闘 争 史 を 挙 げている 彼 は 両 者 の 代 表 者 として 安 丸 良 夫 と 中 村 政 則 を 比 較 し 中 村 が 歴 史 の 発 展 法 則 を 継 承 した 戦 後 歴 史 学 を 継 承 した 半 面 安 丸 は 近 代 化 論 批 判 という 点 で 戦 後 歴 史 学 からの 独 自 性 を 有 している 説 明 する 大 門 正 克 解 説 : 民 衆 世 界 への 問 いかけ 民 衆 世 界 への 問 いかけ ( 展 望 日 本 歴 史 21) 東 京 堂 出 版 2001 12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り 独 自 の 思 想 を 持 った 民 衆 像 を 示 した 安 丸 は 日 常 生 活 の 規 範 である 通 俗 道 徳 に 注 目 し 民 衆 が 勤 勉 倹 約 孝 行 節 制 といった 通 俗 道 徳 の 実 践 の 中 で 主 体 性 を 形 成 し これらの 実 践 が 日 本 近 代 化 の 原 動 力 になったことを 指 摘 した 鹿 野 は 支 配 階 級 の 秩 序 意 識 とは 異 なる 民 衆 の 秩 序 意 識 を 考 察 し 上 からの 秩 序 化 と 下 からの 秩 序 意 識 の 対 立 葛 藤 を 軸 に 日 本 近 代 史 を 再 構 成 した 広 田 は 近 代 文 明 に 対 する 民 衆 の 自 覚 と 抵 抗 という 点 から 文 明 開 化 に 対 する 民 衆 意 識 に 注 目 し 民 衆 の 三 層 構 造 ( 上 層 民 衆 / 下 層 民 衆 / 被 差 別 民 衆 )によって 民 衆 の 伝 統 と 独 自 性 を 探 求 した 彼 らには 共 通 の 民 衆 概 念 も 民 衆 思 想 史 に 対 する 共 通 の 方 法 も 存 在 しておらず 民 衆 思 想 研 究 の 強 調 点 や 指 向 点 もそれぞれ 異 なっていたため 共 同 研 究 などは 行 われなかった だが 安 保 闘 争 の 経 験 の 中 で 階 級 や 人 民 とは 異 なる 民 衆 の 主 体 性 形 成 に 注 目 し 戦 後 歴 史 学 の 方 法 論 的 硬 直 性 に 違 和 感 を 抱 き 独 自 の 歴 史 叙 述 を 試 みるなど 方 法 としての 民 衆 を 追 求 し た 13) 民 衆 思 想 史 は 70 年 代 後 半 ~80 年 代 前 半 にかけ 民 衆 思 想 に 対 する 認 識 方 法 論 に 転 換 がみられた 色 川 は 研 究 者 の 歴 史 像 と 民 衆 の 歴 史 像 のズレを 自 覚 し 無 名 人 の 自 分 史 を 蓄 積 調 合 構 成 というプロセスを 通 じて 歴 史 の 本 流 を 探 求 する 一 方 民 俗 学 を 取 り 入 れて 民 衆 史 の 新 領 域 を 開 拓 した 安 丸 は 生 き 方 の 内 在 的 分 析 という 視 座 から 民 衆 の 意 識 形 態 の 内 的 構 造 を 追 求 した 鹿 野 は 歴 史 において 無 視 されてきた 周 縁 的 存 在 に 注 目 し 女 性 史 沖 縄 史 の 研 究 に 集 中 した このような 転 換 は 民 衆 思 想 史 とは 民 衆 によって 作 り 上 げられていく 日 本 の 歴 史 を 目 指 していた 点 で 結 局 のところ 国 民 史 であったことを 自 覚 し 周 縁 的 存 在 への 探 求 から 差 別 対 立 抗 争 の 中 にある 分 裂 し た 民 衆 に 目 が 向 けられるようになった14 14) このような 民 衆 思 想 史 の 転 換 は 民 衆 思 想 史 の 消 滅 を 意 味 している 戦 後 歴 史 学 を 批 判 しつつ 民 衆 という 視 座 と 方 法 によって 国 民 の 歴 史 を 叙 述 してきた 民 衆 思 想 史 の 固 有 の 役 割 が 終 焉 を 告 げると 共 に 15) 民 衆 思 想 史 によっ て 形 作 られた 民 衆 の 概 念 は 歴 史 学 における 必 須 の 概 念 となった ここにおいて 民 衆 思 想 史 は 歴 史 学 における 主 流 的 地 位 を 占 めたのである 16) 13) ひろたまさき パンドラの 箱 民 衆 思 想 史 研 究 の 課 題 ナシヨナル ヒストリーを 学 び 捨 て る 東 京 大 学 出 版 会 2006 4 5 頁 安 田 常 雄 解 説 : 思 想 史 の 発 想 と 方 法 思 想 史 の 発 想 と 方 法 ( 展 望 日 本 歴 史 24) 東 京 堂 出 版 2000 6 7 頁 14) ひろたまさき 前 掲 論 文 20 21および32 33 頁 15) 安 田 常 雄 は このような 転 換 を 民 衆 思 想 史 の 変 質 ととらえ 戦 後 歴 史 学 の 補 完 的 再 建 という 民 衆 思 想 史 研 究 がもつ 固 有 の 役 割 が 終 息 したとしている 安 田 常 雄 前 掲 論 文 7 頁 16) 民 衆 思 想 史 研 究 の 現 在 的 意 味 についての 成 田 龍 一 キャロル グラック(CarolGluck)の 主 122
東 アジア 民 衆 史 の 可 能 性 : 韓 日 民 衆 史 の 遭 遇 3. 韓 日 民 衆 史 の 遭 遇 と 東 アジア 民 衆 史 (1) 民 衆 史 学 民 衆 思 想 史 以 降 における 民 衆 史 の 模 索 日 本 では 高 度 経 済 成 長 の 結 果 新 中 間 大 衆 の 時 代 の 到 来 を 物 語 るほど 日 本 社 会 の 変 化 が 起 こり 収 奪 階 級 闘 争 の 概 念 で 社 会 関 係 を 説 明 することは 現 実 的 でな くなりつつあった このような 状 況 で 1970 年 代 後 半 からポストモダニズムの 影 響 と 共 に 社 会 史 を 取 り 入 れ 進 歩 史 観 批 判 や 日 常 世 界 への 回 帰 などが 提 起 され 戦 後 歴 史 学 が 相 対 化 された さらに1990 年 を 前 後 した 現 実 社 会 主 義 の 崩 壊 は 歴 史 発 展 段 階 論 と 社 会 主 義 に 向 けた 実 践 に 基 盤 を 置 いていた 戦 後 歴 史 学 の 崩 壊 をもたらした 17) このような 状 況 で 1980 年 代 後 半 以 降 ベネディクト アンダーソンを 源 流 とする 国 民 国 家 論 や エド ワード サイードをはじめとするポスト 植 民 主 義 論 ジェンダー 論 などが 導 入 され 戦 後 歴 史 学 の 問 題 が 解 体 されていく 一 方 言 説 の 理 論 を 基 盤 とするテキストとしての 史 料 分 析 近 代 的 主 体 の 喪 失 歴 史 の 周 縁 への 関 心 といった 新 たな 歴 史 学 の 方 法 論 が 示 された 西 川 長 夫 は 近 代 国 家 とはすなわち 国 民 国 家 であり 国 民 国 家 の 多 様 なシステムによっ て 国 民 化 の 過 程 が 進 められたことを 指 摘 することにより 国 民 史 を 根 本 的 に 批 判 した 1990 年 代 に 入 り バブル 経 済 の 崩 壊 と 冷 戦 構 造 解 体 という 混 乱 の 中 で 日 本 軍 慰 安 婦 問 題 が 浮 上 し 戦 争 責 任 と 植 民 地 問 題 が 主 な 課 題 とされ 平 和 憲 法 の 改 正 を 通 じ た 普 通 国 家 化 を 目 指 す 動 きの 中 で 歴 史 修 正 主 義 が 台 頭 した 戦 後 の 歴 史 を 自 虐 史 観 として 批 判 し 健 全 なナショナリズムの 復 権 を 前 面 に 掲 げる 新 しい 歴 史 教 科 書 をつくる 会 (1997)は 2001 年 から2002 年 にかけ 扶 桑 社 版 教 科 書 の 採 択 運 動 を 展 開 した こうした 歴 史 修 正 主 義 の 出 現 に 対 応 し 歴 史 学 界 では 扶 桑 社 版 教 科 書 にみられる 事 実 関 係 の 誤 述 侵 略 戦 争 の 正 当 化 を 批 判 したが 歴 史 修 正 主 義 の 歴 史 認 識 への 本 格 的 な 批 判 を 唱 えたのは 他 ならぬポストモダニズムと 国 民 国 家 論 を 取 り 入 れた 彼 らであった 18) 歴 史 修 正 主 義 をめぐる 歴 史 認 識 論 争 は 実 証 主 義 によって 閉 ざされた 戦 後 歴 史 学 の 形 骸 化 を 示 すと 同 時 に 歴 史 学 の 方 法 論 と 実 践 性 を 新 たな 模 索 の 契 機 と なった 19) 張 については 座 談 会 ナシヨナル ヒストリーを 学 び 捨 てる 214 215 220 頁 17) 須 田 努 前 掲 書 284 285 頁 18) 歴 史 修 正 主 義 に 対 する 代 表 的 な 批 判 に 小 森 陽 一 高 橋 哲 哉 編 ナシヨナル ヒストリ を 超 えて 東 京 大 学 出 版 会 1998 高 橋 哲 哉 編 歴 史 認 識 論 争 作 品 社 2002 がある 12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民 衆 思 想 史 の 消 滅 以 来 国 民 国 家 論 の 問 題 提 起 と 歴 史 修 正 主 義 の 台 頭 は 民 衆 思 想 史 以 降 の 民 衆 史 すなわち 民 衆 概 念 と 民 衆 史 叙 述 に 対 する 新 たな 模 索 をスタートさせ た 国 民 国 家 論 は マルクス 主 義 歴 史 学 を 経 て 民 衆 思 想 史 に 至 る 日 本 の 近 代 歴 史 学 が 国 民 の 歴 史 である 点 を 認 識 させ 牧 原 憲 夫 鶴 巻 孝 雄 成 田 龍 一 など 民 衆 思 想 史 の 第 2 世 代 が 国 民 国 家 の 形 成 による 民 衆 の 独 自 性 喪 失 や 異 端 化 の 過 程 として 日 本 近 代 史 を 認 識 するのに 影 響 を 及 ぼした その 後 民 衆 の 概 念 を 異 質 的 な 集 団 であり その 間 に 深 淵 が 存 在 し 複 雑 な 相 互 関 係 を 持 った 存 在 ととらえ 異 質 的 な 集 団 が 自 由 で 対 等 に 共 存 する 共 同 体 を 追 求 した 研 究 20)や 復 讐 性 の 観 点 から 階 級 概 念 を 新 たに 構 築 する 研 究 21)など 民 衆 史 の 模 索 が 続 けられている 一 方 韓 国 においても 1990 年 代 以 降 日 本 と 似 たような 方 法 論 的 転 換 が 凝 縮 され た 形 で 進 められた 1990 年 代 前 半 に 民 衆 史 学 が 消 滅 し 民 衆 史 学 の 旗 の 下 に 結 集 した 研 究 者 らは 既 存 の 枠 組 へと 吸 収 され 実 証 研 究 を 指 向 した 彼 らは 支 配 政 策 史 の 研 究 民 衆 運 動 の 組 織 理 念 に 関 する 実 証 研 究 を 行 ったが その 一 部 は 西 欧 における ポ ストモダン 歴 史 学 22) を 取 り 入 れ 民 族 主 義 歴 史 学 の 批 判 を 継 続 した 1990 年 代 には ポストモダン 歴 史 学 が 紹 介 され 民 族 主 義 の 脱 神 話 化 民 衆 市 民 の 名 で 周 縁 化 排 除 の 対 象 となったマイノリティ 問 題 ポストモダニズムの 近 代 批 判 の 受 容 といった 視 座 が 提 唱 された 特 にインドのサバルタン 研 究 英 国 のマルクス 主 義 社 会 史 ドイツ の 日 常 史 イタリアのミクロヒストリー 米 国 の 新 文 化 史 といった 具 体 的 な 成 果 が 取 り 入 れら れると ポストモダン 歴 史 学 は 歴 史 学 界 の 方 法 論 の 転 換 に 大 きな 影 響 を 与 えた また 日 本 で 国 民 国 家 論 が 紹 介 されると 民 族 史 の 叙 述 に 対 する 根 本 的 な 批 判 が 提 起 され た ポストモダン 歴 史 学 と 国 民 国 家 論 の 導 入 による 方 法 論 的 転 換 が 表 面 化 した 契 機 は 2001 年 から2002 年 にかけて 起 こった 教 科 書 波 紋 であった メディアを 通 じ 日 本 の 歴 史 解 釈 を 糾 弾 する 反 日 世 論 が 沸 騰 し 歴 史 学 界 は 扶 桑 社 版 歴 史 教 科 書 に 対 する 史 実 の 誤 謬 を 糾 弾 し 是 正 を 求 めるなど 一 貫 して 断 固 とした 対 応 が 取 られた その 一 方 学 界 の 一 部 では 民 族 主 義 的 な 歴 史 の 叙 述 をめぐる 論 争 が 展 開 し 両 国 の 歴 史 教 科 書 を 民 族 の 歴 史 だと 批 判 した これは 歴 史 修 正 主 義 の 議 論 へとつながっていき 歴 史 教 科 書 が 19) 小 関 素 明 岐 路 に 立 つ 戦 後 歴 史 学 日 本 史 研 究 537 2007.5 42 43 頁 20) ひろたまさき 前 掲 論 文 42 43 頁 21) 大 門 正 克 前 掲 論 文 14 頁 22) ポストモダン 歴 史 学 という 用 語 は ポストモダニズムと 歴 史 学 (キム ギボンほか プ ルンヨクサ 2002)に 由 来 するもので ポストモダニズムの 問 題 を 取 り 入 れた 歴 史 学 を 指 す 124
東 アジア 民 衆 史 の 可 能 性 : 韓 日 民 衆 史 の 遭 遇 民 族 の 物 語 であるとの 認 識 が 広 がった 2004 年 の 親 日 真 相 糾 明 委 員 会 および 2005 年 過 去 史 整 理 委 員 会 の 設 置 は 民 族 主 義 歴 史 学 の 論 理 を 強 化 させたかにみ えたが 過 去 史 の 清 算 をめぐる 記 憶 の 政 治 など 歴 史 学 の 方 法 論 と 実 践 性 に 関 する 新 たな 問 題 を 投 じたのである 教 科 書 波 紋 と 過 去 史 清 算 をめぐる 論 争 は 民 族 主 義 歴 史 学 が 方 法 的 実 践 的 有 効 性 を 喪 失 したことを 示 すと 同 時 に 民 族 国 家 を 越 えた 歴 史 認 識 を 模 索 する 契 機 となった 教 科 書 波 紋 過 去 史 清 算 という 現 実 への 問 題 提 起 は 民 衆 史 にも 新 たな 模 索 を 促 し た 民 衆 史 学 を 越 えた 民 衆 史 民 衆 運 動 史 以 後 の 民 衆 史 といった 用 語 にみられ るように 民 衆 史 学 の 科 学 的 変 革 的 民 衆 論 やこれに 基 づいた 民 衆 運 動 史 の 叙 述 が 批 判 され 民 衆 を 多 声 的 主 体 として 認 識 し 彼 らの 実 在 を 再 現 する 様 々な 方 法 論 的 試 み が 提 起 された 23) また 日 常 史 と 口 述 史 の 側 面 から 韓 国 近 現 代 史 を 叙 述 する 作 業 も 試 みられた 近 年 民 衆 史 に 対 する 模 索 が 盛 んになり 新 しい 民 衆 史 の 形 成 に 向 けた 課 題 として 1 民 衆 の 日 常 性 への 注 目 2 民 衆 の 多 声 性 と 重 層 性 の 認 識 3 自 律 と 従 属 の 歯 車 に 対 する 考 慮 4 国 民 国 家 単 位 の 発 展 論 に 収 斂 される 近 代 主 義 パラダイ ムの 克 服 などを 挙 げている 24) (2) 東 アジア 民 衆 史 の 提 起 韓 国 における1980 年 代 ~1990 年 代 にかけての 民 衆 史 学 の 形 成 と 消 滅 そして 社 会 主 義 の 崩 壊 以 降 近 代 歴 史 学 ( 民 族 主 義 歴 史 学 戦 後 歴 史 学 )の 危 機 という 状 況 は 民 衆 史 以 降 の 模 索 が 民 族 国 家 の 単 位 を 越 えうる 条 件 を 形 成 した また 日 本 において 1970 年 代 後 半 以 降 に 紹 介 受 容 されてきた 社 会 史 の 中 での 国 民 国 家 論 ポスト 植 民 主 義 といった 様 々な 理 論 方 法 論 が 韓 国 では1990 年 代 以 降 凝 縮 的 に 紹 介 受 容 され これによって 民 衆 史 以 降 の 模 索 にも 同 じような 様 相 がみられた 1990 年 代 に 入 ると 日 本 軍 慰 安 婦 の 証 言 と 訴 訟 を 機 に 民 族 国 家 を 越 えた 歴 史 認 識 が 模 索 され 始 め つくる 会 の 登 場 以 降 教 科 書 問 題 と 歴 史 修 正 主 義 をめぐる 葛 藤 は 民 族 国 家 を 越 えて 展 開 している 特 に 韓 国 では2004 年 過 去 史 真 相 糾 明 を 支 え る 歴 史 観 を 自 虐 史 観 だと 非 難 し 失 敗 した 歴 史 を 成 功 した 歴 史 に 修 正 しよう という 自 由 主 義 連 帯 が 発 足 した このように 歴 史 修 正 主 義 の 現 象 も 民 族 国 家 を 23) ホ ヨンラン 民 衆 運 動 史 以 後 の 民 衆 史 民 衆 史 研 究 の 現 在 と 新 たな 模 索 歴 史 問 題 研 究 15 2005 24) イ ヨンギ 新 しい 民 衆 史 の 指 向 と 現 住 所 歴 史 問 題 研 究 23 2010 18 頁 12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越 えて 展 開 している こうした 状 況 において 民 族 国 家 を 越 えた 歴 史 認 識 の 可 能 性 を 模 索 するための 韓 日 両 国 の 市 民 社 会 学 界 の 相 互 交 流 が 活 発 になっている 2000 年 一 国 史 的 民 族 主 義 歴 史 学 を 批 判 し 国 民 国 家 の 境 界 を 越 えた 歴 史 認 識 を 模 索 する 批 判 と 連 帯 のための 東 アジア 歴 史 フォーラム が 結 成 されたことは ほんの 一 例 にすぎない 25) 韓 日 両 国 では 民 衆 史 家 の 出 現 時 期 民 衆 史 の 軌 跡 のいずれも 異 なるが 近 代 歴 史 学 が 危 機 に 瀕 し 民 衆 史 家 が 消 滅 した 状 況 で 民 族 国 家 を 越 えた 模 索 の 条 件 が 形 成 され 両 国 で 展 開 していた 民 衆 史 以 降 の 模 索 が 展 開 するようになった 1991 年 日 本 に おいて 東 アジア 地 域 における 民 衆 史 の 国 際 的 な 相 互 研 究 を 目 的 として 設 立 された ア ジア 民 衆 史 研 究 会 の 発 足 により 一 国 史 の 範 囲 を 越 える 東 アジア 地 域 民 衆 史 研 究 者 の 連 帯 が 模 索 された アジア 民 衆 史 研 究 会 は1991 年 8 月 歴 史 問 題 研 究 所 と 19 世 紀 の 韓 国 と 日 本 の 民 衆 運 動 と 題 した 合 同 討 論 会 の 開 催 を 皮 切 りに 中 国 の 復 旦 大 学 南 京 大 学 台 湾 の 台 湾 大 学 や 中 央 研 究 院 ベトナムのハノイ 大 学 などと 学 術 交 流 を 行 ってき た 26) アジア 民 衆 史 研 究 会 は1994 年 ~2000 年 にかけ 韓 中 日 における 近 代 移 行 期 の 民 衆 の 状 態 について アジア 圏 域 において 比 較 史 関 係 史 の 視 座 から 検 討 する 東 アジアの 近 代 移 行 と 民 衆 と 題 した 学 術 会 議 を 国 内 海 外 で 開 催 し 2001 年 ~2008 年 には 空 間 時 間 人 間 に 関 する 意 識 の 総 体 を 世 界 観 としてとらえ これを 通 じてアジ ア 地 域 における 民 衆 の 主 体 形 成 を 検 証 するため 東 アジアにおける 民 衆 の 世 界 観 を テーマとする 研 究 を 行 った アジア 民 衆 史 研 究 会 と 歴 史 問 題 研 究 所 は 2005 年 から ワーキンググループ を 結 成 し 近 代 移 行 期 における 東 アジア 民 衆 のあり 方 の 比 較 と 相 互 関 連 を 検 討 する 国 際 的 ネットワーク を 構 築 するためのワークショップを 定 期 的 に 開 催 している ワークショップ では 両 国 のワーキンググループを 中 心 に 両 国 の 民 衆 史 の 模 索 現 況 を 検 討 し 学 史 や 民 衆 史 の 叙 述 に 対 する 主 題 発 表 と 討 論 を 行 っている 近 代 国 民 の 形 成 に 対 する 両 国 の 差 民 衆 概 念 と 民 衆 史 研 究 に 対 する 両 国 の 差 などに 共 感 を 得 つつ 民 衆 概 念 民 衆 意 識 と 主 体 性 マイノリティと 民 衆 民 衆 運 動 の 理 念 国 家 民 衆 の 関 係 史 料 と 民 衆 史 認 識 歴 史 叙 述 の 客 観 性 などが 争 点 となり 研 究 者 の 意 見 の 相 違 が 表 出 した 27) いまだ 共 同 作 業 すら 着 手 できていない 模 索 期 ではあるが 両 者 が 民 衆 史 以 降 の 模 索 を 必 要 とする 25) 批 判 と 連 帯 のための 東 アジア 歴 史 フォーラム の 成 果 は 国 史 の 神 話 を 越 えて (ヒュー マニスト 2004) 歴 史 学 の 世 紀 (ヒューマニスト 2009)として 刊 行 されている 26) アジア 民 衆 史 研 究 会 のウェブサイト(http//assoc asia.blogspot.com)を 参 照 27) ホ ス 韓 日 国 際 学 術 交 流 歴 史 問 題 研 究 所 会 報 49 2007 チャン ヨンギョ ン ア 民 研 ワークショップ 歴 史 問 題 研 究 所 会 報 52 2009 126
東 アジア 民 衆 史 の 可 能 性 : 韓 日 民 衆 史 の 遭 遇 認 識 を 共 有 し つながりを 維 持 している 点 において 民 衆 史 を 媒 介 とする 民 族 国 家 を 越 え た 模 索 には 可 能 性 がある 東 アジア 民 衆 史 とは 東 アジアという 地 域 における 民 衆 史 もしくは 東 アジアで 形 成 される 民 衆 史 の 共 通 的 定 形 的 なあり 方 を 追 求 するものではない 東 アジア 民 衆 史 と は 民 衆 史 以 降 の 模 索 が 民 族 国 家 を 越 えて 展 開 している 現 実 を 示 す 名 称 の 一 つであり 東 アジア 民 衆 史 を 通 じて 進 められる 民 衆 史 以 降 の 模 索 は 新 自 由 主 義 時 代 歴 史 学 への 批 判 として 民 衆 史 研 究 を 始 める 新 たな 地 平 を 切 り 開 いていくであろう 127
椭 圆 平 衡 和 平 合 作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王 新 生 ( 北 京 大 )
椭 圆 平 衡 和 平 合 作 -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椭 圆 平 衡 和 平 合 作 -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王 新 生 ( 北 京 大 ) 一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二 思 想 基 础 与 客 观 背 景 三 对 华 政 府 开 发 援 助 < 目 次 > 尽 管 从 表 面 上 看,1978 年 到 1980 年 任 日 本 政 府 首 相 的 大 平 正 芳 口 拙 木 讷, 回 答 提 问 时 总 是 嗯 啊 地 较 长 时 间, 但 正 如 中 国 前 总 理 周 恩 来 所 评 价 的 那 样 : 大 平 诚 实 无 欺, 不 善 言 辞, 是 个 内 秀 而 博 学 的 人 1) 大 平 正 芳 不 仅 具 有 注 重 平 衡 的 椭 圆 哲 学 思 想, 而 且 提 出 了 推 动 亚 太 地 区 合 作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并 在 此 基 础 上 向 中 国 提 供 政 府 开 发 援 助, 对 地 区 的 和 平 与 合 作 做 出 了 较 大 的 贡 献 一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大 平 正 芳 就 任 日 本 政 府 首 相 后, 组 织 九 个 作 为 首 相 私 人 咨 询 机 构 的 政 策 研 究 小 组, 进 行 彻 底 的 政 策 研 究 其 中 包 括 以 梅 棹 忠 夫 为 首 的 田 园 城 市 构 想 研 究 集 团 以 内 田 忠 夫 为 首 的 对 外 经 济 政 策 研 究 集 团 以 林 知 己 夫 为 首 的 多 元 化 社 会 生 活 关 心 研 究 集 团 以 大 来 佐 武 郎 为 首 的 环 太 平 洋 合 作 研 究 集 团 以 伊 藤 善 市 为 首 的 充 实 家 庭 基 础 研 究 集 团 以 猪 木 正 道 为 首 的 综 合 安 全 保 障 研 究 集 团 以 山 本 七 平 为 首 的 文 化 时 代 研 究 集 团 以 馆 龙 一 郎 为 首 的 文 化 时 代 经 济 运 营 研 究 集 团 以 佐 佐 学 为 首 的 科 学 技 术 历 史 性 展 开 研 究 集 团 等 九 个 智 囊 机 构 2) 大 平 对 外 政 策 的 基 本 思 想 集 中 体 现 在 综 合 安 全 保 1) 王 俊 彦 : 中 日 关 系 掘 井 人 记 45 位 中 日 友 好 的 先 驱, 世 界 知 识 出 版 社 2010 年, 第 294 页 2) 历 史 学 研 究 会 编 : 日 本 同 时 代 史 5 转 换 期 的 世 界 与 日 本, 青 木 书 店 1991 年 1 月, 第 144 页 13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障 战 略 和 环 太 平 洋 合 作 上 在 二 十 世 纪 七 十 年 代 之 后, 随 着 国 际 形 势 的 深 刻 变 化, 特 别 是 第 一 次 石 油 危 机 对 日 本 经 济 安 全 造 成 了 冲 击, 因 而 日 本 国 内 舆 论 开 始 关 注 日 本 的 经 济 安 全 形 势, 提 出 了 综 合 安 全 保 障 的 各 种 设 想 正 是 在 这 种 背 景 之 下, 大 平 正 芳 结 合 自 身 的 体 会, 把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视 为 日 本 对 外 政 策 的 基 本 思 想 大 平 正 芳 本 人 曾 经 对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作 过 这 样 的 说 明 : 我 国 的 资 源 和 市 场 几 乎 都 仰 赖 于 海 外, 因 此 世 界 上 任 何 纠 纷 都 会 对 我 们 形 成 威 胁 更 为 严 重 的 是, 现 在 各 种 武 器 的 开 发 突 飞 猛 进, 我 国 在 遭 受 直 接 攻 击 时, 无 法 单 独 应 对, 就 是 现 在 的 集 体 安 全 保 障 体 制 也 很 不 充 分 因 而, 我 国 必 须 建 立 以 和 平 战 略 为 基 本 的 综 合 安 全 保 障 体 制 才 能 确 保 国 家 安 全 这 意 味 着, 我 们 要 继 续 坚 持 现 在 的 集 体 安 全 保 障 体 制 日 美 安 保 条 约 和 有 节 制 的 高 质 量 的 自 卫 能 力, 同 时 作 为 补 充, 充 实 经 济 教 育 文 化 等 内 政 的 方 方 面 面, 并 强 化 经 济 合 作 文 化 外 交 等 必 要 的 外 交 努 力, 综 合 保 障 我 国 的 安 全 3) 此 外, 大 平 首 相 在 1979 年 1 月 的 施 政 演 说 中, 也 对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进 行 了 详 细 的 说 明 : 确 保 日 本 的 和 平 和 安 全 是 政 治 的 最 大 任 务, 为 此, 坚 持 有 节 制 的 自 卫 力 量 和 补 充 日 美 安 全 保 障 条 约 所 构 成 的 安 全 保 障 体 制 是 必 要 的, 但 真 正 的 安 全 保 障 光 靠 防 卫 力 量 是 不 够 的 立 足 于 对 世 界 现 实 冷 静 认 识 的 基 点 上, 一 方 面 要 力 求 内 政 发 挥 出 有 良 好 秩 序 的 活 力, 另 方 面 为 创 造 和 平 的 国 际 环 境 而 作 积 极 的 外 交 努 力 当 然 也 是 不 可 缺 少 的 4) 日 本 前 经 济 企 划 厅 长 官 著 名 评 论 家 堺 屋 太 一 认 为 战 后 日 本 最 重 要 的 国 家 发 展 理 念 之 一 就 是 以 日 美 军 事 同 盟 为 基 础 力 争 成 为 经 济 大 国 和 军 事 小 国 的 外 交 理 念 日 本 的 对 外 政 策 依 据 这 一 理 念 展 开, 国 家 建 设 也 服 从 这 一 外 交 方 针 5) 这 种 国 家 理 念 其 实 就 是 吉 田 茂 开 创 的 保 守 主 义 路 线, 从 大 平 正 芳 关 于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的 论 述 中 不 难 看 出 其 对 外 政 策 基 本 上 仍 处 在 保 守 主 义 的 框 架 之 内, 不 过 出 现 某 些 调 整 这 种 调 整 主 要 集 中 在 两 个 方 面, 即 一 方 面 是 大 平 提 出 要 积 极 承 担 为 保 障 集 体 安 全 所 承 担 的 责 任 和 费 用, 也 就 是 说 要 提 高 日 本 在 日 美 同 盟 中 的 地 位 和 作 用 大 平 担 任 首 相 期 间 成 立 的 综 合 安 全 保 障 研 究 小 组 在 1980 年 大 平 正 芳 去 世 之 后 提 出 了 一 个 关 于 日 本 综 合 安 全 保 障 的 报 告, 其 中 第 一 个 要 点 就 是 : 随 着 1960 年 代 中 期 之 后 苏 联 的 军 事 扩 张, 美 国 在 七 十 年 代 失 去 了 军 事 上 经 济 上 的 优 势, 美 国 的 军 事 力 量 已 经 不 能 给 同 盟 国 提 供 充 分 的 安 全 保 障 因 此, 同 盟 国 有 必 要 在 常 规 军 力 方 面 加 强 自 身 力 量, 同 时 必 须 帮 助 美 国, 以 保 持 美 国 核 保 护 伞 的 可 靠 性 此 外, 随 着 美 国 经 济 实 力 的 不 断 减 弱, 再 也 不 能 主 要 依 靠 美 国 来 维 持 国 际 货 币 体 制 和 自 由 贸 易 体 制 6) 也 就 是 说, 为 了 弥 补 美 国 势 力 下 降 造 成 的 实 力 缺 口, 日 本 有 必 要 做 3) 转 引 自 大 川 公 一 : 转 换 期 的 安 全 保 障 论, 国 际 教 养 学 部 纪 要 2005 年 第 3 期 4) 日 本 大 平 正 芳 财 团 编 著 : 大 平 正 芳, 中 国 青 年 出 版 社 1991 年 版, 第 592 页 5) 堺 屋 太 一 : 日 本 没 落 的 原 因, 中 央 公 论 2008 年 7 月 号 132
椭 圆 平 衡 和 平 合 作 -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出 积 极 姿 态, 积 极 支 持 美 国 增 强 其 实 力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继 承 了 吉 田 路 线 坚 持 日 美 同 盟 否 定 自 主 防 卫 不 以 军 事 为 安 全 保 障 主 要 手 段 的 战 略 思 想, 但 也 增 添 了 许 多 全 新 的 内 容, 在 一 定 程 度 上 改 变 了 吉 田 路 线 之 下 日 本 在 国 际 政 治 中 被 动 的 消 极 的 低 姿 态, 强 调 日 本 在 与 欧 美 国 家 联 合 的 同 时, 应 加 强 自 助 努 力, 主 张 日 本 应 与 西 方 国 家 分 担 安 全 责 任, 为 世 界 的 和 平 和 稳 定 作 出 与 其 经 济 实 力 相 称 的 贡 献, 体 现 了 日 本 在 保 卫 西 方 共 同 安 全 和 参 与 国 际 事 务 方 面 所 显 示 的 积 极 倾 向 7) 另 一 方 面, 对 保 守 主 义 路 线 的 调 整 就 是 加 强 日 本 和 其 他 国 家 的 非 军 事 合 作, 积 极 发 展 与 世 界 各 国 经 济 文 化 技 术 教 育 等 领 域 的 合 作, 为 世 界 和 平 做 出 贡 献, 从 而 保 障 日 本 综 合 意 义 上 的 安 全 例 如 在 上 述 综 合 安 全 保 障 小 组 的 报 告 中, 其 第 二 个 要 点 就 是 南 北 关 系 的 安 定 对 于 日 本 而 言 十 分 重 要 作 为 实 施 综 合 安 全 保 障 的 一 环, 日 本 必 须 在 发 展 中 国 家 的 经 济 发 展 和 建 立 南 北 秩 序 方 面 发 挥 巨 大 的 作 用 8) 所 以, 在 大 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中, 以 日 美 关 系 为 基 轴 的 政 策 依 然 是 日 本 安 全 政 策 的 基 础, 大 平 强 调 的 是 对 新 形 势 下 日 美 关 系 进 行 补 充 和 加 强 大 平 之 所 以 认 为 与 美 国 结 成 的 集 体 安 全 保 障 体 制 不 充 分, 需 要 开 展 积 极 的 日 本 外 交, 是 因 为 他 看 到 美 国 力 量 相 对 降 低 这 一 事 实 的 结 果 但 这 丝 毫 不 意 味 着 大 平 低 估 日 美 关 系 的 重 要 性, 反 而 意 味 着 大 平 对 日 美 关 系 前 所 未 有 的 重 视 因 此, 大 平 在 各 种 场 合 强 调 日 美 关 系 是 日 本 对 外 政 策 的 基 石, 随 着 客 观 形 势 的 发 展, 甚 至 使 日 美 关 系 进 一 步 紧 密 化 早 在 第 一 次 担 任 池 田 勇 人 内 阁 外 务 大 臣 时, 大 平 正 芳 就 明 确 提 出 : 作 为 外 务 大 臣 最 重 要 的 工 作 是 与 防 卫 当 局 合 作, 忠 实 地 执 行 日 美 安 全 保 障 条 约 在 这 方 面, 最 基 本 的 是 日 美 间 的 相 互 理 解 和 信 任 我 细 心 周 到 地 注 意 不 在 日 美 之 间 播 下 哪 怕 像 尘 埃 那 么 微 小 的 不 信 任 种 子 9) 其 后 在 1979 年 5 月, 大 平 正 芳 就 任 首 相 后 第 一 次 访 问 美 国, 在 卡 特 总 统 主 持 的 欢 迎 仪 式 上, 大 平 首 相 第 一 次 公 开 使 用 同 盟 一 词 来 形 容 日 美 关 系, 表 明 了 日 本 全 面 支 持 美 国 的 决 心 大 平 就 美 国 的 作 用 和 日 美 关 系 作 了 如 下 的 表 态 : 亚 洲 太 平 洋 地 域 乃 至 全 世 界 基 于 均 势 而 得 以 保 障 的 和 平, 依 然 依 靠 强 大 的 美 国, 这 是 俨 然 的 事 实 美 国 的 强 大, 不 仅 仅 是 军 事 力 量 的 强 大, 还 包 括 强 大 而 有 活 力 的 经 济, 能 付 诸 行 动 的 强 韧 的 行 动 力 全 世 界 都 期 待 美 国 以 这 种 力 量 为 背 景 发 挥 积 极 的 领 导 作 用 为 了 配 合 美 国 的 这 种 努 力, 作 为 美 国 的 好 伙 伴, 我 国 也 要 为 我 们 共 同 的 目 标 而 作 出 贡 献 10) 在 大 平 担 任 首 相 期 间, 国 际 形 势 发 生 重 大 变 化, 先 是 发 生 了 伊 朗 扣 留 美 国 人 质 事 件, 6) 综 合 安 全 保 障 研 究 小 组 :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大 藏 省 印 刷 局 1980 年 第 7 页 7) 宋 成 有 等 著 : 战 后 日 本 外 交 史, 世 界 知 识 出 版 社 1995 年 版, 第 511 页 8) 综 合 安 全 保 障 研 究 小 组 :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大 藏 省 印 刷 局 1980 年, 第 8 页 9) 日 本 大 平 正 芳 财 团 编 著 : 大 平 正 芳, 中 国 青 年 出 版 社 1991 年 版, 第 237 页 10) 川 内 一 诚 : 大 平 政 权 554 日, 行 政 问 题 研 究 所 出 版 局 1982 年 版, 第 135 页 13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接 着 又 发 生 了 苏 联 入 侵 阿 富 汗 的 事 件 伊 朗 问 题 关 系 到 日 本 的 石 油 供 应, 阿 富 汗 问 题 关 系 到 日 本 和 苏 联 这 个 超 级 大 国 的 关 系, 因 而 这 两 次 事 件 对 于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是 巨 大 的 考 验 从 事 件 处 理 过 程 中 可 以 看 出, 虽 然 日 本 企 图 维 持 在 各 种 关 系 中 的 平 衡, 但 最 后 还 是 比 较 坚 定 地 站 在 美 国 一 边, 说 明 大 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的 前 提 依 然 是 日 美 同 盟 1980 年 1 月 25 日, 大 平 正 芳 发 表 施 政 演 说 由 于 发 生 了 伊 朗 美 国 大 使 馆 人 质 事 件 和 苏 联 入 侵 阿 富 汗, 演 说 的 三 分 之 一 内 容 与 国 际 形 势 有 关 其 中 大 平 首 相 鲜 明 地 将 日 本 放 在 西 方 一 员 的 立 场 : 我 国 对 外 政 策 的 基 本 是 强 化 与 自 由 主 义 国 家 的 团 结, 并 在 此 基 础 上 扩 大 和 全 世 界 各 个 国 家 的 友 好 与 合 作 无 须 赘 言, 建 立 在 日 美 安 保 体 制 基 础 之 上 的 和 美 国 不 可 动 摇 的 相 互 信 赖 关 系 是 我 国 外 交 的 基 轴 为 了 巩 固 日 美 关 系, 日 本 政 府 要 毫 不 松 懈 地 通 过 政 治 经 济 文 化 等 领 域 来 推 动 日 美 合 作, 同 时 加 强 和 以 西 欧 国 家 为 首 的 自 由 主 义 国 家 的 协 作 关 系 11) 在 阿 富 汗 问 题 上, 大 平 首 相 明 确 表 示 : 作 为 政 府 为 促 进 这 一 重 大 事 态 的 解 决, 以 加 强 同 美 国 的 团 结 为 中 心, 同 时 与 欧 洲 及 其 它 各 国 相 协 调, 不 断 做 出 同 我 国 相 适 应 的 努 力 这 样 做 即 使 给 我 国 带 来 牺 牲, 我 认 为 那 也 是 不 能 躲 避 的 另 外, 我 想 明 确 表 示, 我 国 不 打 算 参 与 可 能 破 坏 其 他 友 好 国 家 采 取 的 措 施 的 任 何 活 动, 或 者 削 弱 其 效 果 12) 正 因 如 此, 在 美 国 号 召 抵 制 莫 斯 科 奥 运 会 时, 大 平 立 即 表 示 : 奥 运 会 同 石 油 比, 石 油 更 重 要 石 油 同 美 国 比, 则 美 国 更 重 要 13) 在 日 本 政 府 的 斡 旋 后, 日 本 奥 委 会 决 定 响 应 美 国 的 号 召 抵 制 莫 斯 科 奥 运 会 对 日 本 而 言, 最 重 要 的 安 全 保 障 还 是 经 济 安 全, 因 而 也 有 不 少 人 把 综 合 安 全 保 障 论 视 为 和 经 济 安 全 保 障 论 没 有 多 大 差 别 14)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研 究 小 组 的 报 告 中 也 指 出, 由 于 日 本 的 防 务 开 支 对 GNP 比 远 远 低 于 其 他 西 方 国 家, 日 本 应 当 更 加 努 力 地 进 行 技 术 经 济 合 作 由 于 和 平 宪 法 的 限 制, 经 济 合 作 是 日 本 在 国 家 关 系 活 动 中 持 有 的 唯 一 的 积 极 的 手 段, 而 且 经 济 合 作 的 目 的 不 能 只 着 眼 于 经 济 的 眼 光, 而 还 应 带 有 政 治 的 考 虑, 有 必 要 进 行 综 合 的 判 断 15) 在 经 济 安 全 的 问 题 上, 确 保 能 源 和 资 源 的 供 应 是 关 系 日 本 经 济 死 活 的 焦 点 为 保 障 能 源 资 源 供 应, 对 日 本 来 说, 最 重 要 的 是 发 展 和 资 源 能 源 供 应 地 的 和 平 友 好 关 系, 保 证 整 个 世 界 的 和 平 发 展 环 境 在 提 到 综 合 安 全 保 障 时, 日 本 学 者 经 常 强 调 的 就 是 : 没 有 资 源 的 日 本 必 须 从 全 世 界 寻 求 资 源 这 也 包 含 了 如 下 的 含 义 : 分 散 资 源 供 应 地 会 更 加 保 11) 川 内 一 诚 : 大 平 政 权 554 日, 行 政 问 题 研 究 所 出 版 局 1982 年, 第 231~232 页 12) 日 本 大 平 正 芳 财 团 编 著, 大 平 正 芳, 中 国 青 年 出 版 社 1991 年 版, 第 681 页 13) 日 本 大 平 正 芳 财 团 编 著, 大 平 正 芳, 中 国 青 年 出 版 社 1991 年 版, 第 704 页 14) 大 川 公 一 : 转 折 期 的 安 全 保 障 论, 国 际 教 养 学 部 纪 要 2005 年 3 月 15) 综 合 安 全 保 障 研 究 小 组 :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大 藏 省 印 刷 局 1980 年, 第 18 页 134
椭 圆 平 衡 和 平 合 作 -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险, 因 而 在 世 界 上 就 有 越 来 越 多 的 国 家 成 为 我 们 寻 找 资 源 的 对 象 这 种 情 况 就 自 然 产 生 了 日 本 要 和 世 界 上 任 何 国 家 建 立 和 平 友 好 关 系 的 外 交 原 则 16) 前 述 大 平 的 谈 话 也 表 述 了 大 致 相 同 的 意 思, 日 本 在 石 油 危 机 后 的 亲 阿 拉 伯 外 交, 日 本 重 视 和 东 南 亚 非 洲 的 关 系 等, 确 保 能 源 和 资 源 供 应 乃 是 最 重 要 的 考 虑 因 素 之 一 为 保 障 日 本 资 源 能 源 的 供 应, 其 海 外 投 资 也 向 这 方 面 倾 斜 在 1980 年 日 本 对 外 直 接 投 资 中, 发 达 国 家 占 44.4%, 发 展 中 国 家 占 55.5%, 这 表 明 日 本 流 向 发 展 中 国 家 的 直 接 投 资 多 于 流 向 发 达 国 家 的 直 接 投 资 而 在 流 向 发 展 中 国 家 的 直 接 投 资 中, 开 发 资 源 的 投 资 占 有 很 大 比 重, 而 且 多 为 大 型 项 目 这 意 味 着 七 八 十 年 代 日 本 对 外 直 接 投 资 具 有 为 经 济 安 全 保 障 服 务 的 侧 面 17) 此 外, 综 合 安 全 保 障 还 明 确 地 把 对 外 经 济 援 助 作 为 国 家 安 全 政 策 的 一 部 分 日 本 政 府 的 对 外 开 发 援 助 (ODA) 在 1973 年 10 月 石 油 危 机 之 后 就 开 始 带 上 了 经 济 安 全 保 障 的 色 彩, 尤 其 是 与 确 保 能 源 资 源 稳 定 供 应 的 考 虑 联 系 起 来, 把 加 强 对 外 援 助 作 为 应 付 危 机 体 制 的 组 成 部 分, 增 加 了 以 确 保 石 油 及 其 他 重 要 资 源 的 稳 定 供 应 为 目 的 的 政 府 开 发 援 助, 特 别 是 增 加 了 对 中 东 中 南 美 和 非 洲 的 援 助 18) 在 大 平 执 政 期 间,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的 具 体 化 是 其 提 出 的 太 平 洋 合 作 构 想, 进 一 步 反 映 出 综 合 安 全 保 障 中 经 济 安 全 保 障 的 重 要 一 面 作 为 综 合 安 全 保 障 的 中 心 环 节, 大 平 首 相 提 出 了 环 太 平 洋 合 作 构 想 按 照 环 太 平 洋 合 作 计 划 委 员 会 提 出 的 中 期 报 告, 这 一 设 想 是 建 立 包 括 日 本 美 国 加 拿 大 澳 大 利 亚 新 西 兰 东 南 亚 国 家 联 盟 在 内 的 松 弛 的 合 作 关 系, 在 亚 洲 太 平 洋 地 区 范 围 内 协 调 生 产 发 展 合 作 开 发 资 源 等 19) 为 宣 传 太 平 洋 合 作 构 想, 大 平 首 相 在 访 问 澳 大 利 亚 时 说 : 鉴 于 以 往 的 大 部 分 地 区 性 合 作 都 是 以 共 同 的 语 言 共 同 的 文 化 共 同 的 传 统 等 同 一 性 为 纽 带 而 加 强 相 互 之 间 的 联 系 的, 也 许 有 人 会 提 出 在 如 此 众 多 的 具 有 多 种 文 化 和 历 史 背 景 经 济 发 展 阶 段 各 不 相 同 的 太 平 洋 各 国 之 间 是 否 能 够 创 造 出 基 于 新 的 合 作 关 系 的 新 的 文 明 我 认 为 这 个 困 难 时 可 以 克 服 的 因 为 这 是 建 立 在 理 解 和 心 理 各 国 文 化 的 独 特 性 和 政 治 的 自 主 性 的 基 础 之 上 的 地 区 合 作, 是 符 合 全 球 社 会 时 代 的 开 放 性 的 地 区 合 作 从 这 个 意 义 上 说, 环 太 平 洋 各 国 之 间 的 合 作 也 绝 非 为 了 建 立 排 他 性 的 国 家 集 团 其 最 终 目 的 是 为 了 造 福 于 太 平 洋 各 国 以 及 最 大 限 度 地 促 进 整 个 人 类 社 会 的 幸 福 和 繁 荣 20) 但 实 际 上, 从 经 济 角 度 来 看, 澳 大 利 亚 对 于 日 本 有 着 异 乎 寻 常 的 重 要 性, 同 时 日 本 还 希 望 通 过 和 澳 大 利 亚 的 交 往 增 强 日 本 外 交 的 交 涉 能 力 日 澳 关 系 非 常 重 要, 这 不 仅 是 由 于 日 澳 的 经 济 关 系 相 互 补 充, 在 提 高 我 国 对 16) 松 冈 英 夫 : 赶 不 上 形 势 的 外 交, 中 央 公 论 1980 年 3 月 17) 冯 昭 奎 等 著 : 战 后 日 本 外 交, 中 国 社 会 科 学 出 版 社 1996 年 版 第 466 页 18) 冯 昭 奎 等 著 : 战 后 日 本 外 交, 中 国 社 会 科 学 出 版 1996 年 版, 第 476 页 19) 人 民 日 报 1979 年 12 月 12 日 20) 大 平 正 芳 回 想 录 刊 行 会 编 : 大 平 正 芳 传, 吉 林 人 民 出 版 社 1984 年 版, 第 584 页 13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中 对 苏 交 涉 能 力 方 面, 不 能 不 说 是 现 在 最 重 要 的 国 际 关 系 21) 二 思 想 基 础 与 客 观 背 景 从 思 想 基 础 上 看, 大 平 正 芳 提 出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来 自 其 椭 圆 哲 学 基 础 上 的 平 衡 思 想 椭 圆 哲 学 既 是 其 为 人 处 事 的 行 动 指 南, 也 是 其 从 事 政 治 活 动 的 基 本 指 导 思 想 正 是 因 为 具 有 富 于 哲 理 的 信 条, 所 以 大 平 正 芳 的 许 多 思 想 具 有 超 前 性, 而 且 符 合 历 史 发 展 的 客 观 规 律 虽 然 无 法 考 证 大 平 正 芳 何 时 正 式 形 成 椭 圆 哲 学 思 想, 但 在 其 二 十 多 岁 时 就 提 出 了 类 似 的 观 点 当 时 作 为 税 务 干 部, 大 平 曾 经 作 过 这 样 的 讲 演 : 行 政 如 同 椭 圆 形 一 样, 有 两 个 中 心, 当 这 两 个 中 心 处 于 既 平 衡 又 对 立 的 状 态 时, 这 种 行 政 就 是 完 美 的 行 政 税 务 工 作 同 样 如 此 一 个 中 心 是 征 税 权, 另 一 个 中 心 是 纳 税 者, 即 不 能 仅 凭 权 力 强 行 征 税, 也 不 能 轻 易 向 纳 税 者 妥 协 只 有 贯 彻 不 偏 向 任 何 一 方 的 中 正 的 原 则, 才 是 合 情 合 理 的 课 税 办 法 22) 这 是 大 平 最 早 论 及 椭 圆 哲 学 的 记 录, 在 这 里 大 平 的 人 生 哲 学 已 经 比 较 明 朗 因 为 在 大 平 看 来, 任 何 事 物 都 有 两 个 中 心, 只 有 二 者 处 于 均 衡 状 态 时, 事 情 才 能 够 顺 利 进 行 因 此, 如 果 想 把 握 事 物 的 发 展 方 向, 就 应 该 注 意 这 一 点, 留 意 使 二 者 保 持 平 衡, 不 能 过 分 倾 向 于 任 何 一 方 在 大 平 正 芳 的 政 治 生 涯 中, 可 以 看 到 他 经 常 运 用 这 一 思 想 来 把 握 政 局 处 理 政 务, 而 且 这 种 思 想 的 运 用 使 大 平 能 够 很 好 地 把 握 日 本 政 局 的 走 向, 也 能 够 创 见 性 地 把 握 日 本 各 种 问 题 的 本 质 例 如 作 为 第 一 次 池 田 勇 人 内 阁 的 官 房 长 官, 大 平 以 椭 圆 理 论 来 说 明 该 内 阁 顺 利 运 作 的 条 件 : 为 了 使 池 田 内 阁 能 够 安 定 运 转, 有 必 要 使 河 野 ( 太 郎 ) 和 佐 藤 ( 荣 作 ) 作 为 两 个 焦 点 维 持 椭 圆 全 体 的 平 衡 23) 河 野 佐 藤 两 种 势 力 形 成 一 种 稳 定 的 搭 配, 日 本 政 治 才 能 顺 利 运 作 椭 圆 形 的 两 个 中 心 相 辅 相 成 是 最 重 要 的 24) 大 平 多 年 一 直 主 张 的 小 政 府 论 反 计 划 经 济 论 民 间 活 力 主 导 型 经 济 论 也 来 源 于 椭 圆 哲 学 他 认 为 政 府 和 民 间 是 国 民 经 济 这 个 椭 圆 的 两 个 中 心, 只 有 二 者 的 平 衡 才 是 国 民 经 济 发 展 的 最 佳 状 态 大 平 不 仅 主 张 政 府 应 尽 量 减 少 对 经 济 的 干 预, 还 反 复 强 调 政 府 应 减 少 对 国 民 生 活 的 干 预 在 1978 年 秋 天 他 曾 经 讲 到 : 政 府 如 果 事 事 都 要 干 预 国 民 的 生 活, 那 就 是 过 分 的 政 治 干 预, 是 不 应 该 的 反 之, 国 民 也 不 应 该 把 一 切 都 归 结 为 政 治 责 21) 中 岛 岭 雄 : 作 为 防 卫 战 略 的 日 本 外 交, 中 央 公 论 1979 年 1 月 22) 许 晓 光 : 日 本 首 相 大 平 正 芳, 四 川 人 民 出 版 社 1997 年 版, 第 43 页 23) 大 平 正 芳 回 想 录 刊 行 会 : 大 平 正 芳 回 想 录 传 记 篇, 鹿 岛 出 版 会 1982 年 版, 第 206 页 24) 大 平 正 芳 回 想 录 刊 行 会 : 大 平 正 芳 回 想 录 传 记 篇, 鹿 岛 出 版 会 1982 年 版, 第 255 页 136
椭 圆 平 衡 和 平 合 作 -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任, 产 生 过 分 期 待 的 心 理 ( 其 反 面 是 过 分 的 批 判 ) 25) 政 府 对 国 民 抱 有 奢 望, 而 国 民 对 政 府 也 抱 有 奢 望 这 样 一 来, 不 仅 引 起 国 民 对 政 府 的 过 分 期 待, 也 造 成 政 府 的 过 分 干 预, 这 必 然 导 致 行 政 机 构 臃 肿, 政 府 财 政 拮 据 对 此, 政 府 和 国 民 双 方 都 应 该 注 意 26) 出 于 对 战 争 期 间 日 本 政 治 的 深 刻 反 思, 大 平 一 贯 反 对 政 治 过 分 干 预 国 民 的 精 神 生 活 生 活 和 价 值 观 这 一 神 圣 领 域, 并 把 这 当 作 自 己 的 政 治 哲 学 大 平 正 芳 的 椭 圆 理 论 体 现 了 日 本 最 崇 尚 的 一 个 政 治 理 念 和 谐 所 以, 和 椭 圆 理 论 相 辅 相 成, 大 平 在 内 政 外 交 中 最 强 调 的 理 念 就 是 和 谐 大 平 明 确 指 出 : 日 本 文 化 重 视 和 谐 就 是 在 人 与 自 然 城 市 与 农 村 精 神 与 物 质 自 由 与 责 任 等 相 互 对 立 事 物 之 间 保 持 平 衡, 并 尊 重 二 者 之 间 的 中 间 地 带 27) 同 样, 大 平 外 交 政 策 及 其 行 动 的 特 征 也 是 强 调 协 调 性 关 于 对 外 政 策, 大 平 在 演 说 中 经 常 使 用 协 调 性 语 言, 例 如 共 同 体 相 互 依 存 理 解 与 合 作 友 好 关 系 友 好 合 作 国 际 协 调 多 样 性 中 的 和 谐 协 调 行 动 责 任 与 角 色 的 分 担 安 定 和 平 友 好 紧 张 缓 和 强 化 合 作 相 互 信 赖 多 重 交 流 好 邻 居 多 方 面 的 合 作 关 系 等, 其 中 大 平 把 相 互 依 存 和 国 际 协 调 作 为 外 交 和 安 全 保 障 政 策 方 面 的 不 可 缺 少 的 基 本 认 识 大 平 在 就 任 首 相 后 的 首 次 施 政 演 说 中 强 调 : 现 在, 我 们 居 住 的 地 球 作 为 一 个 共 同 体, 其 相 互 依 存 度 越 来 越 高, 相 互 影 响 也 越 来 越 敏 感 在 这 个 地 球 上 无 论 发 生 什 么 事 件 和 问 题, 马 上 就 会 影 响 到 地 球 各 个 角 落 如 果 不 以 整 个 地 球 为 前 提 考 虑 问 题, 就 不 可 能 有 效 地 应 对 这 些 问 题 如 果 不 能 严 戒 对 立 和 抗 争 而 达 成 相 互 理 解 与 合 作 的 话, 人 类 的 生 存 就 极 其 困 难 28) 大 平 的 椭 圆 哲 学 思 想 似 乎 是 静 止 的, 很 容 易 使 人 联 想 到 传 统 的 阴 阳 二 元 论 然 而 事 实 并 非 如 此, 大 平 对 于 变 化 特 别 敏 感, 他 对 时 间 所 具 有 的 不 可 思 议 的 结 构 常 存 在 敬 畏 之 念, 所 以 他 的 椭 圆 理 论 中 的 平 衡 需 要 根 据 现 实 情 况 不 断 进 行 调 整 从 这 个 意 义 上, 其 椭 圆 哲 学 也 可 以 解 释 为 在 时 间 轴 上 产 生 的 理 论 在 1965 年, 池 田 内 阁 即 将 谢 幕, 大 平 曾 作 了 如 下 的 感 慨 : 时 间 这 种 东 西 具 有 令 人 不 可 思 议 的 结 构 正 如 河 水 奔 流 不 息 那 样, 既 有 静 静 流 淌 的 时 刻, 也 有 急 流 汹 涌 的 时 刻 但 是, 对 于 撑 船 的 人 来 说, 最 重 要 的 是 常 以 虔 诚 的 心 情 周 到 的 注 意 不 出 差 错 地 好 好 应 对 不 管 怎 么 说, 在 很 多 情 况 下, 祸 生 于 得 意 之 时, 而 福 毫 无 例 外 地 孕 育 在 隐 微 之 中 29) 1971 年 9 月, 大 平 正 芳 以 自 民 党 内 派 系 宏 池 会 会 长 的 身 份 发 表 了 关 于 日 本 新 世 纪 的 开 始 一 文, 就 转 折 时 期 的 日 本 阐 述 了 自 己 的 见 解 : 我 国 已 经 迎 来 了 需 要 对 战 后 进 行 总 25) 东 京 新 闻 1978 年 10 月 28 日 26) 读 卖 新 闻 1978 年 10 月 22 日 27) 長 富 祐 一 : 近 代 を 超 えてーー 下 巻, 大 蔵 財 務 協 会 1983 年,321 頁 28) 大 平 正 芳 回 想 录 刊 行 会 编 : 大 平 正 芳 回 想 录 资 料 编 鹿 岛 出 版 会 1982 年 第 285 页 29) 大 平 正 芳 回 想 录 刊 行 会 : 大 平 正 芳 回 想 录 传 记 篇, 鹿 岛 出 版 会 1982 年, 第 173 页 13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决 算 的 转 折 时 期 我 们 曾 经 为 争 取 过 上 富 裕 的 生 活 付 出 了 辛 劳, 但 是 富 裕 的 生 活 并 不 等 于 真 正 的 幸 福 我 们 曾 经 为 发 展 经 济 而 冲 刺 过, 但 正 因 为 经 济 的 过 速 增 长 使 得 我 们 迫 切 希 望 稳 步 发 展 我 们 曾 经 不 顾 一 切 向 海 外 发 展 经 济, 为 此 遭 到 其 他 国 家 的 嫉 妒 和 反 对 我 们 曾 经 把 基 本 方 针 放 在 与 美 国 的 协 调 上, 极 力 避 免 参 加 国 际 政 治 活 动, 然 而 美 元 地 位 的 下 降 使 我 们 必 须 走 自 主 外 交 的 艰 难 道 路 我 们 曾 经 举 国 上 下 致 力 于 振 兴 经 济, 但 正 因 为 成 了 经 济 大 国, 作 为 国 际 社 会 的 一 员 而 不 能 不 履 行 经 济 国 际 化 的 义 务 30) 在 大 平 看 来, 日 本 此 前 奉 行 的 经 济 增 长 优 先 主 义 和 依 附 美 国 协 调 主 义 本 国 中 心 主 义 正 是 偏 向 于 椭 圆 的 两 个 焦 点 之 一, 战 后 日 本 遗 忘 了 其 它 的 焦 点 而 盲 进, 已 经 丧 失 了 平 衡, 需 要 进 行 纠 正 大 平 断 定 这 是 一 个 重 大 的 转 折, 并 呼 吁 人 们 要 对 政 策 进 行 大 胆 的 修 正 其 中 关 于 外 交, 其 提 出 的 具 体 政 策 是 改 善 对 美 关 系, 与 中 国 实 现 邦 交 正 常 化, 推 进 与 南 方 各 国 的 经 济 文 化 合 作, 展 开 自 主 和 平 外 交 从 客 观 背 景 上 看,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的 提 出 与 世 界 能 源 问 题 日 本 对 外 贸 易 与 投 资 迅 速 增 长 密 切 相 关 大 平 担 任 首 相 后 不 久 主 持 了 在 东 京 举 行 的 发 达 国 家 首 脑 会 议, 能 源 问 题 成 为 此 次 会 议 的 主 要 议 题 由 于 1979 年 1 月, 石 油 输 出 国 组 织 宣 布 阶 段 性 提 高 石 油 价 格, 同 时 主 要 产 油 国 伊 朗 爆 发 革 命, 停 止 出 口 石 油, 导 致 石 油 价 格 在 两 个 月 之 内 从 每 桶 14 美 元 涨 到 24 美 元, 形 成 第 二 次 石 油 冲 击 另 外, 石 油 输 出 国 组 织 6 月 26 日 日 内 瓦 会 议 上 再 次 决 定 将 石 油 标 准 价 格 提 高 23.7% 因 此, 在 东 京 发 达 国 家 首 脑 会 议 的 第 二 天 会 议 上, 法 国 总 统 德 斯 坦 突 然 提 出 发 达 国 家 应 各 自 制 定 1985 年 限 制 石 油 进 口 具 体 目 标 的 建 议 其 他 国 家 均 有 自 己 的 油 田, 但 日 本 98% 的 石 油 需 要 进 口, 该 建 议 对 日 本 形 成 较 大 的 压 力 当 时 日 本 每 天 进 口 石 油 540 万 桶, 根 据 东 京 发 达 国 家 首 脑 会 议 前 政 府 制 定 的 新 经 济 七 年 计 划,1985 年 每 天 进 口 石 油 为 710 万 桶, 如 果 接 受 法 国 的 建 议 将 减 少 25% 因 此, 大 平 首 相 自 然 以 坚 决 的 态 度 拒 绝 但 其 他 六 个 国 家 赞 成 法 国 的 提 案, 经 过 午 间 休 息 期 间 的 紧 急 磋 商, 各 国 同 意 日 本 对 限 制 幅 度 稍 加 修 正,1985 年 的 石 油 进 口 量 控 制 在 630 万 到 690 万 桶 之 间 在 最 后 通 过 的 东 京 宣 言 中 除 限 制 进 口 石 油 具 体 目 标 外, 还 根 据 大 平 首 相 的 建 议, 增 加 了 对 发 展 中 国 家 提 供 能 源 开 发 援 助 粮 食 增 产 援 助 等 内 容 另 一 方 面, 日 本 能 够 在 石 油 危 机 引 发 的 经 济 危 机 中 很 快 摆 脱 出 来 并 保 持 了 较 高 的 经 济 增 长 率, 其 中 一 个 重 要 的 原 因 是 出 口 迅 速 增 长 尽 管 日 本 经 济 在 1974 年 出 现 战 后 最 初 的 负 增 长, 但 出 口 实 际 增 长 率 为 23.3% 出 口 在 70 年 代 前 半 期 年 均 增 长 率 为 24.7%,70 年 代 后 半 期 为 18.6%; 进 口 70 年 代 前 半 期 为 24.8%, 后 半 期 为 20%, 均 大 大 超 过 经 济 增 长 率 从 出 口 额 来 看,1973 年 为 369 亿 美 元,1979 年 上 升 到 1030 亿 美 元 31) 从 贸 易 收 支 来 看, 30) 日 本 大 平 正 芳 财 团 编 著 : 大 平 正 芳, 中 国 青 年 出 版 社 1991 年 版, 第 756 页 138
椭 圆 平 衡 和 平 合 作 -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1970 年 的 贸 易 盈 余 为 4.4 亿 美 元,1971 年 为 43 亿 美 元,1972 年 为 51 亿 美 元 1973 年 到 1975 年 转 为 贸 易 赤 字,1976 年 贸 易 盈 余 为 24 亿 美 元,1977 年 为 97 亿 美 元,1978 年 进 一 步 达 到 182 亿 美 元,1979 年 和 1980 年 再 转 为 赤 字 出 口 对 国 民 生 产 总 值 的 贡 献 度 1970 年 为 9%, 1976 年 上 升 到 11.6% 32) 出 口 迅 速 增 加 引 起 贸 易 摩 擦, 特 别 是 日 美 之 间 的 贸 易 摩 擦 1972 年 日 美 间 签 署 纤 维 协 定, 自 主 限 制 日 本 纺 织 品 出 口 美 国 1974 年 关 贸 总 协 定 达 成 多 国 间 纤 维 协 定, 其 后 日 美 在 此 基 础 上 解 决 纺 织 品 贸 易 问 题 1970 年 美 国 的 显 像 管 减 产 20%, 美 国 财 务 部 在 1971 年 对 日 本 征 收 倾 销 税, 日 本 支 付 7600 万 美 元 的 和 解 金 1976 年 日 本 彩 色 电 视 机 对 美 出 口 增 加 2.5 倍, 达 到 296 万 台, 占 美 国 国 内 需 求 的 30% 美 国 总 统 卡 特 迫 使 日 本 签 订 维 持 市 场 秩 序 协 定, 三 年 间 对 美 出 口 限 制 在 175 万 台 其 后 日 本 企 业 当 地 生 产,1979 年 对 美 出 口 69 万 抬, 当 地 生 产 335 万 台 33) 与 此 同 时, 美 国 要 求 日 本 开 放 市 场 60 年 代 以 后, 日 本 原 则 上 废 除 限 制 进 口 品 种, 但 通 过 关 税 化 设 置 进 口 壁 垒, 保 护 国 内 产 业 70 年 代 以 后, 日 本 在 工 业 制 品 领 域 降 低 关 税 或 废 除 关 税, 例 如 1978 年 完 全 免 除 汽 车 进 口 税 但 在 农 业 领 域 竞 争 力 较 弱, 美 国 希 望 日 本 开 放 国 内 农 业 市 场, 在 1973 年 关 贸 总 协 定 东 京 回 合 中 强 烈 要 求 日 本 进 口 农 产 品 1977 年 开 始 围 绕 牛 肉 甘 桔 进 行 谈 判, 并 在 1978 年 12 月 达 成 5 年 内 进 口 3.08 万 吨 牛 肉 8.2 万 吨 甘 桔 的 框 架 协 议 东 京 回 合 经 过 6 年 的 谈 判 达 成 协 议, 日 本 大 部 分 工 业 制 品 降 低 接 近 50% 的 关 税, 农 产 品 关 税 仍 然 采 取 以 前 的 方 式 从 工 业 制 品 的 关 税 率 来 看, 日 本 为 较 低 的 3%, 美 国 为 4.2%, 欧 洲 共 同 体 为 4.9%; 在 农 产 品 领 域, 日 本 的 关 税 率 为 8.6%, 美 国 为 2.9%, 欧 洲 共 同 体 为 12.3% 34) 日 本 海 外 投 资 也 急 速 增 长, 除 政 策 原 因 外, 也 有 减 少 贸 易 摩 擦 的 背 景 特 别 是 1972 年 取 消 投 资 额 度 限 制 后, 日 本 资 本 的 海 外 直 接 投 资 急 速 增 加, 称 为 海 外 直 接 投 资 元 年 1971 年 日 本 的 海 外 投 资 不 足 9 亿 美 元,1972 年 达 到 23 亿 美 元,1973 年 增 加 到 35 亿 美 元 其 后 因 石 油 危 机 稍 有 减 少,1974 年 为 24 亿 美 元,1975 年 为 33 亿 美 元 1977 年 12 月 修 改 外 汇 法 后, 对 资 本 流 动 的 限 制 大 为 缓 和 1978 年 对 外 投 资 为 48 亿 美 元,1979 年 迅 速 到 90 亿 美 元,1981 年 为 89 亿 美 元 这 一 时 期 的 投 资 主 要 是 制 造 业 及 其 销 售 其 产 品 的 流 通 业, 资 源 开 发 投 资 逐 渐 减 少 在 制 造 业 中, 能 源 消 耗 大 成 本 高 易 污 染 的 产 业 逐 渐 转 移, 例 如 炼 铝 产 业 31) 历 史 学 研 究 会 编 : 日 本 同 时 代 史 5 转 换 期 的 世 界 与 日 本, 青 木 书 店 1991 年 1 月, 第 10 页 32) 金 子 贞 吉 : 戦 後 日 本 経 済 の 総 点 検, 学 文 社 1996 年 10 月, 第 170 页 33) 金 子 贞 吉 : 戦 後 日 本 経 済 の 総 点 検, 学 文 社 1996 年 10 月, 第 172 页 34) 滨 中 秀 一 郎 : 图 说 日 本 的 关 税, 财 政 详 报 社 1992 年, 第 61 页 13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三 对 华 政 府 开 发 援 助 作 为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的 重 要 一 环, 维 持 中 日 友 好 局 面 对 于 日 本 来 说 有 着 非 同 寻 常 的 意 义 大 平 致 力 于 中 日 友 好, 其 基 本 的 着 眼 点 在 于 日 本 的 国 家 利 益 但 对 于 什 么 是 日 本 的 国 家 利 益 真 正 的 国 家 利 益 何 在, 大 平 有 着 自 己 的 理 解 大 平 不 仅 仅 是 发 展 和 中 国 的 友 好 关 系, 而 且 同 时 发 展 和 几 乎 所 有 国 家 的 友 好 关 系, 他 提 出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就 是 确 保 日 本 在 和 平 的 环 境 下 获 得 最 大 的 利 益 作 为 一 个 有 着 众 多 人 口 幅 员 辽 阔 的 邻 国, 日 本 搞 好 和 中 国 的 关 系, 对 日 本 的 长 远 利 益 有 利 同 时 就 当 时 的 日 本 而 言, 其 最 大 的 威 胁 是 苏 联, 当 时 中 国 和 苏 联 军 事 对 峙, 因 而 在 地 缘 政 治 格 局 中, 中 国 是 日 本 面 对 苏 联 威 胁 时 可 以 借 重 的 一 个 重 要 因 素 此 外, 中 国 的 能 源 资 源 供 应 对 于 日 本 也 是 重 要 的 补 充, 对 日 本 的 经 济 安 全 能 源 来 源 多 元 化 来 说 十 分 重 要 另 一 方 面, 大 平 正 芳 对 近 代 日 本 侵 略 战 争 有 着 清 醒 的 认 识, 并 为 此 具 有 一 种 历 史 负 债 感 1978 年 8 月, 大 平 作 为 福 田 政 权 的 干 事 长 在 与 田 中 洋 之 助 的 对 谈 中 明 确 表 示 : 我 认 为 最 近 日 本 的 潮 流 不 是 这 样 的, 没 有 从 加 害 者 的 立 场 和 被 害 者 的 角 度 出 发, 公 正 地 看 待 我 国 是 加 害 者, 中 国 是 受 害 者 这 样 一 种 日 中 关 系 作 为 一 个 加 害 者, 必 须 进 行 的 反 省 还 没 有 做 够, 更 不 能 说 是 卑 躬 屈 膝 了 35) 目 前 尚 无 资 料 证 实 大 平 正 芳 首 相 是 否 将 政 府 开 发 援 助 作 为 战 争 赔 偿 的 替 代 物, 但 与 其 战 争 时 期 曾 作 为 兴 亚 院 官 员 在 中 国 张 家 口 任 职 并 管 理 鸦 片 生 产 与 贩 卖 事 务 不 无 关 系 1963 年 2 月 12 日, 作 为 池 田 勇 人 内 阁 外 务 大 臣 的 大 平 在 参 议 院 外 务 委 员 会 答 辩 中 明 确 表 示 : 在 中 日 战 争 中 形 成 一 个 罪 恶 意 识, 因 而 在 考 虑 中 日 关 系 时, 应 明 确 美 国 的 立 场 与 日 本 的 立 场 截 然 不 同 大 平 派 成 员 曾 任 自 民 党 干 事 长 的 加 藤 紘 一 也 指 出 : 大 平 年 轻 时 曾 在 兴 亚 院 工 作 过, 其 经 历 成 为 其 后 来 建 立 良 好 的 中 日 关 系 的 基 础 36) 大 平 在 长 期 的 政 治 生 涯 中, 很 早 就 开 始 致 力 于 中 日 友 好 工 作 在 池 田 内 阁 任 官 房 长 官 和 外 务 大 臣 时 期, 他 积 极 支 持 开 展 两 国 间 半 官 方 的 廖 (L) 高 (T) 备 忘 录 贸 易, 推 动 中 日 双 方 达 成 协 议 对 此, 大 平 外 务 大 臣 对 台 湾 当 局 作 了 大 量 说 服 工 作 : 如 果 日 本 不 和 中 共 进 行 相 当 于 西 欧 水 平 的 贸 易, 日 本 国 民 是 难 以 理 解 的 在 佐 藤 内 阁 执 政 后, 开 始 推 行 两 个 中 国 的 政 策, 不 仅 限 制 业 已 存 在 的 人 员 往 来 及 贸 易 文 化 等 交 流 活 动, 更 是 追 随 美 国, 千 方 百 计 地 阻 挠 恢 复 中 国 在 联 合 国 的 合 法 席 位 大 平 严 厉 抨 击 佐 藤 的 两 个 中 国 政 策, 面 对 中 国 在 联 合 国 合 法 席 位 的 恢 复 和 尼 克 松 的 越 顶 外 交, 大 平 在 宏 池 会 政 策 委 员 会 发 表 了 一 篇 名 为 改 变 潮 流 的 演 讲, 强 调 政 府 本 着 中 日 友 好 的 精 神 和 原 则, 35) 大 平 正 芳 田 中 洋 之 助 : 复 合 力 量 的 时 代, 商 务 印 书 馆 1980 年, 第 32 页 36) 倪 志 敏 : 大 平 正 芳 与 鸦 片 问 题, 载 龙 谷 大 学 经 济 学 论 丛 第 49 卷 第 1 号,2009 年 9 月 140
椭 圆 平 衡 和 平 合 作 -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尽 快 地 开 始 同 北 京 之 间 的 政 府 间 接 触, 是 符 合 国 际 和 国 内 舆 论 的 田 中 角 荣 内 阁 成 立 后, 作 为 外 务 大 臣 的 大 平 正 芳 在 田 中 首 相 支 持 下, 开 始 实 行 自 己 的 主 张, 突 破 重 重 阻 挠, 最 终 实 现 了 中 日 关 系 的 正 常 化 在 中 日 邦 交 正 常 化 以 后, 影 响 中 日 关 系 的 障 碍 主 要 有 两 个, 一 是 关 于 日 台 航 线 的 处 理 问 题, 二 是 中 日 双 方 尚 未 签 订 的 中 日 和 平 友 好 条 约 中 日 复 交 后, 日 台 航 线 照 常 维 持, 有 悖 于 中 日 建 交 联 合 声 明 中 的 有 关 原 则 中 国 方 面 主 张 签 订 中 日 航 空 协 定 的 合 理 要 求 遭 到 日 本 右 翼 势 力 和 台 湾 帮 的 强 烈 阻 扰 大 平 外 务 大 臣 面 对 攻 击 毫 不 退 缩, 表 示 即 使 粉 身 碎 骨 也 要 签 订 中 日 航 空 协 定, 并 在 1974 年 1 月 再 次 访 华, 同 中 国 签 订 了 中 日 航 空 协 定 随 后 面 对 一 再 停 滞 不 前 的 中 日 和 平 友 好 条 约 的 谈 判, 作 为 当 时 福 田 纠 夫 内 阁 时 期 自 民 党 干 事 长, 大 平 也 发 挥 了 积 极 的 促 进 作 用, 最 终 双 方 在 1978 年 8 月 双 方 于 北 京 缔 结 了 中 日 和 平 友 好 条 约 同 年 12 月, 大 平 组 阁, 中 日 关 系 迎 来 了 新 的 发 展 时 期 1978 年 底, 中 国 政 府 采 取 改 革 开 放 政 策, 需 要 包 括 日 本 在 内 的 发 达 国 家 的 资 金 与 技 术 合 作 在 日 本 政 府 内 部, 围 绕 是 否 向 中 国 提 供 政 府 开 发 援 助, 负 责 外 交 政 策 的 外 务 省 负 责 贸 易 产 业 政 策 的 通 产 省 以 及 负 责 财 政 政 策 的 大 蔵 省 之 间 存 在 不 同 意 见 通 产 省 态 度 较 为 积 极, 例 如 当 时 通 产 省 通 商 政 策 局 局 长 矢 野 俊 比 古 说 : 若 考 虑 到 当 今 的 中 日 关 系 或 日 本 的 国 际 环 境,( 中 日 贸 易 的 扩 展 ) 不 仅 可 以 确 保 资 源 能 源 的 供 给 安 全, 还 可 以 做 到 资 源 市 场 多 元 化, 甚 至 还 能 确 保 一 定 程 度 的 成 套 设 备 出 口 市 场 37) ; 外 务 省 考 虑 到 与 欧 美 东 盟 苏 联 的 关 系, 态 度 较 为 消 极 欧 美 国 家 对 于 日 本 向 中 国 提 供 政 府 开 发 援 助 抱 有 疑 虑, 认 为 日 本 有 可 能 利 用 日 元 贷 款 独 占 中 国 的 潜 在 市 场 日 本 在 20 世 纪 50 年 代 到 60 年 代 期 间, 对 东 南 亚 的 ODA 设 定 附 带 限 制 条 件, 使 日 本 企 业 大 量 进 入 该 地 区 由 于 欧 美 国 家 也 注 重 拥 有 庞 大 人 口 的 中 国 潜 在 市 场, 担 心 日 本 企 业 利 用 日 元 贷 款 大 量 进 入 中 国 市 场 因 此, 欧 美 国 家 要 求 日 本 提 供 一 般 性 非 限 制 条 件 贷 款 给 中 国, 使 中 国 可 以 利 用 日 元 贷 款 购 买 其 他 国 家 的 产 品 例 如 美 国 在 1979 年 10 月 17 日 及 18 日 在 华 盛 顿 召 开 的 美 日 援 助 政 策 规 划 会 议 上 表 示 ; 如 果 日 本 不 采 取 非 限 制 性 方 式, 将 会 导 致 美 日 之 间 经 济 贸 易 摩 擦 的 加 剧 38) 其 次, 作 为 日 本 主 要 援 助 对 象 的 东 盟 国 家 担 心 日 本 突 然 提 供 巨 额 对 华 ODA 会 减 少 原 应 提 供 给 东 盟 国 家 的 ODA, 另 外 东 盟 国 家 担 心 中 国 利 用 日 本 的 ODA 加 速 现 代 化, 将 成 为 东 南 亚 各 国 市 场 的 有 力 竞 争 对 手 对 此, 日 本 政 府 代 表 在 1979 年 11 月 26 日 举 行 的 日 本 与 东 盟 经 济 阁 僚 会 议 上 强 调 将 继 续 保 持 重 视 东 盟 ODA 的 方 针 1979 年 度 对 华 日 元 贷 款 设 定 在 500 亿 日 元, 与 印 度 尼 西 亚 的 贷 款 金 额 一 样, 正 是 出 自 基 于 这 个 因 素 37) 矢 野 俊 比 古 : 日 中 长 期 贸 易 协 议 的 意 义 与 问 题, 世 界 经 济 评 论 1978 年 5 月 号 38) 日 本 経 済 新 聞 1979 年 10 月 25 日 14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另 外, 苏 联 也 对 日 本 实 施 对 华 ODA 表 示 强 烈 的 担 忧 中 苏 关 系 自 20 世 纪 60 年 代 左 右 开 始 恶 化, 中 国 提 出 在 中 日 和 平 友 好 条 约 中 写 入 反 霸 权 条 款, 意 味 着 中 日 双 方 在 具 有 法 律 约 束 力 的 国 际 条 约 中 承 认 共 同 反 对 苏 联 霸 权 主 义 的 立 场 苏 联 对 此 表 示 强 烈 不 满, 担 心 中 国 利 用 日 本 的 资 金 与 技 术 加 强 自 己 的 军 事 力 量 例 如 铁 路 港 湾 机 场 的 修 建 不 仅 有 利 于 平 时 的 经 济 建 设, 在 战 时 也 能 发 挥 输 送 人 员 与 物 资 的 功 能 正 是 在 上 述 背 景 下, 园 田 直 外 务 大 臣 在 1978 年 10 月 召 开 的 众 议 院 外 务 委 员 会 上 说 日 本 不 会 偏 向 中 国 或 苏 联 不 会 协 助 中 国 的 军 事 现 代 化 对 华 关 系 的 重 点 不 是 经 济, 而 是 文 化 交 流, 表 示 慎 重 考 虑 对 华 日 元 贷 款 39) 长 期 担 任 经 济 企 画 厅 工 作 的 经 济 学 家 大 来 佐 武 郎 担 任 外 务 省 大 臣 后, 外 务 省 的 态 度 发 生 变 化 大 来 早 在 1977 年 1 月 就 提 出 对 华 日 元 贷 款 的 必 要 性, 在 1979 年 11 月 9 日 就 任 外 务 大 臣 当 天 的 记 者 招 待 会 上 明 确 提 出 从 日 本 的 经 济 发 展 和 能 源 对 策 的 角 度 来 看, 应 该 提 供 对 华 日 元 贷 款 40) 但 考 虑 到 与 欧 美 国 家 的 关 系, 大 来 表 示 贷 款 不 带 有 限 制 条 款 不 仅 日 本 政 府 内 部 的 意 见 不 同, 自 民 党 内 部 也 没 有 统 一 的 意 见 自 民 党 多 数 的 议 员 支 持 对 华 日 元 贷 款, 政 务 调 查 会 长 河 本 敏 夫 在 1979 年 9 月 4 日 对 访 日 的 中 国 副 总 理 谷 牧 表 示 自 民 党 努 力 实 现 对 华 日 元 贷 款, 41) 但 为 保 持 与 国 际 社 会 的 协 调, 也 有 不 少 议 员 主 张 采 取 慎 重 态 度 大 平 首 相 对 向 中 国 提 供 政 府 开 发 援 助 持 积 极 态 度, 早 1979 年 1 月 23 日 就 公 开 表 示 日 本 政 府 准 备 大 规 模 推 进 中 日 经 济 合 作 同 年 9 月, 大 平 首 相 再 次 表 示 如 果 中 日 双 方 的 谈 判 进 展 顺 利, 年 内 将 携 带 对 华 提 供 日 元 贷 款 的 草 案 实 现 访 华 11 月 30 日, 内 阁 会 议 正 式 决 定 想 中 国 提 供 政 府 开 发 援 助,12 月 5 日 大 平 首 相 访 华 时 正 式 向 中 国 领 导 人 通 报 了 日 本 政 府 的 有 关 决 定 及 实 施 细 则 42) 当 然, 以 大 平 正 芳 为 首 相 的 日 本 政 府 向 提 供 政 府 开 发 援 助 既 有 确 保 能 源 供 应 推 动 中 日 经 贸 发 展 开 拓 中 国 市 场 的 经 济 因 素, 也 有 推 动 中 日 双 边 关 系 全 局 发 展 扩 大 国 际 影 响 减 少 历 史 问 题 对 两 国 关 系 形 成 负 面 影 响 的 政 治 因 素 为 消 除 欧 美 国 家 日 本 将 垄 断 中 国 市 场 的 担 心 以 及 其 他 亚 洲 国 家 特 别 是 东 南 亚 国 家 担 心 来 自 日 本 的 援 助 可 能 减 少, 大 平 首 相 特 意 向 访 日 的 谷 牧 副 总 理 传 达 日 本 对 华 经 济 合 作 的 三 项 原 则, 即 对 中 国 现 代 化 事 业 的 经 济 合 作 与 欧 美 各 国 协 调 顾 及 与 东 盟 各 国 的 平 衡 不 进 行 军 事 合 作 等 在 访 华 时 大 平 首 相 再 次 向 邓 小 平 等 中 国 领 导 人 重 申 其 原 则 并 得 到 理 解, 在 政 协 礼 堂 进 行 题 为 面 向 新 世 纪 的 中 日 关 系 追 求 更 深 更 广 演 讲 中, 大 平 首 相 详 细 地 说 明 了 上 述 三 项 原 则 从 1979 年 到 1984 年, 在 经 济 合 作 与 发 展 组 织 (OECD) 下 属 的 发 展 援 助 委 员 会 (DAC) 的 39) 朝 日 新 聞 1978 年 10 月 13 日 40) 人 民 日 報 1979 年 11 月 13 日 41) 人 民 日 报 1979 年 9 月 7 日 42) 林 晓 光 : 日 本 政 府 开 发 援 助 与 中 日 关 系, 世 界 知 识 出 版 社 2003 年, 第 217 218 页 142
椭 圆 平 衡 和 平 合 作 - 大 平 正 芳 的 综 合 安 全 保 障 战 略 所 有 成 员 及 国 际 组 织 对 华 经 济 援 助 总 额 中, 日 本 对 华 ODA 金 额 占 45%, 居 第 一 位 国 际 货 币 基 金 组 织 ( IMF) 占 14%, 居 第 二 位 联 合 国 各 机 构 占 12%, 居 第 三 位 中 国 在 1979 年 接 受 日 本 的 第 一 批 日 元 贷 款 之 后, 又 在 1981 1983 年 先 后 与 澳 大 利 亚 加 拿 大 德 国 和 比 利 时 等 国 签 订 了 双 边 发 展 合 作 总 协 定 或 议 定 书 与 荷 兰 挪 威 和 新 西 兰 签 署 了 无 偿 援 助 的 双 边 框 架 协 议, 与 瑞 典 芬 兰 和 卢 森 堡 等 国 建 立 不 定 期 的 发 展 合 作 关 系 此 外, 英 国 法 国 和 西 班 牙 等 国 也 对 中 国 提 供 了 各 种 方 式 的 援 助 与 这 些 国 家 的 援 助 方 式 相 比, 日 本 的 贷 款 是 改 革 开 放 后 接 受 的 首 笔 双 边 贷 款, 具 有 效 率 高 时 间 长 利 率 低 数 额 大 没 有 附 加 条 件 等 特 征 对 于 弥 补 改 革 开 放 初 期 中 国 的 资 金 短 缺 提 供 了 帮 助, 为 中 国 的 基 础 设 施 建 设 作 出 了 重 要 贡 献 综 上 所 述, 作 为 具 有 哲 学 思 想 的 政 治 家, 大 平 正 芳 不 仅 在 国 内 政 治 中 主 张 政 府 与 民 间 的 平 衡, 在 国 际 政 治 中 也 坚 持 多 方 位 外 交, 在 亚 太 地 区 合 作 的 基 础 上 支 持 中 国 的 现 代 化 经 济 建 设 事 业, 由 此 有 力 地 推 动 了 地 区 的 和 平 与 发 展 重 要 的 是, 在 国 际 格 局 与 世 界 经 济 正 在 发 生 重 大 变 化 的 今 天, 大 平 的 思 想 及 其 政 策 仍 具 有 较 大 的 启 示 意 义 14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타원, 균형, 평화, 협력 오히라 마사요시( 大 平 正 芳 )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왕신성 (베이징대학) <목 차> Ⅰ. 종합안보 전략 Ⅱ. 철학적 기반과 객관적 배경 Ⅲ. 대중국 정부개발원조 겉으로 보기에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일본 수상을 역임한 오히라 마사요시( 大 平 正 芳 ) 는 말주변 부족으로 질문에 답변할 때 늘 음 아 로 길게 늘어지곤 하였지만, 중국 저우언라이( 周 恩 來 ) 전총리의 평가대로 오히라는 근면 성실하면서 어눌한 언변의 박학 다 식한 인물 1) 이었다. 오히라 마사요시는 균형을 중시한 타원 철학 을 가지고 아태 지역의 협력을 이끈 종합안전보장 전략 을 내놓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중국에 정부개발원조를 제 공하여 지역 평화와 협력에 크게 공헌하였다. Ⅰ. 종합안보 전략 오히라 마사요시는 일본 총리 취임 이후 총리 개인자문기구로서 9개의 정책연구팀을 두고 철저한 정책 연구를 진행하였다. 구체적으로 우메사오 다다오( 梅 棹 忠 夫 )가 이끄는 전원도시구상 연구팀, 우치다 다다오( 内 田 忠 夫 )가 이끄는 대외경제정책 연구팀, 하야시 차키오( 林 知 己 夫 )가 이끄는 다원화사회 생활관심 연구팀 오키타 사부로( 大 来 佐 武 郎 )가 이끄는 환태평양협력 연구팀 이토 젠이치( 伊 藤 善 市 )가 이끄는 충실가정기초 연구팀, 이 노키 마사미치( 猪 木 正 道 )가 이끄는 종합안전보장 연구팀, 야마모토 시치헤이( 山 本 七 平 ) 1) 王 俊 彦, 중일관계 우물을 판 사람들 45인의 중일 우호 선구자 기록, 世 界 知 識 出 版 社, 2010 년, 294p. 144
타원, 균형, 평화, 협력 - 오히라 마사요시( 大 平 正 芳 )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가 이끄는 문화시대 연구팀, 다치 류이치로( 館 龍 一 郞 )가 이끄는 문화시대 경제운영 연구 팀, 사사 마나부( 佐 佐 學 )가 이끄는 과학기술 역사성 전개 연구팀 등 9개 브레인 조직이 었다. 2) 오히라는 대외정책의 기본 철학을 종합안보 전략 과 환태평양 협력 에 집중적으로 구현하였다. 1970년대 이후 국제 정세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특히 1차 석유위기가 일본 경제 안보 에 충격을 주자, 일본 국내 여론은 일본의 경제 안보 구도에 주목하면서 종합안전보장을 위한 다양한 구상을 내놓았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히라 마사요시는 자신의 소회를 종합하여 종합안전보장 전략 을 일본 대외 정책의 기본 철학으로 삼았다. 오히라 마사요시 본인은 종합안전보장 전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자원과 시장은 모두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모든 세계 분쟁이 우리에게 위협이 된 다. 더 심각한 것은, 현재 각종 무기가 빠르게 개발되고 있어 우리나라가 직접 공격을 받게 되면 단독으로 대응이 불가능하며 지금의 집단안전보장 체제로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우리 나라는 평화 전략을 기본으로 하는 종합안전보장 전략을 구현해야만 국가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현재의 집단안보 체제 즉 미일안보조약과 양질의 제한적 자위 능력 을 계속 유지하면서, 보완책으로서 경제, 교육, 문화 등 내정의 모든 영역을 충실히하고 또 한 경제 협력, 문화 외교 등 필요한 외교 노력을 강화하여 우리나라의 안전을 종합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3) 또한 오히라 총리는 1979년 1월 시정연설에서 다시 종합안전보장 전략 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일본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정치의 최대 임무이며, 이를 위한 제한적 자위 능력 유지와 미일 안보 조약으로 구성되는 안전보장 체제의 보완이 필요하지만, 진정한 안전보장은 방위 능력에만 의존해서는 불충분하다. 세계에 대한 현실적 이고 냉정한 인식을 기반으로 내정에서 질서와 활력 발휘에 노력하는 한편, 평화적 국제 환경 조성을 위한 적극적인 외교 노력 또한 당연하고 불가결하다. 4) 일본의 전 경제기획청 장관이자 저명한 평론가인 사카이야 다이치( 堺 屋 太 一 )는 전후 일 본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발전 철학 중 하나가 곧 미일 군사 동맹을 기초로, 경제 대국과 군사 소국으로의 길에 매진하는 외교 철학이다. 일본의 대외 정책은 이 철학에 따라 전개 되었고 국가 건설 역시 이 외교 방침에 따랐다. 5) 고 보았다. 이러한 국가 철학은 사실 요 2) 歷 史 學 硏 究 會, 일본 동시대사 5 전환기의 세계와 일본, 靑 木 書 店, 1991년1월, 144p. 3) 大 川 公 一, <전환기의 안전보장론>, 國 際 教 養 學 部 紀 要, 2005년 3호 재인용. 4) 日 本 大 平 正 芳 財 團, 大 平 正 芳, 中 國 靑 年 出 版 社, 1991년, 592p. 5) 堺 屋 太 一, <일본 몰락의 원인>, 中 央 公 論, 2008년 7월호. 14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시다 시게루( 吉 田 茂 )가 시조인 보수주의 노선으로, 오히라 마사요시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관련 기술에서 그 대외 정책이 기본적으로 여전히 보수주의의 틀 안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음에도, 이러한 조정이 나타났다. 이러한 조정은 주로 두 가지 측면에 집중되 었는데, 하나는 집단안전보장을 위한 책임과 비용을 적극 부담 해야 한다는 오히라의 주 장으로, 미일 동맹에서 일본의 지위와 역할을 높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오히라 총리 재직 시절 출범시킨 종합안전보장 연구팀은 1980년 오히라 마사요시 사망 이후 일본 종합안전 보장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의 핵심 주장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소련의 군 사 확장에 따라 미국이 70년대의 군사 및 경제 우위를 상실하여, 미국의 군사력은 이제 동 맹국에게 충분한 안전보장을 제공할 여력이 없다. 따라서 동맹국은 정규 군사력 영역에서 자체 역랑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국 핵우산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을 도와야 한다. 또한 미국의 경제력 감퇴에 따라 미국만의 힘으로는 더 이상 국제 통화 체제와 자유 무역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 6) 다시 말해, 미국 세력의 하락으로 인한 실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하여 일본이 적극적인 자세로 미국을 적극 지원하여 그 실력을 증강시켜야 한다는 뜻이 다. 종합안전보장 전략은 요시다 노선 을 계승하여 미일 동맹을 견지하고, 자주 방어 를 부정하며 군사력을 안전보장의 주요 수단으로 삼지 않는 전략이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내 용도 많이 덧붙여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요시다 노선 밑에서 일본이 국제 정치적으로 취 해온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저자세 를 벗어나, 일본과 구미국가와의 연합을 강조하는 동시 에 스스로 돕는 노력 을 강화하면서 일본이 서구와 안전 책임을 분담해 세계 평화와 안정 을 위해 경제력에 상응하는 공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서구 공동 안전 보장과 국제 사안 참여 측면에서 적극적인 경향을 드러냈다. 7) 보수주의 노선에 대한 또 하나의 조정은 일본과 다른 나라의 비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세계 각국과 경제, 문화, 기술, 교육 등 분 야의 협력을 적극 전개하여 세계 평화에 공헌하고 이를 통해 일본의 종합적 의미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일례로, 상술한 종합안전보장팀의 보고서 가운데 두번째 핵심은 남북 (선진국 개도국: 역자주) 문제의 안정이 일본에게 매우 중요하다. 종합안전보장 실시의 일 환으로, 일본은 개도국 경제 발전과 남북 질서 구축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해야 한다. 8) 는 것이었다. 따라서 오히라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속에서 미일관계를 기본 축으로 하는 정책은 여전 히 일본 안보 정책의 기초였으며, 오히라가 장조한 것은 새로운 정세 속에서 미일관계에 6) 綜 合 安 全 保 障 硏 究 小 組, 종합안전보장 전략, 大 藏 省 印 刷 局, 1980년 7p. 7) 宋 成 有 외, 전후 일본 외교사, 世 界 知 識 出 版 社, 1995년, 511p. 8) 綜 合 安 全 保 障 硏 究 小 組, 종합안전보장 전략, 大 藏 省 印 刷 局, 1980년, 8p. 146
타원, 균형, 평화, 협력 - 오히라 마사요시( 大 平 正 芳 )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대한 보완과 강화였다. 오히라가 미국과 맺은 집단안전보장 체제가 불충분 하다고 여겨 일 본이 적극적으로 외교에 나서야 한다고 본 것은, 미국 역량의 상대적 하락이라는 사실의 결과를 그가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오히라가 미일관계의 중요성을 과소 평가했다는 뜻은 아니며, 오히려 오히라가 미일관계에 대해 그 누구보다 중시했다는 의미 이다. 따라서 오히라는 미일관계는 일본 대외 정책의 주춧돌이라며 객관 정세의 발전에 따 라 심지어 미일관계를 더욱 긴밀히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일찍이 이케다 하야토( 池 田 勇 人 ) 내각 외무대신을 지낼 당시, 오히라 마사요시는 외무 대신으로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방위 당국과의 협력으로, 미일 안전보장 조약을 충실하게 집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본은 미일 간의 상호 이해와 신뢰이다. 나는 미일 사이에 먼지 처럼 작은 불신의 씨앗이라도 뿌려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마음을 쓴다. 9) 고 분명히 밝혔다. 이후 1979년 5월, 총리 취임 이후 첫 번째 방미 당시 오히라 마사요시는 카터 총리 주최의 환영식에서 첫 공개 발언을 통해 동맹 이라는 어휘로 미일관계를 수식하면서 일본이 미국 을 전폭 지지할 것이라는 결의를 보였다. 오히라는 미국의 역할과 미일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아태 지역 나아가 전세계는 세력 균형에 기반해 평화를 보장하고 있고 여전히 강력한 미국에 의지하고 있으며,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의 강대함이란 군사력 의 강대함뿐 아니라, 강대하면서 활력 있는 경제과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강인한 행동력까 지 포함한다. 전세계가 모두 미국에게 이러한 역량을 배경으로 적극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기대한다. 미국의 이러한 능력에 협조하기 위하여, 미국의 좋은 동반자로서 우리나라도 공동의 목표를 위해 공헌해야 한다. 10) 오히라 총리 재직 시절 국제정세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이란의 미국 인질 억류 사 건이 일어났고 이어서 소련의 아프가니스칸 침공 사건이 일어났다. 이란 문제는 일본의 석 유 공급과 관련되며 아프간 문제는 일본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의 관계와 관련되었기에, 이 양대 사건은 오히라 마사요시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에 시험대가 되었다. 사건 처리 과정에 서 일본은 여러 관계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였지만 최종적으로는 단호하게 미국 편에 서는 모습을 보여, 오히라의 종합안전보장 의 전제가 여전히 미일동맹임을 보여주었다. 1980년 1월 25일 오히라 마사요시는 시정 연설을 발표하였다. 이란의 미국 대사관 인 질 사건과 소련 아프가니스탄 침공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연설의 삼분의 일이 국제정세 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여기서 오히라 총리는 일본을 서구의 일원 이라는 입장에 놓겠다고 분명이 밝혔다. 우리나라 대외 정책의 기본은 자유주의 국가와의 단결을 강화하는 것이며, 9) 日 本 大 平 正 芳 財 團, 大 平 正 芳, 中 國 靑 年 出 版 社, 1991년, 237p. 10) 川 内 一 誠 : 大 平 정권 554일, 行 政 問 題 硏 究 所 出 版 局, 1982년, 135p. 14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또한 이를 기반으로 전세계 각국과의 우호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말할 나위 없이, 미일 안보체제를 기반으로 그 위에 미국과 흔들리지 않는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나라 외교의 기본축이다. 미일관계를 공고히하기 위하여 일본 정부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영역을 통해 흔들림없이 미일협력을 추진해야 하며 또한 서구를 위시한 자유주의국가와의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11) 아프간 문제에 대해 오히라 총리는 이 중대한 사태의 해결을 위해 정부로서는 미국과의 단결 강화를 중심으로 동시에 유럽 및 기타 각국과 협조하여 우 리나라에 적절한 노력을 계속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희생을 초래한다해도, 본인은 그 또한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타 우호 국가가 취하는 조치를 파괴하거나 그 효과 를 약화시키는 어떠한 행동에도 우리나라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다. 12) 고 분명히 밝혔다. 이처럼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 참가 거부를 호소하자, 오히라는 즉각 올 림픽과 석유를 비교하면 석유가 더 중요하다. 석유를 미국과 비교하면 미국이 더 중요하 다. 13) 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중재 이후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미국의 호소에 따라 모스크 바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로 결정하였다. 일본에게 가장 중요한 안전보장은 역시 경제 안보로서, 따라서 종합안전보장을 경제안 전보장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14) 종합안전보장 전략 연구팀의 보고서에도 일본의 GNP 대비 방위비 지출이 다른 서구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일본은 경제 기술 협력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평화헌법의 제약으로 경제 협력이 국가관계 속에서 일 본이 가진 유일한 적극적 수단이었고, 게다가 경제협력의 목적은 경제의 시각에만 착안 할 수 없으며 정치적 고려도 수반해야 하며 필요할 때에는 종합적 판단을 해야 했다. 15) 경제 안보에 있어 에너지와 자원의 공급 확보는 일본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에 너지 자원 공급 보장을 위해 일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원과 에너지 공급 지역과의 평 화 우호 관계를 발전시켜, 세계 전체의 평화 발전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종합안전보장 을 언급할 때 일본 학자들이 자주 강조하는 것이 곧 자원이 없는 일본은 전세계에서 자원 을 구해야 한다. 이는 또한 다음과 같은 함의를 갖는데, 자원 공급지를 분산하면 더 안전하 게 되므로 전세계적으로 자원을 구하는 대상국이 점점 늘어나고, 이러한 상황은 일본이 세계 모든 나라와 평화 우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외교 원칙을 자연스럽게 탄생시켰다. 16) 전술한 오히라의 발언 역시 대체로 같은 의미로, 석유위기 이후 일본의 친아랍 외교, 11) 川 内 一 誠, 大 平 정권554일, 行 政 問 題 硏 究 所 出 版 局, 1982년, 231~232p. 12) 日 本 大 平 正 芳 財 團, 大 平 正 芳, 中 國 靑 年 出 版 社, 1991년, 681p. 13) 日 本 大 平 正 芳 財 團, 大 平 正 芳, 中 國 靑 年 出 版 社, 1991년, 704p. 14) 大 川 公 一, 전환기의 안전보장론, 國 際 教 養 學 部 紀 要, 2005년3월. 15) 綜 合 安 全 保 障 硏 究 小 組, 종합안전보장 전략, 大 藏 省 印 刷 局, 1980년, 18p. 148
타원, 균형, 평화, 협력 - 오히라 마사요시( 大 平 正 芳 )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동남아 및 아프리카와의 관계 중시 등은 에너지와 자원 공급 확보가 가장 중요한 고려 요 인이었다. 일본의 자원과 에너지 공급 보장을 위해 그 해외 투자 역시 이러한 측면에 경도 되었다. 1980년 일본 대외 직접 투가 가운데 선진국이 44.4%, 개도국이 55.5%를 차지하 였는데, 이는 일본에서 개도국으로 향하는 직접 투자가 선진국으로의 직접투자보다 많다는 의미이다. 개도국 대상 직접투자 가운데 자원 개발 투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대부분 대 형 프로젝트이다. 이는 7,80년대 일본 대외 직접 투자가 경제 안전보장 을 위한 성격을 가 진다는 뜻이다. 17) 또한 종합안전보장은 대외 경제 원조를 국가 안보 정책의 일부라고 보 았다. 일본 정부의 대외개발원조(ODA)는 1973년 10월 석유위기 이후 경제 안전보장 의 색채를 띠고 시작되어, 특히 에너지와 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대외 원조 강화를 위기 대응 체제의 일부로 삼아, 석유 및 기타 자원의 안정적 공급 확보를 목 적으로 하는 정부개발원조가 늘어났으며, 특히 중동과 중남미 및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가 늘었다. 18) 오히라 재임 당시 종합안전보장 전략 을 구체화시킨 결과물이 곧 태평양 협력 구상으 로, 종합안전보장 가운데 경제 안보의 중요성을 강도높게 반영하였다. 오히라 총리는 종합 안보의 핵심으로서 환태평양 협력 구상 을 내놓았다. 환태평양 협력 계획 위원회 가 제출 한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이 구상은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세안을 포함하 는 느슨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아태 지역을 범위로 생산 발전을 조율하고 자원 개발에 협력하는 것이었다. 19) 태평양 협력 구상 을 홍보하기 위하여 오히라 총리는 호주 방문 당 시 과거의 대부분 지역 협력이 모두 공동의 언어, 문화, 전통 등 동일성을 유대로 상호 관 계를 강화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렇게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경제 발전 단계도 각기 다른 많은 태평양 각국이 과연 새로운 협력 관계에 기반한 새로운 문화를 창 출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본인은 이러한 어려움은 극복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각국 문화의 독자성과 정치의 자주성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구축되는 지역 협력으로, 글로벌 사회 시대 의 개방성에 걸맞는 지역 협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환태평양 각국 사이의 협력 역시 배타적 국가 그룹 구축을 위한 것이 절 대 아니다. 그 최종 목적은 태평양 각국 및 전 인류 사회의 행복과 번영에 이바지하기 위 한 것 20)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호주는 일본에게 각별한 16) 松 岡 英 夫, 정세에 뒤처진 외교, 中 央 公 論 1980년3월. 17) 馮 昭 奎 외, 전후 일본 외교, 中 國 社 會 科 學 出 版 社, 1996년, 466p. 18) 馮 昭 奎 외, 전후 일본 외교, 中 國 社 會 科 學 出 版, 1996년, 476p. 19) 人 民 日 報, 1979년12월 12일. 20) 大 平 正 芳 回 想 錄 刊 行 會, 大 平 正 芳 전, 吉 林 人 民 出 版 社, 1984년, 584p. 14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중요성을 가지며, 또한 일본은 호주와의 왕래를 통해 일본 외교의 교섭 능력을 강화하려는 바람도 있었다. 일본과 호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양자간 경제 관계가 상호 보완 적이라는 이유 외에도 일본의 대중, 대소 교섭 능력 제고 측면에서도 현재 가장 중요한 국 제관계다. 21) Ⅱ. 철학적 기반과 객관적 배경 철학적 기반으로 볼 때, 오히라 마사요시가 내놓은 종합안전보장 전략 은 그의 타원 철 학을 기반으로 하는 균형론이었다. 타원 철학 은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행동 지 침이면서 동시에 정치 활동에 종사할 때의 기본 지도 철학이기도 하다. 풍부한 철학적 함 의를 가진 신조였기에, 오히라 마사요시의 많은 아이디어는 시대를 앞선 감각을 담았으며 역사 발전의 객관적 규칙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오히라 마사요시가 언제 타원 철학 을 형성했는지는 고증할 길이 없지만, 그는 20대 때 유사한 관점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세무 간부로서 오히라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행정 은 타원형처럼 두 개의 중심이 있다. 이 두 개의 중심이 균형과 대립의 상태에 있는 행정 이 곧 완벽한 행정으로 세무 업무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중심은 징세권이고 또 하나의 중심은 납세자로서, 권력으로 장세를 강제해서도 안 되고 납세자와 쉽게 타협해서도 안 된 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정직한 원칙 관철이야 말로 경우에도 이치에도 맞는 과세 방식이다. 22) 이는 오히라가 처음으로 타원 철학 을 언급한 기록으로, 여기서 오히라의 인 생 철학이 이미 분명히 엿보인다. 오히라의 시각에서 모든 사물은 두 개의 중심이 있고, 양 자가 균형 상태에 있을 때만이 상황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의 발전 방 향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양자의 균형을 주의 깊게 유지시켜 어느 한 쪽으로 과도하게 기 울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히라 마사요시의 정치 이력 속에서 그가 이 철학을 활용해 정국을 틀어 쥐고 정무를 처리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 철학을 운용하면서 오히라는 일본 정국의 향배 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일본의 각종 문제의 본질을 더욱 독창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일 례로 초대 이케다 하야토 내각의 관방장관으로서, 오히라는 내각의 순조로운 운영의 조건 을 타원 철학 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케다 내각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21) 中 島 岭 雄, <방위 전략으로서의 일본 외교>, 中 央 公 論, 1979년1월. 22) 許 曉 光, 일본 총리 大 平 正 芳, 四 川 人 民 出 版 社, 1997년, 43p. 150
타원, 균형, 평화, 협력 - 오히라 마사요시( 大 平 正 芳 )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는, 고노( 河 野, 太 郎 타로)와 사토( 佐 藤, 榮 作 에시사쿠)를 두 개의 초점으로 타원 전체의 군 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23) 고노, 사토 두 세력이 일종의 안정적 조화를 이루고 있으므 로 일본 정치가 순조롭게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타원형의 두 중심이 서로 보완적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4) 오히라가 몇 년 간 줄곧 주장한 작은 정부 론, 계획경제반대론, 민간활력주도형 경제론 역시 타원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정부와 민간이 국민경제라는 타원의 두 중심이라고 보고, 양자의 균형만이 국민경제 발전의 최적 상태라고 여겼다. 오히라는 정부가 경제에 대 한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국민생활에 대한 정부의 간섭도 줄여 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1978년 가을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정부가 사사 건건 국민 생활에 간섭하는 것은 과도한 정치 간섭으로 지양해야 한다. 반대로, 국민 역시 모든 것을 정치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과도한 기대 심리(그 반작용이 곧 과도한 비판)를 가 져서는 안된다. 25), 정부가 국민에게 과도한 욕구를 가지고 국민도 정부에 과도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과도한 기대가 생기고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가져오게 되어, 필연적으로 행정 기관의 비대와 정부 재정의 옹색을 초래한다. 이에 대해 정부와 국 민 양자가 모두 주의해야 한다. 26) 전쟁 당시 일본 정치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출발하여, 오히라는 정치가 국민의 정신, 생활, 기차관 등의 신성한 영역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데 줄 곧 반대하였고, 이를 자신의 정치 철학으로 삼았다. 오히라 마사요시의 타원 이론 은 일본에서 가장 숭상하는 정치 철학인 화합 을 체현하 였다. 따라서 타원 이론 과 상호 보완적으로 오히라가 내정과 외교에서 가장 강조한 개념 은 곧 화합이었다. 오히라는 일본 문화는 화합 을 중시하니 곧 자연과 인간, 도시와 농촌, 정신과 물질, 자유와 책임 등과 같이 서로 대립하는 사물 사이의 균형 을 유지하는 것으로, 양자 사이의 중간 지대 를 존중한다. 고 분명히 지적하였다. 27) 마찬가지로 오히라 외교 정 책과 그 행동의 특징 역시 화합을 강조한다. 대외 정책에 관하여 오히라는 연설에서 협조 의 의미를 갖는 어휘를 자주 활용하였는데, 구체적으로 공동체, 상호 의존, 이해와 협력, 우호 협력, 국제 공조, 다양성 속의 조화, 협조 행동, 책임과 역할의 분담, 안정, 평화 우호, 긴장 완화, 협력 강화, 상호 신뢰, 다중 교류, 좋은 이웃, 다방면의 협력 관계 등으로, 이 가운데 오히라는 상호 의존 과 국제 공조 를 외교와 안보 정책의 필수적인 기 23) 大 平 正 芳 回 想 錄 刊 行 會, 大 平 正 芳 회상록 전기편, 鹿 島 出 版 會, 1982년, 206p. 24) 大 平 正 芳 回 想 錄 刊 行 會, 大 平 正 芳 회상록 전기편, 鹿 島 出 版 會, 1982년, 255p. 25) 東 京 新 聞, 1978년 10월 28일. 26) 读 卖 新 聞, 1978년 10월 22일. 27) 長 富 祐 一, 近 代 を 超 えてーー 下 巻, 大 蔵 財 務 協 會, 1983년, 321p. 15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본 인식으로 보았다. 오히라는 총리 취임 후 첫 번째 시정연설에서 지금 우리가 사는 지 구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상호 의존도가 날로 높아지고 상호 영향 역시 점점 민감해지고 있다. 이 지구 상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이나 문제가 곧 지구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지구 전체를 전제로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대립과 갈등을 경계하면서 이해와 협력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인류의 생존은 극히 곤란해진다. 28) 라고 강 조하였다. 오히라의 타원 철학 은 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음양 이원론을 연상시키기 쉽 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오히라는 변화에 특히 민감했다. 그는 시간이 갖는 불가사 의한 구조 에 늘 경외심을 품었기에, 그의 타원 이론 속의 균형은 현실 상황에 따라 끊임 없는 조정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타원 철학은 또한 시간이라는 축 위 에서 나온 이론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1965년 이케다 내각이 물러날 무렵, 오히라는 다음 과 같은 감회를 보였다. 시간이라는 것은 불가사의한 구조를 갖는다. 강물이 쉼 없이 흘러 가듯 고요히 흘러가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급류처럼 용솟음치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배를 모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늘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추호의 착오 없이 제대로 가기 위해 세심하게 마음쓰는 것이다. 결국 많은 경우 화근은 득의한 때에 생기며, 예외없 이 미묘함에서 배태된다. 29) 1971년 9월 오히라 마사요시는 자민당 내 파벌 고치카이( 宏 池 会 ) 회장의 자격으로 일본 새로운 세기의 시작에 관하여 를 통해 전환기 일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 이 밝혔다. 우리나라는 이미 전후에 대한 총결산을 해야 하는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우리 는 부유한 생활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했지만, 부유한 생활이 곧 진정한 행복은 아 니다. 우리는 경제 발전을 위해 매진했지만, 경제의 과속 성장은 우리로 하여금 안정적 발 전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과거 오로지 해외 경제 발전을 추구하였지만, 이로 인해 다른 나라의 시기와 반발에 부딪혔다. 우리는 한 때 기본 방침을 미국과의 공조에 두고 국 제 정치 활동 참여를 극력 회피하였지만, 달러 지위의 하락으로 우리들은 자주 외교라는 험난한 길을 가게 되었다. 우리들은 거국적으로 뭉쳐 경제 진흥에 힘썼지만, 경제대국이 되 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경제 국제화의 임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 다. 30) 오히라의 시각에서 볼 때, 일본이 과거 수행했던 경제 성장 우선주의와 미국 의존 협조주의 그리고 본국 중심주의가 곧 타원의 두 초점 가운데 한쪽에 편향된 것으로, 전후 28) 大 平 正 芳 回 想 錄 刊 行 會, 大 平 正 芳 회상록 자료편, 鹿 島 出 版 會, 1982년, 285p. 29) 大 平 正 芳 回 想 錄 刊 行 會, 大 平 正 芳 회상록, 전기편, 鹿 島 出 版 會, 1982년, 173p. 30) 日 本 大 平 正 芳 財 團, 大 平 正 芳, 中 國 靑 年 出 版 社, 1991년, 756p. 152
타원, 균형, 평화, 협력 - 오히라 마사요시( 大 平 正 芳 )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일본이 다른 초점을 잊은 채 맹목적으로 나아간 결과 균형을 상실하였으므로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오히라는 이를 중대한 전환 이라고 단정하고, 사람들에게 대담 한 정책 수정 의 필요성을 호소하였다. 여기에 외교와 관련하여 그가 내놓은 구체적인 정책 이 대미관계 개선,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 개도국과의 경제 문화 협력 그리고 자주 평화 외교 였다. 객관적 배경을 볼 때, 종합안전보장 전략의 탄생과 세계 에너지 문제, 일본의 대외 무역 과 투자의 빠른 성장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오히라는 총리 취임 후 얼마 후 도쿄에서 선 진국 정상 회담을 주최하였고, 에너지 문제가 회의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1979년 1월 석 유수출국기구가 단계적 유가 인상을 선포하고 동시에 주요 산유국 이란에 혁명이 일어나 석유 수출이 중단되자, 유가가 두달 만에 배럴당 14달러에서 24달러로 폭등하여 제2차 석 유위기 가 일어났다. 또한 석유수출국기구는 6월 26일 제네바회의에서 석유 기준가를 다시 23.7% 인상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도쿄 선진국 정상 회담 이틀째 회의에서 데스탕 프랑스 대통령은 갑자기 선진국이 각자 1985년까지 석유 수입을 제한하는 구체적 목표를 마련해야 한다. 고 제안하였다. 다른 나라는 모두 자체 유전이 있지만 일본은 석유 수요의 9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이 제안은 일본에 큰 부담이 되었다. 당시 일본은 매일 540만 배럴의 석유를 수입하고 있어, 도쿄 선진국정상회담 이전 정부 가 제정한 신 경제 7개년 계획 에 따르면 1985년 수입할 석유는 매일 710만 배럴로, 프랑 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25%를 줄여야 했다. 따라서 오히라 총리는 당연히 단호한 태도 로 거절하였다. 그러나 다른 6개국은 프랑스의 제안에 찬성하였고 정오 휴식 시간의 긴급 협상을 거쳐 각국은 일본의 제한폭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는데 동의하여, 1985년 석유 수입 량을 630만~690만 배럴로 제한하기로 하였다. 최후에 통과된 도쿄 선언 에서는 석유 수 입 제한에 관한 구체적 목표 외에도 오히라 총리의 제안에 따라 개도국에 대한 에너지 개 발원조, 식량증산 원조 등이 추가되었다. 한편, 일본은 석유위기로 인한 경제 위기에서 재빨리 벗어나 높은 경제 성장률을 유지 할 수 있었는데, 주요 원인은 수출의 빠른 성장이었다. 비록 1974년 전후 일본 경제에 처 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나타났지만 수출 실질 성장률은 23.3%였다. 연평균 수출 성장률 이 70년대 전반 24.7%와 70년대 후반 18.6%, 수입은 70년대 전반 24.8%와 후반 20%로, 평균적으로 경제 성장률을 크게 웃돌았다. 수출액은 1973년 369억 달러에서 1979년 1030 억 달러로 늘어났다. 31) 무역 수지의 경우 1970년 4억 4천만 달러이던 무역 흑자가 1971년 43억 달러, 1972년 51억 달러로 늘었다. 1973년부터 1975년은 무역 적자로 돌아섰다가 31) 歷 史 學 硏 究 會, 일본 동시대사 5 전환기의 세계와 일본, 靑 木 書 店, 1991년1월, 10p. 15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1976년 다시 2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였으며 1977년 97억 달러, 1978년 182억 달러로 급증하였다가, 1979년과 1980년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GDP에 대한 수출 기여도는 1970년 9%에서 1976년 11.6%로 늘었다. 32) 수출의 빠른 증가는 무역 마찰 특히 미일 무역 마찰을 일으켰다. 1972년 미일 양국은 섬유협정을 맺어 일본 방직품의 대미 수출을 스스로 제한하였다. 1974년 GATT는 다국 간 섬유 협정 을 맺었는데, 그후 미국과 일본은 이를 기반으로 방직물 무역 문제를 해결하 였다. 1970년 미국의 브라운관 생산이 20% 줄어들자 미국 재무부가 1971년 일본에 덤핑 세를 부과하여 일본은 7600만 달러의 화해금을 지불하였다. 1976년 일본 컬러수상기 대미 수출이 2.5배 증가한 296만 대로 늘어 미국 국내 수요의 30%를 차지하였다. 미국 카터 대 통령은 일본을 압박하여 시장 질서 유지 협정 을 맺고 3년간 대미 수출을 175만 대로 제 한하였다. 이후 일본 기업은 현지 생산에 주력해 1979년의 대미수출은 69만 대, 현지 생산 은 335만 대가 되었다. 33) 이 밖에 미국은 일본에 시장 개방을 요구하였다. 60년대 이후 일본은 원칙적으로 수입 품목 제한을 철폐하였지만, 관세화를 통해 수입 장벽을 두어 국내 산업을 보호하였다. 70년 대 이후 일본은 공산품 분야에서 관세를 낮추거나 폐지하면서 1978년 자동차 수입 관세를 전면 철폐하였다. 그러나 농업 분야에서 경쟁력이 취약했는데, 미국은 일본의 국내 농업 시 장 개방을 희망하면서 1973년 GATT 도쿄 라운드에서 농산품 수입을 일본에 강력히 요 구하였다. 1977년부터 소고기와 오렌지에 대한 협상이 시작되었고, 1978년 12월 5년 안에 3.08만 톤의 소고기와 8.2만 톤의 오렌지 수입에 원칙적적으로 합의하였다. 도쿄 라운드는 6년의 협상을 거쳐 일본의 대부분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50% 가깝게 인하하고, 농산품 관 세는 이전의 방식을 유지하기로 합의하였다. 공산품 관세율을 보면 일본이 가장 낮아 3%, 미국은 4.2%, EC는 4.9%였으며, 농산물 분야에서 일본의 관세율은 8.6%, 미국은 2.9%, EU는 12.3%였다. 34) 정책적 요인 외에도, 일본의 해외투자 급증 역시 무역 마찰 감소의 배경이 되었다. 특히 1972년 투자한도 제한을 없애자, 일본 자본의 해외 직접 투자가 빠르게 늘어나 해외 직접 투자의 원년 이 되었다. 1971년 일본 해외 투자는 9억 달러에 못미치는 수준이었지만, 1972년 23억 달러, 1973년 35억 달러로 늘었다. 이후 석유위기로 약간 줄어 1974년 24억 달러, 1975년 33억 달러를 기록했다. 1977년 12월 외환법 개정 이후 자본 이동에 대한 제 32) 金 子 貞 吉, 戦 後 日 本 経 済 の 総 点 検, 學 文 社, 1996년10월, 170p. 33) 金 子 貞 吉, 戦 後 日 本 経 済 の 総 点 検, 學 文 社, 1996년10월, 172p. 34) 滨 中 秀 一 郎, 도설 일본의 관세, 財 政 詳 報 社, 1992년, 61p. 154
타원, 균형, 평화, 협력 - 오히라 마사요시( 大 平 正 芳 )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한이 크게 완화되었다. 1978년 대외투자는 48억 달러에서 1979년 90억 달러로 빠르게 늘 어났으며, 1981년은 89억 달러였다. 이 당시 투자는 주로 제조업과 그 제품을 판매하는 유 통업으로, 자원 개발 투자는 점차 줄어들었다. 제조업 가운데 에너지 소비가 많고 원가가 높고 오염을 유발하는 산업이 점차 이전되었는데, 데표적인 산업이 알루미늄 제련이었다. Ⅲ. 대중국 정부개발원조 종합안전보장 전략 의 중요한 일환으로 중일 우호 국면 유지는 일본에게 매우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중일 우호에 힘쓴 오히라의 기본 착안점은 일본의 국가 이익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일본의 국가 이익인가, 진정한 국가 이익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오히라는 나름대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오히라는 중국과의 우호 관계 발전뿐 아니라 동시에 거의 모든 나라와 우호 관계를 발전시켰으며, 그가 내놓은 종합안전보장 전략이란 곧 일본이 평 화로운 환경 속에서 최대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 이웃 나라 로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일본의 장기적인 이익에 유리한 것이었다. 또한 당시의 일본에 게 최대의 위협은 소련으로, 당시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소련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중국은 일본이 소련의 위협에 직면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 밖에도 중국의 에너지와 자원 공급 역시 일본에 보완적 의미가 컸으므로, 일본의 경제 안보와 에 너지 공급원 다각화에 매우 중요했다. 한편, 오히라 마사요시는 근대 일본 침략 전쟁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에 역 사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1978년 8월, 후쿠다( 福 田 ) 정권의 간사장으로서 오히라는 다나카 요노스케( 田 中 洋 之 助 )와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명확히 밝히고 있다. 내가 보기 에 최근 일본의 대세는 그렇지 않아서, 가해자의 입장과 피해자와 관점에서 출발해 우리나 라가 가해자이고 중국이 피해자라는 중일관계를 공정하게 다루지 못했다. 가해자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반성이 아직 불충분한데 비굴하게 아첨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35) 현재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가 정부개발원조로 전쟁 배상을 대신하려고 했는지 증명 가능한 자료 는 없지만, 전쟁 당시 흥아원( 興 亞 院 ) 관원으로 중국 장자커우( 張 家 口 )에서 근무하면서 아 편 생산과 판매를 관리했던 그의 이력과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1963년 2월 12일, 이 케다 하야토 내각의 외무대신으로서 오히라의 참의원 외무위원회 답변을 보면, 중일전쟁 와중에서 일종의 죄의식을 형성하였기에 중일관계를 고려할 때 미국과 일본은 입장이 다르 35) 大 平 正 芳 & 田 中 洋 之 助, 복합 역량의 시대, 商 務 印 書 館, 1980년, 32p. 15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하였다. 오히라파로서 자민당 간사장을 맡았던 가토 코이치 ( 加 藤 紘 一 ) 역시 오히라는 젊어서 흥아원에서 일한 적이 있어, 그 경력이 그 후 우호적인 중일관계 구축의 기반이 되었다. 36) 고 지적한 바 있다. 오랜 정치 생애 속에서 오히라는 일찍부터 중일 우호 사업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이 케다 내각 관방장관과 외무대신 재임 당시, 그는 양국간 준정부 성격의 LT( 廖, 高 ) 각서 무역 을 적극 지지하면서 중일 양측의 합의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오히라 외무대신은 일본이 중공과 서구 수준의 무역을 하지 않는다면 일본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이라 며 타이완 당국에 여러 차례 설득 작업을 벌였다. 사토 내각은 집권 이후 두 개의 중국 정책을 추진하여 기존의 인적 왕래 및 무역, 문화 등 교류 활동을 제한하였을 뿐 아니라, 미국을 따라 UN에서 중국의 합법 지위 회복을 막기 위해 여러모로 힘썼다. 오히라는 사토 의 두 개의 중국 정책을 단호하게 비판하면서, 중국의 UN 합법 지위 회복과 닉슨의 방 중외교 에 대하여 고치카이 정책 위원회에서 대세의 변화 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정부 는 중일 우호의 정신과 원칙에 입각하여 베이징과의 정부간 접촉을 조속히 시작해 국제 및 국내 여론에 부합해야 한다. 고 강조하였다. 다나카 가쿠에이( 田 中 角 榮 ) 내각 출범 이후 외무대신으로서 오히라 마사요시는 다나카 총리의 지지 하에 자신의 주장을 실행하기 시작하여, 겹겹의 방해를 뚫고 최종적으로 중일 관계 정상화를 실현하였다. 중일 국교 정상화 이후 중일관계에 영향을 주는 장애물은 주로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일본 타이완 노선의 처리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중일 양측이 아직 서명하지 않은 중일 평화우호조약이었다. 중일 국교 회복 이후 일본과 타이완 간 노선은 그대로 유지되어 중일수교 공동 성명의 관련 원칙에 위배되었다. 중일 항공협정 체결이라 는 중국측의 합리적 요청은 일본 우익과 소위 타이완방( 台 湾 帮 ) 의 강력한 방해에 부딪혔 다. 오히라 외무대신은 공격에 직면해 추호도 위축됨 없이 분신쇄골하더라도 중일 항공협 정을 체결하겠다. 고 밝히면서, 1974년 1월 다시 방중하여 중일 항공협정 을 체결하였다. 이후 한 때 난항에 빠진 중일 평화우호조약 협상에 대해, 당시 후쿠다 다케오( 福 田 糾 夫 ) 내각 시절 자민당 간사장으로서 오히라가 다시 적극적인 촉진제 역할을 담당하면서 결국 1978년 8월 베이징에서 중일 평화우호조약 이 체결되었다. 같은 해 12월, 오히라 내각이 탄생하면서 중일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1978년 말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 정책을 취하면서,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의 자금과 기 술 협력을 필요로 하였다. 일본 정부 내부에서 중국에 정부개발원조 제공 여부를 둘러싸고 외교 정책을 담당하는 외무성과 무역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통산성 및 재정 정책을 담당하 36) 倪 志 敏, < 大 平 正 芳 과 아편문제>, 龍 谷 大 學 經 濟 學 論 丛 49권 1호, 2009년9월. 156
타원, 균형, 평화, 협력 - 오히라 마사요시( 大 平 正 芳 )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는 대장성 사이에 이견이 나타났다. 통산성의 태도가 가장 적극적이어서, 당시 야노 도시히 코( 矢 野 俊 比 古 ) 통산성 통상정책국 국장은 현재 중일관계나 일본의 국제환경을 고려한다 면, (중일 무역의 확대로) 에너지원의 안정적 공급 확보뿐 아니라 자원 시장의 다각화도 이룰 수 있다. 면서 심지어 어느 정도 플랜트 수출 시장 확보 37) 도 가능하다고 하였지만 외무성은 구미, 아세안, 소련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구미 국가는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부개발원조 제공에 의혹을 가지고, 일본이 엔화차관 을 이용해 중국의 잠재 시장을 독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1950~60년대 일본은 동 남아에 대한 ODA에 부대 제한 조건을 설정하여, 일본 기업이 대거 그 지역으로 진입하도 록 하였다. 구미 국가 역시 방대한 인구를 가진 중국의 잠재적 시장을 주목하고 있었기에 일본 기업이 엔화차관을 이용해 중국 시장에 대거 진입할까봐 우려하였다. 따라서 구미국 가는 일반적 제한 조건이 없는 차관을 중국에 제공하라고 일본에 요구하여, 중국은 엔화차 관으로 다른 나라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미국은 1979년 10월 17일과 18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원조 정책 계획 회의에서 일본이 비제한 방식을 취하지 않는 다면 미일 사이에 경제 무역 마찰이 가중될 수도 있다. 38) 고 밝혔다. 또한, 일본의 주요 원조 대상인 아세안 국가는 일본이 거액의 대중국 ODA를 제공할 경우 아세안 국가 대상의 기존 ODA 축소를 우려하는 동시에, 일본의 ODA를 활용해 근 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이 동남아 각국의 주요 경쟁 상대가 될지 않을까 근심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대표는 1979년 11월 26일 열린 일본과 아세안 경제 각료회의에서 대 아세안 ODA유지 방침을 강조하였다. 1979년 대중국 엔화차관이 인도네시아에 대한 차관 액과 동일한 500억 엔으로 설정된 데에는, 이러한 요인이 작용하였다. 또한 소련 역시 일본의 대중국 ODA 실시에 강력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1960년대 무렵 중소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중국은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당시 반패권조항 삽입을 요구하였는데, 이는 중일 양측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조약에서 공동으로 소련 패권주 의 에 반대하는 입장을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소련은 이에 강력한 불만을 나타내고, 중국이 일본의 자금과 기술을 활용해 자체 군사력을 강화할까봐 우려하였다. 예를 들어 철도, 항 만, 공항의 건설은 평상시 경제 건설에 이바지할뿐 아니라 전시에 물자와 인력을 수송하는 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이상과 같은 배경 속에서 소노다 다다시( 園 田 直 ) 외무대신은 1978년 10월 열린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일본은 중국이나 소련에 편향하지 않는다. 중국의 군대 현대화에 협조하 37) 矢 野 俊 比 古, <중일 장기 무역협정의 의미와 문제>, 世 界 經 濟 評 論, 1978년 5월호. 38) 日 本 經 濟 新 聞, 1979년 10월 25일. 15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지도 않는다. 대중국 관계의 핵심은 경제가 아니라 문화 교류이다. 면서 대중국 엔화 차권 을 신중히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39) 경제기획청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해온 경제학자 오키타 사부로( 大 來 佐 武 郎 )가 외무성 대신을 맡으면서 외무성의 태도에 변화가 나타났다. 오키타 는 일찍이 1977년 1월 대중국 엔화차관의 필요성을 제안하였고, 1979년 11월 9일 외무대 신 취임 당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경제 발전과 에너지 대책의 관점에서 대중국 엔화차 관 제공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혔다. 40) 그러나 구미 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오키타는 차관에 제한 조항을 달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내부의 의견차뿐 아니라 자민당 내 부에도 이견이 있었다. 물론 자민당 다수 의원은 대중국 엔화차관을 지지하였고 정무조사 회장 고모토 도시오( 河 本 敏 夫 )는 1979년 9월 4일 방일한 구무( 谷 牧 ) 중국 부총리에게 자 민당이 대중국 엔화차관 실현에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41),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위해 신중 한 태도를 주장하는 의원도 적지 않았다. 오히라 총리는 중국 정부에 대한 개발원조 제공에 적극적 태도를 취하여, 일찍이 1979 년 1월 23일 일본 정부가 대규모 중일 경제 협력을 준비하고 있다고 공개하였다. 같은 해 9월, 오히라 총리는 중일 양측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전된다면 연내에 대중국 엔화차관 제 공 초안을 들고 방중할 것이라고 재차 밝혔다. 11월 30일 내각회의는 중국에 정부개발원조 제공을 정식 결의하고, 12월 5일 오히라 총리 방중 당시 정식으로 중국 지도자에게 일본 정부의 관련 결정과 실시 세칙을 통보하였다. 42) 물론, 오히라 마사요시를 총리로 하는 일 본 정부에게 정부개발원조 제공은 에너지 공급 확보, 중일 경제무역 확대, 중국 시장 개척 의 경제적 요인도 가지고 있었지만, 중일 양자간 관계의 전반적 발전, 국제적 영향력 확대, 역사 문제가 양국 관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축소 등의 정치적 요인도 있었다. 일본의 중국 시장 독점에 대한 구미 국가의 우려와 기타 국가 특히 동남아 각국의 일본 으로부터의 원조 감소 가능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하여, 오히라 총리는 방일한 구무 부총리 에게 일본의 대중국 경제 협력의 3대원칙을 따로 전달하였다. 바로 중국 근대화 사업에 대 한 경제 협력과 구미 각국과의 협조, 아세안 각국과의 균형 고려, 군사 협력 제외 등이었 다. 방중 당시 오히라 총리는 다시금 덩샤오핑( 鄧 小 平 ) 등 중국 지도자에게 그 원칙을 천 명하고 이해를 얻었으며, 정협 강당에서 새로운 세기로 나아가는 중일관계 더 깊고 더 넢 은 추구 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상술한 3대 원칙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39) 朝 日 新 聞, 1978년 10월 13일. 40) 人 民 日 報, 1979년 11월 13일. 41) 人 民 日 報, 1979년 9월 7일 42) 林 曉 光, 일본 정부 개발 원조와 중일 관계, 世 界 知 識 出 版 社, 2003년, 217 218p. 158
타원, 균형, 평화, 협력 - 오히라 마사요시( 大 平 正 芳 )의 종합안전보장 전략 1979년부터 1984년까지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의 모든 회원과 국제조직의 대중국 경제 원조 총액 가운데 일본의 대중국 ODA 금액이 45%로 1위를 차지하였다. IMF는 14%로 2위였고, UN 각 기구가 12%로 3위를 차지하였다. 중국은 1979년 일본의 첫번째 엔화차관을 받고 나서 1981~1983년 각각 호주, 캐나다, 독일, 벨기에 등과 양자간 협력 발전 협정이나 의정서를 체결하고 네덜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와 양자간 무상 원조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스웨덴, 폴란드, 룩셈부르크 등과 비정기 발전 협력 관계를 구축하였 다. 이 밖에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도 중국에 각종 방식의 원조를 제공하였다. 이들 국가 의 원조 방식에 비해, 일본의 차관은 개혁개방 이후의 첫 양자간 차관으로 효율이 높고 시 간이 길며 이자가 낮고 액수가 크며 부대 조건이 없다는 등의 특징을 가졌다. 개혁 개방 초기 중국의 자금난 해소에 일조하였으며, 중국의 인프라 시설 건설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상과 같이, 철학을 갖춘 정치가로서 오히라 마사요시는 국내 정치에서 정부와 민간의 균형을 주장했을 뿐 아니라 국제 정치에서도 전방위 외교를 견지하면서, 아태 지역 협력을 기반으로 중국의 근대화 경제 건설을 지원하여 이를 통해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힘있게 추 진하였다. 중요한 것은 국제 정세와 세계 경제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 상황에 서, 오히라의 철학과 그 정책이 갖는 새로운 의미일 것이다. 15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楕 円 平 衡 平 和 協 力 - 大 平 正 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王 新 生 ( 北 京 大 ) 一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二 思 想 的 基 礎 と 客 観 的 背 景 三 対 中 政 府 開 発 援 助 < 目 次 > 表 面 的 に 見 れば 1978 年 から1980 年 にかけて 日 本 政 府 の 首 相 を 務 めた 大 平 正 芳 は 口 下 手 で 朴 訥 答 弁 の 際 いつも うー あー と 時 間 を 取 るような 人 物 であったかもし れない しかし 彼 はまさに 中 国 の 前 総 理 である 周 恩 来 が 大 平 氏 は 誠 実 で 人 を 欺 かず 寡 黙 で 聡 明 さを 内 に 秘 めた 博 学 の 人 である 1) と 評 価 したような 人 物 であった 大 平 正 芳 は 平 衡 を 重 んじる 楕 円 の 哲 学 思 想 を 持 っており アジア 太 平 洋 地 域 が 協 力 しあう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を 推 し 進 めるよう 提 言 し それを 基 礎 として 中 国 に 対 し 政 府 開 発 援 助 を 提 供 し 地 域 の 平 和 と 協 力 に 大 きく 貢 献 した 一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大 平 正 芳 は 日 本 政 府 の 首 相 に 就 任 した 後 首 相 の 私 的 諮 問 機 関 となる9つの 政 策 研 究 会 を 組 織 し 徹 底 的 に 政 策 研 究 を 行 った その 中 には 梅 棹 忠 夫 を 代 表 とする 田 園 都 市 構 想 研 究 グループ 内 田 忠 夫 を 代 表 とする 対 外 経 済 政 策 研 究 グループ 林 知 己 夫 を 代 表 とする 多 元 化 社 会 生 活 の 生 活 関 心 研 究 グループ 大 来 佐 武 郎 を 代 表 とする 環 太 平 洋 連 帯 研 究 グループ 伊 東 善 市 を 代 表 とする 家 庭 基 盤 充 実 研 究 グ 1) 王 俊 彦 : 中 日 関 係 掘 井 人 記 45 位 中 日 友 好 的 先 駆 世 界 知 識 出 版 社 2010 年 第 294 頁 160
楕 円 平 衡 平 和 協 力 - 大 平 正 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ループ 猪 木 正 道 を 代 表 とする 総 合 安 全 保 障 研 究 グループ 山 本 七 平 を 代 表 と する 文 化 の 時 代 研 究 グループ 館 龍 一 郎 を 代 表 とする 文 化 の 時 代 の 経 済 運 営 研 究 グループ 佐 々 学 を 代 表 とする 科 学 技 術 の 史 的 展 開 研 究 グループ 等 9つの シンクタンクを 含 んでいた 2) 大 平 の 対 外 政 策 の 基 本 思 想 は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及 び 環 太 平 洋 協 力 に 集 中 して 表 されている 1970 年 代 以 降 国 際 情 勢 の 大 きな 変 化 に 従 い 特 に 第 一 次 石 油 危 機 が 日 本 経 済 の 安 全 に 対 し 衝 撃 を 与 えたため 日 本 国 内 の 輿 論 は 日 本 経 済 の 状 況 に 注 目 し 始 め 総 合 安 全 保 障 に 関 する 様 々な 構 想 を 打 ち 出 した まさにこのような 背 景 のもと 大 平 正 芳 は 自 ら の 経 験 を 結 びあわせ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を 日 本 の 対 外 政 策 の 基 本 思 想 とみなした のである 大 平 正 芳 自 身 は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について 以 下 のような 説 明 をしたことがある 我 が 国 の 資 源 や 市 場 はほとんど 海 外 に 頼 っており 世 界 で 何 か 紛 争 が 起 こればそれは 全 て 我 々にとって 脅 威 となるのです さらに 深 刻 なのは 現 在 様 々な 武 器 の 開 発 が 飛 躍 的 に 前 進 しており 我 が 国 が 直 接 的 な 攻 撃 に 遭 えば これに 単 独 で 対 向 する 術 はありませ ん つまり 今 の 集 団 安 全 保 障 体 制 も 不 十 分 だということです 我 が 国 は 平 和 的 戦 略 を 基 礎 とした 総 合 安 全 保 障 体 制 を 築 かねば 国 家 の 安 全 は 確 保 できません これは 我 々が 現 在 の 集 団 安 全 保 障 体 制 日 米 安 全 保 障 条 約 及 び 制 限 的 な 高 品 質 の 自 衛 能 力 を 堅 持 し 続 けると 同 時 に これを 補 う 形 で 経 済 教 育 文 化 等 内 政 の 各 方 面 を 充 実 させ 経 済 協 力 及 び 文 化 の 外 交 等 必 要 な 外 交 努 力 を 強 化 し 総 合 的 に 我 が 国 の 安 全 を 保 障 せね ばなりません 3) この 他 大 平 首 相 は1979 年 1 月 の 施 政 方 針 演 説 中 にも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につ いて 詳 細 な 説 明 を 行 った 日 本 の 平 和 と 安 全 を 確 保 するのは 政 治 の 最 大 任 務 であり このために 制 限 的 な 自 衛 能 力 と 日 米 安 全 保 障 条 約 が 構 成 する 安 全 保 障 体 制 を 堅 持 するのは 必 要 なことなので あります しかし 真 の 安 全 保 障 は 防 衛 能 力 にのみ 頼 っているのでは 足 りません 世 界 の 現 実 に 対 する 冷 静 な 認 識 という 基 礎 に 立 脚 し 内 政 が 良 好 な 秩 序 を 保 つ 事 ができる 活 力 を 発 揮 するよう 努 める 一 方 もう 一 方 では 平 和 な 国 際 環 境 を 創 造 するため 積 極 的 な 外 交 努 力 をすることも 当 然 欠 かすことが 出 来 ないのであります 4) 2) 歴 史 学 研 究 会 編 : 日 本 同 時 代 史 5 転 換 期 の 世 界 と 日 本 青 木 書 店 1991 年 1 月 第 144 頁 3) 大 川 公 一 : 転 換 期 の 安 全 保 障 論 国 際 教 養 学 部 起 用 2005 年 第 3 期 より 引 用 16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日 本 の 前 経 済 企 画 庁 長 官 であり 著 名 な 評 論 家 の 堺 屋 太 一 は 戦 後 日 本 のもっとも 重 要 な 国 家 発 展 理 念 の1つが 日 米 軍 事 同 盟 を 基 礎 に 経 済 大 国 であるとともに 軍 事 小 国 となるよう 努 力 するという 外 交 理 念 日 本 の 対 外 政 策 はこの 理 念 に 基 づいて 展 開 し 国 家 建 設 もまたこの 外 交 方 針 に 従 う 5) ことであるとしている このような 国 家 理 念 は 実 のところ 吉 田 茂 が 切 り 開 いた 保 守 主 義 路 線 であり 大 平 正 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に 関 する 論 述 からはその 対 外 政 策 が 基 本 的 に 依 然 として 保 守 主 義 の 枠 組 みに 収 まっていることが 見 て 取 れる しかし 幾 らかの 調 整 が 行 われている この 調 整 は 主 に2つの 方 面 に 集 中 してい る 1つは 大 平 が 積 極 的 に 集 団 安 全 保 障 が 担 う 責 任 と 費 用 を 受 け 持 つ べきである と 提 議 していること すなわち 日 米 同 盟 における 日 本 の 地 位 と 影 響 力 を 向 上 させようとして いることである 大 平 が 首 相 を 務 めた 期 間 に 発 足 した 総 合 安 全 保 障 研 究 グループは1980 年 大 平 正 芳 が 世 を 去 った 後 に 日 本 の 総 合 安 全 保 障 に 関 する 報 告 を 提 出 している その 中 で 一 番 の 要 点 は 1960 年 代 中 期 以 降 のソ 連 の 軍 事 拡 張 に 従 って アメリカは 軍 事 上 経 済 上 の 優 勢 を 失 い その 軍 事 力 は 既 に 同 盟 国 に 十 分 な 安 全 保 障 を 提 供 できなく なった これにより 同 盟 国 は 通 常 軍 事 力 の 方 面 を 強 化 する 必 要 に 迫 られ 同 時 にアメリ カを 助 け アメリカの 核 の 傘 の 信 頼 性 を 保 持 する 必 要 がでてきた この 他 アメリカ 経 済 の 実 力 の 弱 化 に 伴 い 主 にアメリカに 頼 って 国 際 貨 幣 体 制 や 自 由 貿 易 体 制 を 維 持 することが できなくなった 6) つまり アメリカ 勢 力 の 低 下 がもたらした 実 力 の 不 足 を 補 うため 日 本 は 積 極 的 な 姿 勢 をとり アメリカがその 実 力 を 増 強 することを 大 きく 支 持 していく 必 要 が 出 てき たのである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は 吉 田 路 線 を 受 け 継 ぎ 日 米 同 盟 を 堅 持 し 自 主 防 衛 を 否 定 軍 事 は 安 全 保 障 の 主 要 な 手 段 としない 戦 略 思 想 である しかし 多 くの 新 しい 内 容 も 加 え 一 定 の 程 度 上 吉 田 路 線 のもと 日 本 が 国 際 政 治 において 受 動 的 で 消 極 的 な 低 姿 勢 であったことを 改 め 日 本 が 欧 米 国 家 と 連 帯 しているという ことを 強 調 すると 同 時 に 自 助 努 力 を 高 め 日 本 が 西 欧 国 家 と 安 全 責 任 を 分 担 する べきであることを 主 張 している そして 世 界 平 和 とその 経 済 実 力 に 釣 り 合 う 貢 献 を 安 定 して 行 うために 日 本 が 西 側 の 共 同 安 全 の 防 衛 及 び 国 際 事 務 参 与 の 方 面 で 表 す 積 極 的 傾 向 を 体 現 している 7) また 一 方 で 保 守 主 義 路 線 の 調 整 については 日 本 とその 他 各 国 の 非 軍 事 協 力 を 強 化 し 世 界 各 国 と 経 済 文 化 技 術 教 育 等 の 領 域 で 協 力 す 4) 日 本 大 平 正 芳 財 団 編 著 : 大 平 正 芳 中 国 青 年 出 版 社 1991 年 版 第 592 頁 5) 堺 屋 太 一 : 日 本 没 落 の 原 因 中 央 公 論 2008 年 7 月 号 6) 総 合 安 全 保 障 研 究 グループ: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大 蔵 省 印 刷 局 1980 年 第 7 頁 7) 宋 成 有 等 著 : 戦 後 日 本 外 交 史 世 界 知 識 出 版 社 1995 年 版 第 511 頁 162
楕 円 平 衡 平 和 協 力 - 大 平 正 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ることを 積 極 的 に 拡 大 世 界 平 和 のために 貢 献 し これによって 日 本 の 総 合 的 な 意 味 での 安 全 を 保 障 している 例 えば 上 述 の 総 合 安 全 保 障 グループの 報 告 のなかでの 第 2の 要 点 は 南 北 関 係 の 安 定 は 日 本 にとって 非 常 に 重 要 である 総 合 安 全 保 障 実 施 の 一 環 とし て 日 本 は 発 展 途 上 国 の 経 済 発 展 及 び 南 北 秩 序 の 樹 立 の 方 面 で 大 きな 影 響 力 を 発 揮 する 必 要 がある ということである 8) そこで 大 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の 中 で 日 米 関 係 を 基 軸 にした 政 策 は 依 然 日 本 の 安 全 政 策 の 基 礎 であった 大 平 が 強 調 したのは 新 たな 状 況 のもとでの 日 米 関 係 に 補 充 及 び 強 化 を 行 うということである 大 平 がアメリカと 結 成 した 集 団 安 全 保 障 体 制 は 不 十 分 で 積 極 的 な 日 本 の 外 交 を 展 開 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 考 えたのは 彼 がアメリカの 力 が 相 対 的 に 低 下 したという 事 実 をみた 結 果 であった しかしこれは 大 平 が 日 米 関 係 の 重 要 性 を 低 く 見 ていたということを 意 味 しない 却 って 大 平 が 日 米 関 係 をこれまでにないほど 重 視 して いたことを 表 している このため 大 平 は 様 々な 場 面 で 日 米 関 係 は 日 本 の 対 外 政 策 の 基 盤 であると 強 調 し 客 観 的 な 状 況 の 展 開 に 従 い 日 米 関 係 をさらに 緊 密 にさえしたのであ る 初 めて 池 田 勇 人 内 閣 の 外 務 大 臣 を 務 めた 際 早 くも 大 平 正 芳 は 明 確 に 以 下 のように 提 示 した 外 務 大 臣 としてもっとも 重 要 な 仕 事 は 防 衛 当 局 と 協 力 し 忠 実 に 日 米 安 全 保 障 条 約 を 執 行 することである この 方 面 で 最 も 基 本 的 なことは 日 米 間 の 相 互 理 解 と 信 頼 である 私 は 日 米 間 にたとえ 塵 芥 のような 小 さな 不 信 任 の 種 であってもこれが 撒 かれないよ う 細 心 の 注 意 を 払 う 9) その 後 1979 年 5 月 大 平 正 芳 は 首 相 に 就 任 して 初 めてアメリカを 訪 問 し カーター 大 統 領 が 開 いた 歓 迎 会 の 式 典 で 初 めて 公 的 に 同 盟 という 言 葉 を 用 い 日 米 関 係 を 形 容 し 日 本 が 全 面 的 にアメリカを 支 持 する 決 意 を 表 明 した 大 平 はアメリカの 影 響 と 日 米 関 係 について 以 下 のように 表 現 している アジア 太 平 洋 地 域 及 び 全 世 界 の 均 整 に 基 づい て 保 障 し 得 る 平 和 は 依 然 として 強 大 国 であるアメリカに 頼 っている これは 儼 然 たる 事 実 である アメリカの 強 さは 軍 事 力 が 強 大 であるというばかりでなく 強 大 で 活 力 のある 経 済 や 様 々な 行 動 に 出 ることができる 強 靭 な 行 動 力 をも 含 んでいる 全 世 界 はアメリカがこ れらの 力 を 背 景 に 積 極 的 なリーダーとしての 働 きを 発 揮 してくれることを 期 待 している アメリカのこのような 努 力 に 協 力 するため アメリカの 良 き 仲 間 として 我 が 国 も 我 々 の 共 同 の 目 的 のために 貢 献 しなければならない 10) 8) 総 合 安 全 保 障 研 究 グループ: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大 蔵 省 印 刷 局 1980 年 第 8 頁 9) 日 本 大 平 正 芳 財 団 編 著 : 大 平 正 芳 中 国 青 年 出 版 社 1991 年 版 第 237 頁 16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大 平 が 首 相 を 務 めた 期 間 に 国 際 情 勢 に 大 きな 変 化 が 起 こった まずイランがアメリカ 人 を 人 質 に 拘 留 する 事 件 が 起 こり 続 いてソ 連 がアフガンを 侵 犯 する 事 件 が 起 こった イ ラン 問 題 は 日 本 の 石 油 供 給 に アフガン 問 題 は 日 本 と 超 大 国 ソ 連 との 関 係 に 影 響 した そ こでこの2つの 事 件 は 大 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に 対 しての 大 きな 試 練 となった 事 件 処 理 の 過 程 からは 日 本 がそれぞれの 関 係 の 平 衡 を 維 持 しようとしても 最 後 にはやはり かなりはっきりとアメリカ 側 につくということを 見 て 取 ることができ これは 大 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の 前 提 もやはり 日 米 同 盟 であるということを 物 語 っている 1980 年 1 月 25 日 大 平 正 芳 は 施 政 方 針 演 説 を 行 った イランアメリカ 大 使 館 人 質 事 件 とソ 連 のアフガン 侵 犯 が 起 こったことから 演 説 の 三 分 の 一 の 内 容 は 国 際 情 勢 と 関 係 して いた その 中 で 大 平 首 相 ははっきりと 日 本 を 西 側 の 一 員 の 立 場 におき 我 が 国 の 対 外 政 策 の 基 本 は 自 由 主 義 国 家 との 団 結 を 強 化 することであり この 基 礎 の 上 に 全 世 界 各 国 との 友 好 と 協 力 を 拡 大 する 贅 言 するまでもなく 日 米 安 保 体 制 の 基 礎 上 にアメリカ との 揺 ぎ 無 い 相 互 信 頼 関 係 を 築 くことは 我 が 国 の 外 交 基 軸 である 日 米 関 係 を 強 固 にする ため 日 本 政 府 は 怠 ることなく 政 治 経 済 文 化 等 の 領 域 を 通 じて 日 米 協 力 を 推 し 進 める と 同 時 に 西 欧 国 家 を 代 表 とした 自 由 主 義 国 家 との 協 力 関 係 を 強 化 しなければならな い 11) アフガン 問 題 で 大 平 は 以 下 のとおり 明 示 している 政 府 としてこの 一 大 事 を 解 決 に 進 めるため アメリカとの 団 結 を 強 化 することを 中 心 に 同 時 に 欧 州 及 びその 他 各 国 と 協 調 し 我 が 国 と 相 適 応 する 努 力 を 惜 しまない このようにすることが 我 が 国 に 犠 牲 をもた らそうとも これは 避 けることが 出 来 ないことなのだと 私 は 考 える この 他 我 が 国 は 他 の 友 好 国 家 が 執 る 施 策 を 損 なう 可 能 性 のあるいかなる 活 動 にも 或 いはその 効 果 を 弱 めることに も 参 与 するつもりはないことを 表 明 したい 12) まさにこのために アメリカがモスクワオリンピックのボイコットを 呼 びかけた 際 大 平 は 即 座 に オリンピックと 石 油 を 比 べれば 石 油 の 方 が 重 要 である 石 油 とアメリカを 比 べれ ば アメリカの 方 が 重 要 である 13) と 表 明 し 日 本 政 府 の 調 停 の 後 日 本 オリンピック 委 員 会 はアメリカの 呼 びかけに 応 じ モスクワオリンピックをボイコットしたのである 日 本 にしてみれば もっとも 重 要 な 安 全 保 障 はやはり 経 済 の 安 全 であり したがって 10) 川 内 一 誠 : 大 平 政 権 554 日 行 政 問 題 研 究 所 出 版 局 1982 年 版 第 135 頁 11) 川 内 一 誠 : 大 平 政 権 554 日 行 政 問 題 研 究 所 出 版 局 1982 年 第 231-232 頁 12) 日 本 大 平 正 芳 財 団 編 著 大 平 正 芳 中 国 青 年 出 版 社 1991 年 版 第 681 頁 13) 日 本 大 平 正 芳 財 団 編 著 大 平 正 芳 中 国 青 年 出 版 社 1991 年 版 第 704 頁 164
楕 円 平 衡 平 和 協 力 - 大 平 正 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総 合 安 全 保 障 論 を 経 済 安 全 保 障 論 とたいした 差 はないとみなす 者 も 多 くいた 14)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研 究 グループの 報 告 の 中 でも 日 本 の 国 防 費 はGNP 比 に 対 して その 他 西 側 諸 国 に 遥 かに 及 ばず 日 本 は 技 術 経 済 協 力 を 進 めることに 更 に 努 めなければなら ないと 指 摘 している 平 和 憲 法 の 制 限 のため 経 済 協 力 は 日 本 が 国 家 関 係 活 動 で 持 って いる 唯 一 の 積 極 的 な 手 段 であり その 上 経 済 協 力 の 目 的 は 経 済 的 観 点 に 着 目 するだけ でなく 政 治 的 考 慮 を 持 ち 総 合 的 な 判 断 を 行 う 必 要 があ った 15) 経 済 安 全 の 問 題 で エネルギーと 資 源 の 供 給 を 確 保 することは 日 本 経 済 の 死 活 問 題 であった エネルギー 資 源 の 供 給 を 保 障 するために 日 本 にとって もっとも 重 要 なのは 資 源 やエネルギーの 供 給 地 との 平 和 的 友 好 関 係 を 発 展 させることであり 全 世 界 の 平 和 な 環 境 の 発 展 を 保 証 することであった 総 合 安 全 保 障 に 話 が 及 んだ 際 日 本 の 学 者 がよく 強 調 するのは 資 源 のない 日 本 は 世 界 中 から 資 源 を 求 めなければならない これは 以 下 の 意 味 を 含 んでいる 資 源 の 供 給 地 を 分 散 させたほうが 安 全 であるため 世 界 中 でま すます 多 くの 国 家 が 我 々の 資 源 探 求 の 対 象 となるであろう この 状 況 は 自 ずと 日 本 が 世 界 のどの 国 家 とも 平 和 友 好 関 係 を 築 かなければならない 外 交 原 則 を 発 生 させる 16) とい うことである 前 述 した 大 平 の 談 話 も 大 体 同 じ 意 味 を 表 しており 日 本 の 石 油 危 機 以 降 の 親 アラブ 外 交 東 南 アジア アフリカとの 関 係 の 重 視 等 エネルギーや 資 源 供 給 を 確 保 することこそが 最 重 要 課 題 の1つであった 日 本 の 資 源 エネルギーの 供 給 を 保 障 するた め その 海 外 投 資 もこの 方 面 に 傾 いた 1980 年 日 本 の 対 外 直 接 投 資 のうち 先 進 国 は44.4%を 占 め 発 展 途 上 国 は55.5%を 占 めた これは 日 本 の 発 展 途 上 国 への 直 接 投 資 が 先 進 国 への 直 接 投 資 よりも 多 い 傾 向 にあるということを 表 している そして 発 展 途 上 国 への 直 接 投 資 のうち 資 源 開 発 の 投 資 が 大 きな 比 重 を 占 める 上 多 くが 大 規 模 な 項 目 で ある これは7 80 年 代 の 日 本 の 対 外 直 接 投 資 は 経 済 安 全 保 障 サービスの 側 面 を 持 っていたということを 表 している 17) この 他 総 合 安 全 保 障 は 対 外 経 済 援 助 を 明 確 に 国 家 安 全 政 策 の 一 部 分 としている 日 本 政 府 のODA 対 外 開 発 援 助 は1973 年 10 月 の 石 油 危 機 以 降 経 済 安 全 保 障 のニュアンスを 帯 び 始 めた 特 にエネルギー 資 源 の 安 定 供 給 を 確 保 する 問 題 と 関 連 して 対 外 援 助 の 強 化 を 危 機 体 制 に 対 応 する 構 成 部 分 とする 石 油 及 びその 他 重 要 な 資 源 の 安 定 供 給 を 目 的 とした 政 府 の 開 発 援 助 特 に 中 14) 大 川 公 一 : 転 換 期 の 安 全 保 障 論 国 際 教 養 学 部 起 用 2005 年 3 月 15) 総 合 安 全 保 障 研 究 グループ: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大 蔵 省 印 刷 局 1980 年 第 18 頁 16) 松 岡 英 夫 : 乗 り 遅 れ 外 交 のすすめ 中 央 公 論 1980 年 3 月 17) 馮 暁 奎 等 著 : 戦 後 日 本 外 交 中 国 社 会 科 学 出 版 社 1996 年 版 第 466 頁 16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東 中 南 米 及 びアフリカに 対 する 援 助 を 増 加 させる 18) 大 平 の 執 政 期 間 中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の 具 体 化 は 大 平 の 提 議 する 太 平 洋 連 帯 構 想 であり さらに 進 んで 総 合 安 全 保 障 中 の 経 済 安 全 保 障 の 重 要 な 一 面 を 反 映 して いた 総 合 安 全 保 障 の 中 心 部 分 として 大 平 首 相 は 環 太 平 洋 連 帯 構 想 を 打 ち 出 し た 環 太 平 洋 連 帯 計 画 委 員 会 が 提 出 した 中 間 報 告 によれば この 構 想 は 日 本 ア メリカ カナダ オーストラリア ニュージーランド 東 南 アジア 国 家 連 盟 を 含 むゆるい 協 力 関 係 を 築 き アジア 太 平 洋 地 区 の 範 囲 内 において 生 産 発 展 を 調 和 し 資 源 開 発 を 協 力 しておこなうものであった 19) 太 平 洋 連 帯 構 想 を 宣 伝 するため 大 平 首 相 はオー ストリアを 訪 問 した 際 こう 述 べた かつての 大 部 分 の 地 域 的 な 協 力 はすべて 共 通 の 言 語 共 通 の 文 化 共 通 の 伝 統 等 同 一 性 を 紐 帯 とし 相 互 間 の 関 係 を 強 化 したことに 鑑 みれば おそらくこのように 多 くの 様 々な 文 化 と 歴 史 背 景 を 持 ち 経 済 発 展 段 階 も 各 々 異 な る 太 平 洋 各 国 の 間 で 新 たな 連 帯 関 係 に 基 づいた 新 たな 文 明 を 創 造 することができるの だろうかという 人 もいるでしょう 私 はこの 困 難 は 克 服 できると 思 っております なぜならば これは 各 国 文 化 の 特 有 性 と 政 治 の 自 主 性 を 理 解 した 基 礎 に 築 く 地 域 連 帯 であり グロー バル 化 社 会 の 開 放 性 に 一 致 した 地 域 連 帯 だからであります この 意 味 から 言 えば 環 太 平 洋 各 国 の 間 の 連 帯 も 決 して 排 他 的 な 国 家 集 団 を 築 くためではありません その 最 終 目 的 は 太 平 洋 各 国 に 幸 福 をもたらし 全 ての 人 類 社 会 の 幸 福 と 反 映 を 最 大 限 に 促 進 するた めのものなのです 20) しかし 実 際 は 経 済 という 観 点 から 見 ると オーストラリアは 日 本 にとって 並 ならぬ 重 要 性 を 持 っており 同 時 に 日 本 はオーストラリアとの 外 交 を 通 じて 日 本 の 外 交 交 渉 能 力 を 増 強 することを 希 望 していた 日 豪 関 係 は 非 常 に 重 要 であり これは 日 豪 の 経 済 関 係 を 相 互 に 補 充 するためだけでなく 我 が 国 の 対 中 対 ソ 交 渉 能 力 を 高 めるという 方 面 で 現 在 もっとも 重 要 な 国 際 関 係 であると 言 わざるを 得 ない 21) 二 思 想 的 基 礎 と 客 観 的 背 景 思 想 的 基 礎 から 言 うと 大 平 正 芳 が 提 示 した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は 楕 円 の 哲 学 18) 馮 暁 奎 等 著 : 戦 後 日 本 外 交 中 国 社 会 科 学 出 版 社 1996 年 版 第 476 頁 19) 人 民 日 報 1979 年 12 月 12 日 20) 大 平 正 芳 回 想 録 刊 行 会 編 : 大 平 正 芳 伝 吉 林 人 民 出 版 社 1984 年 版 第 584 頁 21) 中 島 嶺 雄 : 防 衛 戦 略 としての 日 本 外 交 中 央 公 論 1979 年 1 月 166
楕 円 平 衡 平 和 協 力 - 大 平 正 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の 基 礎 にある 平 衡 の 思 想 からきている 楕 円 の 哲 学 は 問 題 処 理 の 行 動 指 南 というだけ でなく 政 治 活 動 に 従 事 する 際 の 基 本 的 な 指 導 思 想 である 哲 理 に 富 んだ 信 条 を 持 って いるため 大 平 正 芳 の 多 くの 思 想 は 先 進 的 で その 上 歴 史 発 展 の 客 観 的 法 則 とも 合 致 し ていたのである 大 平 正 芳 がいつ 楕 円 の 哲 学 思 想 を 形 成 したのか 考 証 することは 出 来 ないが 二 十 数 歳 の 時 すでにそれに 類 似 した 観 点 を 提 示 していた 当 時 財 務 幹 部 として 大 平 は このような 講 演 を 行 っている 行 政 は 楕 円 形 のようなもので 2つの 中 心 があり この2つ の 中 心 が 平 衡 であり かつ 対 立 した 状 態 にある 時 この 行 政 こそが 完 璧 な 行 政 であ る 財 務 もこれと 同 じである 1つの 中 心 は 徴 税 権 もう1つの 中 心 は 納 税 者 権 利 によって 強 制 的 に 徴 税 することはできないし また 軽 々しく 納 税 者 に 妥 協 してはいけな い どの 一 方 にも 偏 らない 公 正 な 原 則 を 貫 徹 することこそが 情 理 にかなった 課 税 方 法 で ある 22) これは 大 平 が 最 初 に 楕 円 の 哲 学 に 論 及 した 記 録 であり この 時 すでに 大 平 の 人 生 哲 学 はかなり 明 確 であった 大 平 はどの 事 物 にも2つの 中 心 があり 二 者 が 均 衡 状 態 に ある 時 に 物 事 は 上 手 くいくと 考 えていた そこでもし 事 物 の 発 展 方 向 を 把 握 しようとするの ならば この 点 に 注 意 し 二 者 が 平 衡 を 保 ち 一 方 に 傾 きすぎないように 留 意 すべきであ るとしたのである 大 平 の 政 治 生 涯 の 中 には 彼 が 常 にこの 思 想 を 以 て 政 局 を 把 握 し 政 務 を 処 理 してい たことが 見 て 取 れる また この 思 想 によって 大 平 は 日 本 の 政 局 の 方 向 性 をよく 把 握 し 独 創 的 に 日 本 の 様 々な 問 題 の 本 質 を 把 握 することができた 例 えば 第 一 次 池 田 勇 人 内 閣 の 官 房 長 官 として 大 平 は 楕 円 の 理 論 でその 内 閣 が 順 調 に 運 営 される 条 件 を 説 明 し た 池 田 内 閣 を 安 定 して 運 営 するには 河 野 ( 太 郎 ) 氏 や 佐 藤 ( 栄 作 ) 氏 に2つの 焦 点 となって 楕 円 全 体 の 平 衡 を 維 持 してもらう 必 要 がある 23) 河 野 佐 藤 両 勢 力 が1つの 安 定 したペアを 形 成 してこそ 日 本 の 政 治 は 順 調 に 運 営 することができる 楕 円 形 の2つの 中 心 が 互 いに 助 け 合 い 互 いに 補 完 し 合 うことが 最 も 重 要 なのである 24) 大 平 が 長 年 一 貫 して 主 張 した 小 さな 政 府 論 反 計 画 経 済 論 そして 民 間 活 力 主 導 型 経 済 論 も 楕 円 の 哲 学 からくるものであった 彼 は 政 府 と 民 間 は 国 民 経 済 という 楕 円 の2 つの 中 心 であり この 二 者 の 平 衡 こそが 国 民 経 済 発 展 の 最 良 な 状 態 だと 考 えていた 大 22) 許 暁 光 : 日 本 首 相 大 平 正 芳 四 川 人 民 出 版 社 1997 年 版 第 43 頁 23) 大 平 正 芳 回 想 録 刊 行 会 : 大 平 正 芳 回 想 録 伝 記 篇 鹿 島 出 版 会 1982 年 版 第 206 頁 24) 大 平 正 芳 回 想 録 刊 行 会 : 大 平 正 芳 回 想 録 伝 記 篇 鹿 島 出 版 会 1982 年 版 第 255 頁 16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平 は 政 府 はなるべく 経 済 対 する 関 与 を 減 らすべきであると 主 張 しただけでなく 国 民 生 活 に 対 する 関 与 も 減 らすべきであると 繰 り 返 し 強 調 した 1978 年 秋 彼 はこのように 述 べてい る 政 府 がもし 何 事 につけても 国 民 の 生 活 に 関 与 するならば それは 過 分 な 政 治 関 与 であり すべきではない 逆 に 国 民 もすべてを 政 治 責 任 に 帰 結 し 過 分 に 期 待 する 気 持 ち(この 反 面 は 過 分 な 批 判 である)を 生 じさせるべきではない 25) 政 府 は 国 民 に 対 し 過 分 の 願 望 を 抱 いており 国 民 も 政 府 に 対 し 過 分 の 願 望 を 抱 いている このままでは 国 民 が 政 府 に 対 し 過 分 の 期 待 を 抱 くようになるだけでなく 政 府 の 過 分 な 関 与 を 引 き 起 こし てしまうであろう これは 必 ず 行 政 機 構 の 過 大 膨 張 を 引 き 起 こし 財 政 は 窮 迫 してしまう これについて 政 府 と 国 民 の 双 方 は 注 意 しなければならない 26) 戦 争 期 間 中 の 日 本 政 治 に 対 する 深 い 反 省 から 大 平 は 一 貫 して 政 治 が 国 民 の 精 神 生 活 生 活 や 価 値 観 という 神 聖 な 領 域 に 過 度 に 関 与 することに 反 対 しており これを 自 身 の 政 治 哲 学 としたのである 大 平 正 芳 の 楕 円 の 理 論 は 調 和 という 日 本 が 最 も 尊 重 する1つの 政 治 理 念 を 体 現 し ていた そこで 楕 円 の 理 論 と 互 いに 助 け 合 い 互 いに 補 完 し 合 うものとして 大 平 が 内 政 外 交 中 に 最 も 強 調 した 理 念 は 調 和 であった 大 平 は 明 確 に 指 摘 している 日 本 文 化 は 和 を 重 視 する つまり 自 然 と 人 都 市 と 農 村 精 神 と 物 質 自 由 と 責 任 等 相 対 立 する 事 物 の 間 に 平 衡 を 保 持 し 二 者 間 の 中 間 地 帯 を 尊 重 する 考 え である 27) 同 様 に 大 平 は 外 交 政 策 とその 行 動 の 特 性 にも 協 調 性 を 強 調 した 対 外 政 策 に 関 し て 大 平 は 演 説 中 によく 協 調 性 を 表 す 言 葉 を 使 用 した 例 えば 共 同 体 相 互 依 存 理 解 と 協 力 友 好 関 係 友 好 協 力 国 際 協 力 多 様 性 の 中 の 調 和 協 力 行 動 責 任 と 役 割 の 分 担 安 定 平 和 友 好 緊 張 緩 和 協 力 強 化 相 互 信 頼 多 重 交 流 よい 隣 人 多 方 面 の 協 力 関 係 等 である その 中 で 大 平 は 相 互 依 存 と 国 際 協 力 を 外 交 と 安 全 保 障 政 策 方 面 での 欠 くことの 出 来 ない 基 本 認 識 とした 大 平 は 首 相 に 就 任 した 後 の 処 女 施 政 演 説 で こう 強 調 した 現 在 我 々の 住 む 地 球 は1つの 共 同 体 であり その 相 互 依 存 度 はますます 高 くなり 相 互 影 響 もますます 敏 感 になっております この 地 球 上 でど のような 事 件 や 問 題 が 発 生 しようとも すぐに 地 球 のあらゆる 隅 々に 影 響 する 地 球 全 体 を 25) 東 京 新 聞 1978 年 10 月 28 日 26) 読 売 新 聞 1978 年 10 月 22 日 27) 長 富 祐 一 : 近 代 を 超 えて 下 巻 大 蔵 財 務 協 会 1983 年 321 頁 168
楕 円 平 衡 平 和 協 力 - 大 平 正 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前 提 に 問 題 を 考 慮 しなければ これらの 問 題 に 有 効 に 対 応 することはできないでありましょ う また 対 立 や 抗 争 を 厳 戒 し 相 互 理 解 及 び 相 互 協 力 を 達 成 できなければ 人 類 の 生 存 は 極 めて 困 難 となるでありましょう 28) 大 平 の 楕 円 の 哲 学 思 想 は 静 的 なもののようであり 伝 統 的 な 陰 陽 二 元 論 を 連 想 さ せやすい しかし 事 実 はそうではなく 大 平 は 変 化 に 対 し 特 に 敏 感 で 彼 は 時 間 の 持 つ 不 可 思 議 な 構 造 に 対 して 常 に 畏 敬 の 念 を 持 っていた そのため 楕 円 の 理 論 中 の 平 衡 には 現 実 の 情 況 に 即 して 常 に 調 整 することが 必 要 であった この 意 味 から 言 えば 楕 円 の 哲 学 も 時 間 軸 上 に 生 まれた 理 論 であると 解 釈 できるであろう 1965 年 池 田 内 閣 がまもなく 幕 を 下 ろそうとしている 時 大 平 は 以 下 のように 感 慨 にふけっている 時 間 という ものは 不 可 思 議 な 構 造 を 持 っている 川 の 流 れが 止 むことがないように 静 かに 流 れる 時 も あれば 激 しく 流 れる 時 もある しかし 船 頭 に 言 わせれば 最 も 重 要 なのは 常 に 敬 虔 な 心 で 事 故 を 起 こさないよう 周 到 にきちんとした 対 応 を 心 がけることである なんといって も 多 くの 状 況 下 では 災 いは 得 意 になっている 時 起 こるもので 福 運 は 例 外 なく 微 かで はっきりしないところに 孕 んでいるものである 29) 1971 年 9 月 大 平 正 芳 は 自 民 党 内 派 閥 宏 池 会 会 長 の 身 分 で 日 本 の 新 世 紀 の 開 幕 という 一 文 を 発 表 し 転 換 期 の 日 本 に 自 己 の 見 解 を 述 べた 我 が 国 は 既 に 戦 後 に 対 して 総 決 算 を 行 うべき 転 換 期 を 迎 えている 我 々はかつて 裕 福 な 生 活 を 勝 ち 得 るため に 苦 労 をしたが 裕 福 な 生 活 は 決 して 真 の 幸 福 とイコールではない 我 々はかつて 経 済 発 展 のため 走 り 抜 けてきたが 経 済 が 急 速 に 増 長 したために 我 々は 着 実 な 発 展 を 切 望 するようになった 我 々はかつて 一 切 を 顧 みず 海 外 に 向 けて 経 済 を 発 展 させてきた が このために 他 国 の 嫉 妬 や 反 対 を 買 った 我 々はかつて 基 本 方 針 をアメリカとの 協 調 に 置 き 極 力 国 際 的 な 政 治 活 動 に 参 加 することを 避 けてきたが 米 ドルの 地 位 の 下 落 によっ て 我 々は 自 主 的 な 外 交 という 困 難 な 道 を 歩 まねばならなくなった 我 々はかつて 国 を 上 げ て 経 済 振 興 に 尽 力 したが 経 済 大 国 となったことから 国 際 社 会 の 一 員 として 経 済 の 国 際 化 という 義 務 を 実 行 しないわけにいかなくなった 30) 大 平 が 見 るに 日 本 が 以 前 励 行 していた 経 済 成 長 優 先 主 義 やアメリカ 依 存 協 調 主 義 本 国 中 心 主 義 はまさしく 楕 円 の2つの 焦 点 の 片 方 に 傾 いていた 戦 後 日 本 は 片 方 の 焦 点 を 忘 れ 盲 進 し 既 に 平 衡 を 失 っており 是 正 する 必 要 があった 大 平 はこれを 重 大 28) 大 平 正 芳 回 想 録 刊 行 会 編 : 大 平 正 芳 回 想 録 資 料 編 鹿 島 出 版 会 1982 年 第 285 頁 29) 大 平 正 芳 回 想 録 刊 行 会 : 大 平 正 芳 回 想 録 伝 記 篇 鹿 島 出 版 会 1982 年 第 173 頁 30) 日 本 大 平 正 芳 財 団 編 著 : 大 平 正 芳 中 国 青 年 出 版 社 1991 年 版 第 756 頁 16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な 転 換 と 断 言 し 政 策 に 大 胆 な 修 正 を 行 わなければならない とアピールした その 内 外 交 に 関 して 提 示 した 具 体 政 策 は 対 米 関 係 を 改 善 し 中 国 との 国 交 正 常 化 を 実 現 すること そして 南 方 各 国 の 経 済 文 化 と 協 力 して 自 主 平 和 外 交 の 展 開 を 推 し 進 めることであった 客 観 的 な 背 景 から 見 ると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の 提 示 は 世 界 のエネルギー 問 題 日 本 の 対 外 貿 易 及 び 投 資 の 迅 速 な 成 長 と 密 接 な 関 係 があった 大 平 は 首 相 を 担 うようになって まもなく 東 京 で 行 われた 先 進 国 首 脳 会 議 の 議 長 を 務 め エネルギー 問 題 を 本 会 議 の 主 要 議 題 として 取 り 上 げた 1979 年 1 月 OPEC 石 油 輸 出 国 機 構 が 段 階 的 に 石 油 の 価 格 を 引 き 上 げることを 宣 言 すると 同 時 に 主 要 産 油 国 であるイランで 革 命 が 勃 発 し 石 油 の 輸 出 が 停 止 したため 2ヶ 月 間 に1バーレルあたり14 米 ドルから24 米 ドルへという 石 油 価 格 の 高 騰 が 引 き 起 こされ 第 二 次 石 油 危 機 となった この 他 OPECは6 月 26 日 ジュネーブ 会 議 で 再 び 石 油 標 準 価 格 を23.7%に 引 き 上 げることを 決 議 した これを 受 けて 東 京 サミット2 日 目 では フランスの 大 統 領 ジスカールデスタンが 突 然 先 進 国 は 国 別 に 1985 年 の 石 油 輸 入 の 上 限 についての 具 体 的 目 標 を 定 める という 提 議 を 行 った 日 本 を 除 いた 他 国 はみな 自 国 の 油 田 を 持 っていたが 日 本 は98%の 石 油 を 輸 入 に 頼 っており この 提 議 は 日 本 にとって 大 きな 圧 力 となった 当 時 日 本 は1 日 あたり 石 油 540 万 バーレルを 輸 入 しており 東 京 サミット 前 に 政 府 が 制 定 した 新 経 済 七 ヶ 年 計 画 によれば 1985 年 の 日 あたり 石 油 輸 入 は710 万 バーレルで あり もしフランスの 提 議 を 受 け 入 れるならば 更 に25%の 減 少 を 行 わねばならなかった このため 大 平 首 相 はあくまで 断 固 と 拒 絶 したが その 他 6ヶ 国 がフランスの 提 案 に 賛 成 を 示 した 午 餐 時 の 緊 急 協 議 を 経 て 各 国 は 日 本 の 制 限 幅 に 若 干 の 修 正 を 加 えることに 同 意 し 1985 年 の 石 油 輸 入 量 を630 万 から690 万 バーレルの 間 に 抑 えることとした 最 終 的 に 採 択 された 東 京 宣 言 には 石 油 輸 入 上 限 具 体 目 標 の 他 大 平 首 相 の 提 議 に 基 づい た 途 上 国 に 対 するエネルギー 開 発 援 助 の 提 供 及 び 食 糧 増 産 援 助 増 加 等 の 内 容 があっ た また 一 方 で 日 本 は 石 油 危 機 が 引 き 起 こした 経 済 危 機 の 中 から 素 早 く 立 ち 直 り 比 較 的 高 い 経 済 成 長 率 を 保 つことができた その 重 要 な 原 因 の1つは 輸 出 の 迅 速 な 拡 大 で ある 日 本 経 済 は1974 年 に 戦 後 初 のマイナス 成 長 を 記 録 したが しかし 輸 出 の 実 質 成 長 率 は23.3%であった 輸 出 の70 年 代 前 半 期 における 年 平 均 成 長 率 は24.7% 70 年 代 後 半 期 では18.6% 輸 入 は70 年 代 前 半 期 で24.8% 後 半 期 で20%であり 平 均 して 経 済 成 長 率 を 大 いに 超 えていた 輸 出 額 からみると 1973 年 は369 億 米 ドルであったもの 170
楕 円 平 衡 平 和 協 力 - 大 平 正 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が 1979 年 には1030 億 米 ドルに 上 昇 している 31) 貿 易 収 支 からみると 1970 年 の 貿 易 黒 字 は4.4 億 米 ドル 1971 年 は43 億 米 ドル 1972 年 は51 億 米 ドルであった 1973 年 から1975 年 までは 貿 易 赤 字 に 転 じ 1976 年 の 貿 易 黒 字 は24 億 米 ドル 1977 年 は97 億 米 ドル 1978 年 は 更 に 進 んで182 億 米 ドル 1979 年 と1980 年 は 再 び 赤 字 に 転 じてい る 輸 出 のGNP 国 民 総 生 産 に 対 する 貢 献 度 は 1970 年 で9% 1976 年 には11.6% に 上 昇 している 32) 輸 出 の 迅 速 な 増 加 は 特 に 日 米 間 の 貿 易 摩 擦 を 引 き 起 こすこととなった 1972 年 日 米 間 で 繊 維 協 定 が 調 印 され 日 本 紡 織 品 のアメリカ 輸 出 が 自 主 規 制 されることとなる 1974 年 にはGATT 関 税 および 貿 易 に 関 する 一 般 協 定 が 多 国 間 繊 維 協 定 を 締 結 その 後 日 米 はこれら 基 礎 の 上 に 紡 織 品 の 貿 易 問 題 を 解 決 することとなった 1970 年 アメリカのブラウン 管 は20%に 減 産 し アメリカ 財 務 部 は1971 年 日 本 に 対 しダンピング 税 を 課 し 日 本 は7600 万 米 ドルの 和 解 金 を 支 払 った 1976 年 日 本 のカラーテレビの 対 米 輸 出 は3.5 倍 増 加 し 296 万 台 に 到 達 アメリカ 国 内 需 要 の30%を 占 めた アメリカ 大 統 領 カーターは 日 本 に 市 場 秩 序 維 持 協 定 に 調 印 するよう 迫 り 3 年 の 間 対 米 輸 出 は175 万 台 に 制 限 された その 後 日 本 企 業 は 現 地 で 生 産 を 行 い 1979 年 の 対 米 輸 出 は69 万 台 現 地 生 産 は335 万 台 となった 33) これと 同 時 アメリカは 日 本 に 市 場 開 放 を 要 求 してきた 60 年 代 以 降 日 本 は 原 則 的 に 輸 入 品 目 制 限 を 廃 止 していたが 関 税 を 課 すことで 輸 入 をはっきりと 区 別 しており 国 内 産 業 を 保 護 していた 70 年 代 以 降 日 本 は 工 業 製 品 の 領 域 で 関 税 を 下 げるか 或 いは 廃 止 した 例 えば1978 年 に 自 動 車 の 輸 入 税 は 完 全 に 排 除 された しかし 農 業 の 領 域 で は 競 争 力 は 比 較 的 弱 く アメリカは 日 本 が 国 内 農 業 市 場 を 開 放 することを 望 み 1973 年 の GATT 東 京 ラウンドにおいて 日 本 が 農 産 品 を 輸 入 することを 強 く 要 求 した 1977 年 牛 肉 柑 橘 類 を 巡 った 交 渉 が 始 まり 1978 年 12 月 には5 年 内 に3.08 万 トンの 牛 肉 8.2 万 ト ンの 柑 橘 類 を 輸 入 する 枠 組 協 議 が 成 立 した 東 京 ラウンドは6 年 の 交 渉 を 経 て 合 意 を 得 日 本 の 大 部 分 の 工 業 製 品 は50% 近 い 関 税 の 引 き 下 げが 行 われ 農 産 品 の 関 税 は 依 然 と して 従 来 通 りの 方 式 が 取 られることとなった 工 業 製 品 の 関 税 率 から 言 うと 日 本 は 比 較 的 低 い3% アメリカ4.2% EC ヨーロッパ 共 同 体 4.9% 農 産 品 の 領 域 では 日 本 の 関 31) 歴 史 学 研 究 会 編 : 日 本 同 時 代 史 5 転 換 期 の 世 界 と 日 本 青 木 書 店 1991 年 1 月 第 10 頁 32) 金 子 貞 吉 : 戦 後 日 本 の 総 点 検 学 文 社 1996 年 10 月 第 170 頁 33) 金 子 貞 吉 : 戦 後 日 本 経 済 の 総 点 検 学 文 社 1996 年 10 月 第 172 頁 17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税 率 は8.6% アメリカ2.9% EC12.3%であった 34) 日 本 の 海 外 投 資 も 急 速 に 増 加 した これは 政 策 的 原 因 の 他 に 貿 易 摩 擦 の 減 少 という 背 景 もあった 特 に1972 年 に 投 資 額 制 限 が 取 り 払 われて 以 降 日 本 資 本 の 海 外 直 接 投 資 は 急 速 に 増 加 し 海 外 直 接 投 資 元 年 と 称 された 1971 年 日 本 の 海 外 投 資 は9 億 米 ドルに 満 たなかったが 1972 年 には23 億 米 ドルに 到 達 1973 年 には35 億 米 ドルに まで 増 加 した その 後 石 油 危 機 によって 多 少 減 少 し 1974 年 には24 億 米 ドル 1975 年 は33 億 米 ドルであった 1977 年 12 月 に 外 国 為 替 法 が 修 正 された 後 は 資 本 移 動 の 制 限 も 大 幅 に 緩 和 された 1978 年 対 外 投 資 は48 億 米 ドルとなり 1979 年 には 早 くも90 億 米 ドルに 到 達 1981 年 には89 億 米 ドルとなった この 時 期 の 投 資 は 主 に 製 造 業 及 び 販 売 生 産 の 流 流 通 業 であり 資 源 開 発 投 資 は 次 第 に 減 少 していった 製 造 業 の 中 では 例 えば 鍛 造 業 のようなエネルギーの 消 耗 が 大 きく コストが 高 く 汚 染 しやすい 産 業 は 徐 々に 転 換 していった 三 対 中 政 府 開 発 援 助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の 重 要 な 一 環 として 日 中 友 好 の 維 持 は 日 本 にとって 格 別 の 意 義 を 持 っていた 大 平 は 日 中 友 好 に 尽 力 したが その 基 本 的 な 着 眼 点 は 日 本 の 国 益 に あった しかし 何 が 日 本 の 国 益 か 真 の 国 家 利 益 はどこにあるのか といったことについて は 大 平 は 個 人 の 理 解 を 持 っていた 大 平 は 中 国 との 友 好 関 係 を 発 展 させただけでなく 同 時 に 殆 どすべての 国 家 との 友 好 関 係 をも 発 展 させた 彼 は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とは 日 本 が 平 和 的 環 境 のもとで 得 る 最 大 の 利 益 を 確 保 することであると 提 示 した 多 くの 人 口 を 持 ち 広 大 な 領 土 を 持 つ 隣 国 として 中 国 と 関 係 を 築 くことは 日 本 の 長 期 的 利 益 にとって 有 利 であった また 同 時 に 当 時 の 日 本 からすると その 最 大 の 脅 威 はソ 連 であり 当 時 中 国 はソ 連 と 軍 事 的 に 対 立 していたため 地 政 学 的 構 造 において 中 国 は 日 本 がソ 連 の 脅 威 に 対 峙 した 際 に 力 を 借 りることができる 重 要 な 要 素 の1つであったのだ この 他 中 国 の エネルギー 資 源 の 供 給 は 日 本 にとっても 重 要 な 補 充 であり 日 本 の 経 済 的 安 全 エネ ルギー 源 の 多 元 化 に 対 して 非 常 に 重 要 であった 一 方 大 平 正 芳 は 近 代 日 本 の 侵 略 戦 争 について 冷 静 な 認 識 を 持 っていたため 一 種 の 歴 史 的 負 債 感 を 持 っていた 1978 年 8 月 大 平 は 福 田 政 権 の 幹 事 長 として 田 中 洋 34) 浜 中 秀 一 郎 : 図 説 日 本 の 関 税 財 政 詳 報 社 1992 年 第 61 頁 172
楕 円 平 衡 平 和 協 力 - 大 平 正 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之 助 と 対 談 した 際 明 確 にこう 示 している 私 は 最 近 の 日 本 の 潮 流 はそのようではないと 思 う 加 害 者 の 立 場 と 被 害 者 の 角 度 から 出 発 せず 公 正 に 我 が 国 を 加 害 者 と 見 做 し 中 国 を 被 害 者 と 見 做 すような 日 中 関 係 ではない 加 害 者 として 行 うべき 反 省 もまだ 足 り ないのに 土 下 座 し 謝 るようなことなどありはしない 35) 現 在 のところ 大 平 正 芳 首 相 が 政 府 の 開 発 援 助 を 戦 争 賠 償 の 代 替 物 としていたかどう かについて 証 明 する 資 料 はまだないが 戦 争 時 期 にかつて 興 亜 院 役 員 として 中 国 の 張 家 口 において 職 に 就 き アヘン 生 産 と 販 売 事 務 を 管 理 していたとこととの 関 係 はなきにしもあら ずであろう 1963 年 2 月 12 日 池 田 勇 人 内 閣 の 外 務 大 臣 として 大 平 は 参 議 院 外 務 委 員 会 答 弁 において 日 中 戦 争 中 に 罪 悪 感 が 形 成 されたため 日 中 関 係 を 考 える 際 に 当 然 アメリカの 立 場 と 日 本 の 立 場 は 明 らかに 異 なる と 明 示 している 大 平 派 のメンバー で 自 民 党 幹 事 長 を 務 めた 加 藤 紘 一 もこう 表 している 大 平 氏 は 若 い 頃 興 亜 院 で 仕 事 をしていたことがあり その 経 歴 がその 後 良 好 な 日 中 関 係 を 築 く 基 礎 になっている 36) 大 平 は 長 期 に 渡 る 政 治 生 涯 において 早 くから 日 中 友 好 に 尽 力 していた 池 田 内 閣 で 官 房 長 官 と 外 務 大 臣 を 務 めた 時 期 に 彼 は 積 極 的 に 両 国 間 の 純 公 式 的 な 廖 (L) 高 (T) 備 忘 録 貿 易 の 展 開 を 支 持 しており 日 中 双 方 が 合 意 することを 推 し 進 めていた これに 関 して 大 平 外 務 大 臣 は 台 湾 当 局 に 対 し 多 くの 説 得 作 業 を 行 っていた もし 日 本 が 中 華 人 民 共 和 国 と 西 欧 水 準 に 相 当 する 貿 易 を 行 わないとすれば 日 本 国 民 は 理 解 しが たいであろう 佐 藤 内 閣 が 政 権 をとった 後 日 本 は 2つの 中 国 政 策 を 推 し 進 め 始 め 既 に 存 在 し ていた 人 的 往 来 及 び 貿 易 文 化 等 の 交 流 活 動 を 制 限 するだけでなく アメリカに 追 随 し 百 計 をめぐらして 中 国 が 国 連 におおいて 合 法 的 な 議 席 を 回 復 することを 阻 止 した 大 平 は 厳 しく 佐 藤 の 2つの 中 国 政 策 を 糾 弾 し 中 国 が 国 連 で 合 法 的 な 議 席 を 回 復 たこと そ してニクソンの 頭 越 し 外 交 に 直 面 し 大 平 は 宏 池 会 製 作 委 員 会 において 潮 流 の 改 変 と 題 した 演 説 を 行 い 日 本 政 府 が 日 中 友 好 の 精 神 と 原 則 に 基 づいて 迅 速 に 北 京 との 間 の 政 府 間 接 触 に 着 手 することは 国 際 的 にも 国 内 的 にも 輿 論 に 沿 っている ことを 強 調 した 田 中 角 栄 内 閣 が 成 立 した 後 大 平 正 芳 は 外 務 大 臣 として 田 中 首 相 の 支 持 のもと 自 己 の 主 張 を 実 行 し 始 め 幾 重 にも 重 なる 妨 害 を 突 破 し 最 終 的 に 日 中 関 係 の 正 常 化 を 実 35) 大 平 正 芳 田 中 洋 之 助 : 複 合 力 量 的 時 代 商 務 印 書 館 1980 年 第 32 頁 36) 倪 志 敏 感 : 大 平 正 芳 とアヘン 問 題 龍 谷 大 学 経 済 学 論 叢 第 49 巻 第 1 号 2009 年 9 月 掲 載 17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現 した 日 中 国 交 正 常 化 以 降 日 中 関 係 に 影 響 した 障 害 は 主 に2つあった 1つには 日 台 航 路 の 処 理 に 関 する 問 題 2つには 日 中 双 方 が 日 中 平 和 友 好 条 約 に 調 印 してい ないことであった 日 中 国 交 回 復 後 日 台 航 路 は 平 常 通 り 維 持 され 日 中 が 結 んだ 共 同 声 明 の 関 係 原 則 に 反 していた 中 国 は 日 中 航 空 協 定 を 締 結 するという 合 理 的 要 求 を 主 張 したが 日 本 右 翼 及 び 親 台 派 の 強 烈 な 阻 止 にあった 大 平 外 務 大 臣 は 攻 撃 に 怯 むことなく 粉 骨 砕 身 しても 日 中 航 空 協 定 を 結 ぶ と 表 明 し 1974 年 1 月 に 再 び 訪 中 し 中 国 と 日 中 航 空 協 定 を 結 んだ そのすぐ 後 再 三 足 踏 みをしていた 日 中 平 和 友 好 条 約 の 交 渉 に 挑 み 当 時 の 福 田 赳 夫 内 閣 時 自 民 党 幹 事 長 として 大 平 は 積 極 的 に 力 を 発 揮 し 最 終 的 に 日 中 双 方 は1978 年 8 月 北 京 において 日 中 平 和 友 好 条 約 を 締 結 した 同 年 12 月 大 平 は 組 閣 し 日 中 関 係 は 新 たな 発 展 時 期 を 迎 えた 1978 年 末 中 国 政 府 は 改 革 開 放 政 策 をとり 日 本 を 含 む 先 進 国 の 資 金 的 技 術 的 な 協 力 が 必 要 となった 日 本 政 府 内 部 では 中 国 に 政 府 開 発 援 助 を 提 供 するかどうかを めぐり 外 交 政 策 を 担 う 外 務 省 貿 易 産 業 政 策 を 担 う 通 産 省 そして 財 政 政 策 を 担 う 大 蔵 省 の 間 で 異 なる 意 見 が 存 在 していた 通 産 省 の 態 度 は 比 較 的 積 極 的 であった 当 時 通 産 省 通 商 政 策 局 局 長 であった 矢 野 俊 比 古 は もし 現 在 の 日 中 関 係 や 日 本 の 国 際 的 な 環 境 を 考 慮 すれば ( 日 中 貿 易 の 拡 張 は)エネルギー 資 源 の 供 給 安 全 を 確 保 すること ができるだけでなく エネルギーマーケットの 多 元 化 を 達 成 することも 可 能 である そし て 更 には 一 定 程 度 のプラント 輸 出 マーケットを 確 保 する こともできると 述 べてい る 37) 外 務 省 は 欧 米 ASEAN 東 南 アジア 諸 国 連 合 ソ 連 との 関 係 を 考 慮 し その 態 度 は 比 較 的 消 極 的 であった 欧 米 国 家 は 日 本 が 中 国 に 政 府 開 発 援 助 を 提 供 することに 関 して 懸 念 を 抱 いており 日 本 が 円 借 款 を 利 用 し 中 国 の 潜 在 市 場 を 独 占 する 可 能 性 があると 考 えていた 日 本 は 1950 年 代 から60 年 代 の 期 間 に 東 南 アジアのODAにタイド 条 件 を 設 定 し 日 本 企 業 を 大 量 にその 地 区 へ 進 出 させていた 欧 米 国 家 も 膨 大 な 人 口 を 持 つ 中 国 の 潜 在 市 場 を 重 視 し ていたことから 日 本 企 業 が 円 借 款 を 利 用 し 中 国 市 場 に 大 量 に 進 出 することを 危 惧 して いたのである そこで 欧 米 国 家 は 日 本 がアンタイドローンを 中 国 に 提 供 するよう 要 求 し 中 国 が 円 借 款 を 利 用 し その 他 の 国 の 製 品 を 購 入 できるようにしたのである 例 えば,アメリ カは1979 年 10 月 17 日 18 日 にワシントンにて 開 いた 日 米 援 助 政 策 企 画 会 議 上 で 以 下 の ように 示 している もし 日 本 が 一 般 アンタイド 方 式 をとらなければ 日 米 間 における 経 済 貿 易 摩 擦 の 激 化 を 招 くであろう 38) 37) 矢 野 俊 比 古 : 日 中 長 期 貿 易 協 議 の 意 義 と 問 題 世 界 経 済 評 論 1978 年 5 月 号 174
楕 円 平 衡 平 和 協 力 - 大 平 正 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次 に 日 本 の 主 たる 援 助 対 象 であるASEAN 諸 国 は 日 本 が 突 然 中 国 に 対 し 巨 額 の ODA 提 供 することで 本 来 ASEANに 提 供 するべきODAが 減 少 することを 恐 れた また 中 国 が 日 本 のODAを 利 用 して 現 代 化 に 加 速 をかけ 東 南 アジア 諸 国 市 場 の 有 力 な 競 争 相 手 となることを 恐 れた これに 対 し 日 本 政 府 代 表 は1979 年 11 月 26 日 に 行 った ASEAN 経 済 閣 僚 との 会 議 において ASEAN 諸 国 へのODAを 重 視 し 続 ける 方 針 を 協 調 した 1979 年 度 の 中 国 に 対 する 円 借 款 は500 億 日 本 円 に 設 定 され インドネシアの 借 款 額 と 同 じであったが これはまさしくこの 要 因 に 基 づくものであった この 他 ソ 連 も 日 本 が 対 中 ODAを 実 施 することについて 強 い 懸 念 を 示 した 中 ソ 関 係 は1960 年 代 頃 から 悪 化 し 始 め 中 国 は 日 中 平 和 友 好 条 約 中 に 反 覇 権 条 項 を 書 き 入 れることで 日 中 双 方 が 法 律 的 結 束 力 をもつ 国 際 条 約 において 共 にソ 連 の 覇 権 主 義 に 反 対 する 立 場 を 認 めることを 提 示 した ソ 連 はこれに 対 し 強 い 不 満 を 示 し 例 えば 鉄 道 港 湾 空 港 の 建 設 が 平 時 の 経 済 建 設 に 有 利 になるだけでなく 戦 時 においても 人 員 や 物 資 の 輸 送 機 能 を 発 揮 するなど 中 国 が 日 本 の 資 金 や 技 術 を 利 用 し 自 らの 軍 事 力 を 高 めることを 危 惧 した まさしく 上 述 の 背 景 のもと 園 田 直 外 務 大 臣 は1978 年 10 年 に 開 かれた 衆 議 院 外 務 委 員 会 で 日 本 は 中 国 にもソ 連 にも 偏 向 しない 中 国 の 軍 事 の 現 代 化 に 協 力 もしない 対 中 関 係 の 重 点 は 経 済 ではなく 文 化 交 流 である と 述 べ 対 中 円 借 款 を 慎 重 に 考 慮 する ことを 示 した 39) 長 期 にわたり 経 済 企 画 庁 の 仕 事 を 担 った 経 済 学 者 大 来 佐 武 郎 が 外 務 省 大 臣 を 務 めてからは 外 務 省 の 態 度 に 変 化 が 起 こった 大 来 は1977 年 1 月 に 早 くも 対 中 円 借 款 の 必 要 性 を 説 いており 1979 年 11 月 9 日 外 務 大 臣 に 就 任 した 当 日 の 記 者 会 見 で 日 本 の 経 済 発 展 及 びエネルギー 対 策 の 角 度 からみれば 対 中 円 借 款 を 提 供 すべき であると 明 確 に 述 べた 40) しかし 欧 米 国 家 との 関 係 を 考 慮 し 大 来 は 借 款 にはタイド 条 件 を 付 さないとした 日 本 政 府 内 部 の 意 見 の 差 異 だけでなく 自 民 党 内 部 にも 統 一 した 意 見 がなかった 自 民 党 の 多 数 の 議 員 は 対 中 円 借 款 を 支 持 しており 政 務 調 査 会 長 河 本 敏 夫 は1979 年 9 月 4 日 訪 日 した 中 国 副 総 理 谷 牧 に 対 し 自 民 党 が 対 中 円 借 款 の 実 現 に 向 け 尽 力 していることを 表 明 したが 国 際 社 会 との 協 調 を 保 持 するため 慎 重 な 態 度 をとるよう 主 張 する 議 員 も 多 くいた 大 平 首 相 は 中 国 政 府 への 政 府 開 発 援 助 に 対 し 積 極 的 な 態 度 を 持 っており 1979 年 38) 日 本 経 済 新 聞 1979 年 10 月 25 日 39) 朝 日 新 聞 1978 年 10 月 13 日 40) 人 民 日 報 1979 年 11 月 13 日 17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1 月 23 日 に 早 くも 日 本 政 府 が 大 規 模 に 日 中 経 済 協 力 を 推 し 進 めようと 準 備 していることを 表 明 した 同 年 9 月 大 平 首 相 は 再 び もし 日 中 双 方 の 交 渉 が 順 調 に 進 めば 年 内 にも 中 国 に 対 して 円 借 款 を 提 供 する 草 案 を 携 え 訪 中 を 実 現 させると 示 した 11 月 30 日 内 閣 会 議 は 正 式 に 中 国 に 政 府 開 発 援 助 を 提 供 することを 決 定 12 月 5 日 大 平 首 相 が 訪 中 し た 際 正 式 に 中 国 の 指 導 者 に 日 本 政 府 の 決 定 と 実 施 に 関 する 細 則 を 通 達 した 41) 当 然 のことながら 大 平 正 芳 を 首 相 とする 日 本 政 府 は 政 府 開 発 援 助 を 提 供 することについて エネルギー 源 供 給 を 確 保 し 日 中 経 済 貿 易 の 発 展 を 推 進 し 中 国 市 場 を 開 拓 するとい う 経 済 的 な 要 素 を 持 っていただけでなく 日 中 双 方 の 関 係 を 全 面 的 に 発 展 させ 国 際 的 な 影 響 を 拡 大 し 歴 史 問 題 が 両 国 関 係 にマイナスに 影 響 することを 軽 減 させるという 政 治 的 要 素 をも 持 っていた 欧 米 諸 国 や 日 本 が 中 国 市 場 を 占 有 するという 懸 念 そして 日 本 からの 援 助 が 減 少 する 可 能 性 に 対 するその 他 アジア 諸 国 特 に 東 南 アジア 諸 国 の 危 惧 を 解 消 するため 大 平 首 相 は 訪 日 した 谷 牧 副 総 理 に 特 に 日 本 対 中 経 済 協 力 の 三 原 則 を 伝 えた すなわち 中 国 の 現 代 化 事 業 に 対 する 経 済 協 力 を 欧 米 諸 国 と 協 調 し 行 うこと ASEAN 諸 国 との 平 衡 に 配 慮 すること 軍 事 協 力 を 行 わないこと 等 である 訪 中 の 際 大 平 首 相 は 再 度 鄧 小 平 ら 中 国 の 指 導 者 にこの 原 則 を 重 ねて 確 認 し 理 解 を 得 た 全 国 政 協 礼 堂 にて 新 世 紀 をめ ざす 日 中 関 係 深 さと 広 がりを 求 めて と 題 した 演 説 を 行 う 中 で 大 平 首 相 は 上 述 の 三 原 則 について 詳 細 に 説 明 した 1979 年 から1984 年 にいたる 期 間 中 OECD 経 済 協 力 開 発 機 構 の 内 部 委 員 会 であ るDAC 開 発 援 助 委 員 会 の 総 員 及 び 国 際 組 織 の 対 中 経 済 援 助 総 額 中 日 本 の 対 中 ODA 額 は45%を 占 め 第 1 位 であった IMF 国 際 通 貨 基 金 は14%で 第 2 位 国 連 各 機 関 は12%で 第 3 位 であった 中 国 は1979 年 日 本 の 第 一 次 円 借 款 を 受 け 入 れた 後 1981 年 から1983 年 の 間 に 前 後 してオーストラリア カナダ ドイツ 及 びベルギー 等 の 国 と 二 国 間 発 展 協 力 総 協 定 や 協 定 書 に 調 印 し オランダ ノルウェー ニュージーランドとの 間 に 無 償 援 助 の 二 国 間 枠 組 協 定 にサインした また スウェーデン フィンランド ルクセ ンブルク 等 との 間 には 不 定 期 の 発 展 協 力 関 係 を 結 んだ この 他 イギリス フランス 及 び スペイン 等 の 国 も 中 国 に 対 し 各 種 援 助 を 提 供 した これらの 国 々の 援 助 方 法 と 比 べ 日 本 の 借 款 は 改 革 開 放 後 受 けた 最 初 の 二 国 間 借 款 であり 高 い 効 率 長 期 的 低 い 利 率 多 額 付 加 条 件 がない 等 の 特 徴 を 持 っていた これは 改 革 開 放 初 期 中 国 の 資 金 不 足 を 補 うのを 助 け 中 国 の 基 礎 的 施 設 建 設 に 重 要 な 貢 献 を 果 たした 41) 林 暁 光 : 日 本 政 府 開 発 援 助 與 中 日 関 係 世 界 知 識 出 版 社 2003 年 第 217-218 頁 176
楕 円 平 衡 平 和 協 力 - 大 平 正 芳 の 総 合 安 全 保 障 戦 略 上 述 したように 哲 学 思 想 を 持 った 政 治 家 として 大 平 正 芳 は 国 内 政 治 において 政 府 と 民 間 の 平 衡 を 主 張 しただけでなく 国 際 政 治 においても 多 面 的 外 交 を 堅 持 し アジア 太 平 洋 地 域 協 力 の 基 礎 のもと 中 国 の 現 代 的 経 済 事 業 建 設 を 支 持 し そこから 力 強 く 地 域 の 平 和 と 発 展 を 推 進 したのであった 重 要 なのは 国 際 構 造 と 世 界 経 済 に 大 きな 変 化 が 起 こっている 今 日 において 大 平 の 思 想 やその 政 策 は 依 然 大 きな 啓 示 の 意 味 を 持 っていると いうことである 177
中 国 人 眼 中 的 日 本 和 平 运 动 - 以 人 民 日 报 的 报 道 为 中 心 徐 志 民 ( 中 国 社 会 科 学 院 近 代 史 研 究 所 )
中 国 人 眼 中 的 日 本 和 平 运 动 - 以 人 民 日 报 的 报 道 为 中 心 - 中 国 人 眼 中 的 日 本 和 平 运 动 - 以 人 民 日 报 的 报 道 为 中 心 - 徐 志 民 ( 中 国 社 会 科 学 院 近 代 史 研 究 所 ) 一 积 极 声 援 二 实 际 支 援 三 批 判 支 持 与 冷 漠 四 关 注 和 研 究 < 目 次 > 中 国 与 日 本 是 一 衣 带 水 的 近 邻, 既 有 深 厚 的 历 史 文 化 联 系, 也 有 长 期 友 好 的 各 方 面 交 往 ; 中 国 虽 在 近 代 屡 遭 日 本 侵 略, 但 在 今 天 两 国 又 必 须 和 平 相 处 因 此, 中 国 人 对 战 后 日 本 人 的 和 平 运 动 自 然 有 一 种 特 殊 的 感 情 根 据 中 共 中 央 机 关 报 人 民 日 报 对 日 本 和 平 运 动 的 相 关 报 道, 可 知 : 中 国 人 对 战 后 日 本 的 和 平 运 动 经 历 了 从 积 极 声 援 到 实 际 支 援, 经 批 判 支 持 和 漠 视, 再 到 重 新 关 注 和 研 究 的 发 展 变 化 过 程 中 国 人 关 注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内 容 程 度 及 态 度, 一 定 程 度 上 反 映 了 国 际 格 局 的 演 变 和 中 日 关 系 的 调 整 与 变 化, 也 反 映 了 中 国 人 为 维 护 稳 定 友 好 的 中 日 关 系 和 保 卫 世 界 和 平 而 渴 望 与 日 本 人 一 起 努 力 的 美 好 愿 望 一 积 极 声 援 中 华 人 民 共 和 国 成 立 后, 执 行 对 苏 一 边 倒 的 外 交 政 策, 加 入 了 以 苏 联 为 首 的 社 会 主 义 阵 营 而 随 着 国 民 党 政 府 败 退 台 湾, 失 去 中 国 大 陆 的 美 国 在 主 导 战 后 日 本 改 革 中 逐 渐 放 松 了 严 惩 战 犯 的 政 策, 特 别 是 朝 鲜 战 争 爆 发 后 反 而 要 求 日 本 重 整 军 备, 欲 将 其 建 成 远 东 的 战 略 桥 头 堡 和 反 共 防 波 堤, 从 而 导 致 中 日 关 系 长 期 处 于 极 其 不 正 常 状 态 因 此, 在 国 际 上 冷 战 和 朝 鲜 半 岛 热 战 的 情 况 下, 中 日 之 间 的 友 好 交 流 和 人 员 往 来 相 当 困 难 中 国 人 民 大 多 只 能 积 极 声 援 日 本 人 民 反 对 美 国 侵 朝 战 争 反 对 片 面 媾 和 运 动 反 18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对 重 新 武 装 日 本, 促 进 中 日 贸 易 运 动 以 及 其 他 各 种 和 平 集 会 及 签 名 运 动, 鼓 励 他 们 为 了 民 族 独 立 和 平 民 主 而 斗 争 为 声 援 日 本 人 民 反 对 美 国 侵 朝 战 争, 人 民 日 报 和 世 界 知 识 作 为 当 时 主 要 反 映 中 国 中 央 政 府 和 外 交 部 意 向 的 两 大 报 刊 杂 志, 积 极 地 向 国 内 报 道 日 本 和 平 保 卫 者 的 斗 争 情 况, 谴 责 日 本 政 府 助 纣 为 虐 和 镇 压 日 本 国 内 的 反 战 和 平 运 动 1950 年 7 月 7 日, 在 七 七 事 变 爆 发 13 周 年 和 朝 鲜 战 争 爆 发 不 到 两 周 的 特 殊 日 子 里, 人 民 日 报 报 道 了 日 本 和 平 保 卫 者 们 散 发 或 张 贴 大 批 反 战 传 单 和 标 语, 抗 议 美 国 侵 略 朝 鲜, 以 及 神 奈 川 县 工 人 再 度 拒 绝 装 运 侵 朝 美 军 军 用 物 资 情 况 1) 1950 年 8 月 19 日, 日 本 政 府 发 表 朝 鲜 战 争 与 日 本 立 场 白 皮 书, 指 责 朝 鲜 侵 略 韩 国, 支 持 美 国 武 力 征 服 朝 鲜, 威 胁 恫 吓 日 本 民 众 停 止 反 战 活 动, 竭 力 宣 扬 单 独 媾 和 政 策 对 此, 李 纯 青 在 吉 田 能 给 美 帝 多 少 帮 助 从 走 狗 白 皮 书 谈 起 一 文 中, 批 判 吉 田 政 府 镇 压 日 本 国 内 和 平 民 主 运 动 和 配 合 美 国 侵 朝 战 争 政 策, 警 告 其 将 负 再 起 侵 略 和 破 坏 远 东 和 平 之 责 2), 声 援 日 本 人 民 的 反 战 反 美 斗 争 1952 年 8 月 21 日 和 1953 年 7 月 25 日, 人 民 日 报 两 次 报 道 了 日 本 和 平 运 动 中 反 对 美 国 将 日 本 警 察 后 备 队 调 往 朝 鲜 前 线, 呼 吁 立 即 停 止 朝 鲜 战 争, 用 协 商 办 法 解 决 国 际 纠 纷 的 活 动, 赞 赏 日 本 人 民 保 卫 和 平 的 斗 争 精 神 其 实, 日 本 与 所 有 盟 国 间 签 订 全 面 和 约 不 仅 是 中 苏 等 社 会 主 义 阵 营 各 国 的 愿 望 和 要 求, 也 是 日 本 人 维 护 来 之 不 易 的 和 平 成 果 的 重 要 保 障 丁 未 在 苏 联 对 日 本 的 正 义 主 张 一 文 中, 强 调 中 国 人 民 坚 决 拥 护 苏 联 要 求 日 本 遵 守 波 茨 坦 公 告 的 原 则, 从 而 使 日 本 成 为 一 个 民 主 化 非 军 事 化 国 家 的 正 义 主 张 3), 反 对 违 背 国 际 协 议 的 片 面 媾 和 行 径, 同 情 并 支 持 日 本 人 民 选 择 和 平 民 主 道 路 但 在 美 国 政 府 和 吉 田 政 府 执 意 片 面 媾 和 的 背 景 下, 日 本 和 平 人 士 被 迫 发 起 了 反 对 抛 开 中 苏 等 国 的 片 面 媾 和 运 动 1951 年 6 月 7 日, 人 民 日 报 报 道 了 日 本 一 些 知 名 人 士 纷 纷 表 示 拥 护 苏 联 要 求 签 订 对 日 全 面 和 约 的 提 案, 指 出 只 有 如 此 才 能 保 卫 日 本 的 独 立 与 和 平 接 着, 新 华 社 记 者 根 据 出 席 世 界 和 平 理 事 会 的 日 本 代 表 富 泽 宏 的 报 告, 向 国 内 介 绍 了 由 日 本 进 步 工 人 农 民 科 学 家 文 化 人 等 团 体 组 织 的 全 面 媾 和 爱 国 运 动 协 议 会 于 1951 年 1 月 正 式 成 立 同 年 9 月 1 日, 该 协 议 会 在 东 京 组 织 了 4 万 人 的 人 民 抗 议 大 会, 向 旧 金 山 会 议 递 送 请 愿 书, 并 声 明 吉 田 茂 不 能 代 表 全 体 日 本 人 的 意 志, 他 所 签 字 的 任 何 条 约 都 是 无 效 的 4) 虽 然 该 运 动 未 能 阻 止 美 日 政 府 的 1) 日 本 和 平 运 动 在 成 长 工 人 拒 绝 装 载 美 军 侵 朝 的 军 火 美 日 反 动 派 加 紧 迫 害 进 步 舆 论, 人 民 日 报 1950 年 7 月 7 日 第 4 版 2) 李 纯 青 : 吉 田 能 给 美 帝 多 少 帮 助 从 走 狗 白 皮 书 谈 起, 世 界 知 识 1950 年 第 9 期, 第 8-10 页 3) 丁 未 : 苏 联 对 日 本 的 正 义 主 张, 世 界 知 识 1950 年 第 10 期, 第 15-17 页 4) 日 本 民 族 坚 决 要 粉 碎 卖 国 性 的 和 约 日 本 代 表 富 泽 宏 在 世 界 和 平 理 事 会 三 日 会 议 上 的 发 言, 人 民 日 报 1951 年 11 月 10 日 第 4 版 182
中 国 人 眼 中 的 日 本 和 平 运 动 - 以 人 民 日 报 的 报 道 为 中 心 - 片 面 媾 和 活 动, 但 这 些 报 道 反 映 了 中 国 人 高 度 关 注 日 本 民 众 反 对 片 面 媾 和 运 动 的 进 展 情 况 和 对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声 援 钦 佩 与 期 待 反 对 美 国 重 新 武 装 日 本 和 要 求 禁 止 原 子 弹 武 器, 既 是 日 本 和 平 运 动 的 重 要 内 容, 也 是 中 国 人 期 待 日 本 走 向 和 平 道 路 的 重 要 途 径, 因 此 人 民 日 报 中 关 于 这 方 面 的 内 容 也 不 少 1951 年 3 月 3 日, 人 民 日 报 报 道 了 日 本 和 平 常 设 委 员 会 于 2 月 21 日 开 会 通 过 了 关 于 各 民 主 党 派 和 进 步 团 体 采 取 联 合 行 动, 反 对 重 新 武 装 和 要 求 禁 止 原 子 弹 的 决 议 3 月 6 日, 又 以 日 本 人 民 要 粉 碎 美 国 重 新 武 装 日 本 的 计 划 在 世 界 和 平 理 事 会 上 日 本 代 表 河 村 一 夫 的 演 说 摘 要 为 题, 介 绍 了 日 本 国 内 各 界 反 对 美 国 重 新 武 装 日 本 的 斗 争 情 况 1952 年 9 月 7 日, 夏 晓 发 表 了 题 为 日 本 民 族 解 放 斗 争 与 争 取 和 平 反 对 战 争 的 运 动 是 分 不 开 的 一 文, 介 绍 了 当 年 2 月 28 日 日 本 青 年 在 东 京 举 行 全 国 青 年 反 对 征 兵 总 奋 起 大 会 及 其 游 行 示 威 活 动, 翌 日 东 京 再 次 举 行 全 国 青 年 反 对 征 兵 会 议, 高 度 评 价 了 日 本 民 众 反 对 征 兵 运 动 的 热 情 和 斗 争 精 神 人 民 日 报 还 报 道 了 1953 年 12 月 的 日 本 人 民 和 平 大 会 呼 吁 反 对 重 新 武 装, 要 求 禁 止 原 子 弹 氢 弹 等 大 规 模 屠 杀 武 器 ; 以 及 1954 年 日 本 和 平 运 动 的 方 针 就 是 反 对 日 本 重 整 军 备 等 5) 这 些 报 道 不 仅 反 映 了 中 国 人 对 日 本 人 民 反 对 重 新 武 装 和 要 求 禁 止 原 子 弹 氢 弹 武 器 的 重 视, 更 是 对 其 正 义 斗 争 的 有 力 声 援 争 取 与 中 国 建 立 友 好 关 系 及 开 展 平 等 互 惠 的 贸 易 往 来, 是 20 世 纪 50 年 代 初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另 一 项 重 要 内 容, 自 然 也 受 到 中 国 人 民 的 高 度 关 注 尽 管 从 1950 年 8 月 中 日 民 间 贸 易 就 已 经 开 始 了, 但 因 受 日 本 政 府 的 阻 挠 和 其 加 入 巴 统 的 限 制, 不 仅 进 展 缓 慢 而 且 往 往 无 法 按 协 议 进 行, 严 重 阻 碍 了 中 日 贸 易 关 系 的 发 展 日 本 人 民 尤 其 是 经 济 界 人 士 发 起 了 恢 复 中 日 关 系 和 促 进 中 日 贸 易 的 活 动 1952 年 7 月 15 日, 许 予 民 向 国 内 介 绍 了 日 中 贸 易 促 进 会 和 日 中 友 好 协 会 为 促 进 中 日 贸 易 而 进 行 的 签 名 运 动 6) 同 年 9 月 27 日 的 人 民 日 报 刊 载 了 日 本 和 平 运 动 领 导 人 平 野 义 太 郎 的 日 本 人 民 为 和 平 而 奋 斗, 指 出 日 本 的 左 派 社 会 党 改 进 党 工 商 界 中 小 企 业 工 人 农 民 们 都 渴 望 着 实 现 中 日 贸 易 协 定 亚 洲 及 太 平 洋 区 域 和 平 联 络 委 员 会 副 主 席 松 本 治 一 郎 说 : 在 日 本, 促 进 中 日 贸 易 的 运 动 可 以 说 已 成 为 和 平 运 动 的 实 际 内 容 了 7) 中 国 人 对 此 给 予 了 充 分 肯 定 杨 湛 林 专 门 发 表 了 日 本 的 反 禁 运 运 动, 介 绍 日 本 人 民 为 打 破 对 华 贸 易 禁 运 而 开 展 的 斗 争 情 况 8) 促 进 中 日 贸 易 运 动 可 以 说 是 中 日 经 济 互 补 发 展 的 客 观 需 要, 因 此, 既 是 日 本 和 平 运 动 的 重 要 5) 记 日 本 人 民 和 平 大 会, 人 民 日 报 1954 年 1 月 6 日 第 4 版 ; 日 本 拥 护 和 平 委 员 会 常 委 会 举 行 会 议 确 定 现 阶 段 日 本 和 平 运 动 的 中 心 任 务 是 反 对 重 整 军 备, 人 民 日 报 1954 年 1 月 31 日 第 4 版 6) 许 予 民 : 为 自 由 独 立 与 和 平 而 斗 争 的 日 本 人 民, 人 民 日 报 1952 年 7 月 15 日 第 4 版 7) 松 本 治 一 郎 : 最 近 日 本 的 和 平 运 动, 人 民 日 报 1953 年 3 月 21 日 第 4 版 8) 杨 湛 林 : 日 本 的 反 禁 运 运 动, 世 界 知 识 1953 年 第 12 期, 第 14-15 页 18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内 容, 也 是 中 国 人 外 交 努 力 的 目 标 之 一 人 民 日 报 积 极 地 向 国 内 介 绍 日 本 拥 护 和 平 委 员 会 组 织 领 导 的 各 类 和 平 运 动, 呼 吁 日 本 和 平 人 士 打 破 吉 田 政 府 的 封 锁, 参 加 在 北 京 举 行 的 亚 洲 及 太 平 洋 区 域 和 平 会 议 1948 年 8 月, 日 本 各 界 人 士 发 起 组 织 了 民 主 主 义 拥 护 同 盟 筹 备 会 1949 年 4 月, 该 筹 备 会 重 组 为 全 国 性 的 和 平 保 卫 会, 后 逐 渐 发 展 成 日 本 拥 护 和 平 委 员 会, 担 负 着 领 导 日 本 和 平 运 动 的 重 任 宋 庆 龄 郭 沫 若 等 人 发 起 召 开 亚 洲 及 太 平 洋 区 域 和 平 会 议 时, 积 极 邀 请 日 本 和 平 人 士 参 加, 虽 得 到 了 平 野 义 太 郎 柳 田 谦 十 郎 等 人 的 积 极 响 应, 终 因 吉 田 政 府 的 阻 挠 未 能 成 行 9) 同 年 10 月 30 日, 中 国 政 府 借 印 度 和 平 代 表 团 团 长 克 其 鲁 的 话, 批 评 日 本 政 府 逮 捕 参 加 亚 洲 及 太 平 洋 区 域 和 平 会 议 的 日 本 代 表 和 监 视 并 拒 不 发 给 参 加 世 界 人 民 和 平 大 会 的 日 本 代 表 护 照 等 无 赖 行 径, 声 援 日 本 人 民 的 和 平 民 主 运 动 人 民 日 报 还 赞 扬 了 日 本 共 产 党 在 保 卫 和 平 与 日 本 独 立 的 斗 争 中 所 起 的 领 导 作 用, 祝 贺 日 本 和 平 运 动 领 导 人 大 山 郁 夫 获 得 斯 大 林 国 际 和 平 奖 金 此 外, 世 界 知 识 曾 专 文 介 绍 了 日 本 进 步 电 影 事 业 的 发 展 概 况 和 东 京 大 阪 千 叶 三 重 县 札 幌 市 等 地 的 警 察 支 持 和 平 运 动 签 名 的 情 况 10), 反 映 了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广 泛 影 响 1952 年 世 界 知 识 第 18 期 上 发 表 社 评, 赞 扬 日 本 人 民 争 取 独 立 的 斗 争, 对 世 界 保 卫 和 平 运 动 将 有 着 极 重 大 的 贡 献, 坚 信 日 本 人 民 一 定 能 够 粉 碎 美 帝 国 主 义 所 加 给 他 们 的 枷 锁 而 取 得 最 后 的 胜 利 鼓 舞 日 本 人 民 的 反 战 和 平 斗 志 20 世 纪 50 年 代 初, 中 国 人 关 注 日 本 和 平 运 动 主 要 有 以 下 几 个 特 点 1. 因 美 国 和 日 本 政 府 的 干 扰, 中 日 人 员 交 流 非 常 有 限, 中 国 人 支 持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形 式 多 为 声 援 2. 介 绍 日 本 和 平 运 动 情 况 以 人 民 日 报 和 世 界 知 识 为 主, 其 他 的 仅 见 1954 年 郑 森 禹 出 版 的 日 本 和 平 运 动 一 书 11), 这 是 目 前 所 见 中 国 国 内 最 早 的 专 门 介 绍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小 册 子 3. 关 注 的 重 点 是 日 本 和 平 运 动 中 与 中 国 相 关 的 内 容 如, 日 本 人 民 反 对 朝 鲜 战 争 促 进 中 日 正 常 贸 易 运 动 要 求 签 订 全 面 和 约 等 这 既 是 冷 战 格 局 下 严 峻 的 国 际 局 势 的 客 观 反 映, 也 是 中 国 争 取 世 界 舆 论 支 持 和 声 援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宣 传 内 容 二 实 际 支 援 1954 年 3 月, 美 国 在 太 平 洋 的 比 基 尼 环 礁 珊 瑚 岛 试 验 氢 弹, 烧 焦 的 灰 尘 飘 落 到 日 本 渔 船 9) 许 予 民 : 为 自 由 独 立 与 和 平 而 斗 争 的 日 本 人 民, 人 民 日 报 1952 年 7 月 15 日 第 4 版 10) 韩 瀛 : 日 本 警 察 的 反 战 情 绪, 世 界 知 识 1950 年 第 23 期, 第 17 页 ;P. 尤 利 涅 夫 著, 兰 浩 钧 译 : 日 本 的 进 步 电 影, 世 界 知 识 1953 年 第 14 期, 第 29-30 页 11) 郑 森 禹 : 日 本 和 平 运 动, 世 界 知 识 社 1954 年 版 184
中 国 人 眼 中 的 日 本 和 平 运 动 - 以 人 民 日 报 的 报 道 为 中 心 - 上, 导 致 了 船 员 受 伤 且 有 人 死 亡 的 惨 剧 时 隔 不 到 9 年, 日 本 第 3 次 遭 受 原 爆 灾 难, 引 发 了 日 本 人 民 在 全 国 范 围 内 开 展 抗 议 美 国 试 验 氢 弹 要 求 禁 止 原 子 武 器 的 斗 争 据 报 道 称 : 日 本 许 多 人 民 团 体 政 党 和 宗 教 组 织 发 表 了 声 明 或 作 出 决 议, 要 求 禁 止 原 子 武 器 日 本 全 国 四 百 多 个 大 小 城 市 市 长 组 成 的 全 国 市 长 会 议 和 国 会 参 众 二 院, 都 先 后 通 过 了 同 样 的 决 议 12) 反 映 了 日 本 人 民 反 核 运 动 的 群 众 性 广 泛 性 和 坚 定 性 中 国 人 从 此 进 入 了 关 注 日 本 和 平 运 动 的 第 二 个 阶 段, 即 以 从 1955 至 1966 年 间 在 日 本 每 年 召 开 一 次 的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为 中 心 的 反 战 反 核 和 平 运 动 时 期 随 着 中 日 间 经 济 贸 易 的 曲 折 发 展 和 中 日 两 国 民 间 人 士 的 积 极 努 力, 两 国 之 间 的 人 员 交 往 逐 渐 增 多, 中 国 人 对 日 本 国 内 的 反 战 反 核 运 动 从 同 情 声 援 逐 渐 发 展 为 实 际 支 持 首 先, 中 国 的 主 要 和 平 团 体 经 常 致 电 日 本 和 平 运 动 组 织, 肯 定 日 本 和 平 运 动 的 积 极 意 义 和 重 要 作 用, 鼓 励 日 本 人 民 坚 持 反 战 反 核 斗 争 如 蓝 海 在 日 本 人 民 争 取 和 平 中 立 的 斗 争 一 文 中, 赞 扬 日 本 人 民 的 反 安 保 斗 争 是 日 本 民 主 力 量 团 结 新 发 展 的 重 大 标 志, 将 会 给 岸 信 介 集 团 追 随 美 国 战 争 政 策 的 反 动 活 动 以 加 倍 的 打 击, 在 日 本 人 民 运 动 史 上 具 有 划 时 代 的 重 要 意 义 13), 肯 定 了 日 本 国 内 和 平 力 量 团 结 的 重 要 现 实 意 义 1959 年 11 月 20 日, 亚 洲 及 太 平 洋 区 域 和 平 联 络 委 员 会 热 烈 祝 贺 日 本 和 平 大 会 召 开, 并 通 过 大 会 向 为 保 卫 和 平 而 努 力 的 日 本 人 民 表 示 衷 心 的 敬 意, 称 赞 日 本 人 民 禁 止 原 子 弹 氢 弹 的 斗 争, 对 维 护 亚 洲 及 太 平 洋 地 区 和 世 界 和 平 事 业 作 出 了 重 要 贡 献, 鼓 励 日 本 人 民 继 续 开 展 更 大 规 模 的 和 平 运 动 1963 年 2 月 27 日, 中 国 人 民 保 卫 世 界 和 平 委 员 会 致 电 日 本 禁 止 原 子 弹 氢 弹 协 议 会, 表 示 坚 决 支 持 日 本 人 民 反 对 美 国 核 试 验 反 对 美 国 利 用 日 本 策 划 核 战 争 的 正 义 斗 争 14) 1964 年 9 月 7 日, 中 国 人 民 保 卫 世 界 和 平 委 员 会 中 国 亚 非 团 结 委 员 会 等 人 民 团 体 致 电 日 本 有 关 单 位, 坚 决 支 持 日 本 人 民 举 行 反 对 美 国 核 潜 艇 进 驻 日 本 和 美 国 侵 略 印 度 支 那 大 示 威 和 集 会 15) 中 国 人 民 表 示 愿 同 日 本 人 民 一 起 反 对 美 国 的 核 战 争 政 策, 维 护 远 东 及 世 界 和 平, 给 日 本 和 平 运 动 以 极 大 的 鼓 舞 和 支 持 其 次, 捐 款 资 助 日 本 原 子 弹 受 害 者, 支 持 日 本 人 民 的 反 核 斗 争 中 国 人 民 保 卫 世 界 和 平 委 员 会 中 国 亚 非 团 结 委 员 会 等 7 团 体, 从 1955 年 开 始 以 中 国 人 民 的 名 义, 每 年 都 以 巨 额 救 济 金 捐 赠 给 原 子 弹 氢 弹 受 害 者 16) 1961 年 8 月 12 日, 参 加 在 日 本 举 行 的 第 七 届 禁 止 原 12) 蓝 海 : 日 本 人 民 要 求 禁 止 原 子 武 器 的 斗 争, 人 民 日 报 1955 年 6 月 30 日 第 4 版 13) 蓝 海 : 日 本 人 民 争 取 和 平 中 立 的 斗 争, 人 民 日 报 1959 年 3 月 22 日 第 4 版 14) 我 和 大 电 日 本 禁 止 原 子 弹 氢 弹 协 议 会 支 持 日 本 人 民 反 美 斗 争 纪 念 比 基 尼 事 件 集 会 将 沉 重 打 击 美 国 战 争 政 策, 人 民 日 报 1963 年 2 月 28 日 第 3 版 15) 我 和 大 等 团 体 谴 责 美 核 潜 艇 驻 日 阴 谋 支 持 日 本 人 民 反 美 斗 争, 人 民 日 报 1964 年 9 月 8 日 第 4 版 16) 人 民 的 智 慧 勇 气 必 能 击 退 一 切 压 迫 与 暴 力 日 本 禁 止 原 子 弹 和 氢 弹 协 议 会 理 事 长 安 井 郁 在 欢 迎 会 上 的 讲 话, 人 民 日 报 1960 年 2 月 22 日 第 4 版 18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子 弹 氢 弹 和 争 取 全 面 裁 军 世 界 大 会 的 中 国 代 表 团 副 团 长 赵 朴 初, 代 表 中 国 人 民 捐 赠 了 750 万 日 元, 再 次 表 示 同 情 原 子 弹 受 害 者 17), 支 持 日 本 人 民 的 反 核 运 动 事 业 此 后, 出 席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的 中 国 代 表 团 成 员 都 照 例 向 广 岛 长 崎 和 比 基 尼 原 子 弹 氢 弹 死 难 者 遗 族 和 原 子 武 器 受 灾 者 表 示 深 切 的 同 情 和 慰 问 1966 年 7 月 28 日, 在 中 国 代 表 团 因 日 本 政 府 阻 挠 未 能 出 席 的 情 况 下, 周 恩 来 总 理 亲 自 致 电 第 十 二 届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再 次 向 广 岛 长 崎 和 比 基 尼 原 子 弹 氢 弹 死 难 者 遗 族 和 原 子 受 灾 者 表 示 深 切 的 同 情 和 慰 问 18) 体 现 了 中 国 政 府 和 人 民 对 日 本 人 遭 受 原 子 弹 灾 难 的 由 衷 同 情 和 诚 挚 援 助 再 次, 组 织 和 平 集 会, 支 持 日 本 和 平 运 动 1962 年 1 月 4 日, 首 都 各 界 人 民 举 办 了 欢 迎 日 本 和 平 运 动 领 导 人 安 井 郁 的 大 会, 廖 承 志 在 大 会 上 称 赞 安 井 郁 及 其 领 导 的 日 本 禁 止 原 子 弹 氢 弹 协 议 会, 沉 重 地 打 击 了 美 日 反 动 派 策 划 新 战 争 的 阴 谋, 鼓 舞 了 各 国 人 民 的 斗 争, 对 保 卫 亚 洲 和 世 界 和 平 作 出 了 重 大 的 贡 献 19) 高 度 评 价 了 他 及 日 本 反 核 运 动 在 保 卫 和 平 斗 争 中 的 重 要 作 用 1963 年 8 月 1 日, 中 国 人 在 首 都 北 京 举 行 万 人 大 会, 热 烈 支 持 第 九 届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在 日 本 召 开, 坚 决 不 许 广 岛 悲 剧 重 演 1964 年 8 月 7 日, 首 都 各 界 人 民 再 次 发 起 支 持 第 十 届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的 大 会, 周 培 源 在 大 会 上 称 赞 : 这 次 大 会 继 承 和 发 扬 了 历 届 大 会 的 光 荣 传 统, 彻 底 粉 碎 了 美 日 反 动 派 和 现 代 修 正 主 义 者 的 破 坏 阴 谋 为 支 持 亚 洲 非 洲 和 拉 丁 美 洲 的 民 族 民 主 运 动, 为 保 卫 世 界 和 平, 作 出 了 新 的 贡 献 20) 再 次 肯 定 了 日 本 和 平 运 动 的 重 要 地 位 这 些 和 平 集 会 都 是 中 国 人 民 支 持 日 本 和 平 运 动 的 有 力 证 明 第 四, 与 日 本 和 平 运 动 组 织 签 订 相 互 支 援 的 共 同 声 明, 支 持 日 共 在 日 本 和 平 运 动 中 的 领 导 地 位 1962 年 6 月 7 日, 中 国 人 民 保 卫 世 界 和 平 委 员 会 和 日 本 和 平 委 员 会 在 北 京 共 同 声 明 : 两 国 人 民 不 仅 相 互 支 持 彼 此 的 反 美 斗 争, 而 且 共 同 支 持 世 界 各 地 正 义 的 爱 国 主 义 斗 争, 加 强 联 合 行 动, 粉 碎 美 国 的 战 争 和 侵 略 行 为 1963 年 7 月 1 日, 中 国 朝 鲜 和 日 本 8 个 产 业 工 会 和 工 会 代 表 团 的 联 合 声 明 签 字, 表 示 三 国 工 人 阶 级 和 人 民 要 相 互 支 持 相 互 援 助, 反 对 共 同 敌 人 美 帝 国 主 义 21) 获 得 中 国 政 府 和 人 民 支 持 的 日 本 和 平 运 动 无 疑 增 强 17) 禁 止 原 子 弹 世 界 大 会 正 式 会 议 开 幕 许 多 代 表 发 言 呼 吁 为 反 对 美 国 的 战 争 政 策 而 斗 争, 人 民 日 报 1961 年 8 月 14 日 第 3 版 18) 周 总 理 电 贺 第 十 二 届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只 要 继 续 高 举 反 帝 反 修 的 战 斗 旗 帜 就 能 为 禁 止 和 销 毁 核 武 器 作 出 新 贡 献, 人 民 日 报 1966 年 7 月 31 日 第 1 版 19) 把 美 帝 国 主 义 从 中 日 两 国 领 土 上 赶 出 去 廖 承 志 在 首 都 各 界 人 民 欢 迎 安 井 郁 大 会 上 的 讲 话 摘 要, 人 民 日 报 1962 年 1 月 5 日 第 4 版 20) 在 首 都 各 界 人 民 支 持 第 十 届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大 会 上 周 培 源 的 讲 话, 人 民 日 报 1964 年 8 月 7 日 第 5 版 21) 中 朝 日 八 个 产 业 工 会 和 工 会 代 表 团 联 合 声 明 在 京 签 字 首 都 工 人 集 会 庆 祝 三 国 工 人 阶 级 大 团 结, 人 民 日 报 1963 年 7 月 2 日 第 1 版 186
中 国 人 眼 中 的 日 本 和 平 运 动 - 以 人 民 日 报 的 报 道 为 中 心 - 了 自 身 力 量 和 在 反 战 反 核 斗 争 中 的 发 言 权 1962 年 8 月 初, 在 日 共 中 央 政 治 局 发 表 谴 责 社 会 党 和 总 评 代 表 的 分 裂 活 动 后, 人 民 日 报 随 即 发 表 评 论 员 文 章, 指 出 此 举 纠 正 了 国 际 和 平 运 动 和 日 本 和 平 运 动 内 部 存 在 的 一 些 不 明 确 的 看 法 这 对 和 平 运 动 今 后 的 发 展, 是 具 有 重 要 的 意 义 的 22) 支 持 日 共 的 和 平 运 动 路 线 1964 年 7 月 31 日, 出 席 第 十 届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的 中 国 代 表 团 团 长 刘 宁 一 指 出 日 本 反 战 反 核 运 动 一 贯 坚 持 的 方 针 路 线 是 完 全 正 确 的 是 值 得 中 国 人 民 和 世 界 各 国 人 民 认 真 地 学 习 的 23), 坚 决 支 持 日 共 及 其 领 导 的 反 核 运 动 与 和 平 运 动 鉴 于 日 本 和 平 运 动 陷 入 内 讧 之 中 和 美 苏 企 图 分 裂 或 消 弱 日 本 反 核 运 动 生 命 力 的 阴 谋, 中 国 政 府 决 定 支 持 与 自 己 保 持 一 致 的 日 共 掌 握 日 本 和 平 运 动 的 领 导 权 最 后, 除 人 民 日 报 世 界 知 识 之 外, 人 民 音 乐 美 术 文 学 评 论 等 更 多 的 报 刊 杂 志 开 始 向 中 国 国 内 介 绍 日 本 和 平 运 动 的 情 况, 既 反 映 了 日 本 和 平 运 动 在 中 国 的 影 响 日 益 扩 大, 也 反 映 了 中 国 人 关 注 日 本 和 平 运 动 的 程 度 逐 步 提 高 笔 者 目 前 查 找 到 了 21 篇 关 于 日 本 和 平 运 动 的 文 章, 按 关 注 的 内 容 可 分 为 以 下 3 类 :1. 关 于 日 本 禁 止 原 子 弹 氢 弹 运 动 的 文 章 有 5 篇, 主 要 刊 登 在 世 界 知 识 杂 志 上 2. 日 本 文 艺 界 开 展 和 平 民 主 和 反 战 斗 争 的 文 章 12 篇, 分 散 于 美 术 人 民 音 乐 世 界 知 识 文 学 评 论 等 刊 物 上 3. 悼 念 日 本 和 平 运 动 领 导 人 批 判 岸 信 介 政 府 的 反 华 政 策 和 支 持 日 本 人 民 反 美 斗 争 的 专 题 性 文 章 4 篇 其 中, 毛 主 席 就 最 近 日 本 反 美 大 示 威 发 表 谈 话, 中 国 人 民 支 持 日 本 人 民 伟 大 的 爱 国 斗 争 一 文, 主 要 报 道 毛 主 席 在 1964 年 1 月 27 日 接 见 访 华 的 日 中 友 好 协 会 副 会 长 兼 日 中 贸 易 促 进 会 理 事 长 铃 木 一 雄 等 人 时 发 表 的 谈 话, 即 : 中 日 两 国 人 民 要 联 合 起 来, 结 成 反 对 美 帝 国 主 义 的 广 泛 的 统 一 战 线, 挫 败 美 国 帝 国 主 义 的 侵 略 计 划 和 战 争 计 划, 保 卫 世 界 和 平 这 一 谈 话 精 神 对 20 世 纪 60 年 代 中 后 期 日 本 人 民 的 反 美 斗 争 产 生 了 重 要 影 响 第 二 阶 段 是 中 国 人 关 注 和 支 持 日 本 和 平 运 动 的 高 潮 期, 主 要 有 以 下 几 个 特 点 1. 积 极 参 与 日 本 和 平 运 动 中 国 政 府 和 人 民 不 仅 邀 请 日 本 和 平 运 动 领 导 人 团 体 来 中 国 访 问 或 介 绍 情 况, 也 积 极 派 遣 代 表 团 参 加 在 日 本 召 开 的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及 游 行 活 动, 提 供 力 所 能 及 的 资 金 支 持 2. 卷 入 了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内 讧 之 中, 宣 传 和 支 持 日 共 领 导 日 本 和 平 运 动 的 理 论 路 线 方 针 政 策 3. 联 合 日 共 抵 制 美 苏 对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分 裂 破 坏 活 动 随 着 中 苏 论 战 和 两 者 关 系 破 裂, 但 在 美 国 对 越 南 战 争 升 级 的 情 况 下, 中 共 在 日 本 和 平 运 动 分 裂 初 期, 间 接 地 不 点 名 地 批 评 了 苏 联 的 和 平 共 处 理 论 及 其 分 裂 破 坏 日 本 和 22) 日 本 和 平 运 动 今 后 发 展 的 正 确 方 向, 人 民 日 报 1962 年 9 月 2 日 第 4 版 23) 我 代 表 团 团 长 刘 宁 一 发 言 赞 扬 日 本 禁 止 核 弹 运 动 伟 大 成 就 高 举 反 美 旗 帜 反 对 错 误 路 线 推 进 保 卫 和 平 斗 争 正 告 一 小 撮 分 裂 主 义 者 休 想 破 坏 日 本 人 民 和 世 界 各 国 人 民 的 伟 大 团 结, 人 民 日 报 1964 年 8 月 2 日 第 4 版 18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平 运 动 的 活 动 1964 年 后, 日 共 与 苏 共 因 和 平 运 动 理 论 路 线 的 分 歧 而 关 系 破 裂, 中 共 朝 鲜 劳 动 党 等 公 开 站 在 日 共 一 侧 批 评 苏 联 主 导 下 的 世 界 和 平 理 事 会 的 领 导 人 在 世 界 和 平 运 动 中 推 行 的 错 误 路 线, 谴 责 其 分 裂 破 坏 日 本 和 平 运 动 的 活 动 4. 关 注 点 除 了 围 绕 在 日 本 召 开 的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外, 还 关 注 和 支 持 日 本 各 地 反 战 反 核 集 会 与 示 威 游 行 活 动 等, 肯 定 了 日 本 和 平 运 动 在 维 护 远 东 地 区 和 平 与 牵 制 美 国 东 亚 政 策 中 的 重 要 作 用, 高 度 评 价 了 日 本 人 民 表 现 出 来 的 伟 大 力 量 三 批 判 支 持 与 冷 漠 1966 年 初, 毛 泽 东 与 访 华 的 日 本 共 产 党 总 书 记 宫 本 显 治 进 行 了 会 谈, 双 方 在 共 同 反 对 苏 联 修 正 主 义 组 成 反 美 帝 与 苏 修 统 一 战 线 人 民 战 争 理 论 等 问 题 上 产 生 了 严 重 分 歧, 导 致 了 两 党 关 系 恶 化 从 此, 中 国 人 开 始 批 判 日 共 宫 本 显 治 集 团 领 导 的 禁 止 原 子 弹 氢 弹 运 动 及 其 他 反 战 形 式 的 和 平 运 动, 但 支 持 同 期 的 日 本 人 民 反 美 斗 争 据 笔 者 目 前 所 知, 中 日 复 交 后 的 10 年 内, 人 民 日 报 上 几 乎 没 有 报 道 过 日 本 和 平 运 动 和 反 美 斗 争 的 任 何 消 息 本 身 处 于 低 潮 的 分 散 的 日 本 和 平 运 动 似 乎 从 中 国 人 的 眼 中 消 失 了 中 共 从 不 点 名 到 公 开 再 到 全 面 批 判 日 共 领 导 的 禁 止 原 子 弹 氢 弹 运 动 和 组 织 其 他 形 式 的 和 平 运 动, 指 责 日 共 宫 本 修 正 主 义 集 团 推 行 联 苏 媚 美 反 华 路 线 和 妄 图 破 坏 日 本 和 平 运 动 针 对 宫 本 显 治 提 出 与 苏 联 联 合 行 动 对 抗 美 国 侵 略 战 争 政 策 的 建 议, 周 恩 来 总 理 指 出 : 任 何 要 同 苏 修 搞 联 合 行 动 的 主 张, 都 只 会 帮 助 他 们 欺 骗 世 界 人 民, 粉 饰 他 们 假 反 帝 真 投 降 假 支 持 真 出 卖 假 团 结 真 分 裂 的 丑 恶 的 叛 徒 面 目 24) 不 点 名 地 批 评 日 共 与 苏 联 联 合 行 动 是 叛 卖 和 分 裂 行 为 1966 年 8 月 6 日 晚, 因 日 本 政 府 阻 挠 未 能 参 加 第 十 二 届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的 中 国 代 表 团, 为 退 出 本 届 大 会 前 来 北 京 的 外 国 代 表 团 的 朋 友 们 举 行 了 欢 迎 宴 会, 称 赞 : 这 些 外 国 朋 友 和 其 他 外 国 代 表 在 东 京 世 界 大 会 上, 坚 持 正 确 路 线, 为 反 对 日 本 禁 止 原 子 弹 氢 弹 协 议 会 的 某 些 领 导 人 把 苏 联 现 代 修 正 主 义 领 导 集 团 控 制 的 世 界 民 主 青 年 联 盟 的 代 表 塞 进 大 会 的 做 法, 进 行 了 坚 决 的 斗 争 不 点 名 地 指 责 日 共 某 些 领 导 人 是 美 帝 苏 修 的 应 声 虫 25) 这 既 指 出 日 共 宫 本 显 治 集 团 在 领 导 禁 止 原 子 弹 氢 弹 运 动 中 的 所 谓 错 误 行 为, 也 为 日 共 的 主 体 部 分 重 新 返 回 与 中 国 一 致 的 立 场 留 有 余 地 1967 年 8 月 11 日, 人 民 日 报 发 表 题 为 彻 底 背 叛 反 帝 反 修 革 命 路 线, 积 极 推 行 联 苏 24) 周 总 理 电 贺 第 十 二 届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只 要 继 续 高 举 反 帝 反 修 的 战 斗 旗 帜 就 能 为 禁 止 和 销 毁 核 武 器 作 出 新 贡 献, 人 民 日 报 1966 年 7 月 31 日 第 1 版 25) 刘 宁 一 廖 承 志 设 宴 热 烈 欢 迎 退 出 禁 原 氢 弹 世 界 大 会 的 外 国 朋 友 维 护 禁 止 原 子 弹 氢 弹 运 动 光 荣 传 统 坚 决 反 对 美 帝 苏 修 及 其 一 切 应 声 虫, 人 民 日 报 1966 年 8 月 8 日 第 4 版 188
中 国 人 眼 中 的 日 本 和 平 运 动 - 以 人 民 日 报 的 报 道 为 中 心 - 媚 美 反 华 政 策, 宫 本 集 团 利 用 禁 核 分 裂 会 议 大 搞 叛 卖 活 动, 日 修 投 降 路 线 遭 到 日 本 和 世 界 革 命 人 民 抵 制, 出 席 会 议 者 寥 寥 无 几 的 文 章, 公 开 指 名 批 判 日 共 宫 本 显 治 集 团 组 织 召 开 的 第 十 三 届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是 推 销 所 谓 联 合 行 动 的 黑 货, 为 日 修 的 联 苏 反 华 投 降 叛 卖 路 线 服 务, 至 此 两 党 关 系 不 仅 完 全 破 裂, 而 且 关 于 日 本 和 平 运 动 的 争 论 也 从 公 开 化 到 了 白 热 化 的 程 度 该 文 还 指 责 野 坂 参 三 公 开 背 叛 了 过 去 世 界 大 会 一 贯 执 行 的 反 帝 必 须 反 修 的 革 命 路 线, 日 本 禁 止 原 子 弹 氢 弹 协 议 会 的 代 表 畑 中 政 春 向 会 议 提 出 的 总 报 告 和 日 本 代 表 团 团 长 平 野 义 太 郎 在 会 上 所 作 的 报 告 都 是 宫 本 集 团 的 修 正 主 义 货 色 ; 谴 责 宫 本 集 团 推 行 和 平 共 处 与 和 平 过 渡 的 修 正 主 义 路 线, 故 意 抹 煞 了 缅 甸 印 度 泰 国 等 国 的 人 民 武 装 斗 争, 出 卖 越 南 人 民 的 抗 美 救 国 斗 争, 宣 称 宫 本 修 正 主 义 集 团 必 将 滚 入 历 史 的 垃 圾 堆 直 至 1972 年, 人 民 日 报 主 要 谴 责 宫 本 修 正 主 义 集 团 散 布 议 会 万 能 主 义 反 革 命 谬 论, 鼓 吹 合 法 斗 争 和 经 济 主 义, 配 合 美 日 反 动 派 阻 挠 和 破 坏 日 本 人 民 的 革 命 斗 争, 挑 拨 农 民 工 人 和 学 生 的 关 系, 诬 蔑 革 命 青 年 的 斗 争, 背 叛 日 本 革 命 和 世 界 革 命 等 可 耻 行 径, 对 其 批 判 可 谓 不 绝 于 耳 与 之 同 时, 肯 定 日 共 ( 左 派 ) 同 美 日 反 动 派 和 宫 本 修 正 主 义 集 团 进 行 英 勇 的 斗 争, 鼓 励 日 共 地 方 党 员 和 群 众 造 宫 本 修 正 主 义 集 团 的 反, 蔑 称 宫 本 修 正 主 义 集 团 阻 挡 不 了 日 本 人 民 斗 争 的 革 命 洪 流, 号 召 日 本 人 民 团 结 战 斗 在 日 共 左 派 组 织 周 围 随 着 美 国 侵 越 战 争 的 升 级, 与 批 判 宫 本 修 正 主 义 集 团 破 坏 和 平 运 动 的 言 论 成 为 鲜 明 对 比 的 是, 中 国 人 继 续 高 度 关 注 和 支 持 日 本 国 内 的 反 美 斗 争 人 民 日 报 主 要 报 道 了 日 本 人 民 举 行 示 威 游 行, 反 对 美 国 核 舰 艇 进 驻 日 本, 要 求 撤 除 美 国 在 日 本 各 地 的 军 事 基 地 和 废 除 日 美 安 全 条 约, 抗 议 佐 藤 政 府 为 美 国 侵 越 战 争 效 劳, 谴 责 美 帝 出 兵 入 侵 柬 埔 寨 和 扩 大 印 度 支 那 战 争 等 日 本 人 民 的 反 美 斗 争 情 况 主 要 的 报 道 思 想 是 称 赞 日 本 人 民 正 在 加 速 觉 醒 26), 其 反 对 美 帝 以 及 日 本 军 国 主 义 的 斗 争 洪 流, 是 任 何 力 量 也 阻 挡 不 了 的 27), 鼓 舞 日 本 人 民 的 反 战 反 美 爱 国 斗 争 日 本 一 些 进 步 人 士 和 青 年 学 生 在 反 美 斗 争 中 还 高 举 毛 泽 东 思 想 的 旗 帜 28), 提 倡 以 人 民 战 争 的 形 式 反 对 佐 藤 卖 国 政 府 和 美 国 的 侵 越 战 争, 反 映 了 当 时 中 国 文 化 大 革 命 对 日 本 的 直 接 影 响 毛 泽 东 于 1964 年 发 表 的 支 持 日 本 人 民 反 美 示 威 游 行 谈 话, 对 日 本 各 阶 层 人 民 的 反 美 斗 争 中 产 生 了 相 当 大 的 影 响, 这 也 是 人 民 日 报 报 道 文 革 时 期 日 本 人 民 反 美 斗 争 的 主 要 26) 公 曲 : 日 本 人 民 的 反 美 斗 争 烈 火 越 烧 越 旺, 人 民 日 报 1970 年 1 月 25 日 第 5 版 27) 粉 碎 日 美 安 全 条 约 反 对 复 活 日 本 军 国 主 义 日 本 人 民 反 美 斗 争 洪 流 势 不 可 挡 六 月 间 全 国 一 千 多 城 市 数 百 万 人 举 行 反 对 美 日 反 动 派 的 集 会 示 威, 人 民 日 报 1970 年 7 月 1 日 第 6 版 28) 粉 碎 美 日 反 动 派 战 争 政 策 和 侵 略 政 策 日 本 工 人 农 民 学 生 并 肩 举 行 反 美 示 威 示 威 群 众 不 畏 强 暴 同 反 动 警 察 进 行 英 勇 搏 斗, 人 民 日 报 1969 年 3 月 4 日 第 5 版 18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内 容 1968 年 1 月 26 日, 新 华 社 报 道, 日 本 革 命 左 派 和 各 界 进 步 朋 友 最 近 发 表 谈 话, 指 出 毛 主 席 的 这 次 谈 话 照 亮 了 日 本 人 民 斗 争 的 道 路 29) 1970 年 1 月 30 日, 人 民 日 报 又 称 : 毛 主 席 谈 话 给 日 本 人 民 反 美 斗 争 以 巨 大 支 持, 日 本 人 民 一 定 能 够 赶 走 美 帝, 推 翻 美 日 反 动 派 的 罪 恶 统 治 30) 在 文 革 的 年 代 里, 高 度 评 价 毛 主 席 谈 话 在 日 本 人 民 反 美 斗 争 中 的 重 要 作 用, 尽 力 显 示 日 本 人 对 毛 主 席 的 敬 仰 和 爱 戴 从 1967 至 1971 年 的 5 年 内, 人 民 日 报 至 少 有 9 篇 文 章 报 道 了 日 本 各 届 进 步 人 士 或 团 体, 组 织 各 种 集 会 或 发 表 谈 话, 纪 念 毛 主 席 谈 话 发 表 三 四 六 七 周 年, 赞 扬 毛 主 席 谈 话 精 神 的 正 确 性 和 影 响 力 如 1968 年 1 月 28 日 的 人 民 日 报 中 称 毛 主 席 谈 话 是 伟 大 战 斗 号 召, 鼓 舞 着 世 界 各 国 人 民 的 反 美 斗 争 象 燎 原 的 烈 火, 燃 遍 全 世 界 借 亚 非 人 民 团 结 日 本 委 员 会 事 务 局 长 板 井 庄 作 的 话 说 : 毛 主 席 的 谈 话, 对 日 本 革 命 的 根 本 问 题 谁 是 敌 人, 谁 是 朋 友, 作 出 了 最 重 要 和 唯 一 正 确 的 回 答 31) 日 本 毛 泽 东 思 想 月 刊 社 发 表 书 面 谈 话 说, 日 本 人 民 斗 争 的 发 展 越 来 越 证 实 了 毛 主 席 谈 话 的 正 确 性 32) 人 民 日 报 报 道 日 本 各 阶 层 人 士 和 各 进 步 团 体 负 责 人 学 习 毛 主 席 谈 话 精 神, 在 斗 争 场 地 和 会 场 上 悬 挂 毛 主 席 绣 像, 召 开 毛 主 席 谈 话 发 表 周 年 纪 念 活 动, 似 乎 日 本 人 民 的 反 美 斗 争 是 中 国 文 化 大 革 命 的 一 个 组 成 部 分 1972 年 1 月 25 日, 人 民 日 报 发 表 了 题 为 海 燕 迎 着 暴 风 雨 飞 翔 访 日 本 齿 轮 座 剧 团 的 文 章, 提 到 了 日 本 工 人 们 在 日 共 ( 左 派 ) 领 导 下 同 美 日 反 动 派 和 宫 本 修 正 主 义 集 团 进 行 英 勇 斗 争 的 事 迹 这 是 目 前 笔 者 所 见 文 革 期 间 的 人 民 日 报 上 最 后 一 篇 关 于 日 本 人 民 反 美 斗 争 的 报 道 此 后 长 达 10 年, 在 人 民 日 报 上 几 乎 没 有 日 本 和 平 运 动 的 任 何 消 息 笔 者 认 为 其 主 要 原 因 在 于 :1. 日 本 和 平 运 动 本 身 虽 然 一 直 存 在, 但 逐 渐 分 散 化 地 方 化, 不 如 以 前 一 样 引 起 中 国 人 注 目 随 着 日 本 成 长 为 资 本 主 义 世 界 第 二 经 济 大 国, 人 民 生 活 富 足, 中 流 意 识 盛 行, 从 而 使 更 多 的 人 转 向 了 追 求 稳 定 忙 于 个 人 事 业 的 发 展, 不 太 热 衷 参 加 大 规 模 的 社 会 活 动 因 此,20 世 纪 60 年 代 末 70 年 代 初 大 规 模 的 学 生 运 动 和 社 会 运 动 结 束 后, 日 本 国 内 很 少 再 起 大 规 模 的 社 会 运 动 2. 中 国 国 内 先 是 批 林 批 孔 运 动 的 文 革 热 潮, 粉 碎 四 人 帮 后, 中 国 领 导 层 经 过 调 整, 确 立 了 改 革 开 放 的 方 针, 所 29) 日 本 革 命 左 派 和 进 步 人 士 指 出 毛 主 席 的 谈 话 照 亮 了 日 本 人 民 斗 争 道 路 结 成 广 泛 反 美 统 一 战 线 加 强 反 美 斗 争 谴 责 宫 本 集 团 勾 结 美 日 反 动 派 和 苏 修 进 行 反 华 反 革 命 反 人 民 的 叛 徒 行 径, 人 民 日 报 1968 年 1 月 27 日 第 7 版 30) 日 本 进 步 团 体 负 责 人 热 烈 欢 呼 毛 主 席 谈 话 发 表 六 周 年 毛 主 席 谈 话 给 日 本 人 民 反 美 斗 争 以 巨 大 支 持 日 本 人 民 一 定 能 够 赶 走 美 帝, 推 翻 美 日 反 动 派 的 罪 恶 统 治, 人 民 日 报 1970 年 1 月 30 日 第 5 版 31) 川 濑 一 贯 萩 原 定 司 等 日 本 友 好 人 士 发 表 谈 话 指 出 毛 主 席 谈 话 鼓 舞 日 本 人 民 反 美 斗 争 表 示 要 为 进 一 步 开 展 日 中 友 好 运 动 而 努 力, 人 民 日 报 1971 年 2 月 2 日 第 4 版 32) 日 本 < 毛 泽 东 思 想 月 刊 > 社 在 毛 主 席 谈 话 发 表 七 周 年 时 发 表 书 面 谈 话 决 心 结 成 统 一 战 线 打 击 美 日 反 动 派 斗 争 发 展 证 明, 日 本 民 族 绝 不 会 让 美 帝 国 主 义 长 期 骑 在 自 己 头 上, 人 民 日 报 1971 年 2 月 5 日 第 6 版 190
中 国 人 眼 中 的 日 本 和 平 运 动 - 以 人 民 日 报 的 报 道 为 中 心 - 以, 剧 烈 变 动 期 的 中 国 无 暇 顾 忌 日 本 和 平 运 动 3. 国 际 局 势 的 变 化 也 使 中 国 人 不 便 太 多 关 注 日 本 和 平 运 动 随 着 尼 克 松 访 华 中 日 复 交 越 南 战 争 停 战, 中 国 面 对 苏 联 咄 咄 逼 人 的 攻 势 下, 急 需 与 美 日 结 成 反 苏 统 一 战 线 此 时, 中 国 政 府 和 人 民 关 注 日 本 和 平 运 动 的 自 然 不 多 中 国 人 关 注 日 本 和 平 运 动 的 第 三 阶 段, 具 有 以 下 明 显 的 特 点 1. 受 中 共 与 日 共 关 系 破 裂 的 影 响, 人 民 日 报 一 反 常 态 地 开 始 批 判 日 共 宫 本 显 治 领 导 的 和 平 运 动, 停 止 了 报 道 其 举 办 的 禁 止 原 子 弹 氢 弹 运 动 2. 受 文 革 影 响, 人 民 日 报 的 文 章 虽 支 持 日 本 人 民 的 反 美 斗 争, 但 主 要 关 注 日 共 左 派 和 进 步 人 士 等 高 举 毛 泽 东 思 想 旗 帜 的 反 美 斗 争 3. 长 期 漠 视 日 本 的 和 平 运 动 不 仅 人 民 日 报 上 长 期 没 有 介 绍 日 本 和 平 运 动 的 相 关 报 道, 其 他 报 刊 杂 志 也 没 有 对 日 本 和 平 运 动 的 介 绍 这 种 漠 视 日 本 和 平 运 动 的 状 况, 一 直 持 续 到 改 革 开 放 后 的 1982 年 四 关 注 和 研 究 人 民 日 报 虽 自 1982 年 再 次 报 道 日 本 和 平 运 动, 但 至 今 28 年 间, 介 绍 或 报 道 日 本 和 平 运 动 的 消 息 与 此 前 三 个 阶 段 相 比 并 不 多 不 过, 冷 战 结 束 后, 中 国 人 开 始 从 学 术 角 度 加 强 了 日 本 和 平 运 动 的 研 究 因 此, 可 以 说, 再 次 关 注 日 本 和 平 运 动 和 开 展 相 对 独 立 的 学 术 研 究 是 中 国 人 认 识 这 一 时 期 日 本 和 平 运 动 的 总 体 特 点 1982 年 以 来, 人 民 日 报 报 道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内 容, 主 要 有 以 下 几 个 方 面 首 先, 报 道 或 介 绍 日 本 人 民 的 反 核 和 平 运 动 如 人 民 日 报 和 世 界 知 识 先 后 介 绍 了 禁 止 原 子 弹 氢 弹 1982 1983 1984 年 的 世 界 大 会 其 中,1982 年 8 月 11 日 的 人 民 日 报 介 绍 禁 止 原 子 弹 氢 弹 1982 年 世 界 大 会 是 其 恢 复 报 道 日 本 和 平 运 动 的 第 一 篇 文 章 此 后, 人 民 日 报 虽 偶 尔 提 及 日 本 人 民 的 反 核 运 动, 但 长 期 未 见 禁 止 原 子 弹 氢 弹 世 界 大 会 的 消 息 尤 其 是 20 世 纪 90 年 代 以 后, 随 着 苏 东 剧 变 和 六 四 风 波 等 国 际 国 内 局 势 的 变 化, 中 国 人 更 少 关 注 日 本 的 反 核 和 平 运 动 了 其 次, 中 国 领 导 人 接 见 或 与 日 本 和 平 运 动 人 士 交 流 的 时 事 报 道, 内 容 比 较 简 单, 主 要 是 中 国 国 际 交 流 协 会 会 长 李 一 氓 全 国 人 大 常 委 会 副 委 员 长 朱 学 范 周 谷 城 接 见 以 中 林 贞 男 为 首 的 日 本 和 平 运 动 市 民 代 表 团, 以 及 中 共 中 央 政 治 局 委 员 王 震 等 人 与 日 本 和 平 友 好 运 动 人 士 交 往 的 简 讯 再 次, 介 绍 或 报 道 日 本 人 民 抗 议 美 军 暴 行, 反 对 美 国 军 舰 进 入 日 本 港 口, 废 止 有 事 三 法 和 要 求 美 军 基 地 撤 出 日 本 的 和 平 运 动 最 后, 随 着 部 分 日 本 政 要 相 继 参 拜 靖 国 神 社 和 教 科 书 问 题 的 出 现, 中 日 之 间 关 于 历 史 认 识 问 题 的 争 论 日 趋 尖 锐, 故 而 在 人 民 日 报 上 就 出 现 了 反 映 日 本 人 民 反 省 战 争 责 任 的 相 关 报 道 19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冷 战 结 束 后, 部 分 中 国 学 者 开 始 以 学 术 视 角, 研 究 战 后 日 本 和 平 运 动 与 和 平 思 想 的 发 展 演 变 过 程 及 其 对 日 本 社 会 的 影 响, 并 取 得 了 一 定 的 成 绩 刘 华 英 吴 建 华 与 徐 恺 在 研 究 了 战 后 日 本 和 平 民 主 主 义 思 潮 的 发 展 演 变 过 程 后, 认 为 战 败 的 阴 影 是 出 现 战 后 日 本 和 平 民 主 主 义 思 潮 产 生 的 直 接 原 因, 有 利 的 国 际 局 势 是 其 催 化 剂, 民 主 化 改 革 是 其 赖 以 存 在 的 社 会 基 础 ; 而 其 逐 渐 走 向 衰 落 的 根 源 主 要 在 于 和 平 民 主 主 义 思 潮 的 拥 护 者 数 量 剧 减 和 根 深 蒂 固 的 日 本 民 族 优 越 论, 指 出 : 左 翼 和 平 民 主 主 义 思 潮 的 衰 落 有 其 必 然, 这 将 导 致 右 翼 民 族 主 义 思 潮 长 期 占 据 主 导 地 位, 因 此 日 本 政 治 右 倾 化 保 守 化 也 将 是 个 长 期 的 过 程 33) 提 醒 我 们 对 日 本 追 求 政 治 大 国 军 事 大 国 保 持 清 醒 的 认 识 和 做 好 必 要 的 心 理 准 备 刘 小 林 通 过 研 究 战 后 日 本 和 平 运 动 与 和 平 理 念 的 变 化, 指 出 冷 战 结 束 以 来, 日 本 的 和 平 运 动 并 没 有 消 失, 而 是 改 变 了 形 式, 以 更 加 自 愿 自 主 的 方 式 自 下 而 上 地 开 展 着 活 动 和 平 运 动 和 平 教 育 与 和 平 研 究 形 成 了 相 互 支 持 相 互 影 响 的 内 在 互 动 关 系 围 绕 和 平 而 展 开 的 教 育 研 究 与 活 动, 对 整 个 日 本 的 社 会 意 识 和 社 会 行 为 产 生 了 深 远 而 广 泛 的 影 响, 这 应 当 是 而 且 也 确 实 是 日 本 社 会 思 潮 的 主 流 34) 肯 定 了 冷 战 后 日 本 和 平 运 动 的 持 续 存 在 及 其 变 化, 乐 观 地 认 为 冷 战 后 和 平 思 潮 仍 是 日 本 社 会 思 潮 的 主 流, 而 且 逐 渐 超 越 意 识 形 态 超 越 民 族 国 家, 构 成 全 球 市 民 社 会 的 和 平 运 动 事 实 上, 冷 战 结 束 以 来, 日 本 国 内 开 展 的 反 日 美 安 保 同 盟 反 核 设 施 反 对 美 军 基 地 反 对 篡 改 历 史 护 宪 与 阻 止 修 宪 各 地 通 过 的 和 平 宣 言 支 援 被 害 国 民 众 的 诉 讼 站 在 加 害 者 立 场 追 究 战 争 责 任 等 反 战 和 平 活 动, 就 是 对 其 最 好 的 注 解 中 国 学 者 在 涉 及 日 本 和 平 运 动 的 专 题 研 究 上, 主 要 关 注 坂 本 义 和 与 池 田 大 作 的 和 平 主 义 思 想 妇 女 在 和 平 运 动 中 的 作 用 民 间 的 左 翼 运 动 及 市 民 运 动 等 与 和 平 运 动 相 关 的 内 容 朱 光 明 在 坂 本 义 和 的 和 平 主 义 新 构 想 一 文 中, 评 述 了 东 京 大 学 名 誉 教 授 坂 本 义 和 关 于 和 平 主 义 新 构 想 的 主 要 内 容, 即 坚 持 和 平 主 义 三 原 则, 包 括 不 能 发 动 从 事 侵 略 战 争, 决 不 能 增 加 从 事 核 战 争 的 危 险, 绝 对 否 定 军 国 主 义 ; 单 独 组 建 非 军 事 性 维 和 部 队 ; 明 确 联 合 国 与 日 本 应 当 承 担 的 义 务 和 职 责 等 35) 虽 然 这 一 构 想 未 能 付 诸 实 施, 但 毕 竟 丰 富 了 日 本 和 平 主 义 思 想 的 内 容, 在 日 本 社 会 产 生 了 不 小 的 影 响 另 外, 截 止 目 前, 中 国 至 少 已 有 5 篇 专 文 研 究 池 田 大 作 的 和 平 思 想, 充 分 肯 定 了 池 田 大 作 和 平 思 想 的 积 极 意 义 杨 秀 梅 与 王 兴 珍 分 析 了 战 后 初 期 日 本 妇 女 积 极 参 与 禁 止 原 子 弹 氢 弹 运 动, 肯 定 了 她 们 在 战 后 和 平 运 动 中 的 积 极 作 用 36) 徐 勇 参 加 了 2004 年 8 月 在 广 岛 和 熊 本 举 办 的 原 爆 纪 念 33) 刘 华 英 吴 建 华 徐 恺 : 论 战 后 日 本 和 平 民 主 主 义 思 潮 的 变 迁 兼 谈 其 对 政 治 右 倾 化 的 影 响, 西 南 师 范 大 学 学 报 ( 人 文 社 会 科 学 版 ) 2002 年 第 6 期, 第 111 页 34) 刘 小 林 : 冷 战 后 日 本 的 和 平 运 动 与 和 平 理 念, 日 本 学 刊 2006 年 第 5 期, 第 22 页 35) 朱 光 明 : 坂 本 义 和 的 和 平 主 义 新 构 想, 东 方 论 坛 1995 年 第 1 期, 第 43-49 页 36) 杨 秀 梅 王 兴 珍 : 试 析 日 本 妇 女 在 和 平 运 动 中 的 作 用, 齐 齐 哈 尔 师 范 学 院 学 报 1995 192
中 国 人 眼 中 的 日 本 和 平 运 动 - 以 人 民 日 报 的 报 道 为 中 心 - 活 动 和 市 民 的 和 平 游 行 运 动, 回 国 后 介 绍 了 当 地 市 民 和 平 运 动 的 发 展 情 况 和 成 就 以 及 中 日 双 方 在 历 史 认 识 上 的 差 距 37) 2005 年 10 月, 胡 澎 在 日 本 民 间 的 左 翼 运 动 一 文 中, 介 绍 了 守 卫 和 平 宪 法 的 九 条 会 家 永 三 郎 的 教 科 书 诉 讼 活 动 反 对 扶 桑 社 版 教 科 书 运 动 等 维 护 和 平 的 民 间 左 翼 运 动 情 况 38), 这 犹 如 寒 冰 期 中 日 关 系 下 的 暖 流, 不 仅 令 人 感 动, 更 给 人 以 希 望 夏 维 勇 以 越 平 联 运 动 为 中 心, 研 究 了 20 世 纪 60 年 代 末 70 年 代 初 日 本 的 市 民 主 义 与 和 平 运 动 关 系, 认 为 市 民 主 义 思 想 对 当 时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发 展 和 平 意 识 在 民 众 中 的 深 化 发 挥 了 积 极 的 作 用, 促 进 了 越 南 战 争 期 间 反 战 运 动 的 发 展, 并 对 此 后 日 本 的 和 平 主 义 文 化 产 生 了 深 远 的 影 响 39) 同 时 指 出 了 市 民 主 义 思 想 在 一 定 程 度 上 分 散 了 和 平 运 动 的 斗 争 目 标 和 方 向, 容 易 受 到 反 对 势 力 的 分 化 和 破 坏, 有 时 候 具 有 很 强 的 利 己 主 义 倾 向 等 局 限 性, 有 助 于 我 们 体 会 20 世 纪 60 年 代 后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广 泛 性 和 复 杂 性 20 世 纪 80 年 代 中 期 以 来, 中 国 人 关 注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另 一 项 重 要 内 容 就 是 非 常 注 意 日 本 佛 教 在 和 平 运 动 中 的 作 用, 关 于 这 方 面 的 报 道 或 介 绍 主 要 是 法 音 天 风 和 佛 教 文 化 等 宗 教 刊 物 其 中, 我 们 最 为 关 注 的 是 日 本 佛 教 曹 洞 宗 立 正 佼 成 会 会 长 庭 野 日 敬 先 生 为 维 护 世 界 和 平 和 中 日 友 好 作 出 的 积 极 努 力 1970 年 10 月, 庭 野 日 敬 联 络 世 界 著 名 的 宗 教 界 人 士 发 起 成 立 了 世 界 宗 教 者 和 平 会 议, 以 联 合 世 界 宗 教 界 力 量, 实 现 人 类 持 久 的 和 平 1978 年, 佼 成 会 设 庭 野 和 平 财 团, 开 设 庭 野 和 平 奖, 从 1983 年 开 始 每 年 一 次 奖 励 为 国 际 和 平 事 业 作 出 突 出 贡 献 的 组 织 或 个 人 庭 野 先 生 的 努 力 得 到 了 包 括 中 国 在 内 的 世 界 宗 教 界 人 士 的 尊 敬 和 支 持 2006 年 8 月 26-29 日, 世 界 宗 教 界 聚 首 日 本 京 都, 抵 制 暴 力, 呼 吁 和 平, 在 某 种 程 度 上 也 可 以 看 作 是 推 崇 庭 野 先 生 的 证 明 吧 中 国 人 再 次 关 注 和 研 究 日 本 和 平 运 动 的 新 时 期, 主 要 有 以 下 几 个 特 点 1. 中 国 人 关 注 日 本 和 平 运 动 的 次 数 较 少, 程 度 不 高, 态 度 也 比 较 客 观, 与 前 述 各 个 阶 段 相 比 少 了 很 多 情 感 色 彩 2. 中 国 人 报 道 或 介 绍 日 本 和 平 运 动 的 内 容, 虽 与 前 述 各 个 时 期 具 有 一 定 的 延 续 性 和 继 承 性, 但 增 加 了 日 本 佛 教 在 和 平 运 动 中 的 作 用 和 战 后 日 本 国 民 反 省 战 争 责 任 的 内 容 3. 中 国 学 界 已 开 始 从 学 术 视 角 研 究 日 本 和 平 运 动, 但 研 究 的 质 量 和 水 平 有 待 进 一 步 提 高 4. 中 国 人 虽 再 次 关 注 和 研 究 日 本 和 平 运 动, 但 似 乎 并 未 引 起 绝 大 多 数 国 民 的 共 感 究 其 原 因, 除 报 道 日 本 和 平 运 动 数 量 少, 研 究 的 程 度 不 高 及 普 及 面 较 小 等 因 素 外, 主 要 在 年 第 5 期, 第 204-207 页 37) 徐 勇 : 日 本 广 岛 熊 本 的 原 爆 纪 念 与 市 民 和 平 运 动 述 评, 抗 日 战 争 研 究 2004 年 第 3 期, 第 239-247 页 38) 胡 澎 : 日 本 民 间 的 左 翼 运 动, 南 风 窗 2005 年 10 月 ( 下 ), 第 74-76 页 39) 夏 维 勇 : 日 本 60 年 代 末 70 年 代 初 关 于 市 民 和 市 民 运 动 的 讨 论 以 越 平 联 运 动 为 中 心, 当 代 亚 太 2005 年 第 12 期, 第 45-51 页 ; 日 本 60 年 代 后 期 的 市 民 主 义 与 和 平 运 动 以 越 平 联 运 动 为 中 心, 国 际 政 治 研 究 2006 年 第 3 期, 第 174-183 页 19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于 日 本 国 内 右 翼 活 动 日 益 猖 獗, 日 本 政 府 在 处 理 历 史 问 题 上 态 度 暧 昧 凡 此 种 种, 更 使 教 科 书 问 题 参 拜 靖 国 神 社 问 题 日 军 遗 留 化 学 武 器 慰 安 妇 问 题 及 战 争 受 害 民 众 的 赔 偿 诉 讼 等 中 日 间 的 历 史 遗 留 问 题 日 益 突 出 与 此 同 时, 中 日 两 国 的 主 流 媒 体 也 似 乎 不 约 而 同 地 聚 焦 在 中 日 间 的 历 史 问 题 和 现 实 利 益 的 争 吵 上, 都 轻 视 了 对 日 本 和 平 运 动 的 报 道 和 介 绍 如 此 情 况 下, 不 仅 极 易 勾 起 中 国 人 对 当 年 日 军 犯 下 滔 天 罪 恶 的 痛 苦 记 忆, 而 且 增 加 了 对 现 今 日 本 右 翼 活 动 的 不 满 和 愤 怒, 很 难 形 成 对 日 友 好 感 情 历 史 地 看, 中 国 人 曾 经 高 度 关 注 日 本 和 平 运 动, 积 极 声 援 和 大 力 支 持 日 本 人 民 的 反 战 反 核 反 美 斗 争, 即 使 在 中 共 与 日 共 两 党 关 系 完 全 破 裂 时 期, 仍 继 续 关 注 和 支 持 日 本 人 民 的 反 美 斗 争 随 着 文 革 结 束 和 中 国 领 导 层 的 调 整, 中 国 实 施 了 走 向 世 界 的 改 革 开 放 政 策, 积 极 发 展 中 日 两 国 各 个 层 面 的 双 边 关 系 和 多 边 关 系, 不 仅 再 次 报 道 或 介 绍 日 本 和 平 运 动, 而 且 中 国 学 界 也 开 始 积 极 地 从 学 术 视 角 研 究 日 本 和 平 运 动 然 而, 不 可 否 认 的 事 实 是, 日 本 和 平 运 动 似 乎 正 逐 渐 淡 出 普 通 中 国 人 的 视 野 虽 然 这 有 日 本 和 平 运 动 日 益 分 散 化 地 方 化 影 响 力 相 对 弱 化 的 因 素, 但 在 中 日 两 国 民 众 尤 其 是 青 年 人 的 民 族 主 义 情 绪 燃 烧 的 今 天, 往 往 因 为 一 些 偶 发 事 件 导 致 两 国 民 声 鼎 沸, 以 致 两 国 政 府 都 难 以 转 弯, 那 么 还 有 多 少 普 通 的 中 国 人 能 够 正 视 日 本 国 内 的 和 平 运 动 呢? 194
중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평화운동 - 인민일보 의 보도를 중심으로 - 중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평화운동 - 인민일보 의 보도를 중심으로 - 쉬즈민 (중국 사화과학원 근대사연구소) Ⅰ. 적극적 성원(여론 지원) Ⅱ. 실질적 지원 Ⅲ. 비판, 지지 그리고 무시 Ⅳ. 관심과 연구 <목 차> 중국과 일본은 바다를 사이에 둔 이웃으로 깊은 역사 문화적 유대가 있을 뿐 아니라 각 영역에서 우호적으로 교류해왔으며, 비록 근대에 일본이 여러 번 중국을 침략했지만 이제 양국은 다시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 따라서 중국인은 일본인의 평화운동에 자연스럽게 일 종의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중국 공산당 중앙기관지 인민일 보 의 보도를 통해, 전후 일본의 평화운동에 대해 중국인이 적극적인 성원에서 실질적인 지 원으로 다시 비판과 지지 및 무시를 거쳐 이제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변화 과정 을 거쳤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일본 평화운동의 내용, 수준 및 태도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은 국제 질서의 변화와 중일관계의 조정 및 변동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동시에, 우호 적인 중일관계와 세계평화를 위해 일본인과 함께 노력하고자 하는 중국인의 바람직한 염원 을 반영하는 것이다. Ⅰ. 적극적 성원(여론 지원) 중화인민공화국은 출범 이후 대소 일변도 외교 정책을 취하면서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 의 진영에 가담하였다. 반면 민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물러나면서, 중국 대륙을 잃은 미 국은 전후 일본 개혁을 주도하면서 전범에 대한 엄격한 처벌 정책을 완화시켰고, 특히 한 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오히려 일본에 군비 재확충을 요구하는 등 일본을 극동의 전략적 19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교두보 이자 반공 방파제 로 구축하였다. 그 결과 중일관계는 오랫동안 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국제적인 냉전 과 한반도 열전 을 배경으로 중국과 일본의 우호적인 교 류나 인적 왕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인들은 미국의 북한 침략 전쟁 반대, 단독강 화 반대, 일본 재무장 반대 등 일본 민중 운동을 적극 성원하면서, 중일 무역 촉진과 기타 각종 평화 집회 및 서명 운동을 통해 민족 독립과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그들의 싸 움을 격려하였다. 미국의 북한 침략 전쟁에 대한 일본 민중의 반대를 성원하기위해, 당시 중국 중앙 정부 와 외교부의 의향을 반영하는 양대 신문 잡지로서 인민일보 와 세계지식 지( 誌 )는 일본 평화주의자들의 투쟁 상황을 국내에 적극 보도하면서, 일본 국내 반전 평화운동을 탄압하 고 가로막는 일본 정부를 비난하였다. 1950년 7월 7일, 7 7사변 13주년이자 한국전쟁 발발 2주가 채 안 된 특별한 날에, 인민일보 는 일본 평화주의자들이 배포하거나 붙인 반전 전 단과 표어를 보도하면서, 미국의 북한 침략에 항의하며 미군 군용 물자 선적을 거부한 가 나가와( 神 奈 川 ) 현 노동자들에 대해 보도하였다. 1) 1950년 8월 19일 일본 정부는 한국전 쟁과 일본의 입장 이라는 백서를 통해, 북한의 남한 침략 을 비난하고 미국의 북한 무력 정 복을 지지하면서 반전 운동을 중단하도록 일본 민중을 위협하는 동시에 단독강화 정책을 애써 치켜세웠다. 이에 대해 리춘칭( 李 純 靑 )은 요시다( 吉 田 )는 미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 까 주구 백서롤 보자 라는 글에서, 일본 국내 평화 민주 운동을 탄압하면서 미국의 북한 침략 전쟁에 협조하는 일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침략 재개와 극동 평화 파괴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2), 일본 민중의 반전 반미 투쟁을 성원하였다. 1952년 8월 21일과 1953년 7월 25일 인민일보 는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의 경찰 후비대를 한국 전선으로 파견 하려는 미국에 반대하고 즉각적인 한국전쟁 중지와 대화를 통한 국제 분쟁 해결을 호소하 는 일본 평화운동을 보도하면서, 평화를 위한 일본인들의 투쟁 정신을 칭송하였다. 사실 일본과 모든 동맹국의 전면강화 조약 체결은 중국, 소련 등 사회주의 진영의 바람 과 요청일뿐 아니라, 일본인이 어렵게 얻은 평화라는 성과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필수적 이었다. 딩웨이( 丁 未 )는 일본에 대한 소련의 정의로운 주장 을 통해, 일본이 포츠담 선 언 의 원칙을 준수하여 민주적인 비군사 국가가 되어댜 한다고 소련이 요구하도록 중국 인 민이 시종일관 옹호하였으며 3), 국제적 합의를 무시한 단독 강화에 반대하고 일본인이 평화 1) 일본 평화운동 성장, 노동자 미군 조선 침략 군수물자 선적 거부, 미일 반동파의 진보 여론 핍 박 가속화, 人 民 日 報, 1950년 7월 7일 제4판. 2) 李 純 靑, 요시다( 吉 田 )는 미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주구 백서롤 보자, 世 界 知 識, 1950년 9호, 8-10p. 3) 丁 未, 일본에 대한 소련의 정의로운 주장, 世 界 知 識, 1950년 10호, 15-17p. 196
중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평화운동 - 인민일보 의 보도를 중심으로 - 와 민주의 길을 선택하도록 동정하고 지지했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요시다 정부가 단독강화를 고집하면서, 일본 평화주의자들은 중국과 소련 등을 도외시한 단독강화 에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1951년 6월 7일 인민일보 는 일본의 일부 유명인사들이 일 본에 전면강화 조약을 요구하는 소련의 제안을 지지하고 나섰다고 보도하면서, 전면강화만 이 일본의 독립과 평화를 지켜낼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어 신화사( 新 華 社 ) 기자는 세계 평화이사회에 참석한 도미자와 히로시( 富 澤 宏 ) 일본 대표의 보고를 근거로 일본의 진보적 노동자, 농민, 과학자, 문화계 인사 등의 단체로 구성된 전면강화애국운동협의회가 1951년 1월에 정식 출범하였다고 국내에 소개하였다. 같은 해 9월 1일 이 협의회는 도쿄에서 4만 명이 참석한 항의 집회를 열고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청원서를 전달하면서, 요시다 시게루 ( 吉 田 茂 )는 전체 일본인의 의지를 대변하지 못하므로 그가 서명한 모든 조약은 무효라고 밝혔다. 4) 비록 이 운동으로 미국과 일본 정부의 단독강화를 막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보도 는 일본 민중의 단독강화 반대 운동 진행 과정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과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중국인들의 성원과 흠모 및 기대 등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의 일본 재무장 반대와 핵무기 금지 요구는 일본 평화운동의 핵심 내용이자 일본이 평화의 길을 걷기 바라는 중국인들의 기대이기도 했기에, 인민일보 에 관련 내용이 많았다. 1951년 3월 3일 인민일보 는 일본 평화상설위원회가 2월 21일 회의를 열고 각 민주당파와 진보단체의 공동 행동과 재무장 반대 및 핵무기 금지 요구 결의를 통과시켰다고 보도하였 다. 3월 6일 다시 미국의 일본 재무장 계획, 일본인이 분쇄해야 세계평화이사회 가와무라 카즈오( 河 村 一 夫 ) 일본 대표 연설 요약문 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일본 재무장에 대한 일 본 각계의 반대 투쟁을 소개하였다. 1952년 9월 7일, 사샤오( 夏 曉 )는 일본의 민족해방투 쟁과 반전평화운동은 불가분의 관계 라는 글에서 그해 2월 28일 일본 청년들이 도쿄에서 가진 징병 반대 전국 청년 총궐기 대회 와 시위 활동 그리고 이튿날 도쿄에서 다시 열린 징병 반대 전국 청년 회의 를 소개하면서, 일본 민중의 징병 반대 운동의 열정과 투쟁 정 신을 높이 평가하였다. 인민일보 는 또한 1953년 12월 일본 인민 평화 대회 에서 재무장 반대를 호소하고 핵폭탄, 수소폭탄 등 대규모 살상 무기 금지를 요구하였으며 1954년 일본 평화운동의 방침은 곧 일본 재무장 반대라고 보도하였다. 5) 이러한 보도는 재무장 반대와 원자탄, 수소폭탄 등 무기 금지를 요구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중국인이 관심을 가졌을 뿐 4) 일본 민족은 매국적 강화조약을 결연하게 분쇄해야 도미자와 히로시 일본대표의 세계평화이사 회 3일째 회의 발언, 人 民 日 報, 1951년 11월 10일 제4판. 5) 일본 인민 평화집회 기록, 人 民 日 報 1954년 1월 6일 4판; 일본 평화위원회 상임위 회의 진행 옹호, 현단계 일본 평화운동의 중심 임무로 재군비 반대 확정, 人 民 日 報 1954년 1월 31일 4판. 19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아니라 그들의 정의로운 투쟁을 힘껏 성원했다는 증거들이다. 중국과의 우호 관계과 호혜 평등한 무역 관계 구축은 1950년대 초 일본 평화운동의 또 다른 핵심 내용으로, 역시 중국인의 관심을 모았다. 1950년 8월 중일 민간 무역이 재개되 었지만, 일본 정부의 방해와 대공산권 수출 통제 위원회(COCOM : Coordination Committee for Export Control) 가입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진전이 더뎠을 뿐 아니라, 종종 협정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 등 중일 무역 관계의 진전을 심각하게 저해하였다. 일본 인 특히 재계인사들은 중일관계 회복과 중일무역 촉진 캠페인을 발기하였다. 1952년 7월 15일 쉬위민( 許 予 民 )은 중일무역촉진회와 중일우호협회가 벌인 중일무역 촉진을 위한 서명 운동을 국내에 소개하였다. 6) 같은해 9월 27일 인민일보는 일본 평화운동 지도자인 히라노 요시타로( 平 野 義 太 郎 )의 평화를 위해 분투하는 일본인 을 소개하면서, 일본의 좌파 사 회당, 개진당, 재계, 중소기업, 노동자, 농민들이 모두 중일무역협정 실현을 갈망한다고 지 적하였다. 아태지역평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 마쓰모토 지이치로( 松 本 治 一 郎 )는 일본에서 중일무역 촉진 운동은 평화운동의 실질적인 내용이 되었다. 7) 고 하였다. 중국인은 이에 적 극 화답하였다. 양잔린( 楊 湛 林 )은 일본의 금수 반대 운동 등 대중국 무역 금지 조치를 타 파하기 위해 일본인이 벌인 투쟁을 소개하였다. 8) 중일무역 촉진 운동은 객관적으로도 중국 과 일본 경제가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필요하였으므로, 일본 평화운동의 핵심 내 용이자 중국인의 외교 노력 목표이기도 했다. 인민일보 는 일본 평화수호위원회가 조직하고 이끄는 여러 평화운동을 국내에 적극 소 개하면서, 일본 평화주의자들에게 요시다 정부의 봉쇄를 뚫고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태지역 평화회의 참석을 호소하였다. 1948년 8월 일본 각계 인사들은 민주주의옹호동맹 준비위원 회 를 발족하였다. 1949년 4월 이 준비위는 다시 전국적인 평화보위회로 재편되었고, 후에 점차 일본평화옹호위원회로 발전하면서 일본 평화운동을 이끄는 중임을 맡게 되었다. 쑹칭 링( 宋 慶 齡 ), 궈모뤄( 郭 沫 若 ) 등은 아태지역평화회의를 주도하면서 일본 평화주의자의 참석 을 적극 요청하였다. 히라노 요시타로, 야나가타 겐쥬로( 柳 田 謙 十 郞 ) 등의 적극적인 화답을 받았지만 결국 요시다 정부의 방해로 성사되지 못했다. 9) 같은 해 10월 30일 중국 정부는 Kitchlew 인도평화대표단 단장의 말을 빌어, 아태지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는 일본 대표를 체포 구금하고 세계인민평화대회에 참석하려는 일본 대표를 감시하고 비자 발급을 거부하 6) 許 予 民, 자유, 독립, 평화를 위해 싸우는 일본 인민, 人 民 日 報 1952년 7월 15일 4판. 7) 松 本 治 一 郎, 최근 일본의 평화운동, 人 民 日 報 1953년 3월 21일 4판. 8) 楊 湛 林, 일본의 금수 반대 운동, 世 界 知 識 1953년 12호, 14-15p. 9) 許 予 民, 자유, 독립, 평화를 위해 싸우는 일본인, 人 民 日 報 1952년 7월 15일 4판. 198
중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평화운동 - 인민일보 의 보도를 중심으로 - 는 등 일본 정부의 무뢰한 행동을 비판하면서, 일본 인민의 평화민주 운동을 성원하였다. 인민일보 는 또한 평화와 일본 독립을 지키는 투쟁에서 보여준 일본 공산당의 지도력을 칭 송하면서 일본 평화운동 지도자인 오야마 이쿠오( 大 山 郁 夫 )의 스탈린 국제평화상 수상을 축하하였다. 이 외에도 세계지식 지는 일본 진보 영화 사업의 발전상과 도쿄, 오사카, 지바현, 미에 현, 삿포로시 등지 경찰의 평화운동 서명 지원 상황을 집중 소개하여 10), 일본 평화운동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1952년 세계지식 18호는 사설을 통해 독립 쟁취를 위한 일본인의 투쟁은 세계 평화운동에 큰 공헌을 할 것 이라고 격찬하면서 일본인이 미제국주 의가 그들에게 채운 족쇄를 풀고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 을 확신한다며, 일본인의 반전 평 화 투지를 고취하였다. 1950년대 초,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⑴미 국과 일본 정부의 방해로 중일 인적 교류가 극히 제한되었으므로,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중국인의 지원 방식은 대부분 여론의 지지였다. ⑵일본 평화운동 현황에 대한 소개는 인민 일보 와 세계지식 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 밖에 1954년 정선위( 鄭 森 禹 )가 출판한 일본 평화운동 11) 이 있는데, 중국 국내에서 가장 먼저 일본 평화운동을 소개한 소책자이다. ⑶ 주로 주목한 부분은 일본 평화운동 가운데 중국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일본인의 대북전쟁 반대, 중일 정상 무역 촉진 운동, 전면강화 조약 체결 요구 등이 있다. 이는 냉전 구도 속의 험난한 국제 정세를 객관적으로 반영한 것이면서 또한 중국이 세계 여론의 지원 을 얻으면서 일본 평화운동을 성원한다는 선전 내용이기도 했다. Ⅱ. 실질적 지원 1954년 3월 미국이 태평양의 비키니 환초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하고, 그 낙진이 일본 어선까지 날아와 선원이 다치고 심지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9년 남짓한 세월 동안 세 차례 원폭 피해를 입게 되자, 일본인들은 전국적으로 미국 수소폭탄 실험에 항의하고 핵무기 금지를 요구하는 투쟁에 나섰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수많은 시민단체, 정당, 종 교단체가 성명을 발표하거나 항의하면서 핵무기 금지를 요구하였다. 일본에서 전국 400여 대도시 시장으로 구성된 전국시장회의와 참의원, 중의원이 모두 앞다투어 같은 결의 10) 韓 瀛, 일본 경찰의 반전 정서, 世 界 知 識 1950년 23호, 17p; P. 유리네프 저, 蘭 浩 鈞 역, 일본의 진보 영화, 世 界 知 識 1953년 14호, 29-30p. 11) 鄭 森 禹, 일본 평화운동, 世 界 知 識 社, 1954년. 19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안을 통과시켰다. 12) 일본인들의 반핵운동이 단호하면서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 다는 뜻이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이 두번째 단계로 들어서 는데, 곧 1955년부터 1966년까지 일본에서 매년 열린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를 중심으로 하는 반전 반핵평화운동 시대이다. 중일 경제 무역이 우여곡절을 거쳐 발전하고 양국 민간 인사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따라 인적 교류가 점차 늘어나면서, 일본 국내 반전 반핵 운동에 대한 중국인의 동정과 성원은 점차 실질적인 지원으로 발전하였다. 먼저, 중국의 주요 평화단체는 일본 평화운동의 적극 적 의미와 중요한 역할을 인정하면서 일본인의 꾸준한 반전반핵 투쟁을 격려하는 뜻을 평 화운동 조직에 여러 차례 전달하였다. 일례로 난하이( 藍 海 )는 평화 중립 쟁취를 위한 일 본인의 투쟁 에서 일본인의 안보투쟁은 일본 민주역량의 단결과 새로운 발전을 보여주는 지표 로 앞으로 미국 전쟁정책을 추수하는 기시 노부스케( 岸 信 介 ) 그룹에 큰 타격이 될 것 이며, 일본의 민간 운동 역사상 획기적인 의미가 있다 13) 면서 일본 국내 평화 역량의 단결을 과시한다는 실질적 의미를 높이 평가하였다. 1959년 11월 20일, 아태지역평화연락 위원회는 일본 평화대회의 개최를 축하하고 평화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일본인에게 진심으 로 존경을 보내면서, 아태지역 나아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핵폭탄 금지를 위한 일본인 의 투쟁이 더 큰 규모의 평화운동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뜻을 전달했다. 1963 년 2월 27일, 중국인민 세계평화보위 위원회는 일본의 미국 핵실험 반대와 일본을 이용한 미국의 전쟁 획책에 반대하는 정의로운 투쟁에 대한 단호한 지원의 뜻을 일본의 핵무기 금 지 협의회에 전달하였다. 14) 1964년 9월 7일, 중국인민 세계평화보위 위원회, 중국 아시아 아프리카 단결 위원회 등 단체는 미국 핵잠수함의 일본 진입과 미국의 인도차이나 침략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와 집회를 연 일본 인민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일본 관련 단체에 전달 하였다. 15) 중국인들은 일본인과 함께 미국의 핵전쟁 정책에 반대하고 극동 및 세계의 평화 를 지키고자 하였으며, 일본 평화운동에 전폭적인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둘째, 일본의 원자탄 피해자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으로 일본인의 반핵투쟁을 지원하였 다. 중국인민 세계평화보위 위원회, 중국 아시아 아프리카 단결 위원회 등 일곱 개 단체는 1955년부터 중국 인민의 명의로 매년 거액을 모금하여 원자탄 피해자들에게 보냈다. 16) 12) 藍 海, 핵무기 금지를 요구하는 일본인의 투쟁, 人 民 日 報 1955년 6월 30일 4판. 13) 藍 海, 평화 중립 쟁취를 위한 일본인의 투쟁, 人 民 日 報 1959년 3월 22일 4판. 14) 중평회 일본 핵무기 금지 협의회에 서한 전달,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 지지, 비키니 사건 기 념 집회 미 전쟁 정책에 큰 타격, 人 民 日 報 1963년 2월 28일 3판. 15) 중평회 등 단체 미 핵잠수함의 일본 주둔 음모 비난,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 지지, 人 民 日 報 1964년 9월 8일 4판. 200
중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평화운동 - 인민일보 의 보도를 중심으로 - 1961년 8월 12일 일본에서 열린 제7차 핵무기 금지 및 전면 군축 세계대회에 참석한 자오 푸추( 趙 朴 初 ) 중국 대표단 부단장은 중국 인민을 대표하여 750만 엔을 전달하면서 또 한 번 피폭자를 위문하고 17), 일본 인민의 반핵 운동을 지지하였다. 이 후 핵무기 금지 세계대 회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은 늘 정기적으로 히로시마, 나가사키 및 비키니 핵무기 사망자 유족과 피해자에게 깊은 동정과 위로의 뜻을 전달하였다. 1966년 7월 28일, 일본 대표단이 일본 정부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다시 한 번 히 로시마, 나가사키 및 비키니 핵무기 사망자 유족과 피해자에 대한 깊은 동정과 위문 18) 의 뜻을 제12차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에 친히 전달하여, 일본 피폭자에 대한 중국 정부와 인 민의 진심어린 동정과 진지한 원조의 뜻을 대변하였다. 셋째, 평화집회를 조직하여 일본의 평화운동을 지원하였다. 1962년 1월 4일 베이징의 각계 인민들은 일본 평화운동 지도자인 야스이 카오루( 安 井 郁 ) 환영대회를 열었다. 랴오청 지( 廖 承 志 )는 야스이 카오루와 그가 이끄는 일본 핵폭탄 금지 협의회에 대해 미일 반동파 의 새로운 전쟁 음모에 큰 타격을 가하고 각국 인민의 투쟁을 고무시켰으며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 면서, 세계 평화를 위한 투쟁 속에서 그와 일본 반핵운동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였다. 1963년 8월 1일 중국인들은 수도 베이징에서 만인대회를 열어 히 로시마의 비극을 재연해서는 안된다며 일본에서 개최되는 제9차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를 열렬히 지지하였다. 1964년 8월 7일 베이징 각계 인민들은 다시금 제10차 핵무기 금지 세 계대회를 지지하는 대회를 열고 저우페이위안( 周 培 源 )은 이번 대회는 9차 대회의 영광스 러운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미일 반동파와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파괴적 음모를 철저히 분 쇄하였다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의 민족민주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새롭게 공헌하였다. 20) 면서, 일본 평화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또 한 번 강조하였다. 이러한 평화집회는 모두 중국 인민들이 일본 평화운동을 지원했다는 유력 한 증거들이다. 16) 인민의 지혜와 용기는 모든 압박과 폭력을 반드시 격퇴한다, 일본 핵무기 금지 협의회 이사장 安 井 郁 의 환영회 발언, 人 民 日 報 1960년 2월 22일 4판. 17) 원자탄 금지 세계대회 개막, 대표들 미국의 전쟁정책 저지 투쟁 호소, 人 民 日 報 1961 년 8월 14일 3판. 18) 저우 총리 12차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에 축전, 반제반수정주의 전투의 깃발을 높이 든다면 핵 무기 금지와 철폐에 새롭게 이바지할 것, 人 民 日 報 1966년 7월 31일 1판. 19) 미제국주의를 중일 양국 땅에서 몰아내자, 베이징에서 열린 각계 인민의 安 井 郁 환영회에서 廖 承 志 의 연설 요약문, 人 民 日 報 1962년 1월 5일 4판. 20) 베이징에서 열린 각계 인민의 제10차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 지지 대회 周 培 源 발언, 人 民 日 報 1964년 8월 7일 5판. 20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넷째, 일본 평화운동 조직과 상호 지원하는 공동성명을 통해 일본 평화운동에서 일본 공산당의 지도적 지위를 지지하였다. 1962년 6월 7일, 중국인민 세계평화보위 위원회과 일 본 평화 위원회는 베이징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 인민은 서로의 반미투쟁을 상호 지원 할 뿐 아니라 함께 세계 각지의 정의로운 애국주의 투쟁을 지지하며, 공동 행동을 강화하 여 미국의 전쟁과 침략 행위를 분쇄한다고 밝혔다. 1963년 7월 1일 중국, 북한, 일본의 8 개 업종 노조와 노조 대표단은 공동 성명에서 세 나라 노동자 계급과 인민은 서로 지지하 고 원조하면서 공동의 적인 미제국주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21) 중국 정부와 인민의 지지 로 일본 평화운동의 자체 역량과 반전 반핵 투쟁에서의 발언권이 강화되었음은 물론이다. 1962년 8월 초, 일본 공산당 중앙정치국이 사회당과 총평(노동조합총평의회) 대표의 분열 활동을 비난하자, 인민일보 는 즉시 논설위원의 사설을 통해 이는 국제 평화운동과 일본 평화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일부 불분명한 견해를 바로잡았다. 앞으로 평화운동의 발전에 있어 큰 의미가 있다. 22) 고 지적하여, 일본 공산당의 평화운동 노선을 지지하였다. 1964년 7월 31일 제10회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에 참석한 류닝이( 劉 寧 一 ) 중국 대표단 단장은 일 본 반전 반핵 운동이 일관되게 견지하는 방침과 노선은 올바르며 중국 인민과 세계 인민이 진지하게 배워야 할 가치가 있다 23) 고 밝혀, 일본 공산당과 그가 이끄는 반핵운동과 평화운 동을 단호하게 지지하였다. 일본 평화운동의 내분과 일본 반핵운동의 생명력을 분열 또는 약화시키려는 미국과 소련의 음모를 감안하여, 중국 정부는 자신과 일치하는 일본 공산당 이 일본 평화운동의 지도권을 장악하도록 지지할 것을 결정하였다. 끝으로, 인민일보 와 세계지식 외에, 인민음악, 미술, 문학평론 등 더 많은 신문 잡 지에서 중국 국내에 일본 평화운동 현황을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중국에 대한 일본 평화운동의 영향력 확대를 반영하는 동시에,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이 커진 결과다. 필자는 지금까지 일본 평화운동에 관한 21편의 글을 발견하였으며 그 내용은 다음 의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⑴일본 핵무기 금지 운동 관련 기사가 5편으로, 주로 세계지 식 지에 실렸다. ⑵일본 문학계의 평화 민주 반전 투쟁에 관한 기사가 12편으로 미술, 인민음악, 세계지식, 문학평론 등에 골고루 실렸다. ⑶일본 평화운동 지도자를 애도하고 기시 노부스케 정부의 반중국 정책을 비판하며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을 지지하는 특집 기 21) 베이징에서 중국, 북한, 일본 8개 업종 노조와 노조 대표단 공동성명 발표, 베이징 노동자가 모여 세 나라 노동자 계급의 대단결 경축, 人 民 日 報 1963년 7월 2일 1판. 22) 일본 평화운동의 금후 올바른 발전 방향, 人 民 日 報 1962년 9월 2일 4판. 23) 劉 寧 一 중국 대표단 단장, 일본 핵무기 반대 운동의 위대한 성과 격찬, 반미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잘못된 노선에 반대하며 평화 보위 투쟁에 나서, 일본 인민과 세계 인민의 위대한 단결을 파괴하려는 한 줌의 분열주의자에 정면 경고, 人 民 日 報 1964년 8월 2일 4판. 202
중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평화운동 - 인민일보 의 보도를 중심으로 - 사가 4편이었다. 이 가운데 최근 일본의 대규모 반미 시위에 대한 마오 주석의 발언, 중국 인민은 일본 인민의 위대한 애국 투쟁을 지지한다 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1964년 1월 27일 중국을 방문한 스즈키 가즈오( 鈴 木 一 雄 ) 중일우호협회 부회장 겸 중일 무역촉진회 이사장 등을 접견할 당시 마오 주석의 연설을 주로 보도하였다. 중일 양국 인민이 단결하여 미제 국주의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통일 전선을 결성하여 미제국주의의 침략 계획과 전쟁 계획을 좌절시켜 세계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발언은 1960년대 중후반기 일본 인민 의 반미투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단계는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과 지지가 고조된 때로서, 주로 다음의 특징을 보였다. ⑴일본 평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중국 정부와 인민은 중국을 방문하여 상황을 소개하도록 일본 평화운동 지도자와 단체를 초청하고, 대표단을 파견하여 일본에서 열리는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 및 시위에 참여하면서 최대한의 자금을 지원하였다. ⑵일본 평화운동의 내분에 휘말려 운동을 이끄는 일본 공산당의 이론, 노선, 방침, 정책을 선전하 고 지지하였다. ⑶일본 공산당과 연합하여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분열 파괴 책동에 맞섰다. 중소 노선 투쟁과 관계 결렬 그리고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가열화라는 상황 속에서, 일본 평화운동 분열 초기 중국 공산당은 소련의 평화 공존 이론 및 일본 평화운 동을 분열시키고 파괴하려는 소련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비판하였다. 1964년 이후 일본 공 산당과 소련 공산당은 평화운동 이론과 노선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관계가 결렬되었다. 중 국 공산당, 북한 노동당 등은 공개적으로 일본 공산당 편에 서, 세계평화운동 과정에서 소 련이 주도하는 세계평화이사회 지도자가 강행한 잘못된 노선과 일본 평화운동을 분열시키 고 파괴시킨 활동을 비판하였다. ⑷일본에서 열린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 뿐 아니라 일본 각지의 반전 반핵 집회의 시위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하였다. 극동 지역의 평화를 지키고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견제하는 데 일본 평화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하면서, 일본 인민들의 보여준 위대한 역량을 높이 평가하였다. Ⅲ. 비판, 지지 그리고 무시 1966년 초, 마오쩌둥( 毛 澤 東 )과 중국을 방문한 미야모토 일본 공산당 총서기의 회담이 있었다. 양측은 소련 수정주의 에 대한 공동 대처, 미 제국주의와 소련 수정주의에 반대하 는 통일 전선 구축 및 인민 전쟁 이론 등을 둘러싸고 심각한 의견 충돌을 빚었으며, 결과 적으로 양국 공산당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인은 미야모토 겐지( 宮 本 顯 治 ) 그룹이 이끄는 일본 공산당의 핵무기 금지 운동과 기타 반전 평화운동을 비판하기 시작하 20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였지만, 당시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은 지지하였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중일 국교 정상화 이후 10년 동안, 인민일보 에 일본 평화운동과 반미 투쟁에 대한 소식은 전혀 보도되지 않 았다. 스스로 저조기에 접어들어 분열된 일본 평화운동은 중국인의 시야에서 사라진 듯하 였다. 일본 공산당이 이끄는 핵무기 금지 운동과 기타 평화운동에 대해 중국 공산당은 간접적 인 비판에서 공개적 비판 다시 총체적 비판으로 수위를 높여 가며, 일본 공산당 미야모토 그룹이 반중국 친소련[ 聯 蘇 媚 美 反 華, 소련과 연합하고 미국에 아첨며 중국에 반대한다 역자 주] 노선을 고집하면서 일본 평화운동 파괴를 기도한다고 지적하였다. 소련과의 공동 행 동 으로 미국 침략 전쟁 정책에 맞서자는 미야모토 겐지의 제안에, 저우언라이 총리는 소 련 수정주의자들과 공동 행동 을 꾀하는 주장은 그들이 세계인민을 속이도록 도울 뿐이다. 그들은 반제를 가장하여 투항을 가리고 지지를 가장하여 팔아넘기며 단결을 가장하여 분열 을 획책하는 추악한 반동의 얼굴을 가린다. 24) 고 지적하여, 일본의 소련과의 공동 행동 이 반동적 분열 행위라고 간접적으로 비판하였다. 1966년 8월 6일 저녁, 일본 정부의 방해로 제12차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에 참석하지 못한 중국 대표단은 이 회의에서 탈퇴하기 전 베 이징을 방문한 외국 대표단 환영 만찬에서 외국 친구들과 기타 외국 대표는 도쿄 세계대 회에서 올바른 노선을 견지하고, 소련의 현대 수정주의 지도자 그룹이 통제하는 세계 민주 청년연맹 대표가 대회에 끼어들도록 허용하는 일본 핵무기 금지 협의회 일부 지도자의 행 위에 반대하기 위해 단호한 투쟁을 벌였다. 면서 일본 공산당 일부 지도자를 미 제국주의 와 소련 수정주의의 추종자 라고 간접적으로 질책하였다. 25) 이는 일본 공산당 미야모토 겐 지 그룹이 핵무기 반대 운동을 지도하면서 보인 소위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동시에, 일 본 공산당 일부 인사들에게는 중국과 일치하는 입장으로 돌아오도록 여지를 남겨둔 것이기 도 하였다. 1967년 8월 11일 인민일보 는 반제 반수정주의 혁명 노선을 철저히 배반하고 반중국 친소련 정책 적극 실시, 미야모토 그룹 반핵분열회의 이용해, 일본 수정주의 투항노선 일본 과 세계 인민의 반발에 부딪혀, 회의 출석자 거의 없어 라는 글을 통해 일본 공산당 미야모 토 겐지 그룹을 공개적으로 거명하면서 그들이 개최한 제13차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 가 일 본 수정주의자들의 반중국 친소련 및 투항 반동 노선을 위한 회의로 소위 공동 행동 이라 24) 저우 총리 제12차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 축전, 반제반수정주의 전투의 깃발을 계속 높이 든다 면 핵무기 금지와 철폐에 새로운 공헌 가능, 人 民 日 報 1966년 7월 31일 1판. 25) 劉 寧 一 廖 承 志 환영 만찬에서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를 탈퇴한 외국 동지 환대, 핵무기 금지 운동의 영광스러운 전통 옹호, 미제와 소련 수정주의 및 그 추종자 단호히 반대, 人 民 日 報 1966년 8월 8일 4판. 204
중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평화운동 - 인민일보 의 보도를 중심으로 - 는 반동주의를 고취하였다고 비판하면서, 양국 공산당의 관계가 완전 결렬되었을 뿐 아니 라 일본 평화운동 관련 논쟁이 공개되면서 과열되었다. 이 글은 또한 노사카 산조( 野 坂 參 三 )가 과거 세계대회에서 일관되게 집행했던, 반제는 곧 반수정주의라는 혁명 노선을 공 개적으로 배반했다 며, 하타나카 마사하루( 畑 中 政 春 ) 일본 핵무기 금지 협의회 대표가 회 의에 제출한 총괄보고서 와 히라노 요시타로 일본 대표단 단장의 보고 는 모두 미야모토 그룹의 수정주의 나부랭이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미야모토 그룹이 추진하는 평화 공존 과 평화 과도( 過 渡 ) 수정주의 노선은 미얀마, 인도, 태국 등지 인민의 무장투쟁을 고의로 말 살하고 베트남 인민의 항미구국 투쟁을 팔아 넘겼다고 비난하면서, 미야모토 수정주의 그 룹은 역사의 쓰레기더미로 굴러들어갈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1972년까지 미야모토 수정주의 그룹이 의회 만능주의 라는 반혁명 궤변을 퍼트리면서 합법 투쟁 과 경제주의 를 고취하여 일본 인민의 혁명 투쟁을 방해하고 파괴하려는 미일 반동파에 협력하여 농민, 노동자와 학생의 관계를 도발하고 혁명 청년의 투쟁을 과소평가 하여 일본 혁명과 세계 혁명을 배반하였다는 등, 치욕스러운 행위 에 대한 인민일보 의 비 판이 이어졌다. 동시에, 미일 반동파 및 미야모토 수정주의 그룹과 용감하게 투쟁하는 일본 공산당(좌파)을 지지하면서, 일본 공산당 지방 당원과 군중들에게 미야모토 수정주의 그룹 에 반기를 들도록 요청하고, 일본 인민의 투쟁과 혁명의 물결을 가로막는 미야모토 수정주 의 그룹을 멸시하고 일본 공산당 좌파 조직의 주위에서 단결해 싸우자고 일본 인민에 호소 하였다. 미국의 베트남 침략 전쟁이 고조되면서, 평화운동을 파괴한다고 미야모토 수정주의 그 룹을 비판하는 여론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 것은, 중국인이 일본 국내의 반미 투쟁에 지속 적으로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는 점이다. 인민일보 는 주로 일본 인민들의 가두 시위, 미국 핵잠수함의 일본 진입 반대, 일본 각지의 미군 기지 철폐와 미일 안보조약 폐지 요구, 미 국 베트남 침략 전쟁에 대한 사토( 佐 藤 ) 정부의 적극적 협조 비난, 미제의 캄보디아 침략 과 인도차이나 전쟁 확대 비판 등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 상황을 보도하였다. 주된 보도 관점은 일본 인민이 빠르게 각성하고 있다. 26) 고 칭찬하거나, 그 미제와 일본 군국주의 를 반대하는 투쟁의 도도한 물줄기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27) 면서 일본 인민의 반전 반미 애국 투쟁을 고무하는 것이었다. 반미 투쟁의 와중에서 마오쩌둥 사상 의 기치를 들고 28) 26) 公 曲,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의 열기 고조, 人 民 日 報 1970년 1월 25일 5판. 27) 미일 안보조약 분쇄와 일본 군국주의 부활 반대, 일본 인민 반미 투쟁의 물결 막을 수 없어 6월 전국 천여 도시 수백만 미일 반동파 반대 시위 집회, 人 民 日 報 1970년 7월 1일 6판. 28) 미일 반동파 전쟁 정책과 침략 정책 분쇄, 일본 노동자 농민 학생 반미 시위 함께 벌여, 시위 군중 폭력에 굴하지 않고 반동 경찰과 용감히 싸워, 人 民 日 報 1969년 3월 4일 5판. 20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인민전쟁 방식으로 사토 매국 정부와 미국의 베트남 침략 전쟁에 저항하자는 일본의 일부 진보인사와 청년학생의 주장은 당시 일본에 대한 중국 문화대혁명 의 직접적인 영향을 반 영하였다. 마오쩌둥의 1964년 일본 인민의 반미 시위 지지 발언은, 일본 각계 인민의 반미 투쟁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이는 또한 문혁 당시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에 대한 인민일보 의 주요 보도 내용이었다. 1968년 1월 26일 신화사 보도에 따르면, 일본 혁명좌파와 각계 진 보인사는 발언을 통해 마오 주석의 이번 발언이 일본 인민 투쟁의 길을 밝혀주었다. 29) 고 지적하였다. 1970년 1월 30일 인민일보 는 다시 마오 주석의 발언은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에 큰 힘이 되었으며, 일본 인민은 반드시 미제를 몰아내고 미일 반동파 정권을 타도 할 수 있다. 30) 고 보도하였다.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 주석의 발언이 일본 인민의 반미 투 쟁에 큰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마오 주석에 대한 일본인의 경애하는 마음을 최대 한 부각시켰다. 1967년부터 1971년까지 5년 동안 인민일보 는 적어도 9편의 글을 통해 일 본 각계의 진보인사 또는 단체가 집회를 조직하거나 성명을 발표하여 마오주석 발언 3, 4, 6, 7주년을 기념하고 마오 주석의 정신의 정확성과 영향력을 강조했다고 보도하였다. 구체 적으로 보면 1968년 1월 28일 인민일보 에서는 마오주석의 발언이 위대한 전투 호소로 서, 세계 각국 인민의 반미 투쟁이 들불처럼 전세계에 번져가도록 전의를 북돋았다. 고 하 였다. 마오 주석의 발언은 일본 혁명의 근본 문제, 즉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가에 대해 가장 중요하고 유일하게 올바른 답변이었다. 31) 라는 쇼사쿠 이타이( 板 井 庄 作 ) 아시아 아프 리카 인민 단결 일본 위원회 사무국장의 발언을 빌어, 일본 마오쩌둥 사상 월간 지는 서면 담화문을 통해 일본 인민 투쟁의 발전이 곧 마오 주석 발언의 정확성을 입증한다 32) 고 하 였다. 인민일보 는 일본 각계 인사와 진보 단체 책임자가 마오 주석의 정신을 학습하여 투 장 현장이나 회의에서 마오 주석의 초상을 높이 걸고 마오 주석 발언 기념 활동을 열었다 29) 일본 혁명좌파와 진보인사의 발언, 마오 주석 발언 일본 인민 투쟁의 길을 밝혀, 광범위한 반 미 통일 전선으로 반미 투쟁 강화, 미야모토 그룹 미일 반동파와 소련 수정주의와 결탁, 반중 국 반혁명 반인민 배반 행위 비판, 人 民 日 報 1968년 1월 27일 7판. 30) 일본 진보단체 책임자 마오 주석 발언 6주년 열렬히 환호, 마오 주석 발언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에 대한 큰 지원, 일본 인민은 반드시 미제를 몰아내고 미일 반동파 정권 타도할 수 있 어, 人 民 日 報 1970년 1월 30일 5판. 31) 川 濑 一 贯, 萩 原 定 司 등 일본 우호인사 발언에 따르면, 마오 주석 발언이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 격려, 중일 우호 운동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 人 民 日 報 1971년 2월 2일 4판. 32) 일본 마오쩌둥 사상 월간 사 마오 주석 발언 7주년 성명에서 통일 전선 결성으로 미일 반동 파 타도하려는 투쟁이 증명하듯, 일본 민족은 미제국주의를 계속 등에 업기를 거부한다, 人 民 日 報 1971년 2월 5일 6판. 206
중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평화운동 - 인민일보 의 보도를 중심으로 - 고 보도하여, 마치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이 중국 문화대혁명 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다. 1972년 1월 25일 인민일보 는 바다제비 비바람을 뚫고 날아올라 일본 노동극단 인터 뷰 이라는 글을 통해 일본 노동자들이 일본 공산당(좌파)의 지도 아래 미일 반동파와 미 야모토 수정주의 그룹과 용감하게 투쟁해 온 사적 을 언급하였다. 이는 지금까지 필자가 발견한, 문혁 당시 인민일보 에 마지막으로 실린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에 관한 보도이다. 이후 무려 10년 동안 인민일보 에 일본 평화운동에 관한 보도는 전혀 없었다. 필자는 여기 에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⑴일본 평화운동 자체가 비록 명맥은 유지되었지 만 점차 분산되고 지방화되면서 과거만큼 중국인의 관심을 끌기 어려워졌다. 일본이 자본 주의 세계 제1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여 인민의 생활이 풍족해지고 중산층 의식이 강화되 면서,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차 개인의 직장 생활에 매몰되어 대규모 사회 활동 참 여가 저조해졌다. 이에 따라 1960년대 말 70년대 초 대규모 학생 운동과 사회 운동이 마감 된 후, 일본 국내적으로 대규모 사회 운동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⑵중국 국내에 린바오 ( 林 彪 )와 공자 비판 운동이라는 문화대혁명 의 열풍이 휩쓸고 지나가고 사인방 이 분쇄된 이후 중국 지도층은 조정을 거쳐 개혁개방 방침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극심한 변 동기 중국은 일본 평화운동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⑶국제 정세의 변화 역시 중국이 일본 평화운동에 그다지 관심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닉슨의 방중과 중일 국교 정상화 및 베트남 전쟁의 중지 그리고 소련의 공세에 직면한 중국은 미국 및 일본과 반소통일전선을 필요로 하였다. 이에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중국 정부와 인민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었다.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제3단계 중국인의 관심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⑴중국 공 산당과 일본 공산당 관계 결렬의 영향으로 인민일보 는 기존의 태도를 바꾸어 일본 공산당 미야모토 겐지가 지도하는 평화운동을 비판하고 그가 주도하는 핵무기 금지 운동 보도를 중단하였다. ⑵ 문화대혁명 의 영향으로 인민일보 는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을 지지하면서 도 주로 일본 공산당 좌파와 진보인사 등 마오쩌둥 사상의 기치를 든 반미 투쟁에 관심을 기울였다. ⑶일본 평화운동에 오랫동안 무관심하였다. 인민일보 에 오랫동안 일본 평화운동 보도가 없었을 뿐 아니라, 다른 신문 잡지 역시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소개가 사라졌다. 일 본 평화운동에 대한 이러한 무관심은 개혁개방 이후인 1982년까지 이어졌다. Ⅳ. 관심과 연구 1982년부터 인민일보 가 일본 평화운동 보도를 재개했지만, 지금까지 28년 동안 일본 20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평화 운동 보도 비중은 과거 3단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냉전 이후 중국인은 학술적 관점에서 일본 평화운동 연구를 강화하였다. 따라서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재조명 과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학술 연구가 당시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중국인이 가진 관심의 특 징을 이루었다. 1982년 이후 인민일보 의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보도 내용은 주로 다음 측면에서 이루 어졌다. 먼저, 일본 인민의 반핵평화운동을 보도하거나 소개하였다. 인민일보 와 세계지 식 은 1982, 1983, 1984년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를 번갈아 보도하였다. 이 가운데 1982년 8월 11일 인민일보 의 핵무기 금지 1982년 세계대회 는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보도를 재 개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인민일보 는 간헐적이라도 일본 인민의 반핵 운동을 언급하였 지만, 오랫동안 핵무기 금지 세계대회 에 관한 소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구소련과 동구권의 변화와 천안문 사건 등 국내외 정세 변화에 따라, 일본의 반핵평 화운동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은 더욱 줄었다. 둘째, 중국 지도자가 일본 평화운동 인사를 접견하거나 교류할 당시 시사 뉴스로서, 주로 리이민( 李 一 氓 ) 중국 국제교류협회 회장, 주 쉐판( 朱 學 範 ), 저우구청( 周 谷 城 ) 전국 인민대표자대회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의 나카바야시 사다오( 中 林 貞 男 )를 위시한 일본 평화운동 시민 대표단 접견, 왕전( 王 震 ) 중국 공산당 중 앙정치국 위원 등의 일본 평화운동 인사와의 교류 등 단신이었다. 또한, 일본 인민의 미군 범죄 항의, 미 군함 일본 항구 진입 반대, 유사3법 폐지와 미군기지의 일본 철수 요구 등 의 평화운동을 소개하거나 보도하였다. 마지막으로, 일부 일본 정치가가 연이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교과서 문제가 불거지면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 인식 문제 관련 논 쟁이 날로 첨예해졌다. 이에 따라 인민일보 에 일본 인민의 전쟁 책임 반성에 관한 보도가 나타났다. 냉전 이후 중국 학계 일부에서 학술적 관점에서 전후 일본 평화운동과 평화사상의 발전 과정 및 일본 사회에 대한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성과물이 나타났다. 류 화잉( 劉 華 英 ), 우젠화( 吳 建 華 ) 및 쉬카이( 徐 恺 )는 전후 일본 평화민주주의 사조의 발전과 변화 과정을 연구한 후, 패전의 그림자가 전후 일본 평화민주주의 사조 출현에 직접적인 원인으로 유리한 국제 정세가 촉진제 역할을 했으며 민주화 개혁이 그 사회적 생존 기반이 라고 보았다. 반면, 이 운동이 점차 쇠락하게 된 근본 원인은 평화민주주의 사조를 옹호하 는 이들의 양적 감소와 뿌리깊은 일본 민족 우월의식에 있다면서, 좌익 평화민주주의 사 조의 쇠퇴는 필연적이었다. 이는 우익 민족주의 사조가 장기간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는 결 과를 낳았고, 따라서 일본 정치 우경화와 보수화 역시 장기적인 과정 33) 이라면서, 일본의 33) 劉 華 英, 吳 建 華, 徐 恺, 전후 일본 평화민주주의 사조의 변천론 정치 우경화에 대한 영향과 208
중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평화운동 - 인민일보 의 보도를 중심으로 - 정치 대국화와 군사대국화에 대해 우리가 올바른 인식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심리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일깨웠다. 류샤오린( 劉 小 林 )은 전후 일본 평화운동과 평화이론의 변천을 연구 하여, 냉전 이후 일본 평화운동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방식을 바꾸어 더 자발적이고 자주적인 방식으로 아래에서 위로 활동을 전개했을 뿐이다. 평화운동이나 평화교육이 평화 연구와 상호 지원하고 영향을 미치는 내재적 상호 관계를 형성하였다. 평화를 중심으로 전 개되는 교육과 연구 및 활동이 전체 일본 사회의 가치관과 사회적 행위에 깊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일본 사회 사조의 주류여야 하며 또한 확실히 그러하였다. 34) 고 지적 하면서, 냉전 이후 일본 평화운동의 지속적 존재와 변화를 긍정하면서, 탈냉전 시대 평화 사조가 여전히 일본 사회 주류이며 점차 이데올로기나 민족국가를 넘어서 글로벌 시민 사 회의 평화운동을 구성할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사실상 냉전 종식 이후 일본 국내에서 전 개된 미일안보동맹 반대, 핵시설 반대, 미군기지 반대, 역사 왜곡 반대, 헌법 수호와 개헌 저지, 각지에서 통과된 평화 선언, 피해자 소송 지원, 가해자 입장에 선 전쟁 책임 추궁 등 반전평화 활동이 곧 그 가장 좋은 방증이다. 일본 평화운동 관련 중국 학자들의 연구는 주로 사카모토 요시카즈( 坂 本 義 和 )와 이케다 다이사쿠( 池 田 大 作 )의 평화주의 사상과 평화운동에서 여성의 역할, 민간의 좌익운동 및 시 민운동 등과 평화운동 관련 내용에 집중되었다. 주광밍( 朱 光 明 )은 사카모토 요시카즈의 평 화주의 신구상 에서 사카모토 요시카즈 도쿄대학 명예교수의 평화주의 신구상을 기술하였 는데, 이는 곧 1침략 전쟁 도발 및 협력 불가, 핵전쟁 협력 위험성 증대 불가, 군국주의에 대한 절대 부정. 2비군사적 성격의 평화유지 부대 단독 구성. 3UN과 일본이 책임져야 하는 의무와 책임 확정 등을 포함한, 평화주의 3대 원칙 견지였다. 35) 비록 이 구성이 실현 되지는 못했지만, 일본 평화주의 사상을 내용적으로 풍요롭게 했으며, 일본 사회에 많은 영 향을 미쳤다. 또한 지금까지 중국에서 최소 5편의 논문이 이케다 다이사쿠의 평화 사상을 연구하고, 그 평화사상이 가진 적극적 의미를 긍정하였다. 양슈메이( 楊 秀 梅 )와 왕싱전( 王 興 珍 )은 전후 초기 일본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핵폭탄 금지 운동을 분석하면서, 전후 평 화운동에서 여성의 적극적 역할을 인정하였다. 36) 쉬융( 徐 勇 )은 2004년 년 8월 히로시마와 구마모토( 熊 本 )에서 열린 원폭기념활동과 시민 평화 시위에 참석한 후, 귀국 이후 현지 시 민과 평화운동의 발전상과 성과 및 중일 간 역사 인식 차이를 소개하였다. 37) 2005년 10월 함께, 西 南 師 範 大 學 學 報 ( 人 文 社 會 科 學 판), 2002년 6호, 111p. 34) 劉 小 林, 탈냉전 일본의 평화운동과 평화이론, 日 本 學 刊, 2006년 5호, 22p. 35) 朱 光 明, 坂 本 義 和 의 평화주의 신구상, 東 方 論 壇, 1995년 1호, 43-49p. 36) 楊 秀 梅, 王 興 珍, 평화운동에서 일본 여성의 역할 분석, 齊 齊 哈 尔 師 範 學 院 學 報, 1995 년 5호, 204-207p. 20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후펑( 胡 澎 )은 일본 민간 좌익 운동 에서 평화 헌법을 지키는 9조회, 이에나가 사부로( 家 永 三 郎 )의 교과서 소송 활동, 후쇼사( 扶 桑 社 ) 판 교과서 반대 운동 등 평화 수호를 위한 민간 좌익 운동 상황을 소개하였는데 38), 이는 마치 빙하기 의 중일관계 아래에 흐르는 난 류 처럼 감동적일 뿐 아니라 한 줄기 희망이었다. 샤웨이융( 夏 維 勇 )은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 운동을 중심으로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 일본의 시민주의와 평화운동 관계를 연구한 결과, 시민주의 사상이 당시 일본 평화운동이 발전하고 평화 의식이 민중 속에 뿌 리박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베트남전쟁 당시 반전 운동의 발전을 촉진하고 이후 일본의 평화주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39) 고 보았다. 또한 시민주의 사상이 어느 정 도는 평화운동의 투쟁 목표와 방향성을 분산시켜 반대 세력의 분열 파괴에 쉽게 노출되었 으며 때로는 강한 이기주의 성향과 같은 한계를 보였다는 등의 지적은, 1960년대 이후 일 본 평화운동의 대중성과 복합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인이 주목한 일본 평화운동의 또 하나의 주요 내용은 일본 불 교가 평화운동에 미친 영향으로, 이와 관련된 보도나 소개는 주로 법음( 法 音 ), 천풍( 天 風 ), 불교문화( 佛 教 文 化 ) 등 종교 간행물에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우리가 가장 주목하 는 것은 일본 불교 조동종( 曹 洞 宗 ) 릿쇼우 코우세이카이( 立 正 佼 成 會 ) 니와노 닛교( 庭 野 日 敬 ) 회장이 세계 평화와 중일 우호를 위해 쏟은 노력들이었다. 1970년 10월 니와노 닛교 회장은 전세계의 종교계 인사를 불러 모아 세계종교인 평화회의 를 발기 출범시키고, 세계 종교계의 역량을 모아 인류의 지속적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1978년 코우세이카이는 니와노 평화재단을 설립하고 나와노 평화상을 출범시켜, 1983년부터 매년 국제평화에 공헌 한 조직이나 개인에게 수상하였다. 니와노 회장의 노력은 중국을 포함한 세계 종교계 인사 의 존경과 지지를 얻었다. 2006년 8월 26~29일 세계 종교계가 일본 교토에 모여 폭력 저 지와 평화를 호소하였는데, 어떤 측면에서는 니와노 회장에 대한 존경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중국인의 재조명과 연구라는 새로운 시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⑴중국인의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줄었고 태도 역시 객관적 인 편으로, 전술한 각 시대에 비해 감정적 색채가 옅어졌다. ⑵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중국 37) 徐 勇, 일본 히로시마, 구마모토 원폭 기념과 시민 평화운동 평가, 抗 日 戰 爭 研 究, 2004 년 3호, 239-247p. 38) 胡 澎, 일본 민간의 좌익 운동, 南 風 窗, 2005년 10월( 下 ), 74-76p. 39) 夏 維 勇, 일본 60년대 말 70년대 초 시민과 시민운동에 관한 토론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 연합 운동을 중심으로, 當 代 亞 太, 2005년 12호, 45-51p; 일본 60년대 후반 시민주 의와 평화운동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 운동을 중심으로, 國 際 政 治 研 究, 2006년 3 호, 174-183p. 210
중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평화운동 - 인민일보 의 보도를 중심으로 - 인의 보도나 소개는 전술한 각 시대와 어느 정도 연속성과 계승적 관계가 있지만, 평화운 동에서 일본 불교의 역할과 전후 일본 국민의 전쟁 책임 반성의 내용이 추가되었다. ⑶중 국 학계에서 학술적 관점의 일본 평화운동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앞으로 더 높은 수준의 연구가 요청된다. ⑷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재조명과 연구가 절대 다수 국민의 공감을 일 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 평화운동 보도의 양적 감소나 연구의 수준의 한계 또는 대중성 부족 등의 요인보다는, 일본 국내 우익의 활동이 날로 강력해지면서 일본 정 부가 역사 문제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 일본군이 남긴 화학무기, 위안부 문제 및 전쟁 피해자 피해 배상 소송 등 중일 역사 문제가 날로 부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중일 양국의 주류 매체 역시 약속이 나 한 듯이 중일 역사 문제와 현실적 이익 충돌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보도는 소홀해지고 있다. 이렇게 흘러갈 경우 당시 일본군의 전범 행위에 대한 중국 인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릴 뿐 아니라 현재 일본 우익 활동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키 우게 되므로,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정서를 형성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인은 한 때 일본 평화운동에 큰 관심을 갖고 일본 인민의 반전 반핵 반미 투쟁을 적극 성원하고 힘껏 지원하였으며, 중국 공산당과 일본 공산당의 관계가 완전히 결렬된 때에도 여전히 일본 인민의 반미 투쟁에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지원하였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중국 지도층이 바뀌면서 중국은 세계로 나아가는 개혁개방 정책을 실 시하였다. 이에 따라 모든 영역에서 중일 양국의 양자간 관계와 다자간 관계를 적극 발전 시키면서, 일본 평화운동을 다시 보도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 학계에서도 학술적인 관점에 서 일본 평화운동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일본 평화운동이 점차 일반 중국인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일본 평화운동이 날로 분산되 고 지역화되면서 영향력도 상대적으로 양화되었다는 요인이 작용하기는 하지만, 오늘날 중 일 양국 민중 특히 청년의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해지면서 일부 우발적인 사건이 양국 민간 정서를 악화시키고 양국 정부조차 이를 막기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중국인이 일본 국내의 평화운동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1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中 国 人 の 見 る 日 本 の 平 和 活 動 - 人 民 日 報 の 報 道 を 中 心 として - 徐 志 民 ( 中 国 社 会 科 学 院 近 代 史 研 究 所 ) 一. 積 極 的 声 援 二. 実 際 の 支 援 三. 批 判 支 持 と 無 関 心 四. 関 心 と 研 究 < 目 次 > 中 国 と 日 本 は 一 衣 帯 水 の 隣 国 で すでに 深 い 歴 史 的 文 化 関 係 があり 長 きに 渡 る 友 好 的 な 様 々な 交 流 があった 中 国 は 近 代 に 幾 度 も 日 本 の 侵 略 に 遭 ってはいるが 今 日 に おいて 両 国 は 再 び 平 和 的 に 付 き 合 わねばならない このため 中 国 人 は 戦 後 日 本 人 の 和 平 運 動 に 対 して 自 ずとある 種 の 特 殊 的 な 感 情 を 持 っている 中 共 中 央 機 関 紙 人 民 日 報 の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対 する 関 連 報 道 によると 次 のことが 分 かる 中 国 人 は 戦 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対 して 積 極 的 な 声 援 を 送 ることから 実 際 の 支 援 つまり 批 判 支 持 や 軽 視 を 経 て 再 び 改 めて 関 心 と 研 究 に 至 る 発 展 変 化 の 過 程 を 経 験 している 中 国 人 が 日 本 の 平 和 活 動 の 内 容 や 程 度 および 態 度 に 関 心 を 向 けるのは ある 程 度 国 際 情 勢 の 変 化 と 中 日 関 係 の 調 整 および 変 化 が 反 映 されていて 中 国 人 が 友 好 な 中 日 関 係 の 安 定 を 維 持 するために 日 本 人 と 共 に 努 力 するというすばらしい 願 望 を 切 に 望 んでいることも 反 映 されてい る 一 積 極 的 声 援 中 華 人 民 共 和 国 成 立 後 ソ 連 に 偏 った 外 交 政 策 を 実 施 し ソ 連 を 盟 主 とする 社 会 主 義 陣 営 に 加 わった 国 民 党 政 府 が 台 湾 へ 敗 退 したのに 伴 い 中 国 大 陸 を 失 った アメリ 212
中 国 人 の 見 る 日 本 の 平 和 活 動 - 人 民 日 報 の 報 道 を 中 心 として - カは 戦 後 日 本 の 改 革 を 主 導 するにあたり 戦 犯 を 厳 罰 に 処 す 政 策 をしだいに 緩 め 特 に 朝 鮮 戦 争 勃 発 後 は 逆 に 日 本 に 再 軍 備 を 要 求 し それを 極 東 の 戦 略 的 橋 頭 堡 と 反 共 防 波 堤 にすることを 必 要 としたため 中 日 関 係 は 長 期 的 に 極 めて 不 正 常 な 状 態 に 置 かれること となった このため 国 際 的 な 冷 戦 と 朝 鮮 半 島 の 熱 戦 という 状 況 下 で 中 日 の 友 好 的 交 流 と 人 員 の 往 来 は 相 当 困 難 であった 中 国 人 民 の 大 部 分 は 日 本 人 民 のアメリカの 朝 鮮 侵 略 戦 争 反 対 一 方 的 講 和 条 約 反 対 日 本 の 再 武 装 反 対 に 積 極 的 に 声 援 を 送 ること しかできず 中 日 貿 易 運 動 の 促 進 および 他 の 様 々な 平 和 集 会 や 署 名 運 動 を 推 し 進 め 彼 らが 民 族 独 立 や 平 和 民 主 のために 闘 争 することを 激 励 した 日 本 人 民 のアメリカの 朝 鮮 侵 略 戦 争 反 対 に 声 援 を 送 るために 人 民 日 報 と 世 界 知 識 は 当 時 主 に 中 国 中 央 政 府 と 外 交 部 の 意 向 を 反 映 した 二 大 新 聞 および 雑 誌 として 積 極 的 に 国 内 へ 日 本 の 平 和 支 持 者 の 闘 争 状 況 を 報 道 し 日 本 政 府 の 悪 人 を 手 助 けし 悪 事 を 働 くさまと 日 本 国 内 の 反 戦 平 和 運 動 を 鎮 圧 したことを 糾 弾 した 1950 年 7 月 7 日 七 七 事 変 ( 盧 溝 橋 事 件 ) 発 生 13 周 年 と 朝 鮮 戦 争 勃 発 後 二 週 間 未 満 という 特 別 な 日 に 人 民 日 報 は 日 本 の 平 和 支 持 者 たちが 大 量 の 反 戦 ビラやスローガンをまいたり 張 り 出 したり し アメリカの 朝 鮮 侵 略 に 抗 議 したこと および 神 奈 川 県 の 労 働 者 が 朝 鮮 を 侵 略 するアメリ カ 軍 の 軍 用 物 資 を 運 搬 することを 再 度 拒 否 したことを 報 道 した 1) 1950 年 8 月 19 日 日 本 政 府 は 朝 鮮 戦 争 と 日 本 の 立 場 という 白 書 を 発 表 し 朝 鮮 が 韓 国 を 侵 略 している こ とを 糾 弾 し アメリカが 朝 鮮 を 武 力 征 服 することを 支 持 し 日 本 の 民 衆 に 圧 力 をかけて 反 戦 活 動 を 止 めさせ 単 独 で 政 策 に 講 和 することを 力 の 限 り 喧 伝 した これについて 李 純 青 は 吉 田 がアメリカ 帝 国 主 義 をどの 程 度 援 助 するか 悪 しき 白 書 から 語 る という 文 中 で 吉 田 政 府 が 日 本 国 内 の 平 和 運 動 を 弾 圧 したことやアメリカの 朝 鮮 侵 略 戦 争 政 策 に 賛 同 し たことを 批 判 し そのことが 再 び 極 東 の 平 和 を 侵 略 し 破 壊 する 責 任 を 負 うことになると 警 告 し 2) 日 本 人 民 の 反 戦 反 米 闘 争 に 声 援 を 送 った 1952 年 8 月 21 日 と1953 年 7 月 25 日 人 民 日 報 は 二 度 に 渡 り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おいてアメリカが 日 本 の 警 察 予 備 隊 を 朝 鮮 の 前 線 に 派 遣 することに 反 対 し 朝 鮮 戦 争 を 即 時 停 戦 し 評 議 により 国 際 紛 争 を 解 決 する 活 動 を 呼 びかけたことを 報 道 し 日 本 人 民 の 平 和 を 守 る 闘 争 精 神 を 称 賛 した 実 は 日 本 があらゆる 同 盟 国 と 全 面 的 平 和 条 約 を 締 結 することは 中 ソなど 社 会 主 義 陣 1) 日 本 平 和 運 動 の 成 長 労 働 者 がアメリカ 軍 朝 鮮 侵 略 の 軍 火 の 運 搬 を 拒 否 米 日 反 動 派 が 進 歩 的 世 論 の 迫 害 を 強 化 する 人 民 日 報 1950 年 7 月 7 日 第 4 面 2) 李 純 青 吉 田 がアメリカ 帝 国 主 義 をどの 程 度 援 助 するか 悪 しき 白 書 から 語 る 世 界 知 識 1950 年 第 9 期 8-10 頁 21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営 各 国 の 願 望 と 要 求 であるだけでなく 日 本 人 が 容 易 ではない 平 和 の 成 果 を 維 持 する 重 要 な 保 障 でもあった 丁 未 は ソ 連 の 日 本 に 対 する 正 義 の 主 張 において 中 国 人 民 は ソ 連 が 日 本 に ポツダム 宣 言 遵 守 の 原 則 を 要 求 していることを 断 固 として 支 持 することを 強 調 することで 日 本 を 民 主 化 非 軍 事 化 国 家 の 正 義 の 主 張 にさせ 3) 国 際 協 議 に 違 反 する 一 方 的 な 講 和 行 為 に 反 対 し 日 本 人 民 が 平 和 民 主 の 道 を 選 ぶことに 共 感 支 持 した しかしアメリカ 政 府 と 吉 田 政 府 が 頑 なに 一 面 的 に 講 和 する 背 景 において 日 本 の 平 和 主 義 者 は 中 ソなどの 側 面 的 講 和 運 動 の 拒 絶 反 対 を 提 唱 することを 余 儀 なくされた 1951 年 6 月 7 日 人 民 日 報 は 日 本 の 著 名 な 知 識 人 の 一 部 がソ 連 の 対 日 本 全 面 平 和 条 約 締 結 要 求 の 提 案 への 支 持 を 次 々と 表 明 したことを 報 道 し このようにして 日 本 の 独 立 と 平 和 を 守 る ことができると 指 摘 した 続 いて 新 華 社 記 者 は 世 界 平 和 理 事 会 に 出 席 した 日 本 代 表 富 沢 宏 の 報 告 に 基 づき 国 内 へ 日 本 の 進 歩 的 労 働 者 農 民 科 学 者 文 化 人 などの 団 体 が 組 織 した 全 面 講 和 愛 国 運 動 協 議 会 が1951 年 1 月 に 正 式 に 成 立 したことを 国 内 へ 紹 介 した 同 年 9 月 1 日 当 該 協 議 会 は 東 京 で4 万 人 の 人 民 抗 議 大 会 を 組 織 し サンフ ランシスコ 会 議 へ 請 願 書 を 送 り 吉 田 茂 は 日 本 人 全 ての 意 思 を 代 表 できないし 彼 が 署 名 するいかなる 条 約 も 全 て 無 効 であるとの 声 明 を 出 した 4) 当 該 運 動 はアメリカ 日 本 政 府 の 一 方 的 な 講 和 活 動 を 阻 止 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にもかかわらず これらの 報 道 は 中 国 人 が 日 本 の 大 衆 が 一 方 的 な 講 和 運 動 の 進 展 状 況 に 反 対 していたことを 非 常 に 注 目 してい たことや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対 する 声 援 敬 服 と 期 待 を 反 映 していた アメリカが 日 本 を 再 武 装 させることへの 反 対 や 原 爆 禁 止 の 要 求 は 日 本 平 和 運 動 の 重 要 な 内 容 でもあり また 中 国 人 の 日 本 が 平 和 路 線 を 歩 むことを 期 待 していた 重 要 な 道 筋 で もあったため 人 民 日 報 におけるその 関 連 内 容 も 少 なくなかった 1951 年 3 月 3 日 人 民 日 報 は 日 本 の 平 和 常 設 委 員 会 が2 月 21 日 開 かれ 各 民 主 派 や 進 歩 団 体 が 連 携 活 動 をとったことを 通 して 再 武 装 反 対 と 原 子 爆 弾 禁 止 の 要 求 を 決 議 したことを 報 道 し た 3 月 6 日 また 日 本 人 民 はアメリカの 日 本 再 武 装 計 画 を 粉 砕 する 世 界 平 和 理 事 会 での 日 本 代 表 川 村 一 夫 の 演 説 要 旨 と 題 し 日 本 国 内 各 界 のアメリカの 日 本 再 武 装 に 反 対 する 闘 争 状 況 を 紹 介 した 1952 年 9 月 7 日 夏 暁 は 日 本 民 族 の 解 放 闘 争 と 平 和 獲 得 銭 湯 反 対 の 運 動 は 不 可 分 である と 題 する 論 を 発 表 し 当 年 2 月 28 日 日 本 の 青 年 が 東 京 で 全 国 青 年 徴 兵 反 対 総 決 起 大 会 とそのデモ 行 進 を 行 ったこと 翌 日 東 京 で 再 3) 丁 未 ソ 連 の 日 本 に 対 する 正 義 の 主 張 世 界 知 識 1950 年 第 10 期 15-17 頁 4) 日 本 民 族 は 売 国 的 条 約 を 断 固 として 粉 砕 すべし 日 本 代 表 富 沢 宏 の 世 界 平 和 理 事 会 三 日 の 会 議 場 での 発 言 人 民 日 報 1951 年 11 月 10 日 第 4 面 214
中 国 人 の 見 る 日 本 の 平 和 活 動 - 人 民 日 報 の 報 道 を 中 心 として - 度 全 国 青 年 徴 兵 反 対 会 議 を 開 いたことを 紹 介 し 日 本 の 大 衆 の 徴 兵 反 対 運 動 の 情 熱 と 闘 争 精 神 を 高 く 評 価 した 人 民 日 報 はさらに 1953 年 12 月 の 日 本 人 民 平 和 大 会 が 再 武 装 反 対 を 呼 び 掛 け 原 子 爆 弾 や 水 素 爆 弾 など 大 量 殺 戮 兵 器 の 禁 止 を 要 求 したこ とを および1954 年 日 本 平 和 運 動 の 方 針 とは 日 本 の 再 軍 備 反 対 であることなどを 報 道 し た 5) これらの 報 道 は 中 国 人 が 日 本 人 民 が 再 軍 備 に 反 対 し 原 水 爆 兵 器 の 禁 止 を 要 求 した ことについて 重 視 しているのを 反 映 しただけでなく さらにその 正 義 の 闘 争 に 対 する 有 力 な 声 援 であった 中 国 と 友 好 関 係 を 樹 立 し 平 等 互 恵 の 貿 易 の 発 展 を 目 指 すことは 20 世 紀 50 年 代 初 め の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もう 一 つの 重 要 な 内 容 であり 自 然 と 中 国 人 民 の 高 い 関 心 も 寄 せら れた 1950 年 8 月 から 中 日 民 間 貿 易 はすでに 開 始 していたが 日 本 政 府 の 妨 害 を 受 け 巴 統 の 制 限 に 入 れられたため 進 展 が 遅 いだけでなく 往 々にして 合 意 に 基 づいて 進 め ようがなく 中 日 貿 易 の 発 展 は 厳 しく 阻 害 された 日 本 人 民 特 に 経 済 界 の 人 士 は 中 日 関 係 の 回 復 と 中 日 貿 易 促 進 の 活 動 を 提 唱 した 1952 年 7 月 15 日 許 予 民 は 日 中 貿 易 促 進 会 と 日 中 友 好 協 会 が 中 日 貿 易 促 進 のために 進 めている 署 名 活 動 を 国 内 へ 紹 介 した 6) 同 年 9 月 27 日 の 人 民 日 報 は 日 本 平 和 運 動 の 指 導 者 平 野 義 太 郎 の 日 本 人 民 は 平 和 のために 闘 争 する を 掲 載 し 日 本 の 左 派 社 会 党 改 進 党 商 工 界 中 小 企 業 労 働 者 農 民 たち 全 てが 中 日 貿 易 協 定 の 実 現 を 渇 望 していると 指 摘 した アジアおよび 太 平 洋 地 区 平 和 連 絡 委 員 会 副 主 席 の 松 本 治 一 郎 は 日 本 において 中 日 貿 易 促 進 の 運 動 はすでに 平 和 運 動 の 実 際 の 内 容 となっていると 言 える と 語 っている 7) 中 国 人 のこれ について 存 分 に 肯 定 した 楊 湛 林 はもっぱら 日 本 の 反 輸 出 入 禁 止 運 動 を 発 表 し て 日 本 人 民 が 対 中 貿 易 輸 出 入 禁 止 の 解 除 のために 展 開 している 闘 争 状 況 を 紹 介 して いる 8) 中 日 貿 易 促 進 運 動 は 中 日 経 済 補 完 的 発 展 の 客 観 的 な 需 要 と 言 え このため 日 本 平 和 運 動 の 重 要 な 内 容 であるとともに 中 国 人 の 外 交 努 力 の 目 標 の 一 つでもあった 人 民 日 報 は 日 本 が 平 和 委 員 会 が 組 織 指 導 する 様 々な 平 和 運 動 を 支 持 しているこ とを 積 極 的 に 国 内 に 紹 介 し 日 本 の 平 和 人 士 に 吉 田 政 府 の 封 鎖 を 突 破 し 北 京 で 開 催 さ れるアジアおよび 太 平 洋 地 区 平 和 会 議 への 参 加 を 呼 びかけた 1948 年 8 月 日 本 各 界 5) 日 本 人 民 平 和 大 会 を 記 す 人 民 日 報 1954 年 1 月 6 日 第 4 面 日 本 は 平 和 委 員 会 常 委 会 の 会 議 実 施 を 支 持 する 現 代 回 の 日 本 平 和 運 動 の 中 心 任 務 は 再 軍 備 反 対 であることが 確 定 する 人 民 日 報 1954 年 1 月 31 日 第 4 面 6) 許 予 民 自 由 独 立 と 平 和 のため 闘 争 する 日 本 人 民 人 民 日 報 1952 年 7 月 15 日 第 4 面 7) 松 本 治 一 郎 最 近 の 日 本 の 平 和 運 動 人 民 日 報 1953 年 3 月 21 日 第 4 面 8) 楊 湛 林 日 本 の 反 輸 出 入 禁 止 運 動 世 界 知 識 1953 年 第 12 期 14-15 頁 21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の 識 者 が 民 主 主 義 擁 護 同 盟 準 備 会 を 提 唱 組 織 した 1949 年 4 月 当 該 準 備 会 は 全 国 規 模 の 平 和 防 衛 会 を 再 構 成 し その 後 次 第 に 日 本 平 和 擁 護 委 員 会 に 発 展 し 日 本 平 和 運 動 の 重 責 を 担 い 指 導 を 行 った 宋 慶 齢 郭 沫 若 らがアジアおよび 泰 平 王 地 区 平 和 会 議 を 提 唱 招 集 した 際 日 本 の 平 和 人 士 の 参 加 を 積 極 的 に 要 請 し 平 野 義 太 郎 や 柳 田 謙 十 郎 らの 良 い 返 事 を 得 られたが ついに 吉 田 政 府 の 妨 害 により 実 現 できなかった 9) 同 年 10 月 30 日 中 国 政 府 はインド 平 和 代 表 団 団 長 クチルの 談 話 を 借 りて 日 本 政 府 がアジア および 太 平 洋 地 区 平 和 会 議 に 参 加 する 日 本 代 表 を 逮 捕 して 監 視 下 にあること 政 界 人 民 平 和 大 会 に 参 加 する 日 本 代 表 にパスポートの 発 行 を 拒 否 するなどの 無 頼 行 為 を 批 判 し 日 本 人 民 の 平 和 民 主 運 動 に 声 援 を 送 った 人 民 日 報 はさらに 日 本 共 産 党 の 平 和 防 衛 と 日 本 独 立 の 闘 争 における 指 導 的 立 場 を 称 賛 し 日 本 平 和 運 動 の 指 導 者 である 大 山 郁 夫 がスターリン 国 際 平 和 賞 賞 金 を 獲 得 したことを 祝 した このほか 世 界 知 識 はかつて 日 本 の 進 歩 的 映 画 事 業 の 発 展 概 況 や 東 京 大 阪 千 葉 三 重 県 札 幌 市 などの 警 察 の 平 和 運 動 支 持 署 名 の 状 況 を 記 事 にして 紹 介 し 10) 日 本 平 和 運 動 の 広 範 な 影 響 を 反 映 した 1952 年 世 界 知 識 第 18 期 で 社 説 を 発 表 し この 中 で 日 本 人 民 の 独 立 獲 得 の 闘 争 は 世 界 の 平 和 防 衛 運 動 に 対 して 重 要 な 貢 献 となるだろう ことを 称 賛 し 日 本 人 民 が アメリカ 帝 国 主 義 が 彼 らに 与 えた 圧 力 と 束 縛 を 必 ず 粉 砕 し 最 終 的 勝 利 を 得 る ことをかたく 信 じている 日 本 人 民 の 反 戦 平 和 の 投 資 を 鼓 舞 しているのだ 20 世 紀 50 年 代 初 め 中 国 人 の 日 本 平 和 運 動 に 対 する 関 心 は 主 に 次 のことである 1.アメリカや 日 本 政 府 の 妨 害 により 中 日 人 的 交 流 が 非 常 に 制 限 され 中 国 人 の 日 本 の 平 和 運 動 支 持 の 形 式 が 多 くは 声 援 をおくることであった 2.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状 況 紹 介 は 人 民 日 報 と 世 界 知 識 をメインとし その 他 は1954 年 鄭 森 禹 が 出 版 した 日 本 平 和 運 動 一 冊 しか 見 られず 11) これは 現 在 中 国 国 内 で 知 られる 最 初 期 の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紹 介 する 小 冊 子 である 3. 関 心 の 主 要 部 分 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おける 中 国 と の 関 連 する 内 容 である 例 えば 日 本 人 民 の 朝 鮮 戦 争 反 対 中 日 貿 易 正 常 化 促 進 運 動 全 面 的 講 和 条 約 締 結 の 要 求 などである これは 冷 戦 下 の 厳 しい 国 際 情 勢 の 客 観 的 反 映 でもあり 中 国 が 世 界 の 世 論 支 持 を 勝 ち 取 り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支 援 する 宣 伝 内 容 9) 許 予 民 自 由 独 立 と 平 和 のため 闘 争 する 日 本 人 民 人 民 日 報 1952 年 7 月 15 日 第 4 面 10) 韓 瀛 日 本 警 察 の 反 戦 感 情 世 界 知 識 1950 年 第 23 期 17 頁 P.ユリノフ 著 蘭 浩 釣 訳 日 本 の 進 歩 映 画 世 界 知 識 1953 年 第 14 期 29-30 頁 11) 鄭 森 禹 日 本 平 和 運 動 世 界 知 識 社 1954 年 版 216
中 国 人 の 見 る 日 本 の 平 和 活 動 - 人 民 日 報 の 報 道 を 中 心 として - でもある 二 実 際 の 支 援 1954 年 3 月 アメリカが 太 平 洋 のビキニ 環 礁 で 水 素 爆 弾 実 験 を 行 い 焼 け 焦 げた 死 の 灰 が 日 本 の 漁 船 にも 降 り 注 いだことが 船 員 に 被 爆 者 や 死 亡 者 を 出 す 悲 劇 を 招 いた 9 年 を 経 たずして 日 本 は3 回 目 の 原 爆 被 害 を 受 け 日 本 人 民 に 全 国 規 模 でアメリカの 水 爆 実 験 への 抗 議 や 核 兵 器 禁 止 要 求 の 闘 争 を 引 き 起 こした 報 道 によると 日 本 の 多 くの 民 間 団 体 や 政 党 宗 教 組 織 が 声 明 を 採 択 したり 核 兵 器 禁 止 を 要 求 している 日 本 全 国 四 百 余 りの 各 市 市 長 が 組 織 する 全 国 市 長 会 議 と 国 会 衆 参 両 院 は 悉 く 前 後 して 同 様 の 決 議 を 出 した 12) 日 本 人 民 の 反 核 運 動 の 大 衆 性 や 広 範 性 堅 固 性 を 反 映 している 中 国 人 はこれより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第 二 段 階 に 注 目 し 始 めた つまり1955から1966 年 ま で 日 本 で 毎 年 一 回 開 催 された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を 中 心 とする 反 戦 反 核 平 和 運 動 の 時 期 である 中 日 間 の 経 済 貿 易 は 紆 余 曲 折 がありながら 発 展 し 中 日 両 国 の 識 者 が 積 極 的 に 働 き かけるにつれて 両 国 間 の 人 的 交 流 は 徐 々に 増 え 中 国 人 は 日 本 国 内 の 反 戦 反 核 運 動 に 対 して 共 感 的 声 援 から 次 第 に 実 際 の 指 示 へ 発 展 した まず 中 国 の 主 な 平 和 団 体 は しばしば 日 本 の 平 和 運 動 組 織 に 電 報 を 打 ち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積 極 的 意 義 と 重 要 な 働 き を 評 価 し 日 本 人 が 反 戦 反 核 闘 争 を 堅 持 することを 鼓 舞 した 藍 海 は 日 本 人 民 の 平 和 中 立 獲 得 の 闘 争 では 日 本 人 民 の 反 安 保 闘 争 は 日 本 民 主 勢 力 が 団 結 し 新 たなる 発 展 の 重 大 なシンボル であり 岸 信 介 一 派 のアメリカ 追 随 戦 争 政 策 の 反 対 活 動 に 倍 の 攻 撃 を 与 えるはずで 日 本 民 間 運 動 史 において 時 代 を 区 分 する 重 要 な 意 義 がある と 賞 賛 し 13) 日 本 国 内 の 平 和 勢 力 が 団 結 した 重 要 な 現 実 的 意 義 を 評 価 した 1959 年 11 月 20 日 アジアおよび 太 平 洋 地 区 平 和 連 絡 委 員 会 日 本 平 和 大 会 の 開 催 を 熱 烈 に 祝 い 大 会 を 通 して 平 和 を 守 るために 努 力 する 日 本 人 民 に 衷 心 の 敬 意 を 表 し 日 本 人 民 の 原 水 爆 禁 止 の 闘 争 を 称 賛 し アジアおよび 太 平 洋 地 区 と 世 界 平 和 事 業 を 擁 護 することについて 重 要 な 貢 献 をし 日 本 人 民 が 継 続 して 大 規 模 な 平 和 運 動 を 行 うよう 激 励 した 1963 年 2 月 27 日 中 国 人 民 世 界 平 和 擁 護 委 員 会 が 原 水 爆 禁 止 日 本 協 議 会 に 電 報 を 打 ち 日 本 人 民 12) 藍 海 日 本 人 民 の 核 兵 器 禁 止 要 求 の 闘 争 人 民 日 報 1955 年 6 月 30 日 第 4 面 13) 藍 海 日 本 人 民 の 平 和 中 立 獲 得 の 闘 争 人 民 日 報 1959 年 3 月 22 日 第 4 面 21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のアメリカ 核 実 験 反 対 日 本 を 利 用 した 政 策 的 核 戦 争 反 対 の 正 義 の 闘 争 に 確 固 たる 支 持 を 表 明 した 14) 1964 年 9 月 7 日 中 国 人 民 世 界 平 和 擁 護 委 員 会 中 国 アジア アフリカ 団 結 委 員 会 などの 民 間 団 体 が 日 本 の 関 連 組 織 に 電 報 を 打 ち 日 本 人 民 がアメリカ 核 潜 水 艇 の 日 本 進 駐 とアメリカのインドシナ 侵 略 反 対 デモおよび 集 会 を 挙 行 することを 断 固 として 支 持 した 15) 中 国 人 民 は 日 本 人 民 とともにアメリカの 核 戦 争 政 策 に 反 対 したしと 表 明 し 極 東 および 世 界 平 和 を 守 るのに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最 大 の 鼓 舞 と 支 持 を 与 えた 次 に 日 本 の 原 子 爆 弾 被 爆 者 に 寄 付 と 物 質 的 援 助 をし 日 本 人 民 の 反 核 闘 争 を 支 持 した 中 国 人 民 世 界 平 和 擁 護 委 員 会 中 国 アジア アフリカ 団 結 委 員 会 など7 団 体 が 1955 年 から 中 国 人 民 の 名 でもって 毎 年 巨 額 の 救 済 金 を 原 水 爆 弾 被 爆 者 に 寄 付 し 始 め た 16) 1961 年 8 月 12 日 日 本 で 挙 行 された 第 七 回 原 水 爆 禁 止 と 全 面 軍 縮 実 現 の 世 界 大 会 に 参 加 した 中 国 代 表 団 副 団 長 の 趙 朴 初 は 中 国 自 民 を 代 表 して750 万 日 本 円 を 寄 付 し 原 爆 被 爆 者 に 再 度 同 情 を 示 し 17) 日 本 人 民 の 反 核 運 動 事 業 を 支 持 した この 後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学 に 出 席 した 中 国 代 表 団 団 員 は 全 員 これまでどおり 広 島 長 崎 とビキニの 原 水 爆 犠 牲 者 遺 族 と 核 兵 器 被 害 者 に 深 い 同 情 と 慰 問 を 表 明 した 1966 年 7 月 28 日 中 国 代 表 団 が 日 本 政 府 の 妨 害 により 出 席 できない 状 況 下 で 周 恩 来 総 理 自 ら 第 十 二 回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に 電 報 を 打 ち 再 度 広 島 長 崎 とビキニの 原 水 爆 犠 牲 者 遺 族 と 核 兵 器 被 害 者 に 深 い 同 情 と 慰 問 を 表 明 した 18) 中 国 政 府 と 人 民 が 日 本 人 の 原 子 爆 弾 被 害 に 心 から 同 情 し 真 摯 に 援 助 していることを 体 現 した 次 に 平 和 集 会 を 組 織 し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支 持 した 1962 年 1 月 4 日 首 都 の 各 界 の 人 民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指 導 者 安 井 郁 を 歓 迎 する 大 会 を 開 催 し 廖 承 志 が 大 会 で 安 井 郁 および 彼 が 率 いる 原 子 爆 弾 禁 止 日 本 協 議 会 を 米 日 反 動 派 が 画 策 した 新 戦 争 の 陰 謀 を 激 しく 非 難 し 各 国 人 民 の 闘 争 を 激 励 し アジアと 政 界 平 和 の 擁 護 に 対 して 多 大 な 14) 私 と 原 水 爆 禁 止 日 本 協 議 会 の 報 告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を 支 持 ビキニ 事 件 記 念 集 会 が アメリカ 戦 争 政 策 を 激 しく 攻 撃 する 人 民 日 報 1963 年 2 月 28 日 第 3 面 15) 私 とアメリカ 核 潜 水 艦 日 本 駐 留 の 陰 謀 の 非 難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を 支 持 人 民 日 報 1964 年 9 月 8 日 第 4 面 16) 人 民 の 知 恵 と 勇 気 はすべての 抑 圧 と 暴 力 を 必 ず 撃 退 できる 原 水 爆 禁 止 日 本 協 議 会 理 事 長 安 井 郁 の 歓 迎 会 での 講 演 人 民 日 报 1960 年 2 月 22 日 第 4 面 17)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公 式 会 議 が 開 幕 多 くの 代 表 がアメリカの 戦 争 政 策 反 対 の 闘 争 を 呼 び かける 発 言 を 行 う 人 民 日 報 1961 年 8 月 14 日 第 3 面 18) 周 総 理 が 第 十 二 回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に 祝 電 を 打 つ 継 続 して 反 帝 国 修 正 の 旗 幟 を 鮮 明 にさえすれば 核 兵 器 の 禁 止 と 撤 廃 に 新 たに 貢 献 できる 人 民 日 報 1966 年 7 月 31 日 第 1 面 218
中 国 人 の 見 る 日 本 の 平 和 活 動 - 人 民 日 報 の 報 道 を 中 心 として - 貢 献 をした と 称 賛 した 19) 彼 および 日 本 の 反 核 運 動 が 平 和 擁 護 闘 争 での 重 要 な 効 果 を 高 く 評 価 している 1963 年 8 月 1 日 中 国 人 は 首 都 北 京 で1 万 人 大 会 を 挙 行 し 第 九 回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が 日 本 で 開 催 されることを 熱 烈 に 支 持 し 広 島 の 悲 劇 の 再 来 を 決 して 許 さなかった 1964 年 8 月 7 日 首 都 各 界 の 識 者 が 再 び 第 十 回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を 支 持 する 大 会 を 発 起 し 周 培 源 が 大 会 で この 大 会 は 歴 代 大 かいの 栄 光 と 伝 統 を 継 承 発 揚 し 米 日 反 動 派 と 現 代 修 正 主 義 者 の 破 壊 的 策 略 を 徹 底 的 に 粉 砕 する アジ ア アフリカとラテンアメリカの 民 族 民 主 運 動 のために 世 界 平 和 の 防 衛 のために 新 たな る 貢 献 をした 20) と 賞 賛 している 再 び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重 要 な 地 位 を 評 価 した これ らの 平 和 集 会 は 全 て 中 国 人 民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支 持 する 有 力 な 証 拠 である 第 四 に 日 本 の 平 和 運 動 組 織 と 相 互 支 援 を 結 んだ 共 同 声 明 で 日 本 共 産 党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おける 指 導 的 地 位 にあると 指 示 した 1962 年 6 月 7 日 中 国 人 民 世 界 平 和 防 衛 委 員 会 と 日 本 平 和 委 員 会 は 北 京 で 共 同 声 明 を 発 表 した 両 国 人 民 は 相 互 に 相 手 の 反 米 闘 争 を 支 持 するだけでなく 世 界 各 地 の 正 義 の 愛 国 主 義 闘 争 を 支 持 し 連 携 行 動 を 強 化 し アメリカの 戦 争 と 侵 略 行 為 を 粉 砕 するというものである 1963 年 7 月 1 日 中 国 朝 鮮 と 日 本 の 産 業 労 働 組 合 8 団 体 と 労 働 組 合 代 表 団 の 共 同 声 明 の 署 名 は 三 ヶ 国 の 労 働 者 階 層 と 人 民 が 相 互 に 支 持 援 助 し 共 通 の 敵 であるアメリカ 帝 国 主 義 に 反 対 することを 表 明 している 21) 中 国 政 府 と 人 民 の 支 持 を 獲 得 した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は 疑 いなく 自 身 の 勢 力 と 反 戦 反 核 闘 争 における 発 言 権 を 強 めた 1962 年 8 月 初 め 日 本 共 産 党 中 央 政 治 局 が 社 会 党 と 総 論 代 表 の 分 裂 活 動 を 非 難 した 後 人 民 日 報 は 評 論 員 の 文 章 を 即 発 表 し 今 回 の 国 際 平 和 運 動 と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内 部 に 存 在 するいくらかの 不 明 な 観 点 を 是 正 した これは 平 和 運 動 の 今 後 に 対 して 重 要 な 意 義 がある 22) と 指 摘 している 日 本 共 産 党 の 平 和 運 動 路 線 を 支 持 している 1964 年 7 月 31 日 第 十 回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に 出 席 した 中 国 代 表 団 団 長 の 劉 寧 一 は 日 本 の 反 戦 反 核 運 動 が 一 貫 して 堅 持 してい る 方 針 は 完 全 に 正 しく 中 国 人 民 と 世 界 人 民 が 真 摯 に 学 ぶ 価 値 があり 23) 日 本 共 産 党 お 19) アメリカ 帝 国 主 義 を 中 日 両 国 の 領 土 から 駆 逐 する 廖 承 志 の 首 都 各 界 識 者 が 安 井 郁 を 歓 迎 する 大 会 上 での 講 演 要 旨 人 民 日 報 1962 年 1 月 5 日 第 4 面 20) 首 都 各 界 識 者 の 第 十 回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を 支 持 する 大 会 における 周 培 源 の 講 演 人 民 日 報 1964 年 8 月 7 日 第 5 面 21) 中 朝 日 の 産 業 労 働 組 合 八 団 体 と 労 働 組 合 代 表 団 の 共 同 声 明 が 北 京 で 署 名 される 首 都 労 働 者 集 会 が 三 ヶ 国 の 労 働 者 階 級 の 大 団 結 を 祝 う 人 民 日 報 1963 年 7 月 2 日 第 1 面 22)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今 後 の 発 展 の 正 確 な 方 向 人 民 日 報 1962 年 9 月 2 日 第 4 面 23) 我 が 代 表 団 団 長 劉 寧 一 が 日 本 の 核 爆 弾 禁 止 運 動 の 偉 大 な 成 果 を 称 賛 すると 発 言 反 米 旗 幟 を 高 く 掲 げて 誤 認 路 線 に 反 対 し 平 和 闘 争 の 擁 護 を 推 進 する 分 裂 主 義 者 に 告 げる 日 本 人 21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よびその 指 導 する 反 核 運 動 と 平 和 運 動 を 絶 対 的 に 支 持 すると 指 摘 している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が 内 紛 に 陥 り アメリカやソ 連 が 分 裂 あるいは 日 本 の 反 核 運 動 の 生 命 力 を 削 る 陰 謀 を 画 策 したことに 鑑 みて 中 国 政 府 は 自 身 と 同 一 を 保 つ 日 本 共 産 党 の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指 導 権 掌 握 を 支 持 することを 決 定 した 最 後 に 人 民 日 報 政 界 知 識 を 除 き 人 民 音 楽 美 術 文 学 評 論 などさらに 多 くの 定 期 刊 行 雑 誌 が 中 国 国 内 向 けに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状 況 を 紹 介 し 始 めたこと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中 国 における 影 響 が 日 増 しに 拡 大 していることを 反 映 し また 中 国 人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への 関 心 が 次 第 に 高 まっていることも 反 映 している 筆 者 は 現 在 21 篇 の 日 本 平 和 運 動 に 関 する 論 文 を 調 査 し 関 心 の 内 容 により 次 の3 種 類 に 分 類 した 1. 日 本 の 原 水 爆 禁 止 運 動 に 関 する 文 章 が5 篇 あり 主 に 世 界 知 識 雑 誌 で 掲 載 されている 2. 日 本 文 芸 界 の 平 和 民 主 と 反 戦 闘 争 を 主 張 している 文 章 が12 篇 美 術 人 民 音 楽 文 学 評 論 などの 刊 行 物 に 分 かれて 掲 載 されてい る 3. 日 本 の 平 和 運 動 指 導 者 を 追 悼 し 岸 信 介 の 反 華 政 策 を 批 判 し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を 支 持 する 特 集 記 事 が4 篇 である そのうち 毛 主 席 が 最 近 日 本 の 反 米 デモにつ いて 談 話 を 発 表 し 中 国 人 民 が 日 本 人 民 の 偉 大 なる 愛 国 闘 争 を 支 持 している という 論 で 主 に 毛 主 席 が1964 年 1 月 27 日 に 訪 中 した 日 中 友 好 協 会 副 会 長 兼 日 中 貿 易 促 進 会 理 事 長 の 鈴 木 一 雄 らと 接 見 したこと 際 に 発 表 した 談 話 を 報 道 している 即 ち 中 日 両 国 人 民 は 団 結 し アメリカ 帝 国 主 義 に 反 対 する 広 範 な 統 一 戦 線 を 結 成 し アメリカ 帝 国 主 義 の 侵 略 計 画 と 戦 争 計 画 を 打 ち 負 かし 世 界 平 和 を 守 らなければならない というものだ こ の 談 話 の 精 神 は20 世 紀 60 年 代 中 後 期 における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に 対 して 重 要 な 影 響 を 生 み 出 した 第 二 段 階 は 中 国 人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関 心 と 支 持 を 寄 せた 絶 頂 期 で 主 に 以 下 の 特 徴 がある 1.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積 極 的 に 参 与 する 中 国 政 府 と 人 民 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指 導 者 や 団 体 を 中 国 訪 問 に 招 請 したり または 状 況 を 紹 介 したりし 代 表 団 をも 積 極 的 に 派 遣 して 日 本 で 開 催 される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およびデモ 行 進 に 参 加 し 力 の 及 ぶ 限 り 資 金 援 助 をした 2.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内 紛 に 参 入 し 日 本 共 産 党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指 導 する 理 論 路 線 方 針 政 策 を 宣 伝 支 持 した 3. 日 本 共 産 党 と 共 同 で 米 ソの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対 する 分 裂 破 壊 活 動 を 阻 止 した 中 ソ 論 戦 と 双 方 の 関 係 断 絶 に つれて アメリカのベトナム 戦 争 悪 化 という 状 況 下 だったが 中 国 共 産 党 は 日 本 の 平 和 運 220 民 と 世 界 各 国 人 民 の 偉 大 な 団 結 を 打 破 するなど 考 えるな 人 民 日 報 1964 年 8 月 2 日 第 4 面
中 国 人 の 見 る 日 本 の 平 和 活 動 - 人 民 日 報 の 報 道 を 中 心 として - 動 分 裂 初 期 に 間 接 的 に 名 を 挙 げずにソ 連 の 平 和 理 論 および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分 裂 活 動 を 批 判 した 1964 年 以 後 日 本 共 産 党 はソ 連 共 産 党 とは 平 和 運 動 や 路 線 の 分 裂 に より 関 係 が 決 裂 し 中 国 共 産 党 や 朝 鮮 労 働 党 などは 日 本 共 産 党 側 に 立 ち ソ 連 が 主 導 する 世 界 平 和 理 事 会 の 指 導 者 の 世 界 平 和 運 動 における 誤 認 路 線 を 批 判 し その 日 本 の 平 和 活 動 を 分 裂 破 壊 した 活 動 を 非 難 した 4. 注 目 する 点 は 日 本 で 開 催 された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をめぐること 以 外 に さらに 日 本 各 地 の 反 戦 反 核 集 会 とデモ 行 進 なに 注 目 支 持 し 日 本 の 平 和 活 動 の 極 東 地 区 の 平 和 を 守 りアメリカの 東 アジア 政 策 を 牽 制 する 重 要 な 働 きを 肯 定 し 日 本 人 民 の 示 した 偉 大 なる 力 を 高 く 評 価 した 三 批 判 支 持 と 無 関 心 1966 年 初 め 毛 沢 東 は 訪 中 した 日 本 共 産 党 総 書 記 の 宮 本 顕 治 と 会 談 を 行 い 双 方 は 共 同 でソ 連 修 正 主 義 に 反 対 し アメリカ 帝 国 主 義 およびソ 連 修 正 主 義 に 反 対 する 統 一 戦 線 を 組 織 し 人 民 戦 争 理 論 などの 問 題 において 重 大 な 相 違 が 生 じ 両 党 関 係 の 悪 化 を 招 いた これより 中 国 人 は 日 本 共 産 党 の 宮 本 顕 治 集 団 で 指 導 した 原 水 爆 禁 止 運 動 およびその 他 の 反 戦 形 式 の 平 和 運 動 を 批 判 し 始 めたが 同 時 期 の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は 支 持 した 筆 者 の 管 見 では 中 日 国 交 回 復 の10 年 以 内 に 人 民 日 報 で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と 反 米 闘 争 のいかなるニュースもほとんど 報 道 されたことがない 停 滞 分 散 の 時 期 にあった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はほとんど 中 国 人 の 眼 中 から 消 失 してしまった 中 国 共 産 党 は 名 指 しなし 状 態 から 公 開 して 全 面 的 に 日 本 共 産 党 が 指 導 する 原 水 爆 団 禁 止 運 動 とその 他 の 形 式 による 平 和 運 動 を 全 面 的 に 批 判 し 日 本 共 産 党 の 宮 本 修 正 主 義 集 団 がソ 連 に 通 じアメリカに 媚 びる 反 中 路 線 を 普 及 させ 日 本 の 平 和 活 動 の 破 壊 を 企 んだこ とを 非 難 した 宮 本 顕 治 がソ 連 と 連 携 行 動 をしてアメリカ 侵 略 戦 争 政 策 に 対 抗 する 建 議 を 提 出 したことに 対 して 周 恩 来 総 理 は ソ 連 修 正 主 義 と 連 携 行 動 をしたいかなる 主 張 も 彼 らが 世 界 人 民 を 欺 く 助 けにしかならず 彼 らが 反 帝 国 ににせ 実 に 投 降 し 支 持 する かににせ 実 に 裏 切 り 団 結 するかににせ 実 に 分 裂 させる 悪 の 叛 徒 の 顔 をつくろっている 24) と 指 摘 した 名 指 しせずに 日 本 共 産 党 とソ 連 の 連 携 行 動 を 批 判 することは 裏 切 りと 分 裂 行 為 なのである 1966 年 8 月 6 日 夜 日 本 政 府 が 第 十 二 回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に 出 席 24) 周 総 理 が 第 十 二 回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に 祝 電 を 打 つ 継 続 して 反 帝 国 修 正 の 旗 幟 を 鮮 明 にさえすれば 核 兵 器 の 禁 止 と 撤 廃 に 新 たに 貢 献 できる 人 民 日 報 1966 年 7 月 31 日 第 1 面 22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できなかった 中 国 代 表 団 を 妨 害 したことにより 今 回 の 大 会 から 離 れ 北 京 に 来 た 外 国 代 表 団 たちのために 歓 迎 レセプションを 催 し これらの 外 国 の 友 人 とその 他 の 外 国 代 表 は 東 京 世 界 大 会 で 正 しき 路 線 を 堅 持 し 原 水 爆 禁 止 日 本 協 議 会 のある 指 導 者 がソ 連 現 代 修 正 主 義 集 指 導 集 団 の 影 響 下 の 世 界 民 主 青 年 連 盟 の 代 表 を 大 会 に 参 加 させないやり 方 の ために 闘 争 の 堅 持 を 行 っている と 称 賛 した 名 指 しせずに 日 本 共 産 党 のある 指 導 者 を 非 難 したことはアメリカ 帝 国 とソ 連 修 正 の 追 随 者 のことである 25) これは 日 本 共 産 党 の 宮 本 顕 治 グループが 原 水 爆 禁 止 運 動 を 指 導 する 中 での 所 謂 誤 認 行 為 を 指 摘 し 日 本 共 産 党 の 主 体 が 中 国 と 同 じ 立 場 に 復 帰 するために 余 地 も 残 している 1967 年 8 月 11 日 人 民 日 報 は 反 帝 反 修 革 命 路 線 に 徹 底 的 に 背 き ソ 連 と 連 携 しアメリカに 媚 びる 路 線 を 積 極 的 に 推 し 進 め 宮 本 グループが 禁 核 を 利 用 し 大 会 を 分 裂 させ 裏 切 り 行 為 をし 日 本 修 正 主 義 の 投 降 は 日 本 と 世 界 人 民 の 拒 否 に 遭 い 会 議 出 席 者 は 寥 寥 たるものである と 題 する 文 章 を 発 表 し 日 本 共 産 党 の 宮 本 顕 治 グループが 組 織 し 開 催 した 第 十 三 回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はいわゆる 連 携 行 動 を 売 る 不 正 品 であると 公 開 して 名 指 し 批 判 し 日 本 修 正 主 義 のソ 連 との 連 携 反 中 裏 切 り 路 線 への 投 降 のた めに ここに 至 って 両 党 の 関 係 が 完 全 に 決 裂 しただけでなく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関 する 論 争 も 公 開 かから 白 熱 化 していった 当 該 文 章 はさらに 野 坂 参 三 が 過 去 の 世 界 大 会 が 一 貫 して 行 った 反 帝 国 は 反 修 正 でなければないない 革 命 路 線 を 公 開 批 判 し 原 水 爆 禁 止 日 本 協 議 会 の 代 表 である 畑 中 政 春 が 会 議 に 提 出 した 総 報 告 と 日 本 代 表 団 団 長 の 平 野 義 太 郎 が 会 議 で 行 った 報 告 はどちらも 宮 本 グループの 修 正 主 義 の 産 物 であると 批 判 した 宮 本 グループが 平 和 共 存 と 平 和 過 渡 を 推 し 進 めた 修 正 主 義 路 線 を 非 難 したこ とは ミャンマー インド タイなどの 人 民 武 装 闘 争 を 故 意 に 抹 殺 し ベトナム 人 民 の 反 米 救 国 闘 争 を 裏 切 り 宮 本 修 正 主 義 グループが 必 ず 歴 史 の 塵 溜 めに 陥 ると 宣 言 した 1972 年 に 至 り 人 民 日 報 は 宮 本 修 正 主 義 グループが 会 議 万 能 主 義 の 反 革 命 の 誤 った 議 論 を 散 布 し 合 法 闘 争 と 経 済 主 義 を 吹 聴 し 米 日 反 動 派 に 迎 合 して 日 本 人 民 の 革 命 闘 争 を 妨 害 破 壊 し 農 民 労 働 者 と 学 生 の 関 係 を 挑 発 し 革 命 青 年 の 闘 争 を 中 傷 し 日 本 革 命 と 世 界 革 命 を 裏 切 る 恥 ずべき 行 為 などを 主 に 非 難 して その 批 判 は 耳 にし 難 いものであった これと 同 時 に 日 本 共 産 党 ( 左 派 )は 米 日 反 動 派 および 宮 本 修 正 主 義 グループと 勇 敢 なる 闘 争 を 繰 り 広 げ 日 本 共 産 党 地 方 党 員 は 民 衆 と 宮 本 修 25) 劉 寧 一 廖 承 志 がレセプションで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を 離 れた 外 国 の 友 人 を 熱 烈 に 歓 迎 す る 原 水 爆 禁 止 運 動 の 栄 光 と 伝 統 を 守 り アメリカ 帝 国 ソ 連 修 正 および 全 ての 追 随 者 に 断 固 と して 反 対 する っ 人 民 日 報 1966 年 8 月 8 日 第 4 面 222
中 国 人 の 見 る 日 本 の 平 和 活 動 - 人 民 日 報 の 報 道 を 中 心 として - 正 主 義 集 団 への 反 対 を 激 励 し 宮 本 修 正 主 義 グループが 日 本 人 民 の 闘 争 の 革 命 潮 流 を 阻 止 しえないと 蔑 み 日 本 人 民 に 団 結 闘 争 して 日 本 共 産 党 左 派 を 囲 い 込 むように 呼 びか けた アメリカのベトナム 侵 略 戦 争 の 激 化 に 伴 い 宮 本 修 正 主 義 の 平 和 活 動 破 壊 を 批 判 する 論 調 が 鮮 明 に 対 比 したことは 中 国 人 が 日 本 国 内 の 反 米 闘 争 に 継 続 して 高 い 関 心 と 支 持 をよせたことである 人 民 日 報 は 主 に 日 本 人 民 がデモ 行 進 しアメリカの 核 搭 載 軍 艦 の 日 本 駐 留 に 反 対 し 日 本 各 地 のアメリカ 軍 事 基 地 の 撤 去 と 日 米 安 全 条 約 破 棄 を 要 求 し 佐 藤 政 府 がアメリカのベトナム 侵 略 戦 争 を 支 援 していることに 抗 議 して アメリカ 帝 国 がカンボジアに 出 兵 しインドシナ 戦 争 を 拡 大 していることを 非 難 する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状 況 を 報 道 した 主 な 報 道 方 針 は 日 本 人 民 の まさに 加 速 して 覚 醒 していて 26) それは ア メリカ 帝 国 および 日 本 軍 国 主 義 に 反 対 する 闘 争 の 潮 流 が いかなる 勢 力 にも 妨 害 され ず 27) 日 本 人 民 の 反 戦 反 米 愛 国 闘 争 を 激 励 していると 報 じた 日 本 の 一 部 の 進 歩 的 識 者 と 青 年 学 生 が 反 米 闘 争 において 毛 沢 東 思 想 の 旗 幟 も 掲 げ 28) 人 民 戦 争 の 形 式 で もって 佐 藤 売 国 政 府 とアメリカのベトナム 侵 略 戦 争 に 反 対 することを 提 唱 し 当 時 の 中 国 文 化 大 革 命 の 日 本 に 対 する 直 接 的 影 響 を 反 映 していた 毛 沢 東 が1964 年 に 発 表 した 日 本 人 民 の 反 米 デモを 支 持 する 談 話 は 日 本 の 各 階 層 の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に 対 して 相 当 な 影 響 を 与 え これも 人 民 日 報 の 文 革 時 期 の 日 本 人 民 による 反 米 闘 争 を 報 道 する 主 な 内 容 であった 1968 年 1 月 26 日 新 華 社 は 日 本 革 命 左 派 と 各 界 の 進 歩 的 人 士 が 近 頃 談 話 を 発 表 し 毛 主 席 の 今 回 の 談 話 は 日 本 人 民 闘 争 の 道 を 照 らしている 29) ことを 指 摘 していると 報 道 した 1970 年 1 月 30 日 人 民 日 報 はまた 毛 主 席 談 話 は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に 大 いなる 支 持 を 与 え 日 本 人 民 がア メリカ 帝 国 を 駆 逐 し 米 日 反 動 派 の 罪 悪 統 治 を 翻 すことが 必 ずできる 30) とたたえている 26) 公 曲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の 火 は 燃 えれば 燃 えるほど 盛 んである 人 民 日 報 1970 年 1 月 25 日 第 5 面 27) 日 米 安 全 条 約 を 粉 砕 し 日 本 軍 国 主 義 の 復 活 に 反 対 する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の 潮 流 は 阻 止 できない 六 月 に 全 国 千 都 市 以 上 で 数 客 万 人 が 米 日 反 動 派 反 対 の 集 会 デモを 行 う 人 民 日 報 1970 年 7 月 1 日 第 6 面 28) 米 日 反 動 派 の 戦 争 政 策 と 侵 略 政 策 を 粉 砕 する 日 本 の 労 働 者 農 民 学 生 が 共 同 で 反 米 デモを 行 う 民 衆 の 暴 力 と 反 動 警 察 に 恐 れない 勇 気 ある 戦 いを 示 す 人 民 日 報 1969 年 3 月 4 日 第 5 面 29) 日 本 革 命 左 派 と 進 歩 的 人 士 が 指 摘 する 毛 主 席 の 談 話 は 日 本 人 民 闘 争 の 道 を 照 らす 広 範 な 反 米 統 一 戦 線 を 結 成 し 反 米 闘 争 を 強 化 する 宮 本 グループが 米 日 反 動 派 とソ 連 修 正 を 結 び 付 け 反 中 国 反 革 命 反 人 民 の 反 逆 の 道 を 進 むことを 非 難 する 人 民 日 報 1968 年 1 月 27 日 第 7 面 22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文 革 の 年 代 において 毛 主 席 談 話 の 高 い 評 価 の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における 重 要 な 効 果 は 日 本 人 の 毛 主 席 に 対 する 崇 敬 と 支 持 を 全 力 で 明 示 した 1967 年 から1971 年 ま での5 年 間 に 人 民 日 報 は 少 なくとも9 篇 の 文 章 で 日 本 の 各 界 の 進 歩 的 識 者 や 団 体 が 様 々な 集 会 を 組 織 し あるいは 談 話 を 発 表 し 毛 主 席 談 話 三 四 六 七 周 年 を 記 念 して 毛 主 席 談 話 の 精 神 の 正 当 性 と 影 響 力 を 称 賛 していることを 報 道 した たとえば 1968 年 1 月 28 日 の 人 民 日 報 での 毛 主 席 談 話 の 称 賛 は 偉 大 なる 戦 闘 の 号 令 は 世 界 各 国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の 盛 んな 炎 を 激 励 し 全 世 界 に 燃 え 立 たせる としている アジ ア アフリカ 人 民 団 結 日 本 委 員 会 事 務 局 長 板 井 庄 作 の 話 を 借 りると 毛 主 席 の 談 話 は 日 本 革 命 の 根 本 的 問 題 だれが 敵 で 誰 が 友 かに 対 して 最 も 重 要 で 唯 一 の 正 しい 回 答 をしている 31) という 日 本 の 毛 沢 東 思 想 月 刊 社 が 書 面 談 話 を 発 表 したことによる と 日 本 の 人 民 闘 争 の 発 展 は 毛 沢 東 談 話 の 正 当 性 をますます 証 明 しているという 32) 人 民 日 報 は 日 本 各 階 層 の 識 者 と 各 進 歩 団 体 の 責 任 者 が 毛 主 席 談 話 の 精 神 を 学 習 し 闘 争 の 場 や 会 場 で 毛 主 席 のタペストリーを 掲 げ 毛 主 席 談 話 発 表 周 年 記 念 活 動 を 開 催 し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が 中 国 文 化 大 革 命 の 一 構 成 部 分 であるかのようだと 報 道 し ている 1972 年 1 月 25 日 人 民 日 報 は ウミツバメが 暴 風 雨 を 受 けながら 飛 翔 する 日 本 歯 輪 座 劇 団 を 訪 問 する と 題 する 文 章 を 発 表 し 日 本 の 労 働 者 たちが 日 本 共 産 党 ( 左 派 ) 指 導 下 で 日 米 反 動 派 および 宮 本 修 正 主 義 グループとともに 勇 気 ある 闘 争 を 行 っ た 事 跡 を 紹 介 した これは 現 在 筆 者 が 見 た 文 革 時 期 の 人 民 日 報 での 最 後 の 日 本 人 民 反 米 闘 争 に 関 する 報 道 である その 後 10 年 の 長 きにわたり 人 民 日 報 で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いかなる 情 報 もほとんどなかった 筆 者 はこの 主 な 原 因 は 次 のように 考 える 1. 日 本 の 平 和 運 動 自 体 はずっと 存 在 していたが 徐 々に 分 散 化 地 方 化 していき 以 前 と 同 じように 中 国 人 の 注 目 をひいたようには 及 ばない 日 本 が 資 本 主 義 の 世 界 第 二 の 経 済 大 国 として 成 長 するにつれて 人 民 の 生 活 は 豊 かになり 中 流 意 識 が 盛 行 したことで 30) 日 本 の 進 歩 団 体 の 責 任 者 が 毛 主 席 談 話 発 表 六 周 年 を 熱 烈 に 歓 呼 する 毛 主 席 談 話 が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に 大 いなる 支 持 を 与 える 日 本 人 民 がアメリカ 帝 国 を 駆 逐 し 米 日 反 動 派 の 罪 悪 統 治 を 覆 すことが 必 ずできる 人 民 日 報 1970 年 1 月 30 日 第 5 面 31) 川 瀬 一 貫 萩 原 定 司 ら 日 本 の 友 好 人 士 が 談 話 を 発 表 し 指 摘 する 毛 主 席 談 話 が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を 鼓 舞 し さらに 日 中 友 好 運 動 を 推 し 進 めるために 努 力 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 表 明 する 人 民 日 報 1971 年 2 月 2 日 第 4 面 32) 日 本 毛 沢 東 思 想 月 刊 社 が 毛 主 席 談 話 発 表 七 周 年 に 書 面 談 話 を 発 表 する 統 一 戦 線 を 結 成 し 米 日 反 動 派 非 難 の 闘 争 の 発 展 を 証 明 することを 決 意 し 日 本 民 族 はアメリカ 帝 国 主 義 に 絶 対 に 長 期 的 支 配 を 受 けない 人 民 日 報 1971 年 2 月 5 日 第 6 面 224
中 国 人 の 見 る 日 本 の 平 和 活 動 - 人 民 日 報 の 報 道 を 中 心 として - さらに 多 くの 人 が 安 定 を 求 め 個 人 事 業 の 発 展 に 忙 しくするようになり 大 規 模 な 社 会 活 動 にあまり 熱 心 に 参 加 しなかった このため 20 世 紀 60 年 代 末 70 年 代 初 めの 大 規 模 な 学 生 運 動 と 社 会 運 動 が 終 息 してから 日 本 国 内 で 大 規 模 な 社 会 運 動 が 再 度 現 れることが 少 なかった 2. 中 国 国 内 ではまず 批 林 批 孔 運 動 ( 林 彪 批 判 孔 孟 批 判 運 動 ) 流 行 で 四 人 組 を 粉 砕 した 後 中 国 の 指 導 者 層 は 調 整 を 経 て 改 革 開 放 の 方 針 を 確 立 したの で 激 しい 変 動 期 の 中 国 に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顧 みる 余 裕 がなかった 3. 国 際 情 勢 の 変 化 も 中 国 人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注 目 するのにはあまりに 不 便 であった ニクソンの 訪 中 中 日 国 交 回 復 ベトナム 戦 争 停 戦 にともない 中 国 はソ 連 の 激 しい 剣 幕 の 攻 勢 下 で アメリカや 日 本 と 反 ソ 統 一 戦 線 を 急 いで 結 ばねばならなかった この 時 中 国 政 府 と 人 民 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が 自 然 と 多 くないことに 注 目 した 中 国 人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注 目 した 第 三 段 階 は 次 のような 明 確 な 特 徴 がある 1. 中 国 共 産 党 と 日 本 共 産 党 の 関 係 が 断 然 した 影 響 を 受 け 人 民 日 報 は 手 のひら を 返 して 日 本 共 産 党 の 宮 本 顕 治 指 導 の 平 和 運 動 を 批 判 し 始 め その 主 催 する 原 水 爆 禁 止 運 動 の 報 道 を 停 止 した 2. 文 革 の 影 響 を 受 け 人 民 日 報 の 文 章 は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を 支 持 していたが おもに 日 本 共 産 党 左 派 と 進 歩 的 識 者 らが 毛 沢 東 思 想 の 旗 幟 を 掲 げた 反 米 闘 争 に 注 目 した 3. 長 期 的 に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無 関 心 であった 人 民 日 報 で 長 く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関 する 報 道 が 紹 介 されなかっただけでなく 他 の 刊 行 雑 誌 も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ついての 紹 介 がなかった この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無 関 心 である 状 況 は 改 革 開 放 後 の1982 年 まで 続 いた 四 関 心 と 研 究 人 民 日 報 は1982 年 より 再 び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報 道 したが 現 在 に 至 る28 年 間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紹 介 あるいは 報 道 する 記 事 は 以 前 の 三 段 階 と 比 べて 決 して 多 くは ない しかし 冷 戦 終 結 後 中 国 人 は 学 術 的 視 点 より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研 究 を 強 化 し 始 めた これにより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再 び 注 目 し 相 対 的 に 独 立 した 学 術 研 究 は 中 国 人 が この 一 時 期 の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知 る 全 体 的 な 特 徴 であると 言 える 1982 年 以 来 人 民 日 報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報 道 してきた 内 容 は 主 に 次 の 数 方 面 がある 第 一 に 日 本 人 民 の 反 核 平 和 運 動 を 報 道 あるいは 紹 介 している 例 えば 人 民 日 報 と 世 界 知 識 は 前 後 して1982 1983 1984 年 の 原 水 爆 禁 止 の 世 界 大 会 を 紹 介 した その 中 で 1982 年 8 月 11 日 の 人 民 日 報 は 原 水 爆 禁 止 1982 年 世 22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界 大 会 の 紹 介 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再 び 報 道 した 最 初 の 文 章 である これ 以 後 人 民 日 報 はときおり 日 本 人 民 の 反 核 運 動 に 言 及 しているが 長 期 的 には 原 水 爆 禁 止 世 界 大 会 の 記 事 は 見 られなかった 特 に20 世 紀 90 年 代 以 降 ソ 連 や 東 側 陣 営 の 激 変 と 六 四 の 騒 乱 など 国 際 国 内 情 勢 の 変 化 に 伴 い 中 国 人 が 日 本 の 反 核 平 和 運 動 に 注 目 することが 少 なくなった 次 に 中 国 の 指 導 者 が 接 見 し あるい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活 動 家 と 交 流 す る 時 事 報 道 は 内 容 が 比 較 的 簡 潔 で 主 に 中 国 国 際 交 流 協 会 会 長 の 李 一 氓 全 国 人 民 代 表 大 会 常 務 委 員 会 副 委 員 長 の 朱 学 范 や 周 谷 城 が 中 林 貞 夫 を 中 心 とする 日 本 の 平 和 運 動 市 民 代 表 団 に 接 見 したことや 中 国 共 産 党 中 央 政 治 局 委 員 王 震 ら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活 動 家 と 交 流 したことなどの 短 いニュースであった 次 に 日 本 人 がアメリカ 軍 の 暴 行 に 抗 議 したり アメリカの 軍 艦 が 日 本 に 入 港 することに 反 対 したり 有 事 三 法 を 廃 止 し アメリカ 軍 基 地 を 日 本 から 移 転 させることを 要 求 したことを 紹 介 報 道 している 最 後 に 一 部 の 日 本 の 政 界 の 要 人 が 相 次 ぎ 靖 国 神 社 を 参 拝 したことや 教 科 書 問 題 の 出 現 にともな い 中 日 間 の 歴 史 認 識 問 題 に 関 する 論 争 が 日 増 しに 先 鋭 化 し それゆえ 人 民 日 報 で 日 本 人 民 が 戦 争 責 任 を 反 省 する 関 連 報 道 を 反 映 することが 現 れた 冷 戦 終 結 後 一 部 の 中 国 人 学 者 は 学 術 的 視 点 で 戦 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と 平 和 思 想 の 発 展 変 化 の 過 程 およびその 日 本 社 会 に 対 する 影 響 を 研 究 し 始 め 一 定 の 成 果 を 収 めた 劉 華 英 や 呉 建 華 徐 愷 は 戦 後 日 本 の 平 和 民 主 主 義 思 潮 の 発 展 変 化 の 過 程 を 研 究 した 後 敗 戦 の 陰 影 が 戦 後 日 本 に 平 和 民 主 主 義 思 潮 が 生 まれる 直 接 的 原 因 で 有 利 な 国 際 情 勢 がその 促 進 剤 となり 民 主 化 改 革 はその 存 在 に 頼 った 社 会 基 盤 であった それが 徐 々に 衰 えていった 根 源 はおもに 平 和 民 主 主 義 思 潮 の 擁 護 者 数 が 劇 的 減 少 とゆるぎない 日 本 民 族 優 越 論 にあり 左 翼 平 和 民 主 主 義 思 潮 の 衰 退 は 必 然 であり これが 右 翼 民 族 主 義 思 潮 が 長 期 的 に 主 導 的 地 位 をしめることを 惹 起 し これにより 日 本 政 治 の 右 傾 化 や 保 守 化 も 長 期 的 過 程 にあった 33) と 指 摘 している 日 本 が 政 治 大 国 軍 事 大 国 を 追 及 するこ とに 対 して 冷 静 を 保 つ 認 識 と 必 要 な 心 理 的 準 備 をしておくよう 我 々に 注 意 を 促 している 劉 小 林 は 戦 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と 平 和 理 念 の 変 化 の 研 究 を 通 して 冷 戦 終 結 以 来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は 消 滅 したわけではなく 形 式 が 変 化 し さらに 自 発 的 で 自 主 的 な 方 式 で 下 から 上 へと 活 動 を 広 げていった 平 和 運 動 や 平 和 教 育 と 平 和 研 究 は 相 互 に 支 援 し 相 互 に 影 響 がある 内 在 にインタラクティブな 関 係 を 形 成 した 平 和 を 取 り 巻 き 展 開 する 教 育 や 研 究 活 動 は 日 本 全 体 の 社 会 意 識 と 社 会 行 動 に 対 して 深 く 広 い 影 響 を 与 え 当 然 かつ 間 33) 劉 華 英 呉 建 華 徐 愷 戦 後 日 本 の 平 和 民 主 主 義 思 潮 の 変 遷 を 論 ず その 政 治 右 傾 化 に 対 する 影 響 も 語 る 西 南 師 範 大 学 学 報 ( 人 文 社 会 科 学 版 ) 2002 年 第 6 期 111 頁 226
中 国 人 の 見 る 日 本 の 平 和 活 動 - 人 民 日 報 の 報 道 を 中 心 として - 違 いなく 日 本 社 会 思 潮 の 主 流 である 34) と 指 摘 している 冷 戦 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持 続 的 存 在 およびその 変 化 を 肯 定 し 冷 戦 後 の 平 和 思 潮 が 依 然 として 日 本 社 会 思 潮 の 主 流 出 ると 楽 観 的 に 認 識 し 徐 々に 意 識 形 態 を 超 え 民 族 国 家 を 超 えて 全 地 球 市 民 社 会 の 平 和 運 動 を 構 成 していった 事 実 冷 戦 終 結 以 来 日 本 国 内 で 展 開 する 反 日 米 安 保 同 盟 核 施 設 反 対 アメリカ 軍 基 地 反 対 歴 史 の 歪 曲 反 対 護 憲 と 憲 法 修 正 阻 止 各 地 で 採 択 された 平 和 宣 言 被 害 国 の 民 衆 を 支 援 する 訴 訟 加 害 者 の 立 場 で 戦 争 責 任 な ど 変 遷 平 和 活 動 を 追 及 することなど その 最 高 の 解 釈 である 中 国 人 学 者 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関 わるテーマ 研 究 において 坂 本 義 和 と 池 田 大 作 の 平 和 主 義 思 想 婦 女 の 平 和 運 動 における 役 割 民 間 の 左 翼 運 動 および 市 民 運 動 などと 平 和 運 動 の 相 関 的 内 容 におもに 関 心 を 持 った 朱 光 明 は 坂 本 義 和 平 和 主 義 新 構 想 という 文 において 東 京 大 学 名 誉 教 授 坂 本 義 和 の 平 和 主 義 深 厚 そうに 関 するおもな 内 容 を 論 評 した つまり 平 和 主 義 三 原 則 を 堅 持 し 侵 略 戦 争 を 発 動 または 従 事 できないことを 含 み 核 戦 争 に 加 わる 危 険 性 を 決 して 増 加 させず 軍 国 主 義 を 絶 対 的 に 否 定 すること 単 独 で 非 軍 事 的 な 平 和 維 持 部 隊 を 組 織 すること 連 合 国 と 日 本 が 担 うべき 義 務 と 職 責 などを 明 確 にすることである 35) この 構 想 は 様 々な 施 行 ができなかったが 結 局 は 日 本 平 和 主 義 思 想 の 内 容 を 豊 かにし 日 本 社 会 に 小 さくない 影 響 を 与 えた この 他 現 在 までに 中 国 では 少 なくとも5 篇 の 池 田 大 作 の 平 和 思 想 を 研 究 する 論 があり 池 田 大 作 の 平 和 思 想 の 積 極 的 意 義 を 十 分 に 肯 定 している 楊 秀 梅 と 王 興 珍 は 戦 後 初 期 に 日 本 の 婦 女 が 積 極 的 に 原 水 爆 禁 止 運 動 に 参 加 したことを 分 析 し 彼 女 たちの 戦 後 の 平 和 運 動 における 積 極 的 な 働 きを 評 価 した 36) 徐 勇 は2004 年 8 月 広 島 と 熊 本 で 開 催 された 原 爆 記 念 活 動 と 市 民 の 平 和 デモに 参 加 し 帰 国 後 に 当 地 の 市 民 平 和 運 動 の 発 展 状 況 と 成 果 および 中 日 双 方 の 歴 史 認 識 での 差 異 を 紹 介 した 37) 2005 年 10 月 胡 澎 は 日 本 民 間 の 左 翼 運 動 で 平 和 憲 法 を 守 る 九 条 会 家 永 三 郎 の 教 科 書 訴 訟 活 動 扶 桑 社 版 教 科 書 反 対 運 動 な ど 平 和 を 擁 護 する 民 間 左 翼 運 動 の 状 況 を 紹 介 し 38) これは 寒 冷 期 の 中 日 関 係 下 の 暖 流 のようで 人 を 感 動 させただけでなく さらに 希 望 も 与 えた 夏 維 勇 は 越 平 聯 運 動 を 34) 劉 小 林 冷 戦 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と 平 和 理 念 日 本 学 刊 2006 年 第 5 期 22 頁 35) 朱 光 明 坂 本 義 和 の 平 和 主 義 新 構 想 東 方 論 壇 1995 年 第 1 期 43-49 頁 36) 楊 秀 梅 王 興 珍 日 本 婦 女 の 平 和 運 動 における 役 割 の 分 析 チチハル 師 範 学 院 学 報 1995 年 第 5 期 204-207 頁 37) 徐 勇 日 本 広 島 熊 本 の 原 爆 記 念 ンと 市 民 平 和 運 動 の 解 説 論 評 抗 日 戦 争 研 究 2004 年 第 3 期 239-247 頁 38) 胡 澎 日 本 民 間 の 左 翼 運 動 南 風 窗 2005 年 10 月 ( 下 ) 74-76 頁 22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中 心 として 20 世 紀 60 年 代 末 70 年 代 初 めの 日 本 の 市 民 主 義 と 平 和 運 動 の 関 係 を 研 究 し 市 民 主 義 思 想 は 当 時 の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発 展 や 平 和 意 識 の 民 間 での 深 化 に 対 し て 積 極 的 な 効 果 を 発 揮 し ベトナム 戦 争 期 反 戦 運 動 の 発 展 を 促 進 させ その 後 の 日 本 の 平 和 主 義 文 化 に 対 して 深 い 影 響 を 与 えた 39) と 考 えている 同 時 に 市 民 主 義 思 想 が 相 当 のレベルで 平 和 運 動 の 闘 争 目 標 と 方 向 を 分 散 させ 容 易 に 反 対 勢 力 の 分 裂 と 破 壊 を 受 け 時 には 強 い 利 己 主 義 傾 向 などの 限 界 性 を 持 つと 指 摘 し 我 々が20 世 紀 60 年 代 後 の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の 多 方 面 性 と 複 雑 性 を 感 得 する 助 けとなっている 20 世 紀 80 年 代 中 期 以 来 中 国 人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関 心 を 寄 せたもう 一 つの 重 要 な 内 容 は 日 本 仏 教 の 平 和 運 動 における 効 果 を 非 常 に 注 視 したことであり この 方 面 に 関 する 報 道 や 紹 介 はおもに 法 音 天 風 と 仏 教 文 化 などの 宗 教 刊 行 物 であっ た そのうち 我 々が 最 も 関 心 を 持 ったのは 日 本 仏 教 曹 洞 宗 立 正 佼 成 会 会 長 の 庭 野 日 敬 先 生 が 政 界 平 和 と 中 日 友 好 を 維 持 するためにしてこられた 積 極 的 な 努 力 である 1970 年 10 月 庭 野 日 敬 は 世 界 の 著 名 な 宗 教 界 人 士 に 連 絡 して 世 界 宗 教 者 平 和 会 議 という 世 界 宗 教 界 の 力 を 連 携 し 人 類 恒 久 の 平 和 を 実 現 することを 提 唱 し 発 足 させた 1978 年 佼 成 会 は 庭 野 平 和 財 団 を 設 立 し 庭 野 平 和 賞 を 設 け 1983 年 より 毎 年 一 回 国 際 平 和 事 業 において 貢 献 した 組 織 や 個 人 に 褒 章 を 与 えている 庭 野 先 生 の 努 力 は 中 国 を 含 む 宗 教 界 人 士 の 尊 敬 と 支 持 を 得 た 2006 年 8 月 26-29 日 世 界 宗 教 会 が 日 本 の 京 都 に 集 まり 暴 力 を 拒 否 し 平 和 を 呼 びかけ ある 程 度 では 庭 野 先 生 を 推 賞 した 証 明 とみな すことがきるだろう 中 国 人 が 再 度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注 目 研 究 した 新 時 期 は おもに 次 のいくつかの 特 徴 がある 1. 中 国 人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関 心 を 寄 せた 回 数 は 比 較 的 少 なく 関 心 度 が 高 くなく 態 度 も 比 較 的 客 観 的 で 以 前 の 各 時 期 と 比 べて 多 くの 感 情 に 彩 られていることが 少 なかった 2. 中 国 人 が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報 道 あるいは 紹 介 する 内 容 は 以 前 の 各 時 期 と 一 定 の 持 続 性 と 継 承 性 がありはするが 日 本 仏 教 が 平 和 運 動 における 効 果 と 戦 後 日 本 国 民 が 戦 争 責 任 を 反 省 する 杯 用 が 増 加 した 3. 中 国 学 界 はすでに 学 術 的 な 視 点 で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研 究 し 始 めていたが 研 究 の 質 とレベルはさらなる 向 上 を 待 たねば ならなかった 4. 中 国 人 は 再 度 日 本 の 平 和 活 動 に 関 心 を 寄 せ 研 究 したが 絶 対 多 数 の 国 民 の 共 感 を 得 ることがほとんどなかった その 原 因 を 突 き 詰 めると 日 本 の 和 平 運 動 を 39) 夏 維 勇 日 本 60 年 代 末 70 年 代 初 め 市 民 と 市 民 運 動 に 関 する 討 論 越 平 聯 運 動 を 中 心 とし て 当 代 亜 太 2005 年 第 12 期 45-51 頁 日 本 60 年 代 後 期 の 市 民 主 義 と 平 和 運 動 か 越 平 聯 運 動 を 中 心 として 国 際 政 治 研 究 2006 年 第 3 期 174-183 頁 228
中 国 人 の 見 る 日 本 の 平 和 活 動 - 人 民 日 報 の 報 道 を 中 心 として - 報 道 する 量 が 少 ないこと 研 究 のレベルが 高 くないこと 大 衆 化 がしていなかったことなど の 要 因 以 外 に 日 本 国 内 の 右 翼 活 動 が 日 増 しに 猛 威 をふるったこと 日 本 政 府 が 歴 史 問 題 を 処 理 する 際 に 態 度 があいまいであったことがおもに 挙 げられる これらのことや さらに 教 科 書 問 題 靖 国 神 社 参 拝 問 題 日 本 軍 の 遺 留 科 学 武 器 慰 安 婦 問 題 および 民 間 の 戦 争 被 害 者 の 賠 償 訴 訟 など 中 日 間 の 歴 史 にのこる 問 題 を 日 増 しに 際 立 たせていった これと 同 時 に 中 日 両 国 の 主 流 メディアも 期 せずして 中 日 間 の 歴 史 問 題 と 現 実 的 利 益 の 論 争 に 焦 点 をあて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対 する 報 道 と 紹 介 を 軽 視 した このような 状 況 下 で 中 国 人 の 当 時 の 日 本 軍 が 犯 した 大 罪 の 悲 痛 な 記 憶 を 簡 単 に 呼 び 起 こしただけでな く 現 在 の 日 本 の 右 翼 活 動 に 対 する 不 満 と 憤 怒 を 増 加 させ 日 本 に 対 する 友 好 的 感 情 を 形 成 しにくくなった 歴 史 的 にみると 中 国 人 はかつて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に 高 い 関 心 をよせ 日 本 人 民 の 反 戦 反 核 反 米 闘 争 に 積 極 的 に 声 援 を 送 り 大 いに 支 持 し たとえ 中 国 共 産 党 と 日 本 共 産 党 の 関 係 が 完 全 に 決 裂 した 時 期 においても 継 続 して 日 本 人 民 の 反 米 闘 争 に 関 心 を 持 ち 支 持 した 文 革 終 結 と 中 国 指 導 層 の 調 整 にともない 中 国 は 世 界 に 向 かう 改 革 開 放 政 策 を 実 施 し 中 日 両 国 の 各 レベルの 二 国 間 関 係 と 多 国 間 関 係 を 積 極 的 に 発 展 させ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再 び 報 道 あるいは 紹 介 しただけでなく 中 国 学 会 も 学 術 的 視 点 から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を 研 究 し 始 めた しかしながら 否 定 できない 事 実 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が 普 通 の 中 国 人 の 視 野 から 徐 々に 薄 れていっているらしいことである これは 日 本 の 平 和 運 動 が 日 増 しに 分 散 化 地 方 化 影 響 力 の 相 対 的 弱 体 化 がしたという 要 因 にあるが 中 日 両 国 の 民 衆 特 に 若 者 の 民 族 主 義 的 感 情 が 燃 え 盛 る 今 日 において 往 々にしていくつかの 偶 発 的 事 件 が 両 国 の 民 間 の 声 を 沸 き 立 たせることで 両 国 政 府 は 認 識 を 変 えがたくさせて しまうと どれほどの 一 般 的 な 中 国 人 が 日 本 国 内 の 平 和 運 動 を 正 しく 見 ることができよう か 229
한국 근현대 평화운동론 탐색 -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辛 珠 柏 ( 延 世 大 )
한국 근현대 평화운동론 탐색 -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 평화운동론 탐색 -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辛 珠 柏 ( 延 世 大 ) <목 차> 1. 한국근현대사와 평화운동에 관한 인식 2. 민족운동과 평화 3. 민주화운동과 평화 평화운동 4. 평화운동과 역사교육 1. 한국근현대사와 평화운동에 관한 인식 한국근대사 또는 한국현대사를 평화운동의 측면에서 조명한 연구는 없었다. 평화운동 이란 독립된 운동이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화운동을 표방한 단체 들이 독립된 영역에서 평화사업을 전개하며 대중적인 자리매김을 한 것은 1990년대 후반 들어서였다. 비록 여전히 소수의 영역으로 남아있지만, 평화운동이나 평화사상이 이처럼 늦게 한국 사회에 자리잡게 된 것은, 한국근현대사에서 한국인은 너무나 많은 전쟁을 치른 데다 분단 과 독재를 겪은 가운데 군사주의적인 사고와 행동을 학교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 산해 왔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처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 독재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민 족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매진하는 가운데 평화운동은 언제나 독립과 통일에 연동되어서만 사고되고 주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1) 발표문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부터 1990년대 중반경까지 한국근현대사에서 어떤 평화운 동론이, 독립 및 통일과 연관지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에 관해 거칠게나마 간략히 정리 해보겠다. 1) 韓 洪 九, <한국현대사 특강-평화운동의 실천과 이론>, 2-3쪽. 23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2. 민족운동과 평화 평화 라는 말이 민족운동 세력 사이에서 저항의 매개로 사용된 대표적인 사례는 安 重 根 의 동양평화론일 것이다. 2) 안중근은 한국의 독립을 부정하며 침략한 일본의 동양평화론에 맞서 伊 藤 博 文 을 저격하였다. 그리고 대안으로 한중일 삼국의 주권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3국이 공동 관리하는 軍 港 을 만들고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하며 금융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 안하였다. 동양평화의 전제가 각국의 주권이 인정되는 상태 곧, 한국의 독립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안중근의 발상은 이후 민족운동가들이 공유하는 기본 원칙이었다. 때문에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의 행위는 동양평화를 가로막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1919년의 2 8독립선언은 동 양평화와 조선의 독립 관계를 아래와 같이 정의하였다. 最 後 에 東 洋 平 和 의 見 地 로 보건대 그 威 脅 者 이던 俄 國 은 이의 軍 國 主 義 的 野 心 을 抛 棄 하고 正 義 와 自 由 와 博 受 를 基 礎 로한 新 國 家 를 建 設 하략 하는 中 이며 中 華 民 國 도 亦 然 하며 兼 하여 此 次 國 際 聯 盟 이 實 現 되면 다시 軍 國 主 義 的 侵 畧 을 敢 行 할 强 國 이 無 할 것이라. 그러할진대 韓 國 을 合 倂 한 最 大 理 由 가 이미 消 滅 되얏을 뿐더러 徒 比 로 朝 鮮 民 族 이 無 數 한 革 命 亂 을 起 한다 하면 日 本 의 合 倂 된 朝 鮮 은 反 하여 東 洋 平 和 를 攪 亂 할 禍 源 이 될지라. 吾 族 은 正 當 한 方 法 으로 吾 族 의 自 由 를 追 求 할지나 萬 一 此 로써 成 功 치 못하면 吾 族 은 生 存 의 權 利 를 爲 하여 온갖 自 由 行 動 을 取 하여 最 後 의 一 人 까지 自 由 를 爲 하는 熱 血 을 濺 할지니 어찌 東 洋 平 和 의 禍 源 이 아니리오. 吾 族 은 一 兵 이 無 효라. 吾 族 은 兵 力 으로써 日 本 을 抵 抗 할 實 力 이 無 호러. 然 하나 日 本 이 萬 一 吾 族 의 正 當 한 要 求 에서 不 應 할진대 吾 族 은 日 本 에 對 하여 永 遠 의 血 戰 을 宣 하리라. 3) 이와 같은 사상은 3 1운동 이후 성립한 大 韓 民 國 臨 時 政 府 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大 韓 民 國 臨 時 政 府 에서 발행한 << 獨 立 新 聞 >>에 朴 健 秉 이 기고한 글에 따르면, 平 和 의 字 解 를 보건대 平 은 平 이요 和 는 均 이오 均 은 等 이니 平 和 는 平 等 으로 代 入 할 수 있다고 하면서 平 和 의 要 素 는 平 等 이니 氣 不 平 則 有 聲 하고 水 不 平 則 流 動 하나니 人 間 에 平 等 이 無 하면 爭 2) 발표자가 말하는 민족운동에는 1919년 이후 사회주의사상의 유입으로 분화되기 시작한 것까지 를 포괄한다. 운동 세력이란 측면에서 말하자면, 크게 민족주의운동 계열과 사회주의운동 계열 로 구분할 수 있다. 3) 독립기념관의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에서 인용. 굵은 글씨는 인용자가 강조한 것이다. 234
한국 근현대 평화운동론 탐색 -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鬪 가 起 하오 라고 하면서 絶 對 平 等 에는 네 가지 요건이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4) 그러면서 마지막 요건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언급하였다. 四. 平 和 에 對 한 覺 悟, 或 者 는 平 和 를 上 이라 하고 獨 立 을 次 이라 하며 或 者 는 平 和 와 獨 立 을 가치 치며 或 者 는 獨 立 을 上 이라 하고 平 和 를 次 이라 하나 獨 立 지 못한 者 에게는 平 和 가 업소 5) (굵은 글씨는 인용자) 이처럼 朴 健 秉 은 평등을 전제로 평화가 성립할 수 있으며, 독립과 평화를 先 後 關 係 로 보지 않고 必 要 充 分 關 係 로 이해하고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민족운동 세력은 항일투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었으므로 독립 과 평화의 관계를 아래와 같이 이해하고 있었다. 獨 立 의 完 成 이 엇지 容 易 하리오. 만흔 努 力 과 만흔 生 命 을 費 하지 아니하고 엇지되리요. 獨 立 運 動 의 第 一 期 가 겨우 지나가고 將 次 第 二 期 가 오려 하나니 이 第 二 期 야말로 우리 獨 立 運 動 의 本 論 이오 中 心 이라. 이미 平 和 運 動 의 時 機 가 過 하고 血 戰 의 時 機 가 到 하엿나니 이 時 期 의 期 間 은 第 一 期 보다 길 것과 그 困 難 과 犧 牲 은 더욱 巨 大 할 것과 따라서 이 時 機 에 우리 國 民 의 發 하여야 할 愛 國 의 熱 誠 과 勇 氣 와 忍 耐 는 더욱 倍 加 하여야 할지니 한갓 一 時 의 自 慰 를 爲 하야 獨 立 運 動 을 容 易 하고 簡 單 한 것으로 알지 말나. 6) 요컨대 大 韓 民 國 臨 時 政 府 는 1920년의 시점에서 민족운동의 제2기인 血 戰 의 시기가 이 미 시작되었으며, 그 기간 또한 장기간이 될 것이라 보았다. 일본의 지배하에서 독립을 획 득하기 위해 오랜 血 戰 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 속에서 평화의 영역이 독립된 영역으로 자리 잡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더구나 식민지로부터의 독립 이 곧 평화라고 이해하고 있는 평화관에서는 독립=평화가 등치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민족운동 세력 내부의 한 축인 민족주의운동 계열은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 으로 국제연대를 중시하였다. 예를 들어 1926년 만주에서 결성된 고려혁명당은 강령에서 제국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반항에서 우리와 공명하는 각 피압박 민족을 결합하고 同 一 戰 線 에서 일치의 보조를 취한다 고 표방하였다. 세계 강대국으로 성장한 일본과 맞서 4) 당시 강원도를 대표하는 臨 時 議 政 院 의 議 員 으로 활동하고 있던 그가 上 海 의 民 團 에서 강연한 내용을 소개한 기사이다. 5) 朴 健 秉, <나의 平 和 觀 >, << 獨 立 新 聞 >> 1920.1.8 6) < 本 國 同 胞 여>, << 獨 立 新 聞 >>, 1920.1.31 23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싸워 독립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국제연대가 당시의 현실에서도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래서 민족운동 세력은 한반도 주변에 반일연합세력이 형성되면 반일세력과 함께 또는 이 정세를 활용하여 反 日 交 戰 團 體 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독립을 획득하겠다는 대외 정세 활용론 을 전 략론을 갖고 있었다. 달리 보면, 일본 제국주의의 속성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으나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군사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한국사회에서 평 화담론의 발생사적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민족운동 세력은 그러면서 동시에 독립한 이후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였다. 고려혁명당 과 비슷한 시기인 1926년에 多 勿 靑 年 黨 을 개편하며 조직된 多 勿 黨 은 민족자본주의를 고집 하는 세력과 무산혁명을 주장 하며 민족운동을 부인하는 세력, 그리고 세계 혁명 계급으로 서 민족해방 을 주장하는 세력으로는 민족 대단결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일 본제국주의를 撲 滅 하고 자본제도를 타도하여 民 族 現 本 의 立 場 에서 모든 사람이 同 慶 하는 민족 본위의 생활 평등을 실현한 새로운 행복국가를 건설하자고 주장하였다. 7)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 새로운 평등 사회를 주장한 것이다. 국제연대를 추구하면서도 조선인의 평등 사회를 지향한 움직임은 민족주의운동 계열의 핵심적 지향점이었다. 이는 1930년 상해에서 결성된 韓 國 獨 立 黨 의 강령에 계승되었으며, 1941년 11월 大 韓 民 國 臨 時 政 府 에서 일본의 패전과 건국에 대비하여 제정한 < 建 國 綱 領 >에 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즉 건국강령에서는 독립 이후 보통선거제도를 실시하여 정권을 均 하고 國 有 制 度 를 채용하여 利 權 을 均 하고 共 費 敎 育 으로서 學 權 을 均 하며 국내외에 대하여 민족자결의 권리를 보장하여서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와의 불평등을 과감히 제거할지니 이로써 국내에 실현하면 특권계급이 곧 없어지고 소수민족의 침몰을 면하고 정치와 경제와 교육권리를 고르게 하여 높낮음이 없게 하고 同 族 과 異 族 에 대하여 또한 이러하게 한다 는 정치 경제 교육에서의 三 均 制 度 의 실행을 천명하였다. 요컨대 민족주의운동 계열의 주류는 독립 이후 三 均 이 이루어진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 여 평화를 이룩하려했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건국강령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민족주의운동 계열의 주류가 社 會 主 義 的 民 族 主 義 를 지향한 강령을 표방함으로써 社 會 民 主 主 義 國 家 를 꿈꾸었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평등을 추구한 점에서는 민족운동 세력의 또 다른 한 축이었던 사회주의운동 계 열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주의운동 계열은 1931년 9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자 무장으로 사회주의 소련을 옹호하자 는 구호를 새롭게 제기하는 한편에서, 反 帝 組 織 을 결성하기 위해 적극 활동하였다. 특히 청년학생 내부에서 반제단체를 조직하려는 노력이 도시지역을 중심 7) 辛 珠 柏,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1920~45)>>, 아세아문화사, 1999, 112쪽. 236
한국 근현대 평화운동론 탐색 -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으로 일어났다. 1937년 일본이 중국본토를 침략하는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중일전쟁을 내 란으로 라는 구호를 제기하였다. 민족주의운동 계열처럼 한반도 주변의 정세를 활용하는 대외정세 활용론 에 입각하여 무장투쟁을 통해 조선혁명을 달성하려 했던 것이다. 앞서 언 급했던 것처럼 민족주의운동 계열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운동 계열도 군사주의를 실현하며 평화담론을 구체화하려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회주의운동 계열처럼 민족주의운동 계열도 1931년 이후 일련의 전쟁 곧, 일본의 만주 침략으로부터 1945년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15년간의 아시아태평양전쟁 은, 戰 爭 의 不 在 가 곧 독립이요 평화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민족운동 세력은 일본이 장기간 사람과 물자를 동원할 수 없는 현실에서 전쟁을 계속 확대한다는 것은 自 滅 하는 길이며, 그것은 곧 조선의 독립으로 이어진다는 전략적 전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3. 민주화운동과 평화 평화운동 그러나 일본의 항복 선언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은 곧 독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38도 선을 경계로 연합국인 미국과 소련의 군대가 각각 진주하여 점령하였기 때문이다. 연합국 에 의한 한반도의 분할점령은 신탁통치문제를 둘러싼 대결 과정에서 좌우대결, 체제대결로 바뀌어 갔다. 독립 이후 평화가 찾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분단을 용인한 것도 아니었다. 남북한의 민족 구성원 대다수는 여기에 동조하자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그것을 최고 수준의 갈등 국면을 압축적으로 연출한 비극이었다.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 거 주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개인과 인류의 가치보다는 분단의 가치를 내면화해 갔다. 우리는 흔히 이를 分 斷 固 着 化 라고 말해 왔다. 한국사회에서 반공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면서 평화라는 말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것 을 말하는 것 자체가 敵 곧 北 韓 과 내통하는 利 敵 行 爲 로 찍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進 步 黨 의 평화통일론이었다. 1956년에 결성된 진보당은 첫 번째 정책 조항으로 통일문제 에 관해 아래와 같이 내 세웠다. 原 水 爆 의 발전으로 인한 세계 대세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희구하는 방향으로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더욱이 우리 민족은 이미 6 25의 참변으로 인하여 수백만의 生 靈 을 희생시키고 국토는 23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廢 墟 가 되고 民 生 은 거의 破 滅 에 入 하였으니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고 이 이상 同 族 相 殘 의 피를 흘릴 수는 없다. 우리는 오직 피흘리지 않는 통일만을 원한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파괴한 책임은 6 25의 죄과를 범한 북한 공산집단에게 있다. 그들의 반성과 책임규명은 평화통일의 선행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에 있어서의 남한의 소위 무력통일론도 이미 불가능하고 또 불필요한 것이다. 평화적 통일에의 길은 오직 하나 남북한에 있어서 평화통일을 저해하고 있는 요소를 견제하고 민주주의적 진보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방안이 결코 대한민국을 부인하거나 말살하는데 있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것을 육성하고 혁신하고 진실로 민주화하는데 있음을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을 획득해야 하며 그런 연후에 국제정세의 진운에 발맞추어 諸 友 邦 과의 긴밀한 협조하에 UN을 통한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조국 통일의 구체적 방안을 책정하려는 것이다. 민주주의 승리에 의한 조국의 평화적 통일 이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다. 8)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소련의 이해의 균형에 기초하며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 일을 달성하겠다는 진보당의 강령은 1957년 지도자 曺 奉 巖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좌절되었다. 이승만과 자유당처럼 무력북진통일만을 외치며 미국의 세계군사전 략에 호응하면서 권위주의적 통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지 않았던 진보당의 지향점은 분 단체제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이다. 9)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주의에 기초를 둔 남북통일과 평화정착 논의를 배격한 진보당의 주장이 대통령 선거라는 사회의 공공영역에서 큰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분단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중적 열망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고 하겠다. 1960년 4 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퇴진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다시 한 번 통일논의가 급속히 水 面 위로 올라왔다. 혁신정당의 일부인 統 一 社 會 黨, 革 新 黨, 社 會 大 衆 黨 은 민족 자주의 입장에서 국제 협조를 아래 통일을 달성하는 中 立 化 統 一 論 을 주장하였 고, 社 會 黨 과 民 族 自 主 統 一 中 央 協 會 의 주류는 외세의 간섭 없이 남북한이 직접 협상하여 모든 것을 결정하자는 南 北 協 商 論 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1961년 5 16군사쿠데타로 이들 논 의는 중단되었다. 10) 8) 權 大 福 엮음, <정책>, << 進 步 黨 >>, 止 揚 社, 1985, 37쪽. 9) 鄭 太 榮, << 曺 奉 巖 과 進 步 黨 >>, 한길사, 1991, 272쪽. 10) 洪 錫 律, <<통일문제와 정치 사회적 갈등 : 1953-1961>>,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제3장 참조. 238
한국 근현대 평화운동론 탐색 -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당시 통일논의는 국가와 민족의 문제로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 들의 경제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와 직접 연관되어 있었다. 대중의 현실 요구를 반영한 통일논의였기에 통일운동이 짧은 시간에 급속히 확산되면서 여러 사람의 관심과 참여를 불 러일으킬 수 있었다. 1970년대 들어 남북대화가 시작되었다. 1972년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통일 3대원칙 을 언급한 7 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자 통일문제가 다시 한국 사회의 쟁점으로 등장하였 다. 민주화운동 세력은 남북대화와 3대원칙을 환영했지만 박정희 유신정권에 이용되는 것 을 우려하였다. 민주화운동 세력의 다수는 민주주의에 기초한 통일된 민족으로 정의가 실 현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평화스런 나라 를 수립하자는 선민주 후통일을 주장하였다. 11) 통 일과 평화정착과정에 관한 진보당의 인식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군사독재와 싸우던 1980년대까지도 이러한 인식은 연장되었다. 개인의 인권을 이야기하 는 것은 사치였다. 때문에 통일논의와 독립된 평화담론이 설 자리는 거의 없었다. 1945년 이전에는 항일투쟁 속에서 평화운동이 묻혀 있었듯이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운동 속에서 평 화운동이 묻혀 있었던 것이다. 다만, 여전히 분단과 냉전, 평화라는 말이 대중 사이에서는 매우 생소하고 낯설었으며, 평화라는 말 자체를 언급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1970년대에 평화라는 단어를 공공 영역 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즉 군사주의에 기초 한 통일논의와 평화정착론은 공개적인 영역에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민주화운동 세력이 쟁취한 것은 아니며 기본적으로 데탕트라는 말로 압축되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남한의 대중은 새로운 변화를 열망하고 받아들일 자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평화라는 말이 공개적인 영역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던 1974년 한국교회여성 연합회는 민주화운동과 여성인권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세계 평화운동의 일환으로 원폭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하였다. 일본에 대한 피해보상 청구, 극빈 피폭자 가족의 생 계 지원, 피폭자 2세의 학비 보조, 그리고 한국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전 쟁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피폭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평화운동의 일환으로 벌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 여성평화운동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2) 1980년대 들어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평화운동은 반전반핵평화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 는 등 새로운 활동방향을 모색해 갔다. 1987년 들어 민족통일운동으로서의 반전반핵평화, 11) < 民 主 救 國 宣 言 (1976.3.1)> 12) 文 昭 丁, <한국여성평화운동의 전개>, << 韓 國 學 報 >> 31-1, 2005, 159쪽. 23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민족자주화와 민족생존구원운동으로서의 반전반핵평화운동 을 제기하며 평화통일운동을 전 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새로운 활동의 확대에는 敎 系 내부의 움직임 과도 맞닿아 있었다. 즉 敎 系 에서는 네 대의 原 子 力 이 가동되고 있고 1,100여개의 핵무기 가 한반도에 배치된 한국적 현실, 13) 1986년 4월 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원자력발전 소의 대형참사가 일어난 현실은, 핵시대의 평화문제가 우리의 발등에 떨어진 과제라고 보 았던 것이다. 14) 모임에서는 군축을 통한 평화 라는 평화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전쟁이 없는 소극적 평화운동만이 아니라 전쟁과 폭력이 생기는 갈등관계와 적대관계를 미 리 해소시키는 적극적 평화운동이 제기되었다. 잠재적 전쟁상태를 제거하기 위한 화해운동, 평화공존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이 제기되었다. 15) 1980년대 중반 일부 민주화운동 세력 내 부에서 서구의 평화운동을 보며 평화담론의 새로운 영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천의 영역에서 구체화하는 데는 또 다시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 1987년 6 10민주화운동을 통해 최소한의 정치적 민주화가 달성되고, 1990년 동서독이 통 일되었으며, 이듬해 사회주의 소련이 무너지는 상황 이후에나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 평화운동이란 이름을 직접 내걸고 평화문제를 독립된 실천의 영역에서 정면으로 상대한 때는 1991년경부터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91년 반핵평화운동을 광범위하 게 대중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독자적인 대중단체로 반핵평화운동연합이 결성되었기 때문이다. 반핵평화운동연합의 창립대회에서 내건 여덟 개 강령의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우리 민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배치된 핵무기와 이를 운용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철수토록하고 민중의 평화적인 삶을 짓밟는 핵관련 시설의 철폐를 위하여 노력한다. 3. 남북한 상호불신을 심화시켜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군비경쟁을 군축으로 전환하여, 그로부터 나오는 평화배당금이 국민복지 증진을 위해 쓰이도록 한다. 4. 이 땅에 끌어들인 휴전체제(준전시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하여 남북 불가침선언_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한반도 긴장완화와 걸림돌인 (한미-인용자)군사동맹, (한미- 인용자)군사훈련을 반대한다. 5. 한반도를 비핵지대로 만든다. 이를 위한 법률의 제정을 추진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 13)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담당해 왔던 한국 교회가 학생운동만이 아니라 노동운동 농민운동을 비 롯한 부문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민주화운동의 미개척 영역을 선도적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역사의식도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다. 14) 金 容 九, <오늘의 세계와 평화문제>, << 對 話 의 모임 : 한국교회와 평화운동(1986.5.15-16)>>, 크리스챤아카데미, 1986, 11쪽. 15) 李 三 悅, <오늘의 평화운동과 평화교육>, 위의 자료, 28쪽. 240
한국 근현대 평화운동론 탐색 -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장치를 강구한다. 16) 이후 반핵평화운동연합은 <<반핵평화>>라는 기관지를 발행하며 활동하였다. 요컨대 반 핵평화운동연합의 결성은 평화운동을 중심적인 활동 방향으로 삼는 부문운동 단체로서 이 전의 한반도 평화운동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하지만 강령에서 시사받을 수 있듯이 반핵평화운동연합의 평화는 통일운동과 반미운동 에 흡수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실제로 1987년 이후의 평화운동이 통일운동, 반미운동의 도구로 전락하는 경향을 띠었다. 결국 평화와 안보를 동일시해 왔던 시대에 안보의 주류였 던 정권의 지배 담론과 반공이데올로기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국가안보와 정 권안보를 구분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민주의식이 쌓이고, 통일운동 또는 반미운동의 흐름 이 분화하면서 반성적 성찰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립적이고 포괄적인 평화운동이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며 자리 잡아 가면서 해소되었다. 17) 4. 평화운동과 역사교육 한국의 역사교육에서 평화교육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한국 민족운동 속에 내재된 군 사주의적 요소를 지적한 적이 없다. 또한 한국전쟁에 관해 남침과 피해를 강조할 뿐 그것 이 얼마나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였으며, 한국현대사와 동아시아사, 그리고 세계사에 어떤 영 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제대로 주목하고 있지 않은 것이 단적인 보기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서부터 최근의 아프칸파병까지 한국인은 무수히 많은 전쟁을 겪 고 개입했지만 전쟁 그 자체의 부당함을 제대로 비판한 적이 없다. 민족의 입장에서 일본 의 침략과 지배를 비판했을지언정, 이념의 테두리 속에서 중국과 소련의 행위를 지적했을 지언정, 자기 성찰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때문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다고 하지만, 일상에서는 여전히 위압적 서열관계가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동 안 대다수의 한국은 독립과 통일을 매개로 평화를 사고하도록 訓 育 되어 왔으므로 거대 담 론에만 익숙해 있지 일상적인 주변에서의 평화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무감각한 것이 현실이 다. 적극적 평화담론을 일상적 삶과 구체적 현실 속에서 사고 할수 있는 기회를 한국의 역 사교육은 제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6) <반핵평화운동연합 창립대회(1991.3.13)>, 8쪽. 이 단체는 1993년 2월 해체총회를 갖고 해산하 였다. 17) 鄭 旭 湜, <발제1 : 한국 평화운동의 성과와 전망, 그리고 과제>, 2005, 5쪽. 24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韩 国 近 现 代 和 平 运 动 论 之 探 索 - 以 民 族 运 动 和 民 主 化 运 动 为 中 心 - 辛 珠 柏 ( 延 世 大 ) < 目 次 > 一 关 于 韩 国 近 现 代 史 与 和 平 运 动 之 认 识 二 民 族 运 动 与 和 平 三 民 主 化 运 动 与 和 平 和 平 运 动 四 和 平 运 动 与 历 史 教 育 一 关 于 韩 国 近 现 代 史 与 和 平 运 动 之 认 识 从 和 平 运 动 的 侧 面 阐 释 韩 国 近 代 史 和 韩 国 现 代 史 的 研 究 至 今 依 然 付 诸 阙 如 因 为 所 谓 和 平 运 动 未 能 作 为 独 立 的 运 动 而 占 据 一 个 领 域 以 和 平 运 动 为 标 榜 的 团 体 在 独 立 的 领 域 展 开 和 平 事 业 并 且 占 据 大 众 性 的 地 位, 是 在 进 入 1990 年 代 后 半 期 以 后 尽 管 依 然 是 少 数 人 的 领 域, 但 是 和 平 运 动 抑 或 和 平 思 想 如 此 较 晚 在 韩 国 社 会 占 据 一 席 之 地, 是 因 为 韩 国 人 在 经 历 许 多 战 争 之 后 接 着 经 受 分 断 和 独 裁, 在 此 过 程 中 军 事 主 义 的 思 维 和 行 动 通 过 学 校 教 育, 不 断 地 扩 散 和 再 生 为 了 克 服 韩 半 岛 所 面 对 的 侵 略 和 殖 民 地 统 治 独 裁 和 分 断, 民 族 运 动 和 民 主 化 运 动 勇 往 直 前, 在 此 过 程 中 和 平 运 动 始 终 是 与 独 立 和 统 一 互 动 的 这 已 经 逐 渐 成 为 关 于 和 平 运 动 的 思 维 视 角 和 基 本 观 点 1) 本 文 拟 简 略 考 察 从 安 重 根 的 和 平 运 动 论 至 1990 年 代 中 半 期 的 和 平 运 动 论, 归 纳 在 韩 国 近 现 代 史 上 和 平 运 动 论 是 如 何 与 独 立 及 统 一 相 关 联 而 展 开 的 1) 韩 洪 九 : 韩 国 现 代 史 特 讲 和 平 运 动 的 实 践 与 理 论,2~3 页 242
韩 国 近 现 代 和 平 运 动 论 之 探 索 以 民 族 运 动 和 民 主 化 运 动 为 中 心 二 民 族 运 动 与 和 平 在 民 族 运 动 势 力 中 将 所 谓 和 平 之 语 作 为 抵 抗 的 媒 介 付 诸 使 用 的 代 表 性 事 例 是 安 重 根 的 和 平 运 动 论 2) 安 重 根 对 抗 日 本 之 否 定 韩 国 独 立 并 侵 略 韩 国 的 东 洋 和 平 论, 并 且 狙 击 了 伊 藤 博 文 作 为 替 代 议 案, 他 提 议 在 承 认 韩 中 日 三 国 的 主 权 的 基 础 上, 建 设 三 国 共 同 管 理 的 军 港, 组 织 东 洋 和 平 会 议, 设 置 金 融 机 构 东 洋 和 平 的 前 提 是 承 认 三 国 的 主 权 之 常 态, 亦 即 韩 国 的 独 立 必 须 获 得 维 持 安 重 根 这 种 构 想 是 此 后 民 族 运 动 活 动 家 共 有 的 基 本 原 则 因 此, 日 本 将 朝 鲜 沦 变 为 殖 民 地 的 行 为 被 视 为 妨 碍 东 洋 和 平 的 行 为 1919 年 的 二 八 独 立 宣 言 对 于 东 洋 和 平 与 朝 鲜 之 独 立 的 关 系 定 义 如 下 云 : 以 最 后 东 洋 和 平 之 见 地 言 之, 彼 最 大 威 胁 我 者, 若 俄 国 既 弃 其 军 事 的 野 心, 而 基 于 正 义 与 自 由, 从 事 于 新 国 家 之 建 设 中 华 民 国 亦 然 兼 此 次 国 际 联 盟 之 实 现 也, 必 无 敢 行 军 国 主 义 侵 略 之 强 国 矣 然 则 韩 国 合 并 之 最 大 理 既 已 消 灭, 而 从 此 朝 鲜 民 族 若 起 革 命 之 乱 者, 日 本 之 合 并 韩 国, 实 为 扰 乱 东 洋 和 平 之 祸 源 矣 吾 族 惟 一 正 当 之 方 法 者, 追 求 吾 族 之 自 由 而 若 不 能 以 此 成 功, 则 吾 族 为 生 存 权 利, 取 自 由 行 动, 至 最 后 一 个, 必 为 自 由 而 溅 其 热 血, 讵 非 东 洋 和 平 之 祸 源 耶? 吾 族 以 兵 力 乎, 则 虽 无 抵 抗 日 本 之 实 力, 然 日 本 不 应 吾 族 之 正 当 要 求 者, 不 得 不 对 于 日 本 宣 布 永 远 血 战 而 已 3) 这 类 思 想 还 被 三 一 运 动 以 后 成 立 的 大 韩 民 国 临 时 政 府 所 继 承 根 据 大 韩 民 国 临 时 政 府 发 行 的 独 立 新 闻 所 登 载 的 朴 健 秉 的 投 稿, 指 出 : 从 和 平 之 解 字 看, 平 则 为 平, 和 者 均, 均 者 等, 和 平 可 以 平 等 代 之 和 平 的 要 素 是 平 等, 气 不 平 则 有 声, 水 不 平 则 流 动, 人 间 无 平 等 则 争 斗, 进 而 提 出 关 于 绝 对 平 等 的 四 个 要 素 4) 其 中 最 后 一 项 要 素 言 及 如 下 内 容 : 四 对 和 平 之 觉 悟 或 者 云 和 平 为 上, 独 立 次 之 ; 或 者 云 和 平 与 独 立 一 同 为 之 ; 或 者 云 独 立 为 上, 和 平 次 之 然, 于 不 独 立 者, 和 平 何 所 为? 5) 由 此 可 见, 朴 健 秉 认 为 和 平 是 以 平 等 为 前 提 才 能 够 成 立 的, 他 不 是 将 独 立 与 和 平 视 为 2) 笔 者 所 说 的 民 族 运 动 还 包 括 1919 年 以 后 因 社 会 主 义 思 想 的 流 入 而 开 始 分 化 的 运 动 假 如 从 所 谓 运 动 势 力 的 侧 面 来 说, 大 体 可 以 区 分 为 民 族 主 义 运 动 系 列 和 社 会 主 义 运 动 系 列 3) 引 自 独 立 运 动 纪 念 馆 的 韩 国 独 立 运 动 史 信 息 系 统 粗 体 字 系 笔 者 强 调 的 部 分 4) 朴 健 秉 当 时 作 作 为 代 表 江 原 道 的 临 时 议 政 院 议 员 从 事 活 动, 这 是 介 绍 他 在 上 海 的 民 团 演 讲 的 报 道 5) 朴 健 秉 :< 我 的 和 平 观 >, 独 立 新 闻 1920 年 1 月 8 日 24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先 后 关 系, 而 是 视 为 必 要 充 分 关 系 民 族 运 动 势 力 认 为 除 了 通 过 抗 日 战 争 实 现 独 立 之 外 别 无 选 择, 因 此 将 独 立 与 和 平 的 关 系 理 解 如 下 : 独 立 之 完 成 殊 不 容 易, 不 费 万 分 之 努 力 和 万 分 之 生 命 绝 不 可 得 之 独 立 运 动 之 第 一 期 已 然 过 去, 第 二 期 将 次 到 来, 第 二 期 方 为 吾 独 立 运 动 之 本 论 和 中 心 和 平 运 动 之 时 机 已 过, 血 战 之 时 机 已 经 到 来 该 时 期 较 第 一 期 时 间 长, 困 难 和 牺 牲 更 加 巨 大 对 此 时 机, 吾 国 必 须 发 起 爱 国 之 热 诚 和 勇 气, 倍 加 忍 耐, 而 不 得 为 一 时 之 自 慰, 视 独 立 运 动 为 容 易 和 简 单 之 事 6) 概 而 言 之, 大 韩 民 国 临 时 政 府 在 1920 年 的 时 候 认 为, 民 族 运 动 之 第 二 期 即 血 战 时 期 已 经 开 始, 该 时 期 时 间 将 是 比 较 漫 长 的 由 此 可 见, 在 为 了 从 日 本 的 统 治 下 获 得 独 立 需 要 漫 长 的 血 战 时 期 之 认 识 中, 和 平 的 领 域 是 难 以 作 为 独 立 的 领 域 占 而 据 一 席 之 地 的 换 言 之, 特 别 是 在 从 殖 民 地 之 独 立 被 理 解 为 和 平 之 和 平 观 中, 独 立 = 和 平, 即 独 立 与 和 平 被 认 为 是 等 值 的 民 族 运 动 势 力 内 部 的 一 个 基 轴 即 民 族 主 义 系 列 作 为 实 现 独 立 过 程 的 一 环, 重 视 国 际 联 合 例 如,1926 年 在 满 洲 成 立 的 高 丽 革 命 党 在 其 纲 领 中 标 榜 : 在 对 帝 国 主 义 和 资 本 主 义 之 根 本 反 抗 中, 我 们 务 必 联 合 共 鸣 之 各 被 压 迫 民 族, 在 同 一 战 线 上 采 取 一 致 之 步 骤 为 了 抗 争 已 然 发 展 成 为 世 界 级 大 国 的 日 本 并 且 获 得 独 立, 国 际 联 合 在 当 时 的 现 实 中 是 不 可 回 避 的 惟 其 如 此, 民 族 运 动 具 有 这 种 战 略 理 论, 即 随 着 韩 半 岛 周 边 反 日 联 合 势 力 的 形 成, 充 分 利 用 这 种 情 势 而 作 为 反 日 交 战 团 体 的 一 员 参 加 其 中, 以 获 得 独 立, 是 为 对 外 情 势 活 用 论 换 言 之, 由 于 认 为 因 为 日 本 帝 国 主 义 的 属 性 是 不 可 回 避 的, 因 此 作 为 追 求 和 平 的 权 宜 之 计, 除 了 追 求 军 事 主 义 之 外 别 无 选 择, 这 点 堪 称 韩 国 社 会 中 和 平 观 之 发 生 史 的 特 征 与 此 同 时, 民 族 运 动 势 力 还 追 求 独 立 以 后 的 平 等 社 会 在 与 高 丽 革 命 党 相 同 时 期 之 1926 年 改 编 多 勿 革 命 党 组 成 的 多 勿 党, 认 为 不 可 能 实 现 作 为 坚 持 民 主 资 本 主 义 的 势 力 与 主 张 无 产 革 命 和 否 认 民 族 运 动 的 势 力 以 及 倡 导 作 为 世 界 革 命 阶 级 之 民 族 解 放 的 势 力 之 大 团 结, 主 张 扑 灭 日 本 帝 国 主 义 和 打 倒 资 本 主 义 制 度, 在 民 族 现 本 之 立 场 上 建 设 实 现 所 有 人 在 同 庆 的 民 族 氛 围 中 平 等 生 活 之 新 的 幸 福 国 家 7) 换 言 之, 这 是 主 张 既 非 社 会 主 义 亦 非 资 本 主 义 的 新 的 平 等 社 会 这 种 既 追 求 国 际 联 合 又 向 往 朝 鲜 人 的 平 等 社 会 的 动 向 是 民 族 主 义 运 动 系 列 的 核 心 志 6) < 本 国 同 胞 啊 >, 独 立 新 闻 1920 年 1 月 31 日 7) 辛 珠 柏 : 满 洲 地 区 韩 人 民 族 运 动 史 (1920~45 年 ), 亚 细 亚 文 化 社,1999 年,112 页 244
韩 国 近 现 代 和 平 运 动 论 之 探 索 以 民 族 运 动 和 民 主 化 运 动 为 中 心 向 这 个 志 向 不 仅 为 1930 年 在 上 海 建 立 的 韩 国 独 立 党 的 纲 领 所 继 承, 而 且 进 一 步 在 1941 年 11 月 大 韩 民 国 临 时 政 府 为 预 备 日 本 战 败 和 韩 国 建 国 而 制 定 的 建 国 纲 领 所 继 承 亦 即, 在 建 国 纲 领 中 阐 明 将 在 政 治 经 济 教 育 领 域 推 行 三 均 制 度, 即 : 实 施 普 通 选 举 以 均 政 权, 采 用 国 有 制 度 以 均 利 权, 通 过 共 费 教 育 以 均 学 权, 对 国 内 外 保 障 民 族 自 决 之 权 利, 断 然 消 除 民 族 与 民 族 国 家 与 国 家 间 之 不 平 等 这 些 在 国 内 实 现 后, 特 权 阶 级 将 迅 速 消 失, 少 数 民 族 将 免 于 沉 没 政 治 经 济 和 教 育 的 权 利 平 均 分 配, 高 低 之 别 不 复 存 在, 同 族 和 异 族 亦 同 等 对 待 换 言 之, 我 们 可 以 通 过 建 国 纲 领 确 认 的 是, 民 族 主 义 运 动 系 列 的 主 流 是 标 榜 志 向 社 会 主 义 之 民 族 主 义 的 纲 领, 梦 想 社 会 民 主 主 义 国 家 在 追 求 社 会 平 等 方 面, 民 族 运 动 势 力 之 另 一 基 轴 社 会 主 义 运 动 系 列 也 是 一 样 的 社 会 主 义 系 列 在 1931 年 日 本 侵 略 满 洲 后, 立 即 提 出 武 装 拥 护 社 会 主 义 的 苏 联 的 新 口 号, 同 时 为 了 结 成 反 帝 组 织 而 展 开 积 极 的 活 动 特 别 是 寻 求 在 青 年 学 生 内 部 组 织 反 帝 团 体 的 努 力 以 都 市 地 域 为 中 心 展 开 1937 年 日 本 侵 略 中 国 本 土 的 中 日 战 争 爆 发 后, 立 即 提 出 所 谓 以 中 日 战 争 为 内 乱 的 口 号 这 犹 如 民 族 主 义 运 动 系 列, 是 立 足 于 活 用 韩 半 岛 周 边 的 情 势 的 对 外 情 势 活 用 论, 寻 求 通 过 武 装 斗 争 以 达 成 朝 鲜 革 命 如 前 所 述, 与 民 族 主 义 运 动 系 列 一 样, 社 会 主 义 运 动 系 列 堪 称 也 在 寻 求 实 现 军 事 主 义 并 且 将 和 平 谈 论 具 体 化 诚 如 社 会 主 义 运 动 系 列, 民 族 主 义 运 动 系 列 在 1931 年 以 后 一 连 串 的 战 争 即 从 日 本 侵 略 满 洲 开 始 到 1945 年 亚 洲 太 平 洋 战 争 结 束 之 十 五 年 的 亚 洲 太 平 洋 战 争, 也 逐 渐 具 有 了 战 争 之 不 存 在 即 独 立 和 和 平 的 认 识 因 为 民 族 主 义 运 动 系 列 具 有 如 此 之 战 略 性 的 展 望, 即 日 本 在 不 能 够 长 期 地 动 员 人 员 和 物 资 的 现 实 下 继 续 扩 大 战 争 必 然 走 上 死 路, 而 这 将 导 向 朝 鲜 的 独 立 三 民 主 化 运 动 与 和 平 和 平 运 动 然 而, 日 本 的 投 降 宣 言 和 从 日 本 的 统 治 下 获 得 解 放 并 没 有 立 即 导 向 独 立 因 为 以 38 度 线 为 界, 盟 军 美 国 和 苏 联 的 军 队 分 别 进 驻 和 占 领 盟 军 对 韩 半 岛 的 分 割 占 领 在 围 绕 委 任 统 治 问 题 的 对 决 过 程 中 逐 渐 转 化 为 左 右 对 决 体 制 对 决 由 此 可 见, 独 立 以 后 依 然 没 有 找 到 和 平 尽 管 如 此,1948 年 建 立 的 大 韩 民 国 和 朝 鲜 民 主 主 义 人 民 共 和 国 并 不 是 容 忍 和 承 认 分 断 因 为 南 北 韩 的 民 族 成 员 大 多 数 对 此 并 不 同 调 韩 国 战 争 是 将 最 高 水 准 的 矛 盾 局 面 以 压 缩 的 方 式 演 出 的 悲 剧 以 此 为 契 机, 对 于 在 韩 半 岛 居 住 的 所 有 人 而 言, 较 诸 个 人 和 人 类 的 价 值, 逐 渐 将 分 断 的 价 值 转 化 为 内 心 精 神 世 界 的 一 部 分 我 们 经 常 称 之 分 断 固 定 24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化 在 韩 国 社 会, 反 共 优 先 于 一 切 价 值, 所 谓 和 平 之 词 被 排 斥 到 了 最 后 谈 论 和 平 本 身 被 指 责 为 是 与 敌 人 即 北 韩 相 通 的 利 敌 行 为, 其 代 表 性 的 事 例 是 进 步 党 的 和 平 统 一 论 1956 年 建 党 的 进 步 党 作 为 其 第 一 项 政 策 条 款 提 出 如 下 关 于 统 一 问 题 的 论 述 : 由 于 原 子 弹 的 发 展, 世 界 大 势 堪 称 昂 首 阔 步 地 走 向 反 对 战 争 和 冀 求 和 平 的 方 向 再 者, 我 们 民 族 因 为 六 二 五 惨 变, 数 百 万 的 生 灵 被 迫 牺 牲, 国 土 沦 为 废 墟, 民 生 几 乎 破 灭, 渴 望 和 平 之 心 无 以 伦 比 无 论 发 生 任 何 事, 我 们 都 不 能 再 流 同 族 相 残 之 血 了 我 们 只 冀 望 不 流 血 的 统 一 破 坏 祖 国 之 和 平 统 一 的 责 任 在 于 犯 下 六 二 五 罪 过 的 北 韩 共 产 集 团 他 们 的 反 省 和 责 任 追 究 必 然 是 和 平 统 一 的 先 决 条 件 如 今 所 存 在 之 南 韩 的 所 谓 武 力 统 一 论 也 已 经 是 不 可 能 的 和 不 必 要 的 走 向 和 平 统 一 的 惟 一 途 径 只 能 是 牵 制 南 北 韩 妨 碍 和 平 统 一 的 要 素, 民 主 主 义 的 进 步 势 力 掌 握 主 导 权 我 们 确 认, 祖 国 之 和 平 统 一 方 案 决 不 是 否 认 或 抹 杀 大 韩 民 国, 而 是 培 养 和 革 新 之, 真 正 地 推 行 民 主 化 惟 其 如 此, 我 们 本 身 必 须 获 得 大 韩 民 国 的 政 治 权 力, 然 后 顺 应 世 界 情 势 之 发 展, 在 与 诸 友 邦 的 紧 密 协 助 下, 策 划 和 确 定 通 过 联 合 国 之 民 主 的 和 和 平 的 祖 国 统 一 的 具 体 方 案 只 有 以 民 主 主 义 的 胜 利 实 现 祖 国 的 和 平 统 一, 才 是 我 们 的 惟 一 途 径 8) 进 步 党 的 纲 领 是 在 国 际 上 以 美 国 和 苏 联 的 利 害 均 衡 为 基 础 并 且 以 民 主 的 和 平 的 方 法 实 现 统 一, 这 种 构 想 随 着 1957 年 其 指 导 者 曹 奉 岩 等 以 违 反 国 家 安 全 法 之 嫌 疑 被 逮 捕 而 遭 到 挫 折 进 步 党 不 是 像 李 承 晚 和 自 由 党 只 是 高 喊 武 力 北 进 统 一, 呼 应 美 国 的 世 界 军 事 战 略, 以 维 持 和 强 化 威 权 主 义 的 统 治 权 力, 但 是 其 志 向 点 未 能 超 越 分 断 体 制 的 界 限 9) 尽 管 如 此, 进 步 党 的 主 张 以 建 立 在 军 事 主 义 基 础 上 的 南 北 统 一 和 和 平 固 定 讨 论 作 为 背 景, 在 总 统 选 举 之 社 会 公 共 领 域 引 起 重 大 的 大 众 性 呼 应, 由 此 可 见 可 以 克 服 分 断 体 制 之 大 众 尚 存 的 希 望 何 在, 堪 称 意 义 重 大 由 于 1960 年 的 四 一 九 革 命, 李 承 晚 总 统 辞 职, 民 主 党 掌 握 政 权, 统 一 讨 论 再 次 急 速 地 浮 上 水 面 革 新 政 党 的 一 部 分 统 一 社 会 党 革 新 党 社 会 大 众 党 从 民 族 自 主 的 立 场 出 发, 主 张 在 国 际 协 助 下 实 现 统 一 的 中 立 化 统 一 论, 而 社 会 党 和 民 族 自 主 统 一 中 央 协 会 的 主 流 则 主 张 在 没 有 外 国 势 力 干 涉 的 情 况 下 南 北 韩 进 行 直 接 协 商 以 决 定 一 切 的 南 北 协 商 论 尽 管 如 此, 由 于 1961 年 的 五 一 六 军 事 政 变, 这 些 讨 论 被 迫 中 断 10) 8) 权 大 福 编 :< 政 策 >, 进 步 党, 止 阳 社,1985 年,37 页 9) 郑 太 荣 : 曹 奉 岩 与 进 步 党, 韩 吉 社,1991 年,272 页 10) 洪 锡 律 : 统 一 问 题 与 政 治 社 会 矛 盾,1953~1961 年, 首 尔 大 学 出 版 部,2001 年, 第 三 章 246
韩 国 近 现 代 和 平 运 动 论 之 探 索 以 民 族 运 动 和 民 主 化 运 动 为 中 心 当 时 统 一 讨 论 不 只 是 作 为 国 家 和 民 族 的 问 题 而 进 行 的, 而 是 与 日 常 生 活 中 的 人 的 经 济 性 问 题 和 政 治 性 问 题 直 接 相 关 联 的 由 于 是 反 映 大 众 之 现 实 要 求 的 统 一 讨 论, 统 一 运 动 在 短 短 的 时 间 内 能 够 急 速 地 扩 散 并 且 吸 收 许 多 人 的 关 心 和 参 与 进 入 1970 年 代 后, 南 北 对 话 开 始 进 行 随 着 1972 年 言 及 自 主 和 平 民 族 大 团 结 之 统 一 三 大 原 则 的 七 四 南 北 共 同 声 明 的 发 表, 统 一 问 题 再 次 作 为 韩 国 社 会 的 争 点 而 出 现 民 主 化 运 动 势 力 虽 然 欢 迎 南 北 对 话 和 三 大 原 则, 但 是 忧 虑 其 为 朴 正 熙 维 新 政 权 所 利 用 民 主 化 运 动 势 力 的 多 数 主 张 所 谓 先 民 族 后 统 一, 即 依 靠 民 主 主 义 为 基 础 的 统 一 民 族 建 立 实 现 正 义 和 保 障 人 权 的 和 平 国 家 11) 这 与 进 步 党 关 于 统 一 和 民 主 化 固 定 过 程 的 认 识 是 一 脉 相 承 的 这 种 认 识 还 延 长 到 继 续 与 军 事 独 裁 进 行 斗 争 的 1980 年 代 谈 论 个 人 的 人 权 是 一 种 奢 侈 因 此, 统 一 讨 论 和 独 立 的 和 平 讨 论 几 乎 没 有 立 足 之 地 恰 如 1945 年 以 前 和 平 运 动 蕴 藏 于 抗 日 斗 争 之 中, 解 放 以 后 和 平 运 动 是 蕴 藏 于 民 主 化 运 动 之 中 然 而, 在 分 断 和 冷 战 依 然 如 故 的 1970 年 代, 不 仅 所 谓 和 平 之 语 在 大 众 中 已 经 非 常 生 疏 和 陌 生, 而 且 言 及 和 平 本 身 也 成 其 为 负 担 即 使 如 此, 在 公 共 领 域 中 已 经 开 始 谈 论 所 谓 和 平 之 词 语, 仅 此 也 堪 称 不 幸 中 的 大 幸 亦 即, 以 军 事 主 义 为 基 础 的 统 一 言 论 和 和 平 固 定 论 在 公 开 的 领 域 是 不 可 能 获 得 更 多 的 立 足 之 地 毋 需 赘 言, 这 不 是 民 主 化 运 动 势 力 所 争 取 的, 而 是 起 因 于 根 本 性 的 紧 张 局 势 缓 和 导 致 的 国 际 情 势 变 化 再 者, 南 韩 的 大 众 具 有 渴 望 和 接 受 新 变 化 的 态 势, 因 此 是 可 能 的 在 和 平 之 语 在 公 开 的 领 域 里 得 以 自 由 地 使 用 的 1974 年, 韩 国 教 会 妇 女 联 合 会 在 展 开 民 主 化 运 动 和 妇 女 人 权 运 动 的 过 程 中, 作 为 世 界 和 平 运 动 的 一 环, 开 始 支 援 原 子 弹 爆 炸 受 害 者 的 活 动 她 们 开 展 各 种 活 动, 包 括 请 求 对 日 本 的 被 害 赔 偿, 支 援 极 其 悲 惨 的 原 子 弹 被 害 者 家 属 的 生 活, 补 助 原 子 弹 爆 炸 受 害 者 的 二 代 学 费, 以 及 敦 促 韩 国 政 府 采 取 对 等 等 这 是 从 保 护 战 争 受 害 者 的 层 面 将 支 援 原 子 弹 爆 炸 受 害 者 的 活 动 作 为 和 平 运 动 的 一 环 展 开 惟 其 如 此, 韩 国 妇 女 和 平 运 动 可 以 评 价 为 是 从 此 时 开 始 的 12) 进 入 1980 年 代 后, 韩 国 教 会 妇 女 联 合 会 的 和 平 运 动 进 一 步 摸 索 新 的 活 动 方 向, 包 括 举 办 关 于 反 战 反 核 和 平 的 研 讨 会 等 到 1987 年, 不 仅 提 出 作 为 民 族 统 一 运 动 之 反 战 反 核 和 平 作 为 民 族 自 主 化 和 民 族 生 存 救 援 运 动 之 反 战 反 核 和 平 运 动, 而 且 开 始 展 开 和 平 统 一 运 动 韩 国 教 会 妇 女 联 合 会 的 新 活 动 之 扩 大 是 与 教 派 内 部 的 动 向 相 接 连 的 亦 即, 由 于 韩 国 四 座 核 电 站 已 经 运 转 和 韩 半 岛 配 置 1100 余 个 核 武 器 的 现 实 13), 以 及 1986 年 4 月 所 发 11) 民 主 救 国 宣 言 (1976 年 3 月 1 日 ) 12) 文 昭 丁 :< 韩 国 妇 女 和 平 运 动 之 展 开 >, 韩 国 学 报 31 1,2005 年,159 页 13) 担 当 民 主 化 运 动 之 一 轴 的 韩 国 教 会 接 受 不 仅 学 生 运 动 而 且 工 人 运 动 农 民 运 动 等 部 门 运 动 活 跃 展 开 的 现 实, 认 为 必 须 先 行 开 拓 民 主 化 运 动 之 未 开 垦 的 领 域, 这 种 历 史 意 义 也 是 重 要 的 原 24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生 的 苏 联 切 尔 诺 贝 利 核 电 站 惨 重 事 故 的 现 实, 教 派 内 部 将 核 时 代 的 和 平 视 为 我 们 的 燃 眉 之 急 的 课 题 14) 在 集 会 中 展 开 所 谓 通 过 裁 军 实 现 和 平 之 和 平 运 动 蔚 然 成 风, 并 且 提 出 消 除 产 生 战 争 和 暴 力 的 矛 盾 关 系 和 敌 对 关 系 之 积 极 的 和 平 运 动, 而 不 是 没 有 战 争 之 消 极 的 和 平 运 动 与 此 同 时, 提 出 以 消 除 潜 在 的 战 争 事 态 为 目 的 的 和 解 运 动 以 和 平 共 存 为 目 的 的 努 力 是 必 不 可 少 的 15) 由 此 可 见,1980 年 代 中 期 在 一 部 分 民 主 化 运 动 势 力 内 部 已 经 看 到 西 欧 的 和 平 运 动 并 且 接 受 了 和 平 讨 论 的 的 新 领 域 然 而, 在 实 践 的 领 域 将 其 具 体 化 还 只 能 再 次 经 历 许 多 的 时 间 因 为 通 过 1987 年 六 一 民 主 化 运 动 实 现 了 最 低 程 度 的 政 治 民 主 化,1990 年 东 西 德 实 现 统 一, 翌 年 社 会 主 义 的 苏 联 崩 溃, 只 有 在 这 种 情 势 变 化 以 后 才 具 有 在 实 践 中 将 其 具 体 化 的 可 能 性 即 使 认 为 在 韩 国 直 接 推 出 所 谓 和 平 运 动 之 名 并 且 在 独 立 的 实 践 领 域 正 面 面 对 和 平 运 动 是 从 1991 年 开 始 的, 也 并 不 是 无 稽 之 谈 因 为 1991 年, 作 为 以 广 泛 围 地 和 大 众 性 地 展 开 反 核 和 平 运 动 为 目 的 的 独 立 性 大 众 团 体, 反 核 和 平 运 动 联 合 宣 告 成 立 反 核 和 平 运 动 联 合 的 创 立 大 会 提 出 五 项 纲 领, 其 中 部 分 纲 领 如 下 : 1. 为 了 促 使 撤 出 与 我 们 民 族 之 意 志 无 关 而 配 置 的 核 武 器 及 其 运 营 之 驻 韩 美 军, 为 了 撤 除 践 踏 我 们 民 族 的 和 平 生 活 的 核 关 联 设 施 而 努 力 3. 将 加 深 南 北 韩 互 不 信 任 和 阻 碍 统 一 的 军 备 竞 赛 转 变 为 裁 减 军 备, 并 将 由 此 产 生 的 和 平 赔 偿 金 用 于 增 进 国 民 福 祉 4. 为 将 强 加 于 国 土 上 的 停 战 体 制 ( 准 战 时 体 制 ) 转 变 为 和 平 体 制, 推 进 缔 结 南 北 互 不 侵 略 宣 言 和 平 协 定, 反 对 韩 半 岛 紧 张 局 势 之 缓 和 的 绊 脚 石 ( 韩 美 引 者 ) 军 事 同 盟 ( 韩 美 引 者 ) 军 事 合 作 5. 将 韩 半 岛 作 为 非 核 地 区 促 进 制 定 相 关 法 律, 并 研 究 采 取 相 应 具 体 的 保 障 措 施 16) 此 后, 反 核 和 平 运 动 联 合 发 行 其 机 关 杂 志 反 核 和 平 并 展 开 活 动 要 言 之, 反 核 和 平 运 动 联 合 的 成 立 作 为 选 择 以 和 平 运 动 为 中 心 活 动 方 向 的 部 门 运 动 团 体, 是 在 以 前 的 韩 半 岛 和 平 运 动 中 看 不 到 的 现 象 因 之 一 14) 金 容 九 :< 今 日 之 世 界 与 和 平 问 题 >, 对 话 的 集 会 : 韩 国 传 教 与 和 平 运 动 (1965 年 5 月 15 日 至 16 日 ), 基 督 教 学 院,1986 年,11 页 15) 李 三 悦 :< 今 日 之 和 平 运 动 与 和 平 教 育 >, 对 话 的 集 会 : 韩 国 传 教 与 和 平 运 动 (1965 年 5 月 15 日 至 16 日 ), 基 督 教 学 院,1986 年,28 页 16) < 反 核 和 平 运 动 联 合 创 立 大 会 (1991 年 3 月 13 日 )>,8 页 该 团 体 于 1993 年 2 月 举 行 解 体 大 会, 宣 告 解 散 248
韩 国 近 现 代 和 平 运 动 论 之 探 索 以 民 族 运 动 和 民 主 化 运 动 为 中 心 但 是 正 如 其 纲 领 中 所 显 示 的, 反 核 和 平 运 动 联 合 的 和 平 具 有 被 统 一 运 动 和 反 美 运 动 所 吸 收 的 充 分 余 地 实 际 上,1987 年 以 后 的 和 平 运 动 具 有 沦 落 为 统 一 运 动 反 美 运 动 之 工 具 的 倾 向 结 果, 在 和 平 和 安 保 被 一 视 同 仁 的 时 代, 是 不 可 能 克 服 作 为 安 保 之 主 流 的 政 权 的 统 治 理 论 和 反 共 意 识 形 态 的 随 着 在 可 以 区 分 国 家 安 保 与 政 权 安 保 的 韩 国 社 会 中 民 主 意 识 逐 渐 积 累, 统 一 运 动 和 反 美 运 动 的 潮 流 走 向 分 化, 在 进 行 反 省 性 省 察 的 人 士 中 独 立 性 的 和 包 容 性 的 和 平 运 动 到 1990 年 代 占 据 一 席 之 地, 这 也 就 逐 渐 销 声 匿 迹 了 17) 四 和 平 运 动 与 历 史 教 育 在 韩 国 的 历 史 教 育 中, 和 平 教 育 尚 未 实 现 韩 国 民 族 运 动 中 所 蕴 含 的 军 事 主 义 要 素 尚 未 被 指 出 再 者, 关 于 韩 国 战 争, 只 是 强 调 南 侵 和 受 害, 而 对 于 其 在 何 种 程 度 上 是 反 人 类 的 犯 罪 行 为, 对 于 韩 国 现 代 史 和 东 亚 史, 以 至 世 界 史 造 成 何 种 影 响, 尚 未 给 予 应 有 的 关 注, 这 是 显 而 易 见 的 从 1894 年 东 学 农 民 战 争 开 始 到 最 近 的 韩 军 出 兵 阿 富 汗, 韩 国 人 经 历 和 介 入 了 无 数 之 多 的 战 争, 但 是 合 乎 标 准 地 批 判 战 争 本 身 之 不 当 性 的 情 况 付 诸 阙 如 即 使 从 民 族 的 立 场 批 判 日 本 的 侵 略 和 统 治 在 理 念 的 范 畴 内 批 判 中 国 和 苏 联 的 行 为, 也 没 有 对 自 己 进 行 应 有 的 省 察 惟 其 如 此, 虽 然 同 时 实 现 了 产 业 化 和 民 主 化, 但 是 在 日 常 生 活 中 威 压 性 的 序 列 关 系 依 然 支 配 着 个 人 与 个 人 的 关 系 在 此 期 间 大 多 数 韩 国 人 只 是 熟 悉 于 教 育 和 训 练 人 以 独 立 和 统 一 为 媒 介 思 考 和 平 的 高 谈 阔 论, 但 是 对 于 日 常 生 活 中 周 边 的 和 平 却 视 而 不 见 和 没 有 感 觉, 这 就 是 现 实 在 日 常 的 人 生 和 具 体 的 现 实 中 提 供 可 以 思 考 积 极 的 和 平 谈 论 的 机 会, 这 是 韩 国 的 历 史 教 育 责 无 旁 贷 的 义 务 17) 郑 旭 湜 :< 主 题 1: 韩 国 和 平 运 动 的 成 果 和 展 望 以 及 课 题 >,2005 年,5 页 249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韓 国 近 現 代 の 平 和 運 動 論 探 索 - 民 族 運 動 と 民 主 化 運 動 を 中 心 に - 辛 珠 柏 ( 延 世 大 ) < 目 次 > 1. 韓 国 近 現 代 史 と 平 和 運 動 に 関 する 認 識 2. 民 族 運 動 と 平 和 3. 民 主 化 運 動 と 平 和 平 和 運 動 4. 平 和 運 動 と 歴 史 教 育 1. 韓 国 近 現 代 史 と 平 和 運 動 に 関 する 認 識 韓 国 近 代 史 あるいは 韓 国 現 代 史 について 平 和 運 動 の 観 点 から 光 を 当 てた 研 究 はな かった 平 和 運 動 という 独 立 した 運 動 が 一 つの 領 域 として 地 位 を 占 めることができ なかったからである 平 和 運 動 を 標 榜 する 団 体 が 独 立 した 領 域 で 平 和 事 業 を 展 開 して 大 衆 的 な 位 置 づけを 行 ったのは1990 年 代 後 半 に 入 ってからだった 平 和 運 動 や 平 和 思 想 は 依 然 として 少 数 の 領 域 であり 続 けているが 韓 国 社 会 で 位 置 づけられるのがこのように 遅 かった 理 由 は 韓 国 近 現 代 史 において 韓 国 人 があまりにも 多 くの 戦 争 を 経 験 したうえに 分 断 と 独 裁 の 体 験 のなかで 軍 事 主 義 的 な 思 考 と 行 動 が 学 校 教 育 を 通 じて 絶 えず 拡 大 再 生 産 されてきたためである 朝 鮮 半 島 が 受 けた 侵 略 と 植 民 地 支 配 独 裁 と 分 断 を 克 服 するための 民 族 運 動 と 民 主 化 運 動 に 邁 進 してきたために 平 和 運 動 が 思 考 され 主 張 されたのは 常 に 独 立 と 統 一 に 連 動 した 場 合 のみだったからである 1) 本 報 告 では 安 重 根 の 東 洋 平 和 論 から1990 年 代 中 盤 頃 までの 韓 国 近 現 代 史 におい て 平 和 運 動 論 が 独 立 および 統 一 とどのように 関 連 づけられ どのように 展 開 されてきた のかについて 粗 雑 ながら 簡 潔 に 整 理 する 1) 韓 洪 九 韓 国 現 代 史 特 講 平 和 運 動 の 実 践 と 理 論 2 3ページ 250
韓 国 近 現 代 の 平 和 運 動 論 探 索 - 民 族 運 動 と 民 主 化 運 動 を 中 心 に - 2. 民 族 運 動 と 平 和 平 和 という 言 葉 が 民 族 運 動 勢 力 において 抵 抗 を 媒 介 するものとして 使 われた 代 表 的 な 事 例 は 安 重 根 の 東 洋 平 和 論 であろう 2) 安 重 根 は 韓 国 の 独 立 を 否 定 し 侵 略 した 日 本 の 東 洋 平 和 論 に 対 し 伊 藤 博 文 を 狙 撃 した そしてその 代 案 として 韓 中 日 三 国 の 主 権 を 認 めた 枠 組 みの 上 で3 国 が 共 同 管 理 する 軍 港 を 作 り 東 洋 平 和 会 議 を 組 織 し ま た 金 融 機 構 を 設 置 することを 提 案 した 東 洋 平 和 の 前 提 として 各 国 の 主 権 が 認 められた 状 態 すなわち 韓 国 の 独 立 が 維 持 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 安 重 根 の 発 想 は それ 以 後 の 民 族 運 動 家 が 共 有 した 基 本 原 則 であった したがって 朝 鮮 を 植 民 地 にした 日 本 の 行 為 は 東 洋 平 和 を 阻 害 する 行 為 と 見 な された 1919 年 の2 8 独 立 宣 言 は 東 洋 平 和 と 朝 鮮 の 独 立 関 係 を 下 記 のように 定 義 し た 最 後 に 東 洋 平 和 の 見 地 から 見 れば その 脅 威 者 であったロシアは その 軍 国 主 義 的 野 心 を 放 棄 し 正 義 と 自 由 と 博 愛 を 基 礎 にした 新 国 家 を 建 設 しようとする 最 中 であ り 中 華 民 国 もまた 同 様 である あわせて 今 回 国 際 連 盟 が 実 現 されれば 再 び 軍 国 主 義 的 な 侵 略 を 敢 行 する 強 国 が 無 くなるのである そうであるからには 韓 国 を 合 併 した 最 大 理 由 がすでに 消 滅 しただけでなく 徒 比 に 朝 鮮 民 族 が 無 数 の 革 命 乱 を 起 こ すとすれば 日 本 に 合 併 された 朝 鮮 はかえって 東 洋 平 和 を 撹 乱 する 禍 源 となるはずで ある 吾 族 は 当 然 正 当 な 方 法 で 吾 族 の 自 由 を 追 求 するが 万 一 これによって 成 功 できなければ 吾 族 は 生 存 の 権 利 のためにあらゆる 自 由 行 動 をとって 最 後 の 一 人 まで 自 由 のために 熱 血 をぐはずであるから どうして 東 洋 平 和 の 禍 源 ではないだろうか 吾 族 は 一 兵 が 無 効 であると 吾 族 は 兵 力 をもって 日 本 に 抵 抗 する 実 力 が 無 いのだと し かしながら 日 本 が 万 一 吾 族 の 正 当 な 要 求 に 応 じないならば 吾 族 は 日 本 に 対 して 永 遠 の 血 戦 を 宣 するであろう 3) この 思 想 は 3 1 運 動 以 後 に 成 立 した 大 韓 民 国 臨 時 政 府 にもそのまま 継 承 された 臨 時 政 府 が 発 行 した 独 立 新 聞 に 朴 健 秉 が 寄 稿 した 文 章 によれば 平 和 の 字 解 を 2) 発 表 者 が 取 り 扱 う 民 族 運 動 には 1919 年 以 後 社 会 主 義 思 想 の 流 入 によって 分 化 し 始 めたもの までを 包 括 する 運 動 勢 力 という 側 面 から 言 えば 民 族 主 義 運 動 系 列 と 社 会 主 義 運 動 系 列 に 大 きく 区 分 することができる 3) 独 立 紀 念 館 韓 国 独 立 運 動 史 情 報 システム から 引 用 ゴチックは 引 用 者 による 強 調 である 251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見 れば 平 は 平 であり 和 は 均 である 均 は 等 なので 平 和 は 平 等 と 置 き 換 えられる と する 一 方 平 和 の 要 素 は 平 等 なので 気 平 かならざればすなわち 声 有 り 水 平 らかな らざればすなわち 流 動 するので 人 間 に 平 等 が 無 ければ 争 闘 が 起 こる として 絶 対 平 等 には 四 種 類 の 要 件 があると 提 示 している 4) そのうえで 最 後 の 要 件 として 以 下 のよう な 内 容 に 言 及 した 四. 平 和 に 対 する 覚 悟 ある 者 は 平 和 を 上 独 立 を 次 だとし ある 者 は 平 和 と 独 立 を ともに 叫 び ある 者 は 独 立 を 上 平 和 を 次 とするが 独 立 できない 者 には 平 和 はな い 5) (ゴチックは 引 用 者 ) このように 朴 健 秉 は 平 等 を 前 提 に 平 和 が 実 現 できるとし 独 立 と 平 和 を 順 序 の 関 係 と して 見 るのではなく 必 要 十 分 関 係 で 理 解 しているという 点 を 確 認 することができる 民 族 運 動 勢 力 は 抗 日 闘 争 を 通 じて 独 立 を 達 成 するほかはないと 見 ていたので 独 立 と 平 和 の 関 係 を 下 のように 理 解 していた 独 立 の 完 成 を 得 るのは 容 易 だろうか 多 くの 努 力 と 多 くの 生 命 を 費 やすことなく 得 られ ようか 独 立 運 動 の 第 一 期 がようやく 過 ぎ 去 り まさに 第 二 期 が 始 まろうとしているが この 第 二 期 こそ 私 たちの 独 立 運 動 の 本 論 であり 中 心 である すでに 平 和 運 動 の 時 機 は 過 ぎ 血 戦 の 時 機 は 到 ったので この 時 期 の 期 間 は 第 一 期 より 長 く その 困 難 と 犠 牲 はよりいっそう 巨 大 であるとともに この 時 機 にわが 国 民 の 発 しなければならない 愛 国 の 熱 誠 と 勇 気 忍 耐 はよりいっそう 倍 加 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 単 に 一 時 の 自 慰 のために 独 立 運 動 を 容 易 で 簡 単 なものとは 理 解 しない 6) 要 するに 大 韓 民 国 臨 時 政 府 は1920 年 の 時 点 で 民 族 運 動 第 2 期 である 血 戦 の 時 期 がすでに 始 まっており またその 期 間 も 長 期 間 になるものと 見 ていた 日 本 の 支 配 下 にお いて 独 立 を 獲 得 するためには 長 年 にわたる 血 戦 が 必 要 だという 認 識 において 平 和 とい う 問 題 が 独 立 した 領 域 を 占 めることは 困 難 であった しかも 植 民 地 からの 独 立 がす なわち 平 和 であると 理 解 する 平 和 観 においては 独 立 = 平 和 が 等 価 となりえたのである 4) 当 時 江 原 道 代 表 の 臨 時 議 政 院 議 員 として 活 動 していた 彼 が 上 海 の 民 団 で 講 演 した 内 容 を 紹 介 した 記 事 である 5) 朴 健 秉 私 の 平 和 論 独 立 新 聞 1920.1.8 6) 本 国 同 胞 よ 独 立 新 聞 1920.1.31 252
韓 国 近 現 代 の 平 和 運 動 論 探 索 - 民 族 運 動 と 民 主 化 運 動 を 中 心 に - 民 族 運 動 勢 力 内 部 の 一 つの 軸 である 民 族 主 義 運 動 系 列 は 独 立 達 成 のための 過 程 の 一 環 として 国 際 連 帯 を 重 視 した たとえば 1926 年 に 満 洲 で 結 成 された 高 麗 革 命 党 は 綱 領 で 帝 国 主 義 資 本 主 義 に 対 する 根 本 的 反 抗 において 私 たちと 共 鳴 する 被 圧 迫 諸 民 族 を 結 合 し 同 一 戦 線 として 一 致 した 歩 調 をとる ことを 標 榜 した 世 界 の 強 大 国 に 成 長 した 日 本 と 対 峙 し これと 戦 って 独 立 を 獲 得 するためには 国 際 連 帯 は 現 実 的 に 避 けられないものであった そこで 民 族 運 動 勢 力 は 朝 鮮 半 島 周 辺 に 反 日 連 合 勢 力 が 形 成 されれば 反 日 勢 力 とともに またはこの 情 勢 を 活 用 し 反 日 交 戦 団 体 の 一 員 に 参 加 し て 独 立 を 獲 得 するという 対 外 情 勢 活 用 論 を 戦 略 論 としてもっていた 別 の 見 方 をする と 日 本 帝 国 主 義 の 属 性 ゆえに 避 けられなかったと 考 えられるが 平 和 を 追 求 するための 方 便 として 軍 事 主 義 を 追 求 するほかはなかったという 点 は 韓 国 社 会 における 平 和 論 の 発 生 史 的 特 性 だということができる 民 族 運 動 勢 力 はそれとともに 同 時 に 独 立 後 の 平 等 な 社 会 を 追 求 した 高 麗 革 命 党 と ほぼ 同 じ 時 期 の1926 年 に 多 勿 青 年 党 を 改 編 して 組 織 された 多 勿 党 は 民 族 資 本 主 義 に 固 執 する 勢 力 と 無 産 革 命 を 主 張 して 民 族 運 動 を 否 認 する 勢 力 そして 世 界 革 命 階 級 として 民 族 解 放 を 主 張 する 勢 力 によって 民 族 大 団 結 を 達 成 することはできな いと 考 えた それとともに 日 本 帝 国 主 義 を 撲 滅 し 資 本 制 度 を 打 倒 して 民 族 現 本 の 立 場 から すべての 人 が 同 慶 する 民 族 本 位 の 生 活 平 等 を 実 現 した 新 たな 幸 福 国 家 を 建 設 しようと 主 張 した 7) 社 会 主 義 でも 資 本 主 義 でもない 新 たな 平 等 社 会 を 主 張 したので ある 国 際 連 帯 を 追 求 しながらも 朝 鮮 人 の 平 等 社 会 を 目 指 した 動 きは 民 族 主 義 運 動 系 列 の 核 心 的 な 目 標 であった これは1930 年 上 海 で 結 成 された 韓 国 独 立 党 の 綱 領 に 継 承 され 1941 年 11 月 大 韓 民 国 臨 時 政 府 が 日 本 の 敗 戦 と 建 国 に 備 えて 制 定 した 建 国 綱 領 にもそのまま 継 承 された すなわち 建 国 綱 領 では 独 立 後 普 通 選 挙 制 度 を 実 施 して 政 権 を 均 し 国 有 制 度 を 採 用 して 利 権 を 均 し 共 費 教 育 として 学 権 を 均 し 国 内 外 に 対 して 民 族 自 決 の 権 利 を 保 障 して 民 族 と 民 族 国 家 と 国 家 との 不 平 等 を 果 敢 に 除 去 するので これが 国 内 に 実 現 すれば 特 権 階 級 が 無 くなり 少 数 民 族 の 沈 没 に 臨 んで 政 治 と 経 済 教 育 権 利 を 選 ぶようにし 貴 賎 がなくなるようにし 同 族 と 異 族 に 対 して もまた 同 様 にする という 政 治 経 済 教 育 での 三 均 制 度 の 実 行 を 明 らかにした 要 するに 民 族 主 義 運 動 系 列 の 主 流 は 独 立 後 三 均 が 達 成 された 平 等 な 社 会 を 追 求 して 平 和 を 達 成 しようとした 言 い 換 えれば 建 国 綱 領 を 通 じて 私 たちが 確 認 でき 7) 辛 珠 柏 満 洲 地 域 韓 人 の 民 族 運 動 史 (1920~45) アジア 文 化 社 1999 年 112ページ 253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るのは 民 族 主 義 運 動 系 列 の 潮 流 が 社 会 主 義 的 民 族 主 義 を 志 向 した 綱 領 を 標 榜 す ることによって 社 会 民 主 主 義 国 家 を 夢 見 たという 事 実 である 社 会 的 平 等 を 追 求 した 点 では 民 族 運 動 勢 力 のもう 一 つの 軸 であった 社 会 主 義 運 動 系 列 も 同 様 であった 社 会 主 義 運 動 系 列 は 1931 年 9 月 日 本 が 満 州 を 侵 略 するや 武 装 して 社 会 主 義 ソ 連 を 擁 護 しよう というスローガンを 新 たに 提 起 する 一 方 で 反 帝 組 織 を 結 成 するために 積 極 的 に 活 動 した 特 に 青 年 学 生 内 部 で 反 帝 団 体 を 組 織 しようとす る 努 力 が 都 市 地 域 を 中 心 に 起 きた 1937 年 日 本 が 中 国 本 土 を 侵 略 する 中 日 戦 争 を 起 こすや 中 日 戦 争 を 内 乱 へ というスローガンを 提 起 した 民 族 主 義 運 動 系 列 のよう に 朝 鮮 半 島 周 辺 の 情 勢 を 活 用 する 対 外 情 勢 活 用 論 に 立 脚 し 武 装 闘 争 を 通 じて 朝 鮮 革 命 を 達 成 しようとしたのである 先 に 言 及 したように 民 族 主 義 運 動 系 列 と 同 じよう に 社 会 主 義 運 動 系 列 も 軍 事 主 義 を 実 現 して 平 和 談 論 を 具 体 化 しようとしたと 言 うことがで きる 社 会 主 義 運 動 系 列 のように 民 族 主 義 運 動 系 列 も 1931 年 以 後 の 一 連 の 戦 争 す なわち 日 本 の 満 洲 侵 略 から1945 年 のアジア 太 平 洋 戦 争 が 終 わるまでの 15 年 間 のアジ ア 太 平 洋 戦 争 は 戦 争 が 不 在 であることが そのまま 独 立 であり 平 和 であるという 認 識 をもっていた 民 族 運 動 勢 力 は 日 本 が 長 期 間 にわたって 人 間 と 物 資 を 動 員 できない 現 実 において 戦 争 を 拡 大 し 続 けることは 自 滅 への 途 を 歩 むことであり それはまもなく 朝 鮮 の 独 立 につながるという 戦 略 的 展 望 をもっていたためである 3. 民 主 化 運 動 と 平 和 平 和 運 動 しかし 日 本 の 降 伏 宣 言 と 日 本 からの 解 放 は そのまま 独 立 にはつながらなかった 38 度 線 を 境 界 として 連 合 国 の 米 国 とソ 連 の 軍 隊 がそれぞれ 進 駐 し 占 領 を 行 ったためであ る 連 合 軍 による 朝 鮮 半 島 の 分 割 占 領 は 信 託 統 治 問 題 をめぐる 対 立 の 過 程 で 左 右 対 立 体 制 対 立 へと 変 化 していった 独 立 後 も 平 和 はめぐってこなかったのである だからと 言 って 1948 年 に 樹 立 された 大 韓 民 国 と 朝 鮮 民 主 主 義 人 民 共 和 国 が 分 断 を 容 認 したわけでもなかった 韓 国 北 朝 鮮 の 民 族 構 成 員 の 大 多 数 がこれに 同 調 しなかっ たためである 朝 鮮 戦 争 は そうした 最 高 水 準 の 葛 藤 局 面 を 圧 縮 して 演 出 した 悲 劇 であっ た これを 契 機 として 朝 鮮 半 島 に 居 住 する 人 々すべてにとって 個 人 と 人 類 の 価 値 よりも 分 断 の 価 値 が 内 面 化 されていった われわれはしばしばこれを 分 断 固 着 化 と 呼 んできた 韓 国 社 会 においては 反 共 がすべての 価 値 に 優 先 し 平 和 という 言 葉 は 後 回 しにされ 254
韓 国 近 現 代 の 平 和 運 動 論 探 索 - 民 族 運 動 と 民 主 化 運 動 を 中 心 に - た それを 語 ること 自 体 が 敵 つまり 北 朝 鮮 と 内 通 する 利 敵 行 為 と 見 なされた その 代 表 的 な 事 例 が 進 歩 党 の 平 和 統 一 論 だった 1956 年 に 結 成 された 進 歩 党 は 当 初 政 策 条 項 として 統 一 問 題 に 関 し 下 記 のように 標 榜 した 原 水 爆 の 発 展 によって 世 界 の 大 勢 は 戦 争 に 反 対 し 平 和 を 希 求 する 方 向 に 滔 々と 流 れている さらにわが 民 族 は すでに6 25( 朝 鮮 戦 争 )の 災 禍 によって 数 百 万 の 生 霊 を 犠 牲 にし 国 土 は 廃 墟 となり 民 生 はほとんど 破 滅 したため 平 和 を 渇 望 する 心 はその 誰 に も 劣 らない われわれはいかなることがあろうとも これ 以 上 同 族 相 残 の 血 を 流 すことはできない われわれはただ 血 を 流 さない 統 一 だけを 望 む 祖 国 の 平 和 的 統 一 を 破 壊 した 責 任 は 6 25の 罪 を 犯 した 北 朝 鮮 共 産 集 団 にある 彼 らの 反 省 と 責 任 糾 明 は 平 和 統 一 の 先 行 条 件 で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 今 日 における 韓 国 のいわゆる 武 力 統 一 論 も すでに 不 可 能 かつ 不 必 要 なものであ る 平 和 的 統 一 への 道 はただ 一 つ 南 北 朝 鮮 において 平 和 統 一 を 阻 害 している 要 素 を 抑 え 民 主 主 義 的 進 歩 勢 力 が 主 導 権 を 掌 握 することのみである われわれは 祖 国 の 平 和 的 統 一 方 案 が 決 して 大 韓 民 国 を 否 認 したり 抹 殺 したりす るところにあるのではなく むしろそれを 育 成 し 革 新 して 真 に 民 主 化 することにあるのを 確 信 する そのためにわれわれは われわれ 自 らが 大 韓 民 国 の 政 治 権 力 を 獲 得 するべ きであり しかる 後 に 国 際 情 勢 の 進 運 に 歩 調 を 合 わせて 諸 友 邦 との 緊 密 な 協 調 の 下 に 国 連 を 通 した 民 主 的 で 平 和 的 な 祖 国 統 一 の 具 体 的 方 案 を 策 定 しようとするのであ る 民 主 主 義 の 勝 利 による 祖 国 の 平 和 的 統 一 これだけがわれわれの 唯 一 の 道 であ る 8) 国 際 的 には 米 ソの 利 害 均 衡 にもとづき 民 主 的 で 平 和 的 な 方 法 によって 統 一 を 達 成 す るという 進 歩 党 の 綱 領 は 1957 年 指 導 者 の 曺 奉 厳 らが 国 家 保 安 法 違 反 の 嫌 疑 で 拘 束 されることによって 挫 折 した 李 承 晩 と 自 由 党 が 武 力 北 進 統 一 のみを 叫 び 米 国 の 世 界 軍 事 戦 略 に 呼 応 する 一 方 権 威 主 義 的 統 治 権 力 を 維 持 強 化 しなかった 進 歩 党 の 目 指 す ところは 分 離 体 制 の 限 界 を 超 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 9) それにもかかわらず 軍 8) 権 大 福 編 政 策 進 歩 党 止 揚 社 1985 37ページ 9) 鄭 太 栄 曺 奉 厳 と 進 歩 党 ハンギル 社 1991 272ページ 255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事 主 義 に 基 礎 を 置 いた 南 北 統 一 と 平 和 政 策 の 議 論 を 排 撃 した 進 歩 党 の 主 張 が 大 統 領 選 挙 という 社 会 の 公 共 的 領 域 において 大 きな 大 衆 的 反 応 を 引 き 出 したことは 分 離 体 制 を 克 服 しうる 大 衆 的 な 希 望 がどこにあったかを 確 認 することができる 機 会 だったという 点 で 大 き な 意 味 があるものといえるだろう 1960 年 の4 19 革 命 で 李 承 晩 大 統 領 が 退 陣 し 民 主 党 が 政 権 を 掌 握 するなか で 再 び 統 一 論 が 急 速 に 浮 上 した 革 新 政 党 の 一 部 である 統 一 社 会 党 革 新 党 社 会 大 衆 党 は 民 族 自 主 の 立 場 から 国 際 協 調 下 の 統 一 を 達 成 する 中 立 化 統 一 論 を 主 張 し 社 会 党 と 民 族 自 主 統 一 中 央 協 会 の 主 流 は 外 勢 に 干 渉 されることなく 南 北 朝 鮮 が 直 接 交 渉 してあらゆることを 決 定 しようという 南 北 協 商 論 を 主 張 した だが 1961 年 の5 16 軍 事 クーデタでこうした 議 論 は 中 断 させられた 10) 当 時 の 統 一 論 は 国 家 と 民 族 の 問 題 だけでは 成 立 しなかった 日 常 を 生 きる 人 々の 経 済 的 な 問 題 と 政 治 的 な 問 題 とが 直 接 関 連 していたからである 大 衆 の 現 実 的 要 求 を 反 映 した 統 一 論 であったため 統 一 運 動 は 短 期 間 で 急 速 に 広 がりながら さまざまな 人 々の 関 心 と 参 加 を 呼 び 起 こすことができた 1970 年 代 になると 南 北 対 話 が 始 まった 1972 年 自 主 平 和 民 族 大 団 結 の 統 一 三 大 原 則 に 言 及 した7 4 南 北 共 同 声 明 が 発 表 されるとすぐに 統 一 問 題 が 再 び 韓 国 社 会 の 争 点 として 登 場 した 民 主 化 運 動 勢 力 は 南 北 対 話 と 三 大 原 則 を 歓 迎 したが 朴 正 熙 維 新 政 権 に 利 用 されることを 憂 慮 した 民 主 化 運 動 勢 力 の 多 数 は 民 主 主 義 にも とづいた 統 一 された 民 族 として 正 義 が 実 現 され 人 権 が 保 障 される 平 和 の 国 を 樹 立 しようという 先 民 主 後 統 一 ( 民 主 化 を 優 先 し しかる 後 に 統 一 する) を 主 張 し た 11) 統 一 と 平 和 の 定 着 過 程 に 関 する 進 歩 党 の 認 識 と 同 様 の 脈 絡 である 軍 事 独 裁 と 闘 った1980 年 代 に 至 るまで こうした 認 識 は 及 んだ 個 人 の 人 権 を 語 るの は 贅 沢 であった そのため 統 一 の 議 論 から 独 立 した 平 和 論 を 立 ち 上 げる 余 地 はほとんど なかった 1945 年 以 前 には 抗 日 闘 争 のなかに 平 和 運 動 が 埋 もれていたように 解 放 後 には 民 主 化 運 動 のなかに 平 和 運 動 が 埋 もれていたのである ただし 依 然 として 分 断 と 冷 戦 平 和 という 言 葉 が 大 衆 に 非 常 になじみが 薄 く 平 和 と いう 言 葉 自 体 に 言 及 することが 負 担 であった1970 年 代 に 平 和 という 言 葉 が 公 共 の 領 域 で 語 られ 始 めたことはまだ 幸 いであったと 言 えるだろう すなわち 軍 事 主 義 にもとづいた 10) 洪 錫 律 統 一 問 題 と 政 治 社 会 的 葛 藤 :1953 1961 ソウル 大 学 校 出 版 部 2001 第 3 章 参 照 11) 民 主 救 国 宣 言 (1976.3.1) 256
韓 国 近 現 代 の 平 和 運 動 論 探 索 - 民 族 運 動 と 民 主 化 運 動 を 中 心 に - 統 一 議 論 と 平 和 定 着 論 は 公 開 的 な 領 域 では これ 以 上 立 ち 上 げる 余 地 がなくなったの である もちろんこれは 民 主 化 運 動 勢 力 が 勝 ち 取 ったものではなく 基 本 的 にデタント ( 緊 張 緩 和 )という 言 葉 に 凝 縮 された 国 際 情 勢 の 変 化 に 起 因 したものだった そして 韓 国 の 大 衆 が 新 たな 変 化 を 熱 望 して 受 け 入 れる 姿 勢 をもっていたために 可 能 だったのであ る 平 和 という 言 葉 が 公 共 的 な 領 域 で 自 由 に 使 う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1974 年 韓 国 教 会 女 性 連 合 会 は 民 主 化 運 動 と 女 性 人 権 運 動 を 行 うなかで 世 界 平 和 運 動 の 一 環 として 原 爆 被 害 者 を 支 援 する 活 動 を 始 めた 日 本 に 対 する 被 害 補 償 請 求 極 貧 被 爆 者 家 族 の 生 計 支 援 被 爆 者 二 世 の 学 費 補 助 そして 韓 国 政 府 に 対 策 をうながす 活 動 を 行 った 戦 争 被 害 者 の 人 権 を 保 護 するという 次 元 から 被 爆 者 を 支 援 する 活 動 を 平 和 運 動 の 一 環 とし て 行 ったのである したがって 韓 国 女 性 平 和 運 動 はこのときに 始 まったと 評 価 することがで きる 12) 1980 年 代 に 入 り 韓 国 教 会 女 性 連 帯 会 議 平 和 運 動 は 反 戦 反 核 平 和 に 関 するセミ ナーを 開 催 するなど 新 たな 活 動 方 向 を 模 索 していった 1987 年 になると 民 族 統 一 運 動 としての 反 戦 反 核 平 和 民 族 自 主 化 と 民 族 生 存 救 援 運 動 としての 反 戦 反 核 平 和 運 動 を 提 起 して 平 和 統 一 運 動 を 展 開 し 始 めたのである 韓 国 教 会 女 性 連 帯 会 の 新 たな 活 動 の 拡 大 は 教 系 内 部 の 動 きとも 連 動 していた すなわち 教 系 では 4 台 の 原 子 力 が 稼 動 しており 1,100 個 あまりの 核 兵 器 が 朝 鮮 半 島 に 配 置 された 韓 国 の 現 実 13) 1986 年 4 月 ソ 連 のチェルノブイリで 起 きた 原 子 力 発 電 所 の 大 惨 事 が 起 きた 現 実 は 核 時 代 の 平 和 問 題 がわれわれの 足 元 の 課 題 であると 考 えたのである 14) 集 まりでは 軍 縮 を 通 じた 平 和 という 平 和 運 動 を 展 開 することが 望 ましく 戦 争 がない 消 極 的 平 和 運 動 だけでなく 戦 争 と 暴 力 が 起 こる 対 立 関 係 と 敵 対 的 関 係 をあらかじめ 解 消 させる 積 極 的 平 和 運 動 が 提 起 された 潜 在 的 戦 争 状 態 を 取 り 除 くための 和 解 運 動 平 和 共 存 のための 努 力 の 必 要 さが 提 起 された 15) 1980 年 代 中 盤 一 部 の 民 主 化 運 動 勢 力 内 部 で 西 欧 の 平 和 運 動 を 観 察 し 平 和 論 の 新 たな 領 域 を 受 け 入 れたのである 12) 文 昭 丁 韓 国 女 性 平 和 運 動 の 展 開 韓 国 学 報 31 1 2005 159ページ 13) 民 主 化 運 動 の 一 つの 軸 を 担 ってきた 韓 国 教 会 が 学 生 運 動 だけでなく 労 働 運 動 農 民 運 動 をはじめとする 部 門 運 動 が 活 性 化 している 現 実 を 受 け 入 れ 民 主 化 運 動 の 未 開 拓 領 域 を 先 導 して 切 り 開 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 歴 史 意 識 も 重 要 な 要 因 の 一 つであった 14) 金 容 九 今 日 の 世 界 と 平 和 問 題 対 話 の 集 い: 韓 国 教 会 と 平 和 運 動 (1986.5.15 16) クリスチャンアカデミー 1986 11ページ 15) 李 三 悦 今 日 の 平 和 運 動 と 平 和 教 育 上 記 資 料 28ページ 257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 : 사회, 국가, 세계 しかし それが 実 践 という 領 域 で 具 体 化 するには さらに 多 くの 時 間 が 流 れなければな らなかった 1987 年 6 10 民 主 化 運 動 を 通 じて 最 小 限 度 の 政 治 的 民 主 化 が 達 成 さ れ 1990 年 東 西 ドイツが 統 一 され そして 翌 年 社 会 主 義 ソ 連 が 崩 れる 状 況 後 に 可 能 だったと 言 えるだろう 韓 国 で 平 和 運 動 という 名 称 を 直 接 掲 げ 平 和 問 題 を 独 立 した 実 践 領 域 において 正 面 から 対 峙 したのは1991 年 頃 からだと 見 て 差 し 支 えなかろう 1991 年 の 反 核 平 和 運 動 を 広 範 囲 かつ 大 衆 的 に 展 開 するための 独 自 の 大 衆 団 体 として 反 核 平 和 運 動 連 合 が 結 成 されたためである 反 核 平 和 運 動 連 合 の 創 立 大 会 で 掲 げられた8つの 綱 領 の 一 部 を 紹 介 すれば 下 記 のとおりである 1. われわれ 民 族 の 意 思 と 関 係 なく 配 置 された 核 兵 器 と これを 運 用 する 駐 韓 米 軍 を 撤 収 させ 民 衆 の 平 和 的 な 人 生 を 踏 みにじる 核 関 連 施 設 の 撤 廃 のために 努 力 する 3. 南 北 朝 鮮 の 相 互 不 信 を 深 化 させ 統 一 を 妨 げている 軍 備 競 争 を 軍 縮 へ 切 り 替 え そこから 出 てくる 平 和 配 当 金 が 国 民 福 祉 の 増 進 のために 使 われるようにする 4. この 地 に 呼 び 込 まれた 休 戦 体 制 ( 準 戦 時 体 制 )を 平 和 体 制 へ 変 えるために 南 北 不 可 侵 宣 言 - 平 和 協 定 の 締 結 を 推 進 し 朝 鮮 半 島 の 緊 張 緩 和 と 障 害 物 である ( 韓 米 引 用 者 ) 軍 事 同 盟 ( 韓 米 引 用 者 ) 軍 事 訓 練 に 反 対 する 5. 朝 鮮 半 島 を 非 核 地 帯 にする このための 法 律 の 制 定 を 推 進 し これを 保 障 する ための 国 際 的 装 置 を 講 究 する 16) 以 後 反 核 平 和 運 動 連 合 は 反 核 平 和 という 機 関 誌 を 発 行 して 活 動 した 要 す るに 反 核 平 和 運 動 連 合 の 結 成 は 平 和 運 動 を 中 心 的 な 活 動 方 向 とする 部 門 運 動 団 体 であるが これは それまでの 朝 鮮 半 島 の 平 和 運 動 には 見 られなかった 現 象 である だが 綱 領 から 示 唆 されるように 反 核 平 和 運 動 連 合 の 平 和 は 統 一 運 動 と 反 米 運 動 に 吸 収 される 余 地 が 多 分 にあった 実 際 に 1987 年 以 後 の 平 和 運 動 は 統 一 運 動 反 米 運 動 の 道 具 に 転 落 する 傾 向 を 帯 びていた 結 局 平 和 と 安 保 を 同 一 視 してきた 時 代 に 安 保 の 潮 流 であった 政 権 の 支 配 論 と 反 共 イデオロギーを 克 服 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 それが 解 消 されたのは 国 家 安 保 と 政 権 安 保 を 区 分 できる 韓 国 社 会 の 民 主 意 識 が 積 み 重 なり 統 一 運 動 または 反 米 運 動 の 流 れが 分 化 しながら 反 省 的 省 察 を 行 う 人 々によっ て 1990 年 代 中 盤 を 経 て 独 立 的 で 包 括 的 な 平 和 運 動 が 地 位 を 占 めるようになってから 16) 反 核 平 和 運 動 連 合 創 立 大 会 (1991.3.13) 8ページ この 団 体 は1993 年 2 月 解 体 総 会 をもって 解 散 した 258
韓 国 近 現 代 の 平 和 運 動 論 探 索 - 民 族 運 動 と 民 主 化 運 動 を 中 心 に - である 17) 4. 平 和 運 動 と 歴 史 教 育 韓 国 の 歴 史 教 育 において 平 和 教 育 はなされていない 韓 国 の 民 族 運 動 のなかに 内 在 する 軍 事 主 義 的 要 素 が 指 摘 されたことはない また 朝 鮮 戦 争 に 関 しては 南 侵 とその 被 害 を 強 調 するだけで それがどれほど 反 人 倫 的 な 犯 罪 行 為 であり 韓 国 現 代 史 と 東 アジ ア 史 そして 世 界 史 にどのような 影 響 を 及 ぼしたのかについて まともに 注 目 していないの が 現 況 である 1894 年 の 東 学 農 民 戦 争 から 最 近 のアフガニスタン 派 兵 まで 韓 国 人 は 無 数 の 戦 争 を 体 験 し それに 介 入 してきたが 戦 争 それ 自 体 の 不 当 性 をまともに 批 判 したことがない 民 族 的 立 場 から 日 本 の 侵 略 と 支 配 を 批 判 しはしても 理 念 の 枠 のなかで 中 国 とソ 連 の 行 為 を 指 摘 しはしても 自 らの 省 察 をまともにしたことがないのである それゆえ 産 業 化 と 民 主 化 を 同 時 に 達 成 したというけれども 日 常 では 相 変 わらず 威 圧 的 な 序 列 関 係 が 個 人 と 個 人 の 関 係 を 支 配 している この 間 大 多 数 の 韓 国 人 は 独 立 と 統 一 を 媒 介 にして 平 和 を 考 え るように 訓 育 されてきたので 観 念 的 な 議 論 にはなじんでいるが 日 常 的 な 周 囲 の 平 和 に ついては 無 知 で 無 感 覚 なのが 現 実 である 積 極 的 平 和 論 を 日 常 的 な 生 活 と 具 体 的 な 現 実 のなかで 考 えることができる 機 会 を 韓 国 の 歴 史 教 育 は 提 供 する 必 要 があるのである 17) 鄭 旭 湜 提 案 1: 韓 国 平 和 運 動 の 成 果 と 展 望 そして 課 題 2005 5ページ 259